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정초본]147권, 광해 11년 12월 22일 辛未 3/3 기사 /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
기미책과 자강책의 시행을 촉구하다
국역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 흉악한 적의 세력이 더욱 치성하여 멋대로 행패를 부리는 것이 날로 심합니다. 명나라가 한 번 싸움으로 적을 평정할는지는 비록 기필할 수 없으나 요·광의 성패에 대해서야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오늘날의 사세를 관찰해 보건대, 저 적이 만약 요·광에서 뜻을 얻어 형편이 확장되고 세력이 완고하게 되면 우리 나라 상대하기를 거란이 고려 상대하듯이 하여 온갖 침략과 업신여기는 짓을 할 것이니, 그때 가서는 비록 가죽과 비단으로 섬기려 하여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요·광을 막아 서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면 또한 반드시 우리 나라를 물어뜯어 그 독기를 쏟을 것입니다. 그래도 형세상 반드시 군사를 다 동원하여 깊이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저 적은 시기하고 사나우며 잔학하고 혹독해서 명나라가 길러준 은덕을 등지고 감히 흉역이 되었는데, 그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 무엇이 친애스러울 것이 있기에 반드시 화호하려고 하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나라의 군사가 이미 명나라 군사를 따라 깊이 저들의 땅에 갔을 때 적의 날랜 장수와 굳센 졸개 중에 우리 군사의 칼날에 피를 흘린 자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흉적들은 이를 갈고 혀를 널름거리면서 잠시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하고 허장성세로 공갈을 치며 교만을 부리면서도 감히 침략해 오지 못하고 있고 거짓으로 통호하겠다고 말하면서 우리를 유인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적의 형세를 알 수 있습니다.
북관(北關)은 저 적과 접경이라서 금부(金部)와 백부(白部)의 무리들이 한 성에 둔전(屯田)을 일구며 모여 살므로 그들을 복멸시키면 남은 불씨가 없겠지만 우리 나라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비록 더없이 피폐되었으나 강토가 좀 더 크니 서쪽 변방에 있는 약간의 성보(城堡)는 비록 함몰당하더라도 어떻게 갑자기 기세가 꺾이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무리를 다 동원하여 깊숙이 쳐들어가면 명나라 군사가 뒤에서 공격할까 두렵고 군사를 나누어 변방을 침범한다면 큰 이익은 없으면서 원한만 맺게 되는 것이니, 이는 진(秦)나라가 먼 나라와는 국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을 하여 40년 동안 지내오면서도 제(齊)나라를 공격하지 못했던 이유이니 이는 형세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동 전체가 만약 보존된다면 우리 나라는 적에게 침범을 당할 걱정이 없을 것이며, 혹시 뒤처진 적이 변방을 침범하더라도 반드시 내지(內地)로 깊숙이 뚫고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새끼 딸린 호랑이가 짐승을 잡는 것과 같아서 자기가 사는 곳에서 멀리 나가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처소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있어 해야 할 계책으로는 저들이 이미 계교로써 우리를 늦추었으니, 우리도 계교로써 저들을 늦추는 기미책을 쓰는 것이 참으로 무방합니다. 그러나 자강(自强)하는 대책과 원조하는 의리에 이르러서도 일각의 해이함이 없이 해서 대국과의 협력 관계를 후히 결속하여 입술과 이의 형세로 만든다면 오랑캐가 비록 흉악하고 강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성교(聖敎) 속에 ‘기율을 엄히 밝히고 기계(器械)를 수선하며,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훈련시키며, 험지를 차지하고 곡식을 저축하며, 봉화를 잘 정비하고 장사(將士)를 무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따위의 사의(事意)는 바로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진실로 착실하게 이 일을 행할 수 있다면 어찌 자수(自守)만 할 뿐이겠습니까. 