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12권, 효종 5년 6월 17일 乙亥 6/7 기사 / 1654년 청 순치(順治) 11년
헌부가 훌륭한 정치를 이루는 방법에 대하여 아뢰다
국역
헌부가 【행 대사헌 심지원(沈之源), 집의 홍처대(洪處大), 장령 서정연(徐挺然).】 상차하였는데, 그 대략에,
"신들이 삼가 듣건대 훌륭한 정치를 이루는 방법은 한 가지뿐만이 아니고 난(亂)을 이루는 원인도 한 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임금의 몸에 달려 있으니, 임금이 세상을 어루만지고 사물에 응하는 그 모두가 일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한마디 말, 한가지 동작이 모두 치란(治亂)에 관계되는 것인데, 그 요점은 은미한 심술(心術)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군자가 반드시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였고, 반드시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루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이 학문을 버리고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보건대 신하들이 진언(進言)할 적에 조금이라도 상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바로 실정을 벗어난 전교를 내려 사기(辭氣)를 지나치게 드러내시는데, 비단 꺾는 데 그칠 뿐만이 아닙니다. 이는 전하께서 강학(講學)에 애쓰기는 하지만 공부를 몸에 절실히 하지 않은 데 연유하여 그리 된 것입니다.
옛날 유안세(劉安世)가 사마온공(司馬溫公)을 만나 묻기를 ‘마음을 다하여 자기가 행동하는 요점으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 하니 온공이 대답하기를 ‘성실함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유공(劉公)이 묻기를 ‘성실을 행함에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하니, 온공이 말하기를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유공이 처음에는 매우 쉽게 여겼으나 물러나와서 평소의 행위와 말 모두를 스스로 바로잡아 보려 하였더니 서로 방해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힘껏 행한 지 7년이 지난 뒤에야 이루어져서 이로부터 말과 행동이 일치되고 표리가 서로 호응하여 일을 만났을 적에 태연하여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합니다.
저 유안세는 한 사람의 선비입니다. 사귀는 사람이라야 한 집안의 친척과 한 고을의 사람들, 그리고 동렬(同列)의 신하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도 말과 행동을 서로 비교해보니 오히려 서로 방해되고 모순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크나큰 나라와 많고 많은 백성을 상대하며 갖가지 변화하는 일이 있고 날마다 온갖 기무를 처리하는 임금의 경우 이 모든 것을 몸으로 수작(酬酌)하니, 말에 실수가 없으려고 하더라도 어찌 쉽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옛 성왕(聖王)이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이 마음을 굳게 지켜서 영화로워 동요되는 곳이나 혼자 있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곳에 있더라도 정밀히 살피고 전일하게 지키며 사욕을 이기고 예(禮)를 회복하여 신명(神明)을 대한 듯하며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여 잠시라도 감히 태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희로(喜怒)가 무슨 까닭에 중도(中道)를 잃으며 분함이 무슨 까닭에 일어나며 빠른 말과 갑작스런 안색의 변화가 무슨 까닭에 일어나겠습니까?
