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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2권, 영조 즉위년 12월 18일 丁亥 2/3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대사헌 오명준이 이광좌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자 삭탈 관작하여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다

국역

대사헌(大司憲) 오명준(吳命峻)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전하께서는 영예(英銳)함이 너무 지나치시고 정신(精神)이 너무 드러나십니다. 지혜는 만물(萬物)에 두루 미쳐 홀로 온 세상을 휘잡으려는 기개를 가지고 계시고, 군하(群下)를 꺾고 복종시켜 맹자(孟子)의 변론(辯論)을 좋아하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미 그에 장점이 있다면 어찌 손해나는 바가 없겠습니까? 함축(含蓄)한 것이 미진하여 사기(辭氣)가 간혹 편벽되고, 일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병(病)이 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너무 가볍고 너무 날카로워 혹 신중함을 유지하는 데 부족함이 있고, 총명(聰明)이 너무 넓어 너무 미세하게 하는 데서 실수가 생깁니다. 비록 전날 산릉(山陵)의 승인(僧人)이 불에 타 죽었을 때의 휼전(恤典)을 가지고 말할지라도 해조(該曹)에 명하시면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또 액례(掖隷)를 시켜 안에서 부물(賻物)을 주게 하셨는데, 다른 물건은 지나치게 많았으나 쌀·콩 몇 승(升)은 너무 보잘것없이 작았습니다. 천승(千乘)의 임금이 사람에게 부물을 주는 것이 이와 같다면, 이것은 바지를 아끼는 데361) 견줄 것이 아닙니다.

이후로는 총찰(聰察)에 맡기지 마시고 작은 은혜에 힘쓰지 마소서. 전하의 사령(辭令)은 횡설수설하여 혹 자랑하는 데 가깝습니다. 오로지 성명(聖明)께는 다만 경계하시어 간략하고 다탕하게 하는 데 힘쓰소서. 전하께서는 매번 정성과 믿음이 서로 합치되는 것을 선무(先務)로 여기시므로, 신(臣)은 언제나 마치 사시(四時)처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전의 국옥(鞫獄) 때 적간(摘奸)하라신 하교는 근고(近古)에 있지 아니한 바였으니, 대신(大臣)이 어찌 스스로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일이 지나간 뒤에 전하께서 또한 반드시 후회하셨으니, 오로지 전하께서는 반성하시어 잘못을 되풀이하는 허물을 초래하지 마소서. 이의연(李義淵)이 선왕(先王)을 무욕(誣辱)한 죄에 전하께서 내리신 처분(處分)은 후세(後世)에 할 말이 있겠습니다만, 아직도 성고(聖考)께서 조사기(趙嗣基)를 처분하신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전후로 영구(營救)했던 무리들을 하나하나 무겁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고, 김일경(金一鏡)을 문출(門黜)할 때 복역(覆逆)한 승지(承旨) 또한 문출을 더해 당습(黨習)을 경계해야 마땅합니다.

옛날 자사(子思)가 위후(衛候)에게 말하기를, ‘임금이 말을 하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데도 경대부(卿大夫)가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임금의 나라 일이 장차 날로 그릇되어 갈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조정이 혹 위(衛)나라의 군신(君臣)과 비슷하니, 삼가 원하건대, 바른말을 하는 한 선비를 뽑아 그저 예예 하고 따르는 천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게 하소서. 지난날 성대(盛大)하였을 때는 사대부(士大夫)들이 벼슬을 얻었을 때나 잃었을 때나 모두 정당함을 지키며 아부하지 않아 추합(趨合)하거나 용납되려는 관습이 있지 않았으며, 비록 한때 실패하더라도 유취(遺臭)362) 의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진실로 탕평(蕩平)·건극(建極)하고자 하시어 반드시 호오(好惡)로 출척(黜陟)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조정의 풍기(風氣)가 먼저 변하여 사대부들의 뜻과 취향이 점점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영의정(領議政) 이광좌(李光佐)는 원보(元輔)의 지위에 있으며 감독하고 인솔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데도, 자기 한 몸을 부끄러움 밖으로 팽개치고 이 세상을 더럽고 낮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연주(筵奏)와 장소(章疏)를 남에게 대신 올리게 하며 말마다 아첨해 기쁘게 하고, 일마다 꺾이면서도 감사하며 오로지 한 마디 말이라도 들어맞지 않을까 한 가지 일이라도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제(公除)하는 날 빈전(殯殿) 곁에 있으면서 전하의 슬픈 눈물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급히 아첨하는 말을 올려, 사친(私親)을 위해 사우(祠宇)를 세우는 일과 사묘(私墓)를 증봉(增封)할 것을 힘써 거듭 청하였는데, 성상께서 흉년이 들어 백성이 곤궁하다고 말씀하시고, 또 묘도(墓道)는 증봉(增封)할 것이 없다는 덕음(德音)이 명백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억지로 다투었으니, 심합니다. 그 사람의 이목(耳目)을 가리고 아첨하며 은총(恩寵)을 굳히려는 술수야말로. 또 전하의 어용(御容)이 어찌 반드시 슬퍼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급급하게 해야 할 일이겠습니까? 그런데도 맨먼저 말을 꺼내어 누누이 진달(陳達)했습니다.

