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16권, 선조 32년 8월 25일 辛丑 4/4 기사 /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심희수가 경리의 요구에 응하기 힘듦을 말하며 김상준의 등용을 청하다
국역
경리 접반사(經理接伴使) 심희수(沈喜壽)가 아뢰기를,
"경리의 성품이 완만하여 법도가 적으므로 많은 문하 장관들이 경외하는 바가 없는 데다가, 돌아갈 기한이 멀지 않아 사람마다 각각 청구하는 일이 형형 색색이고 온갖 방법으로 토색하고 있으니, 평시의 물력(物力)으로도 감당해 내기 어려운 형편인데, 더구나 오늘날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상례로 약간의 은자를 보내고서는 십배나 중한 가격의 물건을 토색해 가니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첩지를 보내어 간절히 구걸하기도 하고 대면하여 협박하기도 하면서 온갖 추태를 부리는데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낭료(郞僚)가 욕을 당하고 색리(色吏)가 곤장을 맞는 일이 전후 잇달아서 형언하기도 어렵습니다. 신(臣) 희수는 깊이 생각건대, 나라의 저축이 탕갈되고 방시(坊市)가 텅 비었는데, 뿔 없는 양을 찾아내게 하고 거북의 털을 긁어내는 것 같아 도무지 묘책이 없습니다. 신이 매양 일을 잘 아는 통관들과 주선하며 회유하는 등 힘을 다해 무마하여 요청한 것이 십수 건이면 그 가운데 겨우 한두 건만 부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감(都監)에서 마련해 낼 수 있는 것은 쉽게 시행하겠지만, 일이 중대하여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것은 부득이 계청해야 하므로 그 형세가 실로 급박합니다. 그러나 장관배는 실로 이처럼 어려운 사정을 모르고 모두 불만스런 마음으로 유감을 품고 있는가 하면 경리 역시 신이 공응(供應)에 성의가 없다고 의심합니다. 지난번에 통관 송업남(宋業男)이 칼집에 쓰이는 영양각(羚羊角)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인해 진기패(陳旗牌)란 자에게 혹독한 곤장을 맞았으니, 어찌 통분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근일 호조가, 중군(中軍) 손방희(孫邦熙)가 청구한 경면지(鏡面紙)의 일로 인하여 감히 아뢰기를 ‘국계(國計)가 탕갈된 내용을 접반사도 오히려 알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하는데 하물며 천조의 장관이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나 어찌 감히 국사를 생각하지 않고 얻기 어려운 물건을 책출하여 중국 장수에게 잘 보이려 하겠습니까. 밤낮 독촉을 당하여 그 고뇌를 참을 수 없는데 이를 계하(啓下)하여 추호(追呼)하는 일이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런 비방을 듣게 되었으니, 접반사의 임무를 띤 자가 또한 민망하지 않겠습니까.
도청 낭청(都廳郞廳) 김상준(金尙寯)은 직사(職事)에 근실하고 숙달되어 문하관(門下官)들의 칭송을 받는 사람이므로 전에 추고 경차관(推考敬差官)에 임명되었을 적에 감히 체차시킬 것을 청하였는데, 지금 또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임명되어 아문(衙門)의 서무를 맡아 관리할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목사를 체차하고 그대로 도감(都監)의 일을 보살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원문
○經理接伴使沈喜壽啓曰: "經理性寬緩, 少法度, 許多門下將官, 無所顧忌, 且以歸期不遠, 人各有求請之事, 形形色色, 徵索百端, 雖以平時物力, 亦所難當。 況今日之事乎? 例送銀子少許, 討出十倍價重之物, 無謂莫甚。 或送帖哀懇, 或對面迫脅, 備諸醜態, 無所不至。 郞僚受辱, 色吏被棍, 前後相繼, 有難形言, 而臣喜壽深念, 國儲蕩竭, 坊市赤立, 俾出童羖, 如刮龜毛, 茫無以爲計。 每與解事通官輩, 周旋開諭, 盡力搪塞, 凡所請十數件事, 則僅能應副其一二, 而自都監可以圖出者, 則便宜施行, 若事涉重大, 所難自擅者, 則不得已啓請, 其勢誠急矣。 而將官之輩, 實不知此間艱窘之狀, 皆以不滿意欲爲恨, 雖經理, 亦未必不疑於臣之無意供應也。 頃者, 通官宋業男, 以刀鞘所用, 羚羊角攔阻之, 故酷被重棍於陳旗牌稱名人, 豈非痛憤之甚哉? 日間戶曹, 因孫中軍求請鏡面紙之事, 乃敢啓之, ‘以國計蕩竭之意, 接伴使猶不知有是言, 則況天朝將官乎?’ 云云。 臣雖無狀, 安敢不念國事, 責出難得之物, 以媚悅天將哉? 日夜被督, 不勝煩惱, 乃有此啓下追呼之擧, 則終得此謗, 爲接伴之任者, 不亦悶乎? 都廳郞廳金尙寯, 勤練職事, 門下官所稱道, 故前爲推考敬差官, 敢請遞差矣, 今又爲公州牧使。 衙門庶務, 句管無人, 至爲悶慮。 牧使遞差, 仍察都監之任何如?" 傳曰: "允。"
