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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15권, 숙종 10년 12월 3일 甲午 2/4 기사 / 1684년 청 강희(康熙) 23년

청나라 곽조서의 편지에 관해 의논하다

국역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였다. 도제조(都提調) 김수흥(金壽興)이 말하기를,

"병판(兵判) 조사석(趙師錫)이 일찍이 북경(北京)에 갔을 때에 곽조서(郭朝瑞)란 자가 일찍이 오삼계(吳三桂)의 관하(管下)가 되었다 하여 주류하(周流河)에 분배(分配)되었는데, 거리가 심양(瀋陽)에서 하루 노정(路程)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글을 알아서 조사석이 더불어 서로 친숙하였으므로, 지난번 재자관(齎咨官) 천영선(千永善)이 갈 적에 글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그쪽 사정을 알려줄 것을 청하였는데, 천영선이 돌아와서 그 답장을 전하였습니다. 성상께서 바야흐로 정섭(靜攝)하고 계시므로, 조사석과 영상(領相)이 들어와 뵙지 못하고 신이 감히 대신 올립니다."

하고, 인하여 그 글을 읽었는데, 글에 이르기를,

"강희(康熙)657) 가 희봉구(喜峰口)에 나가서 피서(避暑)하였는데, 다음날 조정 안의 경천주(擎天柱)라고 이름하는 대전(大殿)의 가운데 기둥이 벽력 같은 소리를 내면서 5척(尺)쯤 무너졌으므로, 북경에 있던 대신(大臣)이 이를 아뢰자, 곧 보수(補修)하게 하였습니다. 또 근일에 궁중(宮中)에서 밤에 귀신이 우는 기이한 소리가 들려서 재앙을 일으키는 것이 예사롭지 아니하니, 이 또한 요얼(妖孼)658) 의 일입니다. 또 사냥을 할 때에 갑자기 광풍(狂風)이 크게 일어나서 새벽에서 낮까지 이르는가 하면, 바람이 그친 뒤에 모래와 돌이 약 한 자 가량이나 있었는데, 강희(康熙)의 입은 옷이 날려가서 아득하게 종적이 없었으며, 그 나머지 관원(官員)들의 장방 의모(丈房衣帽)도 날려간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8월 안에 북경에 돌아왔는데, 유 순무(劉巡撫)의 가신(家臣)으로 진씨(陳氏) 성(姓)을 가진 자가 진본(進本)한 속에 이르기를, ‘천변(天變)은 족히 두려워할 것이 못되고, 인사(人事)도 족히 근심할 것이 못된다는 등의 일곱 가지 조목에, 「지금 백성은 정수(征輸)에 피곤하고 관병(官兵)은 순행(巡幸)에 괴로와하니, 마땅히 안으로는 성색(聲色)을 멀리하고 밖으로는 유전(遊畋)을 끊어서 군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기르면, 인사(人事)의 계책을 얻어 천변을 돌이킬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강희가 크게 노여워하여 조정에서 매를 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또 친히 매를 잡고 치니, 몸이 온전한 데가 없었으나, 곧 오라(烏喇) 지방에 보내어 수자리살게 하였습니다. 운남(雲南)을 정벌하던 목 장군(木將軍)이 평서왕(平西王)의 가기(歌妓) 주보(珠寶)를 은닉(隱匿)한 일로 인하여 위협받아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는데, 지금 의이(薏苡)의 의심659) 으로 인하여 수색하는 자가 아직 두어 사람 있습니다. 운남 총독(雲南摠督) 채육(蔡毓)도 수색하는 가운데 있는데, 비록 이미 상소하여 밝혔으나 장래 어떤 결과를 이룰지 알지 못합니다.

