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개수실록18권, 현종 8년 8월 7일 己卯 4/5 기사 / 1667년 청 강희(康熙) 6년
포로로 잡혀 간 자의 자손은 개가한 자의 자손과 차이를 두도록 하다
국역
정원이 아뢰기를,
"《대전(大典)》에 실린 ‘개가한 자의 자손은 동서반의 정직(正職)에 서용하지 않는다.’ 한 것은, 대개 예의로 풍속을 교화하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간 것은 개가한 것과 똑같이 커다란 허물인데, 자손을 벼슬길에 허통시킴에 있어 하나는 허락하고 하나는 허락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혼하고 다시 장가드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선조(先朝)의 성명(成命)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허통시키는 것은 또 옛 법전에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곧장 해당 부서에 분부하여 정식으로 삼아 거행하게 한다면, 비록 청현직에는 허통시키지 않는다고 하지만 듣고 보는 사람들이 반드시 의아해 할 것입니다. 하교한 내용으로 다시 대신들에게 물어서 가부를 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임진년 이후 선조조에서 시행한 규례가 있으니 이것은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대들의 아룀이 이와 같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품의해 처리하라."
하였다. 영중추부사 이경석은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것은 개가한 것과 차이가 있으므로, 임진년과 병자년 난리 뒤에 별도로 법을 세워 금고시킨 일이 없었습니다. 대간이 논한 바는 지나치게 과격한 듯합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정태화는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부녀는 그 본정을 따져보면 개가한 자와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절개를 잃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미 출처(出妻)를 하여 그 자식이 계모를 어미로 삼고 있는 경우에는 허물이 미치는 경중이 혹 차이가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로 삼을 만한 예율(禮律)에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신이 감히 억측하여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영의정 홍명하는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것이 개가한 것과 차이가 있는 듯하나 오십보 백보에 불과하니, 그 자손들이 허물을 지고 있음은 이를 미루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다만 포로로 잡혀갔던 여자들의 자손이 과거에 응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정의 금령(禁令)이 없는데, 음사(蔭仕)에 대해서만 유독 허락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신은 모르겠습니다."
하고, 우의정 정치화는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것은 개가한 것과 똑같이 절개를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출모(出母)022) 의 자식으로서 계모를 어미로 삼고 있는 경우에는 허물이 미쳐감에 있어서 구별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경석의 의논에 의거해서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 [註 022] 출모(出母) : 아버지와 이혼한 생모(生母).
원문
○政院啓: "《大典》所載改嫁子孫, 勿敍東西班正職者, 蓋出於以禮導俗之意也。 被擄與改嫁, 均是大累, 則子孫通仕, 一許一否, 宜無是理。 況離異改娶, 旣有先朝成命, 仕路之通, 又無舊典可據。 今若直爲分付於該曹, 定式擧行, 則雖曰不許淸顯, 而凡在聽聞, 將必致駭。 宜以〔下〕 敎之意, 更詢大臣, 定其可否矣。" 上答曰: "旣有壬辰後宣廟朝已行之規, 此非難知之事。 而爾等之啓如是, 議于大臣稟處。" 領中樞李景奭以爲: "被擄與改嫁, 不無差別, 故壬辰、丙子兩亂之後, 別無設法禁錮之事。 臺諫所論, 似涉太激。" 判中樞鄭太和以爲: "被擄婦女, 原其情, 則雖與改嫁者有異, 而其爲失節, 則一也。 但旣爲出妻, 其子母其繼母, 則累及輕重, 容或有差。 而此非見出於禮律可證之文, 臣不敢臆斷。" 領議政洪命夏以爲: "被擄與改嫁, 雖似有差, 不過五十步百步之間, 子孫之負累推此可知。 但被擄女子孫之赴擧, 朝家旣無禁令, 則獨不許蔭仕, 臣未知其可也。" 右議政鄭致和以爲: "被擄與改嫁, 均是失節。 而以出母之子, 母其繼母, 則延及之累, 似當有區別。" 上命依景奭議行之。
현종개수실록18권, 현종 8년 8월 7일 己卯 4/5 기사 / 1667년 청 강희(康熙) 6년
포로로 잡혀 간 자의 자손은 개가한 자의 자손과 차이를 두도록 하다
국역
정원이 아뢰기를,
"《대전(大典)》에 실린 ‘개가한 자의 자손은 동서반의 정직(正職)에 서용하지 않는다.’ 한 것은, 대개 예의로 풍속을 교화하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간 것은 개가한 것과 똑같이 커다란 허물인데, 자손을 벼슬길에 허통시킴에 있어 하나는 허락하고 하나는 허락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혼하고 다시 장가드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선조(先朝)의 성명(成命)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허통시키는 것은 또 옛 법전에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곧장 해당 부서에 분부하여 정식으로 삼아 거행하게 한다면, 비록 청현직에는 허통시키지 않는다고 하지만 듣고 보는 사람들이 반드시 의아해 할 것입니다. 하교한 내용으로 다시 대신들에게 물어서 가부를 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임진년 이후 선조조에서 시행한 규례가 있으니 이것은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대들의 아룀이 이와 같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품의해 처리하라."
