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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 8월 1일 戊子 12/22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조헌이 천문과 인사의 길흉을 헤아렸는데 이는 지극하게 시운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국역

조헌의 자(字)는 여식(汝式)이고 호(號)는 중봉(重峯)이다. 본래 고려 충신인 원수(元帥) 조천주(趙天柱)의 후손으로 가세(家世)가 중간에 한미해졌다. 부친 조응지(趙應祉)는 김포현(金浦縣)의 교생(校生)이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스스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조헌은 유년시기에 자력으로 글을 배웠다. 나이 5세 때에 여러 어린이들과 임정(林亭)에서 글을 읽고 있었는데 높은 벼슬아치의 행차가 호창(呼唱)을 하면서 그 아래로 지나갔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서 보려고 다투는데도 조헌만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벼슬아치가 말에서 내려 감탄하고 칭찬하면서 손에 들었던 부채를 그에게 주었는데, 사양하면서 받지 않으니 더욱 기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이 아이는 뛰어난 인재감이다.’ 하였다.

10세 때 부친상을 당하자 복(服)입는 예절을 성인(成人)처럼 하였다. 계모(繼母)가 그를 매정하게 대우하였으므로 외조모가 언젠가 조헌에게 계모를 비방한 적이 있었는데 조헌이 대답하지 않고는 이로부터 몇 달 뒤에야 가서 외조모를 뵈었다. 외조모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오래도록 오지 않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지난번에 우리 모친의 일을 말씀하셨는데 자식이 된 입장으로서는 차마 듣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오지 못했을 뿐이다.’ 하였다. 외조모가 부끄럽게 여기며 감복하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조헌이 정성을 다하여 종신토록 계모를 섬기자 계모도 감화되어 친모(親母)처럼 독실하게 사랑하면서 ‘이 아이가 참으로 내 아들이다. 단지 전인(前人)046) 이 자기 배를 통하여 낳았을 뿐이다.’ 하였다.

처음에 과거에 급제했을 때 문벌(門閥)에 막혀 청선(淸選)에 들지 못하고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가 되었다. 관례에 따라 향실(香室)에 입직하다가 불사(佛寺)에 내려주는 향을 봉(封)하는 때를 당하여 상소하기를 ‘입으로 성현(聖賢)의 글을 외면서 손으로 불공(佛供)하는 향을 봉하는 일은 신이 차마 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이에 추고(推考)를 명하였으나 항거하며 불복(不服)하자 의금부에 옮겨 국문토록 하였는데 끝내 굽히지 않으므로 마침내 그를 석방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의 명성이 일세(一世)를 진동시켰다.

성혼(成渾)에게 종유(從遊)하면서 강학(講學)하였던 관계로 이발(李潑)·김우옹(金宇顒)이 번갈아 칭찬하고 천거하여 장차 시종(侍從)의 반열에 참여하게 될 것이 기대되었으나 끝내는 남달리 고립되고 직선적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지방관으로 나갔다. 조헌은 성혼과 이이(李珥)를 스승으로 섬겼지만 정철(鄭澈)의 사람됨은 좋아하지 않았다. 전라 도사(全羅道事)가 되었을 때 마침 정철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되자 그의 막하(幕下)에 있게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즉시 벼슬을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이에 정철이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공이 본래 나에 대하여 모를텐데 어떻게 해서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아는가. 잠시 서로 만나보고 나서 내가 참으로 옳지 못함을 안 뒤에 떠나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니, 조헌이 돌아와서 마침내 떠나지 않고 말하기를 ‘처음에 내가 남에게 오도되어 하마터면 공을 잃을 뻔 했다.’ 하였다.

그 뒤 성혼과 이이가 무함을 당하게 되었으나 조헌은 더욱 정철과 가깝게 지내고 이발 등과는 엄격히 교제를 끊었다. 이 때문에 당인(黨人)들이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으며, 서로 알고 아끼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언론이 과격하고 처신이 고벽(孤僻)한 것을 보고는 사정에 오활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지함(李之菡)만은 언제나 칭송하기를 ‘지금 세상에 초야(草野)에서 인재를 보기가 드문데, 조여식(趙汝式)만은 안빈낙도하며 명예와 이익을 털어버리고서 지극한 정성으로 임금을 사랑하며 나라를 걱정하고 있으니, 옛날 사람 중에서 찾는다 해도 실제로 그와 짝할 만한 이가 드물다. 이 사람을 빼놓고는 나는 다른 사람은 모른다.’ 하였는데, 남들이 더러 그가 평론을 잘못했다고 의심하자, 이지함이 말하기를 ‘뒷날 응당 알게 될 것이니 내 말만 기억하라.’ 하였다.

