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선조실록61권, 선조 28년 3월 11일 甲申 4/7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삼성이 죄인 황정욱을 추국한 공초 내용

국역

죄인 황정욱(黃廷彧)을 서울로 잡아와서 삼성(三省)이 추국(推鞫)하였다. 정욱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전지(傳旨) 안의 ‘무릎을 꿇었다.’는 일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로잡혔던 재신(宰臣)·조사(朝士)·유생(儒生)들은 매우 많았는데도 왜적들이 모두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치욕을 주지 않았고, 더구나 왕자(王子)는 왜적들이 기화(奇貨)로 여겨 예로 대우하면서, 가등청정(加藤淸正)은 당(堂)으로 올라와 모자를 벗고 뵈었고 여러 왜적들은 뜰 밑에서 모자를 벗고 뵈었습니다. 왕자를 대접하는 것이 이러했기 때문에 배행했던 신하들도 굴욕을 당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부산에 도착하여서는 대마도의 여러 왜적이 신을 보고 절을 하면서 ‘전에 예조의 판서와 참판으로 계실 때 뵈었습니다.’ 하며 자못 공경하는 예로 대해 주었는데,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전후하여 사로잡혔던 사람들을 추문하여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에 있던 당시 심 유격(沈遊擊)109) 이 청정의 불공스러움을 깊이 책망하고 소서행장(小西行長)과 화약(和約)을 정하려 하자 청정은 자기가 공을 세우지 못하게 될까봐 분해 했었는데, 때마침 김천일(金千鎰) 막하의 이진충(李盡忠)이란 사람이 청정의 진중(陣中)으로 오자, 청정은 왕자의 좌전(座前)에서 그의 뜻을 행재소(行在所)에 통서(通書)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서(書)가 이루어지자 신이 있는 곳으로 왜졸을 보내와 신에게 서명을 요구했는데, 신은 그것이 미치광이 왜적의 위서(僞書)에 불과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우선 적의 마음이나 부드럽게 하려고 잠시 동안 서명할 곳을 바라보다가 ‘장계군(長溪君)’이라는 세 자만 적었으며, 그 다음에도 ‘행 호군(行護軍)’이라는 세 자만 쓰고 ‘신(臣)’ 자나 성(姓)은 쓰지 않은 채 무심히 위서에 서명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이런 위서는 전날 이홍업(李弘業)·조인징(趙仁徵)·김귀영(金貴榮)이 나왔을 적에도 모두 있었는데 혹은 잘못 전해지고 혹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신’ 자를 쓰지 않았던 것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이홍업이 가져왔던 위서에는 김귀영도 함께 서명해 보냈었는데 그때는 묵묵히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저 평조신(平調信)의 ‘대병(大兵)을 일으키어 곧바로 서로(西路)로 향하겠다.’던 임진 우각서(臨津牛角書)에도 ‘신’ 자를 써서 저들 스스로 우리 나라에 대하여 신하임을 칭했었는데, 어찌 우리가 군부에게 스스로 신하임을 칭하는 것을 금할 리 있겠습니까. 만일 망령되이 이 글자를 적들이 보는 곳에서 써서 적들에게 또다시 우리 나라 문서의 행용(行用)하는 서식(書式)을 알게 한다면 후일에 난처한 걱정거리가 생길 듯싶었기 때문에 일체 신 자를 쓰지 않았던 것이니, 구구한 생각의 요점은 바로 그 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왜적들은 늘 관백(關白)을 칭할 때 태합(太閤)이라고도 하고 사마(司馬)라고도 하면서 전하라고 칭하지는 않았었는데, 마침 심유경(沈惟敬)이 왕세자에게 통서(通書)한 글 속에 ‘관백 전하(關白殿下)’라는 말이 있는 것을 적들이 비로소 보았기 때문에 이 위서를 작성할 때 명장(明將)이 칭한 바에 따라 쓰게 했던 것입니다. 그 서찰의 등본도 있으니 심 유격이 나오면 빙준(憑準)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희미하게 기억되는 그 위서의 내용은, 청정이 ‘명나라에서는 강화를 허락하는데 조선에서만 강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나와 강화하지 않으면 관백 전하께서 장차 바다를 건너 오실 것이다.’ 한 것이었는데, 여기서 ‘전하’라고 한 것은 바로 저 적들이 스스로 그들의 인군을 일컬어 한 말이었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위아래의 글뜻을 채 살피지도 않고 한갓 ‘전하’ 두 자에만 집착하여 이러한 의논을 하니 통곡하고 싶은 마음 그지없습니다.

