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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실록11권, 경종 3년 3월 13일 壬辰 3/3 기사 / 1723년 청 옹정(雍正) 1년

송시열을 조광조를 모신 도봉 서원에서 배향하지 못하게 할 것을 청하는 관학 유생 김범갑의 상소

국역

관학 유생(館學儒生) 김범갑(金范甲) 등이 상소(上疏)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도봉 서원(道峰書院)은 곧 선정신(先下臣) 조광조(趙光祖)를 타령(妥靈)123) 한 곳이었는데, 일찍이 병자년124) 에 송시열(宋時烈)을 아울러 향사(享祀)했으니, 어찌 식자(識者)들이 놀라 탄식하고 사림(士林)이 답답해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아! 춘추 대의(春秋大義)란 송시열이 세상을 속이는 패병(欛柄)125) 이었습니다. 효종(孝宗)께서는 실효(實效)를 구하셨는데, 송시열은 허성(虛聲)으로 응했고, 효종께서는 성의(誠意)로 대우하셨는데 송시열은 거짓으로 이용하였습니다. 평생의 기량이 다만 한 세상을 속이는 데 있었고, 실제 사업에 이르러서는 척촌(尺寸)만큼도 일컬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정신(先正臣) 윤선거(尹宣擧)가 글을 보내어 그 빈말일 뿐 실상이 없음을 깊이 배척했으니, 그 심지(心地)가 회휼(回譎)함과 대의(大義)의 허식적인 것을 식자(識者)의 공안(公眼)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대체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현묘(顯廟)께서 사위(嗣位)하신 초년을 당해서는 영안(永安)의 조서(詔書)126) 를 받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나아가기 어려운 사단으로 핑계대더니, 경신년127) 재기(再起)하던 날에 이르러서는 다시 일언 반구도 대의(大義)에 대해서는 언급한 일이 없었으니, 어찌하여 그 앞뒤가 한결같이 이처럼 상반되었는지요? 더구나 그가 찬(撰)한 고(故) 상신(相臣) 김유(金瑬)의 묘명(墓銘)에 주화(主和)한 일절(一節)을 종사(宗社)를 위한 계책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에 이르러 그의 평생토록 고집한 바의 대의(大義)가 그의 허성(虛聲)과 더불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말았으니, 진실을 가장하여 허위를 파는 모습이 도처에서 탄로되었다고 이를 만합니다.

