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5권, 효종 1년 9월 3일 甲寅 1/1 기사 / 1650년 청 순치(順治) 7년
대신들을 인견하고 청에 보낼 진주문과 흉년의 구휼 문제를 논의하다
국역
상이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진주(陳奏)할 문서를 상의하여 지었는가?"
하니, 영의정 이경여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진주하는 말은 사실에 의거하여 곧바로 진달하면서 무함을 받은 사실을 해명해야 하리라고 여겨집니다. 나라가 무함받은 것이 일단 해명되면 그 나머지는 자연히 차례대로 풀릴 것이니, 두 신하의 일을 제기하여 그들의 노여움을 범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아예 거론하지 않을 경우 두 신하에게 죄를 돌리는 것처럼 될 것인데, 저 사람들도 필시 두 신하에게 죄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지금 문장을 잘 구성하여 저들의 노여움을 범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호조 판서 원두표가 아뢰기를,
"칙서(勅書) 속에 이미 노협(盧協)과 이만(李曼)의 이름을 거론했으니 우리쪽에서 답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문장을 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그저 대답을 잘못했다고 말을 만들어야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우의정 이시백이 아뢰기를,
"의논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이만과 노협 등을 의주에 잡아두거나 북경(北京)에 압송하기라도 하면 저들이 필시 노여움을 풀 것이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런 일은 결코 할 수 없다. 어찌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시험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경여가 아뢰기를,
"경중(京中)에 잡아다 놓고 상의 뜻으로 저들에게 이르기를 ‘나도 대죄(待罪)하는 중에 있으므로 감히 처치하지 못한다.’ 하고는 그들의 답을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것은 괜찮을 수도 있겠다만 어떻게 결말을 짓겠는가."
하자, 병조 참판 조석윤(趙錫胤)이 아뢰기를,
"바야흐로 진주(陳奏)하여 해명하려고 하는 만큼 앞질러 먼저 잡아올 필요는 없습니다."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양서(兩西)에 흉년이 들어 곡식 종자도 없는 형편이니, 금년의 조세를 면제해주고 양호(兩湖)의 곡식을 옮겨다가 서방 백성들에게 나눠 줌으로써 내년 봄의 농사 밑천으로 삼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이경여가 아뢰기를,
"비축한 관향곡(管餉穀)을 지급하면 매우 편하겠는데, 장부에만 거짓으로 기록된 것이 많다고 합니다."
하고, 원두표가 아뢰기를,
"감사로 하여금 장부를 속여 만든 자를 조사하여 죄주게 한다면 징계되는 바가 있어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였다. 경여가 아뢰기를,
"나라의 일이 이와 같으니, 조정에 있는 신하가 비록 한마음으로 협력하더라도 오히려 구제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중인(衆人)들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생사를 함께하고 휴척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경우이겠습니까. 호조 판서 원두표와 형조 판서 이시방(李時昉)에 대해서 사람들이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와 같은 혐의105) 가 있다고들 하고 있으니, 어찌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염파와 인상여는 인품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끝내 생사를 같이하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구순(寇恂)과 가복(賈復) 같은 경우도 한 광무(漢光武)가 한마디 말을 하자 모두 원한을 풀었습니다106) ."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상이 이렇게 말한 것이야말로 국가의 복이다. 두 경(卿)은 모두 대대로 나라의 은총을 받고 함께 기특한 공을 세운 자로서 재상에까지 이르러 기대되는 바가 무척이나 많다. 만약 작은 혐의를 끊어 버려 국가의 급한 일을 우선하지 않는다면 경들만 불행할 뿐 아니라 국가의 불행이라 할 것이다."
하고, 이어 염파와 인상여가 혐의와 원한을 잘 처리한 일을 일컬었다. 이에 원두표가 기세가 등등하게 해명하면서 노기가 얼굴에 나타났는데, 이시방이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시백(時白)이 한사코 말렸다.
- [註 105]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와 같은 혐의 : 지위와 공이 서로 대등하며 갈등관계에 있는 것을 이름.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는 모두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중신(重臣)으로 인상여가 화씨벽(和氏璧) 사건을 잘 처리하여 상경(上卿)에 오르자 염파가 앙심을 품고 갈등을 일으켰다가 나중에 인상여의 본뜻을 알고는 사죄하고 절친한 관계를 맺었다. 《사기(史記)》 권81.
- [註 106] 구순(寇恂)과 가복(賈復) 같은 경우도 한 광무(漢光武)가 한마디 말을 하자 모두 원한을 풀었습니다 : 구순과 가복은 모두 후한(後漢) 광무(光武) 때의 명신. 구순이 살인한 가복의 부장(部將)을 잡아 죽이자 가복이 원한을 품고 앙갚음을 하려고 하였다. 이에 구순이 가능한 한 가복을 피하려고 여러 가지로 마음을 기울였는데, 어느날 광무제와 자리를 함께 했을 때 광무제의 간절한 타이름을 받고 화해했다는 고사. 《후한서(後漢書)》 권16 구순전(寇恂傳).
