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7권, 숙종 4년 11월 11일 戊申 5/5 기사 / 1678년 청 강희(康熙) 17년
동래 부사 박천영을 심하게 논박한 장령 유성삼을 체차하다
국역
장령(掌令) 유성삼(柳星三)이 논박하기를,
"새로 제수한 동래 부사(東萊府使) 박천영(朴千榮)은 성품이 어리석고 중심에 주장하는 것이 없어, 일을 만나면 전혀 두서(頭緖)가 어둡고, 관직에 있으면 탐도(貪饕)할 것만을 일삼으며, 처신(處身)함이 반복(反覆)하여서 세상에서 천하게 여기니, 청컨대 명한 것을 개정(改命)하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박천영(朴千榮)이 사람됨이 과연 계사(啓辭)와 부합한다면, 당초에 묘당(廟堂)에서 반드시 의천(議薦)할 리 만무한 것이다. 또 주목(州牧)을 경력한 것과 원래 이력(履歷)이 없는 것과는 다름이 있는데, 무식한 비부(鄙夫) 등의 말을 가지고 논척(論斥)하기를 너무 심하게 하였으니 내가 실로 깨닫지 못하겠다."
하였다. 이튿날 탑전(搨前)에서 임금이 유성삼더러 이르기를,
"전비(前批)에 너무 심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인피(引避)하지 않았으니 어찌된 것이냐?"
하니, 유성삼이 황겁하여 실조(失措)하였다. 대신(大臣)들이 아뢰기를,
"지금 피혐(避嫌)할 수 있습니다."
하니, 유성삼이 갑자기 대답하기를,
"성교(聖敎)가 이와 같으시니 신이 어찌 감히 피혐(避嫌)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대신들이 조사(措辭)가 전혀 몰지각한 것으로 배척하니, 유성삼이 몇 마디를 덧붙여 아뢰었으나 말을 마치지를 못하였다. 정언(正言) 이한명(李漢命)의 말이 조금도 이치에 맞지 않고 또 실의(失儀)함이 많았다고 하여, 특별히 체차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쾌히 윤허하였다. 뒤에 대간(臺諫)에서 연계(連啓)하여 십수(十數) 차례나 올렸으나, 끝내 따르지 않았다.
숙종실록7권, 숙종 4년 11월 11일 戊申 5/5 기사 / 1678년 청 강희(康熙) 17년
동래 부사 박천영을 심하게 논박한 장령 유성삼을 체차하다
국역
장령(掌令) 유성삼(柳星三)이 논박하기를,
"새로 제수한 동래 부사(東萊府使) 박천영(朴千榮)은 성품이 어리석고 중심에 주장하는 것이 없어, 일을 만나면 전혀 두서(頭緖)가 어둡고, 관직에 있으면 탐도(貪饕)할 것만을 일삼으며, 처신(處身)함이 반복(反覆)하여서 세상에서 천하게 여기니, 청컨대 명한 것을 개정(改命)하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박천영(朴千榮)이 사람됨이 과연 계사(啓辭)와 부합한다면, 당초에 묘당(廟堂)에서 반드시 의천(議薦)할 리 만무한 것이다. 또 주목(州牧)을 경력한 것과 원래 이력(履歷)이 없는 것과는 다름이 있는데, 무식한 비부(鄙夫) 등의 말을 가지고 논척(論斥)하기를 너무 심하게 하였으니 내가 실로 깨닫지 못하겠다."
하였다. 이튿날 탑전(搨前)에서 임금이 유성삼더러 이르기를,
"전비(前批)에 너무 심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인피(引避)하지 않았으니 어찌된 것이냐?"
하니, 유성삼이 황겁하여 실조(失措)하였다. 대신(大臣)들이 아뢰기를,
"지금 피혐(避嫌)할 수 있습니다."
하니, 유성삼이 갑자기 대답하기를,
"성교(聖敎)가 이와 같으시니 신이 어찌 감히 피혐(避嫌)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대신들이 조사(措辭)가 전혀 몰지각한 것으로 배척하니, 유성삼이 몇 마디를 덧붙여 아뢰었으나 말을 마치지를 못하였다. 정언(正言) 이한명(李漢命)의 말이 조금도 이치에 맞지 않고 또 실의(失儀)함이 많았다고 하여, 특별히 체차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쾌히 윤허하였다. 뒤에 대간(臺諫)에서 연계(連啓)하여 십수(十數) 차례나 올렸으나, 끝내 따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