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선조실록68권, 선조 28년 10월 6일 乙巳 1/5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별전에서 말미를 받아 떠나는 영돈녕부사 이산해를 인견하다

국역

상이 별전에 나아가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이산해(李山海)를 인견하였다. 산해가 말미를 받아 돌아가게 되었으므로 인견한 것이다. 이산해가 나아와 아뢰기를,

"소신의 병이 날로 더욱 심해져서 부득이 천청(天聽)을 번거롭게 하여 이미 허락을 받고 보니 황공하고 감격하여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신의 직명까지 모두 갈아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이 온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서로 만나보지 못하였다. 직명을 어찌 갈 수가 있겠는가. 내려가서 언제 돌아올 것인가?"

하였다. 산해가 아뢰기를,

"저의 병이 빨리 나으면 어찌 조정에 나오지 않겠습니까. 국사가 이에 이르렀으니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중흥의 일은 인심을 수습한 것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인심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오직 상벌 한 가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군공(軍功)의 논상에 허위가 많고 진실이 적으며 과거(科擧)처럼 중한 일도 부실한 것이 많으니 이같이 행하면 어떻게 인심을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다음은 군사를 훈련하고 장수를 선발하는 것이 급무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훈련하여 성취한 자도 적으니 외방에는 더욱 보잘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지 4년 동안에 장수 하나 얻지 못한 것은 진실로 선발하는 방도를 얻지 못해서인 듯합니다. 장수를 쓰는 데는 한 가지 방도만이 아닌 것으로, 말을 타고 달리며 돌격하는 자도 있고, 기회에 임하여 지혜를 운용하는 자도 있습니다. 돌격하는 자는 쉽게 얻을 수 있으나 지혜를 운용하는 자는 백에 한 두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갈양(諸葛亮)이 있는 뒤에 사마의(司馬懿)를 대적319) 할 수 있었고, 사현(謝玄)이 있은 뒤에 부견(符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320) 지금도 마땅히 지성으로 듣고 보아서 관작의 유무나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말고 적격자를 얻으려 해야 할 것입니다. 상란(喪亂)을 당한 뒤에 백성이 얼마 없고 읍리(邑里)가 텅 비었으니 수령을 더욱 가려 임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일 폐기한 자들을 이제 모두 제수하니, 이 또한 잔폐(殘弊)함을 소생시키는 일이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중국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이니 우리 나라에 나온 장관(將官)들에게 환심을 얻도록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듣건대 하류의 중국인들이 모두 재상을 욕한다 하는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박대하는 것으로 의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외방에 나누어 파견된 사람은 힘이 미칠 수 없지만, 서울에 있는 사람은 도감(都監)이 자주 접대하고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변란초 서쪽으로 행행(幸行)하실 때에는 성상께서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신 것만 믿었으므로 중국을 우러러 의지하고 다른 염려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의 마음을 크게 잃었으니 이 또한 매우 근심스러운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말한 것이 모두 절실하다. 조정에서 바야흐로 장수를 가리는 데에 급급한데 알지 못하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교사(敎師)들을 후히 대접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하였고 따라서 인정도 점차 해이해졌다. 내가 접견할 때에 미천한 자라도 털끝만큼도 거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 천성이 이러하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들 또한 될 수 있겠는가. 다만 중국인으로서 왕래하는 자는 처음 접견할 때부터 지식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대부분 탐욕스러운 무리가 많았다. 중국의 인심도 이러하니 천하의 일을 알 만하다."

하였다. 산해가 아뢰기를,

"변경의 근심은 그치지 않고 민정(民情)은 아직도 소동하고 있으니, 진정시킬 방도를 생각하여 뜻밖의 일을 막아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은 병가를 얻어 떠나가는데 나는 마치 얽매인 듯함이 있고 병은 날로 더욱 중해지니, 다른 날 다시 보게 되리라고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하고, 앉기를 명하여 술을 내렸다. 상이 우승지 박홍로(朴弘老)에게 이르기를,

"장수를 선발하는 일은 비변사에 이르고 접대하는 일은 도감에 명하라."

하였다. 상이 산해에게 이엄(耳掩) 1부(部)를 하사하도록 명하고 이르기를,

"일기가 추워져 가고 있으니 잘 갔다가 돌아오라. 목욕한 뒤에 속히 올라오라."

하였다.

  • [註 319] 제갈양(諸葛亮)이 있는 뒤에 사마의(司馬懿)를 대적 : 촉한(蜀漢)의 정승이었던 제갈양이 위(魏)의 대장인 사마의(司馬懿)을 대적하였는데 서로가 비등한 인재였음.
  • [註 320] 사현(謝玄)이 있은 뒤에 부견(符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 사현은 진(晉)의 전봉도독(前鋒都督)으로 부견(符堅)의 백만 군사를 비수(肥水)에서 대파하였음.

