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21권, 효종 10년 3월 22일 癸丑 1/2 기사 / 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헌부가 입번할 군사에게 도방군의 입역을 금지시킬 것을 청하다
국역
헌부가 아뢰기를,
"대저 지방의 기병(騎兵)을 서울 안에서 번 세우는 것은 본디 숙위하고 순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각사(各司)에 수직하는 일에 있어서는 각기 그 사에 딸린 노복이 있고, 역군(役軍)을 고용하는 데 있어서는 보병에게서 포목을 걷고 있으니, 이것은 조종조의 좋은 제도입니다. 근래에 듣건대 모든 궁가 담장 밖에다 군보(軍保)를 설치해 놓고 군사를 분배하여 보내는데, 모두 종처럼 부리고 있으니, 군사들이 원망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명분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궁가에 나누어 보내는 군사는 모두 감하도록 분부하소서. 지방 군사로서 서울에 올라오는 자에 있어서는 병조와 도총부(都摠府)가 반드시 닷새 전에 자리를 같이하고 앉아 점검하는데, 그 뜻은 본디 명목을 미리 알아서 여러 곳에 나누어 예속시킴으로써 때에 임하여 당황하는 걱정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개 새로 입번할 군사의 경우 그 사이 동안에 식량거리를 전무(轉貿)하여 번을 설 때의 호구지책을 삼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점고를 거친 뒤와 번을 서기 전 사이에 도방군(到防軍)이라 칭하여 각처에 나누어 부역시키는데, 토목 공사로 피폐해지고 채찍질로 독촉하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외의 명분없는 부역이라서 군졸을 후하게 구휼하는 뜻에 크게 어긋납니다. 도방군의 입역(立役)을 일절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도방군이 입역하는 제도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관례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거론하지 말라. 그리고 그대들은 작고 세세한 일에 대해서만 곧잘 언급하니, 몹시 애석하게 여긴다."
하였다. 그러자 지평 오시수(吳始壽)가 인피하기를,
"방금 삼가 성교를 받드니 극히 준엄하여 신이 황공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각의 일을 논하는 체통은 오직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있을 뿐이지, 어찌 일의 크고 작은 것에 관계되겠습니까. 이미 중대한 일에 대해서 논하지 못했는데, 또 작은 일이라고 해서 소홀히 해버린다면 마침내 말씀드릴 만한 시기가 없을 것이니, 신은 성교에 의심 나는 점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논한 일이 비록 작은 것이기는 하나, 군사의 원망을 많이 사고 있는 종전의 잘못된 규례를 그대로 따를 수만은 없습니다. 때문에 신이 동료들과 상의하여 논열하였던 것인데, 이로 인하여 주상의 준엄하게 분부하시는 걱정을 끼쳐 드렸으니, 신이 직무를 감당하지 못한 죄를 면키 어렵습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고 지평 남구만이 인피하기를,
"신이 삼가 본부에 내리신 비답을 보니, 이는 참으로 전하께서 모든 신하들을 편달하고 격려해 그들로 하여금 말씀을 다 해드리고 숨기지 말라는 훌륭한 의미였습니다. 신은 삼가 감격하는 한편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고 변명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임금의 말은 한번 입 밖에 나오면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크므로 한 글자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마도 전하의 말씀이 너무 지나치셔서 사심없이 받아들이는 도리에 흠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무릇 신하들이 어느 일을 논할 적에 당연히 그 사물의 옳고 그름을 논할 따름이요, 가볍고 중한 것으로 취사 선택을 해서는 부당하고, 임금이 아랫사람의 말을 들을 적에도 마땅히 그 일의 옳고 그름의 여부를 살필 뿐이요, 크고 작은 것으로 찬반을 정해서는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신하된 자가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중요한 일을 얻어야만 논하지 가벼운 것은 논할 것이 없다.’ 