비록 몽둥이를 만들어 북벌(北伐)을 하더라도 괜찮을 것입니다. 다만 기율을 엄명히 하는 것은 상벌을 공평히 하는 데에 달려있으며, 기계를 수선하는 것은 백성의 힘이 넉넉한 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상벌이 이미 공평하고 민력이 이미 넉넉해지면 장수를 선발하고 군사를 조련하는 이하의 일들은 다만 들어서 행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지금 탐욕스럽고 잔악한 장수와 아전들이 군사와 백성의 재물을 긁어들여 군사를 뽑을 즈음에 오직 뇌물의 많고 적은 것만을 보고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잡아다가 문초하여 죄를 주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숭반(崇班)과 준자(峻資)의 상이 이미 물건을 바친 무리에게 나갔으니 기율을 어떻게 스스로 밝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급하지 않은 역사를 하며 하는 일 없이 먹는 무리들이 재물을 축내고 곡식을 좀먹고 있는 것이 한이 없어 민력이 이미 다 바닥나 취해 마련할 곳이 없게 된다면 기계를 어떻게 스스로 정비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비변사에 있으면서 한 가지 기책(奇策)이라도 내어 성상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오직 두어 줄의 문자를 가지고 범범하게 책임이나 면하려 하고 있으니, 신들은 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양 한 번 성상을 뵙고 각기 어리석은 견해를 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쪽의 일에 대해 한 해가 지나도록 등대(登對)하라는 명이 없어 군정(群情)이 민망해 하고 답답하며 원근이 일손을 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번에 성비로 인하여 감히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진달하게 되어 황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황공하게 여기지 말라. 이런 때에 상하의 생각을 숨김없이 다 진달하여 반복해서 상의한 뒤 확정하는 것이 무엇이 해로운가. 다만 이 적이 어찌 진(秦)나라에 비교할 것이겠는가. 본사(本司)가 아뢴 뜻은 잘못되었다. 원조하는 의리에 있어서는 나도 조금 숙맥(菽麥)을 분변하는 사람으로 그것을 알고 있은 지 오래되었다. 다만 생각건대, 우리 나라의 인심과 병력이 할 만한 형세가 안 되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뢴 말 중에 ‘우리 나라도 저들을 늦추는 계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기미하자는 뜻이다. 다만 상하가 서로 버티면서 지금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 종묘 사직으로 하여금 위망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 죄를 누가 질 것인가? 대개 한편으로는 기미책을 쓰고 한편으로는 자강책(自强策)을 쓰는 것은 진실로 장구한 계산으로 한 가지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생각건대, 이 두 가지 계책이 모두 착실하게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내가 매우 가슴아프게 여기는 바이다.
저 적의 미친 광기는 천하도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지 않는 형편인데 더구나 이 요·광이겠는가. 우리 나라의 안위가 어찌 요·광의 승패에 달려 있겠는가. 지금 인심이 극악해서 틈을 엿보아 재앙을 요행으로 여기는 자들이 수없이 많으니, 변방의 보루가 침략을 받는다면 경성(京城)이 반드시 허물어져서 임진 왜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경(北京)에 갈 사신도 내가 비록 병중에 있으면서도 반드시 직접 만나 하유한 뒤 보내었는데, 더구나 경들에 있어서야 보기가 무엇이 어렵겠는가. 전일에는 비록 만나보았지만 내 말을 한 가지 일도 몸받아 시행하지 않았으니, 지금 비록 다시 말한다 하나 무슨 이익되는 바가 있겠는가. 그러나 마땅히 나의 생각을 면대하여 하유해야겠다."
하였다.
원문
