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10권, 선조 32년 3월 1일 庚辰 3/4 기사 /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사간원이 사후 낭청에게 지나친 상을 주었음과 북병사 이일을 파직할 것을 아뢰다
국역
사간원이 아뢰기를,
"각 아문 도감의 사후 낭청(伺候郞廳)은 애써 노력한 수고가 없지 않아 논상(論賞)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번에 각 아문 접반사의 서계(書啓)로 인하여 근무한 날짜의 다소와 직품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모두 6품으로 올려 조금도 차등이 없게 하였으니, 상직(賞職)의 적합하지 않음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전후의 승전을 모두 거행하지 마시고 해조로 하여금 그 일수와 직차(職次)를 조사하여 다시 참작 마련해서 시상(施賞)에 차등을 둠으로써 등급을 건너뛰는 폐단이 없게 하소서.
북병사(北兵使) 이일(李鎰)은 패전한 율을 누차 범하였으니 극형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조정이 관대히 용서하고 다시 중책을 맡겼으면, 의당 십분 조심하고 삼가서 스스로 공을 이룰 것을 기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나이가 많고 벼슬이 높다는 생각에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항상 남들에게 말하기를 ‘파면되어 돌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다행이다.’ 하고, 방종과 탐학을 부려 조금도 꺼려함이 없고 가렴 주구만을 일삼아 형장(刑杖)이 혹독할 뿐더러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오직 뇌물의 많고 적은 것에 따라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있는 첩의 생질 두 사람이 주장(主將)의 세력을 빙자하여 공갈 협박으로 토색질함으로써 변장과 수령이 모두 침해를 받는데도 조금도 금지시키지 않고 그 횡포를 방치하니, 본도의 백성이 원망하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어 모두들 지난날의 이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을 중지(重地)에 그대로 두어 국사를 그르칠 수 없으니, 파직시키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논상한 낭청들은 백중(伯仲)의 차이일 뿐이니 다시 마련할 것이 없다. 이일(李鎰)에 대해서는 지금 인재가 모자랄 뿐 아니라 이 시기에 파직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은 온당치 않을 듯하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원문
○司諫院啓曰: "各衙門都監伺候郞廳, 不無奔走之勞, 或可以論賞, 而頃因各衙門接伴使書啓, 無論日月久近, 職秩高下, 竝陞六品, 少無差等, 賞職之不中, 莫此爲甚。 請前後承傳, 竝勿擧行, 令該曹, 考其日數、職次, 更爲參酌磨鍊, 施賞有差, 俾無躐等之弊。 北兵使李鎰, 累犯喪師之律。 當服釜鑕之刑, 而朝廷曲爲饒貸, 復授重任, 則所當十分恪謹, 以期自效, 而自謂年老位極, 更無所爲, 每語人曰: ‘罷歸, 吾之幸也’, 縱恣貪虐, 略無顧忌, 剝割是事, 刑杖甚酷, 活人殺人, 惟視貨賂。 且其所率妾甥二人, 憑藉主帥之勢, 恐喝求索, 邊將守令, 無不被其戮辱, 而少不禁戢, 任其橫恣, 本道人民莫不怨罵, 皆曰非前日之李鎰。 如此之人, 不可仍置重地, 以僨國事。 請命罷職。" 上曰: "論賞郞廳等, 是伯仲之間耳, 不須更爲磨鍊。 李鎰非但乏人, 此時罷改, 似屬未妥。 不允。"
선조 32년 (1599) 3월 1일
선조실록110권, 선조 32년 3월 1일 庚辰 3/4 기사 /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사간원이 사후 낭청에게 지나친 상을 주었음과 북병사 이일을 파직할 것을 아뢰다
국역
사간원이 아뢰기를,
"각 아문 도감의 사후 낭청(伺候郞廳)은 애써 노력한 수고가 없지 않아 논상(論賞)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번에 각 아문 접반사의 서계(書啓)로 인하여 근무한 날짜의 다소와 직품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모두 6품으로 올려 조금도 차등이 없게 하였으니, 상직(賞職)의 적합하지 않음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전후의 승전을 모두 거행하지 마시고 해조로 하여금 그 일수와 직차(職次)를 조사하여 다시 참작 마련해서 시상(施賞)에 차등을 둠으로써 등급을 건너뛰는 폐단이 없게 하소서.
북병사(北兵使) 이일(李鎰)은 패전한 율을 누차 범하였으니 극형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조정이 관대히 용서하고 다시 중책을 맡겼으면, 의당 십분 조심하고 삼가서 스스로 공을 이룰 것을 기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나이가 많고 벼슬이 높다는 생각에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항상 남들에게 말하기를 ‘파면되어 돌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다행이다.’ 하고, 방종과 탐학을 부려 조금도 꺼려함이 없고 가렴 주구만을 일삼아 형장(刑杖)이 혹독할 뿐더러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오직 뇌물의 많고 적은 것에 따라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있는 첩의 생질 두 사람이 주장(主將)의 세력을 빙자하여 공갈 협박으로 토색질함으로써 변장과 수령이 모두 침해를 받는데도 조금도 금지시키지 않고 그 횡포를 방치하니, 본도의 백성이 원망하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어 모두들 지난날의 이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을 중지(重地)에 그대로 두어 국사를 그르칠 수 없으니, 파직시키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논상한 낭청들은 백중(伯仲)의 차이일 뿐이니 다시 마련할 것이 없다. 이일(李鎰)에 대해서는 지금 인재가 모자랄 뿐 아니라 이 시기에 파직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은 온당치 않을 듯하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원문
○司諫院啓曰: "各衙門都監伺候郞廳, 不無奔走之勞, 或可以論賞, 而頃因各衙門接伴使書啓, 無論日月久近, 職秩高下, 竝陞六品, 少無差等, 賞職之不中, 莫此爲甚。 請前後承傳, 竝勿擧行, 令該曹, 考其日數、職次, 更爲參酌磨鍊, 施賞有差, 俾無躐等之弊。 北兵使李鎰, 累犯喪師之律。 當服釜鑕之刑, 而朝廷曲爲饒貸, 復授重任, 則所當十分恪謹, 以期自效, 而自謂年老位極, 更無所爲, 每語人曰: ‘罷歸, 吾之幸也’, 縱恣貪虐, 略無顧忌, 剝割是事, 刑杖甚酷, 活人殺人, 惟視貨賂。 且其所率妾甥二人, 憑藉主帥之勢, 恐喝求索, 邊將守令, 無不被其戮辱, 而少不禁戢, 任其橫恣, 本道人民莫不怨罵, 皆曰非前日之李鎰。 如此之人, 不可仍置重地, 以僨國事。 請命罷職。" 上曰: "論賞郞廳等, 是伯仲之間耳, 不須更爲磨鍊。 李鎰非但乏人, 此時罷改, 似屬未妥。 不允。"
원본
선조 32년 (1599)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