원문

○乙巳/上御別殿, 引見領敦寧府事李山海。 山海受由歸沐, 故引見。 山海進啓曰: "小臣病日益深, 不得已煩瀆天聽。 已蒙恩許, 惶恐感激, 罔知所達。 但所望者, 竝遞職名。" 上曰: "卿來已久, 不得相見。 職名豈有遞理? 未知下去, 幾時還來耶?" 山海啓曰: "賤疾速瘳, 則豈不趨朝? 國事至此, 無以形言。 中興之事, 收拾人心爲本, 而使人心不至潰散者, 惟賞罰一事而已。 軍功論賞, 多僞少眞; 科擧重事, 亦多不實。 若此行之, 豈能收拾人心? 其次, 鍊兵、選將爲急, 而京中所練成就者寡, 外方尤無足觀。 且兵興四載, 不得一將, 誠恐選擇之不得其道也。 用將非一道, 有馳騁突擊者, 有臨機運智者。 突擊者, 可以易得; 運智者, 百無一二。 故有諸葛亮, 然後可敵司馬懿; 有謝玄, 然後可禦符堅。 今當以至誠聞見, 不計官爵有無, 地位高下, 要得其人而已。 喪亂之後, 民庶無幾, 邑里空虛, 尤當擇任守令, 而前日棄廢者, 今皆除授, 此亦恐非蘇殘之擧也。 且有一事, 不失中國之心。 當今先務, 將官出來者, 務得歡心可也。 近聞下流唐人, 皆詬罵宰相, 此無他, 疑其薄待故也。 外方分派者, 力雖不逮, 在京者, 則都監頻宜接待, 以慰勞苦。 變初西幸之時, 只恃聖上至誠事大, 故仰戴天朝, 無有他慮, 今則大失中國之心, 此亦可憂之甚也。" 上曰: "所言皆切當。 朝廷方急於擇將, 而患不得知耳。 敎師等, 非不欲厚待, 力有不贍, 而人情漸懈。 予於接見之時, 雖微賤者, 無一毫倨慢之色。 予性如此, 雖欲不爲, 亦豈能乎? 但唐人往來者, 自初接見, 無一知識之人, 率多貪汚之輩。 中原人心亦如此, 天下事可知矣。" 山海啓曰: "邊患未弭, 民情尙爾騷動, 當思鎭定之道, 以防慮外之事。" 上曰: "卿則告病而去, 予則有如拘繫, 而病日益重, 他日更見, 何可必也?" 命坐賜酒。 上謂右承旨朴弘老曰: "選將之事, 言于備邊司; 接待之事, 言于都監。" 上命賜山海耳掩一部。 上曰: "日氣向寒, 好爲往還。 沐浴後, 斯速上來。"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선조실록68권, 선조 28년 10월 6일 乙巳 1/5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별전에서 말미를 받아 떠나는 영돈녕부사 이산해를 인견하다

국역

상이 별전에 나아가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이산해(李山海)를 인견하였다. 산해가 말미를 받아 돌아가게 되었으므로 인견한 것이다. 이산해가 나아와 아뢰기를,

"소신의 병이 날로 더욱 심해져서 부득이 천청(天聽)을 번거롭게 하여 이미 허락을 받고 보니 황공하고 감격하여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신의 직명까지 모두 갈아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이 온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서로 만나보지 못하였다. 직명을 어찌 갈 수가 있겠는가. 내려가서 언제 돌아올 것인가?"

하였다. 산해가 아뢰기를,

"저의 병이 빨리 나으면 어찌 조정에 나오지 않겠습니까. 국사가 이에 이르렀으니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중흥의 일은 인심을 수습한 것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인심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오직 상벌 한 가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군공(軍功)의 논상에 허위가 많고 진실이 적으며 과거(科擧)처럼 중한 일도 부실한 것이 많으니 이같이 행하면 어떻게 인심을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다음은 군사를 훈련하고 장수를 선발하는 것이 급무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훈련하여 성취한 자도 적으니 외방에는 더욱 보잘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지 4년 동안에 장수 하나 얻지 못한 것은 진실로 선발하는 방도를 얻지 못해서인 듯합니다. 장수를 쓰는 데는 한 가지 방도만이 아닌 것으로, 말을 타고 달리며 돌격하는 자도 있고, 기회에 임하여 지혜를 운용하는 자도 있습니다. 돌격하는 자는 쉽게 얻을 수 있으나 지혜를 운용하는 자는 백에 한 두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갈양(諸葛亮)이 있는 뒤에 사마의(司馬懿)를 대적319) 할 수 있었고, 사현(謝玄)이 있은 뒤에 부견(符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320) 지금도 마땅히 지성으로 듣고 보아서 관작의 유무나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말고 적격자를 얻으려 해야 할 것입니다. 상란(喪亂)을 당한 뒤에 백성이 얼마 없고 읍리(邑里)가 텅 비었으니 수령을 더욱 가려 임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일 폐기한 자들을 이제 모두 제수하니, 이 또한 잔폐(殘弊)함을 소생시키는 일이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중국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이니 우리 나라에 나온 장관(將官)들에게 환심을 얻도록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듣건대 하류의 중국인들이 모두 재상을 욕한다 하는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박대하는 것으로 의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외방에 나누어 파견된 사람은 힘이 미칠 수 없지만, 서울에 있는 사람은 도감(都監)이 자주 접대하고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변란초 서쪽으로 행행(幸行)하실 때에는 성상께서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신 것만 믿었으므로 중국을 우러러 의지하고 다른 염려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의 마음을 크게 잃었으니 이 또한 매우 근심스러운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말한 것이 모두 절실하다. 조정에서 바야흐로 장수를 가리는 데에 급급한데 알지 못하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교사(敎師)들을 후히 대접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하였고 따라서 인정도 점차 해이해졌다. 내가 접견할 때에 미천한 자라도 털끝만큼도 거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 천성이 이러하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들 또한 될 수 있겠는가. 다만 중국인으로서 왕래하는 자는 처음 접견할 때부터 지식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대부분 탐욕스러운 무리가 많았다. 중국의 인심도 이러하니 천하의 일을 알 만하다."

