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83권, 선조 29년 12월 25일 丁亥 1/2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황신이 말한 적의 형세에 대해 대신과 비변사의 유사 당상과 의논하다
국역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여러 대신과 비변사의 유사 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신이 와서 적의 형세에 대해 말했는데 근래에는 어떠한가?"
하니, 영돈녕부사 이산해(李山海)가 아뢰기를,
"서계(書啓)한 것을 보면, 적이 우리 나라를 조석 간에 침범할 것이라 하였는데, 신이 병이 깊어 미처 장계를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라(要時羅)의 우리 나라에 대한 태도가 매우 좋게 보이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불원간에 일본은 자멸할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다른 정승들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황신은 자신이 올린 서계 외에는 달리 들어본 것이 없는 것 같으니, 적이 다시 침략할 것인지는 황신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강하고 약한 형세는 우리 나라와 적이 뚜렷이 다르니, 다시 와서 둔거(屯據)하는 일은 혹 있을지 모르나 전과 같이 온 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올 것인가는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항상 염려하는 것은 양남(兩南)505) 을 점차 침범하여 차츰 호전(湖甸)506) 에 이르게 되어 우리 나라의 물력(物力)을 점점 고갈되게 한 후에 거침없이 몰아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하고, 이산해는 아뢰기를,
"적의 침략이 빠를지 늦을지는 우리가 실로 예측하지 어려우니, 무기를 준비하여 항상 적이 이를 것처럼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는 아뢰기를,
"왜적이 비록 우리와 통신(通信)을 한다 해도 그 통신을 믿기 어려운데, 하물며 통신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겠습니까. 더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우리는 스스로 용기를 갖고 조금이라도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은 아뢰기를,
"소신은 아직 황신을 만나 이야기해 본 적은 없습니다. 대체로 적의 형세는 또한 당초와는 달라서 당장 쳐들어오지는 않을지라도 훗날에 다시 덤벼들 것은 조금도 의심이 없으니, 방비하는 계책을 잠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상께서 전교를 내리셨으므로 【앞서 상이 하교하기를 ‘내가 세자로 하여금 전주(全州)와 공주(公州) 사이에 있으면서 전투를 독려하도록 하려 했는데 지금 세자에게 병이 있으니, 내가 수원(水原)과 공주(公州) 사이를 왕래하면서 독전하려 한다.’ 하였다. 】 신들은 감격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모름지기 성상께서 한 치의 땅이라도 진보(進步)하시면 적은 반드시 백 리의 땅을 퇴보(退步)할 것이니, 적이 비록 날뛴다 해도 자멸할 것입니다. 거가(車駕)가 잠시라도 한강(漢江)을 건너신다면 위세가 떨쳐져 백성들이 서로 기뻐할 것입니다."
하고, 지중추부사 정탁(鄭琢)은 아뢰기를,
"상교(上敎)를 한번 내리시면 난리를 평정하고 국토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니, 그 누가 분발하여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는 국가를 중흥할 수 있는 일대 기회입니다. 한 걸음 나가느냐 물러서느냐에 국가의 존망이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섭 유격(涉遊擊)이 보낸 게첩(揭帖)을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이르기를,
"지금 이 첩을 보건대 말이 분명치 못하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특별히 화의(和議)를 두둔하려는 뜻은 없고, 내용이 단지 어려운 우리를 구제하려는 말뿐입니다. 심사(沈使)507) 를 공격하여 심지어는 옹졸한 화의라고 지적하였고, 끝부분에는 ‘미생(尾生)의 지혜로 소진(蘇秦)·장의(張儀)의 꾀를 쓰려 한다.’508) 고 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중국도 우리 나라와 같이 의논이 많은 듯하다. 이전에 융수(戎首)509) 가 올린 글에서도 화의를 비난하였으니, 이 한 가지 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이제 해야 할 일은 먼저 병력을 징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근간 권율(權慄)이 올린 장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마는 당초에는 3만의 병력으로 적이 침입하는 길을 차단한다 하였고 나중에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어제의 상교와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첫번째 장계에서는 ‘3만 병력을 요로에 배치한다.’ 하였고,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장계는 그저께 도착하였으며, 또 이어서 보낸 장계에는 ‘부산에 잔류한 적을 섬멸할 수 있다.’ 하는 등, 권율의 장계는 세 번 이르렀다. 《손자병법》에 ‘전쟁은 졸속(拙速)을 힘써야 한다.’ 하였으니, 기밀 누설이 염려될 뿐이다. 모든 군사 기밀은 귀신도 모르게 해야 되는데 어제 전교한 ‘잔류한 적’ 운운한 말이 정원의 하인들에게까지 다 전파되었다고 하니, 이 말은 이미 누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당나라 이소(李愬)가 오원제(吳元濟)를 치러 밤중에 채성(蔡城)으로 들어갈 때 사졸들은 방향조차 알지 못하였다 합니다."
하니, 상은 그렇다고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군기(軍機)는 어린애 장난과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상관 및 재신(宰臣)들도 모르는 자가 없는가? 옛날 사람들에 비한다면, 고인들은 모신(謀臣)과 책사(策士)가 장양(張良)·진평(陳平)과 같아야만 참모(參謀)하기를 허락할 뿐이었는데, 지금의 모사(謀事)는 서리(胥吏)들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탄식할 일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전일 도원수가 거제도의 왜적을 평정할 수 있다 하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웃으면서 벽에다 써놓기까지 하였는데, 황신의 말을 들어보건대 왜적은 겨우 수백 명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때마침 큰 바람이 강하게 불어 군량 2만 6천 석과 무기·전함이 모두 불타버렸다 하니, 이는 참으로 하늘이 주신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산을 빼앗더라도 만약 왜적이 패전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다시 일어나 대대적으로 침범해 온다면 이는 속담에 이른바 ‘잠자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다.’는 격이 되어 후회가 있을까 두렵다. 그러나 어찌 이를 겁내어 사람이 주고 하늘이 주는데도 이를 빼앗지 않겠는가."
하였다. 동부승지 허성(許筬)이 앞에 나아가 발언하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중에 말하라. 내가 먼저 저 왜적의 계획을 말하겠다. 저들이 심사(沈使)를 만류하는 것은 우리 군사가 틈을 타서 공격할까 두려워하여, 심사에 의지하여 쥐를 잡으려 해도 그릇을 깰까 꺼려 돌을 던지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중국 장수의 피해는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은 망언(妄言)이다."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뒤에 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상이 유성룡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만약 적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다면 어찌 고려하겠는가. 그러나 부산을 소탕하는 일도 할 수가 없다."
