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5권, 숙종 2년 2월 3일 乙卯 2/2 기사 / 1676년 청 강희(康熙) 15년
윤휴가 진황전의 조세 문제, 관인의 봉록 문제, 수레 문제 등을 말하다
국역
대신(大臣)과 비국(備局) 여러 신하를 인견(引見)하였다. 윤휴(尹鑴)가 말하기를,
"진전(陳田)055) 을 개간하는 데 따라 세(稅)를 거두는 것은 명백한 사목(事目)이 있는데, 백성이 즐겨 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한 해의 수입이 능히 그 조세(租稅)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황전(陳荒田)을 개간하여 경작하는 자에게 2,3년에 한(限)하여 조세를 거두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반드시 즐겨 경작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2년에 한하여 조세를 거두지 말게 하라."
하였다. 윤휴가 또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봉록(俸祿)이 본래 박하여 농사를 대신하기에 부족합니다. 만일 흉년을 당한다면 봉록을 올려야 마땅한 데도 도리어 삭감하니, 비록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영구히 항상 행할 도(道)는 아닙니다. 평상시의 녹봉을 회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봉록을 삭감하는 것은 실로, ‘충신(忠信)으로 대우하고 녹(祿)을 중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마련하여 복구하게 하라."
하였다. 윤휴가 또 양남(兩南)의 수레 만드는 일을 말하기를,
"병가(兵家)의 이기(利器)는 수레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레를 쓴다고 어찌 반드시 모두 이기겠는가? 한신(韓信)은 배수진(背水陣)으로 승리하였지만 그 뒤에는 배수진을 치고 패하였으니, 어찌 다만 병거(兵車)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윤휴가 말하기를,
"강도(江都)에서는 반드시 수천 승(乘)을 만들어야 옳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수백 승도 마련하기가 쉽지 아니하며, 또 우리 나라는 넓은 들이 없는데, 병거 천 승을 어느 땅에 배치(排置)하겠는가?"
하였다. 윤휴가 말하기를,
"3월 전에 나무를 베어 놓은 뒤에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때를 넘기면 나무를 쓸 수 없습니다."
하자, 허적(許積)이 말하기를,
"이 말은 묘리(妙理)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7월에도 나무를 베어 낼 수 있습니다."
하였다. 윤휴가 말하기를,
"영상(領相)은 반드시 할 뜻이 없습니다. 그 7월에도 한다는 말은 미루다가 곧 이를 그만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자, 허적이 말하기를,
"신이 아무리 피연(疲軟)하다 하더라도 어찌 윤휴를 두려워하여 핑계하는 말을 하겠습니까? 신의 뜻으로는, 혹 쓸 만하다 하더라도 몹시 급하지는 아니하다고 생각됩니다. 온 조정이 모두 놀라고 좌상(左相)과 우상(右相)도 반드시 쓸 수 없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뜻으로는, 수레의 제도는 반드시 이기는 이치가 없다. ‘우리가 병거(兵車)를 갖는다면 저들을 어찌 두려워하겠느냐.’고 하지만 이런 이치는 없는 것이다. 또 저들이 만약 이로 인하여 불화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축성(築城)은 저들이 비록 힐문(詰問)하더라도 혹시 다른 도둑을 방비한다는 이유로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수레는 속여서 말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32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농업-개간(開墾) / 재정-전세(田稅) / 재정-국용(國用) / 군사-군기(軍器) / 군사-관방(關防)
- [註 055] 진전(陳田) : 경작하지 않고 버려두어 황폐한 전지(田地).
원문
○引見大臣、備局諸臣。 尹鑴曰: "陳田隨起隨稅, 明有事目, 而民不肯從者, 蓋一歲之收, 不能備其租稅故也。 陳荒起耕者, 限二三年勿爲收稅, 則民必樂耕矣。" 上曰: "限二年勿爲收稅。" 鑴又曰: "我國俸祿本薄, 不足以代耕。 如遇凶年當增俸, 而反爲減削。 雖出於不獲已, 而非永久常行之道, 宜復常祿。" 上曰: "減削俸祿, 實非忠信重祿之意。 令該曹磨鍊復舊。" 鑴又言兩南造車事曰: "兵家利器, 莫如車。" 上曰: "用車, 豈必盡勝? 韓信背水而勝, 其後背水而敗, 豈可但恃兵車?" 鑴曰: "江都必造數千乘可也。" 上笑曰: "數百乘亦不易辦。 且我國無廣野, 兵車千乘, 何地可以排置?" 鑴曰: "三月前斫木, 然後可造。 過此則木不堪用。" 許積曰: "此言不知妙理。 七月可以斫木。" 鑴曰: "領相無必爲之意。 其曰七月, 欲爲遷就, 仍以罷之也。" 積曰: "臣雖疲軟, 豈畏鑴而故爲託辭乎? 臣意則以爲或可用而不至甚急, 擧朝皆以爲駭愕。 左右相亦以爲必不可用矣。" 上曰: "予意, 車制無必勝之理, 以爲我有兵車, 則彼何足畏云者, 無此理也。 且彼若因此生梗, 則奈何? 築城則彼雖詰問, 或可諉之以備他盜, 而車則難爲詭辭矣。"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32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농업-개간(開墾) / 재정-전세(田稅) / 재정-국용(國用) / 군사-군기(軍器) / 군사-관방(關防)
숙종 2년 (1676) 2월 3일
숙종실록5권, 숙종 2년 2월 3일 乙卯 2/2 기사 / 1676년 청 강희(康熙) 15년
윤휴가 진황전의 조세 문제, 관인의 봉록 문제, 수레 문제 등을 말하다
국역
대신(大臣)과 비국(備局) 여러 신하를 인견(引見)하였다. 윤휴(尹鑴)가 말하기를,
"진전(陳田)055) 을 개간하는 데 따라 세(稅)를 거두는 것은 명백한 사목(事目)이 있는데, 백성이 즐겨 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한 해의 수입이 능히 그 조세(租稅)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황전(陳荒田)을 개간하여 경작하는 자에게 2,3년에 한(限)하여 조세를 거두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반드시 즐겨 경작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2년에 한하여 조세를 거두지 말게 하라."