아! 주자(朱子)를 모의(模擬)하는 것이 곧 송시열의 일생 동안의 기양(技癢)128) 이었습니다. 곧 그의 문집(文集)을 보면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반드시 주자로 자처하고,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 주자에 견주었습니다. 아! 주자와 송시열은 현(賢)·사(邪)와 의(義)·이(利)가 하늘과 땅처럼 현격할 정도가 아닌데, 반드시 곧 빙자하고 가탁하였으니, 이는 왕망(王莽)이 걸핏하면 주공(周公)을 본받는다고 한 것과 어찌 그렇게 서로 같습니까? 저 송시열은 이름을 훔치고 값을 찾아 잠시 왔다가 잠시 가기도 하더니, 종말의 국면(局面)이 번복(飜覆)될 즈음에는 앞장서 나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는 배척하여 빠뜨리고 자기에게 빌붙는 자는 끌어올려 주는 등 제 하고 싶은 대로 권세를 탐하고 즐겼으며, 훈척(勳戚)과 단단히 결탁하여 함께 악(惡)한 일을 서로 이루었습니다. 무고(誣告)한 간적(奸賊)을 부호(扶護)하고 사류(士類)의 청의(淸議)를 배격함으로써 세도(世道)는 점점 붕괴(崩壞)되고 인심(人心)은 날로 함닉(陷溺)하게 서서히 만들더니, 신축년129) 의 화변(禍變)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흉역(凶逆)들이 기세를 떨치고 종사(宗社)가 거의 위태로웠던 것도 모두 송시열이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 송시열의 가슴속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오직 한 조각의 기심(忮心)130) 뿐이었으니, 바른이를 상해하는 수단이 쇄록(瑣錄)의 편(篇)에 더욱 드러났습니다. 문자(文字)를 따내어 억지로 죄안(罪案)을 만들고, 김창집(金昌集)·신구(申球) 등 여러 역적에게 술법을 전하여 병신년131) 의 화(禍)를 빚어내게 하였으니, 일찍이 유자(儒者)로 일컬었던 자가 또한 이러한 소인배(小人輩)의 사람으로 함해(陷害)하는 버릇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까? 아! 송시열은 남을 추욕(醜辱)하는 것을 능사로 삼았던 것입니다. 윤선거(尹宣擧)는 곧 송시열의 외우(畏友)였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물결속에 지주(砥桂)라 포장(褒章)하고 천지(天地) 사이의 해와 별이라고 일컬었으니, 그의 경복(敬服)한 바가 지극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그런데 저 선정신(先正臣) 윤증(尹拯)이 그 본원(本源)을 의심한 뒤로부터 비로소 분한 마음을 내기 시작하여 공공연하게 추악한 욕을 함부로 하였습니다. 더구나 자기를 비난한 사람에게 노여운 마음을 품고 도리어 남의 부모를 비방하는 것은 비록 여항(閭巷)의 어린아이라도 또한 하지 않는 법입니다. 고(故) 상신(相臣) 김수항(金壽恒)은 송시열과 같은 조정에서 서로 좋아지내는 사이였는데도 혹 한두 가지 그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언제나 추악한 욕을 서로 더하였으며, 저 윤휴(尹鑴)에 이르러서는 본래 하나의 간신(奸臣)이었은즉, 간사한 자라고 공격해도 좋고 흉얼(凶孽)이라고 배격해도 좋은데, 송시열은 그가 살고 있던 동리의 이름이 개곡(介谷)이라 하여 윤휴를 일러 구(狗)라 하기도 하고 혹은 견(犬)이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추악하고 패려(悖戾)한 말은 비록 도시(屠市)의 사이에 악소년(惡少年)으로 하여금 하라고 해도 또한 얼굴에 땀을 흘리고 부끄러운 줄을 알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시험삼아 그의 문집을 가져다 보소서. 그러면 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흉휼(凶譎)함이 송시열과 같고 험피(險詖)함이 송시열과 같은 사람을 도봉 서원에 함께 제향한다면 선현(先賢)에게 욕을 끼치는 것이 이보다 심할 수 없을 것이니, 출향(黜享)하는 거조가 어찌 하루가 급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송시열을 입향(入享)할 때 고(故) 상신(相臣) 윤지선(尹趾善)이 소를 올려 다투어 성명(成命)을 도로 정지하였으니, 이로써 보더라도 당초에 합향(合享)한 것은 실제 선왕(先王)의 본의(本意)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라건대 해조(該曹)에 명하시어 송시열의 원향(院享)을 철거(撤去)하게 하소서.

하였다. 소가 들어온 지 오래 되었으나 회보(回報)하지 않자, 사도(四道)의 유생(儒生)과 생원(生員) 최탁(崔鐸) 등이 또 상소(上疏)하였는데, 그 말이 더욱 심각하고 참혹하여 심지어 이르기를,

"지난 무진년132) 에 장차 책례(冊禮)를 행하려고 하자, 송시열이 이에 감히 소를 올려 다투었는데, 그때 선왕(先王)께서 특별히 비망(備忘)을 내리시어 ‘드러나게 부족(不足)하게 여기는 뜻이 있다.’ 하시며 준엄하신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일종(一種)의 불령(不逞)한 무리들은 거개 다 그의 말을 존신(尊信)하였습니다. 그래서 창규(敞奎)133) 의 무리가 앞에서 창도(倡導)하고 이집(頤集)134) 의 당(黨)이 뒤에서 계속하여, 흉당(凶黨)들이 기세를 떨치자 종사(宗祀)가 거의 위태로울 뻔하였습니다. 그 정절(情節)을 추구해 보건대 다만 이 불만(不滿)과 부족(不足)한 마음에서 싹터 나온 것인즉, 송시열이 비록 악역(惡逆)은 아니라 하더라도 악역이 나오게 된 것이 반드시 송시열에게서 연유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시열이 장기(長鬐)에 천극(栫棘)되었을 때 시를 지어 이르기를, ‘천리 밖에도 또한 오랑캐 땅인데, 4, 5년 이래 태평성대를 노래 부르네. 노랫소리 피리소리 크게 울리는 달밝은 밤, 옛 신하 도리어 영정행(永貞行)을 읊조리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희적(喜賊)135) 이 지은 영정행의 장황한 사설(辭說)과는 다름이 있다 하나, 그가 비난하고 경멸한 것이 또한 어찌 난적(亂賊)의 효시(嚆矢)가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임금이 또 회보하지 아니하자, 성균관(成均館)에서 계품(啓稟)하기를,

"비지(批旨)를 오랫동안 내리지 않으시어 허다한 유생(儒生)들이 장차 과시(科試)에 나아갈 수가 없으니, 마땅히 처분(處分)을 내리셔야 합니다."