하고, 임금은 말하기를 ‘나는 기필코 중대한 일만을 가려서 듣지 작은 것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 한다면, 신은 실로 우매하나 그것이 합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제후의 말 장식인 번(繁)과 영(纓)으로 조회하는 것이 그 군보(軍堡)를 사삿집에 설치한 일과 비교해 보면 퍽 사소한 것일 뿐인데도 공자(孔子)는 그 행위를 애석하게 여겼고, 백성의 힘을 3일 정도 부리는 것이 군졸들을 과외로 부역시키는 일에 견주어 보면 아주 가벼운 것일 뿐인데도 옛날 임금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논한 바가 만일 옳지 못하다고 하신다면 그만이지만 만일 사소한 일이라서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하신다면 또한 신이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맹자(孟子)의 말에 ‘잘난 체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목소리와 얼굴빛은 사람을 천리 밖으로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신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은 실로 중차대한 일로써 주상께 들려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단지 자잘한 일이라는 것으로 책망하셨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실적이 없으니, 생각건대 중차대한 일을 말할 만한 사람이 혹시 이로 인하여 천리 밖에서 스스로 그만두지나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신은 이 점을 깊이 걱정하는 바입니다. 이는 신들이 위로 두터운 신임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위대한 상께서 말씀을 실수하시도록 했습니다. 신의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하니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의 일에 대해서는 불쾌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윤허하지 않았던 것인데, 자잘한 말만을 했다 하여 격분해서 인피하는 말의 내용이 이와 같으니, 하는 수 없이 말을 해야겠다. 근래에 대각의 기풍이 크게 허물어져 모든 궁가의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 말하면서 사대부의 일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는 자가 없으니, 이 어찌 매우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지난번 전남도 어사(全南道御史)의 서계에 ‘어느 사대부가 완도(莞島)에 농장[庄]을 설치하였으니, 본도에 명하여 금지시키도록 하소서.’ 하였다. 그가 어떤 위인인지는 몰라도 완도가 과연 이 사대부의 농장을 설치할 곳인가. 백년 동안 애써 길러 놓은 선박 제조용 목재를 하루아침에 거의 베어 버렸는데도 대신(臺臣)은 모르는 체하고 오히려 이름을 밝혀 논핵하지 않고 있으니, 이 무슨 사리인가. 대각이 이 모양이니 기타 관부는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 아프지 않은가. 그대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반성하여 살펴보라. 그리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대사헌 홍중보도 이 일로 인피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홍중보 등이 아울러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헌납 정익(鄭榏)·사간 홍처윤(洪處尹)·정언 김익렴(金益廉)도 준엄한 분부가 내려 감히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인피하였다. 옥당이 상차하기를,
"양사(兩司)의 대다수 관원들이 아울러 인혐하여 물러갔습니다. 무릇 대간은 임금의 귀와 눈이므로 생각한 바를 다 말하는 것이 귀중한 목적인데, 일의 크고 작음을 어찌 가려서 하겠습니까. 더구나 잘못된 규례의 파기를 주청하는 것이 또한 자잘한 일이 아니며, 비록 준엄한 비답을 받들었으나 잘못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개인 농장을 함부로 설치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사실을 조사해 아뢰라고 이미 분부하셨으니, 아직 이름을 들어 논핵하지 않는 것은 다른 저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모두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이어 하교하기를,
"이 옥당의 처치를 살펴보니 ‘비록 준엄한 비답을 받들었으나 잘못한 것이 별로 없다.’ 하였다. 근래에 몇 사람이나 탐오죄로 탄핵을 당하고 몇 사람이나 직무를 감당치 못해 탄핵을 입었으며 또 몇 사람이나 사정을 좇아 공도(公道)를 돌아보지 않아 탄핵을 당하였는가. 만일 모두 이 같은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나랏일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만일 한두 사람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오히려 옳거니와, 어찌 감히 잘못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가. 또 말하기를 ‘대간은 임금의 귀와 눈이므로 생각한 바를 다 말하는 것이 귀중한 목적이다.’ 하였는데, 이것을 다 말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방자하고 거리낌없는 정상이 놀라울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정으로 서로 감싸 주어 죄에 깊이 빠져 들지 않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대개 상상할 수 있다. 결코 이대로 공론의 지위에 그냥 둘 수 없으니, 교리 이시술(李時術)과 수찬 안후열(安後說)은 아울러 우선 파직하고 뒤에 추고하라."
