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개수실록22권, 현종 11년 7월 12일 丙寅 2/4 기사 / 1670년 청 강희(康熙) 9년
제주 목사 노정이 표류한 한인의 일을 비밀히 치계하다
국역
제주 목사 노정(盧錠)이 비밀히 치계하기를,
"5월 25일 표류한 한인(漢人) 심삼(沈三)·곽십(郭十)·채룡(蔡龍)·양인(楊仁) 등 머리를 깎은 자 22명과 머리를 깎지 않은 자 43명이, 중국 옷을 입거나 혹은 오랑캐 옷, 혹은 왜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정의현(旌義縣) 경내에 도착하여 배가 파손되었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본래명나라 광동(廣東)·복건(福建)·절강(浙江) 등지의 사람들로, 청나라가 남경(南京)을 차지한 뒤에 광동 등 여러 성(省)이 청나라에 복속되었으므로 바다 밖 향산도(香山島)에 도망나와 장사하면서 살아왔다. 5월 1일 향산도에서 배를 출발시켜 일본의 장기(長崎)로 향해 가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되어 이곳에 도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향산도가 지금 어느 성(省)에 속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향오(香澳)는 광동의 바다 밖 큰 산인데 청려국(靑黎國)에 인접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관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본래 남만(南蠻)의 땅으로 남만 사람 갑필단(甲必丹)이 주관하였다. 그 뒤 점점 약해졌으므로 명나라의 유민들이 많이 들어가 살았는데, 대번국(大樊國)에서 유격(游擊) 가귀(柯貴)를 보내어 주관하게 하였다. 대번국은 정금사(鄭錦舍)가 주관하는 곳이다. 융무(隆武) 때에 정성공(鄭成功)이라는 자에게 국성(國姓)을 하사하고 진국 대장군(鎭國大將軍)에 봉하여 청나라 군사와 싸우게 하였는데 청인이 여러 번 패하였다. 얼마 안 되어 그가 죽자 그의 아들 금사(錦舍)가 계승하여 인덕 장군(仁德將軍)에 봉해졌는데, 대번국에 도망해 들어갔다. 그 무리가 수십만 명이 있었다. 그 땅은 복건성(福建省) 바다 밖 천여 리에 있다. 영력군(永曆君)은 지금 귀주(貴州)에 있는데 귀주는 옛 촉(蜀) 땅이다.’ 하고, 또 ‘우리들은 여러 나라로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으므로 머리를 깎기도 하고 혹은 깎지 않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이어 장기로 가기를 원하였으므로, 신이 배를 차비시켜 돌려보냈습니다."
하였다.
원문
○濟州牧使盧錠秘密馳啓曰: "五月二十五日, 漂漢人 沈三、郭十、蔡龍、楊仁等剃頭者二十二人、不剃頭者四十三人, 所着衣服或華制、或胡制、或倭制, 到旌義境敗船。 自言本以大明 廣東、福建、浙江等地人。 淸人旣得南京之後, 廣東等諸省, 服屬於淸, 故逃出海外香山島, 興販資生。 五月初一日, 自香山登船, 將向日本 長崎, 遇颶風漂到於此云。 問: ‘香山島今屬何省?’ 答曰: ‘香澳乃廣東海外之大山, 靑黎國之隣界。’ 問: ‘何人主管?’ 則答曰: ‘本南蠻地, 蠻人甲必丹主之。 其後寢弱, 故明之遣民多入居之。 大樊國遣游擊柯貴主之。 大樊國乃鄭錦舍所主也。 隆武時, 有鄭成功者, 賜國姓, 封鎭國大將軍, 與淸兵戰, 淸人累敗。 未幾死, 其子錦舍繼封仁德將軍, 逃入大樊, 有衆數十萬。 其地在福建海外, 方千餘里。 永曆君時在貴州, 故蜀地云。’ 又曰: ‘俺等以行商諸國, 故或剃頭, 或不剃頭耳。’ 仍願往長崎, 臣裝船還送矣。"