‘할지(轄地)’에 대한 것은 적이 안변(安邊)에 있던 당시에 이 말을 여러번 했었는데, 우리 일행은 적정을 조정에 주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 그러한 정황으로 인하여 적의 요구를 그대로 써서 행재소로 사람을 보냈던 것인데, 뜻밖에 나온 말이라서 밀장(密狀)을 주달하려 하였으나 황급하고 군색하여 미처 검토해 보지 못했으니, 잘못된 조사(措辭)가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만일 그 글에 의거하여 죄주려 한다면 죽을 죄가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신은 할지에 대한 말은 익히 생각하여 미리 방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여기고, 함정호(咸廷虎) 등을 시켜 적중에 선언하기를 ‘제후의 토지는 천자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제후가 자기 마음대로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낙랑(樂浪)·임둔(臨屯) 등에 대한 것까지 인용하여 거절하게 하였더니 그 뒤에는 적들도 입을 다물고 할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꼭 죽을 신이 살아 돌아온 것은 실로 성명(聖明)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상으로 대우해 주시고 훈작(勳爵)에 위봉(位封)하여 주시며 문견(聞見)에 자별(自別)하셨기 때문에 왜적들이 대관(大官)으로 생각하고 종시 해치지 않았던 것이니, 이는 실로 성상께서 평소에 총대(寵待)해 주신 여은(餘恩)이었습니다. 옛날에 살신 성인(殺身成人)하고, 사생 취의(捨生取義)한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할 곳에서 죽은 것이지 죽어서는 안 될 곳에서 헛되이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천상(文天祥)이 송(宋)나라가 망한 7년 뒤까지 기구하게 목숨을 부지했던 것은 조씨(趙氏)의 보존을 도모하여 부흥시키려고 하다가 마침내 적들의 칼밑에서 죽은 것이니, 이것이 어찌 원수를 잊고 구차하게 살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신들의 의(義)로 말하자면, 왕자가 불행하게 되었다면 배신들도 의당 죽어야 하겠지만 왕자가 살아 있는데 배신들이 어찌 감히 헛되이 죽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병가(兵家)의 일이란 본래 속이는 것도 꺼리지 않는 것으로 유비(劉備)가 패군한 조조(曹操)에게 귀의하여 늘 충신이라고 일컬으며 몰래 동승(董承)과 도모하였었는데, 이를 가지고 유비가 조조를 추존했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진경(顔眞卿)이 처음 적에게 사로잡혔을 적에 자황의(柘黃衣)까지 입고 적들을 안심시키다가 끝내 수복(收復)하는 공을 세웠는데 그런 진경을 적에게 붙었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김방경(金方慶) 같은 이도 친자(親子)·애자(愛子)의 변론110) 으로 몽고(蒙古)로 하여금 믿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가 궤도(詭道)를 쓴 것이었습니다.

신은 죽을 나이가 다 되어 거듭 죄명(罪名)을 얻어 황예(荒裔)로 원찬(遠竄)되어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기고 인근의 수령들도 돌아보는 사람이 전혀 없었는데, 무슨 기력이 있어 주현을 지휘하여 독을 퍼뜨리며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사실인가를 본도에 하서하여 자세히 조사하시어 만일 조금이라도 작폐(作弊)한 일이 있었다면 극형도 사양치 않겠으니 아울러 상고하여 분간하소서."

  • [註 109] 심 유격(沈遊擊) : 심유경(沈惟敬).
  • [註 110] 김방경(金方慶) 같은 이도 친자(親子)·애자(愛子)의 변론 : 김방경은 고려 때의 명장으로 몽고에 대하여 반역을 도모한다는 무고로 몽고의 장수 흔도(忻都)와 다구(茶丘)에게 국문을 받았는데 그때 "소국은 상국을 하늘처럼 받들고, 어버이처럼 사랑한다. [小國戴上國如天愛之如親]"라고 변론하였다. 《고려사(高麗史)》 권104 김방경 열전(金方慶列傳).