계사년363) 에 영상(領相) 이유(李濡)가 어용(御容)으로 아첨하려 했던 일 때문에 장령(掌令) 서명우(徐命遇)에게 논핵(論劾)받자, 성고(聖考)께서 즉시 그의 상직(相職)을 갈아 버리시고 한 번 물리친 뒤로는 다시 복귀시키지 않으셨으니, 성고께서 엄하게 배척하신 데는 그럴 만한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가 연석(筵席)에서 올린 말은 단지 전하께서 즐겨 들으시는 것만을 노린 것이니, 전하께서 높은 곳에서 굽어 보시며 그 정상(情狀)을 어찌 통촉하지 못하시겠습니까? 대개 그의 병통(病痛)은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데 있습니다. 지난날 구명규(具命奎)에게 참혹한 논박(論駁)을 받았을 적에는 강(江)가를 배회하며 차마 멀리 떠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관반(館伴)으로 무릅쓰고 출사(出仕)하였고, 또 빈사(儐使)로 먼길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총재(冢宰)란 무거운 임무를 서너 달 동안 헛되이 띠고 있으면서 끝내 힘써 사양하지 않더니, 대배(大拜)함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끝까지 윤각(尹慤)을 보호하고자 하였습니다. 언제나 정세(情勢)로 보아 편안하기 어렵다며 날마다 계달(啓達)하였는데, 조정의 논의가 격렬하게 끓어올라 합계(合啓)가 장차 발동(發動)되려 하자, 공의(公議)에 겁을 집어먹고 후사(喉司)에 청하여 박자를 맞추어 줄 것을 청하니, 승선(承宣) 전부가 청대(請對)하여 그가 지휘한 대로 별유(別諭)를 내리실 것을 청했습니다.

비로소 안국(按鞫)하게 되어서는 토역(討逆)과 복수는 가볍게 여기고 대론(臺論)은 무겁게 여겼으니, 천고(千古)의 신하로서 지켜야 할 절개가 땅을 쓴 듯 없었습니다. 오로지 벼슬을 얻거나 잃는 데 대한 생각만 뱃속에 넣어둔 채 밤낮으로 경영(經營)하는 바는 오로지 당원(黨援)을 널리 심어 근본을 굳게 다지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무릇 천거하거나 빼버리는 데 관계되는 일은 오직 사랑과 미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그의 사당(私黨)일 경우라면 반드시 탁용(擢用)하고자 하되, 사람들의 말이 있을까 염려가 되면 수망(首望)과 부망(副望) 두 망(望)은 낙점(落點)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의망(擬望)에 채워넣고, 그 좋아하는 사람을 말망(末望)에 두어 천점(天點)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사람들의 말이 있을 경우, ‘성간(聖簡)이었다.’고 하며, 아무리 극선(極選)·중임(重任)이라도 제멋대로 취허(吹噓)하였던 것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원접사(遠接使)가 채 회정(回程)하기도 전에 질병이나 긴급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곧장 아경(亞卿)을 승진시켜 반송사(伴送使)로 삼을 것을 청하고, 또 두 사람의 가선(嘉善)을 곧장 자헌(資憲)으로 승진시킬 것을 청하여, 한 정목(政目)에 두 사람을 초자(超資)하는 일을 승전(承傳)으로 써서 냈습니다. 국조(國朝) 이래로 대신(大臣)이 사람을 천거할 때 혹 어필(御筆)로 특제(特除)하기도 하고 말망(末望)으로 낙점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승전을 받들어 초자한 경우는 3백 년 이래로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당(黨)을 부식(扶植)하는 데 급하다 하지만, 유독 국정(國政)을 천단(擅斷)하는 혐의(嫌疑)는 돌아보지 않는단 말입니까?

