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73권, 선조 29년 3월 22일 己丑 2/3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사간원이 시무의 급선무를 건의하다
국역
사간원이 상차(上箚)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지금 강한 적이 국경을 위압하고 있으며 병력도 강성한데, 종묘(宗廟)의 원한 깊은 원수는 갚지 못하고 생령(生靈)의 곤폐는 이미 극에 달하였습니다. 안에는 의지하여 믿을 만한 강직한 신하가 없고 밖에는 왕이 분개하는 적에 대적할 만한 간성(干城)의 장수가 없습니다. 위망의 화가 조석에 박두하였는데도 어물어물 세월만 보내고 앞뒤를 돌아보며 감히 한 마디 말을 하여 국가의 위급함을 구제할 자가 없으니 진실로 통곡할 일입니다. 신들은 간하는 것으로 직분을 삼으니 감히 말하지 아니하여 성명(聖明)을 속일 수 없기에 우선 그 시폐의 큰 것을 들어 말씀드립니다.
아, 저 왜적은 우리 나라가 언제고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로서 하루라도 하늘을 같이하고 살 수가 없는 사이이므로 대의로 볼 때 우매한 백성들도 모두 마땅히 거절해야 할 줄 압니다. 그런데 기미(羈縻)의 계책이 한번 나오자 구차한 논란이 따라 일어나서 국시(國是)가 날로 글러지는데도 다시 고려하는 이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통신사(通信使)의 요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주문(奏文)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허락하려고까지 하니, 그의 생각은 ‘우리 측의 자치(自治)가 견고하지 못하고 형세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나아가도 싸울 만한 병력이 없고 물러나도 수비할 만한 곳이 없으므로 그들의 소청에 따라 우선 허락한 다음, 국민의 부강과 교육을 기다려 일거에 섬멸하기를 옛날 구천(句踐)이 오(吳)의 원수를 갚듯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이해로 말하는 것이지만, 또한 이해의 소재를 보지 못하는 생각입니다.
수길(秀吉)을 어떠한 적이라고 봅니까. 동쪽 한 구석에 앉아서 천하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심상한 적이겠습니까. 그의 흉모와 음흉한 계책이 필시 선수를 칠 소지가 있어서 우리가 기미하고자 하자 저들이 도리어 기미하여 군사를 모아 틈을 엿보고 있으니 조만간에 반드시 동병(動兵)할 것입니다. 이로 볼 때 구구한 화호(和好)로 기미할 수 있는 바가 아니며, 한두 사신으로 중지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대개 2백 년 동안 교린(交隣)한 의리가 두텁지 않은 것이 아닌데,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바다를 건너 장구(長驅)하여 산야(山野)를 유린하고 종사(宗社)를 복멸하였으니, 이는 그 뜻이 화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승의 군사를 거느리고 천리의 땅을 점거하여 일개 소추(小醜)를 달려 보내 【소서비(小西飛)가 화호로 인해 일찍이 중국에 갔었다. 】 천조의 넓은 은혜를 받음으로써 책봉사가 황명을 받들고 멀리 그의 진영에 다다랐습니다. 이리하여 천위(天威)가 지척에 있는데도 오히려 죽을 듯이 두려워할 줄 모르고 온갖 방법으로 지연하면서 아직까지 바다를 건너지 않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한두 신사(信使)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 우리 나라의 사세를 탐지하고 한편으로 훗날 핑계할 소지를 만들고 있으니, 그 뜻이 어찌 신사에 있겠습니까. 설혹 통신사를 보내었을 경우 뒤에 다시 따르기 어려운 요청이 있으면 장차 어떻게 조처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르자면 그의 욕심에 한정이 없고, 따르지 않으면 그 흉모를 필시 자행할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전공(前功)을 버리고 후화(後禍)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이익은 없고 백 가지의 해만 있을 것이 분명하니, 위로 중국에 고하고 아래로 군민(軍民)을 효유해 가지고 정의에 의거하여 군사를 일으켜서 사공(事功)의 회복을 도모하는 것만 못합니다. 전하께서 복수할 뜻을 해와 달처럼 밝게 계시하여 차라리 적을 치다가 죽을지언정 수치를 안고서 살고 싶어하지 아니하신다면, 국시가 일단 정해져서 이의(異議)가 절로 사라질 것이며, 정신의 감동한 바에 용기가 백배나 생겨서 추로(醜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성념(省念)하소서.
아, 생각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급변에 대응할 수 없고, 일을 먼저 판출하지 않으면 승리를 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추적(醜賊)이 쌓아 온 계책이 이미 깊어졌으니 충돌의 변고가 조석으로 염려됩니다. 이때가 바로 황급히 서둘러서 수족을 적시고 모발을 태우며 전수(戰守)하기에 겨를이 없을 때인데, 매번 봉사(封事)가 다행히 이루어지고 국경이 저절로 안정되기만을 기다리면서 밖으로는 방비하는 태도를 보이고 마음속으로는 안일을 도모하는 계책을 품어 상하가 서로 감싸주고 날로 더욱 태만하니, 이는 곧 적이 이르기도 전에 스스로 멸망될 것입니다. 대개 경성(京城)은 사방의 근본인데다 종사(宗社)가 있는 곳이며, 인민이 믿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대한 계책을 세우고 뜻을 가다듬어 다스려서, 성첩(城堞)을 살펴보아 적절히 군사를 배치하고 그 군사의 숫자를 헤아려 적절히 군량을 비치하여, 멀리는 1년의 계책을 세우고 가까이는 몇 달의 계책을 세워야 할 것이며, 기타 원근 형세의 소재에 대해서도 설비하지 않음이 없어 경성을 보호할 형세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도의 방백(方伯)에게 효유하여 정예병을 뽑아 장교를 정하고 편대를 나누어서 그로 하여금 급변을 들었을 때 달려와 구원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한 연후에 약속을 엄히 밝히고 충의를 격려하여, 군신 상하(君臣上下)가 모두 성을 등지고 한번 싸우기로 마음먹는다면 형세가 이루어지고 민심이 저절로 견고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니하고 범연히 경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만 하면서 착실히 조처하는 일이 없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위급한 일이 생겨 사세를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면 그 전패(顚沛)의 환란은 반드시 임진년보다 극심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아, 상란(喪亂)을 겪은 후 인심은 정도를 잃었고 세도(世道)는 날로 야박해져서, 시비(是非)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에 현혹되고 용사(用舍)는 어질고 우매함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거조(擧措)가 그 타당함을 잃고 정령(政令)이 순리에 어긋나서 조정의 명령은 방백에게 시행되지 않고 방백의 명령은 수령에게 시행되지 않습니다. 