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정초본]14권, 광해 1년 3월 22일 癸卯 2/2 기사 /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유구국 중산왕에게 후의에 답사하고 우호를 맺을 것이라고 보낸 자문
국역
이에 앞서 유구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표류해 도착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 천조(天朝)에 전송하였다. 이에 따라 유구국 사람들이 절사(節使)를 인하여 황경(皇京)에서 회동하고 빙례(騁禮)를 서로 통하였다. 이때 이르러 유구국이 회자(回咨)하기를,
"아홉 번 머리 조아려 절하고 올립니다. 감사한 후정(厚情)은 영원히 썩지 않고 전해질 것입니다. 살펴 보건대 폐방(敝邦)이 귀국과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함께 명(明)나라에 칭신(稱臣)하는 것으로 보면 천지 안에 공존하며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비추고 정신으로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수레처럼 빨리 달려 이성(異姓)의 우호를 맺었으니, 거리의 원근으로 서로의 사이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누차 후사(厚賜)를 받고 세문(歲問)이 끊이지 않았으니, 폐방이 무슨 도리를 닦았기에 이런 은혜를 하집사(下執事)에게 받습니까. 생각건대 연전에는 우리 백성을 살리셨으니, 비단 폐방만이 입은 큰 은혜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때 구활된 백성의 자손들도 하늘을 우러러 멀리 귀국의 죽교(竹橋)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금년에 또 진공(進貢)의 기일을 당하여 배신(陪臣) 정자효(鄭子孝)를 보내어 대궐에 나아가 헌납하게 하고 이어 그편에 귀국에 올리는 물품을 싸 보내어 달려가 바치게 하였으니 물품 목록과 대조하여 받으시기 바랍니다. 매우 부끄러운 비의(菲儀)이지만 작은 정성이나마 펴기 위함이니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폐방이 근년에 관복을 반사(頒賜)하고 왕작을 습봉(襲封)하는 천조(天朝)의 황은을 입어 비로소 귀국과 형제의 정을 맺어 함께 천조의 번병(藩屛)으로 고굉(股肱)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또 황은을 입어 바다에는 물결이 드세지 않고 뱃길이 편안하여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니, 적추(賊酋)가 크게 놀라 감히 다시 보잘것없는 힘을 뻗쳐 중원(中原)을 엿보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모두 천조의 정명(精明)한 위령(威令)이 그들을 굴복시켜서입니다. 또한 우방의 화목도 유래가 있으니 오늘 이후로는 영원히 동맹을 맺어 귀국은 형이 되고 폐방은 동생이 되어 천조를 부모로 섬기면서 화목하게 지내고 빙문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품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색선견(五色線絹) 20필, 오색녹포(五色綠布) 20필, 청남녹견(靑藍綠絹) 20필, 연광초포(練光蕉布) 20필, 초포(蕉布) 20필, 건선(建扇) 2백 파(把), 조선(粗扇) 2백 파."
원문
○先是, 琉球國人漂到我國, 我國轉送天朝。 因此琉球國, 因節使, 會同于皇京, 聘禮相通。 至是琉球國回咨曰:
九頓拜登。 感謝厚情, 垂之不朽矣。 但照敝邦, 與貴國雖有風馬牛之隔也, 然自同稱臣于天朝視之, 則共在覆載之內, 以心相照, 以神相馳, 合異姓之好, 不以遠近隔耳。 是故屢蒙厚貺, 歲問不絶, 敝邦何修得此于下執事哉? 緬想先年, 活我黎庶, 匪惟敝邦, 戴荷洪恩, 于玆未艾, 則數黎民子孫, 無不仰天遙謝貴國竹橋之恩, 爲不替也。 今歲又當貢期, 差遣陪臣鄭子孝, 詣闕獻納, 仍付齎上貴國使馳, 乞爲鑑納。 深愧菲儀, 聊申微忱, 幸毋棄之。 敝邦邇年荷天朝頒賜冠服, 襲封王爵, 始能與貴國, 締兄弟之雅, 同藩天朝, 爲股肱臣子。 且蒙海不揚波, 舟楫安寧, 國泰民安, 賊酋喪膽, 不復挺螳臂以睥睨中原。 顧天朝威命靈爽, 有以屈服之。 亦友邦和睦, 福有自來矣。 自今以往, 請結永盟, 貴國爲兄, 敝邦爲弟, 以弟兄而仰事天朝父母, 歡睦聘問, 願與天長地久耳。 計開五色線絹二十疋, 五色綠布二十疋, 靑藍綠絹二十疋, 練光蕉布二十疋, 蕉布二十疋, 建扇二百把, 粗扇二百把。
광해 1년 (1609) 3월 22일