하자 정원이 아뢰기를,
"이시술 등을 파직하고 추고하라는 분부를 도로 거두어 들이소서."
하였는데, 상이 따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8면
- 【분류】농업-경영형태(經營形態) / 사법-탄핵(彈劾)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역(軍役)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원문
○癸丑/憲府啓曰: "凡外方騎兵之立番京中者, 本爲宿衛巡警。 至於各司守直, 則自有其司典僕, 雇立役軍, 則自有步兵收布, 此祖宗之良法也。 近聞諸宮家墻外, 皆設軍堡, 分送軍士, 皆以奴虜使之, 非但軍之怨苦, 亦係名分之僭紊。 請宮家分送軍士, 竝令減除。 外方軍士來到京中者, 兵曹摠府, 必前期五日, 同坐點閱, 其意本欲預知名目, 分隷諸處, 不使有臨時不齊之患也。 凡新到之軍, 得於其間, 轉貿糧資, 以爲立番時糊口之計。 而近來則逢點之後、立番之前, 稱以到防軍, 分役於各處, 顚頓木石, 不勝鞭扑之苦。 此是科外無名之役, 而太非優恤軍卒之意也。 請到防軍立役, 一切禁斷。" 答曰: "到防軍立役, 自有舊例, 更勿煩論。 且爾等只能言微細之事, 甚可惜也。" 持平吳始壽引避曰: "卽伏承聖敎, 極嚴且峻, 臣惶恐罔措。 但臺閣論事之體, 唯在事之當否而已, 寧係事之大小也哉? 旣不論重大之事, 且以小事而忽之, 則終無可言之時, 臣於聖敎, 猶有所不能無疑焉。 今此所論, 事雖微細, 厚招軍怨, 從前謬例, 不可因循。 故臣與同僚, 相議論列, 致勤嚴敎, 臣不職罪, 在所難免。 請遞臣職。" 持平南九萬引避曰: "臣伏見答本府之批, 此誠殿下策勵諸臣, 使之盡言不諱之盛意也。 臣竊不勝感激而愧恧, 不知所以稱塞者也。 第念王言一出, 所關甚大, 一字之微, 亦不可不愼。 或恐聖敎, 辭意太過, 有欠於虛己之道也。 何者, 凡人臣之言事, 惟當論其是非而已, 不當以輕重爲取舍也, 人君之聽言, 惟當察其可否而已, 不當以大小爲從違也。 爲人臣而曰: ‘我必得重者而論之, 輕者有不足論也’, 爲人君而曰: ‘予必擇大者而聽之, 小者有不足聽也’, 臣誠愚昧, 未知其恰當也。 而況繁纓以朝, 其視設軍堡於私室, 不啻小也, 而仲尼惜之, 用民力過三日, 其視役科外之軍卒, 不啻輕也, 而王者不爲。 今此所論, 如以爲不可則已, 若曰微細, 而不足聽也, 則亦臣之所未曉也。 孟子曰: ‘訑訑之聲音顔色, 拒人於千里之外。’ 如臣無狀, 固不能以重且大者, 聞於君上矣。 今殿下徒以微細責之, 而未有聽納之實, 抑恐能言重且大者, 或因此, 而自止於千里之外, 此臣之所深憂也。 此無非臣等上不能見信, 反使大哉之王言, 不能無差失, 臣罪萬死。 請遞臣職。" 答曰: "有不快於爾等之事, 故姑不允從, 而微言以激之, 避辭如此, 不得不言之矣。 近來臺閣之風大壞, 諸宮家之事, 猶能言之, 而士大夫之事, 絶無言之者, 豈非大可寒心乎? 頃者全南道御史書啓: ‘有一士夫, 設庄於莞島, 請令本道禁止’ 云。 未知此何許人, 而莞島果是士夫設庄之所乎, 百年長養之舡材, 一朝殆盡, 而臺臣有若不知, 尙不擧名論劾, 此何事理耶? 臺閣而如此, 則其他可推而知之, 不亦痛心乎? 爾其平心察之, 勿辭。" 大司憲洪重普亦以此引避, 答曰勿辭。 重普等竝退待物論。 獻納鄭榏、司諫洪處尹、正言金益廉, 亦以嚴旨之下, 不敢晏然, 引避。 玉堂上箚曰: "兩司多官, 竝引嫌而退。 凡臺諫, 爲人主耳目, 貴在盡言, 大小奚擇。 況請罷謬例, 亦非細事, 雖承嚴批, 別無所失。 冒設私庄, 已令査啓, 則姑不擧論, 非有他意, 請竝出仕。" 上從之。 