하민은 관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습관이 되어 상하가 서로 통하지 않으며 모든 일이 두서를 잃어 작상(爵賞)까지도 공평하지 못하고, 형벌까지도 적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전하의 호령(號令)과 출척(黜陟)이 공의(公議)에서 나오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정을 따른다면 악한 자가 무엇으로 징계되며 형정(刑政)이 어디로부터 시행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자신의 덕을 밝히고 백성에게 중도를 세워서 공평정대한 도리를 다하고 편당반측하는 사심이 없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공도(公道)가 절로 신장되고 국강(國綱)이 진작되어 치도(治道)를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민심은 국가의 근본이므로 민심이 한번 흔들리면 나라를 보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성왕(聖王)은 초야의 민심을 잃지 않았고, 맹자(孟子)도 말하기를,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외롭게 살아남아 있는 백성은 이미 일정한 생업을 잃었고 안정된 마음조차 없어 사방으로 흩어져 유리하면서 조석을 보전하지 못하는데, 조가(朝家)엔 일이 많아 지탱할 수 없으므로 특별히 명목을 붙여 교묘하게 갈취해 가며, 난을 겪은 후 군액(軍額)이 흩어져 도망하므로 그 결손을 염려하여 명부를 점검해 장정을 뽑아 등록하는데 그 피해가 인족(隣族)에까지 미칩니다. 성지(城池)와 기계(器械)는 수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일을 맡은 사람이 성취에만 급급하고 조처를 적절히 못하여 실효를 보지 못하고 민력(民力)만 손상합니다. 둔전(屯田)의 설치는 군량을 위한 것인데, 직업이 없는 무뢰배가 수단을 써서 그 소임을 맡아 사욕을 앞세우고 공무를 뒤로 여기므로 소득이 소비에 미치지 못하며 한갓 백성을 괴롭히는 해만 될 뿐입니다. 민병(民兵)을 단결하여 조련(操鍊)하는 데 있어서 병든 자도 빼어놓지 않고 노약자도 함께 점검할 뿐더러 회합하는 날짜가 급박하여 밤이나 낮이나 불려 다니므로 농사가 시기를 잃어 한 해가 마치도록 살아갈 계책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백성이 성지를 보기를 함정과 같이 여기고 관리를 대하기를 원수와 같이 합니다. 민심이 이와 같고서야 무슨 일을 성취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각별히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시어 정당한 과세 외의 징렴과 급하지 않은 부역을 일체 제거하며, 수령을 엄선하여 백성을 안집하고 무마시켜, 그들로 하여금 항산(恒産)이 있고 항심(恒心)이 있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잘 섬기어 사공(事功)을 즐기며 분주할 것이니, 무엇을 지킨들 견고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와 싸운들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아, 사람이 사람된 소이는 윤기(倫紀)가 있기 때문인데, 윤기가 두절되면 금수와 같습니다. 변란을 겪은 후부터 대방(大防)이 한번 무너지자 예법이 폐지되어 인도(人道)가 거의 멸식해 갑니다. 3년상(三年喪)은 서인(庶人)에까지 통용되는 것인데, 유식한 집도 혹 이륜(彝倫)에 부끄러움이 있음을 면치 못하니, 우매한 백성들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옛날 이천(伊川)에 머리를 풀어헤친 자가 보이자 그 곳이 장차 이적(夷狄)의 땅이 될 것을 안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습속이 머리를 풀어 헤치는 데에 그치지 않으니, 어찌 이것이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예의를 숭상하고 인기(人紀)를 닦고 밝혀서 충신과 효자로서 모범이 될 만한 자가 있거든 특별히 정표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사람들이 모두 보고서 감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경중에 크게 관계되는 일이 아니면 탈정(奪情)을 허락하지 말며, 혹시 이륜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풍속을 해치는 자가 있거든 중죄로 다스려서 그로 하여금 수치로 알아 고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인륜을 돈독히 하고 미풍을 이룩하는 도가 거의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 인재는 국가의 이기(利器)여서 다른 세대에서 빌리지 않아도 세대마다 어진이가 없지 않은데 오직 임금이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인재를 기용하여 그 재주에 따라 위임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남의 말에 동요되지 말며 작은 허물로 체역(遞易)하지 말고 오래 재직시켜 성사하도록 하여 그 실정을 보소서. 친소를 따지지 말고 오직 어진이만을 들여 쓰며, 멀고 가까움의 간격이 없이 재능있는 사람을 우선으로 삼으소서. 이와 같이 하면 현능(賢能)한 이가 포열하고 온갖 일이 바로 되어서, 구중 궁궐에 단정히 팔장을 끼고 앉아서도 영원히 안녕을 누리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아, 작상(爵賞)은 조정이 공로를 권장하는 것으로서 한 세상을 격려하는 기구입니다. 작상이 공평하지 않으면 유공자를 권장할 수 없고 허위가 날로 만연하여 비록 열 사람의 요(堯)임금이 있어도 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변란이 있은 후 작상에 법도가 없고 관방(官方)이 난잡하여 참획(斬獲)의 공로가 항오의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미미한 하천배들이 연줄을 따라 청을 넣어 금옥(金玉)이 빛남으로써 현연히 구속(狗續)의 기롱이 있으며, 매관(賣官)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장사꾼과도 같아 역취(易醉)의 꾸지람061) 이 다시 오늘날에 존재합니다. 명기(名器)가 날로 가벼워지고 의관이 혼잡해지니 어찌 한 세상을 격려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도 아끼시어 신중을 더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명기가 저절로 중해져서 사람들이 스스로 권면할 줄 알 것입니다.
아,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일러 사유(四維)라고 하는데 사유가 행해지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합니다. 요즈음 염치의 도가 상실되고 장오(贓汚)의 풍조가 이루어졌으며 변수(邊帥)에 이르러서는 탐욕이 더욱 극심합니다. 조정은 수신(帥臣)을 규정하지 못하고 수신은 편비(褊裨)를 살피지 못하는지라, 중외에 탐도(貪饕)한 무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혹시 적발되는 자가 있어도 끝까지 국문하지 않고 갑자기 석방을 시켰다가 석방된 지 오래지 않아 바로 발탁의 은혜를 입게 하니, 남들이야 비웃고 꾸짖더라도 기세가 양양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장오(贓汚)의 율법을 거듭 밝혀서 만약 범죄자가 있거든 비록 귀척과 근신이라 하더라도 조금도 용서하지 마소서. 이와 같이 하면 간사한 무리가 스스로 경계할 것이며, 탐욕을 부리는 풍속이 점차 없어질 것입니다.
아, 장수란 죽음을 갖는 벼슬이며 싸움이란 위태한 일입니다. 장군은 패하면 죽어야 하는 것이니,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잊고 용기를 내어 한판 승리에 목적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군율이 엄하지 않고 장수가 방자하여 나아가 반드시 죽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없고 물러나 안전의 쾌락만을 누릴 생각을 갖고 승패와 존망은 자신에게 관계시키지 않습니다. 이처럼 위급한 때를 당하여 주의(注意)는 장수에게 있는데 교만하고 태만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누가 삼군을 거느리고 시석(矢石)에 대항하여 난관에 처한 임금을 호위하겠습니까. 옛날에 제갈양(諸葛亮)이 눈물을 흘리며 마속(馬謖)을 참하였는데, 어찌 어질지 못하여 그리 하였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군법으로 다스리고 조그마한 공로로 용서하지 마소서.