하고, 승지(承旨)도 또한 여러 번 말하였기 때문에 임금이 비로소 답(答)을 내리고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조(李肇)가 연중(筵中)에서 진백(陳白)하기를,

"송시열을 병향(並享)할 때에 이미 물론(物論)이 있었으니, 선대왕(先大王)의 본지(本旨)가 있는 바를 우러러 알 수 있는데, 그대로 지금까지 미루어 왔습니다. 많은 선비들의 공의(公議)가 이미 발론되었으니, 그대로 두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대신(大臣)에게 물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고, 우의정(右議政) 최석항(崔錫恒)도 또한 그대로 두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도봉 서원의 병향은 공공(公共)의 의논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니, 기뻐하지 않는 자의 은밀한 논의는 본래 있음직한 일이다. 하지만 김범갑 등이 때를 타 꾸짖고 헐뜯으면서 심지어 신축년136) 의 화를 불러 일으키게 하였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과연 이것이 참된 시비(是非)가 되겠는가? 사향(祀享)의 중전(重典)은 이미 선조(先朝)의 처분(處分)을 거친 것인데, 한 예관(禮官)의 용이한 진청(陳請)으로 하루아침에 철파(撤罷)했으니, 몹시 전도(顚倒)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28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 [註 123] 타령(妥靈) : 신주(神主)를 섬겨 모심.
  • [註 124] 병자년 : 1696 숙종 22년.
  • [註 125] 패병(欛柄) : 칼자루.
  • [註 126] 영안(永安)의 조서(詔書) : 촉한의 선주(先主) 유비(劉備)가 임종할 때 승상(丞相) 제갈양에게 나랏일을 부탁한 조서. 성도(成都)에 있는 제갈양을 영안궁(永安宮)으로 불러 "그대의 재주는 위(魏)의 조비(曹丕)보다 십배나 되니 나라를 안정시키고 천하를 정할 수 있다. 내 아들을 세워 보좌할 만하면 보좌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나라를 차지하여 다스리라." 하자, 제갈양은 울면서 "신은 있는 힘을 다하여 보좌하여 충절을 다하다가 죽겠습니다." 하였음.
  • [註 127] 경신년 : 1680 숙종 6년.
  • [註 128] 기양(技癢) : 자기의 재주를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안달함.
  • [註 129]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 [註 130] 기심(忮心) :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 [註 131] 병신년 : 1716 숙종 42년.
  • [註 132] 무진년 : 1688 숙종 14년.
  • [註 133] 창규(敞奎) : 임창(任敞)과 박규서(朴奎瑞)이다.
  • [註 134] 이집(頤集) : 이이명(李頤命)과 김창집(金昌集).
  • [註 135] 희적(喜賊) : 이희지(李喜之).
  • [註 136]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원문

○館學儒生金范甲等上疏。 略曰:

道峰書院, 卽先正臣趙光祖妥靈之所, 而曾於丙子歲, 以宋時烈竝享焉, 豈不爲有識之所駭嘆, 士林之所拂鬱者哉? 噫! 《春秋》大義, 卽時烈欺世欛柄也。 孝廟則求之以實效, 而時烈則應之以虛聲, 孝廟則待之以誠意, 而時烈則濟之以詐僞。 平生伎倆, 只在於欺誣一世, 而至於實地上事業, 了無尺寸之稱。 斯故, 先正臣尹宣擧, 貽書深斥空言之無實, 則其心地之回譎、大義之虛假, 莫逃於識者之公眼者, 槪可見矣。 且當顯廟嗣位之初, 以不受永安之詔, 托爲難進之端, 及至庚申再起之日, 更無一言半辭及於大義, 何其前後相反, 一至於此? 況其撰故相臣金瑬之墓銘也, 以其主和一節, 許之以宗社計。 至此而平生所執之大義, 竝與其虛聲而弁髦焉, 假眞售僞之態, 可謂隨處綻露矣。 噫! 摸擬朱子, 卽時烈一生技癢也。 卽其文集而觀之, 則一言之發, 而必以朱子自處, 一事之作, 而必以朱子自比。 噫! 朱子之於時烈, 賢邪、義利之分, 不趐若天壤之懸絶, 而必乃憑藉而假托之, 此與王莽動法周公, 一何相似也? 彼時烈者, 盜名索價, 乍來乍去, 末乃挺身於局面翻覆之際, 異己者擠之陷之, 附己者引之進之, 貪權樂勢, 惟意所欲, 固結勳戚, 同惡相濟。 扶護誣告之奸賊, 觝排士類之淸議, 使世道漸至於壞喪, 人心日就於陷溺, 馴致辛丑之禍變。 凶逆鴟張, 宗社幾危者, 亦莫非時烈之所使然也。 噫! 時烈之肚裏所橫着者, 唯一段忮心而已, 毒正手段, 尤著於《瑣錄》之篇。 抉摘文字, 勒成罪案, 而傳法於集、球諸賊, 釀成丙申之禍。 曾謂以儒爲名, 而亦有此宵小輩陷人之習耶? 噫! 時烈, 以醜辱人, 爲能事。 尹宣擧, 卽時烈之畏友也。 頹波砥柱之褒, 兩儀日星之稱, 其所敬服者, 可謂至矣, 而自夫先正臣尹拯, 疑其本源之後, 始生恚心, 公肆醜辱。 況怒人非己, 反詈人之父母, 雖閭巷童孺, 亦不爲之。 故相臣金壽恒, 卽時烈同朝相好之間, 而或有一二事違拂於心者, 則輒以醜辱相加。 至於尹鑴, 固一奸臣, 則斥之以壬侫可也, 排之以凶孽可也, 而時烈則取其所居洞名之爲介谷, 謂鑴曰狗, 或謂之犬。 似此醜悖之說, 雖使屠市間惡少年爲之, 亦將汗顔而知所羞矣。 殿下試取其文集而觀之, 可知臣言之非誣矣。 凶譎如時烈, 險詖如時烈, 而竝享於道峰, 其貽辱先賢, 莫此之甚, 黜享之擧, 豈非一日爲急者乎? 況時烈之入享也, 故相臣尹趾善, 陳疏爭之, 還寢成命。 以此觀之, 當初合享, 實非先王之本意也。 乞命該曹, 撤去時烈院享。

疏入久不報, 四道儒生、生員崔鐸等, 又上疏語尤深慘, 至曰:

昔在戊辰之歲, 將行冊禮, 則時烈乃敢陳籲而爭之。 其時先王, 特下備忘, 以顯有不足之意, 嚴辭峻斥, 而一種不逞之徒, 率多尊信。 敞、奎 【任敞、朴奎瑞。】 之輩, 倡之於前, 頤、集之黨, 繼之於後, 凶黨鴟張, 宗社幾危, 而究厥情節, 只是萠蘖於不滿、不足之心, 則時烈雖非惡逆, 惡逆之出, 未必不由於時烈矣。 時烈之栫棘長鬐也, 有詩曰: "一千里外亦蠻土, 四五年來號太平。 歌管嘲轟明月夜, 舊臣還詠《永貞行》。" 此雖與喜賊《永貞行》之張皇辭說者有異, 其所以譏計輕蔑, 亦安得不爲亂賊嚆矢乎?

上亦不報, 成均館啓稟, 以批旨久不下, 許多儒生, 將不得赴科試, 宜賜處分。 承旨亦屢以爲言, 上始賜答, 令該曹稟處。 禮曹判書李肇陳白於筵中曰: "宋時烈竝享時, 已有物論, 先大王本旨所存, 可以仰認, 而因循至今。 多士之公議已發, 不可仍置。 請詢大臣而處之。" 右議政崔錫恒, 亦言其不當仍存, 上從之。 道峰竝享, 非出公共之論, 則不悅者之竊議固也。 金范甲等, 乘時詬詆, 至以馴致辛丑之禍爲言, 是果爲眞是非乎? 祀享重典, 已經先朝處分, 而一禮官容易陳請, 一朝撤罷, 顚倒甚矣。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28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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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실록11권, 경종 3년 3월 13일 壬辰 3/3 기사 / 1723년 청 옹정(雍正) 1년