하였다. 산해가 아뢰기를,

"변경의 근심은 그치지 않고 민정(民情)은 아직도 소동하고 있으니, 진정시킬 방도를 생각하여 뜻밖의 일을 막아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은 병가를 얻어 떠나가는데 나는 마치 얽매인 듯함이 있고 병은 날로 더욱 중해지니, 다른 날 다시 보게 되리라고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하고, 앉기를 명하여 술을 내렸다. 상이 우승지 박홍로(朴弘老)에게 이르기를,

"장수를 선발하는 일은 비변사에 이르고 접대하는 일은 도감에 명하라."

하였다. 상이 산해에게 이엄(耳掩) 1부(部)를 하사하도록 명하고 이르기를,

"일기가 추워져 가고 있으니 잘 갔다가 돌아오라. 목욕한 뒤에 속히 올라오라."

하였다.

  • [註 319] 제갈양(諸葛亮)이 있는 뒤에 사마의(司馬懿)를 대적 : 촉한(蜀漢)의 정승이었던 제갈양이 위(魏)의 대장인 사마의(司馬懿)을 대적하였는데 서로가 비등한 인재였음.
  • [註 320] 사현(謝玄)이 있은 뒤에 부견(符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 사현은 진(晉)의 전봉도독(前鋒都督)으로 부견(符堅)의 백만 군사를 비수(肥水)에서 대파하였음.

원문

○乙巳/上御別殿, 引見領敦寧府事李山海。 山海受由歸沐, 故引見。 山海進啓曰: "小臣病日益深, 不得已煩瀆天聽。 已蒙恩許, 惶恐感激, 罔知所達。 但所望者, 竝遞職名。" 上曰: "卿來已久, 不得相見。 職名豈有遞理? 未知下去, 幾時還來耶?" 山海啓曰: "賤疾速瘳, 則豈不趨朝? 國事至此, 無以形言。 中興之事, 收拾人心爲本, 而使人心不至潰散者, 惟賞罰一事而已。 軍功論賞, 多僞少眞; 科擧重事, 亦多不實。 若此行之, 豈能收拾人心? 其次, 鍊兵、選將爲急, 而京中所練成就者寡, 外方尤無足觀。 且兵興四載, 不得一將, 誠恐選擇之不得其道也。 用將非一道, 有馳騁突擊者, 有臨機運智者。 突擊者, 可以易得; 運智者, 百無一二。 故有諸葛亮, 然後可敵司馬懿; 有謝玄, 然後可禦符堅。 今當以至誠聞見, 不計官爵有無, 地位高下, 要得其人而已。 喪亂之後, 民庶無幾, 邑里空虛, 尤當擇任守令, 而前日棄廢者, 今皆除授, 此亦恐非蘇殘之擧也。 且有一事, 不失中國之心。 當今先務, 將官出來者, 務得歡心可也。 近聞下流唐人, 皆詬罵宰相, 此無他, 疑其薄待故也。 外方分派者, 力雖不逮, 在京者, 則都監頻宜接待, 以慰勞苦。 變初西幸之時, 只恃聖上至誠事大, 故仰戴天朝, 無有他慮, 今則大失中國之心, 此亦可憂之甚也。" 上曰: "所言皆切當。 朝廷方急於擇將, 而患不得知耳。 敎師等, 非不欲厚待, 力有不贍, 而人情漸懈。 予於接見之時, 雖微賤者, 無一毫倨慢之色。 予性如此, 雖欲不爲, 亦豈能乎? 但唐人往來者, 自初接見, 無一知識之人, 率多貪汚之輩。 中原人心亦如此, 天下事可知矣。" 山海啓曰: "邊患未弭, 民情尙爾騷動, 當思鎭定之道, 以防慮外之事。" 上曰: "卿則告病而去, 予則有如拘繫, 而病日益重, 他日更見, 何可必也?" 命坐賜酒。 上謂右承旨朴弘老曰: "選將之事, 言于備邊司; 接待之事, 言于都監。" 上命賜山海耳掩一部。 上曰: "日氣向寒, 好爲往還。 沐浴後, 斯速上來。"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