아, 천하의 일이 천만 번 변화하더라도 모두가 임금의 마음에 근본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선유(先儒)가 이른바 ‘큰 근본’이란 것입니다. 전하께서 옛 서울에 돌아와 정치의 새로움을 도모하고 있는데, 온갖 폐단이 함께 일어나고 만사가 날로 퇴락해갑니다. 전하께서는 먼저 마음을 바로하여 쇠망을 흥기시키고 난을 물리치는 근본으로 삼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왕(宣王)062) 은 자신을 반성하고 행실을 닦는 실행이 있었고, 구천(句踐)은 섶에 누워 쓸개를 맛보는 고초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문무(文武)의 대업을 회복하였고, 끝내 회계(會稽)의 수치를 씻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통렬히 격려하여 대사(大事)를 담당하셔야 하고 지나치게 스스로 박덕하다 하여 부당한 비유를 끌어 변명하며, 앉아서 기회를 잃고 민심을 실망시키지 마소서. 태묘(太廟)에 친향(親享)하는 일은 의례의 큰 것인데, 환도한 지 4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알묘(謁廟)를 궐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자책하시는 깊은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으나, 정리로 헤아려 보면 크게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외적의 변을 당하여 그 아비와 아들이 서로 보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외적이 물러감에 미쳐 다시 가정에 모였을 경우, 아들이 자신이 외적을 유치하였다 하여 아비를 보지 않고 자기 방에 움츠리고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곧 아비를 찾아뵙고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책하면서 위로하며 사과해야 하겠습니까. 신도(神道)에 구해본들 어찌 인정과 멀겠습니까. 분발하며 애척한 마음으로 속히 몸소 강신하여 참알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민심을 모을 수 있고, 다시 회복하는 근본도 또한 이에 있을 것입니다. 신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외람히 요직에 올라 은영(恩榮)을 차지하고서도 조금도 보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일념은 마음 속에 간절하여 감히 오늘날의 급선무를 진술합니다. 그 큰 근본에 더욱 성심을 쏟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니, 모두가 나라를 위한 충간(忠懇)임을 알겠다. 진술한 것은 진실로 오늘날의 급선무인 것이어서 못내 감격스럽고 두렵기도 하다. 마땅히 묘당(廟堂)과 의논하여 조처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7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6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윤리-강상(綱常) / 인사-관리(管理)
- [註 061] 구속(狗續)의 기롱이 있으며, 매관(賣官)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장사꾼과도 같아 역취(易醉)의 꾸지람 : 작상(爵賞)이 문람함을 비유함. 진 혜제(晉惠帝) 때 조왕 윤(趙王倫)이 제위를 찬탈한 후 작상을 남발하여 관리가 쓰는 초선(貂蟬)이 부족하자 개꼬리까지 이어서 썼다는 기록이 있으며 《진서(晉書)》 조왕윤전(趙王倫傳), 당 숙종(唐肅宗) 때 국고가 탕갈되어 출정장사(出征將士)에게 공명고신(空名告身)을 주었으므로 "대장군 고신 한 통으로 한 번 취할 수 있는 술값에 바꾼다."고 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
- [註 062] 선왕(宣王) : 여기에서는 주(周)의 11대 왕 희정(姬靜)을 가리킨다. 선대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치도를 본받아 선치(善治)를 이룩함으로써 주나라를 중흥시켰다.
원문
○司諫院上箚曰:
伏以, 當今劇賊壓境, 兵力已盛, 宗社之深讐未復, 生靈之困悴已極。 內無骨鯁之臣, 倚以爲重; 外無干城之將, 敵王所愾。 危亡之禍, 迫在朝夕, 而媕娿度日, 顧後瞻前, 無敢發一言, 以救國家之急, 誠可痛哭。 臣等以諫爲職, 不敢不言, 以欺聖明, 姑擧其時弊之大者而言之。 嗚呼! 彼賊與我國, 有萬世必報之讐, 無一日共戴之理。 大義所在, 雖愚夫愚婦, 皆知其當絶, 而羈縻之計一出, 苟且之論隨起, 國是日非, 無復顧念, 或謂通信之請, 不可不從, 至欲不待奏文而直許。 其意以爲: "我之自治未固, 形勢未成, 進無可戰之兵, 退無可守之地, 不若因其所請而姑從之, 以待生聚敎訓, 一擧勦滅, 如句踐之復吳讐。" 此專以利害爲言, 而亦未覩利害之所在也。 以秀吉, 爲何如賊也? 坐扶桑一隅, 震撼天下, 此豈尋常寇盜? 其兇謀陰計, 有必所先, 而我欲羈縻, 彼反羈縻, 斂兵俟釁, 早晩必動, 非區區和好所可縻, 非一二信使所可止矣。 夫二百年交隣之義, 不爲不厚, 而無故興兵, 越海長驅, 蹂躪山野, 覆滅宗社, 此其志不在於和好也。 擁全勝之師, 據千里之地, 馳一介之小醜, 【小西飛, 以和好, 曾往中原。】 得天朝之渙恩, 冊使銜命, 遠臨其營。 天威咫尺, 猶不以隕越爲懼, 遲延百端, 尙不渡海, 而又要我一二信使, 一以探我國之深淺, 一以爲後日執言之地, 其意豈在於信使也? 設或信使旣通之後, 復有難從之請, 則未知將何以處之? 欲從則其慾不厭, 不從則其兇必肆。 此所謂棄前功, 而受後禍者也。 其無一利, 而有百害明矣。 莫如上告天朝, 下諭軍民, 仗義興師, 圖恢事功, 使殿下復讐之志, 昭揭日月, 寧爲討賊而死, 不欲包羞而活, 則國是一定, 異議自寢, 精神所感, 勇氣百倍, 而醜虜不足憂矣。 伏願殿下省念焉。 嗚呼! 