○備邊司啓曰: "此賊凶勢益熾, 狂逞日甚。 天朝之一皷蕩平, 雖不可必, 而遼、廣成敗, 何可易言之也? 竊觀今日之事勢, 伊賊若得志遼、廣形勢鞏固, 則視我國如契丹之視高麗, 侵軼慢侮, 無所不至, 此時雖欲事之以皮幣, 不可得也。 若扼於遼、廣, 不得西下, 則亦必反噬於我, 以泄其毒。 然而其勢必不得悉兵深入也。 何以言之, 伊賊猜暴殘酷, 背天朝卵育之恩, 而敢爲兇逆, 則其於我國, 何有親愛而必欲和好乎? 況我師, 旣從天兵, 深踐其地, 賊之驍將健卒, 漬血於我師之鋒刃者, 不知其幾何, 則兇賊之切齒閃舌, 未嘗須臾忘也。 然而恫疑虛喝, 驕矜而不敢來, 佯言通好, 以誘我者, 賊之情形, 蓋可知矣。 北關與伊賊接境, 金、白部衆, 屯聚一城, 覆之則更無餘燼, 至如我國, 雖極疲弱, 幅員稍大, 西鄙若干城堡, 縱被陷沒, 而何遽至於摧沮哉? 悉衆深入, 則恐天兵之議後, 分兵犯邊, 則無大利而結釁, 此秦之所以遠交近攻, 四十年不加兵於齊者, 勢使然也。 全遼若保, 則我國無受兵之憂, 或有零賊之犯邊, 必無穿入腹裏之患。 譬如乳虎攫禽, 不能遠出者, 戀其巢也。 爲今之計, 彼旣以計緩我, 我亦以計緩彼, 羈縻之策, 固所無妨, 而至於自强之策、助順之義, 無一刻少弛, 厚結大國之援, 以爲唇齒之勢, 則奴雖凶强, 無足畏也。 聖敎中, 嚴明紀律, 繕修器械, 選將鍊兵, 據險積穀, 謹烽火、恤將士等項事意, 正是當今之急務。 苟能著實行此, 則奚但自守而已? 雖制挺北伐, 可也。 但嚴明紀律, 在於賞罰之公, 繕修器械, 在於民力之裕。 賞罰旣公, 民力旣裕, 則選將鍊卒以下, 特擧此而措之耳。 目今貪殘將吏, 剝割軍民, 抄兵之際, 惟賄是視, 而未有一拿問定罪者。 崇班、峻資之賞, 槪出於納物之徒, 則紀律何得而自明? 不急之役, 冗食之徒, 耗財蠧穀, 罔有紀極, 而民力已極, 取辦無所, 則器械何得以自修? 臣等待罪籌邊, 未能出一奇策, 以補聖算, 唯以數行文字, 爲悠泛塞責之地, 臣等之罪, 無所逃矣。 每欲一對淸光, 各陳愚見, 而西事經年, 未有登對之命, 群情悶爵, 遠近解體。 玆因聖批, 敢陳瞽說, 不勝惶恐。" 答曰: "勿爲惶恐。 此時上下所懷, 無隱畢陳, 反覆詳確何妨? 但此賊, 豈比於秦乎? 本司啓意誤矣。 助順之義, 予亦稍辨菽麥, 知之久矣。 第惟我國人心兵力, 無可爲之勢, 奈何奈何?啓辭中, 我國亦不可不緩彼云者, 似是羈縻之意也。 但上下相持, 至今不決, 使宗社將至危亡者, 誰執其咎乎? 大槪一邊羈縻, 一邊自强, 誠是長算, 固不可廢一, 而顧此兩策, 皆無着實可行之事, 予切痛焉。 彼賊狂逞, 天下亦不爲畏忌, 矧玆遼、廣乎? 我國安危, 豈係於遼、廣之勝敗乎? 目今人心極惡, 伺隙幸災者, 如林邊堡被搶, 則京城必潰, 與壬辰之事, 大不同矣。 赴京使臣, 予雖在病中, 亦必引接, 面諭以送, 況於卿等, 見之何難? 前日雖見, 予言無一事體行, 今雖更見, 有何所益? 然從當面諭予懷。"
광해 11년 (1619) 12월 22일
광해군일기[정초본]147권, 광해 11년 12월 22일 辛未 3/3 기사 /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
기미책과 자강책의 시행을 촉구하다
국역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 흉악한 적의 세력이 더욱 치성하여 멋대로 행패를 부리는 것이 날로 심합니다. 명나라가 한 번 싸움으로 적을 평정할는지는 비록 기필할 수 없으나 요·광의 성패에 대해서야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오늘날의 사세를 관찰해 보건대, 저 적이 만약 요·광에서 뜻을 얻어 형편이 확장되고 세력이 완고하게 되면 우리 나라 상대하기를 거란이 고려 상대하듯이 하여 온갖 침략과 업신여기는 짓을 할 것이니, 그때 가서는 비록 가죽과 비단으로 섬기려 하여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요·광을 막아 서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면 또한 반드시 우리 나라를 물어뜯어 그 독기를 쏟을 것입니다. 그래도 형세상 반드시 군사를 다 동원하여 깊이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저 적은 시기하고 사나우며 잔학하고 혹독해서 명나라가 길러준 은덕을 등지고 감히 흉역이 되었는데, 그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 무엇이 친애스러울 것이 있기에 반드시 화호하려고 하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나라의 군사가 이미 명나라 군사를 따라 깊이 저들의 땅에 갔을 때 적의 날랜 장수와 굳센 졸개 중에 우리 군사의 칼날에 피를 흘린 자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흉적들은 이를 갈고 혀를 널름거리면서 잠시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하고 허장성세로 공갈을 치며 교만을 부리면서도 감히 침략해 오지 못하고 있고 거짓으로 통호하겠다고 말하면서 우리를 유인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적의 형세를 알 수 있습니다.
