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 6월 1일 己丑 38/43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을 침범하다
국역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郡縣)을 침범하였다. 처음에 호남의 군사가 패하여 본도로 돌아오니 여러 고을의 인심이 흉흉하여 보전할 수 없었는데, 오직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율(權慄)만이 고을의 군사를 단속하고 이웃 고을에 격문을 전하여 수어(守禦)할 계획을 하였으므로, 이광(李洸)이 즉시 첩보하여 권율을 도절제사로 삼아 호남과 영남의 경계에 나아가 수비하게 하였다. 이에 방어사 곽영(郭嶸), 동복 현감(同福縣監) 황진(黃進), 전주(全州) 의병장 황박(黃璞), 나주 판관(羅州判官) 이복남(李福男), 김제 군수(金堤郡守) 정담(鄭湛)을 웅현(熊峴)과 이현(梨峴) 등 요해처에 나누어 배치하여 적의 침입을 방비하게 하였다. 이 때 왜병이 성주(星州) 무계현(茂溪縣)으로부터 금산(金山)·지례(知禮) 지경을 경유하여 무주(茂朱) 용담현(龍潭縣)으로 들어와 금산(錦山)에 진을 치고 있다가 충청도 옥천(沃川)·영동(永同)의 여러 고을로 들어가 청주(淸州)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사방으로 나가 방화하며 노략하였다. 그러나 충청 감사 윤국형(尹國馨)과 병사 이옥(李沃)이 금강(錦江)에 군사를 모아 방위만 하면서 감히 진격하지 못하자 조헌(趙憲)이 국형에게 편지를 보내어 머뭇거리면서 적을 치지 않는 것을 책망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원문
선조 25년 (1592) 6월 1일
- 삼도의 군사가 용인에서 패하다
- 이순신이 잇따라 왜병을 패배시키다
- 원균이 이순신과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려 하였으나 이순신이 단독으로 장계를 올리다
- 유성룡을 다시 복직시키고부원군에 봉하다
- 요동 도사사 진무 임세록이 왜적의 실정을 탐지하러 오다
- 왜장 평행장 등이 대동강 남쪽을 침범하다
- 영중추부사 정철이 행재소로 오다
- 임세록이 유성룡과 연광정에 올라 적의 상황을 탐지하다
- 이항복을 병조 판서로, 이덕형을 대사헌으로 삼다
- 좌의정 윤두수, 도원수 이원익 등에게 평양성을 지키도록 명하다
- 감사 송언신이 난을 일으킨 백성 몇 사람을 참수하다
- 조도사를 여러 도에 보내 식량을 조치하도록 하다
- 이희득을 함경도 순검사로 삼다
- 왜장이 이덕형과 강중에서 만나기를 청하다
- 상이 평양을 떠나 영변부로 향하다
- 이덕형을 청원사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다
- 왜장 청정이 관북에 침입하다
- 세자에게 종묘 사직을 받들고 분조하도록 명하다
- 사관 조존세·임취정·박정현 등이 도망하다
- 난이 일어나자 명망있는 진신들이 모두 도망하다
- 세자가 영변부에 머물며 분조하라는 상의 하교를 받다
- 상이 선천에 이르러 곽산 군수 이경준에게 거가를 수행하도록 명하다
- 평양이 함락되다
- 요동의 유격 사유, 참장 곽몽징이 군사를 거느리고 선천의 임반관에 도착하다
- 상이 선천에 머물다
- 상이 차령관에 머물다
- 상이 용천에 머물다
- 영의정 최흥원이 세자를 시위할 사직 참봉을 차송해 달라고 장계하다
- 상이 의주에 이르다
- 주청사 지돈녕부사 정곤수를 파견하여 대병이 와서 구원해 줄 것을 청하다
- 각도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 현풍인 곽재우가 거병하다
- 전 부사 고경명이 군사를 일으키다
- 전 장령 정인홍이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
- 적이 강원도의 주현을 함락시키다
- 경상도를 나누어 이성임을 우도 순찰사로, 김성일을 좌도 순찰사로 삼다
- 초토사 김성일이 장계를 올려 곽재우의 공과를 논하다
-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을 침범하다
- 전라도 조방장 이유의 등이 팔량치에 주둔하다 진영을 금산 송치로 옮기다
- 의병장 손인갑이 적을 초계에서 패배시키다
- 호남 의병장 김천일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다
- 전 순찰사 김수를 한성 판윤에 임명하다
- 직제학 오억령을 이조 참의에 임명하다