慮不先定, 無以應卒; 事不先辦, 無以制勝。 方今醜賊之蓄謀已深, 豕突之變, 朝夕可虞, 此正遑遑汲汲, 濡手足焦毛髮, 以爲戰守之不暇, 而每冀封事之幸成, 疆(場)〔埸〕 之自安, 外爲備禦之形, 內懷偸安之計, 上下相蒙, 日益玩愒, 此乃不待彼賊之至, 而自底滅亡之道。 蓋京城, 四方之根本, 宗社所在, 人民所恃, 有必守之義, 無可去之道。 若能早定大謀, 刻意經理, 審視城堞, 當用軍幾何, 計其軍數, 當峙糧幾何, 遠以爲一年之計, 近以爲數月之資, 其他遠近形勢所在, 亦莫不設備, 以爲京城輔車之勢, 且諭諸道方伯, 抄出精銳, 定將分部, 使之聞變赴援。 如是然後, 嚴明約束, 激勵忠義, 君臣上下, 皆以背城一戰爲心, 則形勢已成, 人心自固。 不然, 徒曰京城可守, 悠悠汎汎, 無着實措置之事, 一朝緩急, 勢已蒼黃, 則顚沛之患, 必有甚於壬辰矣。 伏願殿下留神焉。 嗚呼! 喪亂以後, 人心失正, 世道日偸, 是非眩於好惡, 用舍失於賢愚。 擧措失當, 政令乖宜, 朝廷之命, 不行於方伯; 方伯之令, 不行於守令, 而小民以不從公家命令爲習, 上下不相管, 庶務失其緖, 以至爵賞不公, 刑罰不中, 人不畏法, 惟利是趨。 使殿下之號令黜陟, 不出於公議, 而一徇乎私情, 則(善)〔惡〕 者何自而懲, 刑政何自而擧耶? 伏願殿下, 先明一已之德, 建中于民, 盡公平正大之道, 無偏黨反側之私, 則八道自張, 國綱以振, 而治道可論。 嗚呼! 民心者, 國家之本也。 民心一搖, 則國不能保。 故古之聖王, 不失丘民之心; 孟子亦曰: "地利不如人和。" 方今孑遺餘民, 旣失恒業, 仍無定志, 流移四散, 不保朝夕, 而朝家多事, 無所支撑, 別作名目, 巧取於民, 經亂之後, 軍額散亡, 慮其缺少, 案簿簽丁, 侵及隣族。 城池、器械, 不可不修葺, 而任事之人, 急於成事, 處置乖當, 未見實效, 徒傷民力。 屯田之擧, 爲軍餉也, 而失業無賴之輩, 圖受其任, 先私後公, 所獲不及於所費, 而徒爲擾民之害。 團結民兵, 以爲操鍊, 而疲癃不遺, 老弱竝點, 期會日急, 星夜奔命, 耕穫失時, 卒歲無計。 以此, 民之視城池如檻穽; 對官吏如仇讐。 民心如此, 何事可濟? 伏願殿下, 惕然警省, 科外之斂, 不急之役, 一切蠲罷, 謹擇守令, 安集撫摩, 使之有恒産而有恒心, 則親上事長, 樂事赴功, 何守而不固, 何戰而不勝乎? 嗚呼! 人之所以爲人者, 以其有倫紀也。 倫紀斁敗, 則其違禽獸不遠矣。 自經變亂, 大防一壞, 禮法徒廢, 人道幾乎熄矣。 至於三年之喪, 達于庶人, 而有識之家, 或不免有愧於彝倫, 則蚩蚩之民, 無足怪也。 昔者有見被髮於伊川, 知其將爲夷狄之域。 今日習俗, 不止於被髮, 則豈不爲之寒心哉? 伏願殿下, 敦尙禮義, 修明人紀, 如有忠臣、孝子之可爲師範者, 特施旌異, 則人皆觀感, 而非關國家之輕重者, 勿許奪情, 或有不率彝敎, 傷風敗俗者, 論以重罪, 使之有恥且格, 則其於厚倫成俗之道, 庶幾得矣。 嗚呼! 人才, 國家之利器也。 不借異代, 代不乏賢, 惟在乎人君明明(楊)〔揚〕 側, 隨才而器任之。 勿以人言而搖動, 勿以微過而遞易, 久而責成, 觀其實情; 勿論親踈, 惟賢是擧, 無間遠邇, 以才爲先, 則賢能布列, 百度惟貞, 端拱九重, 永逸無虞矣。 嗚呼! 爵賞者, 朝廷之所以勸有, 勵一世之具也。 爵賞不公, 則有功者, 無所勸, 而虛僞日滋, 雖十堯, 不能治一國矣。 變亂以來, 爵賞無章, 官方淆亂, 斬獲之功, 未著於行間, 而(臺)〔儓〕 隷下賤, 夤緣鑽刺, 金玉相輝, 顯有狗續之譏, 至於賣官之擧, 有同商賈, 易醉之誚, 復存於今日。 名器日輕, 衣冠混雜, 豈可以砥礪一世哉? 伏願殿下, 嚬笑亦愛, 克加愼重, 則名器自重, 人知自勸矣。 嗚呼! 禮義廉恥, 是謂四維。 四維不張, 國乃滅亡。 邇者, 廉恥道喪, 贓汚成風, 至於邊帥, 貪婪尤極。 朝廷不能正帥臣, 帥臣不能察褊裨, 中外相承, 貪饕接迹, 雖或有摘發者, 案鞫未竟, 遽有放釋之命, 放釋未久, 卽蒙招擢之恩, 任他笑罵, 揚揚自得。 伏願殿下, 申明贓汚之律, 如有犯罪, 雖在貴近之中, 罔或小貸, 則奸徒自戢, 貪風漸息矣。 嗚呼! 將者, 死官; 戰者, 危事。 將軍死綏, 咫步無却, 故能忘身賈勇, 以賭一勝。 今則軍律不嚴, 將帥恣橫, 進無必死之心, 退有安全之樂, 勝敗存亡, 無與於己。 當此危急之時, 注意在將, 而驕惰若此, 誰能率三軍, 犯矢石, 捍王于艱哉? 昔者諸葛亮, 涕泣而斬馬謖, 豈不仁而然哉? 伏願殿下, 一以軍法從事, 勿以微勞饒之。 嗚呼! 天下之事, 雖千變萬化, 無一不本於人主之心。 此先儒所謂大根本也。 殿下旋軫舊京, 圖新厥政, 而百弊俱興, 萬事日墮, 則未知殿下, 其能先立其大, 而爲興衰撥亂之本乎? 宣王有側身修行之實, 句踐有臥薪嘗膽之苦, 能重恢文武之業, 終雪會稽之恥。 伏願殿下, 痛加刻勵, 擔當大事, 勿爲過自菲薄, 引喩失義, 坐失機會, 以沮衆心也。 至於親享太廟, 禮之大者, 而還都四載, 尙闕祗謁。 固知出於引咎之深衷, 揆之情理, 有大不然者。 今有人遭寇盜之變, 若父若子, 不得相保, 流離轉徙, 及其寇盜少定, 還集其家, 則其子以爲, 自我致寇, 將不見其父, 而退縮于私室乎? 抑將秪見乃父, 夔慄責躬, 以慰以謝乎? 求之神道, 豈遠人情? 幡然惕然, 亟行躬祼, 則人心可萃, 而重恢之本, 亦在是矣。 臣等俱以無似, 忝冒重地, 徒竊恩榮, 未效涓(埃)。 憂國一念, 耿耿于中, 敢陳今日之急務。 其於大本, 尤致眷眷焉。
答曰: "省箚, 具見爲國之忠懇。 所陳誠今日之急務, 無任感懼。 當與廟堂議處。"
- 【태백산사고본】 44책 7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6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윤리-강상(綱常) / 인사-관리(管理)
선조 29년 (1596) 3월 22일
선조실록73권, 선조 29년 3월 22일 己丑 2/3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사간원이 시무의 급선무를 건의하다
국역
사간원이 상차(上箚)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지금 강한 적이 국경을 위압하고 있으며 병력도 강성한데, 종묘(宗廟)의 원한 깊은 원수는 갚지 못하고 생령(生靈)의 곤폐는 이미 극에 달하였습니다. 안에는 의지하여 믿을 만한 강직한 신하가 없고 밖에는 왕이 분개하는 적에 대적할 만한 간성(干城)의 장수가 없습니다. 위망의 화가 조석에 박두하였는데도 어물어물 세월만 보내고 앞뒤를 돌아보며 감히 한 마디 말을 하여 국가의 위급함을 구제할 자가 없으니 진실로 통곡할 일입니다. 신들은 간하는 것으로 직분을 삼으니 감히 말하지 아니하여 성명(聖明)을 속일 수 없기에 우선 그 시폐의 큰 것을 들어 말씀드립니다.