송시열을 조광조를 모신 도봉 서원에서 배향하지 못하게 할 것을 청하는 관학 유생 김범갑의 상소

국역

관학 유생(館學儒生) 김범갑(金范甲) 등이 상소(上疏)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도봉 서원(道峰書院)은 곧 선정신(先下臣) 조광조(趙光祖)를 타령(妥靈)123) 한 곳이었는데, 일찍이 병자년124) 에 송시열(宋時烈)을 아울러 향사(享祀)했으니, 어찌 식자(識者)들이 놀라 탄식하고 사림(士林)이 답답해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아! 춘추 대의(春秋大義)란 송시열이 세상을 속이는 패병(欛柄)125) 이었습니다. 효종(孝宗)께서는 실효(實效)를 구하셨는데, 송시열은 허성(虛聲)으로 응했고, 효종께서는 성의(誠意)로 대우하셨는데 송시열은 거짓으로 이용하였습니다. 평생의 기량이 다만 한 세상을 속이는 데 있었고, 실제 사업에 이르러서는 척촌(尺寸)만큼도 일컬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정신(先正臣) 윤선거(尹宣擧)가 글을 보내어 그 빈말일 뿐 실상이 없음을 깊이 배척했으니, 그 심지(心地)가 회휼(回譎)함과 대의(大義)의 허식적인 것을 식자(識者)의 공안(公眼)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대체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현묘(顯廟)께서 사위(嗣位)하신 초년을 당해서는 영안(永安)의 조서(詔書)126) 를 받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나아가기 어려운 사단으로 핑계대더니, 경신년127) 재기(再起)하던 날에 이르러서는 다시 일언 반구도 대의(大義)에 대해서는 언급한 일이 없었으니, 어찌하여 그 앞뒤가 한결같이 이처럼 상반되었는지요? 더구나 그가 찬(撰)한 고(故) 상신(相臣) 김유(金瑬)의 묘명(墓銘)에 주화(主和)한 일절(一節)을 종사(宗社)를 위한 계책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에 이르러 그의 평생토록 고집한 바의 대의(大義)가 그의 허성(虛聲)과 더불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말았으니, 진실을 가장하여 허위를 파는 모습이 도처에서 탄로되었다고 이를 만합니다.