하니,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이 아뢰기를,
"비록 크게 이기더라도 결말이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다. 허성이 다시 나아가 아뢰기를,
"옛날 장수들도 계책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 밖에서 나와야 공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번의 거사는, 군사를 모으고 군량을 운반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전진하면 형세가 매우 어려울 듯하니, 먼저 요충지를 선택하여 적의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깊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가 어렵게 여기는 것 또한 옳으나, 지금 이 거사는 뜻밖에 군대를 동원하는 예가 아니다. 우리 나라가 방어한다는 소문이 이미 전파되었으니, 비록 급하게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적은 반드시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저번에 내가 몸소 군사를 독려한다고 한 것도 역시 이러한 뜻에서이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하나의 기회이고 하늘의 뜻이 이와 같은 것이 또 하나의 기회이다. 다만 두려운 점은 군사 기밀이 누설될까 하는 것이요, 또한 일본에서 중국 장수들을 구류할까 하는 것이다. 전일에 의정한 것을 혹 시행한다 해도 도원수와 도체찰사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을 잘 타는 문신(文臣)을 급히 보내 의논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호조 판서 김수(金晬)가 아뢰기를,
"김신국(金藎國)을 보내야 합니다."
하니, 【신국은 약관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혜와 재능이 모두 훌륭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질병이 있어 중도에 지체될까 염려되니, 다시 비변사 낭청을 보내어 함께 가서 개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기는 바로 지금이니 이는 하늘이 주신 것이다."
하자, 김응남이 아뢰기를,
"이 계획이 시행되기만 한다면 국가의 회복은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가 늦게 이르러 김명원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는데, 상이 윤근수에게 이르기를,
"경도 할 말이 있는가?"
하니, 윤근수가 아뢰기를,
"마침 계사를 올리려 하던 차에 지금 인견하신다는 명을 듣고 황공하옵게도 감히 왔습니다. 우리 나라 군사로 막강한 적을 토벌하려면 그 형세가 어려울 것이니, 중국군을 청하여 성원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북도는 다른 도(道) 출신의 군사를 보내어 대신 지키게 하고 그 군사를 뽑아와 남방을 지키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자, 【그 후 북병(北兵) 3천이 경중(京中)에 나왔는데, 변보(邊報)가 있어 북도로 돌려보냈다. 】 상은 이 말은 잠시 뒤로 미루겠다고 하였다. 유성룡에게 전교하기를,
"무릇 군무에 관한 일은 추후에 의논하여 처리하기로 하고, 지금은 여러 대신들과 함께 나가서 황신을 불러 보고 상의하여 김신국(金藎國) 외에 또 한 낭관을 파견해서 함께 함으로써 질병에 대비토록 하고, 여러 장수 중에 서울에 있는 자로서 민첩하게 싸울 수 있는 자를 선발하여 보내고, 화약과 화기(火器) 등의 물품도 또한 내려보내야 할 것이니 이러한 여러 가지 항목을 강구하여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김수가 아뢰기를,
"주사(舟師)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개유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속히 유지(有旨)를 내리라."
하였다. 영의정 유성룡 등이 모두 소대(召對)를 끝내고 비변사로 나갔으며, 다만 이산해·윤근수·허성 및 사관(史官) 세 사람이 왕을 모시고 있었다. 이산해가 아뢰기를,
"오늘날 시급히 할 일은 청정(淸正)으로 하여금 다시는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만약 육지에 내려왔다면 죽기를 각오한 용감한 군사를 뽑아서 좌우에 매복시켜 그들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청정이 지나갈 때에 습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허성이 아뢰기를,
"큰일을 결정하려면 복서(卜筮)만한 것이 없습니다. 주공(周公)과 같은 성인과 반경(盤庚)과 같은 지혜로도 모두 점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는 일에도 점을 쳐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도 또한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였다. 이산해가 아뢰기를,
