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3권, 숙종 1년 3월 12일 庚午 2/3 기사 /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청풍부원군 김우명이 유사의 신하의 경비를 삭감한 일과 복평·복창군 형제의 일을 올린 차자
국역
허적(許積)·오정위(吳挺緯)가 청대(請對)하였다. 임금이 청풍 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의 차자(箚子)를 허적에게 보였는데, 그 차자에 이르기를,
"국가에서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국상(國喪)이 있을 때마다 수릉(守陵)하는 관원을 정하여 후하게 대우하였는데, 지난번에 듣건대, 유사(有司)의 신하가 경비를 지나치게 염려하여 전에 의례 대어 주던 것에서 깎은 것이 많다 하니, 신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저 연경(燕京)에 사신으로 가는 자는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며, 두어 달이 넘지 않아서 돌아오는데도 왕사(王事)를 위해 분주히 다닌다 하여 넉넉하게 내려 주고 팔도에서도 모두 돕도록 하는데, 어찌하여 조상의 무덤을 버려두고 어버이를 떠나서 채소만 먹고 낯을 씻지 않고 날마다 세 번 공경을 드리면서 재기(再期)217) 를 지내는 신하에게만은 전부터 으레 내리던 물건을 문득 거두십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근일의 일 중에 통곡할 만한 것이 한 둘이 아니나, 그 중에서도 더욱 급하고 중대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저 세 번 이른 참언(讒言)은 자모(慈母)가 북[杼]을 던지게 할 수 있다는 것218) 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맹모 삼천(孟母三遷)의 가르침이 이간하는 말을 가져 온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는데, 밖에서 전파되어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하의 지극히 효성한 성명(聖明)과 자성(慈聖)의 지극히 자상한 인애(仁愛)로서도 남의 말이 이렇게까지 박절하니, 신은 마음이 에이는 듯이 아파서 곧 살고 싶지도 않고, 이러한 말을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또 복평군(福平君) 이연(李㮒)의 형제가 효종께 친아들과 같은 은혜를 받고, 선조(先朝)에서도 동기와 같은 은혜를 입은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은총이 융숭하면 공경하고 삼가는 것이 점점 게을러지고, 금중(禁中)에 출입하면 추악한 소문이 밖에 들리는데, 이것이 곧 선왕께서 깊이 근심하신 것이고, 자성께서 처치하기 어려워하신 것이 성명(聖明)께서 교훈(敎訓)을 받은 것이며, 미신(微臣)이 전석(前席)에서 일찍이 선처하시기를 청한 것이었습니다. 집으로부터 조정(朝廷)에까지 관계되는 것이 지극히 중대하므로, 김일제(金日磾)219) 의 절의(節義)는 후세에서 칭찬하고, 사문(沙門)이 계율을 범하는 것은 중들도 부끄러워하는데, 각전(各殿)의 홍수(紅袖)220) 로 하여금 자식이 있는 사람이 되게까지 하였음에도 금지하지 못하였으니, 전하의 가법(家法)을 손상한 것이 어떠하며, 또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은혜를 미루어 법을 베푸시고, 일찍 결단하여 적당히 처치하셔서 마음을 경동(驚動)하여 욕심을 참고 행실을 고쳐서 스스로 새로워지게 하시면, 금중이 맑아지고 국가가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허적이 보고 나서 말하기를,
"수릉관(守陵官)에게 공급하는 것은 신이 전일에 이미 우대(優待)해야 한다는 뜻을 아뢰었으나, 탁지(度支)221) 에서 경비를 염려하여 이렇게 줄였는데, 차자(箚子)의 말이 매우 옳으니, 예전대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증모(曾母) 이하의 운운한 말은 청풍(淸風)이 반드시 들은 말이 있겠으나, 신은 까마득히 들은 것이 없습니다."