하였다. 영중추부사 이경석은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것은 개가한 것과 차이가 있으므로, 임진년과 병자년 난리 뒤에 별도로 법을 세워 금고시킨 일이 없었습니다. 대간이 논한 바는 지나치게 과격한 듯합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정태화는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부녀는 그 본정을 따져보면 개가한 자와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절개를 잃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미 출처(出妻)를 하여 그 자식이 계모를 어미로 삼고 있는 경우에는 허물이 미치는 경중이 혹 차이가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로 삼을 만한 예율(禮律)에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신이 감히 억측하여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영의정 홍명하는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것이 개가한 것과 차이가 있는 듯하나 오십보 백보에 불과하니, 그 자손들이 허물을 지고 있음은 이를 미루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다만 포로로 잡혀갔던 여자들의 자손이 과거에 응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정의 금령(禁令)이 없는데, 음사(蔭仕)에 대해서만 유독 허락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신은 모르겠습니다."
하고, 우의정 정치화는 아뢰기를,
"포로로 잡혀간 것은 개가한 것과 똑같이 절개를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출모(出母)022) 의 자식으로서 계모를 어미로 삼고 있는 경우에는 허물이 미쳐감에 있어서 구별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경석의 의논에 의거해서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 [註 022] 출모(出母) : 아버지와 이혼한 생모(生母).
원문
○政院啓: "《大典》所載改嫁子孫, 勿敍東西班正職者, 蓋出於以禮導俗之意也。 被擄與改嫁, 均是大累, 則子孫通仕, 一許一否, 宜無是理。 況離異改娶, 旣有先朝成命, 仕路之通, 又無舊典可據。 今若直爲分付於該曹, 定式擧行, 則雖曰不許淸顯, 而凡在聽聞, 將必致駭。 宜以〔下〕 敎之意, 更詢大臣, 定其可否矣。" 上答曰: "旣有壬辰後宣廟朝已行之規, 此非難知之事。 而爾等之啓如是, 議于大臣稟處。" 領中樞李景奭以爲: "被擄與改嫁, 不無差別, 故壬辰、丙子兩亂之後, 別無設法禁錮之事。 臺諫所論, 似涉太激。" 判中樞鄭太和以爲: "被擄婦女, 原其情, 則雖與改嫁者有異, 而其爲失節, 則一也。 但旣爲出妻, 其子母其繼母, 則累及輕重, 容或有差。 而此非見出於禮律可證之文, 臣不敢臆斷。" 領議政洪命夏以爲: "被擄與改嫁, 雖似有差, 不過五十步百步之間, 子孫之負累推此可知。 但被擄女子孫之赴擧, 朝家旣無禁令, 則獨不許蔭仕, 臣未知其可也。" 右議政鄭致和以爲: "被擄與改嫁, 均是失節。 而以出母之子, 母其繼母, 則延及之累, 似當有區別。" 上命依景奭議行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