올해 해서(海西)에는 이미 병란(兵亂)도 없었고 또 적지(赤地)도 아닌데, 새 감사(監司)를 갈아치우고자 하여 6품계(品階)에 있는 사람을 초탁(超擢)하였습니다. 눈썹을 한 번 꿈틀하자 후사(喉司)에서는 까닭도 없이 간장(諫長)의 사단(辭單)을 봉입(捧入)했고, 전조(銓曹)에서는 새 감사를 간장으로 옮기더니, 얼마 안 있어 차자(箚子)를 올려 윤용(尹容)을 탁용(擢用)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윤용은 출륙(出六)한 지 겨우 여섯 달 만에 2품에 올랐으니, 그 권세(權勢)를 뒤흔듦을 알 만합니다. 위력으로 양전(兩銓)을 제어하되, 청한 바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그 대신한 사람을 출사(出仕)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전(前) 주부(主簿) 이세복(李世澓)이 곧 그 일례(一例)입니다. 권세가 중외(中外)를 기울이고 위세가 온 나라에 횡행하여 팔도 곤수(閫帥)의 반수가 그의 집 문(門)에서 나오고 사방의 선물 꾸러미가 그의 집으로 몰려드니, 그가 세상을 그르치고 나라를 병들게 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선조(先朝)에 허물을 진데다 장차 신화(新化)에 누를 끼치려 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깊이 우려하고 몰래 한탄하고 있으나, 그 당원(黨援)의 위세가 두려워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으니, 신은 적이 통탄스럽게 여깁니다. 원하건대, 공정하게 들으시고 아울러 살펴 보시어 총행(寵倖)에 가리워지지 마시고 그 권병(權柄)을 빼앗아 권위(權威)가 아래로 옮겨지지 않게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지 않았다. 이광좌가 금부(禁府)의 문 밖에서 대명(待命)하니, 임금이 사관(史官)을 보내어 별도로 효유(曉諭)하고 함께 들어오게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한 번 붕당(朋黨)이 생긴 이후로 공의(公議)가 막히고 호오(好惡)가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대신(大臣)은 나라의 주석(柱石)으로서 비록 과실(過失)이 있다 하더라도 양사(兩司)에서 합의(合議)하는 법이니, 사체(事體)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수규(首揆)는 명신(名臣)의 손자로 양조(兩朝)를 두루 섬겨 한 마음으로 봉공(奉公)하였으니 해를 꿰뚫는 듯한 충성을 신명(神明)에게 물어볼 수 있는데, ‘아첨하며 은총을 굳힌다.’느니, ‘위세가 온 나라에 횡행한다.’느니 하는 말을 제멋대로 더하였다. 윤각(尹慤)의 일에 이르러서는 접때 그의 지극히 공정함을 일컬었기 때문에 먼저 이 일을 들어 도리어 군부(君父)을 미혹시킨 것이니, 아아! 또한 교묘하다. 조상(朝象)이 분열되어 장차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못하겠기에 내가 이 습관을 통렬하게 혁파(革罷)하려 하고 있는데, 당고(黨錮)를 내심 달갑게 여기는 무리들이 갑자기 청의(淸議)를 해치려는 뜻을 내니, 은미할 때 방지하여 악(惡)을 징계하는 일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사헌 오명준을 우선 체차(遞差)하라."

하고, 곧이어 오명준을 삭탈 관작(削奪官爵)하여 문외 출송(門外黜送)시키라고 명하였다. 다음날 이광좌가 도성(都城) 밖으로 나갔다.

사신은 말한다. "오명준(吳命峻)은 명상(名相)의 손자로서 참하(參下)에 있을 때부터 조경(躁競)364) 한다는 비난이 있어 사류(士類)가 침을 뱉으며 더럽게 여겼다. 이광좌(李光佐)가 그의 사람됨을 더럽게 여겨 이조·병조·호조의 천망(薦望)을 굳게 막고 의망(擬望)하지 않았으므로, 오명준이 이 때문에 원한이 뼈에 사무쳐 있었는데, 시세(時勢)가 이미 위태롭고 임금의 마음이 벌써 바뀐 것을 보자 이에 군척(捃摭)한 것이 이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명준은 푸르뎅뎅한 얼굴에다 귀신 같은 피부색을 가졌고, 생김새는 노기(盧杞)365) 와 같았다고 한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45면
  • [註 361] 바지를 아끼는 데 :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해어진 바지를 갈무리하여 두고 아무에게나 내려 주지 아니하였는데, 이것은 공(功)이 있는 사람에게 내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함.
  • [註 362] 유취(遺臭) : 악명(惡名)을 후세에 남김.
  • [註 363] 계사년 : 1713 숙종 39년.
  • [註 364] 조경(躁競) : 남과 권세(權勢)를 조급히 다툼.
  • [註 365] 노기(盧杞) : 당(唐)나라 활주(滑州)사람. 본래 음험한 성격을 가졌었는데 덕종(德宗)이 그 재능을 인정하여 발탁해 중용(重用)하였음. 그런데 권력을 잡자 정사(政事)를 어지럽혔으므로 신주 사마(新州司馬)로 좌천되었고, 풍주(灃州)로 옮기는 도중에 죽었음.

원문

○大司憲吳命峻上疏。 略曰:

殿下英銳太過, 精神太露, 智周萬物, 有獨馭一世之氣, 折服群下, 有孟子好辯之志, 旣有其長, 那無其損? 含蓄未盡, 辭氣或偏, 隨事隨處, 無不爲病。 太輕太銳, 或欠持重, 聰明甚廣, 失之太細。 雖以前日山陵僧人燒死時恤典言之, 命于該曹足矣, 又使掖隷, 致內賻, 他物太多, 而米太數升, 太零瑣。 千乘之賻人如此, 此非惜袴之比。 今後勿任聰察, 毋務小惠焉。 殿下辭令, 橫說竪說, 或近於夸。 惟聖明戒之, 務在簡當焉。 殿下, 每以誠信相孚爲先務, 臣每信如四時。 日前鞫獄摘奸之敎, 近古所未有, 大臣豈自安乎? 事過之後, 殿下亦必悔之。 惟殿下反求, 毋貽貳過之咎。 義淵誣辱先王之罪, 殿下處分, 可有辭於後世, 而尙不及於聖考之處嗣基。 前後營救之類, 宜一一重處, 一鏡削黜時覆逆承旨, 亦宜倂加門黜, 以戒黨習焉。 昔子思言於衛侯曰: "君出言, 自以爲是, 而卿大夫莫敢矯其非, 君之國事, 將日非矣。" 卽今朝廷, 或類衛國之君臣, 伏願惟取一士之諤諤, 毋悅千人之唯唯。 在前盛時, 士大夫當得喪之時, 皆能守正不阿, 未有趨合苟容之風, 雖有一時之敗, 未見遺臭之恥。 今殿下, 固欲蕩平、建極, 未必有好惡黜陟之意, 而朝廷之風氣先變, 士夫之志趨漸汚。 領議政李光佐, 居元輔之位, 任董率之責, 抛一身於羞恥之外, 導斯世於汚下之域。 筵奏章疏, 令人代羞, 言言而諛悅, 事事而摧謝, 惟恐一言之不合, 一事之見忤。 公除日在殯殿之側, 殿下之哀淚未乾, 急進媚悅之說, 以私親建祠, 私墓增封, 力爲伸請, 自上以歲飢民窮爲辭, 且以墓道無可增封, 德音明白, 則猶且爭之强, 甚矣, 其掩人耳目, 求媚固寵之術也! 且殿下御容, 豈必哀遑中汲汲事, 而首發縷陳。 癸巳領相李濡, 以御容媚悅事, 被掌令徐命遇論劾, 聖考卽遞其相職, 一斥不復, 聖考嚴斥, 意有所在。 今其筵席進言, 只賭殿下之樂聞, 殿下高臨俯觀, 豈不燭其情狀乎? 蓋其病痛, 在於患失。 頃被具命奎之慘駁, 徘徊江上, 不忍遠去, 終以館伴冒出, 又以儐使遠赴。 冡宰重任, 虛帶三四朔, 竟不力辭, 逮至大拜, 必欲終護尹慤。 每以情勢難安, 日日啓達, 及廷論沸激, 合啓將發, 怯於公議, 請於喉司, 願作節拍, 承宣全數請對, 請降別諭, 如其指, 始乃按鞫。 是討復爲輕, 臺論爲重, 千古臣節, 掃地盡矣。 惟其得失之念, 着在肚裏, 朝晝經營, 惟在於廣樹黨援, 以固根本。 凡係薦拔, 只在愛憎, 苟其私黨, 必欲擢用, 而慮有人言, 則首副二望, 皆以不可受點之人充擬, 以其所好, 置之末擬, 冀受天點, 及有人言則曰: "聖簡也", 雖極選、重望, 惟意吹噓。 前冬遠接使未及回程, 非有疾病緊務, 而徑請以亞卿, 陞爲伴送使, 且請兩嘉善直超資憲, 一政目, 以二人超資事, 承傳書出。 國朝以來, 大臣薦人, 或以御筆特除, 或擬望受點, 奉承傳超資, 三百年所未有者。 雖急於植黨, 獨不顧擅國之嫌乎? 今年海西, 旣無兵燹, 且非赤地, 欲遞新伯, 而超擢六品階人。 眉睫一動, 喉司無端捧諫長之單, 銓曹移新伯於諫長, 俄上箚請擢尹容。 容出六纔六朔, 而躋二品, 其權勢之掀動, 可知也。 威制兩銓, 所請不施, 則得其代者, 使之不仕, 前主簿李世澓, 卽其一也。 權傾中外, 威行一國, 八路閫帥, 半出其門, 四方饋遺, 輻輳其家, 其誤世病國至此。 旣負先朝, 將累新化, 人皆深憂竊歎, 而畏其黨援威勢, 莫有言之者, 臣竊痛之。 願公聽竝觀, 無爲寵倖所蔽, 抑奪其柄, 毋使權威下移。

不報。 光佐待命于禁府門外, 上遣史官別諭, 使與偕入。 仍下敎曰: "一自朋黨以後, 公議枳塞, 好惡不明。 況大臣, 國之柱石, 雖有過失, 兩司合議, 所以重事體。 首揆以名臣之孫, 歷事兩朝, 一心奉公, 貫日之忠, 可質神明, 而以求媚固寵, 威行一國等語, 肆然加之。 至於懿事, 向稱其至公, 故先擧此事, 反惑君父, 吁亦巧矣! 朝象分裂, 將至國不爲國, 故予欲痛革此習, 而甘心黨錮之類, 遽生害淸議之意, 防微懲惡, 不可不嚴。 大司憲吳命峻, 姑先遞差。" 旋命命峻削奪官爵, 門外黜送。 翌日, 光佐出城。

【史臣曰: 命峻以名相之孫, 自在參下, 已多躁競之譏, 爲士類所唾鄙。 光佐鄙其爲人, 吏、兵、戶薦望, 牢塞不擬, 命峻以此恨憾次骨, 見時勢已危, 上心已移, 乃捃摭至此。 命峻, 藍面鬼色, 貌類盧杞云。】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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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2권, 영조 즉위년 12월 18일 丁亥 2/3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대사헌 오명준이 이광좌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자 삭탈 관작하여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다