운남 18가(家) 토사(土司)는 잘 무수(撫綏)하지 못하여 모두 부고(負固)660) 할 마음을 가졌는데, 또 유망(流亡)하는 자를 불러 들이니, 평서왕(平西王) 밑에 있던 옛사람을 거두어 머물러 둔 것도 다시 많으며, 이는 때를 기다려서 움직일 뜻입니다. 또 섬서 제독(陝西提督) 장용(張勇)은 이미 병들어 죽었고, 이제 칙명으로 흥안진 총병(興安鎭摠兵) 손사극(孫斯克)에게 그 일을 대신 맡게 하자, 서적(西狄)이 매우 다행스럽게 여겨 이미 변경 안 황초평(黃草坪)에서 목마(牧馬)를 점유해 가서 중원(中原)을 엿보니, 장차 내침(內侵)할 거사(擧事)가 있을 것입니다. 광동(廣東) 바다 안에는 아직 평서왕(平西王) 밑의 수사 장군(水師將軍) 사궐복(謝厥福)의 아들 사창(謝昌)이 군사 3천을 거느리고 해상에 출몰(出沒)하고 있는데, 금년 5월 안에 광동(廣東)의 복산(福山) 일대(一帶)에서 크게 겁략(刼掠)을 행하고 갔으나 풍도(風濤) 만리에 종적이 일정하지 아니합니다. 대만(台灣) 정씨(鄭氏)로 청조(淸朝)에 귀순한 자가 10에 7, 8이 있었는데, 그래도 2, 3의 기개(氣槪) 있는 자가 있어서 가구(家口)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갔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곽조서(郭朝瑞)는 망국(亡國)의 신복(臣僕)으로서 몸이 진흙 속에 빠졌는데, 역려(逆旅)661) 에서 고명(高明)을 만나 마음속을 털어놓고 대담한 때가 많았으니, 또한 뜻밖의 해후(邂逅)였습니다. 다만 가는 걸음이 총총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작별한 뒤에 마음속에 맺힌 그리움이 찧는 듯하여 떠도는 나그네가 머리를 들어 운천(雲天)을 바라보니, 오직 서풍(西風)에 원숭이의 슬피 우는 소리만 들려올 뿐입니다. 사자(使者)가 이르러 가르침을 받들고, 삼가 알고 들은 가장 확실한 것들을 비밀히 기록하여 받들어 보시도록 하고, 그 나머지 풍문은 감히 덧붙여 넣지 아니합니다.

일찍이 듣건대, 선비는 지기(知己)를 위하여 죽는다고 합니다. 곽조서의 마음은 이미 지기에게 허락하였으니, 어찌 이 비천한 사정(私情)을 가지고 귀국 임금에게 전달해 아뢰어 곽조서로 하여금 일을 정탐하는 사람으로 삼되, 조금은 구휼을 더하여 학철(涸轍) 속의 물고기662) 를 구제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예전부터 큰 덕을 베푸는 자는 작은 비용을 아끼지 아니하고, 견문(見聞)을 넓히는 자는 이목(耳目)을 이방(異邦)에 의뢰합니다. 알지 못하지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를 자우(子雨)·원중(圓仲) 두 분 이 선생(李先生)께 올리니, 다시 이름을 꾸짖기 바라며, 대종백(大宗伯) 조 노선생(趙老先生) 합하(閤下)께 뜻을 다 밝히는 바입니다. 고(故) 주통정사 좌통정(周通政司左通政) 곽조서(郭朝瑞)는 머리를 조아려 절합니다.

강희(康熙)가 9월 24일에 산동(山東)에 거둥하여 태산(泰山)에 봉선(封禪)하였는데, 호필(扈蹕)하는 무리가 수만이나 되고 공응(供應)이 호번(浩繁)하였습니다. 봉선의 일을 마치자, 곧 양주(楊州)로 올라가서 대강(大江)을 건너 남경(南京)으로 나아갔다가, 소주(蘇州)·항주(杭州)를 경유하여 돌아왔는데, 스스로 왕복 4개월을 한정하였습니다. 도중에 모려산(茅廬山) 법보(法寶)가 있었고, 유망(流亡)한 자를 불러 모은 것이 약 1만 명이 되는데, 그대로 모려산에 반거(盤踞)하여 그 험한 요해지를 지키고 스스로 농사지어 먹으면서 때를 기다려 움직인다 합니다."

하였다. 【곽조서의 글은 이에 그쳤다. 자우(子雨)는 고부사(告訃使) 이유(李濡)의 자(字)이고, 원중(圓仲)은 서장관(書狀官) 이시만(李蓍晩)의 자(字)이며, 조 노선생(趙老先生)은 바로 조사석(趙師錫)을 가리킨 것이다.】 김수흥이 읽기를 다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이 글을 비록 다 믿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또한 허망한 데 이르지는 아니하니, 이 사람의 정리(情理)가 진실로 불쌍하고도 가엾습니다. 또 저쪽 사정을 탐문하는 방도에도 이와 같은 사람을 얻기가 어려우니, 비록 공공연하게 서로 궤유(饋遺)하여 청문(聽聞)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으나, 후일 사신의 행차 때 반전(盤纏) 가운데 물품으로 넉넉하게 주휼(賙恤)을 더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정성이 진실로 가긍하니, 사신의 행차 때 반전을 넉넉하게 주어서 그 급함을 주휼(賙恤)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부제조(副提調) 윤지선(尹趾善)이 말하기를,

"당초에 천영선(千永善)을 재자관(齎咨官)의 행차에 들여보낸 것은 오로지 저쪽 사정을 정탐하기 위한 것인데, 강을 건넘에 미쳐서 수본(手本) 가운데에 이미 거론한 바가 없었고, 입경(入京)한 뒤에도 정납(呈納)한 일이 없으니, 매우 기이할 만합니다."

