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77권, 선조 29년 7월 6일 辛未 1/3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홍문관이 올린 차자
국역
홍문관이 【부제학 이호민(李好閔), 응교 김홍미(金弘微), 교리 권협(權悏), 부교리 이심(李愖), 부수찬 이형욱(李馨郁), 저작 김광엽(金光燁), 정자 윤의립(尹義立) 등이다. 】 차자를 올리기를,
"삼가 살피건대, 하늘이 우리 나라에 내린 화가 조금은 풀렸으나 괴이하고 놀라운 재변이 달마다 생기다가 이번 6월 무오272) 에는 또 요망한 혜성(彗星)이 경계를 보이어 12일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았으니 이변이 더욱 참혹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에 있어서는 비록 경성(景星)과 경운(慶雲)이 날마다 상서를 보인다 하더라도 상하가 경황이 없어 오히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야 할 것인데, 하물며 꾸지람을 보이는 하늘의 변괴가 이처럼 극도에 이르는 데이겠습니까. 신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바라보며 모두 놀라움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 천재(天災)도 무턱대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지변(地變)도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갑자기 일어나게 되고 겹치어 생기게 되는 것이 어찌 당초에 뜻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임어(臨御)하신 지 30년에 전학(典學)하는 한 생각을 시종 끊지 않으시어 우뚝하게 큰 근본이 되는 경지에 안목이 있으셨기에 진정한 지혜가 유독 밝고 슬기로운 일처리가 틀림이 없으시니, 조예(造詣)의 도달한 데를 진실로 신들로서는 헤아려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하시는 일에 나타난 것으로 헤아려 보건대, 역시 전하께서 학문하신 것이 오히려 지극하지 못하신 바가 있어 닥쳐온 재변 또한 그 감응(感應)으로 일어난 것인 듯싶습니다. 신들이 살펴 말씀드리겠습니다.
종묘(宗廟)의 제사는 마땅히 친림(親臨)하셔야 하는 법인데, 임시변통으로 마련한 제전(祭殿)이 황량하게 버려진 채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아직까지 한 번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오래도록 ‘계신듯이 받드는 정성’을 결함으로써 하늘에 계시는 조종(祖宗)들의 영혼이 내려와 의지할 데가 없게 하였으니, 전하께서 죄를 책임지고 악을 자신에게 돌리더라도 당연한 법보다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다스리기를 마땅히 시급하게 해야 하는 법인데, 시들해진 형상이 마치 해가 저물어 가듯이 되어 와신상담하는 각고면려가 점점 풀어지고 백관(百官)의 태만이 날로 심해짐으로써 내수외양(內修外攘)하는 계책을 그만 어찌할 수 없다고 내버려 두었으니, 전하께서 근본을 강화하고 외침(外侵)을 막는 도리에 있어 또한 진실로 극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계책을 세울 때에는 보존과 멸망의 기틀을 반드시 잘 살펴서 정해야 하는 법인데, 요즘 조정의 방책을 보면 둥둥 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여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옛말에 이른바 ‘의아스러운 일은 공이 없게 되고 의아스러운 행동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법이다.’ 한 것과 불행히도 가깝게 되었으니, 이는 마침내 사세가 반드시 경상(經常)이나 임시변통 모두 실패하여 가만히 앉아서 화란(禍亂)을 쌓이게 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군신(君臣)관계에 있어서는 언제나 정의(情意)가 서로 돈독하지 않은 것이 걱정입니다.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분명하게 깨우쳐 주고 부족함이 있으면 마땅히 경계하여 가르쳐 주며, 혹은 옳다 하고 혹은 그르다 하여 오직 합당하게 귀결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성공한 일은 기쁨을 함께 하고 실패한 일은 슬픔을 같이 하여 함께 간난(艱難)을 헤쳐 가야 하니, 진실로 이미 임용(任用)해 놓고서 의심을 품거나 딱 잘라 결단하지 않아 사특한 길이 열리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무릇 이 몇 가지만으로도 하늘의 재변과 요괴(妖怪)가 일어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인데 교활한 왜적의 변사(變詐)가 갖가지로 나오고 있고 비밀한 흉계가 갈수록 극렬해 가는데 우리는 형편없이 깎이고 약해져서 감당해낼 계책이 없습니다. 