하고, 승지(承旨) 정중휘(鄭重徽)가 말하기를,
"이것은 외신(外臣)이 들어서 알아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삼천(三遷)의 가르침이 이간하는 말을 가져왔다는 것은 전하께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신은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마는, 오직 성효(誠孝)의 도리를 다하시기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복평(福平)의 일로 말하면, 지극히 놀랍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러한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이 차자의 말을 보면 일이 매우 명백합니다. 전하께서는 친애한다 하여 덮어 두시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미 복평 형제라 하였고, 또 각전의 홍수라 하였으니, 한 사람이 아닐 듯합니다. 유사(有司)에 붙여 법(法)대로 다스려야 하겠는데, 성상께서는 반드시 아실 것이니, 그 상세한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내보낸 궁녀(宮女)이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차자 가운데에 선왕께서 놀라고 근심하신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선조에 있던 일입니다. 선조의 일은 지금에 와서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으나, 다만 골육의 정으로 덮어 두려 하시면 덕은 후하겠습니다마는, 법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 이미 드러났으니, 신들은 법에 따라 죄주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복평 형제중에 살아 있는 자가 세사람인데, 죄를 범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복창(福唱)·복평(福平) 두 사람이라 한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반드시 논계(論啓)하겠으나, 신이 이미 입시(入侍)하였는데, 어찌 대계(臺啓)를 기다리겠습니까? 정(楨)·연(㮒) 등을 나문(拿問)하여 처치하소서."
하니, 임금이 응낙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여인도 같이 죄주어야 마땅하니, 마찬가지로 나문하되, 궁금(宮禁)에 출입하며 나인과 교통하였다는 것을 죄목으로 삼아야 하겠는데, 자식이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하니, 임금이 또 응낙하였다. 정중휘가 정(楨)·연(㮒)과 여인을 나문하라는 전지(傳旨)를 썼다. 이때에 오정위가 부복하여 탄식하였는데, 【오정위는 정·연의 외숙(外叔)이다.】 허적이 먼저 나가서 칙사(勅使)를 접대할 제구를 정돈하게 하니, 오정위가 빨리 나갔다. 허적이 또 말하기를,
"증모(曾母)의 설(說)을 생각하면 망극합니다. 전하께서는 어떠한 생각이 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차자의 사연을 보니 놀랍고 마음 아프기 그지없다".
하였는데, 허적이 말하기를,
"신이 선왕의 신임을 받고 전하의 위임을 받았는데, 잘 보도(輔導)하지 못하여 이런 일이 있게 하였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야 마땅합니다마는, 전하께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오직 정성을 다하고 효도를 다하시면 양궁(兩宮) 사이에 절로 의사(疑似)한 말이 없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5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 [註 217] 재기(再期) : 만2년.
- [註 218] 세 번 이른 참언(讒言)은 자모(慈母)가 북[杼]을 던지게 할 수 있다는 것 : 증자(曾子)가 비(費) 땅에 살 때에 증자와 성명이 같은 자가 사람을 죽였다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증자의 어머니에게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고 알렸으나, 증자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면서 베를 짰음. 그리고 다른 사람이 또 와서 증자의 살인을 알려도 믿지 않았으나, 또 한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니, 증자의 어머니가 북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는 고사(故事). 곧 평소 사람됨을 잘 알면서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나쁜 말로 말하면 자연히 의심하게 된다는 것임.
- [註 219] 김일제(金日磾) : 한대(漢代) 사람. 본래 흉노(凶奴) 휴도왕(休屠王)의 태자로서, 휴도왕은 항복하지 않아서 살해되고, 금일제는 잡혀서 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그의 예절이 바르고 용모가 엄숙한 것을 보고 무제(武帝)가 벼슬을 주어 시중 부마 도위(侍中駙馬都尉)가 되었음. 그 후 구경(九卿)의 지위를 지내고 죽을 때까지 수 십 년 동안 조금도 과오가 없었다 함.
- [註 220] 홍수(紅袖) : 궁녀(宮女).
- [註 221] 탁지(度支) : 호조(戶曹).