국역

대사헌(大司憲) 오명준(吳命峻)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전하께서는 영예(英銳)함이 너무 지나치시고 정신(精神)이 너무 드러나십니다. 지혜는 만물(萬物)에 두루 미쳐 홀로 온 세상을 휘잡으려는 기개를 가지고 계시고, 군하(群下)를 꺾고 복종시켜 맹자(孟子)의 변론(辯論)을 좋아하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미 그에 장점이 있다면 어찌 손해나는 바가 없겠습니까? 함축(含蓄)한 것이 미진하여 사기(辭氣)가 간혹 편벽되고, 일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병(病)이 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너무 가볍고 너무 날카로워 혹 신중함을 유지하는 데 부족함이 있고, 총명(聰明)이 너무 넓어 너무 미세하게 하는 데서 실수가 생깁니다. 비록 전날 산릉(山陵)의 승인(僧人)이 불에 타 죽었을 때의 휼전(恤典)을 가지고 말할지라도 해조(該曹)에 명하시면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또 액례(掖隷)를 시켜 안에서 부물(賻物)을 주게 하셨는데, 다른 물건은 지나치게 많았으나 쌀·콩 몇 승(升)은 너무 보잘것없이 작았습니다. 천승(千乘)의 임금이 사람에게 부물을 주는 것이 이와 같다면, 이것은 바지를 아끼는 데361) 견줄 것이 아닙니다.

이후로는 총찰(聰察)에 맡기지 마시고 작은 은혜에 힘쓰지 마소서. 전하의 사령(辭令)은 횡설수설하여 혹 자랑하는 데 가깝습니다. 오로지 성명(聖明)께는 다만 경계하시어 간략하고 다탕하게 하는 데 힘쓰소서. 전하께서는 매번 정성과 믿음이 서로 합치되는 것을 선무(先務)로 여기시므로, 신(臣)은 언제나 마치 사시(四時)처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전의 국옥(鞫獄) 때 적간(摘奸)하라신 하교는 근고(近古)에 있지 아니한 바였으니, 대신(大臣)이 어찌 스스로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일이 지나간 뒤에 전하께서 또한 반드시 후회하셨으니, 오로지 전하께서는 반성하시어 잘못을 되풀이하는 허물을 초래하지 마소서. 이의연(李義淵)이 선왕(先王)을 무욕(誣辱)한 죄에 전하께서 내리신 처분(處分)은 후세(後世)에 할 말이 있겠습니다만, 아직도 성고(聖考)께서 조사기(趙嗣基)를 처분하신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전후로 영구(營救)했던 무리들을 하나하나 무겁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고, 김일경(金一鏡)을 문출(門黜)할 때 복역(覆逆)한 승지(承旨) 또한 문출을 더해 당습(黨習)을 경계해야 마땅합니다.

옛날 자사(子思)가 위후(衛候)에게 말하기를, ‘임금이 말을 하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데도 경대부(卿大夫)가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임금의 나라 일이 장차 날로 그릇되어 갈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조정이 혹 위(衛)나라의 군신(君臣)과 비슷하니, 삼가 원하건대, 바른말을 하는 한 선비를 뽑아 그저 예예 하고 따르는 천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게 하소서. 지난날 성대(盛大)하였을 때는 사대부(士大夫)들이 벼슬을 얻었을 때나 잃었을 때나 모두 정당함을 지키며 아부하지 않아 추합(趨合)하거나 용납되려는 관습이 있지 않았으며, 비록 한때 실패하더라도 유취(遺臭)362) 의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진실로 탕평(蕩平)·건극(建極)하고자 하시어 반드시 호오(好惡)로 출척(黜陟)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조정의 풍기(風氣)가 먼저 변하여 사대부들의 뜻과 취향이 점점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영의정(領議政) 이광좌(李光佐)는 원보(元輔)의 지위에 있으며 감독하고 인솔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데도, 자기 한 몸을 부끄러움 밖으로 팽개치고 이 세상을 더럽고 낮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연주(筵奏)와 장소(章疏)를 남에게 대신 올리게 하며 말마다 아첨해 기쁘게 하고, 일마다 꺾이면서도 감사하며 오로지 한 마디 말이라도 들어맞지 않을까 한 가지 일이라도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제(公除)하는 날 빈전(殯殿) 곁에 있으면서 전하의 슬픈 눈물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급히 아첨하는 말을 올려, 사친(私親)을 위해 사우(祠宇)를 세우는 일과 사묘(私墓)를 증봉(增封)할 것을 힘써 거듭 청하였는데, 성상께서 흉년이 들어 백성이 곤궁하다고 말씀하시고, 또 묘도(墓道)는 증봉(增封)할 것이 없다는 덕음(德音)이 명백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억지로 다투었으니, 심합니다. 그 사람의 이목(耳目)을 가리고 아첨하며 은총(恩寵)을 굳히려는 술수야말로. 또 전하의 어용(御容)이 어찌 반드시 슬퍼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급급하게 해야 할 일이겠습니까? 그런데도 맨먼저 말을 꺼내어 누누이 진달(陳達)했습니다.