조헌이 정여립(鄭汝立)이 틀림없이 모반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이발과의 오랜 교유를 끊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모두 그의 예견대로 들어맞았다. 그리고 왜(倭)와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사태를 앞서 걱정하는 자가 적었으며, 걱정한다 해도 성지(城池)를 방수(防守)하는 계책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헌만은 왜의 죄를 천하에 성토하고 그 모의를 꺾어 동병(動兵)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으며, 동병하더라도 중국 군사가 때를 맞춰 와서 접응한다면 그래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계책이야말로 당시의 최상책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책이 채택되지 않자 밤마다 천문(天文)을 우러러 살피면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온종일 먹지 않기도 하였는데,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고 늘 처자로 하여금 무거운 것을 지고 걷는 일을 연습하게 하였으며, 또 문인(門人)으로 하여금 글을 읽는 여가에 날마다 30리씩 걷는 연습을 시키면서 말하기를 ‘머지 않아 왜적의 난리를 피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시급한 업무이다.’ 하였는데, 문인들이 모두 감히 어기지 못하였다.

신묘년047) 가을에 문인 박정로(朴廷老)와 함께 금산사(金山寺) 누각에 올랐는데, 붉은 기운 세 가닥이 하늘 북쪽에 길게 뻗치고 서남쪽으로 반쯤 뻗쳐 있는 것을 보고 박정로에게 말하기를 ‘수길(秀吉)의 군사가 이미 움직였으니 내년에 틀림없이 이 기운처럼 대대적으로 침입해 올 것이다. 모름지기 일찍 피난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였다. 그리고는 이 해 봄에 선조의 묘소에 성묘하고 제문을 지어 제사하며 난리가 일어날 것이므로 하직한다는 뜻을 고하였다. 그 뒤 처(妻)의 장례를 치르려고 친척과 빈객이 와서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우레처럼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이에 ‘왜병이 바야흐로 바다를 건넜다.’ 하고는 장례를 재촉하여 끝내고 공주(公州)로 돌아왔는데, 적이 과연 그날 우리 지경을 침범하였다.

조헌이 천문과 인사(人事)의 길흉을 헤아렸으니 이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운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술사(術士)처럼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평소 잡서(雜書)를 보거나 사장(詞章)을 배우지 않고 경서(經書)만 읽었으며, 날마다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배송하였다. 붓가는 대로 지은 상소문과 서찰 등이 명백하고 준정(峻整)하여 모두 세상에 전할 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6면
  • [註 046] 전인(前人) : 조헌의 친모를 가리킴.
  • [註 047] 신묘년 : 1591 선조 24년.