원문
○許積、吳挺緯請對。 上以淸風府院君 金佑明箚子, 示積, 其箚曰:
國家自祖宗朝以來, 每於國哀之時, 定守陵之官, 待之優厚。 而向聞, 有司之臣過恤經費, 前例需給, 多所奪削云, 臣竊以爲未可也。 夫使价之燕者, 肥馬輕裘, 食前方丈, 不過數月而返, 而猶且爲王事驅馳, 優以賜予, 許以八路之咸助。 何獨於棄墓離親, 茹萊面墨, 日三薦敬, 以及再朞之臣, 遽收其從前例賜之物哉?
又曰:
近日之事, 可爲痛哭者非一二, 而其莫急莫大者有一焉。 夫三至之讒, 能致慈母之投杼, 古亦有之。 孟母三遷之敎, 格於間言, 曾所未聞, 而外間傳播, 無人不言。 以殿下至孝之聖, 以慈聖止慈之仁, 而人言之切迫, 乃至於此, 臣心痛如割, 直欲無生而莫此聞也。 且福平君 㮒之兄弟, 荷孝廟如己出, 先朝若同産之恩, 何可量也? 恩眷之隆, 敬謹寢懈, 出入禁闥, 醜聲聞外。 此乃先王之所深憂, 慈聖之所難處, 聖明之所承敎, 微臣之請早善處於前席者也。 由家以及朝廷, 關係至重, 日磾節義, 後世稱美。 沙門犯戒, 僧徒猶恥, 使各殿紅袖, 至爲有子之人, 而莫之禁遏, 則其傷壞殿下家法爲如何, 而亦何以爲國乎? 伏乞聖明, 推恩施法, 早決量處, 使得動心忍性, 改行自新, 則宮闈肅淸, 國家幸甚。
積看訖曰: "守陵官供給, 臣於前日, 旣陳優待之意, 而度支以經費爲慮, 有此裁損。 箚言甚是, 宜令復舊。 曾母以下云云之說, 淸風必有所聞之語, 臣則邈然無聞。" 承旨鄭重徽曰: "此非外臣所可聞知之事也。" 積曰: "三遷之敎, 格於間言, 殿下安有此事? 臣不知所達。 唯在盡誠孝之道而已。 至於福平之事, 極可驚駭。" 上曰: "意者, 有如此之事矣。" 積曰: "觀此箚語, 事甚明白, 殿下不宜以親愛而掩覆之。 旣曰福平兄弟, 又云各殿紅袖, 則似非一人。 當付有司, 依法治之, 而自上必知之, 請得其詳。" 上曰: "此乃放黜宮女也。" 積曰: "箚中以先王所駭憂爲言, 此乃事在先朝也。 先朝之事, 到今有不敢言, 而徒以骨肉之情, 欲掩覆之, 德則厚矣, 法不當如是。 今已彰著, 臣等當據法請罪。 福平兄弟存者三人, 未知犯罪者誰也?" 上曰: "福昌、福平兩人云矣。" 積曰: "臺諫必將論啓, 而臣旣入侍, 何待臺啓? 請楨、㮒等拿問處之?" 上唯唯。 積曰: "女人亦當同罪, 宜一體拿問。 以出入宮禁交通內人爲其問目, 而有子之說是乎?" 上又唯唯。 重徽書楨、㮒及女人拿問傳旨。 是時, 挺緯伏噓唏, 【乃楨、㮒內舅也。】 積令先出, 以治勑使接待之具。 挺緯趨出, 積又曰: "曾母之說, 思之罔極。 殿下當作何如懷耶?" 上曰: "見此箚辭, 驚痛曷極?" 積曰: "臣受先王信任, 蒙殿下倚毗, 而不善輔導, 致有此事, 則臣罪萬死。 第殿下寧有此事乎? 唯當盡誠盡孝, 則兩宮之間, 自無疑似之言矣。"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5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숙종실록3권, 숙종 1년 3월 12일 庚午 2/3 기사 /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청풍부원군 김우명이 유사의 신하의 경비를 삭감한 일과 복평·복창군 형제의 일을 올린 차자
국역
허적(許積)·오정위(吳挺緯)가 청대(請對)하였다. 임금이 청풍 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의 차자(箚子)를 허적에게 보였는데, 그 차자에 이르기를,