원문
○甲寅/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曰: "陳奏文書, 相議撰出乎?" 領議政李敬輿曰: "臣意, 陳奏之語, 當據實直陳, 辨其被誣之狀。 國誣旣辨, 則其餘自當次第解釋, 兩臣之事, 不必提起, 以犯其怒。" 上曰: "元不擧論, 則有若歸罪於兩臣, 而彼人亦必以兩臣爲有罪。 今宜善爲措辭, 毋觸彼怒也。" 戶曹判書元斗杓曰: "勑書中已擧盧、李之名, 在我不可無答, 而措語甚難, 直以失對爲辭乎?" 上曰: "然。" 右議政李時白曰: "議者以爲, 李曼、盧協等, 或拿致義州, 或拿送北京, 則彼必解怒云。" 上曰: "此則決不可爲也。 豈可試之於不測之地乎?" 敬輿曰: "拿致京中, 而以上意謂彼曰: ‘予亦在待罪之中, 不敢處置。’ 以觀其答, 則何如?" 上曰: "此或可矣, 而何以結末乎?" 兵曹參判趙錫胤曰: "方有陳奏辨釋之擧, 不必徑先拿致也。" 斗杓曰: "兩西凶荒, 穀種亦絶, 除今年之稅, 移兩湖之穀, 分給西民, 以爲明春農資宜矣。" 敬輿曰: "以管餉所儲, 給之則甚便, 而虛簿甚多云矣。" 斗杓曰: "宜令監司, 覈其虛簿者罪之, 則有所懲懼矣。" 敬輿曰: "國事如此, 在朝之臣, 雖同心協力, 猶懼不濟。 衆人尙然, 況共死生, 同休戚之人乎? 戶曹判書元斗杓、刑曹判書李時昉, 人以爲有廉、藺之嫌, 豈非不幸之甚乎? 廉、藺則人品甚高, 故終爲刎頸之交。 至於寇、賈, 亦因光武之一言, 皆能解怨矣。" 上曰: "領相此言, 實國家之福也。 兩卿皆世受國恩, 共立奇勳, 身致宰相, 依寄甚隆。 若不絶纖芥之嫌, 而先國家之急, 則非但卿等之不幸, 亦國家之不幸也。" 仍稱廉、藺之善處嫌怨。 斗杓盛氣陳辨, 怒形於色, 時昉欲有所言, 時白固止之。
효종 1년 (1650) 9월 3일
효종실록5권, 효종 1년 9월 3일 甲寅 1/1 기사 / 1650년 청 순치(順治) 7년
대신들을 인견하고 청에 보낼 진주문과 흉년의 구휼 문제를 논의하다
국역
상이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진주(陳奏)할 문서를 상의하여 지었는가?"
하니, 영의정 이경여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진주하는 말은 사실에 의거하여 곧바로 진달하면서 무함을 받은 사실을 해명해야 하리라고 여겨집니다. 나라가 무함받은 것이 일단 해명되면 그 나머지는 자연히 차례대로 풀릴 것이니, 두 신하의 일을 제기하여 그들의 노여움을 범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아예 거론하지 않을 경우 두 신하에게 죄를 돌리는 것처럼 될 것인데, 저 사람들도 필시 두 신하에게 죄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지금 문장을 잘 구성하여 저들의 노여움을 범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호조 판서 원두표가 아뢰기를,
"칙서(勅書) 속에 이미 노협(盧協)과 이만(李曼)의 이름을 거론했으니 우리쪽에서 답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문장을 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그저 대답을 잘못했다고 말을 만들어야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우의정 이시백이 아뢰기를,
"의논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이만과 노협 등을 의주에 잡아두거나 북경(北京)에 압송하기라도 하면 저들이 필시 노여움을 풀 것이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런 일은 결코 할 수 없다. 어찌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시험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경여가 아뢰기를,
"경중(京中)에 잡아다 놓고 상의 뜻으로 저들에게 이르기를 ‘나도 대죄(待罪)하는 중에 있으므로 감히 처치하지 못한다.’ 하고는 그들의 답을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것은 괜찮을 수도 있겠다만 어떻게 결말을 짓겠는가."
하자, 병조 참판 조석윤(趙錫胤)이 아뢰기를,
"바야흐로 진주(陳奏)하여 해명하려고 하는 만큼 앞질러 먼저 잡아올 필요는 없습니다."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양서(兩西)에 흉년이 들어 곡식 종자도 없는 형편이니, 금년의 조세를 면제해주고 양호(兩湖)의 곡식을 옮겨다가 서방 백성들에게 나눠 줌으로써 내년 봄의 농사 밑천으로 삼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이경여가 아뢰기를,
"비축한 관향곡(管餉穀)을 지급하면 매우 편하겠는데, 장부에만 거짓으로 기록된 것이 많다고 합니다."