원문

○憲字汝式, 號重峯。 本高麗忠臣元帥天柱之後, 家世中微。 父應社以金浦縣校生, 家貧, 自業農畝。 憲兒時, 自力受書。 年五歲, 與群兒在林亭讀書, 有達官之行, 呼唱過其下, 群兒爭起視, 憲獨不顧。 達官下馬歎賞, 以手箑遺之, 憲辭不受, 益奇之曰: "此大器人也。" 十歲喪父, 服禮如成人。 繼母遇之少恩, 外祖母嘗對憲訕之, 憲不答。 自此數月後, 乃往見外祖母, 外祖母曰: "何久不來?" 對曰: "向者談我母氏事, 爲其子所不忍聞, 故久不來耳。" 外祖母慙服不復言。 憲竭誠事繼母終身, 繼母感化, 慈愛之篤如親母曰: "此眞吾兒也。 前人特借腹以生耳。" 初登第, 格於門閥, 不入淸選, 爲校書正字。 例直香室, 當封佛寺降香, 乃上疏以爲: "口誦聖賢之書, 手封供佛之香, 臣所不忍也。" 命推考, 抗對不服, 移義禁府鞫問, 對終不屈, 遂釋之, 以此聲動一世。 從成渾講學, 故李潑、金宇顒交口薦譽, 將待以侍從之列, 而竟以孤直見擠, 爲外官。 憲師事成、李, 而不悅鄭澈之爲人。 爲全羅都事, 適當澈按道, 恥在其幕下, 卽日棄去。 澈使人謂曰: "公素昧我, 何以知吾爲小人? 且暫相屈見, 吾眞不是然後去, 未晩也。" 憲乃還, 遂不去曰: "始吾爲人所誤, 幾失公矣。" 及成、李被誣, 憲益親澈, 而峻絶潑等。 以此爲黨人所仇, 雖相知愛者, 亦見其言論過激, 處身苦僻以爲: "迂闊於事情矣。" 獨李之菡每稱之曰: "今世, 草野間小見人才, 惟趙汝式安貧樂道, 擺脫名利, 愛君憂國, 出於至誠, 求之古人, 實罕其儔。 此外吾不知矣。" 人或疑其失評, 之菡曰: "後當知之。 但記吾言也。" 及憲預知鄭汝立必叛, 絶李潑舊交, 未幾而皆符其見。 倭釁之啓, 預憂者少, 其憂之者不過爲防守城池策耳。 惟憲欲聲罪天下, 以伐其謀, 使不得卽動, 雖動天兵, 及時來接, 則猶可及捄, 其策爲當時第一。 及其不見用, 每夜仰候天文, 或痛哭流涕, 或終日不食, 傍人皆怪之。 常令妻子, 負重習步, 又使門人, 讀書之暇逐日習步一舍許曰: "不久當避倭難, 此是急務也。" 門人皆不敢違。 辛卯秋, 與門人朴廷老登金山寺樓, 見赤氣三道亘天北長, 而西南半之, 謂廷老曰: "秀吉之兵已動, 明年必大擧入寇, 當如此氣, 須早爲避亂計。" 是年春, 往省先隴, 祭告亂作辭決之意。 方葬妻, 親賓來會, 忽聞空中有聲, 訇然曰: "倭兵方渡海矣。" 遂促葬, 還公州, 賊果以其日犯境。 憲略識天人占候, 以其至誠憂時, 故能前知如術士。 平生不觀雜書, 學詞章, 惟讀經書, 逐日背誦《朱子大全》。 信筆作疏章、書札, 明白峻整, 皆可傳世矣。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6면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선조 25년 (1592) 8월 1일

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 8월 1일 戊子 12/22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조헌이 천문과 인사의 길흉을 헤아렸는데 이는 지극하게 시운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국역

조헌의 자(字)는 여식(汝式)이고 호(號)는 중봉(重峯)이다. 본래 고려 충신인 원수(元帥) 조천주(趙天柱)의 후손으로 가세(家世)가 중간에 한미해졌다. 부친 조응지(趙應祉)는 김포현(金浦縣)의 교생(校生)이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스스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조헌은 유년시기에 자력으로 글을 배웠다. 나이 5세 때에 여러 어린이들과 임정(林亭)에서 글을 읽고 있었는데 높은 벼슬아치의 행차가 호창(呼唱)을 하면서 그 아래로 지나갔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서 보려고 다투는데도 조헌만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벼슬아치가 말에서 내려 감탄하고 칭찬하면서 손에 들었던 부채를 그에게 주었는데, 사양하면서 받지 않으니 더욱 기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이 아이는 뛰어난 인재감이다.’ 하였다.

10세 때 부친상을 당하자 복(服)입는 예절을 성인(成人)처럼 하였다. 계모(繼母)가 그를 매정하게 대우하였으므로 외조모가 언젠가 조헌에게 계모를 비방한 적이 있었는데 조헌이 대답하지 않고는 이로부터 몇 달 뒤에야 가서 외조모를 뵈었다. 외조모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오래도록 오지 않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지난번에 우리 모친의 일을 말씀하셨는데 자식이 된 입장으로서는 차마 듣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오지 못했을 뿐이다.’ 하였다. 외조모가 부끄럽게 여기며 감복하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조헌이 정성을 다하여 종신토록 계모를 섬기자 계모도 감화되어 친모(親母)처럼 독실하게 사랑하면서 ‘이 아이가 참으로 내 아들이다. 단지 전인(前人)046) 이 자기 배를 통하여 낳았을 뿐이다.’ 하였다.