하니, 김수흥이 말하기를,

"황력 재자관(皇曆齎咨官)663) 의 행차는 차례를 바꿀 수 없으나, 그 위임한 바가 있기 때문에 차례를 바꾸어서 들여보냈으니, 돌아온 날에 그 사정을 정탐해 얻었거나 얻지 못하였거나 물론하고 마땅히 수본(手本) 가운데 거론했어야 할 것인데, 단지 약간의 긴요하지도 않은 문서를 찾아서 책임을 다한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매수당한 것은 진실로 책할 것이 못되지만, 그가 유의(留意)해서 형찰(詗察)하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지극히 통해(痛駭)합니다. 또 그가 만약 착실히 정탐하였으면, 그 주선할 즈음에 또한 어찌 곡절(曲折)과 사설(辭說)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전혀 언급한 바가 없으니, 더욱 무상(無狀)합니다. 지금 객사(客使)가 바야흐로 이르렀으니, 비록 곧 논죄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역원(司譯院)에서 삭명(削名)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그가 이미 맡은 일이 있는데 수본(手本) 가운데 거론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서울에 들어오던 날에 차비문(差備門) 아래에 불러서 물었더니, 비로소 그 문서를 얻어 온 일을 말하였으며, 단지 초초(草草)하고 허랑(虛浪)한 것으로써 책임을 다하려 하니, 일이 지극히 놀랄 만하다. 칙사의 행차가 돌아간 뒤에 나문(拿問)하여 죄를 정할 것이나, 먼저 삭명(削名)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대저 천영선(千永善)이 얻은 문서는 바로 청국의 당보(搪報)로서, 우리 나라 조지(朝紙)664) 와 같은 것이었다. 청국 글자로 썼는데, 청나라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그 글을 번역하게 하였더니, 바로 우리 나라 남(柟)허견(許堅)의 옥정(獄情)을 저들에게 보고한 것들이었다.

  • [註 657] 강희(康熙) : 청(淸)나라 성조(聖祖)의 연호.
  • [註 658] 요얼(妖孼) : 재앙의 조짐.
  • [註 659] 의이(薏苡)의 의심 : 근거 없이 혐의를 받는 것을 말함. 후한(後漢)의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서 돌아올 때 율무를 이식(移植)하려고 수레에 싣고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남토(南土)의 진귀한 명주(明珠)를 싣고 돌아왔다고 참소한 고사(故事).
  • [註 660] 부고(負固) : 지세(地勢)의 험준함에 의뢰함.
  • [註 661] 역려(逆旅) : 여관.
  • [註 662] 학철(涸轍) 속의 물고기 : 수레 바퀴 자국에 괸 물의 붕어라는 뜻으로, 사람이 아주 곤궁(困窮)한 경우를 말함.
  • [註 663] 황력 재자관(皇曆齎咨官) : 중국으로 황력(皇曆)을 가지러 가는 임시 벼슬.
  • [註 664] 조지(朝紙) : 승정원(承政院)에서 처리한 일을 날마다 아침에 적어서 반포(頒布)하던 일. 또는 그 적은 종이. 조보(朝報).

원문

○藥房入診。 都提調金壽興曰: "兵判趙師錫, 曾往北京時, 有郭朝瑞者, 以曾爲吳三桂管下, 分配於周流河, 距瀋陽一日程地。 頗解文字, 師錫與之相熟, 頃於齎咨官千永善之去, 貽書問訊, 仍請報及彼中事矣, 永善歸傳其答札。 而上方在靜攝, 師錫及領相, 不得入見臣敢替進矣。" 仍讀其書, 書曰:

康熙喜峰口避署, 次日朝中大殿中柱名曰擎天柱, 聲若霹靂, 崩壞五尺許, 在京大臣奏聞, 卽令修補。 又近日宮中, 夜聞鬼哭怪號, 作祟非常, 此亦妖孽之事。 又于行獵之時, 忽然狂風大作, 從晨至午, 風息之後, 沙石約有尺許, 將康熙所着衣服吹去, 渺無踪影, 其餘官員人等丈房衣帽, 吹去甚多。 于八月內回京, 有劉巡撫家臣陳姓者進本內云,’ 天變不足畏, 人事不足憂等語七款言, 目今百姓困于征輸, 官兵勞于巡幸, 宜內遠聲色, 外絶遊田, 息兵養民, 人事得而天變可回云云, 康熙大怒, 廷杖不已, 又親執杖以撞之, 體無完膚, 隨遣戌烏喇地方矣。 有征雲南木將軍, 因隱匿平西王歌妓珠寶, 威逼自縊, 今因薏苡之疑, 搜求者尙有數人。 雲南摠督蔡毓, 亦在搜求之中, 雖已上疏昭雪, 不知將來如何結局。 雲南十八家土司, 因撫綏不善, 俱有負固之心, 且招納流亡, 收留平西王下舊人更多, 是有待時而動之意也。 有陝西提督張勇業已病故, 今勑興安鎭摠兵孫斯克代任其事, 西狄深爲慶幸, 已將邊內黃草坪, 占去牧馬, 窺視中原, 將有內侵之擧。 廣東海內, 尙有平西王下水師將軍謝厥福之子謝昌, 領兵三千, 出沒海上, 于今歲五月內, 將廣東福山一帶, 大肆怯掠而去, 風濤萬里, 踪跡不定。 有台灣 鄭氏歸順朝者, 十有七八, 仍有二三有氣槪者, 隨帶家口, 浮海而去, 不知何往。 朝瑞亡國臣僕, 身陷泥中, 逆旅得遇高明, 披瀝肝膽, 對談多時亦意外之邂逅也。 獨奈行邁悤悤? 別後暗結, 惄焉如擣, 流離之子, 矯首雲天, 惟有西風斷猿而已。 使至承敎, 謹以知聞最確者, 秘錄奉覽, 其餘風影, 不敢贅入。 常聞士爲知己者死。 朝瑞方寸, 以許知己, 何不將此鄙私, 轉爲達知貴國主, 俾朝瑞作偵事之人, 少加賙恤, 以濟涸轍之魚? 從來布大德者, 不惜少費, 廣見聞者, 寄耳目于異邦。 不識以爲如何? 此上子雨圓仲二位先生, 更冀叱名, 致意大宗伯老先生閤下。 故周通政司左通政郭朝瑞頓首拜。 康熙于九月二十四日幸山東封禪泰山, 扈蹕之衆數萬, 供應浩繁。 封禪事畢, 卽上楊州, 渡大江, 詣南京, 由蘇州杭州而還, 自限往返四月之期程。 有茅盧山法寶, 招集流亡, 約有萬人, 仍盤踞茅盧山守其險要, 自耕而食, 待時而動。

【朝瑞書止此。 子雨告訃使李濡之字, 圓仲書狀官李警晩之字, 趙老先生卽指師錫。】 壽興讀訖, 仍曰: "此書雖不可盡信, 而亦不至虛妄矣, 此人情理, 實爲矜惻, 且探問彼中事情之道, 亦難得如此人者, 雖不可公相饋遺, 以煩聽聞, 使於日後使臣之行, 以盤纏中物, 優加周恤宜矣。" 上曰: "其情誠可矜, 使臣之行, 優齎盤纏, 以周其急可也。" 副提調尹趾善曰: "當初入送永善於齎咨之行, 專爲鉤得事情矣, 及其渡江, 手本中旣無所擧論, 入京後, 又無呈納之事, 甚可怪也。" 壽興曰: "皇曆齎咨之行, 不可易次, 而以其有所委任之故, 易次入送, 則回還之日, 無論莫得不得, 所當擧論於手本中, 而只覓若干不緊文書, 以爲塞責地。 渠之見賣, 固不足責, 而其不留意詗察則可知, 極爲痛駭。 且渠若着實偵探, 則其周旋之際, 亦豈無曲折與辭說? 而全無所及, 尤爲無狀。 今客使方至, 雖不得卽爲論罪, 爲先削名於譯院宜矣。" 上曰: "渠旣有所幹之事, 而不爲擧論於手本中, 故入京日, 招致差備門下問, 則始言其文書得來事, 而只以草草虛浪者塞責, 事極可駭。 勑行還後, 拿問定罪, 而爲先削名可也。" 蓋永善所得文書, 卽國搪報, 如我東朝紙之類。 而書以字, 令譯譯其文, 乃我國以獄情報彼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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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15권, 숙종 10년 12월 3일 甲午 2/4 기사 / 1684년 청 강희(康熙) 23년

