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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13권, 효종 5년 7월 4일 辛卯 2/2 기사 / 1654년 청 순치(順治) 11년

홍우원의 상소로 홍우원과 이상진 등을 죄주어야 한다는 대사헌 이시해의 상소문

국역

대사헌 이시해(李時楷)가 상소하기를,

"근일 홍우원의 상소로 대각의 논의가 비꼬이게 되었으니 신은 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당초 홍우원이 소를 올린 뒤에 사람들이 전하는 몇 마디 말에 의아심과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다가 등본(謄本)을 본즉 전편의 논지가 모두 해괴하고 조리 없는 것들 뿐이라 사람의 말이 이 지경에까지 이를 줄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로부터 진언(進言)하는 방도가 한결같지 않아 멀리 둘러서 간하기도 하고, 가까운 비유를 들어 간하기도 하고, 혹 바른 말로 간하기도 하며, 풍간(風諫)하는 자도 있는데 모두 임금의 과실을 지적하거나 당시 정치의 잘못을 열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고, 역사에서 이를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어찌 타당한 일을 도리어 잘못이라고 말하고, 전혀 그런 일이 없는데도 잘못을 덮어 씌우면서 방자하고 기탄없이 마치 죄를 들추듯이 하는 경우가 있었겠습니까?

원소(原疏)를 가지고 면밀히 그 본의를 따져 보면 앞과 뒤의 말이 서로 맞지 않아 횡설수설한 것이 도대체 괴상망측하여 요망한 소리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소의 내용 중에 이른바 ‘역적 조(趙)의 흉악한 반역 행위는 천지가 용서하지 않고 왕법이 용서하지 않아 이미 복주(伏誅)되었고, 두 아이를 해도에 안치한 것은 종묘사직의 행복이다.’고 했으니 이는 죄인이 정당한 벌을 받아 인심이 모두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어 ‘역적 조는 선왕의 총희(寵姬)이고, 이징(李澂)과 이숙(李潚)은 선왕의 사랑하는 아들인데, 겨우 3년이 지나 선왕의 능침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총희는 죽음을 당하고 사랑하는 아들은 유배되었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원망이 있는 듯한 말입니다. 앞뒤의 말이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흑백이 상반되는 정도 만이 아닙니다. 앞의 말대로라면 어찌 3년이니, 능침의 흙이니, 총희니, 사랑하는 자식이니 하는 등의 말을 문자로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뒤의 말대로라면 복주하고 안치되었으니 종묘사직의 다행이라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부당한 것입니다. 그의 본 뜻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한다는 것인지 불쌍해 하고 원통해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은 실로 이를 괴이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총희라고 하는 것은 은(殷)나라의 달기(妲己)나 주(周)나라의 포사(褒似), 진 헌공(晋獻公)의 여희(驪姬)나 당 현종(唐玄宗)의 귀비(貴妃)같은 류의 지칭입니다. 역적 모의를 꾸민 일이 없더라도 이 총희 두 글자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죽을 만합니다. 하물며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나 주나라의 유왕(幽王), 헌공·명황(明皇) 등이 어떤 부류의 임금입니까? 감히 이 말로 선왕까지 범하였으니 이것 또한 심한 불경입니다. 능침의 흙이 마르지 않았다는 말은 이경업(李敬業)032) 이 무씨(武氏)033) 를 성토하는 격문(檄文)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인데, 만약 죄를 묻는 거조가 아니라면 이러한 말들을 인용함은 부당함이 분명합니다. 신하된 자로서 어떻게 차마 이러한 발언을 한단 말입니까.

그 소에 또 이르기를, ‘이징과 이숙은 어리고 지식도 없어서 자기 어미의 모의를 필시 미리 알지 못했을 것이며 단지 그 어미의 죄로 인하여 연좌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옥사를 다스리는 곡절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숙은 비록 어렸지만 그 적당들이 한창 내외로 결탁하여 반역의 음모를 모의할 적에 누구의 명(命)이 나은가를 평해서 가려 세우려 했다는 말이 여러 역적의 공초에서 뒤섞여 나왔고, 징은 그 어미의 음모를 미리 알고 스스로 의대(衣帶)를 훔쳐 내오기까지 했으니 반역의 계략을 스스로 꾸민 것은 아니더라도 흉모를 저지른 단서는 그들 역시 참여해 알았습니다. 적당의 공술한 문안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는데도 홍우원은 ‘실정을 가지고 말한다면 필시 몰랐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까지 구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옥성(玉成) 등의 말은 실로 하나의 웃음거리도 되지 못합니다.

그 소에 또 말하기를, ‘하늘에 계신 선왕의 혼령이 슬퍼서 애통해 하실 것이며 하늘과 같으시니 재앙을 내리는 것이 이것 때문이 아니라고 기필할 수 없다.’는 말은 어찌 그리도 요망스럽습니까. 난역을 다스려 국가를 보전한 것은 실로 종묘사직의 경사로서 조종의 혼령이 하늘에서 밝게 살피시며 중외 신민들의 하례(賀禮)를 함께 하실 것인데 어찌 애통해 하며 재앙을 내릴 이치가 있겠습니까. 재변의 설을 애써 주장하여 위로 선왕의 혼령을 속이니 더욱 해괴합니다.