아, 저 왜적은 우리 나라가 언제고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로서 하루라도 하늘을 같이하고 살 수가 없는 사이이므로 대의로 볼 때 우매한 백성들도 모두 마땅히 거절해야 할 줄 압니다. 그런데 기미(羈縻)의 계책이 한번 나오자 구차한 논란이 따라 일어나서 국시(國是)가 날로 글러지는데도 다시 고려하는 이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통신사(通信使)의 요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주문(奏文)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허락하려고까지 하니, 그의 생각은 ‘우리 측의 자치(自治)가 견고하지 못하고 형세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나아가도 싸울 만한 병력이 없고 물러나도 수비할 만한 곳이 없으므로 그들의 소청에 따라 우선 허락한 다음, 국민의 부강과 교육을 기다려 일거에 섬멸하기를 옛날 구천(句踐)이 오(吳)의 원수를 갚듯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이해로 말하는 것이지만, 또한 이해의 소재를 보지 못하는 생각입니다.
수길(秀吉)을 어떠한 적이라고 봅니까. 동쪽 한 구석에 앉아서 천하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심상한 적이겠습니까. 그의 흉모와 음흉한 계책이 필시 선수를 칠 소지가 있어서 우리가 기미하고자 하자 저들이 도리어 기미하여 군사를 모아 틈을 엿보고 있으니 조만간에 반드시 동병(動兵)할 것입니다. 이로 볼 때 구구한 화호(和好)로 기미할 수 있는 바가 아니며, 한두 사신으로 중지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대개 2백 년 동안 교린(交隣)한 의리가 두텁지 않은 것이 아닌데,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바다를 건너 장구(長驅)하여 산야(山野)를 유린하고 종사(宗社)를 복멸하였으니, 이는 그 뜻이 화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승의 군사를 거느리고 천리의 땅을 점거하여 일개 소추(小醜)를 달려 보내 【소서비(小西飛)가 화호로 인해 일찍이 중국에 갔었다. 】 천조의 넓은 은혜를 받음으로써 책봉사가 황명을 받들고 멀리 그의 진영에 다다랐습니다. 이리하여 천위(天威)가 지척에 있는데도 오히려 죽을 듯이 두려워할 줄 모르고 온갖 방법으로 지연하면서 아직까지 바다를 건너지 않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한두 신사(信使)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 우리 나라의 사세를 탐지하고 한편으로 훗날 핑계할 소지를 만들고 있으니, 그 뜻이 어찌 신사에 있겠습니까. 설혹 통신사를 보내었을 경우 뒤에 다시 따르기 어려운 요청이 있으면 장차 어떻게 조처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르자면 그의 욕심에 한정이 없고, 따르지 않으면 그 흉모를 필시 자행할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전공(前功)을 버리고 후화(後禍)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이익은 없고 백 가지의 해만 있을 것이 분명하니, 위로 중국에 고하고 아래로 군민(軍民)을 효유해 가지고 정의에 의거하여 군사를 일으켜서 사공(事功)의 회복을 도모하는 것만 못합니다. 전하께서 복수할 뜻을 해와 달처럼 밝게 계시하여 차라리 적을 치다가 죽을지언정 수치를 안고서 살고 싶어하지 아니하신다면, 국시가 일단 정해져서 이의(異議)가 절로 사라질 것이며, 정신의 감동한 바에 용기가 백배나 생겨서 추로(醜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성념(省念)하소서.
아, 생각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급변에 대응할 수 없고, 일을 먼저 판출하지 않으면 승리를 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추적(醜賊)이 쌓아 온 계책이 이미 깊어졌으니 충돌의 변고가 조석으로 염려됩니다. 이때가 바로 황급히 서둘러서 수족을 적시고 모발을 태우며 전수(戰守)하기에 겨를이 없을 때인데, 매번 봉사(封事)가 다행히 이루어지고 국경이 저절로 안정되기만을 기다리면서 밖으로는 방비하는 태도를 보이고 마음속으로는 안일을 도모하는 계책을 품어 상하가 서로 감싸주고 날로 더욱 태만하니, 이는 곧 적이 이르기도 전에 스스로 멸망될 것입니다. 대개 경성(京城)은 사방의 근본인데다 종사(宗社)가 있는 곳이며, 인민이 믿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대한 계책을 세우고 뜻을 가다듬어 다스려서, 성첩(城堞)을 살펴보아 적절히 군사를 배치하고 그 군사의 숫자를 헤아려 적절히 군량을 비치하여, 멀리는 1년의 계책을 세우고 가까이는 몇 달의 계책을 세워야 할 것이며, 기타 원근 형세의 소재에 대해서도 설비하지 않음이 없어 경성을 보호할 형세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도의 방백(方伯)에게 효유하여 정예병을 뽑아 장교를 정하고 편대를 나누어서 그로 하여금 급변을 들었을 때 달려와 구원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한 연후에 약속을 엄히 밝히고 충의를 격려하여, 군신 상하(君臣上下)가 모두 성을 등지고 한번 싸우기로 마음먹는다면 형세가 이루어지고 민심이 저절로 견고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니하고 범연히 경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만 하면서 착실히 조처하는 일이 없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위급한 일이 생겨 사세를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면 그 전패(顚沛)의 환란은 반드시 임진년보다 극심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아, 상란(喪亂)을 겪은 후 인심은 정도를 잃었고 세도(世道)는 날로 야박해져서, 시비(是非)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에 현혹되고 용사(用舍)는 어질고 우매함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거조(擧措)가 그 타당함을 잃고 정령(政令)이 순리에 어긋나서 조정의 명령은 방백에게 시행되지 않고 방백의 명령은 수령에게 시행되지 않습니다. 하민은 관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습관이 되어 상하가 서로 통하지 않으며 모든 일이 두서를 잃어 작상(爵賞)까지도 공평하지 못하고, 형벌까지도 적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전하의 호령(號令)과 출척(黜陟)이 공의(公議)에서 나오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정을 따른다면 악한 자가 무엇으로 징계되며 형정(刑政)이 어디로부터 시행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자신의 덕을 밝히고 백성에게 중도를 세워서 공평정대한 도리를 다하고 편당반측하는 사심이 없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공도(公道)가 절로 신장되고 국강(國綱)이 진작되어 치도(治道)를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민심은 국가의 근본이므로 민심이 한번 흔들리면 나라를 보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성왕(聖王)은 초야의 민심을 잃지 않았고, 맹자(孟子)도 말하기를,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외롭게 살아남아 있는 백성은 이미 일정한 생업을 잃었고 안정된 마음조차 없어 사방으로 흩어져 유리하면서 조석을 보전하지 못하는데, 조가(朝家)엔 일이 많아 지탱할 수 없으므로 특별히 명목을 붙여 교묘하게 갈취해 가며, 난을 겪은 후 군액(軍額)이 흩어져 도망하므로 그 결손을 염려하여 명부를 점검해 장정을 뽑아 등록하는데 그 피해가 인족(隣族)에까지 미칩니다. 