원문

○罪人黃廷彧, 拿來入京, 三省推鞫。 廷彧供曰: "傳旨內屈膝事, 則被擄宰臣、朝士、儒生, 不爲不多, 彼賊皆不使之屈膝而致辱。 況王子, 則賊以爲奇貨, 待之以禮, 淸正上堂脫冠以謁, 諸賊下庭脫冠以謁。 待王子如此, 故陪臣亦無屈辱之事, 人所共知。 及到釜山, 馬島諸賊, 見臣拜曰: ‘曾於禮曹判書、參判時得謁’ 云云, 頗致敬禮。 屈膝之事, 千萬無理。 推問前後陷賊之人則可知。 當在京城時, 沈遊擊深責淸正之不恭, 將與行長, 定其約和, 淸正憤其功之不出己。 適金千鎰幕下李盡忠者, 來入淸正陣中, 正賊於王子座前, 求以其意, 通書于行在。 書旣成, 使賊卒送于臣處, 求臣着名。 臣以爲此不過誑賊之僞書, 姑調柔賊心, 尋見應署處, 只書長溪君三字, 其次亦只書行護軍三字, 皆不書臣字姓字, 乃無心着僞書以送。 以此僞書, 前日李弘業、趙仁徵、金貴榮出來時, 亦皆有之, 或誤傳、或不傳, 而不書臣字, 終始如一。 李弘業持來僞書, 則金貴榮亦同着名以送, 而其時則寂無人言。 大抵如平調信, 擧大兵直向西路, 而臨津牛角之書, 亦用臣字。 彼自稱臣於我國, 安有禁我之自臣於君父乎? 若妄用此字於賊眼所見處, 使賊又知我國文書行用之式, 則恐有後日難處之患, 故一切不用臣字。 區區用意深處, 正在於此。 且賊輩, 常時稱關白, 或曰大閤, 或曰司馬, 不稱殿下。 適沈惟敬通書于王子, 有關白殿下之語, 賊纔見之, 故成此僞書之際, 使依天將所稱而書之。 其簡謄本亦在, 遊擊出來, 則可以憑準。 其僞書辭緣, 依俙憶得, 則正賊以爲: ‘大明許和, 而朝鮮獨不許和。 若不與我相和, 則關白殿下, 將渡海而來’ 云云。 此殿下云者, 乃彼賊自稱其主之言。 人之聞者, 不暇致察上下文義, 徒執殿下二字, 有如此議論, 不勝痛哭。 至如割地之言, 當賊在安邊之日, 屢發此言。 一行之人以爲, 賊情不可不達于朝廷, 乃因其情而直書其賊請, 送人于行在。 出於不意, 欲達密狀, 而蒼黃窘束, 不及檢看, 其措辭失誤處何限? 若按其文, 而求其罪, 則可死者, 固非一二, 而臣竊念割地之言, 不可不熟思而預防, 使咸廷虎等宣言於賊中曰: ‘諸侯土地, 受之天子。 非諸侯之所得擅割’, 至引樂浪、臨屯等語以拒之。 其後, 賊絶口不言割地之事。 大抵臣之萬死回生者, 實由遭遇聖明, 待以宰相, 位封勳爵, 聞見自別, 故賊以爲大官, 終始不害之。 此實聖上平日寵待之餘恩。 古人有殺身成仁, 捨生取義者, 皆見其可死而死, 不可徒死於不死之地。 若文天祥, 崎嶇全命於宋亡七年之後者, 其志欲圖存趙氏, 更爲興復, 而乃捐生於賊刃之下。 此豈忘讎而苟活者哉? 以臣等之義言之, 王子不幸, 則陪官當死, 王子得保, 則陪官亦何敢徒死乎? 況兵家之事, 本不厭詐。 劉備敗軍之後, 歸依曺操, 常稱爲忠臣, 而密與董承圖之。 謂備推尊曺操, 可乎? 顔眞卿始陷于賊, 至着柘黃衣, 以安賊心, 終始收復之功。 謂眞卿附賊, 可乎? 至如金方慶, 親子、愛子之辨, 能使蒙古信之, 此無非用詭道也。 臣垂死之年, 重得罪名, 遠竄荒裔, 人皆賤棄, 隣近守令, 頓無顧見之人, 有何氣力, 可以指使州縣, 有流毒貽害之事乎? 其爲虛實, 下書本道, 詳加窮覈, 若有一分作弊之狀, 則鼎鑊不辭。 幷爲相考分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선조실록61권, 선조 28년 3월 11일 甲申 4/7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삼성이 죄인 황정욱을 추국한 공초 내용