청나라 곽조서의 편지에 관해 의논하다

국역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였다. 도제조(都提調) 김수흥(金壽興)이 말하기를,

"병판(兵判) 조사석(趙師錫)이 일찍이 북경(北京)에 갔을 때에 곽조서(郭朝瑞)란 자가 일찍이 오삼계(吳三桂)의 관하(管下)가 되었다 하여 주류하(周流河)에 분배(分配)되었는데, 거리가 심양(瀋陽)에서 하루 노정(路程)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글을 알아서 조사석이 더불어 서로 친숙하였으므로, 지난번 재자관(齎咨官) 천영선(千永善)이 갈 적에 글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그쪽 사정을 알려줄 것을 청하였는데, 천영선이 돌아와서 그 답장을 전하였습니다. 성상께서 바야흐로 정섭(靜攝)하고 계시므로, 조사석과 영상(領相)이 들어와 뵙지 못하고 신이 감히 대신 올립니다."

하고, 인하여 그 글을 읽었는데, 글에 이르기를,

"강희(康熙)657) 가 희봉구(喜峰口)에 나가서 피서(避暑)하였는데, 다음날 조정 안의 경천주(擎天柱)라고 이름하는 대전(大殿)의 가운데 기둥이 벽력 같은 소리를 내면서 5척(尺)쯤 무너졌으므로, 북경에 있던 대신(大臣)이 이를 아뢰자, 곧 보수(補修)하게 하였습니다. 또 근일에 궁중(宮中)에서 밤에 귀신이 우는 기이한 소리가 들려서 재앙을 일으키는 것이 예사롭지 아니하니, 이 또한 요얼(妖孼)658) 의 일입니다. 또 사냥을 할 때에 갑자기 광풍(狂風)이 크게 일어나서 새벽에서 낮까지 이르는가 하면, 바람이 그친 뒤에 모래와 돌이 약 한 자 가량이나 있었는데, 강희(康熙)의 입은 옷이 날려가서 아득하게 종적이 없었으며, 그 나머지 관원(官員)들의 장방 의모(丈房衣帽)도 날려간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8월 안에 북경에 돌아왔는데, 유 순무(劉巡撫)의 가신(家臣)으로 진씨(陳氏) 성(姓)을 가진 자가 진본(進本)한 속에 이르기를, ‘천변(天變)은 족히 두려워할 것이 못되고, 인사(人事)도 족히 근심할 것이 못된다는 등의 일곱 가지 조목에, 「지금 백성은 정수(征輸)에 피곤하고 관병(官兵)은 순행(巡幸)에 괴로와하니, 마땅히 안으로는 성색(聲色)을 멀리하고 밖으로는 유전(遊畋)을 끊어서 군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기르면, 인사(人事)의 계책을 얻어 천변을 돌이킬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강희가 크게 노여워하여 조정에서 매를 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또 친히 매를 잡고 치니, 몸이 온전한 데가 없었으나, 곧 오라(烏喇) 지방에 보내어 수자리살게 하였습니다. 운남(雲南)을 정벌하던 목 장군(木將軍)이 평서왕(平西王)의 가기(歌妓) 주보(珠寶)를 은닉(隱匿)한 일로 인하여 위협받아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는데, 지금 의이(薏苡)의 의심659) 으로 인하여 수색하는 자가 아직 두어 사람 있습니다. 운남 총독(雲南摠督) 채육(蔡毓)도 수색하는 가운데 있는데, 비록 이미 상소하여 밝혔으나 장래 어떤 결과를 이룰지 알지 못합니다.