성지(城池)와 기계(器械)는 수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일을 맡은 사람이 성취에만 급급하고 조처를 적절히 못하여 실효를 보지 못하고 민력(民力)만 손상합니다. 둔전(屯田)의 설치는 군량을 위한 것인데, 직업이 없는 무뢰배가 수단을 써서 그 소임을 맡아 사욕을 앞세우고 공무를 뒤로 여기므로 소득이 소비에 미치지 못하며 한갓 백성을 괴롭히는 해만 될 뿐입니다. 민병(民兵)을 단결하여 조련(操鍊)하는 데 있어서 병든 자도 빼어놓지 않고 노약자도 함께 점검할 뿐더러 회합하는 날짜가 급박하여 밤이나 낮이나 불려 다니므로 농사가 시기를 잃어 한 해가 마치도록 살아갈 계책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백성이 성지를 보기를 함정과 같이 여기고 관리를 대하기를 원수와 같이 합니다. 민심이 이와 같고서야 무슨 일을 성취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각별히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시어 정당한 과세 외의 징렴과 급하지 않은 부역을 일체 제거하며, 수령을 엄선하여 백성을 안집하고 무마시켜, 그들로 하여금 항산(恒産)이 있고 항심(恒心)이 있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잘 섬기어 사공(事功)을 즐기며 분주할 것이니, 무엇을 지킨들 견고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와 싸운들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아, 사람이 사람된 소이는 윤기(倫紀)가 있기 때문인데, 윤기가 두절되면 금수와 같습니다. 변란을 겪은 후부터 대방(大防)이 한번 무너지자 예법이 폐지되어 인도(人道)가 거의 멸식해 갑니다. 3년상(三年喪)은 서인(庶人)에까지 통용되는 것인데, 유식한 집도 혹 이륜(彝倫)에 부끄러움이 있음을 면치 못하니, 우매한 백성들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옛날 이천(伊川)에 머리를 풀어헤친 자가 보이자 그 곳이 장차 이적(夷狄)의 땅이 될 것을 안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습속이 머리를 풀어 헤치는 데에 그치지 않으니, 어찌 이것이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예의를 숭상하고 인기(人紀)를 닦고 밝혀서 충신과 효자로서 모범이 될 만한 자가 있거든 특별히 정표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사람들이 모두 보고서 감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경중에 크게 관계되는 일이 아니면 탈정(奪情)을 허락하지 말며, 혹시 이륜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풍속을 해치는 자가 있거든 중죄로 다스려서 그로 하여금 수치로 알아 고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인륜을 돈독히 하고 미풍을 이룩하는 도가 거의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 인재는 국가의 이기(利器)여서 다른 세대에서 빌리지 않아도 세대마다 어진이가 없지 않은데 오직 임금이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인재를 기용하여 그 재주에 따라 위임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남의 말에 동요되지 말며 작은 허물로 체역(遞易)하지 말고 오래 재직시켜 성사하도록 하여 그 실정을 보소서. 친소를 따지지 말고 오직 어진이만을 들여 쓰며, 멀고 가까움의 간격이 없이 재능있는 사람을 우선으로 삼으소서. 이와 같이 하면 현능(賢能)한 이가 포열하고 온갖 일이 바로 되어서, 구중 궁궐에 단정히 팔장을 끼고 앉아서도 영원히 안녕을 누리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아, 작상(爵賞)은 조정이 공로를 권장하는 것으로서 한 세상을 격려하는 기구입니다. 작상이 공평하지 않으면 유공자를 권장할 수 없고 허위가 날로 만연하여 비록 열 사람의 요(堯)임금이 있어도 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변란이 있은 후 작상에 법도가 없고 관방(官方)이 난잡하여 참획(斬獲)의 공로가 항오의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미미한 하천배들이 연줄을 따라 청을 넣어 금옥(金玉)이 빛남으로써 현연히 구속(狗續)의 기롱이 있으며, 매관(賣官)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장사꾼과도 같아 역취(易醉)의 꾸지람061) 이 다시 오늘날에 존재합니다. 명기(名器)가 날로 가벼워지고 의관이 혼잡해지니 어찌 한 세상을 격려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도 아끼시어 신중을 더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명기가 저절로 중해져서 사람들이 스스로 권면할 줄 알 것입니다.
아,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일러 사유(四維)라고 하는데 사유가 행해지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합니다. 요즈음 염치의 도가 상실되고 장오(贓汚)의 풍조가 이루어졌으며 변수(邊帥)에 이르러서는 탐욕이 더욱 극심합니다. 조정은 수신(帥臣)을 규정하지 못하고 수신은 편비(褊裨)를 살피지 못하는지라, 중외에 탐도(貪饕)한 무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혹시 적발되는 자가 있어도 끝까지 국문하지 않고 갑자기 석방을 시켰다가 석방된 지 오래지 않아 바로 발탁의 은혜를 입게 하니, 남들이야 비웃고 꾸짖더라도 기세가 양양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장오(贓汚)의 율법을 거듭 밝혀서 만약 범죄자가 있거든 비록 귀척과 근신이라 하더라도 조금도 용서하지 마소서. 이와 같이 하면 간사한 무리가 스스로 경계할 것이며, 탐욕을 부리는 풍속이 점차 없어질 것입니다.
아, 장수란 죽음을 갖는 벼슬이며 싸움이란 위태한 일입니다. 장군은 패하면 죽어야 하는 것이니,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잊고 용기를 내어 한판 승리에 목적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군율이 엄하지 않고 장수가 방자하여 나아가 반드시 죽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없고 물러나 안전의 쾌락만을 누릴 생각을 갖고 승패와 존망은 자신에게 관계시키지 않습니다. 이처럼 위급한 때를 당하여 주의(注意)는 장수에게 있는데 교만하고 태만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누가 삼군을 거느리고 시석(矢石)에 대항하여 난관에 처한 임금을 호위하겠습니까. 옛날에 제갈양(諸葛亮)이 눈물을 흘리며 마속(馬謖)을 참하였는데, 어찌 어질지 못하여 그리 하였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군법으로 다스리고 조그마한 공로로 용서하지 마소서.