仍下敎曰: "觀此玉堂處置, 則 ‘雖承嚴批, 別無所失’ 云。 近來幾人, 以貪濁見劾, 幾人以不職見劾, 幾人以循私蔑公見劾乎? 若謂之皆無此事, 則國事何以至此乎? 若謂非獨一二人之所失, 則猶之可也, 安敢以別無所失爲言乎?" 且曰: "爲人主耳目, 貴在盡言, 此可謂盡言乎? 其縱恣無忌之狀, 不但可駭, 私相掩護, 不欲深罪之意, 蓋可想矣。 決不可仍置公論之地, 校理李時術、修撰安後說竝先罷後推。" 政院請 "還收李時術等罷推之命", 上不從。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8면
- 【분류】농업-경영형태(經營形態) / 사법-탄핵(彈劾)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역(軍役)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효종 10년 (1659) 3월 22일
효종실록21권, 효종 10년 3월 22일 癸丑 1/2 기사 / 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헌부가 입번할 군사에게 도방군의 입역을 금지시킬 것을 청하다
국역
헌부가 아뢰기를,
"대저 지방의 기병(騎兵)을 서울 안에서 번 세우는 것은 본디 숙위하고 순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각사(各司)에 수직하는 일에 있어서는 각기 그 사에 딸린 노복이 있고, 역군(役軍)을 고용하는 데 있어서는 보병에게서 포목을 걷고 있으니, 이것은 조종조의 좋은 제도입니다. 근래에 듣건대 모든 궁가 담장 밖에다 군보(軍保)를 설치해 놓고 군사를 분배하여 보내는데, 모두 종처럼 부리고 있으니, 군사들이 원망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명분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궁가에 나누어 보내는 군사는 모두 감하도록 분부하소서. 지방 군사로서 서울에 올라오는 자에 있어서는 병조와 도총부(都摠府)가 반드시 닷새 전에 자리를 같이하고 앉아 점검하는데, 그 뜻은 본디 명목을 미리 알아서 여러 곳에 나누어 예속시킴으로써 때에 임하여 당황하는 걱정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개 새로 입번할 군사의 경우 그 사이 동안에 식량거리를 전무(轉貿)하여 번을 설 때의 호구지책을 삼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점고를 거친 뒤와 번을 서기 전 사이에 도방군(到防軍)이라 칭하여 각처에 나누어 부역시키는데, 토목 공사로 피폐해지고 채찍질로 독촉하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외의 명분없는 부역이라서 군졸을 후하게 구휼하는 뜻에 크게 어긋납니다. 도방군의 입역(立役)을 일절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도방군이 입역하는 제도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관례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거론하지 말라. 그리고 그대들은 작고 세세한 일에 대해서만 곧잘 언급하니, 몹시 애석하게 여긴다."
