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13권, 숙종 8년 6월 22일 戊戌 1/1 기사 / 1682년 청 강희(康熙) 21년
영동의 열녀 이조이를 정려하다
국역
영동(永同)의 열녀(烈女) 이조이(李召史)를 정려(旌閭)208) 하였다. 이씨(李氏)는 본현(本縣) 교생(校生)의 아내로서 병을 앓아 혼자 방안에 누워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포악한 자가 겁탈하려 하였다. 이씨가 죽기를 각오하고 굳이 항거하였는데, 나이 겨우 여섯 살 된 그의 아들 박만여(朴萬餘)가 그 외조부(外祖父)에게 달려가서 알려, 그로 말미암아 구제되어 면하였다. 이씨가 비록 몸을 더럽히는 욕(辱)은 당하지 않았으나 부량배(浮浪輩)에게 협박당한 것을 상심(傷心)하여 마침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니, 이때 나이가 25세였다. 그 아비가 관가에 호소하여 포악한 자를 체포해서 죄를 다스렸는데, 그때의 추관(推官)209) 이 법을 굽혀 옥사(獄事)를 느슨하게 해서 법망(法網)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박만여가 조금 자라게 되자,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칼을 가지고 〈범인을〉 직접 찔러 드디어 그 간(肝)을 꺼내어서 그 어미에게 제사지내고, 스스로 관리에게 돌아가 제 마음대로 죽인 죄를 받기를 청하였다. 조정(朝廷)에서 그 행동을 의롭게 여겨 용서하여 목베지 않고 웅천(熊川) 지방에 정배(定配)하였는데, 얼마 안되어 사유(赦宥)를 만나 석방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도신(道臣)이 이씨(李氏)에게 정려(旌閭)의 은전(恩典)을 베풀도록 청하고, 또 박만여를 정표(旌表)하여 복호(復戶)210) 하고 신역(身役)을 면제하여 주도록 청하였다. 해조(該曹)에서 다만 이씨(李氏)의 정려(旌閭)만을 허락하고, 박만여는 일이 훗날의 폐단에 관계된다 하여 그대로 두었다.
- [註 208] 정려(旌閭) : 충신·효자·열녀를 그들이 사는 마을의 거리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
- [註 209] 추관(推官) : 죄인을 심문하는 관원.
- [註 210] 복호(復戶) : 조선조 충신(忠臣)과 효자(孝子)·절부(節婦)가 태어난 집의 호역(戶役)을 면제하여 주던 일.
원문
숙종 8년 (1682) 6월 22일
숙종실록13권, 숙종 8년 6월 22일 戊戌 1/1 기사 / 1682년 청 강희(康熙) 21년
영동의 열녀 이조이를 정려하다
국역
영동(永同)의 열녀(烈女) 이조이(李召史)를 정려(旌閭)208) 하였다. 이씨(李氏)는 본현(本縣) 교생(校生)의 아내로서 병을 앓아 혼자 방안에 누워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포악한 자가 겁탈하려 하였다. 이씨가 죽기를 각오하고 굳이 항거하였는데, 나이 겨우 여섯 살 된 그의 아들 박만여(朴萬餘)가 그 외조부(外祖父)에게 달려가서 알려, 그로 말미암아 구제되어 면하였다. 이씨가 비록 몸을 더럽히는 욕(辱)은 당하지 않았으나 부량배(浮浪輩)에게 협박당한 것을 상심(傷心)하여 마침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니, 이때 나이가 25세였다. 그 아비가 관가에 호소하여 포악한 자를 체포해서 죄를 다스렸는데, 그때의 추관(推官)209) 이 법을 굽혀 옥사(獄事)를 느슨하게 해서 법망(法網)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박만여가 조금 자라게 되자,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칼을 가지고 〈범인을〉 직접 찔러 드디어 그 간(肝)을 꺼내어서 그 어미에게 제사지내고, 스스로 관리에게 돌아가 제 마음대로 죽인 죄를 받기를 청하였다. 조정(朝廷)에서 그 행동을 의롭게 여겨 용서하여 목베지 않고 웅천(熊川) 지방에 정배(定配)하였는데, 얼마 안되어 사유(赦宥)를 만나 석방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도신(道臣)이 이씨(李氏)에게 정려(旌閭)의 은전(恩典)을 베풀도록 청하고, 또 박만여를 정표(旌表)하여 복호(復戶)210) 하고 신역(身役)을 면제하여 주도록 청하였다. 해조(該曹)에서 다만 이씨(李氏)의 정려(旌閭)만을 허락하고, 박만여는 일이 훗날의 폐단에 관계된다 하여 그대로 두었다.
- [註 208] 정려(旌閭) : 충신·효자·열녀를 그들이 사는 마을의 거리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
- [註 209] 추관(推官) : 죄인을 심문하는 관원.
- [註 210] 복호(復戶) : 조선조 충신(忠臣)과 효자(孝子)·절부(節婦)가 태어난 집의 호역(戶役)을 면제하여 주던 일.
원문
원본
숙종 8년 (1682) 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