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 6월 1일 己丑 38/43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을 침범하다
국역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郡縣)을 침범하였다. 처음에 호남의 군사가 패하여 본도로 돌아오니 여러 고을의 인심이 흉흉하여 보전할 수 없었는데, 오직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율(權慄)만이 고을의 군사를 단속하고 이웃 고을에 격문을 전하여 수어(守禦)할 계획을 하였으므로, 이광(李洸)이 즉시 첩보하여 권율을 도절제사로 삼아 호남과 영남의 경계에 나아가 수비하게 하였다. 이에 방어사 곽영(郭嶸), 동복 현감(同福縣監) 황진(黃進), 전주(全州) 의병장 황박(黃璞), 나주 판관(羅州判官) 이복남(李福男), 김제 군수(金堤郡守) 정담(鄭湛)을 웅현(熊峴)과 이현(梨峴) 등 요해처에 나누어 배치하여 적의 침입을 방비하게 하였다. 이 때 왜병이 성주(星州) 무계현(茂溪縣)으로부터 금산(金山)·지례(知禮) 지경을 경유하여 무주(茂朱) 용담현(龍潭縣)으로 들어와 금산(錦山)에 진을 치고 있다가 충청도 옥천(沃川)·영동(永同)의 여러 고을로 들어가 청주(淸州)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사방으로 나가 방화하며 노략하였다. 그러나 충청 감사 윤국형(尹國馨)과 병사 이옥(李沃)이 금강(錦江)에 군사를 모아 방위만 하면서 감히 진격하지 못하자 조헌(趙憲)이 국형에게 편지를 보내어 머뭇거리면서 적을 치지 않는 것을 책망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원문
원본
선조 25년 (1592) 6월 1일
- 삼도의 군사가 용인에서 패하다
- 이순신이 잇따라 왜병을 패배시키다
- 원균이 이순신과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려 하였으나 이순신이 단독으로 장계를 올리다
- 유성룡을 다시 복직시키고부원군에 봉하다
- 요동 도사사 진무 임세록이 왜적의 실정을 탐지하러 오다
- 왜장 평행장 등이 대동강 남쪽을 침범하다
- 영중추부사 정철이 행재소로 오다
- 임세록이 유성룡과 연광정에 올라 적의 상황을 탐지하다
- 이항복을 병조 판서로, 이덕형을 대사헌으로 삼다
- 좌의정 윤두수, 도원수 이원익 등에게 평양성을 지키도록 명하다
- 감사 송언신이 난을 일으킨 백성 몇 사람을 참수하다
- 조도사를 여러 도에 보내 식량을 조치하도록 하다
- 이희득을 함경도 순검사로 삼다
- 왜장이 이덕형과 강중에서 만나기를 청하다
- 상이 평양을 떠나 영변부로 향하다
- 이덕형을 청원사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다
- 왜장 청정이 관북에 침입하다
- 세자에게 종묘 사직을 받들고 분조하도록 명하다
- 사관 조존세·임취정·박정현 등이 도망하다
- 난이 일어나자 명망있는 진신들이 모두 도망하다
- 세자가 영변부에 머물며 분조하라는 상의 하교를 받다
- 상이 선천에 이르러 곽산 군수 이경준에게 거가를 수행하도록 명하다
- 평양이 함락되다
- 요동의 유격 사유, 참장 곽몽징이 군사를 거느리고 선천의 임반관에 도착하다
- 상이 선천에 머물다
- 상이 차령관에 머물다
- 상이 용천에 머물다
- 영의정 최흥원이 세자를 시위할 사직 참봉을 차송해 달라고 장계하다
- 상이 의주에 이르다
- 주청사 지돈녕부사 정곤수를 파견하여 대병이 와서 구원해 줄 것을 청하다
- 각도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 현풍인 곽재우가 거병하다
- 전 부사 고경명이 군사를 일으키다
- 전 장령 정인홍이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
- 적이 강원도의 주현을 함락시키다
- 경상도를 나누어 이성임을 우도 순찰사로, 김성일을 좌도 순찰사로 삼다
- 초토사 김성일이 장계를 올려 곽재우의 공과를 논하다
-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을 침범하다
- 전라도 조방장 이유의 등이 팔량치에 주둔하다 진영을 금산 송치로 옮기다
- 의병장 손인갑이 적을 초계에서 패배시키다
- 호남 의병장 김천일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다
- 전 순찰사 김수를 한성 판윤에 임명하다
- 직제학 오억령을 이조 참의에 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