아! 주자(朱子)를 모의(模擬)하는 것이 곧 송시열의 일생 동안의 기양(技癢)128) 이었습니다. 곧 그의 문집(文集)을 보면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반드시 주자로 자처하고,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 주자에 견주었습니다. 아! 주자와 송시열은 현(賢)·사(邪)와 의(義)·이(利)가 하늘과 땅처럼 현격할 정도가 아닌데, 반드시 곧 빙자하고 가탁하였으니, 이는 왕망(王莽)이 걸핏하면 주공(周公)을 본받는다고 한 것과 어찌 그렇게 서로 같습니까? 저 송시열은 이름을 훔치고 값을 찾아 잠시 왔다가 잠시 가기도 하더니, 종말의 국면(局面)이 번복(飜覆)될 즈음에는 앞장서 나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는 배척하여 빠뜨리고 자기에게 빌붙는 자는 끌어올려 주는 등 제 하고 싶은 대로 권세를 탐하고 즐겼으며, 훈척(勳戚)과 단단히 결탁하여 함께 악(惡)한 일을 서로 이루었습니다. 무고(誣告)한 간적(奸賊)을 부호(扶護)하고 사류(士類)의 청의(淸議)를 배격함으로써 세도(世道)는 점점 붕괴(崩壞)되고 인심(人心)은 날로 함닉(陷溺)하게 서서히 만들더니, 신축년129) 의 화변(禍變)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흉역(凶逆)들이 기세를 떨치고 종사(宗社)가 거의 위태로웠던 것도 모두 송시열이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 송시열의 가슴속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오직 한 조각의 기심(忮心)130) 뿐이었으니, 바른이를 상해하는 수단이 쇄록(瑣錄)의 편(篇)에 더욱 드러났습니다. 문자(文字)를 따내어 억지로 죄안(罪案)을 만들고, 김창집(金昌集)·신구(申球) 등 여러 역적에게 술법을 전하여 병신년131) 의 화(禍)를 빚어내게 하였으니, 일찍이 유자(儒者)로 일컬었던 자가 또한 이러한 소인배(小人輩)의 사람으로 함해(陷害)하는 버릇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까? 아! 송시열은 남을 추욕(醜辱)하는 것을 능사로 삼았던 것입니다. 윤선거(尹宣擧)는 곧 송시열의 외우(畏友)였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물결속에 지주(砥桂)라 포장(褒章)하고 천지(天地) 사이의 해와 별이라고 일컬었으니, 그의 경복(敬服)한 바가 지극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그런데 저 선정신(先正臣) 윤증(尹拯)이 그 본원(本源)을 의심한 뒤로부터 비로소 분한 마음을 내기 시작하여 공공연하게 추악한 욕을 함부로 하였습니다. 더구나 자기를 비난한 사람에게 노여운 마음을 품고 도리어 남의 부모를 비방하는 것은 비록 여항(閭巷)의 어린아이라도 또한 하지 않는 법입니다. 고(故) 상신(相臣) 김수항(金壽恒)은 송시열과 같은 조정에서 서로 좋아지내는 사이였는데도 혹 한두 가지 그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언제나 추악한 욕을 서로 더하였으며, 저 윤휴(尹鑴)에 이르러서는 본래 하나의 간신(奸臣)이었은즉, 간사한 자라고 공격해도 좋고 흉얼(凶孽)이라고 배격해도 좋은데, 송시열은 그가 살고 있던 동리의 이름이 개곡(介谷)이라 하여 윤휴를 일러 구(狗)라 하기도 하고 혹은 견(犬)이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추악하고 패려(悖戾)한 말은 비록 도시(屠市)의 사이에 악소년(惡少年)으로 하여금 하라고 해도 또한 얼굴에 땀을 흘리고 부끄러운 줄을 알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시험삼아 그의 문집을 가져다 보소서. 그러면 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흉휼(凶譎)함이 송시열과 같고 험피(險詖)함이 송시열과 같은 사람을 도봉 서원에 함께 제향한다면 선현(先賢)에게 욕을 끼치는 것이 이보다 심할 수 없을 것이니, 출향(黜享)하는 거조가 어찌 하루가 급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송시열을 입향(入享)할 때 고(故) 상신(相臣) 윤지선(尹趾善)이 소를 올려 다투어 성명(成命)을 도로 정지하였으니, 이로써 보더라도 당초에 합향(合享)한 것은 실제 선왕(先王)의 본의(本意)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라건대 해조(該曹)에 명하시어 송시열의 원향(院享)을 철거(撤去)하게 하소서.

하였다. 소가 들어온 지 오래 되었으나 회보(回報)하지 않자, 사도(四道)의 유생(儒生)과 생원(生員) 최탁(崔鐸) 등이 또 상소(上疏)하였는데, 그 말이 더욱 심각하고 참혹하여 심지어 이르기를,

"지난 무진년132) 에 장차 책례(冊禮)를 행하려고 하자, 송시열이 이에 감히 소를 올려 다투었는데, 그때 선왕(先王)께서 특별히 비망(備忘)을 내리시어 ‘드러나게 부족(不足)하게 여기는 뜻이 있다.’ 하시며 준엄하신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일종(一種)의 불령(不逞)한 무리들은 거개 다 그의 말을 존신(尊信)하였습니다. 그래서 창규(敞奎)133) 의 무리가 앞에서 창도(倡導)하고 이집(頤集)134) 의 당(黨)이 뒤에서 계속하여, 흉당(凶黨)들이 기세를 떨치자 종사(宗祀)가 거의 위태로울 뻔하였습니다. 그 정절(情節)을 추구해 보건대 다만 이 불만(不滿)과 부족(不足)한 마음에서 싹터 나온 것인즉, 송시열이 비록 악역(惡逆)은 아니라 하더라도 악역이 나오게 된 것이 반드시 송시열에게서 연유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시열이 장기(長鬐)에 천극(栫棘)되었을 때 시를 지어 이르기를, ‘천리 밖에도 또한 오랑캐 땅인데, 4, 5년 이래 태평성대를 노래 부르네. 노랫소리 피리소리 크게 울리는 달밝은 밤, 옛 신하 도리어 영정행(永貞行)을 읊조리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희적(喜賊)135) 이 지은 영정행의 장황한 사설(辭說)과는 다름이 있다 하나, 그가 비난하고 경멸한 것이 또한 어찌 난적(亂賊)의 효시(嚆矢)가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임금이 또 회보하지 아니하자, 성균관(成均館)에서 계품(啓稟)하기를,

"비지(批旨)를 오랫동안 내리지 않으시어 허다한 유생(儒生)들이 장차 과시(科試)에 나아갈 수가 없으니, 마땅히 처분(處分)을 내리셔야 합니다."