첫째도 명조(明朝)만 말하고 둘째도 명조만 말하고 있는데, 황제(皇帝)의 위엄으로 번번이 먼 데까지 나와 토벌해 주리라는 것도 실로 기필할 수가 없고, 남을 의지하여 자립하려는 것은 형편상 역시 보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만세토록 기필코 갚아야 할 원수를 장차 어디에 두어야 할는지, 그리고 바로 지금 경각(傾刻) 사이의 보존을 도모하는 것조차 계책을 마련할 길이 없으니, 신들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더욱 자신도 모르게 마음과 오장이 썩는 듯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의연히 자신을 분발하여 더욱 성학(聖學)을 힘쓰시되, 전일한 생각 속에 천성(天性)을 함양하여 만사의 강령(綱領)을 세움으로써 천리(天理)의 권형(權衡)이 방촌(方寸)273) 속에 훤해지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모든 일을 수응해 갈 적에 마치 흑백을 구별하듯 처리하는 일마다 합당하게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고 종묘 제사를 친히 지내셔야 하는 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척연(惕然)해져 그만둘 수 없게 될 것이며, 통분하게 생각해야 할 원수들의 큰 모욕에 있어서도, 피씻은 창을 베개 삼아 누워서 자강(自强)해야 할 계책을 생각해감에 있어서도, 자연히 지극하게 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정신이 발동하는 곳에는 풍채(風采)가 바로 달라지게 되는 법이니, 현명한 보필(輔弼)을 임용하고 준수한 선비들을 망라하여 이들과 분발하여 왕업(王業)을 성취하기를 뇌성이 울리고 바람이 불듯이 한다면, 비록 벙어리·귀머거리·절뚝발이·앉은뱅이라 하더라도 또한 기운이 백배할 것이니, 삼군(三軍)이 일제히 분기(奮起)하여 사방이 용동(聳動)하게 됨이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기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어질 것입니다.
비록 원통함을 안고 아픔을 참으며 한 때의 절박함 때문에 부득이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자치(自治)하려는 각고 면려하는 공력과 복수하려는 측은한 정성을 과연 끝까지 쉬지 않는다면, 훗날 대의를 통쾌하게 펼치게 되어 족히 전하의 천리(天理)인 본심(本心)을 밝히게 되고 또한 천하와 후세에 할 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안일을 도모하여 우선만 편하려고 하여 한결같이 시들해져 버린다면 기세(氣勢)가 숨넘어 갈 듯하여 하루아침도 살 수 없게 될 것인데, 오히려 어떻게 원수갚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날의 큰 계책은 진실로 적을 토벌하여 원수를 갚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는데, 적을 토벌하여 원수를 갚는 것은 또한 빈말과 맨손으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자(朱子)의 이른바 ‘두어 해 뒤에 뜻이 안정되고 기운이 차게 되어 나라가 부유해지고 군사가 강해지면, 우리 힘의 강약(强弱)도 살펴보고 저들의 천심(淺深)도 관찰하여 서서히 일어나 도모해야 한다.’고 한 것이 진실로 시기를 헤아리며 힘을 길러가자는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신들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오늘날 이 원수갚는 일은 또한 명(名)과 실(實)의 구분이 있다고 여겨지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개 성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경솔한 생각과 얕은 계책으로 종사(宗社)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고 하여 스스로 화란과 실패를 가져오고 원수인 적의 기세만 더하게 한다면, 이는 명분만 생각하여 실속은 잃어버리는 것으로서 필부(匹夫)가 복수하는 방법입니다. 하늘에 닿는 이 통분함과 잠시도 잊을 수 없는 이 적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일편 단심을 가리워지거나 어두어지게 하지 않고 일개의 동작과 한 명령을 내리는 사이에도 생각을 여기에만 두어 시회(時晦)274)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강(自强)해 가되, 군신(君臣) 상하가 오직 급급하게 백성을 안정시키고 훈련시키기를, 주릴적에 밥 먹고 목마를 적에 물 마시듯 급하게 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의 원기(元氣)가 실해지고 국가의 사세가 왕성해지기를 기다린 다음, 구천(句踐)이 했던 것처럼 한번 거사해야 할 것이니, 이는 실속도 있고 명성도 누리게 되는 것으로 제왕(帝王)이 복수하는 방법입니다.