선조실록116권, 선조 32년 8월 25일 辛丑 4/4 기사 /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심희수가 경리의 요구에 응하기 힘듦을 말하며 김상준의 등용을 청하다
국역
경리 접반사(經理接伴使) 심희수(沈喜壽)가 아뢰기를,
"경리의 성품이 완만하여 법도가 적으므로 많은 문하 장관들이 경외하는 바가 없는 데다가, 돌아갈 기한이 멀지 않아 사람마다 각각 청구하는 일이 형형 색색이고 온갖 방법으로 토색하고 있으니, 평시의 물력(物力)으로도 감당해 내기 어려운 형편인데, 더구나 오늘날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상례로 약간의 은자를 보내고서는 십배나 중한 가격의 물건을 토색해 가니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첩지를 보내어 간절히 구걸하기도 하고 대면하여 협박하기도 하면서 온갖 추태를 부리는데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낭료(郞僚)가 욕을 당하고 색리(色吏)가 곤장을 맞는 일이 전후 잇달아서 형언하기도 어렵습니다. 신(臣) 희수는 깊이 생각건대, 나라의 저축이 탕갈되고 방시(坊市)가 텅 비었는데, 뿔 없는 양을 찾아내게 하고 거북의 털을 긁어내는 것 같아 도무지 묘책이 없습니다. 신이 매양 일을 잘 아는 통관들과 주선하며 회유하는 등 힘을 다해 무마하여 요청한 것이 십수 건이면 그 가운데 겨우 한두 건만 부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감(都監)에서 마련해 낼 수 있는 것은 쉽게 시행하겠지만, 일이 중대하여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것은 부득이 계청해야 하므로 그 형세가 실로 급박합니다. 그러나 장관배는 실로 이처럼 어려운 사정을 모르고 모두 불만스런 마음으로 유감을 품고 있는가 하면 경리 역시 신이 공응(供應)에 성의가 없다고 의심합니다. 지난번에 통관 송업남(宋業男)이 칼집에 쓰이는 영양각(羚羊角)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인해 진기패(陳旗牌)란 자에게 혹독한 곤장을 맞았으니, 어찌 통분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근일 호조가, 중군(中軍) 손방희(孫邦熙)가 청구한 경면지(鏡面紙)의 일로 인하여 감히 아뢰기를 ‘국계(國計)가 탕갈된 내용을 접반사도 오히려 알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하는데 하물며 천조의 장관이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나 어찌 감히 국사를 생각하지 않고 얻기 어려운 물건을 책출하여 중국 장수에게 잘 보이려 하겠습니까. 밤낮 독촉을 당하여 그 고뇌를 참을 수 없는데 이를 계하(啓下)하여 추호(追呼)하는 일이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런 비방을 듣게 되었으니, 접반사의 임무를 띤 자가 또한 민망하지 않겠습니까.
도청 낭청(都廳郞廳) 김상준(金尙寯)은 직사(職事)에 근실하고 숙달되어 문하관(門下官)들의 칭송을 받는 사람이므로 전에 추고 경차관(推考敬差官)에 임명되었을 적에 감히 체차시킬 것을 청하였는데, 지금 또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임명되어 아문(衙門)의 서무를 맡아 관리할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목사를 체차하고 그대로 도감(都監)의 일을 보살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원문
○經理接伴使沈喜壽啓曰: "經理性寬緩, 少法度, 許多門下將官, 無所顧忌, 且以歸期不遠, 人各有求請之事, 形形色色, 徵索百端, 雖以平時物力, 亦所難當。 況今日之事乎? 例送銀子少許, 討出十倍價重之物, 無謂莫甚。 或送帖哀懇, 或對面迫脅, 備諸醜態, 無所不至。 郞僚受辱, 色吏被棍, 前後相繼, 有難形言, 而臣喜壽深念, 國儲蕩竭, 坊市赤立, 俾出童羖, 如刮龜毛, 茫無以爲計。 每與解事通官輩, 周旋開諭, 盡力搪塞, 凡所請十數件事, 則僅能應副其一二, 而自都監可以圖出者, 則便宜施行, 若事涉重大, 所難自擅者, 則不得已啓請, 其勢誠急矣。 而將官之輩, 實不知此間艱窘之狀, 皆以不滿意欲爲恨, 雖經理, 亦未必不疑於臣之無意供應也。 頃者, 通官宋業男, 以刀鞘所用, 羚羊角攔阻之, 故酷被重棍於陳旗牌稱名人, 豈非痛憤之甚哉? 日間戶曹, 因孫中軍求請鏡面紙之事, 乃敢啓之, ‘以國計蕩竭之意, 接伴使猶不知有是言, 則況天朝將官乎?’ 云云。 臣雖無狀, 安敢不念國事, 責出難得之物, 以媚悅天將哉? 日夜被督, 不勝煩惱, 乃有此啓下追呼之擧, 則終得此謗, 爲接伴之任者, 不亦悶乎? 都廳郞廳金尙寯, 勤練職事, 門下官所稱道, 故前爲推考敬差官, 敢請遞差矣, 今又爲公州牧使。 衙門庶務, 句管無人, 至爲悶慮。 牧使遞差, 仍察都監之任何如?" 傳曰: "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