북관(北關)은 저 적과 접경이라서 금부(金部)와 백부(白部)의 무리들이 한 성에 둔전(屯田)을 일구며 모여 살므로 그들을 복멸시키면 남은 불씨가 없겠지만 우리 나라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비록 더없이 피폐되었으나 강토가 좀 더 크니 서쪽 변방에 있는 약간의 성보(城堡)는 비록 함몰당하더라도 어떻게 갑자기 기세가 꺾이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무리를 다 동원하여 깊숙이 쳐들어가면 명나라 군사가 뒤에서 공격할까 두렵고 군사를 나누어 변방을 침범한다면 큰 이익은 없으면서 원한만 맺게 되는 것이니, 이는 진(秦)나라가 먼 나라와는 국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을 하여 40년 동안 지내오면서도 제(齊)나라를 공격하지 못했던 이유이니 이는 형세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동 전체가 만약 보존된다면 우리 나라는 적에게 침범을 당할 걱정이 없을 것이며, 혹시 뒤처진 적이 변방을 침범하더라도 반드시 내지(內地)로 깊숙이 뚫고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새끼 딸린 호랑이가 짐승을 잡는 것과 같아서 자기가 사는 곳에서 멀리 나가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처소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있어 해야 할 계책으로는 저들이 이미 계교로써 우리를 늦추었으니, 우리도 계교로써 저들을 늦추는 기미책을 쓰는 것이 참으로 무방합니다. 그러나 자강(自强)하는 대책과 원조하는 의리에 이르러서도 일각의 해이함이 없이 해서 대국과의 협력 관계를 후히 결속하여 입술과 이의 형세로 만든다면 오랑캐가 비록 흉악하고 강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성교(聖敎) 속에 ‘기율을 엄히 밝히고 기계(器械)를 수선하며,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훈련시키며, 험지를 차지하고 곡식을 저축하며, 봉화를 잘 정비하고 장사(將士)를 무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따위의 사의(事意)는 바로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진실로 착실하게 이 일을 행할 수 있다면 어찌 자수(自守)만 할 뿐이겠습니까. 비록 몽둥이를 만들어 북벌(北伐)을 하더라도 괜찮을 것입니다. 다만 기율을 엄명히 하는 것은 상벌을 공평히 하는 데에 달려있으며, 기계를 수선하는 것은 백성의 힘이 넉넉한 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상벌이 이미 공평하고 민력이 이미 넉넉해지면 장수를 선발하고 군사를 조련하는 이하의 일들은 다만 들어서 행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지금 탐욕스럽고 잔악한 장수와 아전들이 군사와 백성의 재물을 긁어들여 군사를 뽑을 즈음에 오직 뇌물의 많고 적은 것만을 보고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잡아다가 문초하여 죄를 주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숭반(崇班)과 준자(峻資)의 상이 이미 물건을 바친 무리에게 나갔으니 기율을 어떻게 스스로 밝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급하지 않은 역사를 하며 하는 일 없이 먹는 무리들이 재물을 축내고 곡식을 좀먹고 있는 것이 한이 없어 민력이 이미 다 바닥나 취해 마련할 곳이 없게 된다면 기계를 어떻게 스스로 정비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비변사에 있으면서 한 가지 기책(奇策)이라도 내어 성상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오직 두어 줄의 문자를 가지고 범범하게 책임이나 면하려 하고 있으니, 신들은 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양 한 번 성상을 뵙고 각기 어리석은 견해를 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쪽의 일에 대해 한 해가 지나도록 등대(登對)하라는 명이 없어 군정(群情)이 민망해 하고 답답하며 원근이 일손을 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번에 성비로 인하여 감히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진달하게 되어 황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황공하게 여기지 말라. 이런 때에 상하의 생각을 숨김없이 다 진달하여 반복해서 상의한 뒤 확정하는 것이 무엇이 해로운가. 다만 이 적이 어찌 진(秦)나라에 비교할 것이겠는가. 본사(本司)가 아뢴 뜻은 잘못되었다. 원조하는 의리에 있어서는 나도 조금 숙맥(菽麥)을 분변하는 사람으로 그것을 알고 있은 지 오래되었다. 다만 생각건대, 우리 나라의 인심과 병력이 할 만한 형세가 안 되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뢴 말 중에 ‘우리 나라도 저들을 늦추는 계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기미하자는 뜻이다. 다만 상하가 서로 버티면서 지금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 종묘 사직으로 하여금 위망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 죄를 누가 질 것인가? 대개 한편으로는 기미책을 쓰고 한편으로는 자강책(自强策)을 쓰는 것은 진실로 장구한 계산으로 한 가지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생각건대, 이 두 가지 계책이 모두 착실하게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내가 매우 가슴아프게 여기는 바이다.
저 적의 미친 광기는 천하도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지 않는 형편인데 더구나 이 요·광이겠는가. 우리 나라의 안위가 어찌 요·광의 승패에 달려 있겠는가. 지금 인심이 극악해서 틈을 엿보아 재앙을 요행으로 여기는 자들이 수없이 많으니, 변방의 보루가 침략을 받는다면 경성(京城)이 반드시 허물어져서 임진 왜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경(北京)에 갈 사신도 내가 비록 병중에 있으면서도 반드시 직접 만나 하유한 뒤 보내었는데, 더구나 경들에 있어서야 보기가 무엇이 어렵겠는가. 전일에는 비록 만나보았지만 내 말을 한 가지 일도 몸받아 시행하지 않았으니, 지금 비록 다시 말한다 하나 무슨 이익되는 바가 있겠는가. 그러나 마땅히 나의 생각을 면대하여 하유해야겠다."