계사년363) 에 영상(領相) 이유(李濡)가 어용(御容)으로 아첨하려 했던 일 때문에 장령(掌令) 서명우(徐命遇)에게 논핵(論劾)받자, 성고(聖考)께서 즉시 그의 상직(相職)을 갈아 버리시고 한 번 물리친 뒤로는 다시 복귀시키지 않으셨으니, 성고께서 엄하게 배척하신 데는 그럴 만한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가 연석(筵席)에서 올린 말은 단지 전하께서 즐겨 들으시는 것만을 노린 것이니, 전하께서 높은 곳에서 굽어 보시며 그 정상(情狀)을 어찌 통촉하지 못하시겠습니까? 대개 그의 병통(病痛)은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데 있습니다. 지난날 구명규(具命奎)에게 참혹한 논박(論駁)을 받았을 적에는 강(江)가를 배회하며 차마 멀리 떠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관반(館伴)으로 무릅쓰고 출사(出仕)하였고, 또 빈사(儐使)로 먼길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총재(冢宰)란 무거운 임무를 서너 달 동안 헛되이 띠고 있으면서 끝내 힘써 사양하지 않더니, 대배(大拜)함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끝까지 윤각(尹慤)을 보호하고자 하였습니다. 언제나 정세(情勢)로 보아 편안하기 어렵다며 날마다 계달(啓達)하였는데, 조정의 논의가 격렬하게 끓어올라 합계(合啓)가 장차 발동(發動)되려 하자, 공의(公議)에 겁을 집어먹고 후사(喉司)에 청하여 박자를 맞추어 줄 것을 청하니, 승선(承宣) 전부가 청대(請對)하여 그가 지휘한 대로 별유(別諭)를 내리실 것을 청했습니다.

비로소 안국(按鞫)하게 되어서는 토역(討逆)과 복수는 가볍게 여기고 대론(臺論)은 무겁게 여겼으니, 천고(千古)의 신하로서 지켜야 할 절개가 땅을 쓴 듯 없었습니다. 오로지 벼슬을 얻거나 잃는 데 대한 생각만 뱃속에 넣어둔 채 밤낮으로 경영(經營)하는 바는 오로지 당원(黨援)을 널리 심어 근본을 굳게 다지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무릇 천거하거나 빼버리는 데 관계되는 일은 오직 사랑과 미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그의 사당(私黨)일 경우라면 반드시 탁용(擢用)하고자 하되, 사람들의 말이 있을까 염려가 되면 수망(首望)과 부망(副望) 두 망(望)은 낙점(落點)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의망(擬望)에 채워넣고, 그 좋아하는 사람을 말망(末望)에 두어 천점(天點)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사람들의 말이 있을 경우, ‘성간(聖簡)이었다.’고 하며, 아무리 극선(極選)·중임(重任)이라도 제멋대로 취허(吹噓)하였던 것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원접사(遠接使)가 채 회정(回程)하기도 전에 질병이나 긴급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곧장 아경(亞卿)을 승진시켜 반송사(伴送使)로 삼을 것을 청하고, 또 두 사람의 가선(嘉善)을 곧장 자헌(資憲)으로 승진시킬 것을 청하여, 한 정목(政目)에 두 사람을 초자(超資)하는 일을 승전(承傳)으로 써서 냈습니다. 국조(國朝) 이래로 대신(大臣)이 사람을 천거할 때 혹 어필(御筆)로 특제(特除)하기도 하고 말망(末望)으로 낙점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승전을 받들어 초자한 경우는 3백 년 이래로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당(黨)을 부식(扶植)하는 데 급하다 하지만, 유독 국정(國政)을 천단(擅斷)하는 혐의(嫌疑)는 돌아보지 않는단 말입니까?

