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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9권, 현종 5년 10월 28일 丙戌 2/3 기사 / 1664년 청 강희(康熙) 3년

집의 이단상이 경전에 힘써 공부하고 송시열 등을 예우하라 아뢰다

국역

집의 이단상이 상소하기를,

"성상께서 《통감(通鑑)》을 강하시니, 사학(史學)에 마음을 두고 경전(經典)은 소홀히 하고 계시는데, 《심경(心經)》·《대학연의(大學衍義)》에 전심하여 급선무로 삼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전하께서 학문 강론을 부지런히 하시려면 먼저 초야의 어진이를 초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시열·송준길 같은 자는 어찌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초빙할 인물 정도이겠습니까. 시열은 선왕에게 사부의 정분이 있었는데, 그가 세상에 드문 예우를 받고 이에 준길과 함께 초야에서 흔쾌히 조정에 나왔습니다. 선왕이 발탁하여 총재의 자리에 앉히고 모든 나라의 일을 자문하다가 전하에게 물려주고 범안 직간하는 사부의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전하께서도 이 두 신하를 예우하심이 선왕조에 못지 않았으나 두 신하의 자취가 청명한 이 조정과 멀어진 지 이미 수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히 경솔히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연전에 시열이 뜻밖의 말로 황급히 물러갔고, 그 후 또 복제(服制)를 의논하는 일로 윤선도(尹善道)의 상소가 있었습니다. 시열의 복제에 대한 의논은 실로 정정당당하여 백세 후 성인을 기다려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경(趙絅)·조수익(趙壽益)의 소가 잇따라 일어났고, 급기야 지난번에 이르러서는 또 김만균(金萬均)의 일로 서필원(徐必遠)의 상소가 있었는데 추악한 말로 마구 모욕하여 해괴한 짓을 다하였으니, 시열이 불안하게 여긴 것은 필연의 형세입니다. 또 이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연전에 참람히 수도(隧道)를 사용한 일로 김육(金堉)의 묘소를 이장하고 그 자제를 처벌하자고 청한 일이 대간 민유중(閔維重)의 뜻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병조 판서 김좌명은 유중의 이 의논이 시열에게서 나왔다고 간주하였고, 좌명 또한 일찍이 시열의 복제론을 옳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좌명의 뜻이 이와 같다면 국구(國舅)의 생각 또한 필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열이 더욱 스스로 불안해 하였던 원인이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시열과 준길이 만약 조정에 나오지 않고 그대로 초야에 머물게 되면 장고(掌故)가 이를 기록하고 사신(史臣)이 이를 써서 후세에 전할 것이니, 전하를 과연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너그럽게 답하고 마안(馬鞍)을 하사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단상의 상소로 보면 시열·준길이 효묘(孝廟)의 예우를 입은 것이 실로 천고에 드물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대개 밥 한 그릇이라도 남의 은덕을 입은 자는 반드시 보답할 도리를 생각하는데, 하물며 신하가 임금에게 융숭한 은혜를 입을 경우 마땅히 어떻게 보답해야 하겠는가. 무릇 천하에 아름답지 못한 일이 배은 망덕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사람으로서 배은 망덕에 이르게 되면 이는 실로 기탄할 바 없어 못할 짓이 없는 소인이다. 아, 효묘가 시열에게 예우한 은혜가 어떠한데 시열이 배반하고, 베풀어준 은덕이 어떠한데 시열이 잊었단 말인가. 비록 범인에게 있어서도 불가한 일인데 하물며 신하가 임금에게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소현(昭顯)이 세상을 떠나자 효묘가 차장(次長)으로 인조의 명을 받아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끝내 대통을 계승하여 재위하신 지 10년 만에 승하였으니, 그 명위의 정대함이 어떠한가. 그럼에도 기해년 대상의 초기에 시열은 《예경(禮經)》 주소(註疏)의 ‘차장을 세우면 역시 3년복을 입는다.’는 말을 버리고 쓰지 않은 채 반드시 효묘를 인조의 지서(支庶)로 여겨 적통으로 귀속하지 않고 강등하여 기년 복제를 따랐으니 예를 무너뜨리고 의리를 어겨 천지 신인에게 득죄함이 극심하다 하겠다. 대개 시열의 본의를 추구해 보면 그 생각에는 소현의 아들이 있다고 해서 감히 효묘를 깍아내려 서자로 간주하고 소현의 아들에게 적통을 돌리고자 한 것으로 심지어는 단궁(檀弓)이 문복(免服)으로 조문하고049) 자유(子游)가 최복(衰服)으로 조문한050) 말을 들어 증거를 대기까지 하였다. 아, 시열의 간특한 정상이 이에 이르러 다 드러나 도망할 곳이 없게 되었다. 가사 시열이 효묘의 저위(儲位)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이 말로 논란하였다면 그 누가 정론이 아니라 하겠는가. 지금은 그렇지 않고 1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후에 그 상제(喪制)를 의정할 때 이 말을 인용하여 군부를 깍아내려 소현에게 적통을 돌리려 하였으니, 그 패란 무도하여 의거할 바 없음이 또한 너무도 심하다. 한인(漢人)이 이른바 대불경(大不敬)·대부도(大不道)한 자는 말할 바 못된다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아, 시열이 창도하고 준길이 화답하여 그 무리로서 국내에 두루 퍼져있는 자들이 장단을 맞추어 추종하였다. 그 간사하고 괴리한 말이 온 천하에 가득차 지금까지 갈수록 심해지나 끝내 능히 이를 열어 밝혀서 말끔히 해소하지 못하였다. 의리가 민멸하고 기강이 무너지고서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은 적은 없다. 지금 단상이 이른바, ‘시열의 복제론이 정정당당하여 실로 백세의 성인을 기다려 질정해도 의심이 없다.’고 하니, 군상을 기만함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 아, 단상이 만약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이 있다면 어찌 감히 이런 말을 군부의 앞에서 진술할 수 있겠는가. 그 죄는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 [註 049] 단궁(檀弓)이 문복(免服)으로 조문하고 : 공의자(公儀子)가 장손을 세우지 않고 차자를 세웠다고 하여 단궁이 예에 어긋나는 복장으로 조문하여 기롱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 [註 050] 자유(子游)가 최복(衰服)으로 조문한 : 혜자(惠子)가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다 하여 자유가 예에 벗어난 상복으로 조문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원문

