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47권, 인조 24년 4월 2일 戊寅 5/5 기사 / 1646년 청 순치(順治) 3년
좌의정 김상헌이 체직을 청하다
국역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 양주(楊州)에서 상소하기를,
"신은 고향 마을에 묻혀 생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분수에 흡족합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이렇게 새로운 명을 내리시면서 소명(召命)을 내리시니, 감격스럽고 놀라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조정에 선 지 50여 년 동안에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서도 티끌만큼의 보답도 못한 채 죄와 잘못만 산처럼 쌓였는데, 너그럽게 용서해 주심을 입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털끝만큼이라도 힘을 쏟아 갚을 수만 있다면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신은 본시 노둔한 자질로 나이가 팔순에 가깝습니다. 여러 차례의 환란을 겪으며 구사 일생하는 동안 정력이 이미 소진되어 보고 듣는 것이 모두 마비 상태이고 온갖 질병으로 시달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입니다. 어떻게 정승에 임명하는 명이 형편없는 신에게 내려질 줄이야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그래도 신의 한 몸에만 관계되는 일입니다.
신이 전에 심양(瀋陽)에서 돌아올 때 가만히 듣건대 저들이 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오늘 놓아 보내는 것은 조선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종신토록 폐고(廢錮)시켜 영원히 서용(敍用)하지 말라.’고 하였다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근년에 한 대신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심양에 들어갔을 때 심양 사람들이 힐책하기를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정승이 되어 여기에 왔는가.’ 하고는 마침내 해를 넘기도록 잡아 가두고 온갖 곤욕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신이 저들에게 미움받는 것은 전날의 대신에 비해 백배 정도만 되는 것이 아닌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금 만일 신이 본직에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 반드시 짐승처럼 날뛰며 잔뜩 노기를 품고서 조정을 책문할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른다면 신의 몸은 진실로 아까울 것이 없으나 나라가 얼마나 치욕을 당하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신의 늙고 병들고 용렬한 정황을 살피시고 거듭 저들과 우리와의 형세를 생각하시어 속히 신을 체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때 힐책을 당한 사람은 모두 용서받았다. 경은 너무 염려하지 말고 속히 들어와 오늘날의 어려움을 구제토록 하라."
하였다. 이때 정부 문서에 모두 순치(順治)012) 연호를 사용하면서 순치 연호를 쓰지 않은 것은 정원에서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유독 상헌의 소차와 정사(呈辭)에는 간지(幹枝)만을 썼으나, 정원이 대신의 소장이라는 이유로 감히 물리치지 못했고 상도 불문에 붙였다.
- [註 012] 순치(順治) : 청 세조(淸世祖)의 연호.
원문
○左議政金尙憲在楊州上疏曰:
臣屛伏田里, 分甘沒齒。 千萬夢寐之外, 有此新命, 且下召命, 感激惶駭, 罔知所處。 臣立朝五十餘年, 厚蒙國恩, 未有涓埃之報, 罪戾山積, 曲被寬貸, 以至今日。 苟有一毫效力之地, 糜身粉骨, 亦何敢辭? 第念, 臣本以駑質, 年迫八旬。 屢經患亂, 九死一生, 精力已竭, 視聽俱廢, 百病所鑠, 朝夕就木。 豈意爰立之命, 謬及不似也? 雖然, 此則猶涉於臣之身事也。 臣前自瀋中來時竊聞, 彼人擧臣名以謂: "今日縱遣, 雖看本國面上, 廢錮終身, 永勿收用。" 云。 不但此也, 頃年一大臣奉使入瀋也, 瀋人致詰曰: "有罪之人, 何以拜相入來?" 遂乃拘囚經歲, 困辱萬狀。 況臣之見憎於彼, 視前日大臣不啻百倍。 今若聞臣忝據本職, 亦必咆哮, 盛氣責問於朝廷。 到此地頭, 臣身固不足恤, 其於辱國何哉? 伏乞聖明, 察臣老病庸劣, 重念彼此事勢, 亟遞臣職。
答曰: "其時被責之人, 皆蒙赦宥。 卿勿過慮, 斯速入來, 以濟時艱。" 是時公府文書, 皆用順治年號, 其不書者, 政院却之不受, 獨尙憲於疏箚、呈辭, 只書幹枝, 政院以其大臣章疏, 而不敢却, 上亦不之問也。
인조실록47권, 인조 24년 4월 2일 戊寅 5/5 기사 / 1646년 청 순치(順治) 3년
좌의정 김상헌이 체직을 청하다
국역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 양주(楊州)에서 상소하기를,
"신은 고향 마을에 묻혀 생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분수에 흡족합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이렇게 새로운 명을 내리시면서 소명(召命)을 내리시니, 감격스럽고 놀라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조정에 선 지 50여 년 동안에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서도 티끌만큼의 보답도 못한 채 죄와 잘못만 산처럼 쌓였는데, 너그럽게 용서해 주심을 입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털끝만큼이라도 힘을 쏟아 갚을 수만 있다면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신은 본시 노둔한 자질로 나이가 팔순에 가깝습니다. 여러 차례의 환란을 겪으며 구사 일생하는 동안 정력이 이미 소진되어 보고 듣는 것이 모두 마비 상태이고 온갖 질병으로 시달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입니다. 어떻게 정승에 임명하는 명이 형편없는 신에게 내려질 줄이야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그래도 신의 한 몸에만 관계되는 일입니다.
