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19권, 현종 12년 1월 30일 壬午 3/3 기사 / 1671년 청 강희(康熙) 10년
제주 목사 노정이 기근에 대해 치계하다
국역
제주 목사 노정(盧錠)이 치계하기를,
"본도(本島) 세 고을 민생의 일은 이미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백성이 산에 올라가 나무 열매를 줍는데 나무 열매가 이미 다하였고 내려가 들나물을 캐는데 풀뿌리가 이미 떨어졌으므로 마소를 죽여서 배를 채우고 있으며, 무뢰한 자들은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공사간의 마소를 훔쳐서 잡아먹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리하여 서로 사람들끼리 잡아먹을 걱정이 조석에 닥쳤으니 비참한 모양을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8월부터 죽을 장만하여 구제하고 있으나, 창고의 곡식이 이미 다하여 4만여 명의 굶주린 백성을 다시금 구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해안 고을의 소금을 넉넉히 들여 보내소서. 전일 옮겨 온 5천 석의 곡식은 많지 않은 것은 아니나, 1, 2월 두 달의 진휼할 거리도 모자라므로 3, 4월에는 한 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서 진구할 방책을 묘당을 시켜 품처하게 하소서."
하였다. 조정에서 전라도에 있는 호조 소금 5백 석과 상평청(常平廳)·통영(統營) 및 양남(兩南)의 사복시 목장 등의 곡식 7천 석을 획급(劃給)하여 전라 수영의 병선(兵船)으로 실어 보내게 하였다. 그런데, 해로가 멀고 풍파에 오래 막혀서 지난해 초겨울에 부친 장계가 이제야 도착했고 전후로 곡식을 나르는 배도 제때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여 굶어 죽은 섬 백성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87면
원문
○濟州牧使盧錠馳啓曰: "本島三邑民事, 已至十分地頭。大小人民, 上山拾木實, 木實殆盡, 下取野菜, 草根已乏。殺牛馬以充腹, 無賴之徒, 處處結黨, 公私牛馬, 偸取屠殺, 不知其幾。 相食之患, 迫在朝夕, 愁慘之象, 有不忍言。 自八月設粥捄活, 而倉穀已竭, 四萬餘飢民, 更無可濟。 請以沿海邑鹽石, 優數入送。 前日移轉五千石之穀, 不爲不多, 而正二月兩朔賑資猶不足, 三四月, 則無一升餘存。 前頭繼賑之策, 請令廟堂稟處。" 朝廷以全羅道所在戶曹鹽五百石, 常平廳統營及兩南司僕寺牧場等穀, 劃給七千石, 令全羅水營兵船載送。 但海路遼遠。 風波久阻, 上年冬初所封狀啓, 今始來到, 而前後運穀之船, 亦不能及期得達, 以致島民餓死尤多。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87면
현종 12년 (1671) 1월 30일
현종실록19권, 현종 12년 1월 30일 壬午 3/3 기사 / 1671년 청 강희(康熙) 10년
제주 목사 노정이 기근에 대해 치계하다
국역
제주 목사 노정(盧錠)이 치계하기를,
"본도(本島) 세 고을 민생의 일은 이미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백성이 산에 올라가 나무 열매를 줍는데 나무 열매가 이미 다하였고 내려가 들나물을 캐는데 풀뿌리가 이미 떨어졌으므로 마소를 죽여서 배를 채우고 있으며, 무뢰한 자들은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공사간의 마소를 훔쳐서 잡아먹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리하여 서로 사람들끼리 잡아먹을 걱정이 조석에 닥쳤으니 비참한 모양을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8월부터 죽을 장만하여 구제하고 있으나, 창고의 곡식이 이미 다하여 4만여 명의 굶주린 백성을 다시금 구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해안 고을의 소금을 넉넉히 들여 보내소서. 전일 옮겨 온 5천 석의 곡식은 많지 않은 것은 아니나, 1, 2월 두 달의 진휼할 거리도 모자라므로 3, 4월에는 한 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서 진구할 방책을 묘당을 시켜 품처하게 하소서."
하였다. 조정에서 전라도에 있는 호조 소금 5백 석과 상평청(常平廳)·통영(統營) 및 양남(兩南)의 사복시 목장 등의 곡식 7천 석을 획급(劃給)하여 전라 수영의 병선(兵船)으로 실어 보내게 하였다. 그런데, 해로가 멀고 풍파에 오래 막혀서 지난해 초겨울에 부친 장계가 이제야 도착했고 전후로 곡식을 나르는 배도 제때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여 굶어 죽은 섬 백성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87면
원문
○濟州牧使盧錠馳啓曰: "本島三邑民事, 已至十分地頭。大小人民, 上山拾木實, 木實殆盡, 下取野菜, 草根已乏。殺牛馬以充腹, 無賴之徒, 處處結黨, 公私牛馬, 偸取屠殺, 不知其幾。 相食之患, 迫在朝夕, 愁慘之象, 有不忍言。 自八月設粥捄活, 而倉穀已竭, 四萬餘飢民, 更無可濟。 請以沿海邑鹽石, 優數入送。 前日移轉五千石之穀, 不爲不多, 而正二月兩朔賑資猶不足, 三四月, 則無一升餘存。 前頭繼賑之策, 請令廟堂稟處。" 朝廷以全羅道所在戶曹鹽五百石, 常平廳統營及兩南司僕寺牧場等穀, 劃給七千石, 令全羅水營兵船載送。 但海路遼遠。 風波久阻, 上年冬初所封狀啓, 今始來到, 而前後運穀之船, 亦不能及期得達, 以致島民餓死尤多。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87면
원본
현종 12년 (1671)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