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20권, 현종 13년 3월 6일 壬子 1/1 기사 / 1672년 청 강희(康熙) 11년
재해에 대해 하교하다
국역
상이 하교하였다.
"천하에 국가가 있은 이래로 기근이 없는 시대가 있었겠는가마는 어찌 오늘날처럼 참혹한 적이 있었겠는가. 지난 역사에서 찾아보아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아, 내가 덕이 박하고 재주가 둔한 자질로 왕위에 있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하늘이 기뻐하지 않아 재이가 거듭 나타나고 수재·한재·풍재(風災)·상재(霜災) 등 천지의 변괴가 없는 해가 없었다. 그런데도 어리석고 혼미하여 하늘의 견책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였기에 크게 노하여 경술년과 신해년의 망극한 기근과 돌림병을 내려 우리 동방의 수천리 억만 백성들로 하여금 길거리에 죽어 넘어져 쌓인 시체가 서로 겹치고 성시(城市)와 촌락(村落)이 거의 다 비어 버렸다. 백성의 부모된 자로서 이 참혹한 재앙을 보니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으나 단지 스스로 슬피 울먹이면서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며 사경에 놓인 만백성의 생명을 이 몸으로 대신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 이게 무슨 때이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인리(人理)가 모두 사라져 어미와 자식이 서로 버리는 등 윤기의 변괴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니 맹자(孟子)가 이른바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이 뿔뿔이 흩어진다.’는 말은 오늘에 비하면 오히려 나은 것 같다. 국가의 일이 이미 백척 간두에 이르러 내를 건너는데 끝이 보이지 않고 사나운 파도 속에 배가 새는 것으로도 그 위태로움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다. 진휼의 정사가 한창 급한데도 국가의 곡식이 매우 적으니, 장차 어떻게 구제하여 살려낸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하다.
아, 마침 발육하는 따뜻한 봄의 시기를 만나 만물이 모두 살아나는데, 오직 우리 백성들만 유독 무슨 죄가 있기에 이처럼 망극한 재난에 시달리고 있단 말인가? 애통한 마음이 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생각건대, 덕이 부족하고 몽매한 나의 과실 중에 말할 만한 점이 많을 것이며, 국사에 이익되는 점과 해가 되는 것 중에 말할 만한 점이 많을 것이며, 백성을 구제하는 계책에도 말할 만한 점이 많을 것으로 여긴다. 그러니 승지는 나를 대신해 교서를 초안하여 널리 직언(直言)을 구해 시국의 어려움을 구제하도록 하라.
그리고 인재를 뽑아 등용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릴 때 첫번째의 일이다. 그러므로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평상시의 규례에 구애하지 말고 각기 재주와 국량이 넉넉한 사람을 전조에 보내 재주에 따라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수십 년 동안 등용되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으니, 국가에서 사람을 쓰는 도리로 볼 때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 역시 전조로 하여금 일체 거두어 쓰도록 하라. 아, 오늘날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너희 대소 신료와 서민들은, 각기 품은 생각을 말하여 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도록 하라."
원문
○壬子/上, 下敎曰: "自有天下國家以來, 饑饉凶荒, 何代無之, 豈有如今日之慘者哉? 求之往牒, 亦所未聞。 噫! 予以涼德否才, 忝位久矣。 天心未豫, 災異疊見, 水旱風霜, 天地變怪, 無歲無之。 而狂愚昏迷, 未答天譴, 威怒赫然, 降此庚辛罔極之饑饉癘疫, 使我東土數千里億萬蒼生, 顚連道路, 積尸相枕, 城市、村落, 殆乎空虛。 爲民父母, 見此酷禍, 中心如割, 只自痛泣, 仰呼蒼穹, 願以身代, 萬民倒懸之命而已矣。 嗚呼! 此何等時, 此何景象耶? 人理都盡, 母子相棄, 倫紀之變累出, 孟子所謂, 父子不相保, 妻子離散云者, 比今日, 亦似歇後。 國事已至百尺竿頭, 涉川無涯, 驚濤漏舟, 未足以喩其危。 賑政方急, 而國穀甚尠, 將何以救活? 言念及此, 不如無生。 噫! 正當陽春發育之時, 萬物咸生, 惟我赤子, 獨何罪辜, 罹此罔極之災? 哀痛蹙迫, 不知攸爲也。 第念寡昧之過失, 可言者多矣, 國事之利病, 可言者多矣, 生民捄活之策, 可言者多矣。 承旨代予草敎, 廣求直言, 以濟時艱。 且人材甄拔, 爲國之第一件事。 宜令道臣, 勿如常年之例, 各擧才局有裕之人, 以付銓曹, 隨才調用。 且數十年未見調用者, 亦多有之, 揆以國家用人之道, 殊甚不當。 亦令銓曹, 一體收用。 嗚呼! 今日之事, 到此地頭, 咨爾大小臣僚、庶民, 各陳所懷, 以補予不逮。"
현종 13년 (1672) 3월 6일
현종실록20권, 현종 13년 3월 6일 壬子 1/1 기사 / 1672년 청 강희(康熙) 11년
재해에 대해 하교하다
국역
상이 하교하였다.