대저 의리라는 것은 때에 따라 변동하는 것으로 마치 여름에는 시원한 갈포를 입고 겨울에는 갖옷을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니, 당초부터 한편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자신의 안정된 마음으로 전일하게 천리(天理)로 반성하여 찾지 않는다면, 각주구검(刻舟求劍)이나 수주대토(守株待兎)가 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드물 것입니다. 《역경》 계사전(繫辭傳)에 ‘회(會)와 통(通)을 살펴 전례(典禮)를 행한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해석하기를 ‘회는 곧 모든 이치가 모인 곳을 관찰하는 것이고 통은 곧 통한 곳을 가려 행하는 것으로, 마치 포정(庖丁)이 소를 잡는 것과 같으니 회는 뼈와 힘줄 등이 엉킨 곳이요, 통은 그 사이의 빈 틈이다.’ 했습니다. 아, 의리의 정밀함이 지극하지 않고서는 누가 능히 이에 관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계책을 세움에 있어서 만일 명분과 실속의 구분에 대해 잘 헤아려 의리를 가려 하지 않는다면 존망(存亡)과 성패(成敗)가 단지 숨 한번 쉬는 사이에 결정될 것입니다. 무릇 신들의 논한 말이 오활함에 가까운 것 같아도 실은 모두 근거하여 귀결시킬 곳이 있는 것이니, 혹시라도 성명(聖明)께서 굽어 보시고 채택하여 받아들여 주신다면, 다시 회복하여 난을 다스려 가는 길이 진실로 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재변을 반전하여 상서가 되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신들이, 수행하는 사신이 이미 떠나버려 사세상 뒤쫓아가 돌아오게 할 수 없게 되고 적들의 정세가 흉악하고 교활하여 날로 더욱 헤아릴 수 없음을 보고, 성상께서 한탄스럽고 답답하신 심정을 풀 길이 없으실 것이라 여겨지기에, 감히 구구한 말을 다하고 그만둘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말이 비록 지루하게 되었지만 심정은 또한 고통스러우니, 다시 성명께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진지(進止)하시기를 취품(取稟)합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 보건대 충성스러운 마음을 모두 보였으니, 매우 가상하다. 더욱 체념(體念)하겠다."
하였다.
원문
○辛未/弘文館: 【副提學李好閔、應敎金弘微、校理權悏、副校埋李愖、副修撰李馨郁、著作金光燁、正字尹義立等。】
伏以, 天禍我國, 訖可少悔, 而可怪可愕之變, 式月斯生, 乃六月戊午, 又妖彗示警, 浹辰不滅, 厥異尤慘。 居今之世, 雖景星、慶雲, 日奏其祥, 而上下遑遑, 猶不知所屆。 況垂象之譴, 至於此極乎? 臣等聚首相顧, 仰駭俯慄, 誠不知所出也。 嗚呼! 災非妄作, 變不虛生。 彼勃勃參參, 豈端無意者耶? 臣等伏見殿下, 臨御三十年, 典學一念, 終始罔間, 而卓然有見於大根本之地, 眞知獨瑩, 睿裁靡爽, 其造詣所到, 固非臣等所可蠡測也。 第以其見於事爲者揆之, 則抑恐殿下之於此學, 猶有所未至, 而變異之來, 亦不無感召之由矣。 臣等請究言之。 廟祀當視, 而權殿荒涼, 星霜屢變, 尙闕一裸之享, 久缺如在之誠, 使祖宗在天之靈, 陟降靡依, 則殿下之於負罪引慝, 得無過於當然之則者乎? 自治當急, 而委靡之象, 如日嚮暮, 薪膽之刻厲漸弛, 百隷之怠慢日甚, 而脩攘之圖, 直付之無可奈何, 則殿下之於强本折衝之道, 固亦未盡矣。 計者, 存亡之機, 必須審定, 而近日廟謨, 游移前却, 不可指的。 古語所謂疑事無功, 疑行無成者, 不幸而近之, 則是其勢, 終必至於經權俱失, 坐稔禍亂矣。 君臣之際, 常患情意之不相孚。 有失則當明諭之, 有不及則當警敎之, 或可或否, 唯當而歸。 成同其休, 敗同其戚, 以共濟于艱難, 固不可旣任而且疑之, 持不斷而開枉門。 凡此數者, 俱足以上致災妖, 而狡賊之變詐百出, 兇悶轉劇, 在我之削弱已甚, 抵當無策。 一則曰天朝, 二則曰天朝, 而皇威之每勤遠討, 實未可期, 依人而得以自立, 勢亦難保。 萬世必報之讐怨, 將置之何地, 而目今頃刻之圖存, 亦罔爲計? 臣等念及于此, 尤不覺心腸之已腐矣。 