하고, 원두표가 아뢰기를,
"감사로 하여금 장부를 속여 만든 자를 조사하여 죄주게 한다면 징계되는 바가 있어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였다. 경여가 아뢰기를,
"나라의 일이 이와 같으니, 조정에 있는 신하가 비록 한마음으로 협력하더라도 오히려 구제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중인(衆人)들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생사를 함께하고 휴척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경우이겠습니까. 호조 판서 원두표와 형조 판서 이시방(李時昉)에 대해서 사람들이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와 같은 혐의105) 가 있다고들 하고 있으니, 어찌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염파와 인상여는 인품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끝내 생사를 같이하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구순(寇恂)과 가복(賈復) 같은 경우도 한 광무(漢光武)가 한마디 말을 하자 모두 원한을 풀었습니다106) ."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상이 이렇게 말한 것이야말로 국가의 복이다. 두 경(卿)은 모두 대대로 나라의 은총을 받고 함께 기특한 공을 세운 자로서 재상에까지 이르러 기대되는 바가 무척이나 많다. 만약 작은 혐의를 끊어 버려 국가의 급한 일을 우선하지 않는다면 경들만 불행할 뿐 아니라 국가의 불행이라 할 것이다."
하고, 이어 염파와 인상여가 혐의와 원한을 잘 처리한 일을 일컬었다. 이에 원두표가 기세가 등등하게 해명하면서 노기가 얼굴에 나타났는데, 이시방이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시백(時白)이 한사코 말렸다.
- [註 105]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와 같은 혐의 : 지위와 공이 서로 대등하며 갈등관계에 있는 것을 이름.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는 모두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중신(重臣)으로 인상여가 화씨벽(和氏璧) 사건을 잘 처리하여 상경(上卿)에 오르자 염파가 앙심을 품고 갈등을 일으켰다가 나중에 인상여의 본뜻을 알고는 사죄하고 절친한 관계를 맺었다. 《사기(史記)》 권81.
- [註 106] 구순(寇恂)과 가복(賈復) 같은 경우도 한 광무(漢光武)가 한마디 말을 하자 모두 원한을 풀었습니다 : 구순과 가복은 모두 후한(後漢) 광무(光武) 때의 명신. 구순이 살인한 가복의 부장(部將)을 잡아 죽이자 가복이 원한을 품고 앙갚음을 하려고 하였다. 이에 구순이 가능한 한 가복을 피하려고 여러 가지로 마음을 기울였는데, 어느날 광무제와 자리를 함께 했을 때 광무제의 간절한 타이름을 받고 화해했다는 고사. 《후한서(後漢書)》 권16 구순전(寇恂傳).
원문
○甲寅/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曰: "陳奏文書, 相議撰出乎?" 領議政李敬輿曰: "臣意, 陳奏之語, 當據實直陳, 辨其被誣之狀。 國誣旣辨, 則其餘自當次第解釋, 兩臣之事, 不必提起, 以犯其怒。" 上曰: "元不擧論, 則有若歸罪於兩臣, 而彼人亦必以兩臣爲有罪。 今宜善爲措辭, 毋觸彼怒也。" 戶曹判書元斗杓曰: "勑書中已擧盧、李之名, 在我不可無答, 而措語甚難, 直以失對爲辭乎?" 上曰: "然。" 右議政李時白曰: "議者以爲, 李曼、盧協等, 或拿致義州, 或拿送北京, 則彼必解怒云。" 上曰: "此則決不可爲也。 豈可試之於不測之地乎?" 敬輿曰: "拿致京中, 而以上意謂彼曰: ‘予亦在待罪之中, 不敢處置。’ 以觀其答, 則何如?" 上曰: "此或可矣, 而何以結末乎?" 兵曹參判趙錫胤曰: "方有陳奏辨釋之擧, 不必徑先拿致也。" 斗杓曰: "兩西凶荒, 穀種亦絶, 除今年之稅, 移兩湖之穀, 分給西民, 以爲明春農資宜矣。" 敬輿曰: "以管餉所儲, 給之則甚便, 而虛簿甚多云矣。" 斗杓曰: "宜令監司, 覈其虛簿者罪之, 則有所懲懼矣。" 敬輿曰: "國事如此, 在朝之臣, 雖同心協力, 猶懼不濟。 衆人尙然, 況共死生, 同休戚之人乎? 戶曹判書元斗杓、刑曹判書李時昉, 人以爲有廉、藺之嫌, 豈非不幸之甚乎? 廉、藺則人品甚高, 故終爲刎頸之交。 至於寇、賈, 亦因光武之一言, 皆能解怨矣。" 上曰: "領相此言, 實國家之福也。 兩卿皆世受國恩, 共立奇勳, 身致宰相, 依寄甚隆。 若不絶纖芥之嫌, 而先國家之急, 則非但卿等之不幸, 亦國家之不幸也。" 仍稱廉、藺之善處嫌怨。 斗杓盛氣陳辨, 怒形於色, 時昉欲有所言, 時白固止之。
원본
효종 1년 (1650)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