국역

죄인 황정욱(黃廷彧)을 서울로 잡아와서 삼성(三省)이 추국(推鞫)하였다. 정욱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전지(傳旨) 안의 ‘무릎을 꿇었다.’는 일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로잡혔던 재신(宰臣)·조사(朝士)·유생(儒生)들은 매우 많았는데도 왜적들이 모두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치욕을 주지 않았고, 더구나 왕자(王子)는 왜적들이 기화(奇貨)로 여겨 예로 대우하면서, 가등청정(加藤淸正)은 당(堂)으로 올라와 모자를 벗고 뵈었고 여러 왜적들은 뜰 밑에서 모자를 벗고 뵈었습니다. 왕자를 대접하는 것이 이러했기 때문에 배행했던 신하들도 굴욕을 당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부산에 도착하여서는 대마도의 여러 왜적이 신을 보고 절을 하면서 ‘전에 예조의 판서와 참판으로 계실 때 뵈었습니다.’ 하며 자못 공경하는 예로 대해 주었는데,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전후하여 사로잡혔던 사람들을 추문하여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에 있던 당시 심 유격(沈遊擊)109) 이 청정의 불공스러움을 깊이 책망하고 소서행장(小西行長)과 화약(和約)을 정하려 하자 청정은 자기가 공을 세우지 못하게 될까봐 분해 했었는데, 때마침 김천일(金千鎰) 막하의 이진충(李盡忠)이란 사람이 청정의 진중(陣中)으로 오자, 청정은 왕자의 좌전(座前)에서 그의 뜻을 행재소(行在所)에 통서(通書)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서(書)가 이루어지자 신이 있는 곳으로 왜졸을 보내와 신에게 서명을 요구했는데, 신은 그것이 미치광이 왜적의 위서(僞書)에 불과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우선 적의 마음이나 부드럽게 하려고 잠시 동안 서명할 곳을 바라보다가 ‘장계군(長溪君)’이라는 세 자만 적었으며, 그 다음에도 ‘행 호군(行護軍)’이라는 세 자만 쓰고 ‘신(臣)’ 자나 성(姓)은 쓰지 않은 채 무심히 위서에 서명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이런 위서는 전날 이홍업(李弘業)·조인징(趙仁徵)·김귀영(金貴榮)이 나왔을 적에도 모두 있었는데 혹은 잘못 전해지고 혹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신’ 자를 쓰지 않았던 것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이홍업이 가져왔던 위서에는 김귀영도 함께 서명해 보냈었는데 그때는 묵묵히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저 평조신(平調信)의 ‘대병(大兵)을 일으키어 곧바로 서로(西路)로 향하겠다.’던 임진 우각서(臨津牛角書)에도 ‘신’ 자를 써서 저들 스스로 우리 나라에 대하여 신하임을 칭했었는데, 어찌 우리가 군부에게 스스로 신하임을 칭하는 것을 금할 리 있겠습니까. 만일 망령되이 이 글자를 적들이 보는 곳에서 써서 적들에게 또다시 우리 나라 문서의 행용(行用)하는 서식(書式)을 알게 한다면 후일에 난처한 걱정거리가 생길 듯싶었기 때문에 일체 신 자를 쓰지 않았던 것이니, 구구한 생각의 요점은 바로 그 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왜적들은 늘 관백(關白)을 칭할 때 태합(太閤)이라고도 하고 사마(司馬)라고도 하면서 전하라고 칭하지는 않았었는데, 마침 심유경(沈惟敬)이 왕세자에게 통서(通書)한 글 속에 ‘관백 전하(關白殿下)’라는 말이 있는 것을 적들이 비로소 보았기 때문에 이 위서를 작성할 때 명장(明將)이 칭한 바에 따라 쓰게 했던 것입니다. 그 서찰의 등본도 있으니 심 유격이 나오면 빙준(憑準)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희미하게 기억되는 그 위서의 내용은, 청정이 ‘명나라에서는 강화를 허락하는데 조선에서만 강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나와 강화하지 않으면 관백 전하께서 장차 바다를 건너 오실 것이다.’ 한 것이었는데, 여기서 ‘전하’라고 한 것은 바로 저 적들이 스스로 그들의 인군을 일컬어 한 말이었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위아래의 글뜻을 채 살피지도 않고 한갓 ‘전하’ 두 자에만 집착하여 이러한 의논을 하니 통곡하고 싶은 마음 그지없습니다.