하였다. 그러자 지평 오시수(吳始壽)가 인피하기를,
"방금 삼가 성교를 받드니 극히 준엄하여 신이 황공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각의 일을 논하는 체통은 오직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있을 뿐이지, 어찌 일의 크고 작은 것에 관계되겠습니까. 이미 중대한 일에 대해서 논하지 못했는데, 또 작은 일이라고 해서 소홀히 해버린다면 마침내 말씀드릴 만한 시기가 없을 것이니, 신은 성교에 의심 나는 점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논한 일이 비록 작은 것이기는 하나, 군사의 원망을 많이 사고 있는 종전의 잘못된 규례를 그대로 따를 수만은 없습니다. 때문에 신이 동료들과 상의하여 논열하였던 것인데, 이로 인하여 주상의 준엄하게 분부하시는 걱정을 끼쳐 드렸으니, 신이 직무를 감당하지 못한 죄를 면키 어렵습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고 지평 남구만이 인피하기를,
"신이 삼가 본부에 내리신 비답을 보니, 이는 참으로 전하께서 모든 신하들을 편달하고 격려해 그들로 하여금 말씀을 다 해드리고 숨기지 말라는 훌륭한 의미였습니다. 신은 삼가 감격하는 한편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고 변명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임금의 말은 한번 입 밖에 나오면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크므로 한 글자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마도 전하의 말씀이 너무 지나치셔서 사심없이 받아들이는 도리에 흠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무릇 신하들이 어느 일을 논할 적에 당연히 그 사물의 옳고 그름을 논할 따름이요, 가볍고 중한 것으로 취사 선택을 해서는 부당하고, 임금이 아랫사람의 말을 들을 적에도 마땅히 그 일의 옳고 그름의 여부를 살필 뿐이요, 크고 작은 것으로 찬반을 정해서는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신하된 자가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중요한 일을 얻어야만 논하지 가벼운 것은 논할 것이 없다.’ 하고, 임금은 말하기를 ‘나는 기필코 중대한 일만을 가려서 듣지 작은 것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 한다면, 신은 실로 우매하나 그것이 합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제후의 말 장식인 번(繁)과 영(纓)으로 조회하는 것이 그 군보(軍堡)를 사삿집에 설치한 일과 비교해 보면 퍽 사소한 것일 뿐인데도 공자(孔子)는 그 행위를 애석하게 여겼고, 백성의 힘을 3일 정도 부리는 것이 군졸들을 과외로 부역시키는 일에 견주어 보면 아주 가벼운 것일 뿐인데도 옛날 임금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논한 바가 만일 옳지 못하다고 하신다면 그만이지만 만일 사소한 일이라서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하신다면 또한 신이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맹자(孟子)의 말에 ‘잘난 체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목소리와 얼굴빛은 사람을 천리 밖으로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신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은 실로 중차대한 일로써 주상께 들려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단지 자잘한 일이라는 것으로 책망하셨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실적이 없으니, 생각건대 중차대한 일을 말할 만한 사람이 혹시 이로 인하여 천리 밖에서 스스로 그만두지나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신은 이 점을 깊이 걱정하는 바입니다. 