○執義李端相上疏:

以上方進講通鑑, 留心史學, 忽於經典, 莫若專意於《心經》、《大學衍義》之爲急務也。

又曰:

殿下果能勤於講學, 則不可不先致草野之賢。 而至若宋時烈、宋浚吉, 則豈但以講學招延而已也。 時烈之於先王, 旣有甘盤之舊, 及被曠世之恩遇, 乃與浚吉, 起自山林, 幡然造朝。 先王擢置冡宰, 方將擧國而聽之, 仍畀殿下, 委以商顔師傅之責。 殿下之於兩臣, 禮遇之隆, 無減於先朝, 而兩臣之迹阻淸朝, 已數年矣。 然其不敢輕進者, 蓋亦有由。 頃年時烈, 以意外之言, 蒼黃退歸, 其後又以服制議禮之事, 有尹善道之疏。 時烈服制之論, 正正堂堂, 誠可謂百世以俟聖人, 而不惑者。 而趙絅、趙壽益之疏, 相繼而起, 及至頃日, 又以金萬均之事, 有徐必遠之疏, 以粗厲之語, 肆加譏侮, 極其駭悖, 時烈之不安於心者, 勢必然矣。 又有大於此者。 頃年以僭用隧道之事, 請改葬金堉, 而仍罪其子弟者, 出於臺諫閔維重之意。 而兵曹判書金佐明以, 維重此論, 爲出於時烈, 而佐明亦嘗以時烈服制之論, 爲不是。 佐明之意如此, 則國舅之意, 亦必無異。 時烈之所以尤不得自安者, 以此也。 此後時烈、浚吉, 若不造朝, 仍處山野, 則掌故記之, 史臣書之, 傳之於後, 謂殿下爲何如也。