아, 천하의 일이 천만 번 변화하더라도 모두가 임금의 마음에 근본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선유(先儒)가 이른바 ‘큰 근본’이란 것입니다. 전하께서 옛 서울에 돌아와 정치의 새로움을 도모하고 있는데, 온갖 폐단이 함께 일어나고 만사가 날로 퇴락해갑니다. 전하께서는 먼저 마음을 바로하여 쇠망을 흥기시키고 난을 물리치는 근본으로 삼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왕(宣王)062) 은 자신을 반성하고 행실을 닦는 실행이 있었고, 구천(句踐)은 섶에 누워 쓸개를 맛보는 고초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문무(文武)의 대업을 회복하였고, 끝내 회계(會稽)의 수치를 씻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통렬히 격려하여 대사(大事)를 담당하셔야 하고 지나치게 스스로 박덕하다 하여 부당한 비유를 끌어 변명하며, 앉아서 기회를 잃고 민심을 실망시키지 마소서. 태묘(太廟)에 친향(親享)하는 일은 의례의 큰 것인데, 환도한 지 4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알묘(謁廟)를 궐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자책하시는 깊은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으나, 정리로 헤아려 보면 크게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외적의 변을 당하여 그 아비와 아들이 서로 보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외적이 물러감에 미쳐 다시 가정에 모였을 경우, 아들이 자신이 외적을 유치하였다 하여 아비를 보지 않고 자기 방에 움츠리고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곧 아비를 찾아뵙고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책하면서 위로하며 사과해야 하겠습니까. 신도(神道)에 구해본들 어찌 인정과 멀겠습니까. 분발하며 애척한 마음으로 속히 몸소 강신하여 참알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민심을 모을 수 있고, 다시 회복하는 근본도 또한 이에 있을 것입니다. 신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외람히 요직에 올라 은영(恩榮)을 차지하고서도 조금도 보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일념은 마음 속에 간절하여 감히 오늘날의 급선무를 진술합니다. 그 큰 근본에 더욱 성심을 쏟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니, 모두가 나라를 위한 충간(忠懇)임을 알겠다. 진술한 것은 진실로 오늘날의 급선무인 것이어서 못내 감격스럽고 두렵기도 하다. 마땅히 묘당(廟堂)과 의논하여 조처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7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6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윤리-강상(綱常) / 인사-관리(管理)
- [註 061] 구속(狗續)의 기롱이 있으며, 매관(賣官)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장사꾼과도 같아 역취(易醉)의 꾸지람 : 작상(爵賞)이 문람함을 비유함. 진 혜제(晉惠帝) 때 조왕 윤(趙王倫)이 제위를 찬탈한 후 작상을 남발하여 관리가 쓰는 초선(貂蟬)이 부족하자 개꼬리까지 이어서 썼다는 기록이 있으며 《진서(晉書)》 조왕윤전(趙王倫傳), 당 숙종(唐肅宗) 때 국고가 탕갈되어 출정장사(出征將士)에게 공명고신(空名告身)을 주었으므로 "대장군 고신 한 통으로 한 번 취할 수 있는 술값에 바꾼다."고 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
- [註 062] 선왕(宣王) : 여기에서는 주(周)의 11대 왕 희정(姬靜)을 가리킨다. 선대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치도를 본받아 선치(善治)를 이룩함으로써 주나라를 중흥시켰다.
원문
○司諫院上箚曰:
伏以, 當今劇賊壓境, 兵力已盛, 宗社之深讐未復, 生靈之困悴已極。 內無骨鯁之臣, 倚以爲重; 外無干城之將, 敵王所愾。 危亡之禍, 迫在朝夕, 而媕娿度日, 顧後瞻前, 無敢發一言, 以救國家之急, 誠可痛哭。 臣等以諫爲職, 不敢不言, 以欺聖明, 姑擧其時弊之大者而言之。 嗚呼! 彼賊與我國, 有萬世必報之讐, 無一日共戴之理。 大義所在, 雖愚夫愚婦, 皆知其當絶, 而羈縻之計一出, 苟且之論隨起, 國是日非, 無復顧念, 或謂通信之請, 不可不從, 至欲不待奏文而直許。 其意以爲: "我之自治未固, 形勢未成, 進無可戰之兵, 退無可守之地, 不若因其所請而姑從之, 以待生聚敎訓, 一擧勦滅, 如句踐之復吳讐。" 此專以利害爲言, 而亦未覩利害之所在也。 以秀吉, 爲何如賊也? 坐扶桑一隅, 震撼天下, 此豈尋常寇盜? 其兇謀陰計, 有必所先, 而我欲羈縻, 彼反羈縻, 斂兵俟釁, 早晩必動, 非區區和好所可縻, 非一二信使所可止矣。 夫二百年交隣之義, 不爲不厚, 而無故興兵, 越海長驅, 蹂躪山野, 覆滅宗社, 此其志不在於和好也。 擁全勝之師, 據千里之地, 馳一介之小醜, 【小西飛, 以和好, 曾往中原。】 得天朝之渙恩, 冊使銜命, 遠臨其營。 天威咫尺, 猶不以隕越爲懼, 遲延百端, 尙不渡海, 而又要我一二信使, 一以探我國之深淺, 一以爲後日執言之地, 其意豈在於信使也? 