이는 신들이 위로 두터운 신임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위대한 상께서 말씀을 실수하시도록 했습니다. 신의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하니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의 일에 대해서는 불쾌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윤허하지 않았던 것인데, 자잘한 말만을 했다 하여 격분해서 인피하는 말의 내용이 이와 같으니, 하는 수 없이 말을 해야겠다. 근래에 대각의 기풍이 크게 허물어져 모든 궁가의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 말하면서 사대부의 일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는 자가 없으니, 이 어찌 매우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지난번 전남도 어사(全南道御史)의 서계에 ‘어느 사대부가 완도(莞島)에 농장[庄]을 설치하였으니, 본도에 명하여 금지시키도록 하소서.’ 하였다. 그가 어떤 위인인지는 몰라도 완도가 과연 이 사대부의 농장을 설치할 곳인가. 백년 동안 애써 길러 놓은 선박 제조용 목재를 하루아침에 거의 베어 버렸는데도 대신(臺臣)은 모르는 체하고 오히려 이름을 밝혀 논핵하지 않고 있으니, 이 무슨 사리인가. 대각이 이 모양이니 기타 관부는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 아프지 않은가. 그대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반성하여 살펴보라. 그리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대사헌 홍중보도 이 일로 인피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홍중보 등이 아울러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헌납 정익(鄭榏)·사간 홍처윤(洪處尹)·정언 김익렴(金益廉)도 준엄한 분부가 내려 감히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인피하였다. 옥당이 상차하기를,
"양사(兩司)의 대다수 관원들이 아울러 인혐하여 물러갔습니다. 무릇 대간은 임금의 귀와 눈이므로 생각한 바를 다 말하는 것이 귀중한 목적인데, 일의 크고 작음을 어찌 가려서 하겠습니까. 더구나 잘못된 규례의 파기를 주청하는 것이 또한 자잘한 일이 아니며, 비록 준엄한 비답을 받들었으나 잘못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개인 농장을 함부로 설치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사실을 조사해 아뢰라고 이미 분부하셨으니, 아직 이름을 들어 논핵하지 않는 것은 다른 저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모두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이어 하교하기를,
"이 옥당의 처치를 살펴보니 ‘비록 준엄한 비답을 받들었으나 잘못한 것이 별로 없다.’ 하였다. 근래에 몇 사람이나 탐오죄로 탄핵을 당하고 몇 사람이나 직무를 감당치 못해 탄핵을 입었으며 또 몇 사람이나 사정을 좇아 공도(公道)를 돌아보지 않아 탄핵을 당하였는가. 만일 모두 이 같은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나랏일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만일 한두 사람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오히려 옳거니와, 어찌 감히 잘못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가. 또 말하기를 ‘대간은 임금의 귀와 눈이므로 생각한 바를 다 말하는 것이 귀중한 목적이다.’ 하였는데, 이것을 다 말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방자하고 거리낌없는 정상이 놀라울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정으로 서로 감싸 주어 죄에 깊이 빠져 들지 않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대개 상상할 수 있다. 결코 이대로 공론의 지위에 그냥 둘 수 없으니, 교리 이시술(李時術)과 수찬 안후열(安後說)은 아울러 우선 파직하고 뒤에 추고하라."