"국가에서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국상(國喪)이 있을 때마다 수릉(守陵)하는 관원을 정하여 후하게 대우하였는데, 지난번에 듣건대, 유사(有司)의 신하가 경비를 지나치게 염려하여 전에 의례 대어 주던 것에서 깎은 것이 많다 하니, 신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저 연경(燕京)에 사신으로 가는 자는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며, 두어 달이 넘지 않아서 돌아오는데도 왕사(王事)를 위해 분주히 다닌다 하여 넉넉하게 내려 주고 팔도에서도 모두 돕도록 하는데, 어찌하여 조상의 무덤을 버려두고 어버이를 떠나서 채소만 먹고 낯을 씻지 않고 날마다 세 번 공경을 드리면서 재기(再期)217) 를 지내는 신하에게만은 전부터 으레 내리던 물건을 문득 거두십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근일의 일 중에 통곡할 만한 것이 한 둘이 아니나, 그 중에서도 더욱 급하고 중대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저 세 번 이른 참언(讒言)은 자모(慈母)가 북[杼]을 던지게 할 수 있다는 것218) 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맹모 삼천(孟母三遷)의 가르침이 이간하는 말을 가져 온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는데, 밖에서 전파되어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하의 지극히 효성한 성명(聖明)과 자성(慈聖)의 지극히 자상한 인애(仁愛)로서도 남의 말이 이렇게까지 박절하니, 신은 마음이 에이는 듯이 아파서 곧 살고 싶지도 않고, 이러한 말을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또 복평군(福平君) 이연(李㮒)의 형제가 효종께 친아들과 같은 은혜를 받고, 선조(先朝)에서도 동기와 같은 은혜를 입은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은총이 융숭하면 공경하고 삼가는 것이 점점 게을러지고, 금중(禁中)에 출입하면 추악한 소문이 밖에 들리는데, 이것이 곧 선왕께서 깊이 근심하신 것이고, 자성께서 처치하기 어려워하신 것이 성명(聖明)께서 교훈(敎訓)을 받은 것이며, 미신(微臣)이 전석(前席)에서 일찍이 선처하시기를 청한 것이었습니다. 집으로부터 조정(朝廷)에까지 관계되는 것이 지극히 중대하므로, 김일제(金日磾)219) 의 절의(節義)는 후세에서 칭찬하고, 사문(沙門)이 계율을 범하는 것은 중들도 부끄러워하는데, 각전(各殿)의 홍수(紅袖)220) 로 하여금 자식이 있는 사람이 되게까지 하였음에도 금지하지 못하였으니, 전하의 가법(家法)을 손상한 것이 어떠하며, 또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은혜를 미루어 법을 베푸시고, 일찍 결단하여 적당히 처치하셔서 마음을 경동(驚動)하여 욕심을 참고 행실을 고쳐서 스스로 새로워지게 하시면, 금중이 맑아지고 국가가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허적이 보고 나서 말하기를,
"수릉관(守陵官)에게 공급하는 것은 신이 전일에 이미 우대(優待)해야 한다는 뜻을 아뢰었으나, 탁지(度支)221) 에서 경비를 염려하여 이렇게 줄였는데, 차자(箚子)의 말이 매우 옳으니, 예전대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증모(曾母) 이하의 운운한 말은 청풍(淸風)이 반드시 들은 말이 있겠으나, 신은 까마득히 들은 것이 없습니다."