올해 해서(海西)에는 이미 병란(兵亂)도 없었고 또 적지(赤地)도 아닌데, 새 감사(監司)를 갈아치우고자 하여 6품계(品階)에 있는 사람을 초탁(超擢)하였습니다. 눈썹을 한 번 꿈틀하자 후사(喉司)에서는 까닭도 없이 간장(諫長)의 사단(辭單)을 봉입(捧入)했고, 전조(銓曹)에서는 새 감사를 간장으로 옮기더니, 얼마 안 있어 차자(箚子)를 올려 윤용(尹容)을 탁용(擢用)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윤용은 출륙(出六)한 지 겨우 여섯 달 만에 2품에 올랐으니, 그 권세(權勢)를 뒤흔듦을 알 만합니다. 위력으로 양전(兩銓)을 제어하되, 청한 바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그 대신한 사람을 출사(出仕)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전(前) 주부(主簿) 이세복(李世澓)이 곧 그 일례(一例)입니다. 권세가 중외(中外)를 기울이고 위세가 온 나라에 횡행하여 팔도 곤수(閫帥)의 반수가 그의 집 문(門)에서 나오고 사방의 선물 꾸러미가 그의 집으로 몰려드니, 그가 세상을 그르치고 나라를 병들게 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선조(先朝)에 허물을 진데다 장차 신화(新化)에 누를 끼치려 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깊이 우려하고 몰래 한탄하고 있으나, 그 당원(黨援)의 위세가 두려워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으니, 신은 적이 통탄스럽게 여깁니다. 원하건대, 공정하게 들으시고 아울러 살펴 보시어 총행(寵倖)에 가리워지지 마시고 그 권병(權柄)을 빼앗아 권위(權威)가 아래로 옮겨지지 않게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지 않았다. 이광좌가 금부(禁府)의 문 밖에서 대명(待命)하니, 임금이 사관(史官)을 보내어 별도로 효유(曉諭)하고 함께 들어오게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한 번 붕당(朋黨)이 생긴 이후로 공의(公議)가 막히고 호오(好惡)가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대신(大臣)은 나라의 주석(柱石)으로서 비록 과실(過失)이 있다 하더라도 양사(兩司)에서 합의(合議)하는 법이니, 사체(事體)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수규(首揆)는 명신(名臣)의 손자로 양조(兩朝)를 두루 섬겨 한 마음으로 봉공(奉公)하였으니 해를 꿰뚫는 듯한 충성을 신명(神明)에게 물어볼 수 있는데, ‘아첨하며 은총을 굳힌다.’느니, ‘위세가 온 나라에 횡행한다.’느니 하는 말을 제멋대로 더하였다. 윤각(尹慤)의 일에 이르러서는 접때 그의 지극히 공정함을 일컬었기 때문에 먼저 이 일을 들어 도리어 군부(君父)을 미혹시킨 것이니, 아아! 또한 교묘하다. 조상(朝象)이 분열되어 장차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못하겠기에 내가 이 습관을 통렬하게 혁파(革罷)하려 하고 있는데, 당고(黨錮)를 내심 달갑게 여기는 무리들이 갑자기 청의(淸議)를 해치려는 뜻을 내니, 은미할 때 방지하여 악(惡)을 징계하는 일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사헌 오명준을 우선 체차(遞差)하라."

하고, 곧이어 오명준을 삭탈 관작(削奪官爵)하여 문외 출송(門外黜送)시키라고 명하였다. 다음날 이광좌가 도성(都城) 밖으로 나갔다.

사신은 말한다. "오명준(吳命峻)은 명상(名相)의 손자로서 참하(參下)에 있을 때부터 조경(躁競)364) 한다는 비난이 있어 사류(士類)가 침을 뱉으며 더럽게 여겼다. 이광좌(李光佐)가 그의 사람됨을 더럽게 여겨 이조·병조·호조의 천망(薦望)을 굳게 막고 의망(擬望)하지 않았으므로, 오명준이 이 때문에 원한이 뼈에 사무쳐 있었는데, 시세(時勢)가 이미 위태롭고 임금의 마음이 벌써 바뀐 것을 보자 이에 군척(捃摭)한 것이 이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명준은 푸르뎅뎅한 얼굴에다 귀신 같은 피부색을 가졌고, 생김새는 노기(盧杞)365) 와 같았다고 한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45면
  • [註 361] 바지를 아끼는 데 :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해어진 바지를 갈무리하여 두고 아무에게나 내려 주지 아니하였는데, 이것은 공(功)이 있는 사람에게 내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함.
  • [註 362] 유취(遺臭) : 악명(惡名)을 후세에 남김.
  • [註 363] 계사년 : 1713 숙종 39년.
  • [註 364] 조경(躁競) : 남과 권세(權勢)를 조급히 다툼.
  • [註 365] 노기(盧杞) : 당(唐)나라 활주(滑州)사람. 본래 음험한 성격을 가졌었는데 덕종(德宗)이 그 재능을 인정하여 발탁해 중용(重用)하였음. 그런데 권력을 잡자 정사(政事)를 어지럽혔으므로 신주 사마(新州司馬)로 좌천되었고, 풍주(灃州)로 옮기는 도중에 죽었음.

원문

○大司憲吳命峻上疏。 略曰:

殿下英銳太過, 精神太露, 智周萬物, 有獨馭一世之氣, 折服群下, 有孟子好辯之志, 旣有其長, 那無其損? 含蓄未盡, 辭氣或偏, 隨事隨處, 無不爲病。 太輕太銳, 或欠持重, 聰明甚廣, 失之太細。 雖以前日山陵僧人燒死時恤典言之, 命于該曹足矣, 又使掖隷, 致內賻, 他物太多, 而米太數升, 太零瑣。 千乘之賻人如此, 此非惜袴之比。 今後勿任聰察, 毋務小惠焉。 殿下辭令, 橫說竪說, 或近於夸。 惟聖明戒之, 務在簡當焉。 殿下, 每以誠信相孚爲先務, 臣每信如四時。 日前鞫獄摘奸之敎, 近古所未有, 大臣豈自安乎? 事過之後, 殿下亦必悔之。 惟殿下反求, 毋貽貳過之咎。 義淵誣辱先王之罪, 殿下處分, 可有辭於後世, 而尙不及於聖考之處嗣基。 前後營救之類, 宜一一重處, 一鏡削黜時覆逆承旨, 亦宜倂加門黜, 以戒黨習焉。 昔子思言於衛侯曰: "君出言, 自以爲是, 而卿大夫莫敢矯其非, 君之國事, 將日非矣。" 卽今朝廷, 或類衛國之君臣, 伏願惟取一士之諤諤, 毋悅千人之唯唯。 在前盛時, 士大夫當得喪之時, 皆能守正不阿, 未有趨合苟容之風, 雖有一時之敗, 未見遺臭之恥。 今殿下, 固欲蕩平、建極, 未必有好惡黜陟之意, 而朝廷之風氣先變, 士夫之志趨漸汚。 領議政李光佐, 居元輔之位, 任董率之責, 抛一身於羞恥之外, 導斯世於汚下之域。 筵奏章疏, 令人代羞, 言言而諛悅, 事事而摧謝, 惟恐一言之不合, 一事之見忤。 公除日在殯殿之側, 殿下之哀淚未乾, 急進媚悅之說, 以私親建祠, 私墓增封, 力爲伸請, 自上以歲飢民窮爲辭, 且以墓道無可增封, 德音明白, 則猶且爭之强, 甚矣, 其掩人耳目, 求媚固寵之術也! 且殿下御容, 豈必哀遑中汲汲事, 而首發縷陳。 癸巳領相李濡, 以御容媚悅事, 被掌令徐命遇論劾, 聖考卽遞其相職, 一斥不復, 聖考嚴斥, 意有所在。 今其筵席進言, 只賭殿下之樂聞, 殿下高臨俯觀, 豈不燭其情狀乎? 蓋其病痛, 在於患失。 頃被具命奎之慘駁, 徘徊江上, 不忍遠去, 終以館伴冒出, 又以儐使遠赴。 冡宰重任, 虛帶三四朔, 竟不力辭, 逮至大拜, 必欲終護尹慤。 每以情勢難安, 日日啓達, 及廷論沸激, 合啓將發, 怯於公議, 請於喉司, 願作節拍, 承宣全數請對, 請降別諭, 如其指, 始乃按鞫。 是討復爲輕, 臺論爲重, 千古臣節, 掃地盡矣。 惟其得失之念, 着在肚裏, 朝晝經營, 惟在於廣樹黨援, 以固根本。 凡係薦拔, 只在愛憎, 苟其私黨, 必欲擢用, 而慮有人言, 則首副二望, 皆以不可受點之人充擬, 以其所好, 置之末擬, 冀受天點, 及有人言則曰: "聖簡也", 雖極選、重望, 惟意吹噓。 前冬遠接使未及回程, 非有疾病緊務, 而徑請以亞卿, 陞爲伴送使, 且請兩嘉善直超資憲, 一政目, 以二人超資事, 承傳書出。 國朝以來, 大臣薦人, 或以御筆特除, 或擬望受點, 奉承傳超資, 三百年所未有者。 雖急於植黨, 獨不顧擅國之嫌乎? 今年海西, 旣無兵燹, 且非赤地, 欲遞新伯, 而超擢六品階人。 眉睫一動, 喉司無端捧諫長之單, 銓曹移新伯於諫長, 俄上箚請擢尹容。 容出六纔六朔, 而躋二品, 其權勢之掀動, 可知也。 威制兩銓, 所請不施, 則得其代者, 使之不仕, 前主簿李世澓, 卽其一也。 權傾中外, 威行一國, 八路閫帥, 半出其門, 四方饋遺, 輻輳其家, 其誤世病國至此。 旣負先朝, 將累新化, 人皆深憂竊歎, 而畏其黨援威勢, 莫有言之者, 臣竊痛之。 願公聽竝觀, 無爲寵倖所蔽, 抑奪其柄, 毋使權威下移。

不報。 光佐待命于禁府門外, 上遣史官別諭, 使與偕入。 仍下敎曰: "一自朋黨以後, 公議枳塞, 好惡不明。 況大臣, 國之柱石, 雖有過失, 兩司合議, 所以重事體。 首揆以名臣之孫, 歷事兩朝, 一心奉公, 貫日之忠, 可質神明, 而以求媚固寵, 威行一國等語, 肆然加之。 至於懿事, 向稱其至公, 故先擧此事, 反惑君父, 吁亦巧矣! 朝象分裂, 將至國不爲國, 故予欲痛革此習, 而甘心黨錮之類, 遽生害淸議之意, 防微懲惡, 不可不嚴。 大司憲吳命峻, 姑先遞差。" 旋命命峻削奪官爵, 門外黜送。 翌日, 光佐出城。

【史臣曰: 命峻以名相之孫, 自在參下, 已多躁競之譏, 爲士類所唾鄙。 光佐鄙其爲人, 吏、兵、戶薦望, 牢塞不擬, 命峻以此恨憾次骨, 見時勢已危, 上心已移, 乃捃摭至此。 命峻, 藍面鬼色, 貌類盧杞云。】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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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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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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