上優答, 賜以馬鞍。

【謹按以端相疏語觀之, 則時烈、浚吉之所以隆被孝廟恩遇, 實是千古之所罕有者, 亦可知矣。 夫有一飯之德於人者, 尙必思所以報之, 況臣子之於君父, 被其恩禮之隆者, 宜何以報答乎哉。 夫天下之不祥, 莫大於背恩而忘德, 人而至於背恩而忘德, 則便是無忌憚、無所不爲之小人也。 噫! 孝廟之於時烈, 其所以待之之恩何如, 而時烈背之, 其所以施之之德何如, 而時烈忘之。 雖在凡人, 猶且不可, 況於臣子之於君父乎。 當昭顯之卒也, 孝廟以次長, 受仁祖之命, 正位儲宮, 終承大統, 臨御十載而禮陟, 其名位之正大何如? 而己亥大喪之初, 時烈捨《禮經》註疏立次長亦爲三年之說, 而不用, 必以孝廟爲仁祖之支庶, 不以嫡統歸之, 而降從朞年之制, 其壞禮悖義, 獲戾於上下天地神人極矣。 蓋嘗推原時烈之意, 其心以爲: 有昭顯之子在, 乃敢貶降孝廟, 謂之庶子, 而欲以嫡統, 歸之於昭顯之子, 至引《檀弓》免子游衰之說以證之。 嗚呼! 時烈之奸情慝狀, 至是畢露, 而無所遁矣。 使時烈, 當孝廟儲位未定之時, 爲此說以爭之, 則夫誰曰非正論也。 今則不然, 乃於十年君臨之後, 喪制議定之時, 稱引此言, 欲以貶降君父, 歸嫡統於昭顯, 其悖亂舛謬, 無所依據, 亦已甚矣。 漢人所謂非所宜言大不敬、大不道者, 正謂此也。 嗚呼! 時烈倡之, 浚吉和之, 其儕流徒黨之徧滿國中者, 鼓而從之。 詖淫邪遁之說, 充塞宇宙, 至今愈往而益甚, 終莫能闢之廓如也。 義理之晦泯, 倫綱之滅絶, 而國之不亡者, 未之有也。 今此端相所謂時烈服制之論, 正正堂堂, 誠可謂百世以俟聖人, 而不惑者, 慢君罔上, 莫此爲甚。 噫! 端相若稍有人心, 則何敢出此言, 陳於君父前如是哉。 其罪不容於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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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9권, 현종 5년 10월 28일 丙戌 2/3 기사 / 1664년 청 강희(康熙) 3년

