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40권, 선조 26년 7월 28일 庚辰 9/9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도원수 권율이 남원 사람들의 작란과 중국인 살해 등을 보고하다
국역
도원수 권율(權慄)이 치계하였다.
"남원(南原) 사람은 본래부터 포악하여 지난해 이광(李洸)이 근왕(勤王)할 때 군인 6백 명이 삼례(參禮)에 이르러 난을 일으키고서 장성 현감(長城縣監) 백수종(白守宗)을 위협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수종이 간신히 탈출하였습니다. 이광이 군사를 일으켜 잡으려 하였으나 항거하여 발사하므로 끝내 완전히 다스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작년 7월에는 부민(府民)들이 틈을 타서 난을 일으켜 창고의 물건을 남김없이 쓸어갔으며, 금년 7월에는 성을 지키려고 하자 관직이 있는 당상관 이하는 존비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줄을 타고 성을 넘어 도망갔으니 경악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끝내는 이달 13일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자가 돌로 중국 사람 두 명의 머리를 쳐서 살해하였으니, 부끄럽고 분통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으며 처치할 방법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독(提督) 이평명(李平明)이 속히 염장(斂葬)할 물건을 갖추고 밭주인만을 잡아오라고 명하였습니다. 밭주인을 잡아오라는 것은 중국 사람이 밭두둑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명장의 처사가 이와 같았으니 조정에서 치사(致謝)하는 일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원문
선조 26년 (1593) 7월 28일
선조실록40권, 선조 26년 7월 28일 庚辰 9/9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도원수 권율이 남원 사람들의 작란과 중국인 살해 등을 보고하다
국역
도원수 권율(權慄)이 치계하였다.
"남원(南原) 사람은 본래부터 포악하여 지난해 이광(李洸)이 근왕(勤王)할 때 군인 6백 명이 삼례(參禮)에 이르러 난을 일으키고서 장성 현감(長城縣監) 백수종(白守宗)을 위협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수종이 간신히 탈출하였습니다. 이광이 군사를 일으켜 잡으려 하였으나 항거하여 발사하므로 끝내 완전히 다스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작년 7월에는 부민(府民)들이 틈을 타서 난을 일으켜 창고의 물건을 남김없이 쓸어갔으며, 금년 7월에는 성을 지키려고 하자 관직이 있는 당상관 이하는 존비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줄을 타고 성을 넘어 도망갔으니 경악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끝내는 이달 13일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자가 돌로 중국 사람 두 명의 머리를 쳐서 살해하였으니, 부끄럽고 분통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으며 처치할 방법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독(提督) 이평명(李平明)이 속히 염장(斂葬)할 물건을 갖추고 밭주인만을 잡아오라고 명하였습니다. 밭주인을 잡아오라는 것은 중국 사람이 밭두둑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명장의 처사가 이와 같았으니 조정에서 치사(致謝)하는 일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원문
원본
선조 26년 (1593)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