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15권, 현종 9년 10월 30일 乙未 1/2 기사 / 1668년 청 강희(康熙) 7년
경연에서 송시열이 ‘계지술사’할 것을 아뢰다
국역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심경》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고 집의 김징이 아뢰기를,
"홍석기(洪錫箕)와 김진표(金震標) 등은 문벌과 명망이 흡족하지 않은데도 해조가 구차스럽게 시관에 갖추어 의망했습니다. 물정이 모두 부당하게 여기니, 해당 예조 당상을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또 아뢰기를,
"신이 금번 과거 감시관(監試官)으로 장옥(場屋)에 들어가서 거자들이 제술하는 것을 보건대, 선유(先儒)의 말을 공공연하게 위조하고, 심지어는 경전(經傳)의 말을 위조하기도 하고, 혹은 고금에 있지도 않았던 선유의 성명을 위조하기도 하니, 풍습이 매우 놀랍습니다. 이 뒤로 다시 이러한 폐단이 있어서 혹 발각이 되면 그 유생을 중하게 추고할 일을, 해조로 하여금 경외에 두루 유시하게 해서 금지시키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아뢰기를 마치고, 송시열을 성안에 들어와 있게 할 것을 청하니, 상이 들어와 있으라고 송시열에게 유시하였는데, 송시열은 여러 차례 사양했고, 김징은 여러 차례 그 말을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이 성밖에 있는 것은 병을 조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들어오게 하지 않았었는데, 비록 성안에 있더라도 편하고 조용한 곳을 가려서 지내면 성밖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경을 들어오게 하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만나고자 해서이다."
하니, 송시열이 아뢰기를,
"지난날 상께서 신을 인접하셨을 때에는 신이 경황이 없어서 저의 생각을 남김없이 모두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신을 아침 저녁으로 만나고자 하신다는 분부를 받들고 보니 감동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청컨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공자가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의 효를 칭찬한 것은 계지술사(繼志述事)011) 를 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선왕께서는 대성인(大聖人)으로서 때를 잘못 만나셨으나, 천하에 대의를 밝히고자 하신 것이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았습니다. 고 정승 이경여(李敬輿)가 ‘국력이 미약한데도 상의 존심(存心)이 너무 지나치니, 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도리어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선왕께서 ‘마음이 매우 통분스러운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탄식만 난다.’고 답하셨습니다. 대개 선왕의 뜻은 비록 화를 부르더라도 그만둘 수가 없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고 하는 것은 나의 일은 큰데 나이가 이미 늙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선왕의 춘추가 바야흐로 강성하셨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탄식을 무엇 때문에 하셨겠습니까. 신은 매양 이 분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매우 비통스럽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반드시 선왕의 뜻을 잘 이어야 효도를 한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나랏 일을 생각할 때 어떠한 때라고 여기십니까?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은 나라의 큰 근본인데 강상이 이미 무너졌고, 천하의 일이 또 걱정을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우리 나라는 한 가지 일도 믿을 만한 것이 없이 그저 게으름만 피우니, 성상께서는 계획을 정한 바가 있습니까? 만약에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장차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임금과 신하, 위 아래가 계획이 먼저 정해진 뒤에야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선조(先朝)의 뜻을 언어로 형용할 수는 없다. 내가 비록 보잘것이 없지만 선왕의 뜻을 잘 이으려는 생각이 없지 않은데 뿌리깊은 병을 얻은 뒤로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그때그때에 따라 처리하여 변란이 없게 할 따름이다."
하니, 송시열이 아뢰기를,
"백성들의 아픔을 돌보고 나라 안에 난리가 없도록 하는 것은 오직 성상께서 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만, 천하의 일이란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아무 것도 모르고 날만 보내다가 나라가 망하게 된다면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이것을 유념하고 계십니까?"
하였는데, 상이 또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송시열이 아뢰기를,
"지위가 낮은 자는 나라를 도모할 수가 없으니, 그 형세가 참으로 뜻대로 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임금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임금이 되어서 만약 뜻대로 하지 못한다면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생각이 있는데도 아뢰지 않으면 도리에 있어서 온당치 않을 것이고, 또 마음이 매우 답답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진달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때와 역량을 헤아리시어 이 시대에 쓸 만하지 못한 사람은 버리시고 이 시대에 쓸 만한 사람을 등용하시면 또한 한 시대의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상이 답하지 않았다. 이규령과 김징이 또 송시열을 성안에 들어오게 해야만 한다는 말을 거듭하였다. 송시열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 사람은 큰 일은 소홀히 하면서 작은 일은 잘 살핍니다. 신을 쓸 수가 없다면 성상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게 하더라도 참으로 유익함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성상 앞에서 이와 같이 힘써 다툴 일은 아닙니다."