"점을 쳐서 의문점을 푸는 것이 좋지만 점을 칠 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복서(卜筮)는 큰일을 결정하고 큰 의심을 해결하는 데 모두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제전(帝典)510) 에 ‘거북점과 시초점까지도 모두 따른다. [筮協從]’ 하고, 주공(周公)은 ‘왕을 위하여 경전하게 점을 친다. [爲王穆卜]’ 하였으며, 대고(大誥)511) 에 ‘나의 점이 모두 길하다. [朕卜竝吉]’ 하였으니 옛날부터 성인 중에도 행한 자가 있었으니 복서를 하는 것이 어찌 쓸데없는 일이랴. 다만 일은 시행할 만한데 점괘가 길하지 못하면 시행할 만한 때를 포기하고서 그 불길하다는 점괘를 따라야 하겠는가. 당(唐)나라 신하가 말하기를 ‘점은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니 의문이 없으면 점을 칠 것이 뭐가 있는가.’하였으니512) , 바로 이를 두고 한말이다. 하물며 점을 친 대로 전부 맞지 않음에 있어서랴. 화의(和議)가 어지럽게 일어나고 대의(大義)가 날로 위축되는 이때에 권율(權慄)은 백면 서생으로서 충용(忠勇)의 위기를 격앙하여 적이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천토(天討)를 보이려고 하는데, 어떤 이는 군량이 없다고 핑계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쥐를 잡자니 그릇이 깨질까 두렵다는 것을 구실 삼기도 하며, 어떤 이는 싸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겁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왜적이 멀리 바다를 건너올 수 없다는 구실로 저지하여, 마침내 조정의 논의가 서로 시비를 하여 결말이 나지 않는 판국에, 허성은 분명하고 강직한 인물인데도 갑자기 점치는 말로써 대계(大計)를 현란시켜 한번 큰일을 할 수 있는 시기에 할까말까 망설여 결정짓지 못하게 하였으니, 어찌 대도(大道)의 요체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애석한 일이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근간에 들으니, 의주(義州)에 점을 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점사(占辭)에 ‘남산의 송백(松柏)이 항상 무성하여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다. 그 후에 생각해보니, 바로 이여송(李如松)·이여백(李如柏)두 대장이 우리 나라에 와서 왜적을 토벌한다는 조짐이었다. 그 전에야 어찌 송백이 이여송과 이여백을 가리킨 징조라 판단할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기사관(記事官) 이유홍(李惟弘)이 아뢰기를,
"지금 이 거사는 나라의 대사(大事)인데, 위에서 식량이 절핍될까 우려하시니 신은 마음속으로 매우 슬퍼하고 있습니다. 신은 처음 벼슬길을 밟은 자로서 어찌 시무(時務)를 알겠습니까. 다만 일찍이 초야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말을 아뢰자면, 전세(田稅)는 온 지방의 정당한 조세로서 성군(聖君)이나 암주(暗主)를 막론하고 모두 이를 이용합니다. 우선 황해도 한 도를 들어 논한다면, 안악(安岳)은 한 작은 고을로서 갑오년 세입(稅入)이 3백 섬이었는데, 그 밖의 23고을의 세입은 총 4백 섬이었습니다. 이는 안악 한 고을의 세입이 다른 23고을의 총 수량보다 1백 섬만이 모자라는 셈이니, 어찌 이 같은 이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충청도에 있어서도 청주(淸州)를 들어 말한다면, 계사년 변란을 겪던 처음에는 청주 백성들이 개간한 토지가 무려 60결이던 것이 그후 을미년에 이르기까지 3년 동안 한 결(結)도 증가한 것이 없고, 오히려 2천 결이 줄었으니, 또한 어찌 이 같은 이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지방을 지키는 신하들이 성상께서 백성을 근심하시어 임지에 보내신 뜻은 생각지도 않고 사사로이 민심을 기쁘게 하는 것만을 우선으로 삼으며, 군대의 양식이 떨어진 것을 염려하지 않아 토지 대장을 내버려 두어 하리(下吏)에게 위임하니, 하리들은 기회를 틈타 간교한 계책을 써서 수령에게 주면 수령은 그것에 의거하여 공문을 작성, 방백에게 올리고, 방백은 서명(署名)하여 호조에 올리면, 호조는 그대로 수납하여 창고에 간수할 뿐, 모두가 전년에 몇 결, 몇 섬이었던 것이 금년에는 어찌하여 몇 결, 몇 섬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입이 많으면 논상하고 조금 세입이 줄어질 경우 벌책을 주면 아전들은 간사한 꾀를 쓰지 못할 것이고 수령은 자기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못할 것인데, 국가에서 이와 같은 방법을 쓰지 않고 오히려 벼슬을 팔거나 뇌물을 받고 형벌을 감면해 주는 부득이한 정사로써 항간에서 백성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으니, 어리석은 백성들은 전혀 성상이 백성을 아끼는 정사를 알지 못한채, 다만 수령들이 전세(田稅)를 경감해 주는 것만 은혜로 여기고 성상이 무리하게 군량을 징수한다고 원망하고 있으니,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니, 상이 서글프게 탄식하고 이르기를,
"호조에 이르라."
하였다.
- [註 505] 양남(兩南) : 영남과 호남.
- [註 506] 호전(湖甸) : 호서(湖西)와 경기(京畿).
- [註 507] 심사(沈使) : 심유경(沈惟敬).
- [註 508] ‘미생(尾生)의 지혜로 소진(蘇秦)·장의(張儀)의 꾀를 쓰려 한다.’ : 고지식한 신의로 과분한 일을 꾀한다는 뜻. 미생은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려다가 익사하였고, 소진·장의는 변론가로서 전국 시대에 종횡한 사람들임.
- [註 509] 융수(戎首) : 대장(大將).
- [註 510] 제전(帝典) :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를 말함.
- [註 511] 대고(大誥) : 《서경》의 편명.
- [註 512] 당(唐)나라 신하가 말하기를 ‘점은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니 의문이 없으면 점을 칠 것이 뭐가 있는가.’하였으니 : 당 나라 신하는 장공근(張公謹)을 말함. 당 태종(唐太宗)은 은 태자(隱太子) 건성(建成)과 소왕(巢王) 원길(元吉)을 토벌할 때 그 길흉을 알기 위하여 점장이를 불러 거북점을 치자 장공근이 거북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태종에게 아뢴 말이다. 《구당서(舊唐書)》 권68 장공근전(張公謹傳).
원문
