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10권, 인조 3년 9월 28일 癸酉 1/4 기사 /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연평부원군 이귀를 접견하고 서쪽 변방의 형세 등을 묻다
국역
상이 자정전에 나아가 연평 부원군 이귀를 접견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신은 본래 어리석고 망령된데다가 불끈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난번 삼학사(三學士)는 모두 곧은 신하였으므로 신은 그들의 폄강(貶降)에 대해 민망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허물을 김류에게 직언하여 뉘우쳐 깨닫게 하지 못하고 상의 앞에서 진달하기를 부모 앞에서 형제의 허물을 말하는 것처럼 한 것에 대해 항상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성상의 교지를 보니 한집안의 부자간과 같다고 하였으므로 밤새도록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옛사람의 말에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고, 다만 같은 해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경들이 의로 맺은 정의는 옛사람에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경들이 화합하기를 참으로 바라고 있다."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신의 심기가 갑자기 불끈하여 김류의 과오만을 말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 아들의 옳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말했으니, 이는 참으로 충후(忠厚)하게 해야 하는 도리를 해친 것입니다. 김류도 신의 병통을 알고 있으므로 노엽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만 신은 마땅히 물러가 가시나무 [매]를 지고 가서 사죄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참으로 경의 이런 후회가 있을 줄을 알았다. 경의 말이 여기에 이르니 나는 매우 가상하고도 기쁘게 여긴다."
하고, 이어 서쪽 변방의 형세와 남쪽 병졸의 편부에 대하여 하문하니, 이귀가 적이 꼭 침범해 올 형세가 없으니 남쪽 지방의 병졸을 조발해서는 안 된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병량(兵糧)의 구획과 호위 군관을 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누누이 진달하여 마지 않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파하였다.
원문
○癸酉/上御資政殿, 引見延平府院君 李貴。 貴曰: "臣本愚妄, 且有心氣。 頃者三學士, 皆直臣也。 臣憫其貶降, 而不能直言其過於金瑬, 使之悔悟, 陳達於上前, 有若言兄弟之過於父母之前, 常以爲悔。 昨見聖敎, 有同家人父子, 終夜感泣, 罔知攸達。" 上曰: "古人有言: ‘不願同年同日生, 但願同年同日死。’ 卿等之結義, 無愧古人, 深欲卿輩和協矣。" 貴曰: "臣心氣卒發, 非徒言瑬之過, 亦言其子之不是處, 此甚害於忠厚之道矣。 瑬亦知臣病處, 不以爲怒, 臣當退去, 負荊以謝。" 上曰: "固知卿有此悔。 卿言至此, 予甚嘉悅。" 仍問西邊形勢及南兵便否, 貴對以賊無必來之形, 南兵不可調發, 且陳兵糧籌畫, 扈衛軍官不可罷之意, 縷縷不已, 日晩而罷。
인조실록10권, 인조 3년 9월 28일 癸酉 1/4 기사 /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연평부원군 이귀를 접견하고 서쪽 변방의 형세 등을 묻다
국역
상이 자정전에 나아가 연평 부원군 이귀를 접견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신은 본래 어리석고 망령된데다가 불끈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난번 삼학사(三學士)는 모두 곧은 신하였으므로 신은 그들의 폄강(貶降)에 대해 민망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허물을 김류에게 직언하여 뉘우쳐 깨닫게 하지 못하고 상의 앞에서 진달하기를 부모 앞에서 형제의 허물을 말하는 것처럼 한 것에 대해 항상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성상의 교지를 보니 한집안의 부자간과 같다고 하였으므로 밤새도록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옛사람의 말에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고, 다만 같은 해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경들이 의로 맺은 정의는 옛사람에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경들이 화합하기를 참으로 바라고 있다."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신의 심기가 갑자기 불끈하여 김류의 과오만을 말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 아들의 옳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말했으니, 이는 참으로 충후(忠厚)하게 해야 하는 도리를 해친 것입니다. 김류도 신의 병통을 알고 있으므로 노엽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만 신은 마땅히 물러가 가시나무 [매]를 지고 가서 사죄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참으로 경의 이런 후회가 있을 줄을 알았다. 경의 말이 여기에 이르니 나는 매우 가상하고도 기쁘게 여긴다."
하고, 이어 서쪽 변방의 형세와 남쪽 병졸의 편부에 대하여 하문하니, 이귀가 적이 꼭 침범해 올 형세가 없으니 남쪽 지방의 병졸을 조발해서는 안 된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병량(兵糧)의 구획과 호위 군관을 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누누이 진달하여 마지 않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파하였다.
원문
○癸酉/上御資政殿, 引見延平府院君 李貴。 貴曰: "臣本愚妄, 且有心氣。 頃者三學士, 皆直臣也。 臣憫其貶降, 而不能直言其過於金瑬, 使之悔悟, 陳達於上前, 有若言兄弟之過於父母之前, 常以爲悔。 昨見聖敎, 有同家人父子, 終夜感泣, 罔知攸達。" 上曰: "古人有言: ‘不願同年同日生, 但願同年同日死。’ 卿等之結義, 無愧古人, 深欲卿輩和協矣。" 貴曰: "臣心氣卒發, 非徒言瑬之過, 亦言其子之不是處, 此甚害於忠厚之道矣。 瑬亦知臣病處, 不以爲怒, 臣當退去, 負荊以謝。" 上曰: "固知卿有此悔。 卿言至此, 予甚嘉悅。" 仍問西邊形勢及南兵便否, 貴對以賊無必來之形, 南兵不可調發, 且陳兵糧籌畫, 扈衛軍官不可罷之意, 縷縷不已, 日晩而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