처음에 과거에 급제했을 때 문벌(門閥)에 막혀 청선(淸選)에 들지 못하고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가 되었다. 관례에 따라 향실(香室)에 입직하다가 불사(佛寺)에 내려주는 향을 봉(封)하는 때를 당하여 상소하기를 ‘입으로 성현(聖賢)의 글을 외면서 손으로 불공(佛供)하는 향을 봉하는 일은 신이 차마 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이에 추고(推考)를 명하였으나 항거하며 불복(不服)하자 의금부에 옮겨 국문토록 하였는데 끝내 굽히지 않으므로 마침내 그를 석방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의 명성이 일세(一世)를 진동시켰다.

성혼(成渾)에게 종유(從遊)하면서 강학(講學)하였던 관계로 이발(李潑)·김우옹(金宇顒)이 번갈아 칭찬하고 천거하여 장차 시종(侍從)의 반열에 참여하게 될 것이 기대되었으나 끝내는 남달리 고립되고 직선적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지방관으로 나갔다. 조헌은 성혼과 이이(李珥)를 스승으로 섬겼지만 정철(鄭澈)의 사람됨은 좋아하지 않았다. 전라 도사(全羅道事)가 되었을 때 마침 정철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되자 그의 막하(幕下)에 있게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즉시 벼슬을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이에 정철이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공이 본래 나에 대하여 모를텐데 어떻게 해서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아는가. 잠시 서로 만나보고 나서 내가 참으로 옳지 못함을 안 뒤에 떠나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니, 조헌이 돌아와서 마침내 떠나지 않고 말하기를 ‘처음에 내가 남에게 오도되어 하마터면 공을 잃을 뻔 했다.’ 하였다.

그 뒤 성혼과 이이가 무함을 당하게 되었으나 조헌은 더욱 정철과 가깝게 지내고 이발 등과는 엄격히 교제를 끊었다. 이 때문에 당인(黨人)들이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으며, 서로 알고 아끼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언론이 과격하고 처신이 고벽(孤僻)한 것을 보고는 사정에 오활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지함(李之菡)만은 언제나 칭송하기를 ‘지금 세상에 초야(草野)에서 인재를 보기가 드문데, 조여식(趙汝式)만은 안빈낙도하며 명예와 이익을 털어버리고서 지극한 정성으로 임금을 사랑하며 나라를 걱정하고 있으니, 옛날 사람 중에서 찾는다 해도 실제로 그와 짝할 만한 이가 드물다. 이 사람을 빼놓고는 나는 다른 사람은 모른다.’ 하였는데, 남들이 더러 그가 평론을 잘못했다고 의심하자, 이지함이 말하기를 ‘뒷날 응당 알게 될 것이니 내 말만 기억하라.’ 하였다.

조헌이 정여립(鄭汝立)이 틀림없이 모반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이발과의 오랜 교유를 끊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모두 그의 예견대로 들어맞았다. 그리고 왜(倭)와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사태를 앞서 걱정하는 자가 적었으며, 걱정한다 해도 성지(城池)를 방수(防守)하는 계책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헌만은 왜의 죄를 천하에 성토하고 그 모의를 꺾어 동병(動兵)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으며, 동병하더라도 중국 군사가 때를 맞춰 와서 접응한다면 그래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계책이야말로 당시의 최상책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책이 채택되지 않자 밤마다 천문(天文)을 우러러 살피면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온종일 먹지 않기도 하였는데,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고 늘 처자로 하여금 무거운 것을 지고 걷는 일을 연습하게 하였으며, 또 문인(門人)으로 하여금 글을 읽는 여가에 날마다 30리씩 걷는 연습을 시키면서 말하기를 ‘머지 않아 왜적의 난리를 피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시급한 업무이다.’ 하였는데, 문인들이 모두 감히 어기지 못하였다.

신묘년047) 가을에 문인 박정로(朴廷老)와 함께 금산사(金山寺) 누각에 올랐는데, 붉은 기운 세 가닥이 하늘 북쪽에 길게 뻗치고 서남쪽으로 반쯤 뻗쳐 있는 것을 보고 박정로에게 말하기를 ‘수길(秀吉)의 군사가 이미 움직였으니 내년에 틀림없이 이 기운처럼 대대적으로 침입해 올 것이다. 모름지기 일찍 피난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였다. 그리고는 이 해 봄에 선조의 묘소에 성묘하고 제문을 지어 제사하며 난리가 일어날 것이므로 하직한다는 뜻을 고하였다. 그 뒤 처(妻)의 장례를 치르려고 친척과 빈객이 와서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우레처럼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이에 ‘왜병이 바야흐로 바다를 건넜다.’ 하고는 장례를 재촉하여 끝내고 공주(公州)로 돌아왔는데, 적이 과연 그날 우리 지경을 침범하였다.