○丁亥/上御別殿, 引見諸大臣及備邊司有司堂上。 上曰: "黃愼來言, 賊勢近復何如?" 領敦寧府事李山海曰: "以書啓觀之, 賊之侵我之計, 非朝卽夕, 臣病深, 未及省察狀啓。 但要時羅向我國偏重, 以其言見之, 似爲自敗。" 上曰: "他政丞意何歟?" 領議政柳成龍曰: "黃愼書啓之外, 渠亦無他聞見, 賊之再肆, 愼亦不知。 但强弱之形, 彼此懸殊, 復來屯據, 雖或有之, 至於卷土重來, 亦未可知。 臣之所常慮者, 蠶食兩南, 稍至湖甸, 使我物役, 漸至枯涸, 然後長驅而入也。" 山海曰: "賊之緩急, 在我誠難預料, 整勑器械, 恒如賊至可也。" 判中樞府事尹斗壽曰: "倭賊雖相通信, 猶難責信。 況未爲通信者乎? 更無疑矣, 我國須爲自强, 不可一向沮縮也。" 左議政金應南曰: "小臣尙未逢黃愼而語矣。 大抵賊勢, 亦與當初有異, 朝夕立至, 雖或未必, 他日更肆, 少無疑矣。 備禦之策, 不可頃刻敢忽。 自上有傳敎, 【先是上下敎曰: "予欲令世子往全州、公州之間督戰, 而世子有疾, 予欲於水原、公州之間, 往來督責云云。"】 臣等不勝感激。 必須自上進步一寸之地, 則賊必退步百里之地。 賊雖鴟張, 亦當自滅。 設或車駕, 暫越漢江, 則聲威自倍, 萬姓相慶矣。" 知中樞府事鄭琢曰: "上敎一下, 撥亂重恢之秋, 孰不振起而作興? 此中興之大機, 進退一步之頃, 存亡判焉。" 上以葉遊擊揭帖, 示之左右曰: "今看此帖, 語不分明。" 成龍曰: "別無維持和議之意, 但其措語, 正救焚拯溺之言也。 攻治沈使, 至以硜硜和議, 斥之, 終以尾生之智, 挾蘇、張之術爲言。" 上曰: "中原亦如我國多議論。 前此戎首上本, 以和議爲非, 以此一條件見之, 可知矣。" 成龍曰: "當今之務, 莫若先調兵力而已。 頃者權慄狀啓, 未能詳知, 初以三萬兵, 遮截賊路爲言, 後以有爲爲言, 誠如昨日聖敎。" 上曰: "初次狀啓有云, 三萬兵分軍云, 而有爲云之狀啓, 昨昨來之。 又其一狀云: ‘釜山殘賊, 可以殄威。 慄之馳啓, 已三度矣。 《孫子兵法》曰: ‘兵務拙速’, 第念洩漏爲害耳。 凡機事, 亦使鬼神不知, 昨日傳敎殘賊之語, 政院下人無不傳播云, 此語知已洩矣。" 成龍曰: "李愬夜入蔡城, 士卒不知所向。" 上曰: "是也。" 成龍曰: "軍機似兒戲。" 上曰: "堂上及宰臣, 無不知者乎? 比之古人, 謀臣、策士如良、平, 只許參謀而已。 今之謀事, 與胥吏無不與知, 可嘆。" 上曰: "前日都元帥以巨濟盜賊, 可以削平云, 予心笑之, 至書壁間, 以黃愼所言見之, 倭賊只有數百, 而會天大風, 軍糧二萬六千石, 軍器、戰舫, 亦無不燒夷, 此天與之。 但釜山可拔, 若倭賊恥其喪師, 再起大寇, 是俗言所謂觸宿虎之尾, 慮有噬臍。 然豈以是爲嫌? 人與之天與之而不取乎?" 同副承旨許筬進將發言, 上曰: "第徐言。 予先言彼賊之綢繆。 彼之所以挽留沈使, 恐我兵乘時擊之, 因沈使, 得爲投鼠忌器之嫌也。" 應南曰: "唐將之被害, 有不可較。" 上曰: "此言妄也。" 斗壽曰: "後雖有罪, 不可不爲。" 上顧謂成龍曰: "如能削平肅淸, 何可較也? 然雖釜山蕩除, 不可爲也。" 慶林君 金命元曰: "雖大捷, 結尾難矣。" 許筬復進曰: "古者將帥, 計出人意之外, 乃有其績。 今此擧事, 未有聚兵運米, 而遽爲前進, 勢甚不易。 須擇要衝之地, 沮遏歸路, 不使長驅直擣而已。" 上曰: "承旨所難者, 亦是矣。 今此擧事, 非無端發兵之此。 我國以防禦, 旣有先聲, 雖急發兵, 敵必不駭。 頃日, 自上親往督兵, 亦此意也。 今之發兵, 一機也; 天意如此, 二機也。 但所怕者, 洩漏軍事也, 拘留唐將也。 可以在前議定, 雖或可爲, 都元帥、都體察使不可不知。 令善騎馬文臣, 急急奔議。" 戶曹判書金睟曰: "當遣金藎國。" 【藎國弱冠登科, 智藝俱給。】 上曰: "慮有疾病中滯, 可復遣備邊司郞廳, 一時同行, 諭之可也。 時乎時乎, 天與之也。" 應南曰: "此計一出, 恢復有期。" 海平府院君 尹根壽末至, 居命元之右。 上謂根壽曰: "卿亦有言乎?" 根壽曰: "方欲啓辭, 今聞引見, 惶恐敢來。 以我國之兵, 討莫强之賊, 其勢難也。 宜請天兵, 以爲聲援。 且北道軍士, 須遣他道出身, 替戍而拔來, 以守南方則幸矣。" 【其後北兵三千, 出來京中, 以邊報, 還送本道。】 上曰: "姑舍是。" 上敎成龍曰: "凡干軍務, 自可追後議處, 今宜與諸大臣, 出招見黃愼相議, 藎國之外, 又遣一郞官, 使之偕往, 以備疾病, 及諸將之在京者, 可能輕戰者出送, 火藥、火器等物, 亦可下送。 將此等條說, 講論施行。" 睟曰: "舟師, 亦可送人諭之耶?" 上曰: "速爲有旨可也。" 領議政柳成龍等, 皆罷對, 出去于備邊司, 獨山海、根壽、許筬、史官三人, 在前侍。 山海曰: "今日急務, 勿使淸正再航。 若已下陸, 當擇敢死者, 左右設伏, 候其歸路, 及其淸正所過, 不意襲擊, 可以濟事矣。" 筬曰: "決大事莫若卜筮。 以周公之聖、盤庚之智, 皆以穆卜言之。 今此用兵, 亦爲穆卜何如?" 上曰: "予亦有此意思。 山海曰: "卜而決疑, 而但人無知者。"
【史臣曰: "卜筮者, 決大事, 定大疑, 皆用者也。 故《帝典》曰: ‘龜筮協從。’ 周公曰: ‘爲王穆卜。’ 《大詰〔大誥〕 》曰: ‘朕卜幷吉。’ 自古聖人, 亦有爲者, 卜筮之用, 豈其外事? 但事有可爲。 卜若不吉, 則其將棄其可爲之時, 而從其不吉之卜乎? 唐臣曰: ‘卜而決疑, 不卜, 何疑者?’ 此其謂也。 況所卜, 未必盡驗者乎? 是時和議橫生, 大義日縮, 而權慄以白面之人, 激昻忠勇之義, 乘賊不備, 以視天討, 而 或諉以無兵食, 或諉以有忌器之嫌, 或以不易搖之, 或以難遙度沮之, 滿廷論議, 還爲聚訟, 而筬以皎皎錚錚者, 而遽以穆卜, 眩亂大計, 激成狼顧, 猶豫於一大有爲之秋, 豈非不聞大道之要乎? 惜哉!"】
上曰: "近聞義州人有占者, 其辭曰: ‘南山松栢, 恒茂不落。’ 其後思之, 李如松、如栢兩大將, 出來討賊之應也。 其前豈知松栢, 果爲李如松、如栢之徵哉?" 記事官李惟弘曰: "今此之擧, 國之大事, 而自上方有乏食之憂, 臣私心痛惻焉。 臣初躡仕版, 豈識時務? 直以曾居草間, 目見耳聞言之, 則田稅者, 萬方正供, 聖狂無不由之。 姑以黃海一道論之, 安岳, 一小縣也, 甲午之稅入三百斛, 其他二十三官稅入之數, 合四百石。 是一安岳, 獨當二十三官, 而只不及一百石, 安有如是之理乎? 至於忠淸道, 以淸州事言之, 癸巳經變之初, 淸州民起土者, 多至六十結, 而乙未(年)〔三〕 年來, 無一結之加, 有二千結之減。 亦安有如是之理乎? 守土之臣, 不體聖上分憂寄遣之意, 只以取悅民心爲先, 不以軍旅絶糗爲慮, 置其田簿, 委之下吏, 下吏夤緣, 作爲奸詐, 守令行文書籍, 而上于方伯, 方伯署而上于戶曹, 戶曹捧而藏于庫而已, 皆不知前年某結某石, 而今年何以某結某石。 所加多則論賞, 所減多則用罰, 則吏不得行其術, 守令不得忘其職矣。 國家不此之圖, 反以賣官、鬻獄不得已之政, 誅求閭里, 愚民殊不知聖上如傷惻怛之政, 只自德守令之薄稅, 怨聖上之旁求糧餉, 深可痛也。" 上惻然嘆之曰: "言于戶曹。"
선조 29년 (1596) 12월 25일
선조실록83권, 선조 29년 12월 25일 丁亥 1/2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황신이 말한 적의 형세에 대해 대신과 비변사의 유사 당상과 의논하다
국역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여러 대신과 비변사의 유사 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신이 와서 적의 형세에 대해 말했는데 근래에는 어떠한가?"