하고, 승지(承旨) 정중휘(鄭重徽)가 말하기를,
"이것은 외신(外臣)이 들어서 알아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삼천(三遷)의 가르침이 이간하는 말을 가져왔다는 것은 전하께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신은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마는, 오직 성효(誠孝)의 도리를 다하시기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복평(福平)의 일로 말하면, 지극히 놀랍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러한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이 차자의 말을 보면 일이 매우 명백합니다. 전하께서는 친애한다 하여 덮어 두시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미 복평 형제라 하였고, 또 각전의 홍수라 하였으니, 한 사람이 아닐 듯합니다. 유사(有司)에 붙여 법(法)대로 다스려야 하겠는데, 성상께서는 반드시 아실 것이니, 그 상세한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내보낸 궁녀(宮女)이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차자 가운데에 선왕께서 놀라고 근심하신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선조에 있던 일입니다. 선조의 일은 지금에 와서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으나, 다만 골육의 정으로 덮어 두려 하시면 덕은 후하겠습니다마는, 법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 이미 드러났으니, 신들은 법에 따라 죄주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복평 형제중에 살아 있는 자가 세사람인데, 죄를 범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복창(福唱)·복평(福平) 두 사람이라 한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반드시 논계(論啓)하겠으나, 신이 이미 입시(入侍)하였는데, 어찌 대계(臺啓)를 기다리겠습니까? 정(楨)·연(㮒) 등을 나문(拿問)하여 처치하소서."
하니, 임금이 응낙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여인도 같이 죄주어야 마땅하니, 마찬가지로 나문하되, 궁금(宮禁)에 출입하며 나인과 교통하였다는 것을 죄목으로 삼아야 하겠는데, 자식이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하니, 임금이 또 응낙하였다. 정중휘가 정(楨)·연(㮒)과 여인을 나문하라는 전지(傳旨)를 썼다. 이때에 오정위가 부복하여 탄식하였는데, 【오정위는 정·연의 외숙(外叔)이다.】 허적이 먼저 나가서 칙사(勅使)를 접대할 제구를 정돈하게 하니, 오정위가 빨리 나갔다. 허적이 또 말하기를,
"증모(曾母)의 설(說)을 생각하면 망극합니다. 전하께서는 어떠한 생각이 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차자의 사연을 보니 놀랍고 마음 아프기 그지없다".
하였는데, 허적이 말하기를,
"신이 선왕의 신임을 받고 전하의 위임을 받았는데, 잘 보도(輔導)하지 못하여 이런 일이 있게 하였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야 마땅합니다마는, 전하께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오직 정성을 다하고 효도를 다하시면 양궁(兩宮) 사이에 절로 의사(疑似)한 말이 없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5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 [註 217] 재기(再期) : 만2년.
- [註 218] 세 번 이른 참언(讒言)은 자모(慈母)가 북[杼]을 던지게 할 수 있다는 것 : 증자(曾子)가 비(費) 땅에 살 때에 증자와 성명이 같은 자가 사람을 죽였다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증자의 어머니에게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고 알렸으나, 증자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면서 베를 짰음. 그리고 다른 사람이 또 와서 증자의 살인을 알려도 믿지 않았으나, 또 한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니, 증자의 어머니가 북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는 고사(故事). 곧 평소 사람됨을 잘 알면서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나쁜 말로 말하면 자연히 의심하게 된다는 것임.
- [註 219] 김일제(金日磾) : 한대(漢代) 사람. 본래 흉노(凶奴) 휴도왕(休屠王)의 태자로서, 휴도왕은 항복하지 않아서 살해되고, 금일제는 잡혀서 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그의 예절이 바르고 용모가 엄숙한 것을 보고 무제(武帝)가 벼슬을 주어 시중 부마 도위(侍中駙馬都尉)가 되었음. 그 후 구경(九卿)의 지위를 지내고 죽을 때까지 수 십 년 동안 조금도 과오가 없었다 함.
- [註 220] 홍수(紅袖) : 궁녀(宮女).