덕을 닦는 실상은 인욕(人欲)을 버리고 천리(天理)를 보존함에 있습니다. 이른바 인욕이란 반드시 성색(聲色)이나 재물의 즐거움, 궁실이나 유람의 사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마음에 둔 것이 조금만 바른 것을 잃으면 바로 이것이 인욕인 것입니다. 반드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경계를 두어 하늘을 두려워하며 너그럽고 큰 도량을 확충하여 아랫사람을 대하는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이 마음을 밝고 광대하며 평정하고 중화(中和)하도록 힘써서 겉과 속이 환하게 털끝만큼도 사의(私意)의 하자가 없고 난 다음에야 위로는 하늘을 감격케 하며 아래로는 사람을 감격시킬 수 있게 되어, 하고 싶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이 편안하지 않으며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으며 재이가 그치지 않는 것을 어찌 걱정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가납(嘉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67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원문
○憲府 【行大司憲沈之源、執義洪處大、掌令徐挻然。】 上箚, 其略曰:
臣等伏聞, 致治非止一道, 致亂亦非一道。 然其本係於人主之身, 人君撫世應物, 無非事者。 一言一動, 悉關治亂, 其要在於心術之微。 故古之君子, 必曰格君心之非, 必曰誠意正心。 治心之術, 舍是學, 何以哉? 臣等伏見, 諸臣進言之際, 一有不合於上意, 則輒下情外之敎, 辭氣太露, 不但摧折而止。 此由殿下雖勤於講學, 而功不切己而然也。 昔者劉安世見司馬溫公問: "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 溫公曰: "其誠乎!" 劉公問: "行之何先?" 溫公曰: "自不妄語始。" 劉公初甚易之, 退而自檃括平日之所行, 與凡所言, 自相掣肘矛盾者多矣。 力行七年而後成, 自此言行一致, 表裏相應, 遇事坦然, 常有餘裕。 夫劉安世, 一士人也。 所交者, 一家之親、一鄕之衆、同列之臣而止耳。 然以言行相較, 猶有自相掣肘矛盾者, 況夫一國之大、兆民之衆, 事有萬變, 日有萬幾, 而人君以一身酬酢, 欲言之無失, 豈易能哉? 是以, 古先聖王, 兢兢業業, 持守此心, 雖在芬華波蕩之中, 幽獨得肆之地, 而所以精之一之, 克之復之, 如對神明、如臨淵谷, 不敢有須臾之怠也。 苟如是也, 喜怒何由而失中乎, 忿懥何由而發乎, 疾言遽色, 何由而作乎? 修德之實, 在乎去人欲、存天理。 所謂人欲者, 不必聲色貨利之娛、宮室觀遊之侈也。 但存諸心者, 少失其正, 便是人欲。 必也存祗懼之戒以畏天, 擴寬弘之度以盡下, 務使此心, 虛明廣大, 平正中和, 表裏洞然, 無一毫私意之累。 然後上可以格天, 下可以感人, 而凡所欲爲, 無不如志者, 何患乎民之不乂、國之不治、災之不弭乎?
上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67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효종실록12권, 효종 5년 6월 17일 乙亥 6/7 기사 / 1654년 청 순치(順治) 11년
헌부가 훌륭한 정치를 이루는 방법에 대하여 아뢰다
국역
헌부가 【행 대사헌 심지원(沈之源), 집의 홍처대(洪處大), 장령 서정연(徐挺然).】 상차하였는데, 그 대략에,
"신들이 삼가 듣건대 훌륭한 정치를 이루는 방법은 한 가지뿐만이 아니고 난(亂)을 이루는 원인도 한 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임금의 몸에 달려 있으니, 임금이 세상을 어루만지고 사물에 응하는 그 모두가 일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한마디 말, 한가지 동작이 모두 치란(治亂)에 관계되는 것인데, 그 요점은 은미한 심술(心術)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군자가 반드시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였고, 반드시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루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이 학문을 버리고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보건대 신하들이 진언(進言)할 적에 조금이라도 상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바로 실정을 벗어난 전교를 내려 사기(辭氣)를 지나치게 드러내시는데, 비단 꺾는 데 그칠 뿐만이 아닙니다. 이는 전하께서 강학(講學)에 애쓰기는 하지만 공부를 몸에 절실히 하지 않은 데 연유하여 그리 된 것입니다.
옛날 유안세(劉安世)가 사마온공(司馬溫公)을 만나 묻기를 ‘마음을 다하여 자기가 행동하는 요점으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 하니 온공이 대답하기를 ‘성실함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유공(劉公)이 묻기를 ‘성실을 행함에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하니, 온공이 말하기를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유공이 처음에는 매우 쉽게 여겼으나 물러나와서 평소의 행위와 말 모두를 스스로 바로잡아 보려 하였더니 서로 방해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힘껏 행한 지 7년이 지난 뒤에야 이루어져서 이로부터 말과 행동이 일치되고 표리가 서로 호응하여 일을 만났을 적에 태연하여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합니다.