신이 전에 심양(瀋陽)에서 돌아올 때 가만히 듣건대 저들이 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오늘 놓아 보내는 것은 조선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종신토록 폐고(廢錮)시켜 영원히 서용(敍用)하지 말라.’고 하였다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근년에 한 대신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심양에 들어갔을 때 심양 사람들이 힐책하기를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정승이 되어 여기에 왔는가.’ 하고는 마침내 해를 넘기도록 잡아 가두고 온갖 곤욕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신이 저들에게 미움받는 것은 전날의 대신에 비해 백배 정도만 되는 것이 아닌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금 만일 신이 본직에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 반드시 짐승처럼 날뛰며 잔뜩 노기를 품고서 조정을 책문할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른다면 신의 몸은 진실로 아까울 것이 없으나 나라가 얼마나 치욕을 당하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신의 늙고 병들고 용렬한 정황을 살피시고 거듭 저들과 우리와의 형세를 생각하시어 속히 신을 체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때 힐책을 당한 사람은 모두 용서받았다. 경은 너무 염려하지 말고 속히 들어와 오늘날의 어려움을 구제토록 하라."
하였다. 이때 정부 문서에 모두 순치(順治)012) 연호를 사용하면서 순치 연호를 쓰지 않은 것은 정원에서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유독 상헌의 소차와 정사(呈辭)에는 간지(幹枝)만을 썼으나, 정원이 대신의 소장이라는 이유로 감히 물리치지 못했고 상도 불문에 붙였다.
- [註 012] 순치(順治) : 청 세조(淸世祖)의 연호.
원문
○左議政金尙憲在楊州上疏曰:
臣屛伏田里, 分甘沒齒。 千萬夢寐之外, 有此新命, 且下召命, 感激惶駭, 罔知所處。 臣立朝五十餘年, 厚蒙國恩, 未有涓埃之報, 罪戾山積, 曲被寬貸, 以至今日。 苟有一毫效力之地, 糜身粉骨, 亦何敢辭? 第念, 臣本以駑質, 年迫八旬。 屢經患亂, 九死一生, 精力已竭, 視聽俱廢, 百病所鑠, 朝夕就木。 豈意爰立之命, 謬及不似也? 雖然, 此則猶涉於臣之身事也。 臣前自瀋中來時竊聞, 彼人擧臣名以謂: "今日縱遣, 雖看本國面上, 廢錮終身, 永勿收用。" 云。 不但此也, 頃年一大臣奉使入瀋也, 瀋人致詰曰: "有罪之人, 何以拜相入來?" 遂乃拘囚經歲, 困辱萬狀。 況臣之見憎於彼, 視前日大臣不啻百倍。 今若聞臣忝據本職, 亦必咆哮, 盛氣責問於朝廷。 到此地頭, 臣身固不足恤, 其於辱國何哉? 伏乞聖明, 察臣老病庸劣, 重念彼此事勢, 亟遞臣職。
答曰: "其時被責之人, 皆蒙赦宥。 卿勿過慮, 斯速入來, 以濟時艱。" 是時公府文書, 皆用順治年號, 其不書者, 政院却之不受, 獨尙憲於疏箚、呈辭, 只書幹枝, 政院以其大臣章疏, 而不敢却, 上亦不之問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