‘할지(轄地)’에 대한 것은 적이 안변(安邊)에 있던 당시에 이 말을 여러번 했었는데, 우리 일행은 적정을 조정에 주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 그러한 정황으로 인하여 적의 요구를 그대로 써서 행재소로 사람을 보냈던 것인데, 뜻밖에 나온 말이라서 밀장(密狀)을 주달하려 하였으나 황급하고 군색하여 미처 검토해 보지 못했으니, 잘못된 조사(措辭)가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만일 그 글에 의거하여 죄주려 한다면 죽을 죄가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신은 할지에 대한 말은 익히 생각하여 미리 방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여기고, 함정호(咸廷虎) 등을 시켜 적중에 선언하기를 ‘제후의 토지는 천자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제후가 자기 마음대로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낙랑(樂浪)·임둔(臨屯) 등에 대한 것까지 인용하여 거절하게 하였더니 그 뒤에는 적들도 입을 다물고 할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꼭 죽을 신이 살아 돌아온 것은 실로 성명(聖明)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상으로 대우해 주시고 훈작(勳爵)에 위봉(位封)하여 주시며 문견(聞見)에 자별(自別)하셨기 때문에 왜적들이 대관(大官)으로 생각하고 종시 해치지 않았던 것이니, 이는 실로 성상께서 평소에 총대(寵待)해 주신 여은(餘恩)이었습니다. 옛날에 살신 성인(殺身成人)하고, 사생 취의(捨生取義)한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할 곳에서 죽은 것이지 죽어서는 안 될 곳에서 헛되이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천상(文天祥)이 송(宋)나라가 망한 7년 뒤까지 기구하게 목숨을 부지했던 것은 조씨(趙氏)의 보존을 도모하여 부흥시키려고 하다가 마침내 적들의 칼밑에서 죽은 것이니, 이것이 어찌 원수를 잊고 구차하게 살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신들의 의(義)로 말하자면, 왕자가 불행하게 되었다면 배신들도 의당 죽어야 하겠지만 왕자가 살아 있는데 배신들이 어찌 감히 헛되이 죽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병가(兵家)의 일이란 본래 속이는 것도 꺼리지 않는 것으로 유비(劉備)가 패군한 조조(曹操)에게 귀의하여 늘 충신이라고 일컬으며 몰래 동승(董承)과 도모하였었는데, 이를 가지고 유비가 조조를 추존했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진경(顔眞卿)이 처음 적에게 사로잡혔을 적에 자황의(柘黃衣)까지 입고 적들을 안심시키다가 끝내 수복(收復)하는 공을 세웠는데 그런 진경을 적에게 붙었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김방경(金方慶) 같은 이도 친자(親子)·애자(愛子)의 변론110) 으로 몽고(蒙古)로 하여금 믿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가 궤도(詭道)를 쓴 것이었습니다.

신은 죽을 나이가 다 되어 거듭 죄명(罪名)을 얻어 황예(荒裔)로 원찬(遠竄)되어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기고 인근의 수령들도 돌아보는 사람이 전혀 없었는데, 무슨 기력이 있어 주현을 지휘하여 독을 퍼뜨리며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사실인가를 본도에 하서하여 자세히 조사하시어 만일 조금이라도 작폐(作弊)한 일이 있었다면 극형도 사양치 않겠으니 아울러 상고하여 분간하소서."

  • [註 109] 심 유격(沈遊擊) : 심유경(沈惟敬).
  • [註 110] 김방경(金方慶) 같은 이도 친자(親子)·애자(愛子)의 변론 : 김방경은 고려 때의 명장으로 몽고에 대하여 반역을 도모한다는 무고로 몽고의 장수 흔도(忻都)와 다구(茶丘)에게 국문을 받았는데 그때 "소국은 상국을 하늘처럼 받들고, 어버이처럼 사랑한다. [小國戴上國如天愛之如親]"라고 변론하였다. 《고려사(高麗史)》 권104 김방경 열전(金方慶列傳).