하니, 영돈녕부사 이산해(李山海)가 아뢰기를,
"서계(書啓)한 것을 보면, 적이 우리 나라를 조석 간에 침범할 것이라 하였는데, 신이 병이 깊어 미처 장계를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라(要時羅)의 우리 나라에 대한 태도가 매우 좋게 보이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불원간에 일본은 자멸할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다른 정승들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황신은 자신이 올린 서계 외에는 달리 들어본 것이 없는 것 같으니, 적이 다시 침략할 것인지는 황신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강하고 약한 형세는 우리 나라와 적이 뚜렷이 다르니, 다시 와서 둔거(屯據)하는 일은 혹 있을지 모르나 전과 같이 온 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올 것인가는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항상 염려하는 것은 양남(兩南)505) 을 점차 침범하여 차츰 호전(湖甸)506) 에 이르게 되어 우리 나라의 물력(物力)을 점점 고갈되게 한 후에 거침없이 몰아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하고, 이산해는 아뢰기를,
"적의 침략이 빠를지 늦을지는 우리가 실로 예측하지 어려우니, 무기를 준비하여 항상 적이 이를 것처럼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는 아뢰기를,
"왜적이 비록 우리와 통신(通信)을 한다 해도 그 통신을 믿기 어려운데, 하물며 통신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겠습니까. 더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우리는 스스로 용기를 갖고 조금이라도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은 아뢰기를,
"소신은 아직 황신을 만나 이야기해 본 적은 없습니다. 대체로 적의 형세는 또한 당초와는 달라서 당장 쳐들어오지는 않을지라도 훗날에 다시 덤벼들 것은 조금도 의심이 없으니, 방비하는 계책을 잠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상께서 전교를 내리셨으므로 【앞서 상이 하교하기를 ‘내가 세자로 하여금 전주(全州)와 공주(公州) 사이에 있으면서 전투를 독려하도록 하려 했는데 지금 세자에게 병이 있으니, 내가 수원(水原)과 공주(公州) 사이를 왕래하면서 독전하려 한다.’ 하였다. 】 신들은 감격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모름지기 성상께서 한 치의 땅이라도 진보(進步)하시면 적은 반드시 백 리의 땅을 퇴보(退步)할 것이니, 적이 비록 날뛴다 해도 자멸할 것입니다. 거가(車駕)가 잠시라도 한강(漢江)을 건너신다면 위세가 떨쳐져 백성들이 서로 기뻐할 것입니다."
하고, 지중추부사 정탁(鄭琢)은 아뢰기를,
"상교(上敎)를 한번 내리시면 난리를 평정하고 국토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니, 그 누가 분발하여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는 국가를 중흥할 수 있는 일대 기회입니다. 한 걸음 나가느냐 물러서느냐에 국가의 존망이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섭 유격(涉遊擊)이 보낸 게첩(揭帖)을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이르기를,
"지금 이 첩을 보건대 말이 분명치 못하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특별히 화의(和議)를 두둔하려는 뜻은 없고, 내용이 단지 어려운 우리를 구제하려는 말뿐입니다. 심사(沈使)507) 를 공격하여 심지어는 옹졸한 화의라고 지적하였고, 끝부분에는 ‘미생(尾生)의 지혜로 소진(蘇秦)·장의(張儀)의 꾀를 쓰려 한다.’508) 고 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중국도 우리 나라와 같이 의논이 많은 듯하다. 이전에 융수(戎首)509) 가 올린 글에서도 화의를 비난하였으니, 이 한 가지 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이제 해야 할 일은 먼저 병력을 징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근간 권율(權慄)이 올린 장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마는 당초에는 3만의 병력으로 적이 침입하는 길을 차단한다 하였고 나중에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어제의 상교와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첫번째 장계에서는 ‘3만 병력을 요로에 배치한다.’ 하였고,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장계는 그저께 도착하였으며, 또 이어서 보낸 장계에는 ‘부산에 잔류한 적을 섬멸할 수 있다.’ 하는 등, 권율의 장계는 세 번 이르렀다. 《손자병법》에 ‘전쟁은 졸속(拙速)을 힘써야 한다.’ 하였으니, 기밀 누설이 염려될 뿐이다. 모든 군사 기밀은 귀신도 모르게 해야 되는데 어제 전교한 ‘잔류한 적’ 운운한 말이 정원의 하인들에게까지 다 전파되었다고 하니, 이 말은 이미 누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당나라 이소(李愬)가 오원제(吳元濟)를 치러 밤중에 채성(蔡城)으로 들어갈 때 사졸들은 방향조차 알지 못하였다 합니다."
하니, 상은 그렇다고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군기(軍機)는 어린애 장난과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상관 및 재신(宰臣)들도 모르는 자가 없는가? 옛날 사람들에 비한다면, 고인들은 모신(謀臣)과 책사(策士)가 장양(張良)·진평(陳平)과 같아야만 참모(參謀)하기를 허락할 뿐이었는데, 지금의 모사(謀事)는 서리(胥吏)들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탄식할 일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전일 도원수가 거제도의 왜적을 평정할 수 있다 하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웃으면서 벽에다 써놓기까지 하였는데, 황신의 말을 들어보건대 왜적은 겨우 수백 명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때마침 큰 바람이 강하게 불어 군량 2만 6천 석과 무기·전함이 모두 불타버렸다 하니, 이는 참으로 하늘이 주신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산을 빼앗더라도 만약 왜적이 패전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다시 일어나 대대적으로 침범해 온다면 이는 속담에 이른바 ‘잠자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다.’는 격이 되어 후회가 있을까 두렵다. 그러나 어찌 이를 겁내어 사람이 주고 하늘이 주는데도 이를 빼앗지 않겠는가."
하였다. 동부승지 허성(許筬)이 앞에 나아가 발언하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중에 말하라. 내가 먼저 저 왜적의 계획을 말하겠다. 저들이 심사(沈使)를 만류하는 것은 우리 군사가 틈을 타서 공격할까 두려워하여, 심사에 의지하여 쥐를 잡으려 해도 그릇을 깰까 꺼려 돌을 던지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중국 장수의 피해는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은 망언(妄言)이다."
하니, 윤두수가 아뢰기를,
"뒤에 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상이 유성룡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만약 적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다면 어찌 고려하겠는가. 그러나 부산을 소탕하는 일도 할 수가 없다."