"천하에 국가가 있은 이래로 기근이 없는 시대가 있었겠는가마는 어찌 오늘날처럼 참혹한 적이 있었겠는가. 지난 역사에서 찾아보아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아, 내가 덕이 박하고 재주가 둔한 자질로 왕위에 있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하늘이 기뻐하지 않아 재이가 거듭 나타나고 수재·한재·풍재(風災)·상재(霜災) 등 천지의 변괴가 없는 해가 없었다. 그런데도 어리석고 혼미하여 하늘의 견책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였기에 크게 노하여 경술년과 신해년의 망극한 기근과 돌림병을 내려 우리 동방의 수천리 억만 백성들로 하여금 길거리에 죽어 넘어져 쌓인 시체가 서로 겹치고 성시(城市)와 촌락(村落)이 거의 다 비어 버렸다. 백성의 부모된 자로서 이 참혹한 재앙을 보니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으나 단지 스스로 슬피 울먹이면서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며 사경에 놓인 만백성의 생명을 이 몸으로 대신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 이게 무슨 때이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인리(人理)가 모두 사라져 어미와 자식이 서로 버리는 등 윤기의 변괴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니 맹자(孟子)가 이른바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이 뿔뿔이 흩어진다.’는 말은 오늘에 비하면 오히려 나은 것 같다. 국가의 일이 이미 백척 간두에 이르러 내를 건너는데 끝이 보이지 않고 사나운 파도 속에 배가 새는 것으로도 그 위태로움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다. 진휼의 정사가 한창 급한데도 국가의 곡식이 매우 적으니, 장차 어떻게 구제하여 살려낸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하다.
아, 마침 발육하는 따뜻한 봄의 시기를 만나 만물이 모두 살아나는데, 오직 우리 백성들만 유독 무슨 죄가 있기에 이처럼 망극한 재난에 시달리고 있단 말인가? 애통한 마음이 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생각건대, 덕이 부족하고 몽매한 나의 과실 중에 말할 만한 점이 많을 것이며, 국사에 이익되는 점과 해가 되는 것 중에 말할 만한 점이 많을 것이며, 백성을 구제하는 계책에도 말할 만한 점이 많을 것으로 여긴다. 그러니 승지는 나를 대신해 교서를 초안하여 널리 직언(直言)을 구해 시국의 어려움을 구제하도록 하라.
그리고 인재를 뽑아 등용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릴 때 첫번째의 일이다. 그러므로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평상시의 규례에 구애하지 말고 각기 재주와 국량이 넉넉한 사람을 전조에 보내 재주에 따라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수십 년 동안 등용되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으니, 국가에서 사람을 쓰는 도리로 볼 때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 역시 전조로 하여금 일체 거두어 쓰도록 하라. 아, 오늘날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너희 대소 신료와 서민들은, 각기 품은 생각을 말하여 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도록 하라."
원문
○壬子/上, 下敎曰: "自有天下國家以來, 饑饉凶荒, 何代無之, 豈有如今日之慘者哉? 求之往牒, 亦所未聞。 噫! 予以涼德否才, 忝位久矣。 天心未豫, 災異疊見, 水旱風霜, 天地變怪, 無歲無之。 而狂愚昏迷, 未答天譴, 威怒赫然, 降此庚辛罔極之饑饉癘疫, 使我東土數千里億萬蒼生, 顚連道路, 積尸相枕, 城市、村落, 殆乎空虛。 爲民父母, 見此酷禍, 中心如割, 只自痛泣, 仰呼蒼穹, 願以身代, 萬民倒懸之命而已矣。 嗚呼! 此何等時, 此何景象耶? 人理都盡, 母子相棄, 倫紀之變累出, 孟子所謂, 父子不相保, 妻子離散云者, 比今日, 亦似歇後。 國事已至百尺竿頭, 涉川無涯, 驚濤漏舟, 未足以喩其危。 賑政方急, 而國穀甚尠, 將何以救活? 言念及此, 不如無生。 噫! 正當陽春發育之時, 萬物咸生, 惟我赤子, 獨何罪辜, 罹此罔極之災? 哀痛蹙迫, 不知攸爲也。 第念寡昧之過失, 可言者多矣, 國事之利病, 可言者多矣, 生民捄活之策, 可言者多矣。 承旨代予草敎, 廣求直言, 以濟時艱。 且人材甄拔, 爲國之第一件事。 宜令道臣, 勿如常年之例, 各擧才局有裕之人, 以付銓曹, 隨才調用。 且數十年未見調用者, 亦多有之, 揆以國家用人之道, 殊甚不當。 亦令銓曹, 一體收用。 嗚呼! 今日之事, 到此地頭, 咨爾大小臣僚、庶民, 各陳所懷, 以補予不逮。"
원본
현종 13년 (1672) 3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