하였다. 시강관 김만중이 나아가 아뢰기를,
"조정의 계책은 매우 비밀스러운 것이라서 사람마다 감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백성을 기르고 군대를 훈련시키는 등의 몇 가지 건 이외에는 다른 일이 없으니 송시열이 아뢸 바도 필시 이 일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성상의 뜻이 먼저 정해진 뒤에야 조치하시는 여러 일들이 차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송시열의 거취는 성상의 뜻이 정해지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따름이니, 비록 으리으리한 큰 집에 거처하게 하더라도 끝내 반드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성안이냐 성밖이냐 하는 것은 논할 일이 아닙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97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011] 계지술사(繼志述事) : 선인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대의 사업을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 《중용(中庸)》 19장에 "효자는 부모의 뜻과 사업을 잘 계승 발전시키는 자이다." 하였음.
원문
○乙未/上御養心閤, 講《心經》。 講訖, 執義金澄啓: "洪錫箕、金震標等地望未愜, 而該曹苟充, 備擬於試官。 物情皆以爲不當, 請當該禮曹堂上推考。" 上從之, 又啓曰: "臣以今科監試官, 入場屋, 見擧子所製, 則先儒之說公然僞造, 甚者或僞造絰傳之語, 又或僞造古今所無先儒之姓名, 風習殊極可駭。 此後更有如此之弊, 而或得發覺, 則其儒生從重論罪事, 請令該曹, 通諭京外, 以爲禁斷之地。" 上從之。 啓辭畢, 請令宋時烈入處城裏, 上諭時烈以入來, 時烈屢辭, 而澄屢言之。 上曰: "卿之處城外者, 欲調病, 故不爲强迪, 而雖城內, 若擇安靜之所, 與城外何異。 使卿入來者, 欲爲朝暮相見耳。" 時烈曰: "前日有引接之擧, 而因忙未布下懷。 今承朝暮欲見之敎, 不勝感動。 臣請陳達。 孔子稱武王、周公之孝者, 以其能繼述也。 我先王以大聖人, 遭時不幸, 而欲昭大義於天下者, 如靑天白日, 故相臣李敬輿以爲: ‘國力微弱, 而自上存心太過, 無乃事未成而反召禍乎。’ "先王答曰: ‘至痛在心, 有日暮途遠之歎。’ 蓋聖意以爲, 雖召禍不可已也。 日暮途遠者, 我之事大, 而年己暮之謂也。 其時先王春秋鼎盛, 日暮途遠之歎, 何爲而發也。 臣每思此敎, 心切悲痛。 今殿下必述 先王之志, 乃可謂孝也。 且殿下念國事以爲何如時乎? 三綱五常, 國之大本, 而綱常己墜, 天下之事, 又有可憂者, 而我國無一事可恃, 泄泄沓沓, 聖算其有所定乎? 萬一有變, 則將何以處之? 此臣之所未解。 君臣上下, 計先定而後, 事可做也。" 上曰: 先朝之志, 不可以言語形容。 子雖不肖, 非無繼述之意, 而自得有根之病, 事不如意。 只在隨時隨處, 使無變亂而已。" 時烈曰: "軫恤民隱, 使無邦內之亂, 惟在上躬, 天下事, 有不由我者。 有若寢睡度日, 而以至於亡國, 則計將安出? 未知殿下, 念及於此乎?" 上又以不如意爲言。 時烈曰: "位卑者不能謀國, 其勢固有不如意。 而至於君上, 則不如意之敎, 不成說話也。 爲君上, 若不如意, 國不爲國矣。 臣有懷不達, 於道理未安, 且甚鬱抑, 故如是陳達。 殿下度時量力, 不合於時用者舍之, 合於時用者用之, 亦足了一世事。" 上不答。 李奎齡、金澄又以時烈之不可不入城裏, 重言複言。 時烈曰: "我國之人, 忽大而察小。 臣不可用, 則雖處以密邇之地, 固無益也。 咫尺之間, 不必如是力爭。" 侍講官金萬重進曰: "廟謨甚秘, 非人人所敢與知, 而養民鍊兵數件外, 無他事, 時烈所達, 必不久是。 必先定 聖志而後, 措諸事, 次第有成。 聖志未定, 則時烈去就。 在此而已。 雖處以渠渠廈屋, 終必不留。 城之內外, 非所論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97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현종 9년 (1668) 10월 30일
현종실록15권, 현종 9년 10월 30일 乙未 1/2 기사 / 1668년 청 강희(康熙) 7년
경연에서 송시열이 ‘계지술사’할 것을 아뢰다
국역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심경》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고 집의 김징이 아뢰기를,
"홍석기(洪錫箕)와 김진표(金震標) 등은 문벌과 명망이 흡족하지 않은데도 해조가 구차스럽게 시관에 갖추어 의망했습니다. 물정이 모두 부당하게 여기니, 해당 예조 당상을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또 아뢰기를,
"신이 금번 과거 감시관(監試官)으로 장옥(場屋)에 들어가서 거자들이 제술하는 것을 보건대, 선유(先儒)의 말을 공공연하게 위조하고, 심지어는 경전(經傳)의 말을 위조하기도 하고, 혹은 고금에 있지도 않았던 선유의 성명을 위조하기도 하니, 풍습이 매우 놀랍습니다. 이 뒤로 다시 이러한 폐단이 있어서 혹 발각이 되면 그 유생을 중하게 추고할 일을, 해조로 하여금 경외에 두루 유시하게 해서 금지시키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아뢰기를 마치고, 송시열을 성안에 들어와 있게 할 것을 청하니, 상이 들어와 있으라고 송시열에게 유시하였는데, 송시열은 여러 차례 사양했고, 김징은 여러 차례 그 말을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이 성밖에 있는 것은 병을 조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들어오게 하지 않았었는데, 비록 성안에 있더라도 편하고 조용한 곳을 가려서 지내면 성밖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경을 들어오게 하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만나고자 해서이다."