하니,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이 아뢰기를,
"비록 크게 이기더라도 결말이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다. 허성이 다시 나아가 아뢰기를,
"옛날 장수들도 계책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 밖에서 나와야 공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번의 거사는, 군사를 모으고 군량을 운반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전진하면 형세가 매우 어려울 듯하니, 먼저 요충지를 선택하여 적의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깊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가 어렵게 여기는 것 또한 옳으나, 지금 이 거사는 뜻밖에 군대를 동원하는 예가 아니다. 우리 나라가 방어한다는 소문이 이미 전파되었으니, 비록 급하게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적은 반드시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저번에 내가 몸소 군사를 독려한다고 한 것도 역시 이러한 뜻에서이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하나의 기회이고 하늘의 뜻이 이와 같은 것이 또 하나의 기회이다. 다만 두려운 점은 군사 기밀이 누설될까 하는 것이요, 또한 일본에서 중국 장수들을 구류할까 하는 것이다. 전일에 의정한 것을 혹 시행한다 해도 도원수와 도체찰사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을 잘 타는 문신(文臣)을 급히 보내 의논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호조 판서 김수(金晬)가 아뢰기를,
"김신국(金藎國)을 보내야 합니다."
하니, 【신국은 약관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혜와 재능이 모두 훌륭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질병이 있어 중도에 지체될까 염려되니, 다시 비변사 낭청을 보내어 함께 가서 개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기는 바로 지금이니 이는 하늘이 주신 것이다."
하자, 김응남이 아뢰기를,
"이 계획이 시행되기만 한다면 국가의 회복은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가 늦게 이르러 김명원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는데, 상이 윤근수에게 이르기를,
"경도 할 말이 있는가?"
하니, 윤근수가 아뢰기를,
"마침 계사를 올리려 하던 차에 지금 인견하신다는 명을 듣고 황공하옵게도 감히 왔습니다. 우리 나라 군사로 막강한 적을 토벌하려면 그 형세가 어려울 것이니, 중국군을 청하여 성원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북도는 다른 도(道) 출신의 군사를 보내어 대신 지키게 하고 그 군사를 뽑아와 남방을 지키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자, 【그 후 북병(北兵) 3천이 경중(京中)에 나왔는데, 변보(邊報)가 있어 북도로 돌려보냈다. 】 상은 이 말은 잠시 뒤로 미루겠다고 하였다. 유성룡에게 전교하기를,
"무릇 군무에 관한 일은 추후에 의논하여 처리하기로 하고, 지금은 여러 대신들과 함께 나가서 황신을 불러 보고 상의하여 김신국(金藎國) 외에 또 한 낭관을 파견해서 함께 함으로써 질병에 대비토록 하고, 여러 장수 중에 서울에 있는 자로서 민첩하게 싸울 수 있는 자를 선발하여 보내고, 화약과 화기(火器) 등의 물품도 또한 내려보내야 할 것이니 이러한 여러 가지 항목을 강구하여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김수가 아뢰기를,
"주사(舟師)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개유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속히 유지(有旨)를 내리라."
하였다. 영의정 유성룡 등이 모두 소대(召對)를 끝내고 비변사로 나갔으며, 다만 이산해·윤근수·허성 및 사관(史官) 세 사람이 왕을 모시고 있었다. 이산해가 아뢰기를,
"오늘날 시급히 할 일은 청정(淸正)으로 하여금 다시는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만약 육지에 내려왔다면 죽기를 각오한 용감한 군사를 뽑아서 좌우에 매복시켜 그들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청정이 지나갈 때에 습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허성이 아뢰기를,
"큰일을 결정하려면 복서(卜筮)만한 것이 없습니다. 주공(周公)과 같은 성인과 반경(盤庚)과 같은 지혜로도 모두 점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는 일에도 점을 쳐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도 또한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였다. 이산해가 아뢰기를,
