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27권, 숙종 20년 10월 19일 癸丑 1/1 기사 /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파주 백성의 적곡을 감면해 주다
국역
당초에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열조(列朝)에서 뽑은 염근 청백리(廉謹淸白吏)가 이름이 혼잡하게 나오는 것 때문에 실록(實錄)을 고찰해 보기를 청했었는데, 이에 이르러 다시 차자를 올려 거듭 말하고, 또한 파주(坡州) 백성은 공릉(恭陵)의 행행(幸行)을 치렀으므로 마땅히 측은하게 여기는 돌봄이 있어야 함을 진달하니, 답하기를,
"청백과 염금은 두 가지 건의 일이 아니므로 실록을 고찰해 볼 것이 없다. 파주 백성에 관한 일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도록 하겠다."
하고, 드디어 경오년500) 과 임신년501) 두 해의 바치지 않은 적곡(糴穀)을 감해 주었다.
원문
숙종 20년 (1694) 10월 19일
숙종실록27권, 숙종 20년 10월 19일 癸丑 1/1 기사 /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파주 백성의 적곡을 감면해 주다
국역
당초에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열조(列朝)에서 뽑은 염근 청백리(廉謹淸白吏)가 이름이 혼잡하게 나오는 것 때문에 실록(實錄)을 고찰해 보기를 청했었는데, 이에 이르러 다시 차자를 올려 거듭 말하고, 또한 파주(坡州) 백성은 공릉(恭陵)의 행행(幸行)을 치렀으므로 마땅히 측은하게 여기는 돌봄이 있어야 함을 진달하니, 답하기를,
"청백과 염금은 두 가지 건의 일이 아니므로 실록을 고찰해 볼 것이 없다. 파주 백성에 관한 일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도록 하겠다."
하고, 드디어 경오년500) 과 임신년501) 두 해의 바치지 않은 적곡(糴穀)을 감해 주었다.
원문
원본
숙종 20년 (1694)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