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21권, 인조 7년 7월 18일 辛丑 2/3 기사 / 1629년 명 숭정(崇禎) 2년
김류가 사직을 아뢰다
국역
좌의정 김류가 차자를 올려 사직하면서 아뢰기를,
"신은 시의(時議)의 기휘(忌諱)에 거듭 저촉되어 뭇 노여움이 한 몸에 집중되고 있으므로 송구스러운 마음에 숨을 죽이고 엄한 견책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승지까지 보내시어 부드러운 말로 간절하게 유시하시니, 성은이 깊어질수록 신의 죄는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신이 대략 듣건대, 어제 경연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만갑(羅萬甲)이 신 부자(父子)의 집에 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여운 감정을 품은 나머지 시기를 틈타 모함하려고 했다.’고 하고는 신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악담을 낭자하게 늘어놓았다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놀란 나머지 바로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신은 본래 고립 무원의 처지로서 성명(聖明) 밖에는 믿을 곳이 없는데, 나만갑을 칭찬하는 소리는 날마다 천청(天聽)에 들어가는 반면 소신의 위급하고 절박한 정상은 아뢸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심장을 갈라 스스로 해명하고 머리를 베어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원통함을 간직한 채 참으며 아무 말없이 목숨이 끝나는 날만을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신의 정상이 정말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삼가 성명께서는 속히 신의 죄를 다스려 인심을 진정시키고 언자(言者)를 통쾌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그런 말에 대해서 서로들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경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속히 나와 행공(行公)하라."
하고, 이어 사관(史官)을 보내 타일렀다.
원문
○左議政金瑬上箚辭職曰:
臣重觸時忌, 衆怒叢身, 屛伏竦息, 方竢嚴譴。 至遣承旨, 溫諭丁寧, 聖恩愈隆, 臣罪愈重。 臣略聞昨日筵中有言: "萬甲不爲出入於臣父子家, 故蓄憾、懷怒, 乘時構陷。" 且加臣以不測之惡, 辭說狼藉, 無所不至云。 臣聞來, 駴慄戰灼, 直欲鑽地而入而無從也。 臣本孤立無援, 所恃者聖明, 而萬甲稱譽之言, 日入於 天聽, 小臣危迫之情, 無路自達。 雖欲剖心而自明, 刎首以謝人, 亦不可得。 惟當含冤、忍痛, 悶默待盡而已, 臣之情事, 誠可悲矣。 伏乞 聖明, 亟治臣罪, 以鎭人心, 以快言者。
上答曰: "其言不必相較。 卿宜安心, 速出行公。" 仍遣史官諭之。
인조 7년 (1629) 7월 18일
인조실록21권, 인조 7년 7월 18일 辛丑 2/3 기사 / 1629년 명 숭정(崇禎) 2년
김류가 사직을 아뢰다
국역
좌의정 김류가 차자를 올려 사직하면서 아뢰기를,
"신은 시의(時議)의 기휘(忌諱)에 거듭 저촉되어 뭇 노여움이 한 몸에 집중되고 있으므로 송구스러운 마음에 숨을 죽이고 엄한 견책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승지까지 보내시어 부드러운 말로 간절하게 유시하시니, 성은이 깊어질수록 신의 죄는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신이 대략 듣건대, 어제 경연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만갑(羅萬甲)이 신 부자(父子)의 집에 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여운 감정을 품은 나머지 시기를 틈타 모함하려고 했다.’고 하고는 신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악담을 낭자하게 늘어놓았다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놀란 나머지 바로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신은 본래 고립 무원의 처지로서 성명(聖明) 밖에는 믿을 곳이 없는데, 나만갑을 칭찬하는 소리는 날마다 천청(天聽)에 들어가는 반면 소신의 위급하고 절박한 정상은 아뢸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심장을 갈라 스스로 해명하고 머리를 베어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원통함을 간직한 채 참으며 아무 말없이 목숨이 끝나는 날만을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신의 정상이 정말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삼가 성명께서는 속히 신의 죄를 다스려 인심을 진정시키고 언자(言者)를 통쾌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그런 말에 대해서 서로들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경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속히 나와 행공(行公)하라."
하고, 이어 사관(史官)을 보내 타일렀다.
원문
○左議政金瑬上箚辭職曰:
臣重觸時忌, 衆怒叢身, 屛伏竦息, 方竢嚴譴。 至遣承旨, 溫諭丁寧, 聖恩愈隆, 臣罪愈重。 臣略聞昨日筵中有言: "萬甲不爲出入於臣父子家, 故蓄憾、懷怒, 乘時構陷。" 且加臣以不測之惡, 辭說狼藉, 無所不至云。 臣聞來, 駴慄戰灼, 直欲鑽地而入而無從也。 臣本孤立無援, 所恃者聖明, 而萬甲稱譽之言, 日入於 天聽, 小臣危迫之情, 無路自達。 雖欲剖心而自明, 刎首以謝人, 亦不可得。 惟當含冤、忍痛, 悶默待盡而已, 臣之情事, 誠可悲矣。 伏乞 聖明, 亟治臣罪, 以鎭人心, 以快言者。
上答曰: "其言不必相較。 卿宜安心, 速出行公。" 仍遣史官諭之。
원본
인조 7년 (1629) 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