조헌이 천문과 인사(人事)의 길흉을 헤아렸으니 이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운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술사(術士)처럼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평소 잡서(雜書)를 보거나 사장(詞章)을 배우지 않고 경서(經書)만 읽었으며, 날마다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배송하였다. 붓가는 대로 지은 상소문과 서찰 등이 명백하고 준정(峻整)하여 모두 세상에 전할 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6면
  • [註 046] 전인(前人) : 조헌의 친모를 가리킴.
  • [註 047] 신묘년 : 1591 선조 24년.

원문

○憲字汝式, 號重峯。 本高麗忠臣元帥天柱之後, 家世中微。 父應社以金浦縣校生, 家貧, 自業農畝。 憲兒時, 自力受書。 年五歲, 與群兒在林亭讀書, 有達官之行, 呼唱過其下, 群兒爭起視, 憲獨不顧。 達官下馬歎賞, 以手箑遺之, 憲辭不受, 益奇之曰: "此大器人也。" 十歲喪父, 服禮如成人。 繼母遇之少恩, 外祖母嘗對憲訕之, 憲不答。 自此數月後, 乃往見外祖母, 外祖母曰: "何久不來?" 對曰: "向者談我母氏事, 爲其子所不忍聞, 故久不來耳。" 外祖母慙服不復言。 憲竭誠事繼母終身, 繼母感化, 慈愛之篤如親母曰: "此眞吾兒也。 前人特借腹以生耳。" 初登第, 格於門閥, 不入淸選, 爲校書正字。 例直香室, 當封佛寺降香, 乃上疏以爲: "口誦聖賢之書, 手封供佛之香, 臣所不忍也。" 命推考, 抗對不服, 移義禁府鞫問, 對終不屈, 遂釋之, 以此聲動一世。 從成渾講學, 故李潑、金宇顒交口薦譽, 將待以侍從之列, 而竟以孤直見擠, 爲外官。 憲師事成、李, 而不悅鄭澈之爲人。 爲全羅都事, 適當澈按道, 恥在其幕下, 卽日棄去。 澈使人謂曰: "公素昧我, 何以知吾爲小人? 且暫相屈見, 吾眞不是然後去, 未晩也。" 憲乃還, 遂不去曰: "始吾爲人所誤, 幾失公矣。" 及成、李被誣, 憲益親澈, 而峻絶潑等。 以此爲黨人所仇, 雖相知愛者, 亦見其言論過激, 處身苦僻以爲: "迂闊於事情矣。" 獨李之菡每稱之曰: "今世, 草野間小見人才, 惟趙汝式安貧樂道, 擺脫名利, 愛君憂國, 出於至誠, 求之古人, 實罕其儔。 此外吾不知矣。" 人或疑其失評, 之菡曰: "後當知之。 但記吾言也。" 及憲預知鄭汝立必叛, 絶李潑舊交, 未幾而皆符其見。 倭釁之啓, 預憂者少, 其憂之者不過爲防守城池策耳。 惟憲欲聲罪天下, 以伐其謀, 使不得卽動, 雖動天兵, 及時來接, 則猶可及捄, 其策爲當時第一。 及其不見用, 每夜仰候天文, 或痛哭流涕, 或終日不食, 傍人皆怪之。 常令妻子, 負重習步, 又使門人, 讀書之暇逐日習步一舍許曰: "不久當避倭難, 此是急務也。" 門人皆不敢違。 辛卯秋, 與門人朴廷老登金山寺樓, 見赤氣三道亘天北長, 而西南半之, 謂廷老曰: "秀吉之兵已動, 明年必大擧入寇, 當如此氣, 須早爲避亂計。" 是年春, 往省先隴, 祭告亂作辭決之意。 方葬妻, 親賓來會, 忽聞空中有聲, 訇然曰: "倭兵方渡海矣。" 遂促葬, 還公州, 賊果以其日犯境。 憲略識天人占候, 以其至誠憂時, 故能前知如術士。 平生不觀雜書, 學詞章, 惟讀經書, 逐日背誦《朱子大全》。 信筆作疏章、書札, 明白峻整, 皆可傳世矣。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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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5년 (1592) 8월 1일

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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