집의 이단상이 경전에 힘써 공부하고 송시열 등을 예우하라 아뢰다

국역

집의 이단상이 상소하기를,

"성상께서 《통감(通鑑)》을 강하시니, 사학(史學)에 마음을 두고 경전(經典)은 소홀히 하고 계시는데, 《심경(心經)》·《대학연의(大學衍義)》에 전심하여 급선무로 삼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전하께서 학문 강론을 부지런히 하시려면 먼저 초야의 어진이를 초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시열·송준길 같은 자는 어찌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초빙할 인물 정도이겠습니까. 시열은 선왕에게 사부의 정분이 있었는데, 그가 세상에 드문 예우를 받고 이에 준길과 함께 초야에서 흔쾌히 조정에 나왔습니다. 선왕이 발탁하여 총재의 자리에 앉히고 모든 나라의 일을 자문하다가 전하에게 물려주고 범안 직간하는 사부의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전하께서도 이 두 신하를 예우하심이 선왕조에 못지 않았으나 두 신하의 자취가 청명한 이 조정과 멀어진 지 이미 수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히 경솔히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연전에 시열이 뜻밖의 말로 황급히 물러갔고, 그 후 또 복제(服制)를 의논하는 일로 윤선도(尹善道)의 상소가 있었습니다. 시열의 복제에 대한 의논은 실로 정정당당하여 백세 후 성인을 기다려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경(趙絅)·조수익(趙壽益)의 소가 잇따라 일어났고, 급기야 지난번에 이르러서는 또 김만균(金萬均)의 일로 서필원(徐必遠)의 상소가 있었는데 추악한 말로 마구 모욕하여 해괴한 짓을 다하였으니, 시열이 불안하게 여긴 것은 필연의 형세입니다. 또 이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연전에 참람히 수도(隧道)를 사용한 일로 김육(金堉)의 묘소를 이장하고 그 자제를 처벌하자고 청한 일이 대간 민유중(閔維重)의 뜻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병조 판서 김좌명은 유중의 이 의논이 시열에게서 나왔다고 간주하였고, 좌명 또한 일찍이 시열의 복제론을 옳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좌명의 뜻이 이와 같다면 국구(國舅)의 생각 또한 필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열이 더욱 스스로 불안해 하였던 원인이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시열과 준길이 만약 조정에 나오지 않고 그대로 초야에 머물게 되면 장고(掌故)가 이를 기록하고 사신(史臣)이 이를 써서 후세에 전할 것이니, 전하를 과연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너그럽게 답하고 마안(馬鞍)을 하사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단상의 상소로 보면 시열·준길이 효묘(孝廟)의 예우를 입은 것이 실로 천고에 드물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대개 밥 한 그릇이라도 남의 은덕을 입은 자는 반드시 보답할 도리를 생각하는데, 하물며 신하가 임금에게 융숭한 은혜를 입을 경우 마땅히 어떻게 보답해야 하겠는가. 무릇 천하에 아름답지 못한 일이 배은 망덕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사람으로서 배은 망덕에 이르게 되면 이는 실로 기탄할 바 없어 못할 짓이 없는 소인이다. 아, 효묘가 시열에게 예우한 은혜가 어떠한데 시열이 배반하고, 베풀어준 은덕이 어떠한데 시열이 잊었단 말인가. 비록 범인에게 있어서도 불가한 일인데 하물며 신하가 임금에게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소현(昭顯)이 세상을 떠나자 효묘가 차장(次長)으로 인조의 명을 받아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끝내 대통을 계승하여 재위하신 지 10년 만에 승하였으니, 그 명위의 정대함이 어떠한가. 그럼에도 기해년 대상의 초기에 시열은 《예경(禮經)》 주소(註疏)의 ‘차장을 세우면 역시 3년복을 입는다.’는 말을 버리고 쓰지 않은 채 반드시 효묘를 인조의 지서(支庶)로 여겨 적통으로 귀속하지 않고 강등하여 기년 복제를 따랐으니 예를 무너뜨리고 의리를 어겨 천지 신인에게 득죄함이 극심하다 하겠다. 대개 시열의 본의를 추구해 보면 그 생각에는 소현의 아들이 있다고 해서 감히 효묘를 깍아내려 서자로 간주하고 소현의 아들에게 적통을 돌리고자 한 것으로 심지어는 단궁(檀弓)이 문복(免服)으로 조문하고049) 자유(子游)가 최복(衰服)으로 조문한050) 말을 들어 증거를 대기까지 하였다. 아, 시열의 간특한 정상이 이에 이르러 다 드러나 도망할 곳이 없게 되었다. 가사 시열이 효묘의 저위(儲位)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이 말로 논란하였다면 그 누가 정론이 아니라 하겠는가. 지금은 그렇지 않고 1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후에 그 상제(喪制)를 의정할 때 이 말을 인용하여 군부를 깍아내려 소현에게 적통을 돌리려 하였으니, 그 패란 무도하여 의거할 바 없음이 또한 너무도 심하다. 한인(漢人)이 이른바 대불경(大不敬)·대부도(大不道)한 자는 말할 바 못된다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아, 시열이 창도하고 준길이 화답하여 그 무리로서 국내에 두루 퍼져있는 자들이 장단을 맞추어 추종하였다. 그 간사하고 괴리한 말이 온 천하에 가득차 지금까지 갈수록 심해지나 끝내 능히 이를 열어 밝혀서 말끔히 해소하지 못하였다. 의리가 민멸하고 기강이 무너지고서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은 적은 없다. 지금 단상이 이른바, ‘시열의 복제론이 정정당당하여 실로 백세의 성인을 기다려 질정해도 의심이 없다.’고 하니, 군상을 기만함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 아, 단상이 만약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이 있다면 어찌 감히 이런 말을 군부의 앞에서 진술할 수 있겠는가. 그 죄는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 [註 049] 단궁(檀弓)이 문복(免服)으로 조문하고 : 공의자(公儀子)가 장손을 세우지 않고 차자를 세웠다고 하여 단궁이 예에 어긋나는 복장으로 조문하여 기롱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 [註 050] 자유(子游)가 최복(衰服)으로 조문한 : 혜자(惠子)가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다 하여 자유가 예에 벗어난 상복으로 조문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원문