운남 18가(家) 토사(土司)는 잘 무수(撫綏)하지 못하여 모두 부고(負固)660) 할 마음을 가졌는데, 또 유망(流亡)하는 자를 불러 들이니, 평서왕(平西王) 밑에 있던 옛사람을 거두어 머물러 둔 것도 다시 많으며, 이는 때를 기다려서 움직일 뜻입니다. 또 섬서 제독(陝西提督) 장용(張勇)은 이미 병들어 죽었고, 이제 칙명으로 흥안진 총병(興安鎭摠兵) 손사극(孫斯克)에게 그 일을 대신 맡게 하자, 서적(西狄)이 매우 다행스럽게 여겨 이미 변경 안 황초평(黃草坪)에서 목마(牧馬)를 점유해 가서 중원(中原)을 엿보니, 장차 내침(內侵)할 거사(擧事)가 있을 것입니다. 광동(廣東) 바다 안에는 아직 평서왕(平西王) 밑의 수사 장군(水師將軍) 사궐복(謝厥福)의 아들 사창(謝昌)이 군사 3천을 거느리고 해상에 출몰(出沒)하고 있는데, 금년 5월 안에 광동(廣東)의 복산(福山) 일대(一帶)에서 크게 겁략(刼掠)을 행하고 갔으나 풍도(風濤) 만리에 종적이 일정하지 아니합니다. 대만(台灣) 정씨(鄭氏)로 청조(淸朝)에 귀순한 자가 10에 7, 8이 있었는데, 그래도 2, 3의 기개(氣槪) 있는 자가 있어서 가구(家口)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갔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곽조서(郭朝瑞)는 망국(亡國)의 신복(臣僕)으로서 몸이 진흙 속에 빠졌는데, 역려(逆旅)661) 에서 고명(高明)을 만나 마음속을 털어놓고 대담한 때가 많았으니, 또한 뜻밖의 해후(邂逅)였습니다. 다만 가는 걸음이 총총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작별한 뒤에 마음속에 맺힌 그리움이 찧는 듯하여 떠도는 나그네가 머리를 들어 운천(雲天)을 바라보니, 오직 서풍(西風)에 원숭이의 슬피 우는 소리만 들려올 뿐입니다. 사자(使者)가 이르러 가르침을 받들고, 삼가 알고 들은 가장 확실한 것들을 비밀히 기록하여 받들어 보시도록 하고, 그 나머지 풍문은 감히 덧붙여 넣지 아니합니다.

일찍이 듣건대, 선비는 지기(知己)를 위하여 죽는다고 합니다. 곽조서의 마음은 이미 지기에게 허락하였으니, 어찌 이 비천한 사정(私情)을 가지고 귀국 임금에게 전달해 아뢰어 곽조서로 하여금 일을 정탐하는 사람으로 삼되, 조금은 구휼을 더하여 학철(涸轍) 속의 물고기662) 를 구제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예전부터 큰 덕을 베푸는 자는 작은 비용을 아끼지 아니하고, 견문(見聞)을 넓히는 자는 이목(耳目)을 이방(異邦)에 의뢰합니다. 알지 못하지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를 자우(子雨)·원중(圓仲) 두 분 이 선생(李先生)께 올리니, 다시 이름을 꾸짖기 바라며, 대종백(大宗伯) 조 노선생(趙老先生) 합하(閤下)께 뜻을 다 밝히는 바입니다. 고(故) 주통정사 좌통정(周通政司左通政) 곽조서(郭朝瑞)는 머리를 조아려 절합니다.

강희(康熙)가 9월 24일에 산동(山東)에 거둥하여 태산(泰山)에 봉선(封禪)하였는데, 호필(扈蹕)하는 무리가 수만이나 되고 공응(供應)이 호번(浩繁)하였습니다. 봉선의 일을 마치자, 곧 양주(楊州)로 올라가서 대강(大江)을 건너 남경(南京)으로 나아갔다가, 소주(蘇州)·항주(杭州)를 경유하여 돌아왔는데, 스스로 왕복 4개월을 한정하였습니다. 도중에 모려산(茅廬山) 법보(法寶)가 있었고, 유망(流亡)한 자를 불러 모은 것이 약 1만 명이 되는데, 그대로 모려산에 반거(盤踞)하여 그 험한 요해지를 지키고 스스로 농사지어 먹으면서 때를 기다려 움직인다 합니다."

하였다. 【곽조서의 글은 이에 그쳤다. 자우(子雨)는 고부사(告訃使) 이유(李濡)의 자(字)이고, 원중(圓仲)은 서장관(書狀官) 이시만(李蓍晩)의 자(字)이며, 조 노선생(趙老先生)은 바로 조사석(趙師錫)을 가리킨 것이다.】 김수흥이 읽기를 다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이 글을 비록 다 믿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또한 허망한 데 이르지는 아니하니, 이 사람의 정리(情理)가 진실로 불쌍하고도 가엾습니다. 또 저쪽 사정을 탐문하는 방도에도 이와 같은 사람을 얻기가 어려우니, 비록 공공연하게 서로 궤유(饋遺)하여 청문(聽聞)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으나, 후일 사신의 행차 때 반전(盤纏) 가운데 물품으로 넉넉하게 주휼(賙恤)을 더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정성이 진실로 가긍하니, 사신의 행차 때 반전을 넉넉하게 주어서 그 급함을 주휼(賙恤)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부제조(副提調) 윤지선(尹趾善)이 말하기를,

"당초에 천영선(千永善)을 재자관(齎咨官)의 행차에 들여보낸 것은 오로지 저쪽 사정을 정탐하기 위한 것인데, 강을 건넘에 미쳐서 수본(手本) 가운데에 이미 거론한 바가 없었고, 입경(入京)한 뒤에도 정납(呈納)한 일이 없으니, 매우 기이할 만합니다."