伏願殿下, 毅然自奮, 益懋聖學, 涵養一念之天, 以立萬事之綱, 使本然之權度, 昭晣於方寸, 則應酬之際, 如辨黑白, 無所處而不當。 廟享之當親, 其必有惕然不容已者, 而痛念讐辱之大, 頮血枕戈, 思所以自强之策, 自無所不至矣。 精神所運, 風采立變, 委任賢輔, 網羅俊彦。 以之奮庸熙載, 雷厲風飛, 雖瘖、聾、跛、躄, 亦且增百倍之氣, 三軍齊奮, 而四方聳勵, 其必有不期然而然者矣。 雖含冤忍痛, 爲一時迫不得已之擧, 而其自治刻勵之功, 復讐惻怛之誠, 果能終始不息, 則異日大義之快伸, 足以明殿下本心之天, 而其亦有辭於天下後世矣。 不然而偸安姑息, 一向委靡, 則氣勢奄奄, 且不能一朝居矣。 尙何復讎之可望哉? 此今日之大計, 固無急於討賊復讐, 而討賊復讐, 又不可以空言而辦, 徒手而爲也。 朱子所謂數年之後, 志定氣飽, 國富兵强, 視吾力之强弱, 觀彼釁之淺深, 徐起而圖之者, 信量時畜力之論也。 抑臣等之妄以爲今此復讐之事, 亦有名實之分, 何以言之? 蓋不忍忿憤之心, 輕慮淺謀, 試宗社於一擲, 自速禍敗, 而增讐敵之勢。 此則慕其名而喪其實, 匹夫之復讎也。 深惟此痛之窮天, 此賊之不可暫忘, 一念如丹, 不容蔽昧, 一動作一號令之頃, 而念念在玆, 自强於時晦之中, 君臣上下, 惟汲汲然以生聚訓鍊, 爲飢食渴飮之急, 積以年時之久, 竢吾之元氣旣實, 國勢方壯, 然後一擧而如句踐之爲。 此則得其實而享其名, 帝王之復讎也。 夫義理者, 隨時變動, 如夏葛、冬裘, 初非泥着一隅之物。 苟不卽乎吾心之安, 反諸一念之天而求之, 則其不爲刻舟而守株者, 幾希矣。 《易繫辭傳》曰: "觀會、通, 以行其典禮", 而朱子釋之曰: "會是觀衆理之會, 通是擇其通者而行, 如庖丁解牛, 會則其族, 而通則其虛也。" 噫! 非精義之至, 其孰能與於此哉? 今日之計, 若不審度於名實之分, 而擇其義焉, 則(有)〔存〕 亡成敗, 特一呼吸之間耳。 凡臣等所論, 若近於迂緩, 而實皆有着落可據之地。 儻蒙聖明, 俯加採納, 則重恢撥亂, 亶不外是, 轉災爲祥, 蓋不足言矣。 臣等目見跟使已去, 勢莫追回, 賊情兇狡, 日益叵測, 竊慮聖念悵鬱, 無以自解, 敢竭其區區而不知止焉。 語雖支蔓, 情亦苦矣, 更乞聖明留神焉。 取進止。
答曰: "省箚, 具見忠款, 深用嘉焉。 當加體念。"
선조 29년 (1596) 7월 6일
선조실록77권, 선조 29년 7월 6일 辛未 1/3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홍문관이 올린 차자
국역
홍문관이 【부제학 이호민(李好閔), 응교 김홍미(金弘微), 교리 권협(權悏), 부교리 이심(李愖), 부수찬 이형욱(李馨郁), 저작 김광엽(金光燁), 정자 윤의립(尹義立) 등이다. 】 차자를 올리기를,
"삼가 살피건대, 하늘이 우리 나라에 내린 화가 조금은 풀렸으나 괴이하고 놀라운 재변이 달마다 생기다가 이번 6월 무오272) 에는 또 요망한 혜성(彗星)이 경계를 보이어 12일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았으니 이변이 더욱 참혹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에 있어서는 비록 경성(景星)과 경운(慶雲)이 날마다 상서를 보인다 하더라도 상하가 경황이 없어 오히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야 할 것인데, 하물며 꾸지람을 보이는 하늘의 변괴가 이처럼 극도에 이르는 데이겠습니까. 신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바라보며 모두 놀라움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 천재(天災)도 무턱대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지변(地變)도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갑자기 일어나게 되고 겹치어 생기게 되는 것이 어찌 당초에 뜻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임어(臨御)하신 지 30년에 전학(典學)하는 한 생각을 시종 끊지 않으시어 우뚝하게 큰 근본이 되는 경지에 안목이 있으셨기에 진정한 지혜가 유독 밝고 슬기로운 일처리가 틀림이 없으시니, 조예(造詣)의 도달한 데를 진실로 신들로서는 헤아려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하시는 일에 나타난 것으로 헤아려 보건대, 역시 전하께서 학문하신 것이 오히려 지극하지 못하신 바가 있어 닥쳐온 재변 또한 그 감응(感應)으로 일어난 것인 듯싶습니다. 신들이 살펴 말씀드리겠습니다.