그 소에 또 말하기를, ‘진 이세(秦二世)는 열 두 공자(公子)를 죽였다가 끝내 망이궁(望夷宮)에서 살해되는 화를 면하지 못하였고, 제 명제(齊明帝)는 15∼16인의 왕들을 죽이고는 마침내 소도성(簫道成)에게 찬탈당하였다. 시기와 의심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끝내는 멸망을 재촉하였다.’고 했는데 여기까지 읽게 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국가가 불행하여 변란이 궁액(宮掖) 가운데서 나와 자점(自點)의 온 집안이 역모를 꾀하였고, 역적 조(趙)의 모녀가 흉모를 함께하여 안팎으로 결탁 화가 조석간에 임박하여 종묘 사직의 위기가 일촉즉발이었다가 다행이 발각되어 여러 흉적들이 법에 따라 복주되었습니다. 역적 조와 같은 경우는 역모의 죄상이 역적 중에서도 우두머리였으나 성명께서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차마 법대로 적용하지 않으시다가, 조정 신하들이 반대하며 청하자 오랜 뒤에야 비로소 허락하셨으며 그것도 집에서 자진(自盡)하도록만 하시었습니다. 세룡(世龍)의 처는 제손으로 직접 흉측한 물건을 싸가지고 오는 등 저지른 역모가 많아 성상의 옥체를 해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자전까지도 범하려 했으니 법(法)으로 헤아려 볼 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인데도 전하께서는 특별히 동기를 사랑하는 인애를 미루어 홀로 온 나라 사람들의 공론을 어기면서까지 그의 목숨을 용서하여 가까운 고을에서 편안히 살게 하시었습니다. 이는 전하께서 은혜를 온전히 하시려는 생각이 지나쳐 법을 굽히신 것으로, 우애의 성대함과 곡진히 보호하신 본의가 지극하시어 전대 제왕(帝王)에게서는 볼 수 없던 일입니다.

이러한 악이 있는데도 오히려 목숨을 보전하였으니 하물며 골육 지친 중에 누가 죄없이 죽음을 당한 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원은 천고에 없는 폭군이 죄없는 공자나 왕들을 마구 죽이다가 끝내는 시해을 당하고 나라를 잃은 자들을 증거로 인용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제왕의 골육과 친척이니 또한 슬프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말들을 신하로서는 차마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실로 군부(君父)의 죄상을 기롱하는 것이 아니라면 관원으로서 이러한 말은 할 수 없는데 우원이 함부로 이런 말을 하였으니 또한 무슨 의도이겠습니까? 우원이 풍병이 들어 실성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말이 윤리나 도리에 어긋나는 줄을 모를 것이며, 또한 어찌 감히 이미 죽은 흉역을 위해 사리를 밝혀 따질 생각을 갖겠습니까. 그런데도 ‘죽음을 무릅쓴다.’고 했으니 이는 그의 의도가 새로운 기이한 의를 펴서 남이 말하지 못하는 일을 말함으로써 강직하다는 이름은 자신이 차지하고 악명은 상에게 돌리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자들로 하여금 실정은 버리고 그 의론만을 칭찬하고, 진실은 버리고 허명만을 드날려서 헛된 명예를 낚아 출세를 하고자하는 것으로 임금을 기롱하고 헐뜯는 행위가 되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계획하고 행동으로 옮긴 그의 행위가 어찌 너무나도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조리 없는 말과 요망한 생각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비록 곧바로 기롱하고 헐뜯었다는 죄목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시비는 분명히 밝혀 간사한 주장을 통박하고 조정에서 몰아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우원이 올린 한 장의 요망한 상소는 임금을 기롱하고 헐뜯는 것에 관련되어 죄를 얻어 내쫓겼다는 것을 알게 한 뒤에야 올바른 논의가 시행되고 교활한 실정이 비로소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발의를 하는 것은 참으로 그만 둘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대간들 사이에 의견이 서로 어긋나서 왜곡된 말을 주장하면서 공평하고 사리에 맞는 길을 버리고 사특하고 험한 길로 치달으면서 장황하게 기력을 다하여 다른 의견들을 내는데, 너무 과격하여 미안하다고도 하고 혹은 망발이라고도 하며, 혹은 말을 가려 쓰지 않았다고도 하고, 혹은 상도를 벗어난 지나친 말이기는 하나 무슨 해로울 것이 있느냐고도 하고, 혹은 거리낌없이 다 말했으니 다른 사람은 그렇게 못한다는 등 모두들 ‘말을 한 사람은 죄주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마치 상의 분부에 따라 진달한 말로서 그 논의가 더 할 수 없이 곧은 것인양 하니, 그들 마음으로는 과연 우원의 상소가 참으로 직언이라 여겨서인지 아니면 내심으로는 그의 잘못을 알면서도 짐짓 큰 소리를 쳐서 스스로 아름다운 이름을 차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실로 그 점이 괴이합니다.

아, 지금 세상은 의리가 꽉 막히고, 시비가 전도되어 사람들은 주견이 없고, 선비들은 분명한 공론이 없습니다. 다투어 명예를 좇고 권세있는 자를 뒤따릅니다. 한 사람이 선창하면 뭇사람이 다투어 화답하는데 사리의 옳고 그름을 전혀 모르며 시비를 가릴 줄을 모르므로 차라리 임금에게 악명을 돌릴지언정 동류들과는 어긋나지 않으려 합니다. 습성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그리고 이른바 ‘망발’이라고 하는 것은 말을 만들다가 한두 자 잘못 놓는 것을 말함이지, 어찌 한 편의 논지가 구절마다 놀라운 것을 가지고 망말이라고 핑계댈 수 있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또 이른바 ‘자취가 역적을 보호한 것과 관련이 있으니 실로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더욱 가소로운 말입니다. 신하로서 참으로 역적을 보호할 의도가 있었다면 이것은 바로 역적입니다. 법은 지극히 엄하고 국가에는 일정한 형벌이 있는데, 그에 대한 논죄가 어찌 쫓아내는 벌만으로 그칠 뿐이겠습니까. 만약 흉악한 역적도 사리를 밝혀 따진 뒤에야 벌을 시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밖의 작은 죄는 모두 논란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우원의 소가 이와 같이 요망한데도 끝내 한 마디 흑백을 가리는 말이 없이 드러내 놓고 공격한 내용이 역사책에 기록되어 사람들의 입에 전파된다면, 필시 그 상소를 당시의 공론으로 여길 것이니,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름다운 이름이 과연 성상께 돌아가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습속을 통탄스럽게 여기는 까닭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우원의 말에 대해 죄를 주어야 될 뿐만아니라 앞장서서 헛된 의논을 주창하여 구원하기를 힘써 주장한 이상진(李尙眞)·조진석(趙晋錫)·서정연(徐挺然) 등도 모두 죄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선왕조 때에 공(珙)의 이름이 역적의 입에서 나와 공이 유배되었을 때 목성선(睦性善) 등이 구언(求言)하는 분부에 따라 소를 올려 구원했었는데, 삼사가 일시에 발론하여 죄를 주라고 청하기도 하고 소장을 불태우라고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 강학년(姜鶴年)도 구언하는 부분에 따라 진언하였는데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자를 대신했다.’는 설이 있자 양사가 번갈아 소를 올려 심지어는 형률을 적용하자고 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당시 구언하는 날에는 ‘말하는 자에게 죄를 주지 않겠다.’는 하교가 있었고, 당시의 삼사에 있던 신하 또한 노성한 사람이 많았으되 ‘말한 자에게 죄주지 않는 것이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실로 법은 지극히 중하고 공론은 더 없이 엄한 까닭인 것입니다. 어찌 소견이 지금 사람들만 못해서 그랬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옥당의 처치를 보면 어찌 이다지도 거리낌이 없단 말입니까. 공론을 담당한 곳으로서 같은 입장이라는 혐의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힘써 정당한 논의를 저지하여 시비를 도치시키고 있는 오늘날 삼사의 의논은 어찌 이다지도 논거가 없단 말입니까.

