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40권, 선조 39년 4월 1일 己亥 2/4 기사 /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조사 주지번 등이 서울에 들어오니 조서를 반포하고 칙유를 선포하다
국역
조사(詔使) 주지번(朱之蕃) 등이 서울에 들어오니 상이 교외에 나가 맞이하였으며 태평관(太平館)에 관소를 정했다. 이날 조서(詔書)를 반포하고 또 칙유(勅諭)를 선포했는데, 칙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번 왜정(倭情)을 헤아리기가 어려워 짐(朕)이 요동 진무(遼東鎭撫)의 차인(差人)으로 하여금 그대 나라에 가서 초탐(哨探)토록 하였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독무(督撫)가 아뢰기를 ‘그동안 해상에는 아무런 동정도 없다.’고 하니 관리를 파견하는 일은 한갓 번잡하게만 할 뿐이다. 그래서 그대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탐보(探報)케 하여 접대하는 비용을 덜어주려 하니, 국왕은 때에 맞춰 엄격히 독려하고 힘써 착실하게 거행하라. 이에 멀리 정찰하고 은밀히 탐색하여 변고의 유무를 막론하고 두 달마다 한 번씩 진강유격아문(鎭江遊擊衙門)에 보고하여 전보(轉報)하도록 하고, 만일 중대한 상황이 있을 때에는 아무 때고 즉시 치보(馳報)하라."
원문
선조수정실록40권, 선조 39년 4월 1일 己亥 2/4 기사 /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조사 주지번 등이 서울에 들어오니 조서를 반포하고 칙유를 선포하다
국역
조사(詔使) 주지번(朱之蕃) 등이 서울에 들어오니 상이 교외에 나가 맞이하였으며 태평관(太平館)에 관소를 정했다. 이날 조서(詔書)를 반포하고 또 칙유(勅諭)를 선포했는데, 칙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번 왜정(倭情)을 헤아리기가 어려워 짐(朕)이 요동 진무(遼東鎭撫)의 차인(差人)으로 하여금 그대 나라에 가서 초탐(哨探)토록 하였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독무(督撫)가 아뢰기를 ‘그동안 해상에는 아무런 동정도 없다.’고 하니 관리를 파견하는 일은 한갓 번잡하게만 할 뿐이다. 그래서 그대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탐보(探報)케 하여 접대하는 비용을 덜어주려 하니, 국왕은 때에 맞춰 엄격히 독려하고 힘써 착실하게 거행하라. 이에 멀리 정찰하고 은밀히 탐색하여 변고의 유무를 막론하고 두 달마다 한 번씩 진강유격아문(鎭江遊擊衙門)에 보고하여 전보(轉報)하도록 하고, 만일 중대한 상황이 있을 때에는 아무 때고 즉시 치보(馳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