하니, 송시열이 아뢰기를,
"지난날 상께서 신을 인접하셨을 때에는 신이 경황이 없어서 저의 생각을 남김없이 모두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신을 아침 저녁으로 만나고자 하신다는 분부를 받들고 보니 감동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청컨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공자가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의 효를 칭찬한 것은 계지술사(繼志述事)011) 를 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선왕께서는 대성인(大聖人)으로서 때를 잘못 만나셨으나, 천하에 대의를 밝히고자 하신 것이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았습니다. 고 정승 이경여(李敬輿)가 ‘국력이 미약한데도 상의 존심(存心)이 너무 지나치니, 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도리어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선왕께서 ‘마음이 매우 통분스러운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탄식만 난다.’고 답하셨습니다. 대개 선왕의 뜻은 비록 화를 부르더라도 그만둘 수가 없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고 하는 것은 나의 일은 큰데 나이가 이미 늙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선왕의 춘추가 바야흐로 강성하셨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탄식을 무엇 때문에 하셨겠습니까. 신은 매양 이 분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매우 비통스럽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반드시 선왕의 뜻을 잘 이어야 효도를 한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나랏 일을 생각할 때 어떠한 때라고 여기십니까?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은 나라의 큰 근본인데 강상이 이미 무너졌고, 천하의 일이 또 걱정을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우리 나라는 한 가지 일도 믿을 만한 것이 없이 그저 게으름만 피우니, 성상께서는 계획을 정한 바가 있습니까? 만약에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장차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임금과 신하, 위 아래가 계획이 먼저 정해진 뒤에야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선조(先朝)의 뜻을 언어로 형용할 수는 없다. 내가 비록 보잘것이 없지만 선왕의 뜻을 잘 이으려는 생각이 없지 않은데 뿌리깊은 병을 얻은 뒤로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그때그때에 따라 처리하여 변란이 없게 할 따름이다."
하니, 송시열이 아뢰기를,
"백성들의 아픔을 돌보고 나라 안에 난리가 없도록 하는 것은 오직 성상께서 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만, 천하의 일이란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아무 것도 모르고 날만 보내다가 나라가 망하게 된다면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이것을 유념하고 계십니까?"
하였는데, 상이 또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송시열이 아뢰기를,
"지위가 낮은 자는 나라를 도모할 수가 없으니, 그 형세가 참으로 뜻대로 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임금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임금이 되어서 만약 뜻대로 하지 못한다면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생각이 있는데도 아뢰지 않으면 도리에 있어서 온당치 않을 것이고, 또 마음이 매우 답답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진달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때와 역량을 헤아리시어 이 시대에 쓸 만하지 못한 사람은 버리시고 이 시대에 쓸 만한 사람을 등용하시면 또한 한 시대의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상이 답하지 않았다. 이규령과 김징이 또 송시열을 성안에 들어오게 해야만 한다는 말을 거듭하였다. 송시열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 사람은 큰 일은 소홀히 하면서 작은 일은 잘 살핍니다. 신을 쓸 수가 없다면 성상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게 하더라도 참으로 유익함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성상 앞에서 이와 같이 힘써 다툴 일은 아닙니다."