신은 실로 이 논의가 한번 나아가면 뭇 비방이 따라 일어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언관의 자리에 있는 몸으로 논의가 어긋나고 시비가 도착됨을 목격하고서 침묵을 지키면서 차마 성명을 저버릴 수 없기에 감히 구구한 견해를 진달합니다. 삼가 성명께서는 굽어살피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사양하지 말고, 속히 출사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심하도다. 이시해(李時楷)가 사람을 공격함이여. 우원의 상소 내용이 역적 조의 원통함을 말하고 징과 숙을 구원하였다면 이 또한 역적의 무리이니,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엄숙하게 토죄할 것을 청하여 곧바로 역적을 감싸고 구원한 데 대한 형벌을 가해야 옳다. 그 죄가 어찌 기롱하고 헐뜯은 자에 대한 율이나 내쳐서 유배하는 벌에 그칠 뿐이겠는가. 우원의 본의는, 역적 조의 흉한 역모는 비록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고 왕법에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징과 숙은 당시 임금의 동기이고 어린 아이이니 만약 섬에서 어느날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동기를 사랑하는 지극한 덕에 흠결이라도 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우리 임금의 변에 대처하는 도리가 지극히 훌륭한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해서였다. 그러나 다만 말이 망녕될 뿐이었다. 지금 시해는 본의는 따지지 않고 단지 글자만 들추어 내어 고사를 인용 비유하면서 구절마다 주해하였다. 심지어는 총희(寵姬) 등의 말까지 하면서 우원의 불경한 죄를 만들었으니 아, 심하다.

  • [註 032] 이경업(李敬業) : 당 이적(李勣)의 손자.
  • [註 033] 무씨(武氏) : 측천 무후(則天武后).

원문

○大司憲李時楷上疏曰:

近以洪宇遠之疏, 臺閣有乖角之議, 臣不勝慨然焉。 當初宇遠陳疏之後, 人有傳誦數款之語, 已不勝怪愕矣, 及見謄本, 則一篇立論, 無非可駭無倫之辭, 不圖人之爲言至此也。 自古進言, 不一其道, 或遠諫焉, 或近諫焉, 或正言焉, 或切言焉, 有諷諫者, 有幾諫者, 皆指斥人主之過失, 歷擧時政之闕誤。 故後世稱之, 靑史美之焉。 有事得其當, 而反謂之過, 全無是事, 而勒加其失, 肆然無忌, 有若揚罪者焉哉? 試以原疏, 徐究其意, 則首尾措語, 大相紕繆, 橫說竪說, 都是怪妄, 雖謂之妖疏可也。 疏中所謂: "趙賊兇逆, 天地之所不容, 王法之所不貸, 旣已伏辜, 兩兒安置海島, 斯爲宗社之幸。" 云, 此則罪人斯得, 人心咸悅之辭也。 繼以 "趙賊先王之寵姬, 澂、潚先王之愛子, 而三年纔過, 陵土未乾, 寵姬殛死, 愛子流竄。" 爲言, 此則悼惜其死, 有若稱冤之辭也。 前後之言, 自相矛盾, 不翅黑白之相反。 如前之言, 則豈當以三年、陵土、寵姬、愛子等語, 露諸文字; 如後之言, 則不當以伏辜、安置, 爲宗社之幸等說爲言。 不知其意在於人心咸悅耶, 在於悼惜稱冤耶, 臣實怪之。 且寵姬云者, 如殷、周之褒、妲, 晋 獻之驪姬, 唐 玄之貴妃之類也。 雖無作逆之事, 只此寵姬二字, 足以死矣。 況夏桀、周幽、獻公、明皇, 何等人君也? 敢以此語, 侵及先王, 其亦不敬甚矣。 至於陵土未乾之說, 始見於李敬業討武氏之檄, 若非問罪之擧, 不當引用此語也明矣。 爲人臣子, 何忍發此言也? 其疏又曰: "澂、潚藐爾穉少, 無所知識, 其母之謀, 必不預知, 所坐只是其母之罪。" 云, 此則全昧治獄曲折而言也。 潚則年雖穉少, 方其賊黨, 內外締結, 謀議易樹之際, 評命擇立之說, 雜出於諸賊之招, 澂則預知其母之謀, 至於自竊衣帶而出, 易立之計, 雖非自圖, 行兇之端, 渠亦參知。 賊黨所供, 昭載文案, 其曰: "以情而言, 必不預知。" 云者, 未知何所據, 而申救至此耶。 且玉成等說, 誠不滿一笑也。 其疏又曰: "先王在天之靈, 悼恨懷痛, 與天爲一, 崇降不祥, 未必不由於此。" 云, 何其妖且妄也? 平治亂逆, 保全國家, 實是宗社之慶, 祖宗之靈, 於昭于天, 中外臣民之賀, 宜與同之, 豈有悼痛降災之理乎? 務爲怪變之說, 上誣先王之靈, 尤可駭也。 其疏又曰: "秦 二世戮死十二公子, 終未免望夷之禍; 齊明帝殺諸王十五六人, 卒爲蕭道成簒奪。 猜疑多殺, 終亦促亡。" 云, 讀至於此, 毛竪骨爽。 國家不幸, 變出宮掖, 自點之一門圖逆, 賊趙之母女同兇, 內外締結, 禍迫朝夕, 宗社之危, 間不容髮, 幸而發覺, 群兇伏法。 至如賊趙罪逆彰著, 爲賊元兇, 而聖明猶且惻憫, 不忍加法, 廷臣控請, 久而始許, 只令自盡于家。 世龍之妻, 手齎兇物, 行逆狼藉, 不但謀害聖躬, 亦且上犯慈殿, 揆諸王法, 罪不容貸, 而殿下特推同氣之仁, 獨違國人之議, 貸其性命, 安處近邑。 此, 殿下過於全恩, 屈其王法, 友愛之隆、曲護之意, 至矣盡矣, 前代帝王之所未見也。 有惡如此, 尙得保全, 則況骨肉至親, 孰有無罪被戮者, 而宇遠乃以千古暴君, 戮殺無辜之公子、諸王, 終至被弑亡國者, 引而證之。 且曰: "爲帝王骨肉、親戚, 不亦可哀?"云, 凡此等語, 乃臣子所不忍言、所不忍聞也。 苟非譏貶君父罪狀, 官家不敢爲如此之說, 而宇遠恣言之, 抑何意耶? 宇遠非病風喪心之人, 豈不知此言之爲悖倫違理, 亦豈敢有意伸理已死之兇逆, 而猶且冒死云爾, 則其意蓋在於務爲新奇之論, 能言不言之事, 沽直於身, 歸惡於上。 欲使談者, 黜其情而褒其論, 去其實而揚其名, 賭虛譽而媒進取, 自不覺其譏貶君上之歸。 其所以營於心, 作於事者, 豈非可惡之甚乎? 語之無倫, 意之妖妄, 乃至於此, 雖不可直加以譏貶之罪, 而固當辨白是非, 痛斥邪說, 屛黜於朝, 使人人皆知宇遠進一妖疏, 語涉譏貶, 得罪而去, 然後正論得行而巧情乃露也。 今日發此論者, 誠不可已, 而臺閣之上, 意見相左, 曲爲辭說, 舍平順之路, 而趨邪險之徑, 張皇竭氣, 生出別意, 或謂之太激未安, 或謂之妄發, 或謂之辭說不擇, 或謂之矯激之言, 有何所損, 或謂之盡言不諱, 餘人不如, 咸以言者不罪爲言, 有若應旨進言, 所論直截者然, 未知其心果以宇遠之疏, 爲眞直言耶, 抑心知其非, 而姑爲大言, 自附於掠美之地耶, 臣實怪之。 噫! 當今之世, 義理晦塞, 是非顚倒, 人無主見, 士無的論, 趨名競進, 逐影尋響。 一人先唱, 衆口爭和, 全昧事理之當否, 不知是非之可明, 寧歸惡名於君上, 不欲崖異於輩流, 習俗至此, 良可寒心。 且所謂妄發云者, 措語間誤下一二文字之謂也, 寧有一篇立意, 逐節可駭, 而諉諸妄發之理乎? 且所謂跡涉護逆, 則罪固難貰云者, 尤可笑也。 人臣苟有護逆之意, 則便是逆也。 三尺至嚴, 國有常刑, 其所論罪, 奚遽止於黜罰而已乎? 若謂伸理兇逆, 然後方可施罰云, 則此外輕重之罪, 皆無可論之時乎。 宇遠之疏, 妖妄如此, 而終無一言辨白, 顯加攻斥, 書諸史冊, 播於人口, 則必以其疏爲一時之公言, 未知美名果歸於聖躬乎? 此臣所以痛恨於習俗之見也。 臣之愚意, 則非但宇遠之言爲可罪, 首唱浮論, 力主伸救如李尙眞、趙晋錫、徐挺然等, 皆可罪也。 往在先朝, 珙之出於賊口, 而竄黜也, 睦性善等, 因求言之旨, 陳疏救解, 而三司俱發, 或請論罪, 或請焚疏。 其後姜鶴年亦因求言之旨, 有以暴易暴之說, 兩司交章, 至請按律。 其時求言之日, 亦有不罪之敎, 其時三司之臣, 亦多耆耉之人, 而曾未聞以言者不罪爲言, 良以王法至重, 公議至嚴故也。 豈其所見不及於今世之人而然乎? 且見玉堂處置, 何其無忌至此也? 公論之地, 不避一家之嫌, 力沮正議, 是非倒置, 今日三司之論, 一何無據之至此也? 臣固知此論一發, 衆訾隨至, 而身忝言地, 目見論議之乖剌, 是非之倒錯, 不忍含默, 以負聖明, 敢陳區區之見, 伏願聖明, 垂察焉。

答曰: "卿其勿辭, 從速出仕。"

【史臣曰: "甚矣, 李時楷之攻人也! 宇遠疏辭, 若稱趙賊之冤, 伸救澂、潚, 則是亦逆徒也, 凡有血氣者, 固宜沐浴請討, 直加以護逆之刑可也。 其罪奚至於譏貶之律, 屛黜之罰而已乎? 宇遠之意以爲, 逆趙兇逆, 雖天地之所不容, 王法之所不貸, 至於澂、潚則當宁之同氣也。 幼穉之兒, 若一朝溘然於海島之中, 則恐有歉於大舜封象之至德, 故欲使吾君處變之道, 止於至善之地, 而特其措語之妄耳。 今者時楷不原本意, 只鉤文字, 援古比喩, 逐節註解, 至以寵姬等語, 成宇遠不敬之罪, 吁其甚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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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13권, 효종 5년 7월 4일 辛卯 2/2 기사 / 1654년 청 순치(順治) 11년

