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1권, 효종 즉위년 6월 12일 庚子 1/1 기사 / 1649년 청 순치(順治) 6년
세자의 서연에 대하여 대신들과 의논하다
국역
전에, 시강원이 졸곡 전에 고사에 따라 왕세자의 서연을 열기를 청하니, 예관에게 물으라고 답하였다. 또 분부하기를,
"세자가 졸곡 전에 서연을 연 것이 어느 때의 고사인가?"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강원에 물어보건대 무신년 3월에 올린 본원(本院)의 계사(啓辭) 속에 졸곡 전에 서연을 열어 때에 미쳐 도와 인도하라는 말이 있다 하고, 또 듣건대 선조(宣祖)께서는 명묘(明廟)의 졸곡 전에 경연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미 경연을 열었다면 세자의 서연을 열지 않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고, 예조가 아뢰기를,
"왕세자께서 강학(講學)을 중지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국상이 난 달이 지난 뒤에는 서연을 여는 것이 합당합니다. 듣건대 선조께서 졸곡 전에 경연에 거둥하셨다 하니, 그렇다면 서연을 여는 것은 더욱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따랐다. 이어 서연할 때의 복색(服色)을 강론해 결정하라고 명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직령의(直領衣)와 상투를 싸서 드리우는 두 가닥의 띠는 모두 약간 세밀한 생포(生布)를 사용하고, 요대(腰帶)는 약간 가볍고 세밀한 생마(生麻)를 사용하고, 신은 백피(白皮)를 사용하며, 강관은 최복(衰服)으로 입시하는 것이 마땅하니 사부에게 물어보소서."
하니, 따랐다. 세자부(世子傅) 이경석이 아뢰기를,
"세자를 도와 인도하는 일은 하루가 급합니다. 해조가 정한 바의 복색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마는 다시 노숙한 덕을 가진 원임(原任) 및 예를 아는 신하들에게 물으소서."
하였다. 영돈녕 김상헌이 아뢰기를,
"왕세자의 강학이 과연 하루가 급하지만 재궁(梓宮)이 빈소에 계신데 한 쪽에서 개강(開講)하는 것은 인정으로 보나 예문으로 보나 온당하지 않습니다. 요(堯) 순(舜)의 도는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왕세자께서 어린 나이에 익힐 바는 더욱 효제를 우선으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산릉에 장사 지내기 전에는 우선 정강(停講)하였다가 졸곡이 지난 뒤에 비로소 서연을 열어 학문의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예에 합당할 듯합니다."
"왕세자께서 졸곡 전에 비록 평일처럼 서연을 열 수는 없지만 옛 사람들이 상중(喪中)에는 상례(喪禮)를 읽은 뜻에 의거하여 강학(講學)을 폐하지 않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그리고 복색은 해조가 정한 바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분부하기를,
"영돈녕이 올린 의논을 보고는 재삼 음미해 마지않았다. 경(經)은 만세의 상도(常道)이기 때문에 일시의 연고로 권도(權道)를 쓸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효제의 도이겠는가. 나는 말세에서 순전히 권도만을 쓰는 것을 미워한다. 영돈녕의 의논에 따라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37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의생활-예복(禮服)
원문
○庚子/初, 侍講院請王世子於卒哭前, 依故事開筵, 答曰: "問于禮官。" 又下敎曰: "世子於卒器前開筵, 何時故事乎?" 政院啓曰: "問于講院, 則戊申三月, 本院啓辭中, 有卒哭前開筵, 及時輔導之語。 又聞宣祖, 於明廟卒哭前開筵。 旣開經筵, 則世子書筵, 似不可已。" 禮曹啓曰: "王世子輟講已久, 踰月之後, 正合開筵。 聞, 宣祖亦於卒哭前, 臨御經筵。 然則書筵之設, 尤無可疑。" 從之。 仍命講定書筵時服色, 禮曹以爲: "直領衣、包䯻垂雙帶, 竝用稍細生布, 腰帶用生麻稍輕細, 鞋用白皮, 講官以衰服入侍爲當。 請問于師傅。" 從之。 世子傅李景奭曰: "春宮輔導, 一日爲急。 用該曹所定服色, 恐或宜當, 而請更詢于宿德原任及識禮諸臣。" 領敦寧金尙憲以爲: "王世子講學, 果急於一日, 而梓宮在殯, 一邊開講, 情禮未安。 堯、舜之道, 孝悌爲本, 王世子沖年所講, 尤當以孝悌爲先, 則山陵未葬之前, 姑宜停講, 卒哭後始開書筵, 以達問學之道, 似合於禮。" 金集、權諰、李惟泰以爲: "王世子於卒哭前, 雖不得如平日開筵, 若據古人讀喪禮之義, 不廢講學, 則似爲合宜。 服色則宜從該曹所定。" 上下敎曰: "觀領敦寧獻議, 三復不已也。 經者萬世之常, 不可以一時之故, 便用權道, 而況孝悌之道乎? 予惡夫末世之純用權道也。 依領敦寧議, 施行。"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37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의생활-예복(禮服)
효종 즉위년 (1649) 6월 12일