원문

○罪人黃廷彧, 拿來入京, 三省推鞫。 廷彧供曰: "傳旨內屈膝事, 則被擄宰臣、朝士、儒生, 不爲不多, 彼賊皆不使之屈膝而致辱。 況王子, 則賊以爲奇貨, 待之以禮, 淸正上堂脫冠以謁, 諸賊下庭脫冠以謁。 待王子如此, 故陪臣亦無屈辱之事, 人所共知。 及到釜山, 馬島諸賊, 見臣拜曰: ‘曾於禮曹判書、參判時得謁’ 云云, 頗致敬禮。 屈膝之事, 千萬無理。 推問前後陷賊之人則可知。 當在京城時, 沈遊擊深責淸正之不恭, 將與行長, 定其約和, 淸正憤其功之不出己。 適金千鎰幕下李盡忠者, 來入淸正陣中, 正賊於王子座前, 求以其意, 通書于行在。 書旣成, 使賊卒送于臣處, 求臣着名。 臣以爲此不過誑賊之僞書, 姑調柔賊心, 尋見應署處, 只書長溪君三字, 其次亦只書行護軍三字, 皆不書臣字姓字, 乃無心着僞書以送。 以此僞書, 前日李弘業、趙仁徵、金貴榮出來時, 亦皆有之, 或誤傳、或不傳, 而不書臣字, 終始如一。 李弘業持來僞書, 則金貴榮亦同着名以送, 而其時則寂無人言。 大抵如平調信, 擧大兵直向西路, 而臨津牛角之書, 亦用臣字。 彼自稱臣於我國, 安有禁我之自臣於君父乎? 若妄用此字於賊眼所見處, 使賊又知我國文書行用之式, 則恐有後日難處之患, 故一切不用臣字。 區區用意深處, 正在於此。 且賊輩, 常時稱關白, 或曰大閤, 或曰司馬, 不稱殿下。 適沈惟敬通書于王子, 有關白殿下之語, 賊纔見之, 故成此僞書之際, 使依天將所稱而書之。 其簡謄本亦在, 遊擊出來, 則可以憑準。 其僞書辭緣, 依俙憶得, 則正賊以爲: ‘大明許和, 而朝鮮獨不許和。 若不與我相和, 則關白殿下, 將渡海而來’ 云云。 此殿下云者, 乃彼賊自稱其主之言。 人之聞者, 不暇致察上下文義, 徒執殿下二字, 有如此議論, 不勝痛哭。 至如割地之言, 當賊在安邊之日, 屢發此言。 一行之人以爲, 賊情不可不達于朝廷, 乃因其情而直書其賊請, 送人于行在。 出於不意, 欲達密狀, 而蒼黃窘束, 不及檢看, 其措辭失誤處何限? 若按其文, 而求其罪, 則可死者, 固非一二, 而臣竊念割地之言, 不可不熟思而預防, 使咸廷虎等宣言於賊中曰: ‘諸侯土地, 受之天子。 非諸侯之所得擅割’, 至引樂浪、臨屯等語以拒之。 其後, 賊絶口不言割地之事。 大抵臣之萬死回生者, 實由遭遇聖明, 待以宰相, 位封勳爵, 聞見自別, 故賊以爲大官, 終始不害之。 此實聖上平日寵待之餘恩。 古人有殺身成仁, 捨生取義者, 皆見其可死而死, 不可徒死於不死之地。 若文天祥, 崎嶇全命於宋亡七年之後者, 其志欲圖存趙氏, 更爲興復, 而乃捐生於賊刃之下。 此豈忘讎而苟活者哉? 以臣等之義言之, 王子不幸, 則陪官當死, 王子得保, 則陪官亦何敢徒死乎? 況兵家之事, 本不厭詐。 劉備敗軍之後, 歸依曺操, 常稱爲忠臣, 而密與董承圖之。 謂備推尊曺操, 可乎? 顔眞卿始陷于賊, 至着柘黃衣, 以安賊心, 終始收復之功。 謂眞卿附賊, 可乎? 至如金方慶, 親子、愛子之辨, 能使蒙古信之, 此無非用詭道也。 臣垂死之年, 重得罪名, 遠竄荒裔, 人皆賤棄, 隣近守令, 頓無顧見之人, 有何氣力, 可以指使州縣, 有流毒貽害之事乎? 其爲虛實, 下書本道, 詳加窮覈, 若有一分作弊之狀, 則鼎鑊不辭。 幷爲相考分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