"점을 쳐서 의문점을 푸는 것이 좋지만 점을 칠 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복서(卜筮)는 큰일을 결정하고 큰 의심을 해결하는 데 모두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제전(帝典)510) 에 ‘거북점과 시초점까지도 모두 따른다. [筮協從]’ 하고, 주공(周公)은 ‘왕을 위하여 경전하게 점을 친다. [爲王穆卜]’ 하였으며, 대고(大誥)511) 에 ‘나의 점이 모두 길하다. [朕卜竝吉]’ 하였으니 옛날부터 성인 중에도 행한 자가 있었으니 복서를 하는 것이 어찌 쓸데없는 일이랴. 다만 일은 시행할 만한데 점괘가 길하지 못하면 시행할 만한 때를 포기하고서 그 불길하다는 점괘를 따라야 하겠는가. 당(唐)나라 신하가 말하기를 ‘점은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니 의문이 없으면 점을 칠 것이 뭐가 있는가.’하였으니512) , 바로 이를 두고 한말이다. 하물며 점을 친 대로 전부 맞지 않음에 있어서랴. 화의(和議)가 어지럽게 일어나고 대의(大義)가 날로 위축되는 이때에 권율(權慄)은 백면 서생으로서 충용(忠勇)의 위기를 격앙하여 적이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천토(天討)를 보이려고 하는데, 어떤 이는 군량이 없다고 핑계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쥐를 잡자니 그릇이 깨질까 두렵다는 것을 구실 삼기도 하며, 어떤 이는 싸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겁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왜적이 멀리 바다를 건너올 수 없다는 구실로 저지하여, 마침내 조정의 논의가 서로 시비를 하여 결말이 나지 않는 판국에, 허성은 분명하고 강직한 인물인데도 갑자기 점치는 말로써 대계(大計)를 현란시켜 한번 큰일을 할 수 있는 시기에 할까말까 망설여 결정짓지 못하게 하였으니, 어찌 대도(大道)의 요체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애석한 일이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근간에 들으니, 의주(義州)에 점을 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점사(占辭)에 ‘남산의 송백(松柏)이 항상 무성하여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다. 그 후에 생각해보니, 바로 이여송(李如松)·이여백(李如柏)두 대장이 우리 나라에 와서 왜적을 토벌한다는 조짐이었다. 그 전에야 어찌 송백이 이여송과 이여백을 가리킨 징조라 판단할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기사관(記事官) 이유홍(李惟弘)이 아뢰기를,
"지금 이 거사는 나라의 대사(大事)인데, 위에서 식량이 절핍될까 우려하시니 신은 마음속으로 매우 슬퍼하고 있습니다. 신은 처음 벼슬길을 밟은 자로서 어찌 시무(時務)를 알겠습니까. 다만 일찍이 초야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말을 아뢰자면, 전세(田稅)는 온 지방의 정당한 조세로서 성군(聖君)이나 암주(暗主)를 막론하고 모두 이를 이용합니다. 우선 황해도 한 도를 들어 논한다면, 안악(安岳)은 한 작은 고을로서 갑오년 세입(稅入)이 3백 섬이었는데, 그 밖의 23고을의 세입은 총 4백 섬이었습니다. 이는 안악 한 고을의 세입이 다른 23고을의 총 수량보다 1백 섬만이 모자라는 셈이니, 어찌 이 같은 이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충청도에 있어서도 청주(淸州)를 들어 말한다면, 계사년 변란을 겪던 처음에는 청주 백성들이 개간한 토지가 무려 60결이던 것이 그후 을미년에 이르기까지 3년 동안 한 결(結)도 증가한 것이 없고, 오히려 2천 결이 줄었으니, 또한 어찌 이 같은 이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지방을 지키는 신하들이 성상께서 백성을 근심하시어 임지에 보내신 뜻은 생각지도 않고 사사로이 민심을 기쁘게 하는 것만을 우선으로 삼으며, 군대의 양식이 떨어진 것을 염려하지 않아 토지 대장을 내버려 두어 하리(下吏)에게 위임하니, 하리들은 기회를 틈타 간교한 계책을 써서 수령에게 주면 수령은 그것에 의거하여 공문을 작성, 방백에게 올리고, 방백은 서명(署名)하여 호조에 올리면, 호조는 그대로 수납하여 창고에 간수할 뿐, 모두가 전년에 몇 결, 몇 섬이었던 것이 금년에는 어찌하여 몇 결, 몇 섬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입이 많으면 논상하고 조금 세입이 줄어질 경우 벌책을 주면 아전들은 간사한 꾀를 쓰지 못할 것이고 수령은 자기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못할 것인데, 국가에서 이와 같은 방법을 쓰지 않고 오히려 벼슬을 팔거나 뇌물을 받고 형벌을 감면해 주는 부득이한 정사로써 항간에서 백성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으니, 어리석은 백성들은 전혀 성상이 백성을 아끼는 정사를 알지 못한채, 다만 수령들이 전세(田稅)를 경감해 주는 것만 은혜로 여기고 성상이 무리하게 군량을 징수한다고 원망하고 있으니,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니, 상이 서글프게 탄식하고 이르기를,
"호조에 이르라."
하였다.
- [註 505] 양남(兩南) : 영남과 호남.
- [註 506] 호전(湖甸) : 호서(湖西)와 경기(京畿).
- [註 507] 심사(沈使) : 심유경(沈惟敬).
- [註 508] ‘미생(尾生)의 지혜로 소진(蘇秦)·장의(張儀)의 꾀를 쓰려 한다.’ : 고지식한 신의로 과분한 일을 꾀한다는 뜻. 미생은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려다가 익사하였고, 소진·장의는 변론가로서 전국 시대에 종횡한 사람들임.
- [註 509] 융수(戎首) : 대장(大將).
- [註 510] 제전(帝典) :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를 말함.
- [註 511] 대고(大誥) : 《서경》의 편명.
- [註 512] 당(唐)나라 신하가 말하기를 ‘점은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니 의문이 없으면 점을 칠 것이 뭐가 있는가.’하였으니 : 당 나라 신하는 장공근(張公謹)을 말함. 당 태종(唐太宗)은 은 태자(隱太子) 건성(建成)과 소왕(巢王) 원길(元吉)을 토벌할 때 그 길흉을 알기 위하여 점장이를 불러 거북점을 치자 장공근이 거북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태종에게 아뢴 말이다. 《구당서(舊唐書)》 권68 장공근전(張公謹傳).