홍우원의 상소로 홍우원과 이상진 등을 죄주어야 한다는 대사헌 이시해의 상소문

국역

대사헌 이시해(李時楷)가 상소하기를,

"근일 홍우원의 상소로 대각의 논의가 비꼬이게 되었으니 신은 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당초 홍우원이 소를 올린 뒤에 사람들이 전하는 몇 마디 말에 의아심과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다가 등본(謄本)을 본즉 전편의 논지가 모두 해괴하고 조리 없는 것들 뿐이라 사람의 말이 이 지경에까지 이를 줄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로부터 진언(進言)하는 방도가 한결같지 않아 멀리 둘러서 간하기도 하고, 가까운 비유를 들어 간하기도 하고, 혹 바른 말로 간하기도 하며, 풍간(風諫)하는 자도 있는데 모두 임금의 과실을 지적하거나 당시 정치의 잘못을 열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고, 역사에서 이를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어찌 타당한 일을 도리어 잘못이라고 말하고, 전혀 그런 일이 없는데도 잘못을 덮어 씌우면서 방자하고 기탄없이 마치 죄를 들추듯이 하는 경우가 있었겠습니까?

원소(原疏)를 가지고 면밀히 그 본의를 따져 보면 앞과 뒤의 말이 서로 맞지 않아 횡설수설한 것이 도대체 괴상망측하여 요망한 소리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소의 내용 중에 이른바 ‘역적 조(趙)의 흉악한 반역 행위는 천지가 용서하지 않고 왕법이 용서하지 않아 이미 복주(伏誅)되었고, 두 아이를 해도에 안치한 것은 종묘사직의 행복이다.’고 했으니 이는 죄인이 정당한 벌을 받아 인심이 모두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어 ‘역적 조는 선왕의 총희(寵姬)이고, 이징(李澂)과 이숙(李潚)은 선왕의 사랑하는 아들인데, 겨우 3년이 지나 선왕의 능침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총희는 죽음을 당하고 사랑하는 아들은 유배되었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원망이 있는 듯한 말입니다. 앞뒤의 말이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흑백이 상반되는 정도 만이 아닙니다. 앞의 말대로라면 어찌 3년이니, 능침의 흙이니, 총희니, 사랑하는 자식이니 하는 등의 말을 문자로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뒤의 말대로라면 복주하고 안치되었으니 종묘사직의 다행이라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부당한 것입니다. 그의 본 뜻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한다는 것인지 불쌍해 하고 원통해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은 실로 이를 괴이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총희라고 하는 것은 은(殷)나라의 달기(妲己)나 주(周)나라의 포사(褒似), 진 헌공(晋獻公)의 여희(驪姬)나 당 현종(唐玄宗)의 귀비(貴妃)같은 류의 지칭입니다. 역적 모의를 꾸민 일이 없더라도 이 총희 두 글자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죽을 만합니다. 하물며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나 주나라의 유왕(幽王), 헌공·명황(明皇) 등이 어떤 부류의 임금입니까? 감히 이 말로 선왕까지 범하였으니 이것 또한 심한 불경입니다. 능침의 흙이 마르지 않았다는 말은 이경업(李敬業)032) 이 무씨(武氏)033) 를 성토하는 격문(檄文)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인데, 만약 죄를 묻는 거조가 아니라면 이러한 말들을 인용함은 부당함이 분명합니다. 신하된 자로서 어떻게 차마 이러한 발언을 한단 말입니까.

그 소에 또 이르기를, ‘이징과 이숙은 어리고 지식도 없어서 자기 어미의 모의를 필시 미리 알지 못했을 것이며 단지 그 어미의 죄로 인하여 연좌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옥사를 다스리는 곡절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숙은 비록 어렸지만 그 적당들이 한창 내외로 결탁하여 반역의 음모를 모의할 적에 누구의 명(命)이 나은가를 평해서 가려 세우려 했다는 말이 여러 역적의 공초에서 뒤섞여 나왔고, 징은 그 어미의 음모를 미리 알고 스스로 의대(衣帶)를 훔쳐 내오기까지 했으니 반역의 계략을 스스로 꾸민 것은 아니더라도 흉모를 저지른 단서는 그들 역시 참여해 알았습니다. 적당의 공술한 문안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는데도 홍우원은 ‘실정을 가지고 말한다면 필시 몰랐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까지 구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옥성(玉成) 등의 말은 실로 하나의 웃음거리도 되지 못합니다.

그 소에 또 말하기를, ‘하늘에 계신 선왕의 혼령이 슬퍼서 애통해 하실 것이며 하늘과 같으시니 재앙을 내리는 것이 이것 때문이 아니라고 기필할 수 없다.’는 말은 어찌 그리도 요망스럽습니까. 난역을 다스려 국가를 보전한 것은 실로 종묘사직의 경사로서 조종의 혼령이 하늘에서 밝게 살피시며 중외 신민들의 하례(賀禮)를 함께 하실 것인데 어찌 애통해 하며 재앙을 내릴 이치가 있겠습니까. 재변의 설을 애써 주장하여 위로 선왕의 혼령을 속이니 더욱 해괴합니다.