종묘(宗廟)의 제사는 마땅히 친림(親臨)하셔야 하는 법인데, 임시변통으로 마련한 제전(祭殿)이 황량하게 버려진 채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아직까지 한 번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오래도록 ‘계신듯이 받드는 정성’을 결함으로써 하늘에 계시는 조종(祖宗)들의 영혼이 내려와 의지할 데가 없게 하였으니, 전하께서 죄를 책임지고 악을 자신에게 돌리더라도 당연한 법보다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다스리기를 마땅히 시급하게 해야 하는 법인데, 시들해진 형상이 마치 해가 저물어 가듯이 되어 와신상담하는 각고면려가 점점 풀어지고 백관(百官)의 태만이 날로 심해짐으로써 내수외양(內修外攘)하는 계책을 그만 어찌할 수 없다고 내버려 두었으니, 전하께서 근본을 강화하고 외침(外侵)을 막는 도리에 있어 또한 진실로 극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계책을 세울 때에는 보존과 멸망의 기틀을 반드시 잘 살펴서 정해야 하는 법인데, 요즘 조정의 방책을 보면 둥둥 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여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옛말에 이른바 ‘의아스러운 일은 공이 없게 되고 의아스러운 행동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법이다.’ 한 것과 불행히도 가깝게 되었으니, 이는 마침내 사세가 반드시 경상(經常)이나 임시변통 모두 실패하여 가만히 앉아서 화란(禍亂)을 쌓이게 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군신(君臣)관계에 있어서는 언제나 정의(情意)가 서로 돈독하지 않은 것이 걱정입니다.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분명하게 깨우쳐 주고 부족함이 있으면 마땅히 경계하여 가르쳐 주며, 혹은 옳다 하고 혹은 그르다 하여 오직 합당하게 귀결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성공한 일은 기쁨을 함께 하고 실패한 일은 슬픔을 같이 하여 함께 간난(艱難)을 헤쳐 가야 하니, 진실로 이미 임용(任用)해 놓고서 의심을 품거나 딱 잘라 결단하지 않아 사특한 길이 열리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무릇 이 몇 가지만으로도 하늘의 재변과 요괴(妖怪)가 일어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인데 교활한 왜적의 변사(變詐)가 갖가지로 나오고 있고 비밀한 흉계가 갈수록 극렬해 가는데 우리는 형편없이 깎이고 약해져서 감당해낼 계책이 없습니다. 첫째도 명조(明朝)만 말하고 둘째도 명조만 말하고 있는데, 황제(皇帝)의 위엄으로 번번이 먼 데까지 나와 토벌해 주리라는 것도 실로 기필할 수가 없고, 남을 의지하여 자립하려는 것은 형편상 역시 보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만세토록 기필코 갚아야 할 원수를 장차 어디에 두어야 할는지, 그리고 바로 지금 경각(傾刻) 사이의 보존을 도모하는 것조차 계책을 마련할 길이 없으니, 신들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더욱 자신도 모르게 마음과 오장이 썩는 듯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의연히 자신을 분발하여 더욱 성학(聖學)을 힘쓰시되, 전일한 생각 속에 천성(天性)을 함양하여 만사의 강령(綱領)을 세움으로써 천리(天理)의 권형(權衡)이 방촌(方寸)273) 속에 훤해지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모든 일을 수응해 갈 적에 마치 흑백을 구별하듯 처리하는 일마다 