하였다. 시강관 김만중이 나아가 아뢰기를,
"조정의 계책은 매우 비밀스러운 것이라서 사람마다 감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백성을 기르고 군대를 훈련시키는 등의 몇 가지 건 이외에는 다른 일이 없으니 송시열이 아뢸 바도 필시 이 일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성상의 뜻이 먼저 정해진 뒤에야 조치하시는 여러 일들이 차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송시열의 거취는 성상의 뜻이 정해지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따름이니, 비록 으리으리한 큰 집에 거처하게 하더라도 끝내 반드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성안이냐 성밖이냐 하는 것은 논할 일이 아닙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97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011] 계지술사(繼志述事) : 선인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대의 사업을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 《중용(中庸)》 19장에 "효자는 부모의 뜻과 사업을 잘 계승 발전시키는 자이다." 하였음.
원문
○乙未/上御養心閤, 講《心經》。 講訖, 執義金澄啓: "洪錫箕、金震標等地望未愜, 而該曹苟充, 備擬於試官。 物情皆以爲不當, 請當該禮曹堂上推考。" 上從之, 又啓曰: "臣以今科監試官, 入場屋, 見擧子所製, 則先儒之說公然僞造, 甚者或僞造絰傳之語, 又或僞造古今所無先儒之姓名, 風習殊極可駭。 此後更有如此之弊, 而或得發覺, 則其儒生從重論罪事, 請令該曹, 通諭京外, 以爲禁斷之地。" 上從之。 啓辭畢, 請令宋時烈入處城裏, 上諭時烈以入來, 時烈屢辭, 而澄屢言之。 上曰: "卿之處城外者, 欲調病, 故不爲强迪, 而雖城內, 若擇安靜之所, 與城外何異。 使卿入來者, 欲爲朝暮相見耳。" 時烈曰: "前日有引接之擧, 而因忙未布下懷。 今承朝暮欲見之敎, 不勝感動。 臣請陳達。 孔子稱武王、周公之孝者, 以其能繼述也。 我先王以大聖人, 遭時不幸, 而欲昭大義於天下者, 如靑天白日, 故相臣李敬輿以爲: ‘國力微弱, 而自上存心太過, 無乃事未成而反召禍乎。’ "先王答曰: ‘至痛在心, 有日暮途遠之歎。’ 蓋聖意以爲, 雖召禍不可已也。 日暮途遠者, 我之事大, 而年己暮之謂也。 其時先王春秋鼎盛, 日暮途遠之歎, 何爲而發也。 臣每思此敎, 心切悲痛。 今殿下必述 先王之志, 乃可謂孝也。 且殿下念國事以爲何如時乎? 三綱五常, 國之大本, 而綱常己墜, 天下之事, 又有可憂者, 而我國無一事可恃, 泄泄沓沓, 聖算其有所定乎? 萬一有變, 則將何以處之? 此臣之所未解。 君臣上下, 計先定而後, 事可做也。" 上曰: 先朝之志, 不可以言語形容。 子雖不肖, 非無繼述之意, 而自得有根之病, 事不如意。 只在隨時隨處, 使無變亂而已。" 時烈曰: "軫恤民隱, 使無邦內之亂, 惟在上躬, 天下事, 有不由我者。 有若寢睡度日, 而以至於亡國, 則計將安出? 未知殿下, 念及於此乎?" 上又以不如意爲言。 時烈曰: "位卑者不能謀國, 其勢固有不如意。 而至於君上, 則不如意之敎, 不成說話也。 爲君上, 若不如意, 國不爲國矣。 臣有懷不達, 於道理未安, 且甚鬱抑, 故如是陳達。 殿下度時量力, 不合於時用者舍之, 合於時用者用之, 亦足了一世事。" 上不答。 李奎齡、金澄又以時烈之不可不入城裏, 重言複言。 時烈曰: "我國之人, 忽大而察小。 臣不可用, 則雖處以密邇之地, 固無益也。 咫尺之間, 不必如是力爭。" 侍講官金萬重進曰: "廟謨甚秘, 非人人所敢與知, 而養民鍊兵數件外, 無他事, 時烈所達, 必不久是。 必先定 聖志而後, 措諸事, 次第有成。 聖志未定, 則時烈去就。 在此而已。 雖處以渠渠廈屋, 終必不留。 城之內外, 非所論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97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원본
현종 9년 (1668) 10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