광해군일기[정초본]14권, 광해 1년 3월 22일 癸卯 2/2 기사 /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유구국 중산왕에게 후의에 답사하고 우호를 맺을 것이라고 보낸 자문
국역
이에 앞서 유구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표류해 도착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 천조(天朝)에 전송하였다. 이에 따라 유구국 사람들이 절사(節使)를 인하여 황경(皇京)에서 회동하고 빙례(騁禮)를 서로 통하였다. 이때 이르러 유구국이 회자(回咨)하기를,
"아홉 번 머리 조아려 절하고 올립니다. 감사한 후정(厚情)은 영원히 썩지 않고 전해질 것입니다. 살펴 보건대 폐방(敝邦)이 귀국과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함께 명(明)나라에 칭신(稱臣)하는 것으로 보면 천지 안에 공존하며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비추고 정신으로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수레처럼 빨리 달려 이성(異姓)의 우호를 맺었으니, 거리의 원근으로 서로의 사이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누차 후사(厚賜)를 받고 세문(歲問)이 끊이지 않았으니, 폐방이 무슨 도리를 닦았기에 이런 은혜를 하집사(下執事)에게 받습니까. 생각건대 연전에는 우리 백성을 살리셨으니, 비단 폐방만이 입은 큰 은혜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때 구활된 백성의 자손들도 하늘을 우러러 멀리 귀국의 죽교(竹橋)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금년에 또 진공(進貢)의 기일을 당하여 배신(陪臣) 정자효(鄭子孝)를 보내어 대궐에 나아가 헌납하게 하고 이어 그편에 귀국에 올리는 물품을 싸 보내어 달려가 바치게 하였으니 물품 목록과 대조하여 받으시기 바랍니다. 매우 부끄러운 비의(菲儀)이지만 작은 정성이나마 펴기 위함이니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폐방이 근년에 관복을 반사(頒賜)하고 왕작을 습봉(襲封)하는 천조(天朝)의 황은을 입어 비로소 귀국과 형제의 정을 맺어 함께 천조의 번병(藩屛)으로 고굉(股肱)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또 황은을 입어 바다에는 물결이 드세지 않고 뱃길이 편안하여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니, 적추(賊酋)가 크게 놀라 감히 다시 보잘것없는 힘을 뻗쳐 중원(中原)을 엿보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모두 천조의 정명(精明)한 위령(威令)이 그들을 굴복시켜서입니다. 또한 우방의 화목도 유래가 있으니 오늘 이후로는 영원히 동맹을 맺어 귀국은 형이 되고 폐방은 동생이 되어 천조를 부모로 섬기면서 화목하게 지내고 빙문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품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색선견(五色線絹) 20필, 오색녹포(五色綠布) 20필, 청남녹견(靑藍綠絹) 20필, 연광초포(練光蕉布) 20필, 초포(蕉布) 20필, 건선(建扇) 2백 파(把), 조선(粗扇) 2백 파."
원문
○先是, 琉球國人漂到我國, 我國轉送天朝。 因此琉球國, 因節使, 會同于皇京, 聘禮相通。 至是琉球國回咨曰:
九頓拜登。 感謝厚情, 垂之不朽矣。 但照敝邦, 與貴國雖有風馬牛之隔也, 然自同稱臣于天朝視之, 則共在覆載之內, 以心相照, 以神相馳, 合異姓之好, 不以遠近隔耳。 是故屢蒙厚貺, 歲問不絶, 敝邦何修得此于下執事哉? 緬想先年, 活我黎庶, 匪惟敝邦, 戴荷洪恩, 于玆未艾, 則數黎民子孫, 無不仰天遙謝貴國竹橋之恩, 爲不替也。 今歲又當貢期, 差遣陪臣鄭子孝, 詣闕獻納, 仍付齎上貴國使馳, 乞爲鑑納。 深愧菲儀, 聊申微忱, 幸毋棄之。 敝邦邇年荷天朝頒賜冠服, 襲封王爵, 始能與貴國, 締兄弟之雅, 同藩天朝, 爲股肱臣子。 且蒙海不揚波, 舟楫安寧, 國泰民安, 賊酋喪膽, 不復挺螳臂以睥睨中原。 顧天朝威命靈爽, 有以屈服之。 亦友邦和睦, 福有自來矣。 自今以往, 請結永盟, 貴國爲兄, 敝邦爲弟, 以弟兄而仰事天朝父母, 歡睦聘問, 願與天長地久耳。 計開五色線絹二十疋, 五色綠布二十疋, 靑藍綠絹二十疋, 練光蕉布二十疋, 蕉布二十疋, 建扇二百把, 粗扇二百把。
원본
광해 1년 (1609)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