합당하게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고 종묘 제사를 친히 지내셔야 하는 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척연(惕然)해져 그만둘 수 없게 될 것이며, 통분하게 생각해야 할 원수들의 큰 모욕에 있어서도, 피씻은 창을 베개 삼아 누워서 자강(自强)해야 할 계책을 생각해감에 있어서도, 자연히 지극하게 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정신이 발동하는 곳에는 풍채(風采)가 바로 달라지게 되는 법이니, 현명한 보필(輔弼)을 임용하고 준수한 선비들을 망라하여 이들과 분발하여 왕업(王業)을 성취하기를 뇌성이 울리고 바람이 불듯이 한다면, 비록 벙어리·귀머거리·절뚝발이·앉은뱅이라 하더라도 또한 기운이 백배할 것이니, 삼군(三軍)이 일제히 분기(奮起)하여 사방이 용동(聳動)하게 됨이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기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어질 것입니다.
비록 원통함을 안고 아픔을 참으며 한 때의 절박함 때문에 부득이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자치(自治)하려는 각고 면려하는 공력과 복수하려는 측은한 정성을 과연 끝까지 쉬지 않는다면, 훗날 대의를 통쾌하게 펼치게 되어 족히 전하의 천리(天理)인 본심(本心)을 밝히게 되고 또한 천하와 후세에 할 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안일을 도모하여 우선만 편하려고 하여 한결같이 시들해져 버린다면 기세(氣勢)가 숨넘어 갈 듯하여 하루아침도 살 수 없게 될 것인데, 오히려 어떻게 원수갚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날의 큰 계책은 진실로 적을 토벌하여 원수를 갚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는데, 적을 토벌하여 원수를 갚는 것은 또한 빈말과 맨손으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자(朱子)의 이른바 ‘두어 해 뒤에 뜻이 안정되고 기운이 차게 되어 나라가 부유해지고 군사가 강해지면, 우리 힘의 강약(强弱)도 살펴보고 저들의 천심(淺深)도 관찰하여 서서히 일어나 도모해야 한다.’고 한 것이 진실로 시기를 헤아리며 힘을 길러가자는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신들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오늘날 이 원수갚는 일은 또한 명(名)과 실(實)의 구분이 있다고 여겨지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개 성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경솔한 생각과 얕은 계책으로 종사(宗社)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고 하여 스스로 화란과 실패를 가져오고 원수인 적의 기세만 더하게 한다면, 이는 명분만 생각하여 실속은 잃어버리는 것으로서 필부(匹夫)가 복수하는 방법입니다. 하늘에 닿는 이 통분함과 잠시도 잊을 수 없는 이 적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일편 단심을 가리워지거나 어두어지게 하지 않고 일개의 동작과 한 명령을 내리는 사이에도 생각을 여기에만 두어 시회(時晦)274)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강(自强)해 가되, 군신(君臣) 상하가 오직 급급하게 백성을 안정시키고 훈련시키기를, 주릴적에 밥 먹고 목마를 적에 물 마시듯 급하게 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의 원기(元氣)가 실해지고 국가의 사세가 왕성해지기를 기다린 다음, 구천(句踐)이 했던 것처럼 한번 거사해야 할 것이니, 이는 실속도 있고 명성도 누리게 되는 것으로 제왕(帝王)이 복수하는 방법입니다.