設或信使旣通之後, 復有難從之請, 則未知將何以處之? 欲從則其慾不厭, 不從則其兇必肆。 此所謂棄前功, 而受後禍者也。 其無一利, 而有百害明矣。 莫如上告天朝, 下諭軍民, 仗義興師, 圖恢事功, 使殿下復讐之志, 昭揭日月, 寧爲討賊而死, 不欲包羞而活, 則國是一定, 異議自寢, 精神所感, 勇氣百倍, 而醜虜不足憂矣。 伏願殿下省念焉。 嗚呼! 慮不先定, 無以應卒; 事不先辦, 無以制勝。 方今醜賊之蓄謀已深, 豕突之變, 朝夕可虞, 此正遑遑汲汲, 濡手足焦毛髮, 以爲戰守之不暇, 而每冀封事之幸成, 疆(場)〔埸〕 之自安, 外爲備禦之形, 內懷偸安之計, 上下相蒙, 日益玩愒, 此乃不待彼賊之至, 而自底滅亡之道。 蓋京城, 四方之根本, 宗社所在, 人民所恃, 有必守之義, 無可去之道。 若能早定大謀, 刻意經理, 審視城堞, 當用軍幾何, 計其軍數, 當峙糧幾何, 遠以爲一年之計, 近以爲數月之資, 其他遠近形勢所在, 亦莫不設備, 以爲京城輔車之勢, 且諭諸道方伯, 抄出精銳, 定將分部, 使之聞變赴援。 如是然後, 嚴明約束, 激勵忠義, 君臣上下, 皆以背城一戰爲心, 則形勢已成, 人心自固。 不然, 徒曰京城可守, 悠悠汎汎, 無着實措置之事, 一朝緩急, 勢已蒼黃, 則顚沛之患, 必有甚於壬辰矣。 伏願殿下留神焉。 嗚呼! 喪亂以後, 人心失正, 世道日偸, 是非眩於好惡, 用舍失於賢愚。 擧措失當, 政令乖宜, 朝廷之命, 不行於方伯; 方伯之令, 不行於守令, 而小民以不從公家命令爲習, 上下不相管, 庶務失其緖, 以至爵賞不公, 刑罰不中, 人不畏法, 惟利是趨。 使殿下之號令黜陟, 不出於公議, 而一徇乎私情, 則(善)〔惡〕 者何自而懲, 刑政何自而擧耶? 伏願殿下, 先明一已之德, 建中于民, 盡公平正大之道, 無偏黨反側之私, 則八道自張, 國綱以振, 而治道可論。 嗚呼! 民心者, 國家之本也。 民心一搖, 則國不能保。 故古之聖王, 不失丘民之心; 孟子亦曰: "地利不如人和。" 方今孑遺餘民, 旣失恒業, 仍無定志, 流移四散, 不保朝夕, 而朝家多事, 無所支撑, 別作名目, 巧取於民, 經亂之後, 軍額散亡, 慮其缺少, 案簿簽丁, 侵及隣族。 城池、器械, 不可不修葺, 而任事之人, 急於成事, 處置乖當, 未見實效, 徒傷民力。 屯田之擧, 爲軍餉也, 而失業無賴之輩, 圖受其任, 先私後公, 所獲不及於所費, 而徒爲擾民之害。 團結民兵, 以爲操鍊, 而疲癃不遺, 老弱竝點, 期會日急, 星夜奔命, 耕穫失時, 卒歲無計。 以此, 民之視城池如檻穽; 對官吏如仇讐。 民心如此, 何事可濟? 伏願殿下, 惕然警省, 科外之斂, 不急之役, 一切蠲罷, 謹擇守令, 安集撫摩, 使之有恒産而有恒心, 則親上事長, 樂事赴功, 何守而不固, 何戰而不勝乎? 嗚呼! 人之所以爲人者, 以其有倫紀也。 倫紀斁敗, 則其違禽獸不遠矣。 自經變亂, 大防一壞, 禮法徒廢, 人道幾乎熄矣。 至於三年之喪, 達于庶人, 而有識之家, 或不免有愧於彝倫, 則蚩蚩之民, 無足怪也。 昔者有見被髮於伊川, 知其將爲夷狄之域。 今日習俗, 不止於被髮, 則豈不爲之寒心哉? 伏願殿下, 敦尙禮義, 修明人紀, 如有忠臣、孝子之可爲師範者, 特施旌異, 則人皆觀感, 而非關國家之輕重者, 勿許奪情, 或有不率彝敎, 傷風敗俗者, 論以重罪, 使之有恥且格, 則其於厚倫成俗之道, 庶幾得矣。 嗚呼! 人才, 國家之利器也。 不借異代, 代不乏賢, 惟在乎人君明明(楊)〔揚〕 側, 隨才而器任之。 勿以人言而搖動, 勿以微過而遞易, 久而責成, 觀其實情; 勿論親踈, 惟賢是擧, 無間遠邇, 以才爲先, 則賢能布列, 百度惟貞, 端拱九重, 永逸無虞矣。 嗚呼! 爵賞者, 朝廷之所以勸有, 勵一世之具也。 爵賞不公, 則有功者, 無所勸, 而虛僞日滋, 雖十堯, 不能治一國矣。 變亂以來, 爵賞無章, 官方淆亂, 斬獲之功, 未著於行間, 而(臺)〔儓〕 隷下賤, 夤緣鑽刺, 金玉相輝, 顯有狗續之譏, 至於賣官之擧, 有同商賈, 易醉之誚, 復存於今日。 名器日輕, 衣冠混雜, 豈可以砥礪一世哉? 伏願殿下, 嚬笑亦愛, 克加愼重, 則名器自重, 人知自勸矣。 嗚呼! 禮義廉恥, 是謂四維。 四維不張, 國乃滅亡。 邇者, 廉恥道喪, 贓汚成風, 至於邊帥, 貪婪尤極。 朝廷不能正帥臣, 帥臣不能察褊裨, 中外相承, 貪饕接迹, 雖或有摘發者, 案鞫未竟, 遽有放釋之命, 放釋未久, 卽蒙招擢之恩, 任他笑罵, 揚揚自得。 伏願殿下, 申明贓汚之律, 如有犯罪, 雖在貴近之中, 罔或小貸, 則奸徒自戢, 貪風漸息矣。 嗚呼! 將者, 死官; 戰者, 危事。 將軍死綏, 咫步無却, 故能忘身賈勇, 以賭一勝。 今則軍律不嚴, 將帥恣橫, 進無必死之心, 退有安全之樂, 勝敗存亡, 無與於己。 當此危急之時, 注意在將, 而驕惰若此, 誰能率三軍, 犯矢石, 捍王于艱哉? 昔者諸葛亮, 涕泣而斬馬謖, 豈不仁而然哉? 伏願殿下, 一以軍法從事, 勿以微勞饒之。 嗚呼! 天下之事, 雖千變萬化, 無一不本於人主之心。 此先儒所謂大根本也。 殿下旋軫舊京, 圖新厥政, 而百弊俱興, 萬事日墮, 則未知殿下, 其能先立其大, 而爲興衰撥亂之本乎? 宣王有側身修行之實, 句踐有臥薪嘗膽之苦, 能重恢文武之業, 終雪會稽之恥。 伏願殿下, 痛加刻勵, 擔當大事, 勿爲過自菲薄, 引喩失義, 坐失機會, 以沮衆心也。 至於親享太廟, 禮之大者, 而還都四載, 尙闕祗謁。 固知出於引咎之深衷, 揆之情理, 有大不然者。 今有人遭寇盜之變, 若父若子, 不得相保, 流離轉徙, 及其寇盜少定, 還集其家, 則其子以爲, 自我致寇, 將不見其父, 而退縮于私室乎? 抑將秪見乃父, 夔慄責躬, 以慰以謝乎? 求之神道, 豈遠人情? 幡然惕然, 亟行躬祼, 則人心可萃, 而重恢之本, 亦在是矣。 臣等俱以無似, 忝冒重地, 徒竊恩榮, 未效涓(埃)。 憂國一念, 耿耿于中, 敢陳今日之急務。 其於大本, 尤致眷眷焉。
答曰: "省箚, 具見爲國之忠懇。 所陳誠今日之急務, 無任感懼。 當與廟堂議處。"
- 【태백산사고본】 44책 7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66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윤리-강상(綱常) / 인사-관리(管理)
원본
선조 29년 (1596)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