현종개수실록22권, 현종 11년 7월 12일 丙寅 2/4 기사 / 1670년 청 강희(康熙) 9년
제주 목사 노정이 표류한 한인의 일을 비밀히 치계하다
국역
제주 목사 노정(盧錠)이 비밀히 치계하기를,
"5월 25일 표류한 한인(漢人) 심삼(沈三)·곽십(郭十)·채룡(蔡龍)·양인(楊仁) 등 머리를 깎은 자 22명과 머리를 깎지 않은 자 43명이, 중국 옷을 입거나 혹은 오랑캐 옷, 혹은 왜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정의현(旌義縣) 경내에 도착하여 배가 파손되었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본래명나라 광동(廣東)·복건(福建)·절강(浙江) 등지의 사람들로, 청나라가 남경(南京)을 차지한 뒤에 광동 등 여러 성(省)이 청나라에 복속되었으므로 바다 밖 향산도(香山島)에 도망나와 장사하면서 살아왔다. 5월 1일 향산도에서 배를 출발시켜 일본의 장기(長崎)로 향해 가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되어 이곳에 도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향산도가 지금 어느 성(省)에 속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향오(香澳)는 광동의 바다 밖 큰 산인데 청려국(靑黎國)에 인접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관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본래 남만(南蠻)의 땅으로 남만 사람 갑필단(甲必丹)이 주관하였다. 그 뒤 점점 약해졌으므로 명나라의 유민들이 많이 들어가 살았는데, 대번국(大樊國)에서 유격(游擊) 가귀(柯貴)를 보내어 주관하게 하였다. 대번국은 정금사(鄭錦舍)가 주관하는 곳이다. 융무(隆武) 때에 정성공(鄭成功)이라는 자에게 국성(國姓)을 하사하고 진국 대장군(鎭國大將軍)에 봉하여 청나라 군사와 싸우게 하였는데 청인이 여러 번 패하였다. 얼마 안 되어 그가 죽자 그의 아들 금사(錦舍)가 계승하여 인덕 장군(仁德將軍)에 봉해졌는데, 대번국에 도망해 들어갔다. 그 무리가 수십만 명이 있었다. 그 땅은 복건성(福建省) 바다 밖 천여 리에 있다. 영력군(永曆君)은 지금 귀주(貴州)에 있는데 귀주는 옛 촉(蜀) 땅이다.’ 하고, 또 ‘우리들은 여러 나라로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으므로 머리를 깎기도 하고 혹은 깎지 않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이어 장기로 가기를 원하였으므로, 신이 배를 차비시켜 돌려보냈습니다."
하였다.
원문
○濟州牧使盧錠秘密馳啓曰: "五月二十五日, 漂漢人 沈三、郭十、蔡龍、楊仁等剃頭者二十二人、不剃頭者四十三人, 所着衣服或華制、或胡制、或倭制, 到旌義境敗船。 自言本以大明 廣東、福建、浙江等地人。 淸人旣得南京之後, 廣東等諸省, 服屬於淸, 故逃出海外香山島, 興販資生。 五月初一日, 自香山登船, 將向日本 長崎, 遇颶風漂到於此云。 問: ‘香山島今屬何省?’ 答曰: ‘香澳乃廣東海外之大山, 靑黎國之隣界。’ 問: ‘何人主管?’ 則答曰: ‘本南蠻地, 蠻人甲必丹主之。 其後寢弱, 故明之遣民多入居之。 大樊國遣游擊柯貴主之。 大樊國乃鄭錦舍所主也。 隆武時, 有鄭成功者, 賜國姓, 封鎭國大將軍, 與淸兵戰, 淸人累敗。 未幾死, 其子錦舍繼封仁德將軍, 逃入大樊, 有衆數十萬。 其地在福建海外, 方千餘里。 永曆君時在貴州, 故蜀地云。’ 又曰: ‘俺等以行商諸國, 故或剃頭, 或不剃頭耳。’ 仍願往長崎, 臣裝船還送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