대저 의리라는 것은 때에 따라 변동하는 것으로 마치 여름에는 시원한 갈포를 입고 겨울에는 갖옷을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니, 당초부터 한편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자신의 안정된 마음으로 전일하게 천리(天理)로 반성하여 찾지 않는다면, 각주구검(刻舟求劍)이나 수주대토(守株待兎)가 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드물 것입니다. 《역경》 계사전(繫辭傳)에 ‘회(會)와 통(通)을 살펴 전례(典禮)를 행한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해석하기를 ‘회는 곧 모든 이치가 모인 곳을 관찰하는 것이고 통은 곧 통한 곳을 가려 행하는 것으로, 마치 포정(庖丁)이 소를 잡는 것과 같으니 회는 뼈와 힘줄 등이 엉킨 곳이요, 통은 그 사이의 빈 틈이다.’ 했습니다. 아, 의리의 정밀함이 지극하지 않고서는 누가 능히 이에 관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계책을 세움에 있어서 만일 명분과 실속의 구분에 대해 잘 헤아려 의리를 가려 하지 않는다면 존망(存亡)과 성패(成敗)가 단지 숨 한번 쉬는 사이에 결정될 것입니다. 무릇 신들의 논한 말이 오활함에 가까운 것 같아도 실은 모두 근거하여 귀결시킬 곳이 있는 것이니, 혹시라도 성명(聖明)께서 굽어 보시고 채택하여 받아들여 주신다면, 다시 회복하여 난을 다스려 가는 길이 진실로 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재변을 반전하여 상서가 되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신들이, 수행하는 사신이 이미 떠나버려 사세상 뒤쫓아가 돌아오게 할 수 없게 되고 적들의 정세가 흉악하고 교활하여 날로 더욱 헤아릴 수 없음을 보고, 성상께서 한탄스럽고 답답하신 심정을 풀 길이 없으실 것이라 여겨지기에, 감히 구구한 말을 다하고 그만둘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말이 비록 지루하게 되었지만 심정은 또한 고통스러우니, 다시 성명께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진지(進止)하시기를 취품(取稟)합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 보건대 충성스러운 마음을 모두 보였으니, 매우 가상하다. 더욱 체념(體念)하겠다."
하였다.
원문
○辛未/弘文館: 【副提學李好閔、應敎金弘微、校理權悏、副校埋李愖、副修撰李馨郁、著作金光燁、正字尹義立等。】