저 유안세는 한 사람의 선비입니다. 사귀는 사람이라야 한 집안의 친척과 한 고을의 사람들, 그리고 동렬(同列)의 신하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도 말과 행동을 서로 비교해보니 오히려 서로 방해되고 모순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크나큰 나라와 많고 많은 백성을 상대하며 갖가지 변화하는 일이 있고 날마다 온갖 기무를 처리하는 임금의 경우 이 모든 것을 몸으로 수작(酬酌)하니, 말에 실수가 없으려고 하더라도 어찌 쉽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옛 성왕(聖王)이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이 마음을 굳게 지켜서 영화로워 동요되는 곳이나 혼자 있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곳에 있더라도 정밀히 살피고 전일하게 지키며 사욕을 이기고 예(禮)를 회복하여 신명(神明)을 대한 듯하며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여 잠시라도 감히 태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희로(喜怒)가 무슨 까닭에 중도(中道)를 잃으며 분함이 무슨 까닭에 일어나며 빠른 말과 갑작스런 안색의 변화가 무슨 까닭에 일어나겠습니까?
덕을 닦는 실상은 인욕(人欲)을 버리고 천리(天理)를 보존함에 있습니다. 이른바 인욕이란 반드시 성색(聲色)이나 재물의 즐거움, 궁실이나 유람의 사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마음에 둔 것이 조금만 바른 것을 잃으면 바로 이것이 인욕인 것입니다. 반드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경계를 두어 하늘을 두려워하며 너그럽고 큰 도량을 확충하여 아랫사람을 대하는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이 마음을 밝고 광대하며 평정하고 중화(中和)하도록 힘써서 겉과 속이 환하게 털끝만큼도 사의(私意)의 하자가 없고 난 다음에야 위로는 하늘을 감격케 하며 아래로는 사람을 감격시킬 수 있게 되어, 하고 싶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이 편안하지 않으며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으며 재이가 그치지 않는 것을 어찌 걱정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가납(嘉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67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원문
○憲府 【行大司憲沈之源、執義洪處大、掌令徐挻然。】 上箚, 其略曰:
臣等伏聞, 致治非止一道, 致亂亦非一道。 然其本係於人主之身, 人君撫世應物, 無非事者。 一言一動, 悉關治亂, 其要在於心術之微。 故古之君子, 必曰格君心之非, 必曰誠意正心。 治心之術, 舍是學, 何以哉? 臣等伏見, 諸臣進言之際, 一有不合於上意, 則輒下情外之敎, 辭氣太露, 不但摧折而止。 此由殿下雖勤於講學, 而功不切己而然也。 昔者劉安世見司馬溫公問: "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 溫公曰: "其誠乎!" 劉公問: "行之何先?" 溫公曰: "自不妄語始。" 劉公初甚易之, 退而自檃括平日之所行, 與凡所言, 自相掣肘矛盾者多矣。 力行七年而後成, 自此言行一致, 表裏相應, 遇事坦然, 常有餘裕。 夫劉安世, 一士人也。 所交者, 一家之親、一鄕之衆、同列之臣而止耳。 然以言行相較, 猶有自相掣肘矛盾者, 況夫一國之大、兆民之衆, 事有萬變, 日有萬幾, 而人君以一身酬酢, 欲言之無失, 豈易能哉? 是以, 古先聖王, 兢兢業業, 持守此心, 雖在芬華波蕩之中, 幽獨得肆之地, 而所以精之一之, 克之復之, 如對神明、如臨淵谷, 不敢有須臾之怠也。 苟如是也, 喜怒何由而失中乎, 忿懥何由而發乎, 疾言遽色, 何由而作乎? 修德之實, 在乎去人欲、存天理。 所謂人欲者, 不必聲色貨利之娛、宮室觀遊之侈也。 但存諸心者, 少失其正, 便是人欲。 必也存祗懼之戒以畏天, 擴寬弘之度以盡下, 務使此心, 虛明廣大, 平正中和, 表裏洞然, 無一毫私意之累。 然後上可以格天, 下可以感人, 而凡所欲爲, 無不如志者, 何患乎民之不乂、國之不治、災之不弭乎?
上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67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