그 소에 또 말하기를, ‘진 이세(秦二世)는 열 두 공자(公子)를 죽였다가 끝내 망이궁(望夷宮)에서 살해되는 화를 면하지 못하였고, 제 명제(齊明帝)는 15∼16인의 왕들을 죽이고는 마침내 소도성(簫道成)에게 찬탈당하였다. 시기와 의심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끝내는 멸망을 재촉하였다.’고 했는데 여기까지 읽게 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국가가 불행하여 변란이 궁액(宮掖) 가운데서 나와 자점(自點)의 온 집안이 역모를 꾀하였고, 역적 조(趙)의 모녀가 흉모를 함께하여 안팎으로 결탁 화가 조석간에 임박하여 종묘 사직의 위기가 일촉즉발이었다가 다행이 발각되어 여러 흉적들이 법에 따라 복주되었습니다. 역적 조와 같은 경우는 역모의 죄상이 역적 중에서도 우두머리였으나 성명께서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차마 법대로 적용하지 않으시다가, 조정 신하들이 반대하며 청하자 오랜 뒤에야 비로소 허락하셨으며 그것도 집에서 자진(自盡)하도록만 하시었습니다. 세룡(世龍)의 처는 제손으로 직접 흉측한 물건을 싸가지고 오는 등 저지른 역모가 많아 성상의 옥체를 해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자전까지도 범하려 했으니 법(法)으로 헤아려 볼 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인데도 전하께서는 특별히 동기를 사랑하는 인애를 미루어 홀로 온 나라 사람들의 공론을 어기면서까지 그의 목숨을 용서하여 가까운 고을에서 편안히 살게 하시었습니다. 이는 전하께서 은혜를 온전히 하시려는 생각이 지나쳐 법을 굽히신 것으로, 우애의 성대함과 곡진히 보호하신 본의가 지극하시어 전대 제왕(帝王)에게서는 볼 수 없던 일입니다.

이러한 악이 있는데도 오히려 목숨을 보전하였으니 하물며 골육 지친 중에 누가 죄없이 죽음을 당한 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원은 천고에 없는 폭군이 죄없는 공자나 왕들을 마구 죽이다가 끝내는 시해을 당하고 나라를 잃은 자들을 증거로 인용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제왕의 골육과 친척이니 또한 슬프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말들을 신하로서는 차마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실로 군부(君父)의 죄상을 기롱하는 것이 아니라면 관원으로서 이러한 말은 할 수 없는데 우원이 함부로 이런 말을 하였으니 또한 무슨 의도이겠습니까? 우원이 풍병이 들어 실성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말이 윤리나 도리에 어긋나는 줄을 모를 것이며, 또한 어찌 감히 이미 죽은 흉역을 위해 사리를 밝혀 따질 생각을 갖겠습니까. 그런데도 ‘죽음을 무릅쓴다.’고 했으니 이는 그의 의도가 새로운 기이한 의를 펴서 남이 말하지 못하는 일을 말함으로써 강직하다는 이름은 자신이 차지하고 악명은 상에게 돌리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자들로 하여금 실정은 버리고 그 의론만을 칭찬하고, 진실은 버리고 허명만을 드날려서 헛된 명예를 낚아 출세를 하고자하는 것으로 임금을 기롱하고 헐뜯는 행위가 되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계획하고 행동으로 옮긴 그의 행위가 어찌 너무나도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조리 없는 말과 요망한 생각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비록 곧바로 기롱하고 헐뜯었다는 죄목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시비는 분명히 밝혀 간사한 주장을 통박하고 조정에서 몰아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우원이 올린 한 장의 요망한 상소는 임금을 기롱하고 헐뜯는 것에 관련되어 죄를 얻어 내쫓겼다는 것을 알게 한 뒤에야 올바른 논의가 시행되고 교활한 실정이 비로소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발의를 하는 것은 참으로 그만 둘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대간들 사이에 의견이 서로 어긋나서 왜곡된 말을 주장하면서 공평하고 사리에 맞는 길을 버리고 사특하고 험한 길로 치달으면서 장황하게 기력을 다하여 다른 의견들을 내는데, 너무 과격하여 미안하다고도 하고 혹은 망발이라고도 하며, 혹은 말을 가려 쓰지 않았다고도 하고, 혹은 상도를 벗어난 지나친 말이기는 하나 무슨 해로울 것이 있느냐고도 하고, 혹은 거리낌없이 다 말했으니 다른 사람은 그렇게 못한다는 등 모두들 ‘말을 한 사람은 죄주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마치 상의 분부에 따라 진달한 말로서 그 논의가 더 할 수 없이 곧은 것인양 하니, 그들 마음으로는 과연 우원의 상소가 참으로 직언이라 여겨서인지 아니면 내심으로는 그의 잘못을 알면서도 짐짓 큰 소리를 쳐서 스스로 아름다운 이름을 차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실로 그 점이 괴이합니다.

아, 지금 세상은 의리가 꽉 막히고, 시비가 전도되어 사람들은 주견이 없고, 선비들은 분명한 공론이 없습니다. 다투어 명예를 좇고 권세있는 자를 뒤따릅니다. 한 사람이 선창하면 뭇사람이 다투어 화답하는데 사리의 옳고 그름을 전혀 모르며 시비를 가릴 줄을 모르므로 차라리 임금에게 악명을 돌릴지언정 동류들과는 어긋나지 않으려 합니다. 습성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그리고 이른바 ‘망발’이라고 하는 것은 말을 만들다가 한두 자 잘못 놓는 것을 말함이지, 어찌 한 편의 논지가 구절마다 놀라운 것을 가지고 망말이라고 핑계댈 수 있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또 이른바 ‘자취가 역적을 보호한 것과 관련이 있으니 실로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더욱 가소로운 말입니다. 신하로서 참으로 역적을 보호할 의도가 있었다면 이것은 바로 역적입니다. 법은 지극히 엄하고 국가에는 일정한 형벌이 있는데, 그에 대한 논죄가 어찌 쫓아내는 벌만으로 그칠 뿐이겠습니까. 만약 흉악한 역적도 사리를 밝혀 따진 뒤에야 벌을 시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밖의 작은 죄는 모두 논란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우원의 소가 이와 같이 요망한데도 끝내 한 마디 흑백을 가리는 말이 없이 드러내 놓고 공격한 내용이 역사책에 기록되어 사람들의 입에 전파된다면, 필시 그 상소를 당시의 공론으로 여길 것이니,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름다운 이름이 과연 성상께 돌아가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습속을 통탄스럽게 여기는 까닭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우원의 말에 대해 죄를 주어야 될 뿐만아니라 앞장서서 헛된 의논을 주창하여 구원하기를 힘써 주장한 이상진(李尙眞)·조진석(趙晋錫)·서정연(徐挺然) 등도 모두 죄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선왕조 때에 공(珙)의 이름이 역적의 입에서 나와 공이 유배되었을 때 목성선(睦性善) 등이 구언(求言)하는 분부에 따라 소를 올려 구원했었는데, 삼사가 일시에 발론하여 죄를 주라고 청하기도 하고 소장을 불태우라고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 강학년(姜鶴年)도 구언하는 부분에 따라 진언하였는데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자를 대신했다.’는 설이 있자 양사가 번갈아 소를 올려 심지어는 형률을 적용하자고 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당시 구언하는 날에는 ‘말하는 자에게 죄를 주지 않겠다.’는 하교가 있었고, 당시의 삼사에 있던 신하 또한 노성한 사람이 많았으되 ‘말한 자에게 죄주지 않는 것이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실로 법은 지극히 중하고 공론은 더 없이 엄한 까닭인 것입니다. 어찌 소견이 지금 사람들만 못해서 그랬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옥당의 처치를 보면 어찌 이다지도 거리낌이 없단 말입니까. 공론을 담당한 곳으로서 같은 입장이라는 혐의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힘써 정당한 논의를 저지하여 시비를 도치시키고 있는 오늘날 삼사의 의논은 어찌 이다지도 논거가 없단 말입니까.