원문
○丁亥/上御別殿, 引見諸大臣及備邊司有司堂上。 上曰: "黃愼來言, 賊勢近復何如?" 領敦寧府事李山海曰: "以書啓觀之, 賊之侵我之計, 非朝卽夕, 臣病深, 未及省察狀啓。 但要時羅向我國偏重, 以其言見之, 似爲自敗。" 上曰: "他政丞意何歟?" 領議政柳成龍曰: "黃愼書啓之外, 渠亦無他聞見, 賊之再肆, 愼亦不知。 但强弱之形, 彼此懸殊, 復來屯據, 雖或有之, 至於卷土重來, 亦未可知。 臣之所常慮者, 蠶食兩南, 稍至湖甸, 使我物役, 漸至枯涸, 然後長驅而入也。" 山海曰: "賊之緩急, 在我誠難預料, 整勑器械, 恒如賊至可也。" 判中樞府事尹斗壽曰: "倭賊雖相通信, 猶難責信。 況未爲通信者乎? 更無疑矣, 我國須爲自强, 不可一向沮縮也。" 左議政金應南曰: "小臣尙未逢黃愼而語矣。 大抵賊勢, 亦與當初有異, 朝夕立至, 雖或未必, 他日更肆, 少無疑矣。 備禦之策, 不可頃刻敢忽。 自上有傳敎, 【先是上下敎曰: "予欲令世子往全州、公州之間督戰, 而世子有疾, 予欲於水原、公州之間, 往來督責云云。"】 臣等不勝感激。 必須自上進步一寸之地, 則賊必退步百里之地。 賊雖鴟張, 亦當自滅。 設或車駕, 暫越漢江, 則聲威自倍, 萬姓相慶矣。" 知中樞府事鄭琢曰: "上敎一下, 撥亂重恢之秋, 孰不振起而作興? 此中興之大機, 進退一步之頃, 存亡判焉。" 上以葉遊擊揭帖, 示之左右曰: "今看此帖, 語不分明。" 成龍曰: "別無維持和議之意, 但其措語, 正救焚拯溺之言也。 攻治沈使, 至以硜硜和議, 斥之, 終以尾生之智, 挾蘇、張之術爲言。" 上曰: "中原亦如我國多議論。 前此戎首上本, 以和議爲非, 以此一條件見之, 可知矣。" 成龍曰: "當今之務, 莫若先調兵力而已。 頃者權慄狀啓, 未能詳知, 初以三萬兵, 遮截賊路爲言, 後以有爲爲言, 誠如昨日聖敎。" 上曰: "初次狀啓有云, 三萬兵分軍云, 而有爲云之狀啓, 昨昨來之。 又其一狀云: ‘釜山殘賊, 可以殄威。 慄之馳啓, 已三度矣。 《孫子兵法》曰: ‘兵務拙速’, 第念洩漏爲害耳。 凡機事, 亦使鬼神不知, 昨日傳敎殘賊之語, 政院下人無不傳播云, 此語知已洩矣。" 成龍曰: "李愬夜入蔡城, 士卒不知所向。" 上曰: "是也。" 成龍曰: "軍機似兒戲。" 上曰: "堂上及宰臣, 無不知者乎? 比之古人, 謀臣、策士如良、平, 只許參謀而已。 今之謀事, 與胥吏無不與知, 可嘆。" 上曰: "前日都元帥以巨濟盜賊, 可以削平云, 予心笑之, 至書壁間, 以黃愼所言見之, 倭賊只有數百, 而會天大風, 軍糧二萬六千石, 軍器、戰舫, 亦無不燒夷, 此天與之。 但釜山可拔, 若倭賊恥其喪師, 再起大寇, 是俗言所謂觸宿虎之尾, 慮有噬臍。 然豈以是爲嫌? 人與之天與之而不取乎?" 同副承旨許筬進將發言, 上曰: "第徐言。 予先言彼賊之綢繆。 彼之所以挽留沈使, 恐我兵乘時擊之, 因沈使, 得爲投鼠忌器之嫌也。" 應南曰: "唐將之被害, 有不可較。" 上曰: "此言妄也。" 斗壽曰: "後雖有罪, 不可不爲。" 上顧謂成龍曰: "如能削平肅淸, 何可較也? 然雖釜山蕩除, 不可爲也。" 慶林君 金命元曰: "雖大捷, 結尾難矣。" 許筬復進曰: "古者將帥, 計出人意之外, 乃有其績。 今此擧事, 未有聚兵運米, 而遽爲前進, 勢甚不易。 須擇要衝之地, 沮遏歸路, 不使長驅直擣而已。" 上曰: "承旨所難者, 亦是矣。 今此擧事, 非無端發兵之此。 我國以防禦, 旣有先聲, 雖急發兵, 敵必不駭。 頃日, 自上親往督兵, 亦此意也。 今之發兵, 一機也; 天意如此, 二機也。 但所怕者, 洩漏軍事也, 拘留唐將也。 可以在前議定, 雖或可爲, 都元帥、都體察使不可不知。 令善騎馬文臣, 急急奔議。" 戶曹判書金睟曰: "當遣金藎國。" 【藎國弱冠登科, 智藝俱給。】 上曰: "慮有疾病中滯, 可復遣備邊司郞廳, 一時同行, 諭之可也。 時乎時乎, 天與之也。" 應南曰: "此計一出, 恢復有期。" 海平府院君 尹根壽末至, 居命元之右。 上謂根壽曰: "卿亦有言乎?" 根壽曰: "方欲啓辭, 今聞引見, 惶恐敢來。 以我國之兵, 討莫强之賊, 其勢難也。 宜請天兵, 以爲聲援。 且北道軍士, 須遣他道出身, 替戍而拔來, 以守南方則幸矣。" 【其後北兵三千, 出來京中, 以邊報, 還送本道。】 上曰: "姑舍是。" 上敎成龍曰: "凡干軍務, 自可追後議處, 今宜與諸大臣, 出招見黃愼相議, 藎國之外, 又遣一郞官, 使之偕往, 以備疾病, 及諸將之在京者, 可能輕戰者出送, 火藥、火器等物, 亦可下送。 將此等條說, 講論施行。" 睟曰: "舟師, 亦可送人諭之耶?" 上曰: "速爲有旨可也。" 領議政柳成龍等, 皆罷對, 出去于備邊司, 獨山海、根壽、許筬、史官三人, 在前侍。 山海曰: "今日急務, 勿使淸正再航。 若已下陸, 當擇敢死者, 左右設伏, 候其歸路, 及其淸正所過, 不意襲擊, 可以濟事矣。" 筬曰: "決大事莫若卜筮。 以周公之聖、盤庚之智, 皆以穆卜言之。 今此用兵, 亦爲穆卜何如?" 上曰: "予亦有此意思。 山海曰: "卜而決疑, 而但人無知者。"
【史臣曰: "卜筮者, 決大事, 定大疑, 皆用者也。 故《帝典》曰: ‘龜筮協從。’ 周公曰: ‘爲王穆卜。’ 《大詰〔大誥〕 》曰: ‘朕卜幷吉。’ 自古聖人, 亦有爲者, 卜筮之用, 豈其外事? 但事有可爲。 卜若不吉, 則其將棄其可爲之時, 而從其不吉之卜乎? 唐臣曰: ‘卜而決疑, 不卜, 何疑者?’ 此其謂也。 況所卜, 未必盡驗者乎? 是時和議橫生, 大義日縮, 而權慄以白面之人, 激昻忠勇之義, 乘賊不備, 以視天討, 而 或諉以無兵食, 或諉以有忌器之嫌, 或以不易搖之, 或以難遙度沮之, 滿廷論議, 還爲聚訟, 而筬以皎皎錚錚者, 而遽以穆卜, 眩亂大計, 激成狼顧, 猶豫於一大有爲之秋, 豈非不聞大道之要乎? 惜哉!"】
上曰: "近聞義州人有占者, 其辭曰: ‘南山松栢, 恒茂不落。’ 其後思之, 李如松、如栢兩大將, 出來討賊之應也。 其前豈知松栢, 果爲李如松、如栢之徵哉?" 記事官李惟弘曰: "今此之擧, 國之大事, 而自上方有乏食之憂, 臣私心痛惻焉。 臣初躡仕版, 豈識時務? 直以曾居草間, 目見耳聞言之, 則田稅者, 萬方正供, 聖狂無不由之。 姑以黃海一道論之, 安岳, 一小縣也, 甲午之稅入三百斛, 其他二十三官稅入之數, 合四百石。 是一安岳, 獨當二十三官, 而只不及一百石, 安有如是之理乎? 至於忠淸道, 以淸州事言之, 癸巳經變之初, 淸州民起土者, 多至六十結, 而乙未(年)〔三〕 年來, 無一結之加, 有二千結之減。 亦安有如是之理乎? 守土之臣, 不體聖上分憂寄遣之意, 只以取悅民心爲先, 不以軍旅絶糗爲慮, 置其田簿, 委之下吏, 下吏夤緣, 作爲奸詐, 守令行文書籍, 而上于方伯, 方伯署而上于戶曹, 戶曹捧而藏于庫而已, 皆不知前年某結某石, 而今年何以某結某石。 所加多則論賞, 所減多則用罰, 則吏不得行其術, 守令不得忘其職矣。 國家不此之圖, 反以賣官、鬻獄不得已之政, 誅求閭里, 愚民殊不知聖上如傷惻怛之政, 只自德守令之薄稅, 怨聖上之旁求糧餉, 深可痛也。" 上惻然嘆之曰: "言于戶曹。"
원본
선조 29년 (1596)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