- [註 221] 탁지(度支) : 호조(戶曹).
원문
○許積、吳挺緯請對。 上以淸風府院君 金佑明箚子, 示積, 其箚曰:
國家自祖宗朝以來, 每於國哀之時, 定守陵之官, 待之優厚。 而向聞, 有司之臣過恤經費, 前例需給, 多所奪削云, 臣竊以爲未可也。 夫使价之燕者, 肥馬輕裘, 食前方丈, 不過數月而返, 而猶且爲王事驅馳, 優以賜予, 許以八路之咸助。 何獨於棄墓離親, 茹萊面墨, 日三薦敬, 以及再朞之臣, 遽收其從前例賜之物哉?
又曰:
近日之事, 可爲痛哭者非一二, 而其莫急莫大者有一焉。 夫三至之讒, 能致慈母之投杼, 古亦有之。 孟母三遷之敎, 格於間言, 曾所未聞, 而外間傳播, 無人不言。 以殿下至孝之聖, 以慈聖止慈之仁, 而人言之切迫, 乃至於此, 臣心痛如割, 直欲無生而莫此聞也。 且福平君 㮒之兄弟, 荷孝廟如己出, 先朝若同産之恩, 何可量也? 恩眷之隆, 敬謹寢懈, 出入禁闥, 醜聲聞外。 此乃先王之所深憂, 慈聖之所難處, 聖明之所承敎, 微臣之請早善處於前席者也。 由家以及朝廷, 關係至重, 日磾節義, 後世稱美。 沙門犯戒, 僧徒猶恥, 使各殿紅袖, 至爲有子之人, 而莫之禁遏, 則其傷壞殿下家法爲如何, 而亦何以爲國乎? 伏乞聖明, 推恩施法, 早決量處, 使得動心忍性, 改行自新, 則宮闈肅淸, 國家幸甚。
積看訖曰: "守陵官供給, 臣於前日, 旣陳優待之意, 而度支以經費爲慮, 有此裁損。 箚言甚是, 宜令復舊。 曾母以下云云之說, 淸風必有所聞之語, 臣則邈然無聞。" 承旨鄭重徽曰: "此非外臣所可聞知之事也。" 積曰: "三遷之敎, 格於間言, 殿下安有此事? 臣不知所達。 唯在盡誠孝之道而已。 至於福平之事, 極可驚駭。" 上曰: "意者, 有如此之事矣。" 積曰: "觀此箚語, 事甚明白, 殿下不宜以親愛而掩覆之。 旣曰福平兄弟, 又云各殿紅袖, 則似非一人。 當付有司, 依法治之, 而自上必知之, 請得其詳。" 上曰: "此乃放黜宮女也。" 積曰: "箚中以先王所駭憂爲言, 此乃事在先朝也。 先朝之事, 到今有不敢言, 而徒以骨肉之情, 欲掩覆之, 德則厚矣, 法不當如是。 今已彰著, 臣等當據法請罪。 福平兄弟存者三人, 未知犯罪者誰也?" 上曰: "福昌、福平兩人云矣。" 積曰: "臺諫必將論啓, 而臣旣入侍, 何待臺啓? 請楨、㮒等拿問處之?" 上唯唯。 積曰: "女人亦當同罪, 宜一體拿問。 以出入宮禁交通內人爲其問目, 而有子之說是乎?" 上又唯唯。 重徽書楨、㮒及女人拿問傳旨。 是時, 挺緯伏噓唏, 【乃楨、㮒內舅也。】 積令先出, 以治勑使接待之具。 挺緯趨出, 積又曰: "曾母之說, 思之罔極。 殿下當作何如懷耶?" 上曰: "見此箚辭, 驚痛曷極?" 積曰: "臣受先王信任, 蒙殿下倚毗, 而不善輔導, 致有此事, 則臣罪萬死。 第殿下寧有此事乎? 唯當盡誠盡孝, 則兩宮之間, 自無疑似之言矣。"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5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