신은 실로 이 논의가 한번 나아가면 뭇 비방이 따라 일어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언관의 자리에 있는 몸으로 논의가 어긋나고 시비가 도착됨을 목격하고서 침묵을 지키면서 차마 성명을 저버릴 수 없기에 감히 구구한 견해를 진달합니다. 삼가 성명께서는 굽어살피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사양하지 말고, 속히 출사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심하도다. 이시해(李時楷)가 사람을 공격함이여. 우원의 상소 내용이 역적 조의 원통함을 말하고 징과 숙을 구원하였다면 이 또한 역적의 무리이니,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엄숙하게 토죄할 것을 청하여 곧바로 역적을 감싸고 구원한 데 대한 형벌을 가해야 옳다. 그 죄가 어찌 기롱하고 헐뜯은 자에 대한 율이나 내쳐서 유배하는 벌에 그칠 뿐이겠는가. 우원의 본의는, 역적 조의 흉한 역모는 비록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고 왕법에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징과 숙은 당시 임금의 동기이고 어린 아이이니 만약 섬에서 어느날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동기를 사랑하는 지극한 덕에 흠결이라도 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우리 임금의 변에 대처하는 도리가 지극히 훌륭한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해서였다. 그러나 다만 말이 망녕될 뿐이었다. 지금 시해는 본의는 따지지 않고 단지 글자만 들추어 내어 고사를 인용 비유하면서 구절마다 주해하였다. 심지어는 총희(寵姬) 등의 말까지 하면서 우원의 불경한 죄를 만들었으니 아, 심하다.

  • [註 032] 이경업(李敬業) : 당 이적(李勣)의 손자.
  • [註 033] 무씨(武氏) : 측천 무후(則天武后).

원문

○大司憲李時楷上疏曰:

近以洪宇遠之疏, 臺閣有乖角之議, 臣不勝慨然焉。 當初宇遠陳疏之後, 人有傳誦數款之語, 已不勝怪愕矣, 及見謄本, 則一篇立論, 無非可駭無倫之辭, 不圖人之爲言至此也。 自古進言, 不一其道, 或遠諫焉, 或近諫焉, 或正言焉, 或切言焉, 有諷諫者, 有幾諫者, 皆指斥人主之過失, 歷擧時政之闕誤。 故後世稱之, 靑史美之焉。 有事得其當, 而反謂之過, 全無是事, 而勒加其失, 肆然無忌, 有若揚罪者焉哉? 試以原疏, 徐究其意, 則首尾措語, 大相紕繆, 橫說竪說, 都是怪妄, 雖謂之妖疏可也。 疏中所謂: "趙賊兇逆, 天地之所不容, 王法之所不貸, 旣已伏辜, 兩兒安置海島, 斯爲宗社之幸。" 云, 此則罪人斯得, 人心咸悅之辭也。 繼以 "趙賊先王之寵姬, 澂、潚先王之愛子, 而三年纔過, 陵土未乾, 寵姬殛死, 愛子流竄。" 爲言, 此則悼惜其死, 有若稱冤之辭也。 前後之言, 自相矛盾, 不翅黑白之相反。 如前之言, 則豈當以三年、陵土、寵姬、愛子等語, 露諸文字; 如後之言, 則不當以伏辜、安置, 爲宗社之幸等說爲言。 不知其意在於人心咸悅耶, 在於悼惜稱冤耶, 臣實怪之。 且寵姬云者, 如殷、周之褒、妲, 晋 獻之驪姬, 唐 玄之貴妃之類也。 雖無作逆之事, 只此寵姬二字, 足以死矣。 況夏桀、周幽、獻公、明皇, 何等人君也? 敢以此語, 侵及先王, 其亦不敬甚矣。 至於陵土未乾之說, 始見於李敬業討武氏之檄, 若非問罪之擧, 不當引用此語也明矣。 爲人臣子, 何忍發此言也? 其疏又曰: "澂、潚藐爾穉少, 無所知識, 其母之謀, 必不預知, 所坐只是其母之罪。" 云, 此則全昧治獄曲折而言也。 潚則年雖穉少, 方其賊黨, 內外締結, 謀議易樹之際, 評命擇立之說, 雜出於諸賊之招, 澂則預知其母之謀, 至於自竊衣帶而出, 易立之計, 雖非自圖, 行兇之端, 渠亦參知。 賊黨所供, 昭載文案, 其曰: "以情而言, 必不預知。" 云者, 未知何所據, 而申救至此耶。 且玉成等說, 誠不滿一笑也。 其疏又曰: "先王在天之靈, 悼恨懷痛, 與天爲一, 崇降不祥, 未必不由於此。" 云, 何其妖且妄也? 平治亂逆, 保全國家, 實是宗社之慶, 祖宗之靈, 於昭于天, 中外臣民之賀, 宜與同之, 豈有悼痛降災之理乎? 務爲怪變之說, 上誣先王之靈, 尤可駭也。 其疏又曰: "秦 二世戮死十二公子, 終未免望夷之禍; 齊明帝殺諸王十五六人, 卒爲蕭道成簒奪。 猜疑多殺, 終亦促亡。" 云, 讀至於此, 毛竪骨爽。 國家不幸, 變出宮掖, 自點之一門圖逆, 賊趙之母女同兇, 內外締結, 禍迫朝夕, 宗社之危, 間不容髮, 幸而發覺, 群兇伏法。 至如賊趙罪逆彰著, 爲賊元兇, 而聖明猶且惻憫, 不忍加法, 廷臣控請, 久而始許, 只令自盡于家。 世龍之妻, 手齎兇物, 行逆狼藉, 不但謀害聖躬, 亦且上犯慈殿, 揆諸王法, 罪不容貸, 而殿下特推同氣之仁, 獨違國人之議, 貸其性命, 安處近邑。 此, 殿下過於全恩, 屈其王法, 友愛之隆、曲護之意, 至矣盡矣, 前代帝王之所未見也。 有惡如此, 尙得保全, 則況骨肉至親, 孰有無罪被戮者, 而宇遠乃以千古暴君, 戮殺無辜之公子、諸王, 終至被弑亡國者, 引而證之。 且曰: "爲帝王骨肉、親戚, 不亦可哀?"云, 凡此等語, 乃臣子所不忍言、所不忍聞也。 苟非譏貶君父罪狀, 官家不敢爲如此之說, 而宇遠恣言之, 抑何意耶? 宇遠非病風喪心之人, 豈不知此言之爲悖倫違理, 亦豈敢有意伸理已死之兇逆, 而猶且冒死云爾, 則其意蓋在於務爲新奇之論, 能言不言之事, 沽直於身, 歸惡於上。 欲使談者, 黜其情而褒其論, 去其實而揚其名, 賭虛譽而媒進取, 自不覺其譏貶君上之歸。 其所以營於心, 作於事者, 豈非可惡之甚乎? 語之無倫, 意之妖妄, 乃至於此, 雖不可直加以譏貶之罪, 而固當辨白是非, 痛斥邪說, 屛黜於朝, 使人人皆知宇遠進一妖疏, 語涉譏貶, 得罪而去, 然後正論得行而巧情乃露也。 今日發此論者, 誠不可已, 而臺閣之上, 意見相左, 曲爲辭說, 舍平順之路, 而趨邪險之徑, 張皇竭氣, 生出別意, 或謂之太激未安, 或謂之妄發, 或謂之辭說不擇, 或謂之矯激之言, 有何所損, 或謂之盡言不諱, 餘人不如, 咸以言者不罪爲言, 有若應旨進言, 所論直截者然, 未知其心果以宇遠之疏, 爲眞直言耶, 抑心知其非, 而姑爲大言, 自附於掠美之地耶, 臣實怪之。 噫! 當今之世, 義理晦塞, 是非顚倒, 人無主見, 士無的論, 趨名競進, 逐影尋響。 一人先唱, 衆口爭和, 全昧事理之當否, 不知是非之可明, 寧歸惡名於君上, 不欲崖異於輩流, 習俗至此, 良可寒心。 且所謂妄發云者, 措語間誤下一二文字之謂也, 寧有一篇立意, 逐節可駭, 而諉諸妄發之理乎? 且所謂跡涉護逆, 則罪固難貰云者, 尤可笑也。 人臣苟有護逆之意, 則便是逆也。 三尺至嚴, 國有常刑, 其所論罪, 奚遽止於黜罰而已乎? 若謂伸理兇逆, 然後方可施罰云, 則此外輕重之罪, 皆無可論之時乎。 宇遠之疏, 妖妄如此, 而終無一言辨白, 顯加攻斥, 書諸史冊, 播於人口, 則必以其疏爲一時之公言, 未知美名果歸於聖躬乎? 此臣所以痛恨於習俗之見也。 臣之愚意, 則非但宇遠之言爲可罪, 首唱浮論, 力主伸救如李尙眞、趙晋錫、徐挺然等, 皆可罪也。 往在先朝, 珙之出於賊口, 而竄黜也, 睦性善等, 因求言之旨, 陳疏救解, 而三司俱發, 或請論罪, 或請焚疏。 其後姜鶴年亦因求言之旨, 有以暴易暴之說, 兩司交章, 至請按律。 其時求言之日, 亦有不罪之敎, 其時三司之臣, 亦多耆耉之人, 而曾未聞以言者不罪爲言, 良以王法至重, 公議至嚴故也。 豈其所見不及於今世之人而然乎? 且見玉堂處置, 何其無忌至此也? 公論之地, 不避一家之嫌, 力沮正議, 是非倒置, 今日三司之論, 一何無據之至此也? 臣固知此論一發, 衆訾隨至, 而身忝言地, 目見論議之乖剌, 是非之倒錯, 不忍含默, 以負聖明, 敢陳區區之見, 伏願聖明, 垂察焉。

答曰: "卿其勿辭, 從速出仕。"

【史臣曰: "甚矣, 李時楷之攻人也! 宇遠疏辭, 若稱趙賊之冤, 伸救澂、潚, 則是亦逆徒也, 凡有血氣者, 固宜沐浴請討, 直加以護逆之刑可也。 其罪奚至於譏貶之律, 屛黜之罰而已乎? 宇遠之意以爲, 逆趙兇逆, 雖天地之所不容, 王法之所不貸, 至於澂、潚則當宁之同氣也。 幼穉之兒, 若一朝溘然於海島之中, 則恐有歉於大舜封象之至德, 故欲使吾君處變之道, 止於至善之地, 而特其措語之妄耳。 今者時楷不原本意, 只鉤文字, 援古比喩, 逐節註解, 至以寵姬等語, 成宇遠不敬之罪, 吁其甚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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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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