하고, 승지(承旨)도 또한 여러 번 말하였기 때문에 임금이 비로소 답(答)을 내리고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조(李肇)가 연중(筵中)에서 진백(陳白)하기를,

"송시열을 병향(並享)할 때에 이미 물론(物論)이 있었으니, 선대왕(先大王)의 본지(本旨)가 있는 바를 우러러 알 수 있는데, 그대로 지금까지 미루어 왔습니다. 많은 선비들의 공의(公議)가 이미 발론되었으니, 그대로 두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대신(大臣)에게 물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고, 우의정(右議政) 최석항(崔錫恒)도 또한 그대로 두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도봉 서원의 병향은 공공(公共)의 의논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니, 기뻐하지 않는 자의 은밀한 논의는 본래 있음직한 일이다. 하지만 김범갑 등이 때를 타 꾸짖고 헐뜯으면서 심지어 신축년136) 의 화를 불러 일으키게 하였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과연 이것이 참된 시비(是非)가 되겠는가? 사향(祀享)의 중전(重典)은 이미 선조(先朝)의 처분(處分)을 거친 것인데, 한 예관(禮官)의 용이한 진청(陳請)으로 하루아침에 철파(撤罷)했으니, 몹시 전도(顚倒)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28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 [註 123] 타령(妥靈) : 신주(神主)를 섬겨 모심.
  • [註 124] 병자년 : 1696 숙종 22년.
  • [註 125] 패병(欛柄) : 칼자루.
  • [註 126] 영안(永安)의 조서(詔書) : 촉한의 선주(先主) 유비(劉備)가 임종할 때 승상(丞相) 제갈양에게 나랏일을 부탁한 조서. 성도(成都)에 있는 제갈양을 영안궁(永安宮)으로 불러 "그대의 재주는 위(魏)의 조비(曹丕)보다 십배나 되니 나라를 안정시키고 천하를 정할 수 있다. 내 아들을 세워 보좌할 만하면 보좌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나라를 차지하여 다스리라." 하자, 제갈양은 울면서 "신은 있는 힘을 다하여 보좌하여 충절을 다하다가 죽겠습니다." 하였음.
  • [註 127] 경신년 : 1680 숙종 6년.
  • [註 128] 기양(技癢) : 자기의 재주를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안달함.
  • [註 129]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 [註 130] 기심(忮心) :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 [註 131] 병신년 : 1716 숙종 42년.
  • [註 132] 무진년 : 1688 숙종 14년.
  • [註 133] 창규(敞奎) : 임창(任敞)과 박규서(朴奎瑞)이다.
  • [註 134] 이집(頤集) : 이이명(李頤命)과 김창집(金昌集).
  • [註 135] 희적(喜賊) : 이희지(李喜之).
  • [註 136]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원문

○館學儒生金范甲等上疏。 略曰:

道峰書院, 卽先正臣趙光祖妥靈之所, 而曾於丙子歲, 以宋時烈竝享焉, 豈不爲有識之所駭嘆, 士林之所拂鬱者哉? 噫! 《春秋》大義, 卽時烈欺世欛柄也。 孝廟則求之以實效, 而時烈則應之以虛聲, 孝廟則待之以誠意, 而時烈則濟之以詐僞。 平生伎倆, 只在於欺誣一世, 而至於實地上事業, 了無尺寸之稱。 斯故, 先正臣尹宣擧, 貽書深斥空言之無實, 則其心地之回譎、大義之虛假, 莫逃於識者之公眼者, 槪可見矣。 且當顯廟嗣位之初, 以不受永安之詔, 托爲難進之端, 及至庚申再起之日, 更無一言半辭及於大義, 何其前後相反, 一至於此? 況其撰故相臣金瑬之墓銘也, 以其主和一節, 許之以宗社計。 至此而平生所執之大義, 竝與其虛聲而弁髦焉, 假眞售僞之態, 可謂隨處綻露矣。 噫! 摸擬朱子, 卽時烈一生技癢也。 卽其文集而觀之, 則一言之發, 而必以朱子自處, 一事之作, 而必以朱子自比。 噫! 朱子之於時烈, 賢邪、義利之分, 不趐若天壤之懸絶, 而必乃憑藉而假托之, 此與王莽動法周公, 一何相似也? 彼時烈者, 盜名索價, 乍來乍去, 末乃挺身於局面翻覆之際, 異己者擠之陷之, 附己者引之進之, 貪權樂勢, 惟意所欲, 固結勳戚, 同惡相濟。 扶護誣告之奸賊, 觝排士類之淸議, 使世道漸至於壞喪, 人心日就於陷溺, 馴致辛丑之禍變。 凶逆鴟張, 宗社幾危者, 亦莫非時烈之所使然也。 噫! 時烈之肚裏所橫着者, 唯一段忮心而已, 毒正手段, 尤著於《瑣錄》之篇。 抉摘文字, 勒成罪案, 而傳法於集、球諸賊, 釀成丙申之禍。 曾謂以儒爲名, 而亦有此宵小輩陷人之習耶? 噫! 時烈, 以醜辱人, 爲能事。 尹宣擧, 卽時烈之畏友也。 頹波砥柱之褒, 兩儀日星之稱, 其所敬服者, 可謂至矣, 而自夫先正臣尹拯, 疑其本源之後, 始生恚心, 公肆醜辱。 況怒人非己, 反詈人之父母, 雖閭巷童孺, 亦不爲之。 故相臣金壽恒, 卽時烈同朝相好之間, 而或有一二事違拂於心者, 則輒以醜辱相加。 至於尹鑴, 固一奸臣, 則斥之以壬侫可也, 排之以凶孽可也, 而時烈則取其所居洞名之爲介谷, 謂鑴曰狗, 或謂之犬。 似此醜悖之說, 雖使屠市間惡少年爲之, 亦將汗顔而知所羞矣。 殿下試取其文集而觀之, 可知臣言之非誣矣。 凶譎如時烈, 險詖如時烈, 而竝享於道峰, 其貽辱先賢, 莫此之甚, 黜享之擧, 豈非一日爲急者乎? 況時烈之入享也, 故相臣尹趾善, 陳疏爭之, 還寢成命。 以此觀之, 當初合享, 實非先王之本意也。 乞命該曹, 撤去時烈院享。

疏入久不報, 四道儒生、生員崔鐸等, 又上疏語尤深慘, 至曰:

昔在戊辰之歲, 將行冊禮, 則時烈乃敢陳籲而爭之。 其時先王, 特下備忘, 以顯有不足之意, 嚴辭峻斥, 而一種不逞之徒, 率多尊信。 敞、奎 【任敞、朴奎瑞。】 之輩, 倡之於前, 頤、集之黨, 繼之於後, 凶黨鴟張, 宗社幾危, 而究厥情節, 只是萠蘖於不滿、不足之心, 則時烈雖非惡逆, 惡逆之出, 未必不由於時烈矣。 時烈之栫棘長鬐也, 有詩曰: "一千里外亦蠻土, 四五年來號太平。 歌管嘲轟明月夜, 舊臣還詠《永貞行》。" 此雖與喜賊《永貞行》之張皇辭說者有異, 其所以譏計輕蔑, 亦安得不爲亂賊嚆矢乎?

上亦不報, 成均館啓稟, 以批旨久不下, 許多儒生, 將不得赴科試, 宜賜處分。 承旨亦屢以爲言, 上始賜答, 令該曹稟處。 禮曹判書李肇陳白於筵中曰: "宋時烈竝享時, 已有物論, 先大王本旨所存, 可以仰認, 而因循至今。 多士之公議已發, 不可仍置。 請詢大臣而處之。" 右議政崔錫恒, 亦言其不當仍存, 上從之。 道峰竝享, 非出公共之論, 則不悅者之竊議固也。 金范甲等, 乘時詬詆, 至以馴致辛丑之禍爲言, 是果爲眞是非乎? 祀享重典, 已經先朝處分, 而一禮官容易陳請, 一朝撤罷, 顚倒甚矣。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28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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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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