○執義李端相上疏:

以上方進講通鑑, 留心史學, 忽於經典, 莫若專意於《心經》、《大學衍義》之爲急務也。

又曰:

殿下果能勤於講學, 則不可不先致草野之賢。 而至若宋時烈、宋浚吉, 則豈但以講學招延而已也。 時烈之於先王, 旣有甘盤之舊, 及被曠世之恩遇, 乃與浚吉, 起自山林, 幡然造朝。 先王擢置冡宰, 方將擧國而聽之, 仍畀殿下, 委以商顔師傅之責。 殿下之於兩臣, 禮遇之隆, 無減於先朝, 而兩臣之迹阻淸朝, 已數年矣。 然其不敢輕進者, 蓋亦有由。 頃年時烈, 以意外之言, 蒼黃退歸, 其後又以服制議禮之事, 有尹善道之疏。 時烈服制之論, 正正堂堂, 誠可謂百世以俟聖人, 而不惑者。 而趙絅、趙壽益之疏, 相繼而起, 及至頃日, 又以金萬均之事, 有徐必遠之疏, 以粗厲之語, 肆加譏侮, 極其駭悖, 時烈之不安於心者, 勢必然矣。 又有大於此者。 頃年以僭用隧道之事, 請改葬金堉, 而仍罪其子弟者, 出於臺諫閔維重之意。 而兵曹判書金佐明以, 維重此論, 爲出於時烈, 而佐明亦嘗以時烈服制之論, 爲不是。 佐明之意如此, 則國舅之意, 亦必無異。 時烈之所以尤不得自安者, 以此也。 此後時烈、浚吉, 若不造朝, 仍處山野, 則掌故記之, 史臣書之, 傳之於後, 謂殿下爲何如也。

上優答, 賜以馬鞍。

【謹按以端相疏語觀之, 則時烈、浚吉之所以隆被孝廟恩遇, 實是千古之所罕有者, 亦可知矣。 夫有一飯之德於人者, 尙必思所以報之, 況臣子之於君父, 被其恩禮之隆者, 宜何以報答乎哉。 夫天下之不祥, 莫大於背恩而忘德, 人而至於背恩而忘德, 則便是無忌憚、無所不爲之小人也。 噫! 孝廟之於時烈, 其所以待之之恩何如, 而時烈背之, 其所以施之之德何如, 而時烈忘之。 雖在凡人, 猶且不可, 況於臣子之於君父乎。 當昭顯之卒也, 孝廟以次長, 受仁祖之命, 正位儲宮, 終承大統, 臨御十載而禮陟, 其名位之正大何如? 而己亥大喪之初, 時烈捨《禮經》註疏立次長亦爲三年之說, 而不用, 必以孝廟爲仁祖之支庶, 不以嫡統歸之, 而降從朞年之制, 其壞禮悖義, 獲戾於上下天地神人極矣。 蓋嘗推原時烈之意, 其心以爲: 有昭顯之子在, 乃敢貶降孝廟, 謂之庶子, 而欲以嫡統, 歸之於昭顯之子, 至引《檀弓》免子游衰之說以證之。 嗚呼! 時烈之奸情慝狀, 至是畢露, 而無所遁矣。 使時烈, 當孝廟儲位未定之時, 爲此說以爭之, 則夫誰曰非正論也。 今則不然, 乃於十年君臨之後, 喪制議定之時, 稱引此言, 欲以貶降君父, 歸嫡統於昭顯, 其悖亂舛謬, 無所依據, 亦已甚矣。 漢人所謂非所宜言大不敬、大不道者, 正謂此也。 嗚呼! 時烈倡之, 浚吉和之, 其儕流徒黨之徧滿國中者, 鼓而從之。 詖淫邪遁之說, 充塞宇宙, 至今愈往而益甚, 終莫能闢之廓如也。 義理之晦泯, 倫綱之滅絶, 而國之不亡者, 未之有也。 今此端相所謂時烈服制之論, 正正堂堂, 誠可謂百世以俟聖人, 而不惑者, 慢君罔上, 莫此爲甚。 噫! 端相若稍有人心, 則何敢出此言, 陳於君父前如是哉。 其罪不容於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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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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