효종실록1권, 효종 즉위년 6월 12일 庚子 1/1 기사 / 1649년 청 순치(順治) 6년
세자의 서연에 대하여 대신들과 의논하다
국역
전에, 시강원이 졸곡 전에 고사에 따라 왕세자의 서연을 열기를 청하니, 예관에게 물으라고 답하였다. 또 분부하기를,
"세자가 졸곡 전에 서연을 연 것이 어느 때의 고사인가?"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강원에 물어보건대 무신년 3월에 올린 본원(本院)의 계사(啓辭) 속에 졸곡 전에 서연을 열어 때에 미쳐 도와 인도하라는 말이 있다 하고, 또 듣건대 선조(宣祖)께서는 명묘(明廟)의 졸곡 전에 경연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미 경연을 열었다면 세자의 서연을 열지 않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고, 예조가 아뢰기를,
"왕세자께서 강학(講學)을 중지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국상이 난 달이 지난 뒤에는 서연을 여는 것이 합당합니다. 듣건대 선조께서 졸곡 전에 경연에 거둥하셨다 하니, 그렇다면 서연을 여는 것은 더욱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따랐다. 이어 서연할 때의 복색(服色)을 강론해 결정하라고 명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직령의(直領衣)와 상투를 싸서 드리우는 두 가닥의 띠는 모두 약간 세밀한 생포(生布)를 사용하고, 요대(腰帶)는 약간 가볍고 세밀한 생마(生麻)를 사용하고, 신은 백피(白皮)를 사용하며, 강관은 최복(衰服)으로 입시하는 것이 마땅하니 사부에게 물어보소서."
하니, 따랐다. 세자부(世子傅) 이경석이 아뢰기를,
"세자를 도와 인도하는 일은 하루가 급합니다. 해조가 정한 바의 복색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마는 다시 노숙한 덕을 가진 원임(原任) 및 예를 아는 신하들에게 물으소서."
하였다. 영돈녕 김상헌이 아뢰기를,
"왕세자의 강학이 과연 하루가 급하지만 재궁(梓宮)이 빈소에 계신데 한 쪽에서 개강(開講)하는 것은 인정으로 보나 예문으로 보나 온당하지 않습니다. 요(堯) 순(舜)의 도는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왕세자께서 어린 나이에 익힐 바는 더욱 효제를 우선으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산릉에 장사 지내기 전에는 우선 정강(停講)하였다가 졸곡이 지난 뒤에 비로소 서연을 열어 학문의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예에 합당할 듯합니다."
"왕세자께서 졸곡 전에 비록 평일처럼 서연을 열 수는 없지만 옛 사람들이 상중(喪中)에는 상례(喪禮)를 읽은 뜻에 의거하여 강학(講學)을 폐하지 않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그리고 복색은 해조가 정한 바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분부하기를,
"영돈녕이 올린 의논을 보고는 재삼 음미해 마지않았다. 경(經)은 만세의 상도(常道)이기 때문에 일시의 연고로 권도(權道)를 쓸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효제의 도이겠는가. 나는 말세에서 순전히 권도만을 쓰는 것을 미워한다. 영돈녕의 의논에 따라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37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의생활-예복(禮服)
원문
○庚子/初, 侍講院請王世子於卒哭前, 依故事開筵, 答曰: "問于禮官。" 又下敎曰: "世子於卒器前開筵, 何時故事乎?" 政院啓曰: "問于講院, 則戊申三月, 本院啓辭中, 有卒哭前開筵, 及時輔導之語。 又聞宣祖, 於明廟卒哭前開筵。 旣開經筵, 則世子書筵, 似不可已。" 禮曹啓曰: "王世子輟講已久, 踰月之後, 正合開筵。 聞, 宣祖亦於卒哭前, 臨御經筵。 然則書筵之設, 尤無可疑。" 從之。 仍命講定書筵時服色, 禮曹以爲: "直領衣、包䯻垂雙帶, 竝用稍細生布, 腰帶用生麻稍輕細, 鞋用白皮, 講官以衰服入侍爲當。 請問于師傅。" 從之。 世子傅李景奭曰: "春宮輔導, 一日爲急。 用該曹所定服色, 恐或宜當, 而請更詢于宿德原任及識禮諸臣。" 領敦寧金尙憲以爲: "王世子講學, 果急於一日, 而梓宮在殯, 一邊開講, 情禮未安。 堯、舜之道, 孝悌爲本, 王世子沖年所講, 尤當以孝悌爲先, 則山陵未葬之前, 姑宜停講, 卒哭後始開書筵, 以達問學之道, 似合於禮。" 金集、權諰、李惟泰以爲: "王世子於卒哭前, 雖不得如平日開筵, 若據古人讀喪禮之義, 不廢講學, 則似爲合宜。 服色則宜從該曹所定。" 上下敎曰: "觀領敦寧獻議, 三復不已也。 經者萬世之常, 不可以一時之故, 便用權道, 而況孝悌之道乎? 予惡夫末世之純用權道也。 依領敦寧議, 施行。"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37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의생활-예복(禮服)
원본
효종 즉위년 (1649)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