하였다. 윤휴가 또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봉록(俸祿)이 본래 박하여 농사를 대신하기에 부족합니다. 만일 흉년을 당한다면 봉록을 올려야 마땅한 데도 도리어 삭감하니, 비록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영구히 항상 행할 도(道)는 아닙니다. 평상시의 녹봉을 회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봉록을 삭감하는 것은 실로, ‘충신(忠信)으로 대우하고 녹(祿)을 중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마련하여 복구하게 하라."
하였다. 윤휴가 또 양남(兩南)의 수레 만드는 일을 말하기를,
"병가(兵家)의 이기(利器)는 수레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레를 쓴다고 어찌 반드시 모두 이기겠는가? 한신(韓信)은 배수진(背水陣)으로 승리하였지만 그 뒤에는 배수진을 치고 패하였으니, 어찌 다만 병거(兵車)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윤휴가 말하기를,
"강도(江都)에서는 반드시 수천 승(乘)을 만들어야 옳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수백 승도 마련하기가 쉽지 아니하며, 또 우리 나라는 넓은 들이 없는데, 병거 천 승을 어느 땅에 배치(排置)하겠는가?"
하였다. 윤휴가 말하기를,
"3월 전에 나무를 베어 놓은 뒤에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때를 넘기면 나무를 쓸 수 없습니다."
하자, 허적(許積)이 말하기를,
"이 말은 묘리(妙理)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7월에도 나무를 베어 낼 수 있습니다."
하였다. 윤휴가 말하기를,
"영상(領相)은 반드시 할 뜻이 없습니다. 그 7월에도 한다는 말은 미루다가 곧 이를 그만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자, 허적이 말하기를,
"신이 아무리 피연(疲軟)하다 하더라도 어찌 윤휴를 두려워하여 핑계하는 말을 하겠습니까? 신의 뜻으로는, 혹 쓸 만하다 하더라도 몹시 급하지는 아니하다고 생각됩니다. 온 조정이 모두 놀라고 좌상(左相)과 우상(右相)도 반드시 쓸 수 없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뜻으로는, 수레의 제도는 반드시 이기는 이치가 없다. ‘우리가 병거(兵車)를 갖는다면 저들을 어찌 두려워하겠느냐.’고 하지만 이런 이치는 없는 것이다. 또 저들이 만약 이로 인하여 불화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축성(築城)은 저들이 비록 힐문(詰問)하더라도 혹시 다른 도둑을 방비한다는 이유로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수레는 속여서 말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32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농업-개간(開墾) / 재정-전세(田稅) / 재정-국용(國用) / 군사-군기(軍器) / 군사-관방(關防)
- [註 055] 진전(陳田) : 경작하지 않고 버려두어 황폐한 전지(田地).
원문
○引見大臣、備局諸臣。 尹鑴曰: "陳田隨起隨稅, 明有事目, 而民不肯從者, 蓋一歲之收, 不能備其租稅故也。 陳荒起耕者, 限二三年勿爲收稅, 則民必樂耕矣。" 上曰: "限二年勿爲收稅。" 鑴又曰: "我國俸祿本薄, 不足以代耕。 如遇凶年當增俸, 而反爲減削。 雖出於不獲已, 而非永久常行之道, 宜復常祿。" 上曰: "減削俸祿, 實非忠信重祿之意。 令該曹磨鍊復舊。" 鑴又言兩南造車事曰: "兵家利器, 莫如車。" 上曰: "用車, 豈必盡勝? 韓信背水而勝, 其後背水而敗, 豈可但恃兵車?" 鑴曰: "江都必造數千乘可也。" 上笑曰: "數百乘亦不易辦。 且我國無廣野, 兵車千乘, 何地可以排置?" 鑴曰: "三月前斫木, 然後可造。 過此則木不堪用。" 許積曰: "此言不知妙理。 七月可以斫木。" 鑴曰: "領相無必爲之意。 其曰七月, 欲爲遷就, 仍以罷之也。" 積曰: "臣雖疲軟, 豈畏鑴而故爲託辭乎? 臣意則以爲或可用而不至甚急, 擧朝皆以爲駭愕。 左右相亦以爲必不可用矣。" 上曰: "予意, 車制無必勝之理, 以爲我有兵車, 則彼何足畏云者, 無此理也。 且彼若因此生梗, 則奈何? 築城則彼雖詰問, 或可諉之以備他盜, 而車則難爲詭辭矣。"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32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농업-개간(開墾) / 재정-전세(田稅) / 재정-국용(國用) / 군사-군기(軍器) / 군사-관방(關防)
원본
숙종 2년 (1676) 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