伏以, 天禍我國, 訖可少悔, 而可怪可愕之變, 式月斯生, 乃六月戊午, 又妖彗示警, 浹辰不滅, 厥異尤慘。 居今之世, 雖景星、慶雲, 日奏其祥, 而上下遑遑, 猶不知所屆。 況垂象之譴, 至於此極乎? 臣等聚首相顧, 仰駭俯慄, 誠不知所出也。 嗚呼! 災非妄作, 變不虛生。 彼勃勃參參, 豈端無意者耶? 臣等伏見殿下, 臨御三十年, 典學一念, 終始罔間, 而卓然有見於大根本之地, 眞知獨瑩, 睿裁靡爽, 其造詣所到, 固非臣等所可蠡測也。 第以其見於事爲者揆之, 則抑恐殿下之於此學, 猶有所未至, 而變異之來, 亦不無感召之由矣。 臣等請究言之。 廟祀當視, 而權殿荒涼, 星霜屢變, 尙闕一裸之享, 久缺如在之誠, 使祖宗在天之靈, 陟降靡依, 則殿下之於負罪引慝, 得無過於當然之則者乎? 自治當急, 而委靡之象, 如日嚮暮, 薪膽之刻厲漸弛, 百隷之怠慢日甚, 而脩攘之圖, 直付之無可奈何, 則殿下之於强本折衝之道, 固亦未盡矣。 計者, 存亡之機, 必須審定, 而近日廟謨, 游移前却, 不可指的。 古語所謂疑事無功, 疑行無成者, 不幸而近之, 則是其勢, 終必至於經權俱失, 坐稔禍亂矣。 君臣之際, 常患情意之不相孚。 有失則當明諭之, 有不及則當警敎之, 或可或否, 唯當而歸。 成同其休, 敗同其戚, 以共濟于艱難, 固不可旣任而且疑之, 持不斷而開枉門。 凡此數者, 俱足以上致災妖, 而狡賊之變詐百出, 兇悶轉劇, 在我之削弱已甚, 抵當無策。 一則曰天朝, 二則曰天朝, 而皇威之每勤遠討, 實未可期, 依人而得以自立, 勢亦難保。 萬世必報之讐怨, 將置之何地, 而目今頃刻之圖存, 亦罔爲計? 臣等念及于此, 尤不覺心腸之已腐矣。 伏願殿下, 毅然自奮, 益懋聖學, 涵養一念之天, 以立萬事之綱, 使本然之權度, 昭晣於方寸, 則應酬之際, 如辨黑白, 無所處而不當。 廟享之當親, 其必有惕然不容已者, 而痛念讐辱之大, 頮血枕戈, 思所以自强之策, 自無所不至矣。 精神所運, 風采立變, 委任賢輔, 網羅俊彦。 以之奮庸熙載, 雷厲風飛, 雖瘖、聾、跛、躄, 亦且增百倍之氣, 三軍齊奮, 而四方聳勵, 其必有不期然而然者矣。 雖含冤忍痛, 爲一時迫不得已之擧, 而其自治刻勵之功, 復讐惻怛之誠, 果能終始不息, 則異日大義之快伸, 足以明殿下本心之天, 而其亦有辭於天下後世矣。 不然而偸安姑息, 一向委靡, 則氣勢奄奄, 且不能一朝居矣。 尙何復讎之可望哉? 此今日之大計, 固無急於討賊復讐, 而討賊復讐, 又不可以空言而辦, 徒手而爲也。 朱子所謂數年之後, 志定氣飽, 國富兵强, 視吾力之强弱, 觀彼釁之淺深, 徐起而圖之者, 信量時畜力之論也。 抑臣等之妄以爲今此復讐之事, 亦有名實之分, 何以言之? 蓋不忍忿憤之心, 輕慮淺謀, 試宗社於一擲, 自速禍敗, 而增讐敵之勢。 此則慕其名而喪其實, 匹夫之復讎也。 深惟此痛之窮天, 此賊之不可暫忘, 一念如丹, 不容蔽昧, 一動作一號令之頃, 而念念在玆, 自强於時晦之中, 君臣上下, 惟汲汲然以生聚訓鍊, 爲飢食渴飮之急, 積以年時之久, 竢吾之元氣旣實, 國勢方壯, 然後一擧而如句踐之爲。 此則得其實而享其名, 帝王之復讎也。 夫義理者, 隨時變動, 如夏葛、冬裘, 初非泥着一隅之物。 苟不卽乎吾心之安, 反諸一念之天而求之, 則其不爲刻舟而守株者, 幾希矣。 《易繫辭傳》曰: "觀會、通, 以行其典禮", 而朱子釋之曰: "會是觀衆理之會, 通是擇其通者而行, 如庖丁解牛, 會則其族, 而通則其虛也。" 噫! 非精義之至, 其孰能與於此哉? 今日之計, 若不審度於名實之分, 而擇其義焉, 則(有)〔存〕 亡成敗, 特一呼吸之間耳。 凡臣等所論, 若近於迂緩, 而實皆有着落可據之地。 儻蒙聖明, 俯加採納, 則重恢撥亂, 亶不外是, 轉災爲祥, 蓋不足言矣。 臣等目見跟使已去, 勢莫追回, 賊情兇狡, 日益叵測, 竊慮聖念悵鬱, 無以自解, 敢竭其區區而不知止焉。 語雖支蔓, 情亦苦矣, 更乞聖明留神焉。 取進止。
答曰: "省箚, 具見忠款, 深用嘉焉。 當加體念。"
원본
선조 29년 (1596) 7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