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34권, 숙종 26년 1월 3일 丁酉 2/3 기사 / 1700년 청 강희(康熙) 39년
사헌부에서 문과 복시 때의 시관들을 논핵하다
국역
헌부(憲府) 【지평(持平) 한영휘(韓永徽)이다.】 에서 논핵(論劾)하기를,
"금번 문과(文科) 복시(覆試) 때 한 시권(試券)의 문장(文章)이 매우 졸렬[拙惡]한 것이 있었는데, 시관(試官) 오도일(吳道一)이 독자적으로 치우치게 비호(庇護)한 나머지 편벽되게 칭찬하므로, 참시관(參試官) 윤홍리(尹弘离)가 힘껏 그것은 뽑을 수 없다고 말하고, 매번 붓을 잡고 비점(批點)을 치려 하였으나, 오도일이 손수 그 시권을 말아서 가리고 붓을 대지 못하도록 하며 시끄럽게 다투어 사기(辭氣)가 놀랄 만하였습니다. 그의 형세가 군색하기에 이르자, 또 윤홍리를 달래어 말하기를, ‘그대가 뽑으려는 문장이 있으면 그것도 마땅히 뽑도록 하라.’ 하였으나, 윤홍리가 그래도 들어주지 않자, 오도일이 혼자서 강제로 뽑았는데, 방(榜)을 발표함에 이르러서 보니 바로 오도일이 사사로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인 유세기(兪世基)의 작품이었습니다. 오도일은 앞서 일찍이 시험을 관장(管掌)하면서 많은 물의(物議)를 일으켜, 그 때문에 공의(公議)가 참으로 이미 그가 주문 장시(主文掌試)005) 하는 것을 허여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스스로 마음을 고치지 않고 힘써 중론을 배척하였으니, 가령 ‘거자(擧子)와 사귀어 통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흔적을 잡아서 논핵 한다면 진실로 남에게 의심받기 쉬운 혐의[瓜李之嫌]006) 는 면하기 어렵습니다. 청컨대, 오도일을 파직하여 서용(敍用)하지 마소서. 또한 자신이 시관(試官)이 되어 성찰(省察)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마침내 막중한 국가 시험에 이처럼 전에 없던 간교(奸巧)한 상황을 이루게 하였으니, 청컨대, 여러 시관을 모두 종중 추고(從重推考)하소서."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 [註 005] 주문 장시(主文掌試) : 과거 때 상시관(上試官)이 되어 답안을 채점함.
- [註 006] 의심받기 쉬운 혐의[瓜李之嫌] : "외밭에서는 신을 고쳐 매지 않고[瓜田納履], 오얏나무 밑에서는 관을 바로잡지 않는다[李下不整冠]"에서 유래한 말로, 이런 행동은 남에게 의심받기 쉽다는 뜻.
원문
○憲府 【持平韓永徽。】 論: "今番文科覆試時, 有一試券, 文甚拙惡, 試官吳道一, 獨自偏護, 曲爲稱賞, 參試官尹弘离力言其不可取, 每欲把筆批打, 則道一手捲其卷而掩遮之, 使不得下筆, 紛然爭鬨, 辭氣可愕, 而及其勢窘, 則又誘弘离曰: ‘君有欲取之文, 亦宜取之。’ 弘离猶不聽許, 道一獨自强取, 及其拆榜, 卽道一私密之人兪世基之作也。 道一曾前掌試, 厚招物議, 以此公議固已不許其主文掌試, 而猶不自悛, 力排衆論。 藉曰與擧子無所交通, 執迹以論, 誠難免瓜李之嫌。 請吳道一罷職不敍。 又以身爲試官, 不思省察, 終致莫重國試, 有此無前奸狀, 請諸試官, 竝從重推考。" 竝從之。
숙종 26년 (1700) 1월 3일
숙종실록34권, 숙종 26년 1월 3일 丁酉 2/3 기사 / 1700년 청 강희(康熙) 39년
사헌부에서 문과 복시 때의 시관들을 논핵하다
국역
헌부(憲府) 【지평(持平) 한영휘(韓永徽)이다.】 에서 논핵(論劾)하기를,
"금번 문과(文科) 복시(覆試) 때 한 시권(試券)의 문장(文章)이 매우 졸렬[拙惡]한 것이 있었는데, 시관(試官) 오도일(吳道一)이 독자적으로 치우치게 비호(庇護)한 나머지 편벽되게 칭찬하므로, 참시관(參試官) 윤홍리(尹弘离)가 힘껏 그것은 뽑을 수 없다고 말하고, 매번 붓을 잡고 비점(批點)을 치려 하였으나, 오도일이 손수 그 시권을 말아서 가리고 붓을 대지 못하도록 하며 시끄럽게 다투어 사기(辭氣)가 놀랄 만하였습니다. 그의 형세가 군색하기에 이르자, 또 윤홍리를 달래어 말하기를, ‘그대가 뽑으려는 문장이 있으면 그것도 마땅히 뽑도록 하라.’ 하였으나, 윤홍리가 그래도 들어주지 않자, 오도일이 혼자서 강제로 뽑았는데, 방(榜)을 발표함에 이르러서 보니 바로 오도일이 사사로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인 유세기(兪世基)의 작품이었습니다. 오도일은 앞서 일찍이 시험을 관장(管掌)하면서 많은 물의(物議)를 일으켜, 그 때문에 공의(公議)가 참으로 이미 그가 주문 장시(主文掌試)005) 하는 것을 허여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스스로 마음을 고치지 않고 힘써 중론을 배척하였으니, 가령 ‘거자(擧子)와 사귀어 통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흔적을 잡아서 논핵 한다면 진실로 남에게 의심받기 쉬운 혐의[瓜李之嫌]006) 는 면하기 어렵습니다. 청컨대, 오도일을 파직하여 서용(敍用)하지 마소서. 또한 자신이 시관(試官)이 되어 성찰(省察)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마침내 막중한 국가 시험에 이처럼 전에 없던 간교(奸巧)한 상황을 이루게 하였으니, 청컨대, 여러 시관을 모두 종중 추고(從重推考)하소서."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 [註 005] 주문 장시(主文掌試) : 과거 때 상시관(上試官)이 되어 답안을 채점함.
- [註 006] 의심받기 쉬운 혐의[瓜李之嫌] : "외밭에서는 신을 고쳐 매지 않고[瓜田納履], 오얏나무 밑에서는 관을 바로잡지 않는다[李下不整冠]"에서 유래한 말로, 이런 행동은 남에게 의심받기 쉽다는 뜻.
원문
○憲府 【持平韓永徽。】 論: "今番文科覆試時, 有一試券, 文甚拙惡, 試官吳道一, 獨自偏護, 曲爲稱賞, 參試官尹弘离力言其不可取, 每欲把筆批打, 則道一手捲其卷而掩遮之, 使不得下筆, 紛然爭鬨, 辭氣可愕, 而及其勢窘, 則又誘弘离曰: ‘君有欲取之文, 亦宜取之。’ 弘离猶不聽許, 道一獨自强取, 及其拆榜, 卽道一私密之人兪世基之作也。 道一曾前掌試, 厚招物議, 以此公議固已不許其主文掌試, 而猶不自悛, 力排衆論。 藉曰與擧子無所交通, 執迹以論, 誠難免瓜李之嫌。 請吳道一罷職不敍。 又以身爲試官, 不思省察, 終致莫重國試, 有此無前奸狀, 請諸試官, 竝從重推考。" 竝從之。
원본
숙종 26년 (1700) 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