하였다.
원문
○備邊司啓曰: "此賊凶勢益熾, 狂逞日甚。 天朝之一皷蕩平, 雖不可必, 而遼、廣成敗, 何可易言之也? 竊觀今日之事勢, 伊賊若得志遼、廣形勢鞏固, 則視我國如契丹之視高麗, 侵軼慢侮, 無所不至, 此時雖欲事之以皮幣, 不可得也。 若扼於遼、廣, 不得西下, 則亦必反噬於我, 以泄其毒。 然而其勢必不得悉兵深入也。 何以言之, 伊賊猜暴殘酷, 背天朝卵育之恩, 而敢爲兇逆, 則其於我國, 何有親愛而必欲和好乎? 況我師, 旣從天兵, 深踐其地, 賊之驍將健卒, 漬血於我師之鋒刃者, 不知其幾何, 則兇賊之切齒閃舌, 未嘗須臾忘也。 然而恫疑虛喝, 驕矜而不敢來, 佯言通好, 以誘我者, 賊之情形, 蓋可知矣。 北關與伊賊接境, 金、白部衆, 屯聚一城, 覆之則更無餘燼, 至如我國, 雖極疲弱, 幅員稍大, 西鄙若干城堡, 縱被陷沒, 而何遽至於摧沮哉? 悉衆深入, 則恐天兵之議後, 分兵犯邊, 則無大利而結釁, 此秦之所以遠交近攻, 四十年不加兵於齊者, 勢使然也。 全遼若保, 則我國無受兵之憂, 或有零賊之犯邊, 必無穿入腹裏之患。 譬如乳虎攫禽, 不能遠出者, 戀其巢也。 爲今之計, 彼旣以計緩我, 我亦以計緩彼, 羈縻之策, 固所無妨, 而至於自强之策、助順之義, 無一刻少弛, 厚結大國之援, 以爲唇齒之勢, 則奴雖凶强, 無足畏也。 聖敎中, 嚴明紀律, 繕修器械, 選將鍊兵, 據險積穀, 謹烽火、恤將士等項事意, 正是當今之急務。 苟能著實行此, 則奚但自守而已? 雖制挺北伐, 可也。 但嚴明紀律, 在於賞罰之公, 繕修器械, 在於民力之裕。 賞罰旣公, 民力旣裕, 則選將鍊卒以下, 特擧此而措之耳。 目今貪殘將吏, 剝割軍民, 抄兵之際, 惟賄是視, 而未有一拿問定罪者。 崇班、峻資之賞, 槪出於納物之徒, 則紀律何得而自明? 不急之役, 冗食之徒, 耗財蠧穀, 罔有紀極, 而民力已極, 取辦無所, 則器械何得以自修? 臣等待罪籌邊, 未能出一奇策, 以補聖算, 唯以數行文字, 爲悠泛塞責之地, 臣等之罪, 無所逃矣。 每欲一對淸光, 各陳愚見, 而西事經年, 未有登對之命, 群情悶爵, 遠近解體。 玆因聖批, 敢陳瞽說, 不勝惶恐。" 答曰: "勿爲惶恐。 此時上下所懷, 無隱畢陳, 反覆詳確何妨? 但此賊, 豈比於秦乎? 本司啓意誤矣。 助順之義, 予亦稍辨菽麥, 知之久矣。 第惟我國人心兵力, 無可爲之勢, 奈何奈何?啓辭中, 我國亦不可不緩彼云者, 似是羈縻之意也。 但上下相持, 至今不決, 使宗社將至危亡者, 誰執其咎乎? 大槪一邊羈縻, 一邊自强, 誠是長算, 固不可廢一, 而顧此兩策, 皆無着實可行之事, 予切痛焉。 彼賊狂逞, 天下亦不爲畏忌, 矧玆遼、廣乎? 我國安危, 豈係於遼、廣之勝敗乎? 目今人心極惡, 伺隙幸災者, 如林邊堡被搶, 則京城必潰, 與壬辰之事, 大不同矣。 赴京使臣, 予雖在病中, 亦必引接, 面諭以送, 況於卿等, 見之何難? 前日雖見, 予言無一事體行, 今雖更見, 有何所益? 然從當面諭予懷。"
원본
광해 11년 (1619) 1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