하니, 김수흥이 말하기를,

"황력 재자관(皇曆齎咨官)663) 의 행차는 차례를 바꿀 수 없으나, 그 위임한 바가 있기 때문에 차례를 바꾸어서 들여보냈으니, 돌아온 날에 그 사정을 정탐해 얻었거나 얻지 못하였거나 물론하고 마땅히 수본(手本) 가운데 거론했어야 할 것인데, 단지 약간의 긴요하지도 않은 문서를 찾아서 책임을 다한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매수당한 것은 진실로 책할 것이 못되지만, 그가 유의(留意)해서 형찰(詗察)하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지극히 통해(痛駭)합니다. 또 그가 만약 착실히 정탐하였으면, 그 주선할 즈음에 또한 어찌 곡절(曲折)과 사설(辭說)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전혀 언급한 바가 없으니, 더욱 무상(無狀)합니다. 지금 객사(客使)가 바야흐로 이르렀으니, 비록 곧 논죄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역원(司譯院)에서 삭명(削名)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그가 이미 맡은 일이 있는데 수본(手本) 가운데 거론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서울에 들어오던 날에 차비문(差備門) 아래에 불러서 물었더니, 비로소 그 문서를 얻어 온 일을 말하였으며, 단지 초초(草草)하고 허랑(虛浪)한 것으로써 책임을 다하려 하니, 일이 지극히 놀랄 만하다. 칙사의 행차가 돌아간 뒤에 나문(拿問)하여 죄를 정할 것이나, 먼저 삭명(削名)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대저 천영선(千永善)이 얻은 문서는 바로 청국의 당보(搪報)로서, 우리 나라 조지(朝紙)664) 와 같은 것이었다. 청국 글자로 썼는데, 청나라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그 글을 번역하게 하였더니, 바로 우리 나라 남(柟)허견(許堅)의 옥정(獄情)을 저들에게 보고한 것들이었다.

  • [註 657] 강희(康熙) : 청(淸)나라 성조(聖祖)의 연호.
  • [註 658] 요얼(妖孼) : 재앙의 조짐.
  • [註 659] 의이(薏苡)의 의심 : 근거 없이 혐의를 받는 것을 말함. 후한(後漢)의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서 돌아올 때 율무를 이식(移植)하려고 수레에 싣고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남토(南土)의 진귀한 명주(明珠)를 싣고 돌아왔다고 참소한 고사(故事).
  • [註 660] 부고(負固) : 지세(地勢)의 험준함에 의뢰함.
  • [註 661] 역려(逆旅) : 여관.
  • [註 662] 학철(涸轍) 속의 물고기 : 수레 바퀴 자국에 괸 물의 붕어라는 뜻으로, 사람이 아주 곤궁(困窮)한 경우를 말함.
  • [註 663] 황력 재자관(皇曆齎咨官) : 중국으로 황력(皇曆)을 가지러 가는 임시 벼슬.
  • [註 664] 조지(朝紙) : 승정원(承政院)에서 처리한 일을 날마다 아침에 적어서 반포(頒布)하던 일. 또는 그 적은 종이. 조보(朝報).

원문

○藥房入診。 都提調金壽興曰: "兵判趙師錫, 曾往北京時, 有郭朝瑞者, 以曾爲吳三桂管下, 分配於周流河, 距瀋陽一日程地。 頗解文字, 師錫與之相熟, 頃於齎咨官千永善之去, 貽書問訊, 仍請報及彼中事矣, 永善歸傳其答札。 而上方在靜攝, 師錫及領相, 不得入見臣敢替進矣。" 仍讀其書, 書曰:

康熙喜峰口避署, 次日朝中大殿中柱名曰擎天柱, 聲若霹靂, 崩壞五尺許, 在京大臣奏聞, 卽令修補。 又近日宮中, 夜聞鬼哭怪號, 作祟非常, 此亦妖孽之事。 又于行獵之時, 忽然狂風大作, 從晨至午, 風息之後, 沙石約有尺許, 將康熙所着衣服吹去, 渺無踪影, 其餘官員人等丈房衣帽, 吹去甚多。 于八月內回京, 有劉巡撫家臣陳姓者進本內云,’ 天變不足畏, 人事不足憂等語七款言, 目今百姓困于征輸, 官兵勞于巡幸, 宜內遠聲色, 外絶遊田, 息兵養民, 人事得而天變可回云云, 康熙大怒, 廷杖不已, 又親執杖以撞之, 體無完膚, 隨遣戌烏喇地方矣。 有征雲南木將軍, 因隱匿平西王歌妓珠寶, 威逼自縊, 今因薏苡之疑, 搜求者尙有數人。 雲南摠督蔡毓, 亦在搜求之中, 雖已上疏昭雪, 不知將來如何結局。 雲南十八家土司, 因撫綏不善, 俱有負固之心, 且招納流亡, 收留平西王下舊人更多, 是有待時而動之意也。 有陝西提督張勇業已病故, 今勑興安鎭摠兵孫斯克代任其事, 西狄深爲慶幸, 已將邊內黃草坪, 占去牧馬, 窺視中原, 將有內侵之擧。 廣東海內, 尙有平西王下水師將軍謝厥福之子謝昌, 領兵三千, 出沒海上, 于今歲五月內, 將廣東福山一帶, 大肆怯掠而去, 風濤萬里, 踪跡不定。 有台灣 鄭氏歸順朝者, 十有七八, 仍有二三有氣槪者, 隨帶家口, 浮海而去, 不知何往。 朝瑞亡國臣僕, 身陷泥中, 逆旅得遇高明, 披瀝肝膽, 對談多時亦意外之邂逅也。 獨奈行邁悤悤? 別後暗結, 惄焉如擣, 流離之子, 矯首雲天, 惟有西風斷猿而已。 使至承敎, 謹以知聞最確者, 秘錄奉覽, 其餘風影, 不敢贅入。 常聞士爲知己者死。 朝瑞方寸, 以許知己, 何不將此鄙私, 轉爲達知貴國主, 俾朝瑞作偵事之人, 少加賙恤, 以濟涸轍之魚? 從來布大德者, 不惜少費, 廣見聞者, 寄耳目于異邦。 不識以爲如何? 此上子雨圓仲二位先生, 更冀叱名, 致意大宗伯老先生閤下。 故周通政司左通政郭朝瑞頓首拜。 康熙于九月二十四日幸山東封禪泰山, 扈蹕之衆數萬, 供應浩繁。 封禪事畢, 卽上楊州, 渡大江, 詣南京, 由蘇州杭州而還, 自限往返四月之期程。 有茅盧山法寶, 招集流亡, 約有萬人, 仍盤踞茅盧山守其險要, 自耕而食, 待時而動。

【朝瑞書止此。 子雨告訃使李濡之字, 圓仲書狀官李警晩之字, 趙老先生卽指師錫。】 壽興讀訖, 仍曰: "此書雖不可盡信, 而亦不至虛妄矣, 此人情理, 實爲矜惻, 且探問彼中事情之道, 亦難得如此人者, 雖不可公相饋遺, 以煩聽聞, 使於日後使臣之行, 以盤纏中物, 優加周恤宜矣。" 上曰: "其情誠可矜, 使臣之行, 優齎盤纏, 以周其急可也。" 副提調尹趾善曰: "當初入送永善於齎咨之行, 專爲鉤得事情矣, 及其渡江, 手本中旣無所擧論, 入京後, 又無呈納之事, 甚可怪也。" 壽興曰: "皇曆齎咨之行, 不可易次, 而以其有所委任之故, 易次入送, 則回還之日, 無論莫得不得, 所當擧論於手本中, 而只覓若干不緊文書, 以爲塞責地。 渠之見賣, 固不足責, 而其不留意詗察則可知, 極爲痛駭。 且渠若着實偵探, 則其周旋之際, 亦豈無曲折與辭說? 而全無所及, 尤爲無狀。 今客使方至, 雖不得卽爲論罪, 爲先削名於譯院宜矣。" 上曰: "渠旣有所幹之事, 而不爲擧論於手本中, 故入京日, 招致差備門下問, 則始言其文書得來事, 而只以草草虛浪者塞責, 事極可駭。 勑行還後, 拿問定罪, 而爲先削名可也。" 蓋永善所得文書, 卽國搪報, 如我東朝紙之類。 而書以字, 令譯譯其文, 乃我國以獄情報彼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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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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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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