하자 정원이 아뢰기를,
"이시술 등을 파직하고 추고하라는 분부를 도로 거두어 들이소서."
하였는데, 상이 따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8면
- 【분류】농업-경영형태(經營形態) / 사법-탄핵(彈劾)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역(軍役)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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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丑/憲府啓曰: "凡外方騎兵之立番京中者, 本爲宿衛巡警。 至於各司守直, 則自有其司典僕, 雇立役軍, 則自有步兵收布, 此祖宗之良法也。 近聞諸宮家墻外, 皆設軍堡, 分送軍士, 皆以奴虜使之, 非但軍之怨苦, 亦係名分之僭紊。 請宮家分送軍士, 竝令減除。 外方軍士來到京中者, 兵曹摠府, 必前期五日, 同坐點閱, 其意本欲預知名目, 分隷諸處, 不使有臨時不齊之患也。 凡新到之軍, 得於其間, 轉貿糧資, 以爲立番時糊口之計。 而近來則逢點之後、立番之前, 稱以到防軍, 分役於各處, 顚頓木石, 不勝鞭扑之苦。 此是科外無名之役, 而太非優恤軍卒之意也。 請到防軍立役, 一切禁斷。" 答曰: "到防軍立役, 自有舊例, 更勿煩論。 且爾等只能言微細之事, 甚可惜也。" 持平吳始壽引避曰: "卽伏承聖敎, 極嚴且峻, 臣惶恐罔措。 但臺閣論事之體, 唯在事之當否而已, 寧係事之大小也哉? 旣不論重大之事, 且以小事而忽之, 則終無可言之時, 臣於聖敎, 猶有所不能無疑焉。 今此所論, 事雖微細, 厚招軍怨, 從前謬例, 不可因循。 故臣與同僚, 相議論列, 致勤嚴敎, 臣不職罪, 在所難免。 請遞臣職。" 持平南九萬引避曰: "臣伏見答本府之批, 此誠殿下策勵諸臣, 使之盡言不諱之盛意也。 臣竊不勝感激而愧恧, 不知所以稱塞者也。 第念王言一出, 所關甚大, 一字之微, 亦不可不愼。 或恐聖敎, 辭意太過, 有欠於虛己之道也。 何者, 凡人臣之言事, 惟當論其是非而已, 不當以輕重爲取舍也, 人君之聽言, 惟當察其可否而已, 不當以大小爲從違也。 爲人臣而曰: ‘我必得重者而論之, 輕者有不足論也’, 爲人君而曰: ‘予必擇大者而聽之, 小者有不足聽也’, 臣誠愚昧, 未知其恰當也。 而況繁纓以朝, 其視設軍堡於私室, 不啻小也, 而仲尼惜之, 用民力過三日, 其視役科外之軍卒, 不啻輕也, 而王者不爲。 今此所論, 如以爲不可則已, 若曰微細, 而不足聽也, 則亦臣之所未曉也。 孟子曰: ‘訑訑之聲音顔色, 拒人於千里之外。’ 如臣無狀, 固不能以重且大者, 聞於君上矣。 今殿下徒以微細責之, 而未有聽納之實, 抑恐能言重且大者, 或因此, 而自止於千里之外, 此臣之所深憂也。 此無非臣等上不能見信, 反使大哉之王言, 不能無差失, 臣罪萬死。 請遞臣職。" 答曰: "有不快於爾等之事, 故姑不允從, 而微言以激之, 避辭如此, 不得不言之矣。 近來臺閣之風大壞, 諸宮家之事, 猶能言之, 而士大夫之事, 絶無言之者, 豈非大可寒心乎? 頃者全南道御史書啓: ‘有一士夫, 設庄於莞島, 請令本道禁止’ 云。 未知此何許人, 而莞島果是士夫設庄之所乎, 百年長養之舡材, 一朝殆盡, 而臺臣有若不知, 尙不擧名論劾, 此何事理耶? 臺閣而如此, 則其他可推而知之, 不亦痛心乎? 爾其平心察之, 勿辭。" 大司憲洪重普亦以此引避, 答曰勿辭。 重普等竝退待物論。 獻納鄭榏、司諫洪處尹、正言金益廉, 亦以嚴旨之下, 不敢晏然, 引避。 玉堂上箚曰: "兩司多官, 竝引嫌而退。 凡臺諫, 爲人主耳目, 貴在盡言, 大小奚擇。 況請罷謬例, 亦非細事, 雖承嚴批, 別無所失。 冒設私庄, 已令査啓, 則姑不擧論, 非有他意, 請竝出仕。" 上從之。 仍下敎曰: "觀此玉堂處置, 則 ‘雖承嚴批, 別無所失’ 云。 近來幾人, 以貪濁見劾, 幾人以不職見劾, 幾人以循私蔑公見劾乎? 若謂之皆無此事, 則國事何以至此乎? 若謂非獨一二人之所失, 則猶之可也, 安敢以別無所失爲言乎?" 且曰: "爲人主耳目, 貴在盡言, 此可謂盡言乎? 其縱恣無忌之狀, 不但可駭, 私相掩護, 不欲深罪之意, 蓋可想矣。 決不可仍置公論之地, 校理李時術、修撰安後說竝先罷後推。" 政院請 "還收李時術等罷推之命", 上不從。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8면
- 【분류】농업-경영형태(經營形態) / 사법-탄핵(彈劾)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역(軍役)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원본
효종 10년 (1659)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