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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7권, 선조 16년 7월 15일 甲午 1/1 기사 / 1583년 명 만력(萬曆) 11년

성혼이 이이가 공박받자 이이를 해명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성혼(成渾)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은 이름을 도둑질하고 주상을 속여 앉아서 높은 관작을 받았으니, 이미 소심(素心)에 위배되는 일이라서 내심 두려운 생각이 간절합니다. 감히 도하(都下)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곧 구학(溝壑)으로 돌아가 죽으려던 차에 삼사(三司)가 전 병조 판서 이이를 탄핵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군(無君)·오국(誤國)의 죄를 가하여 이이로 하여금 꼼짝 못하고 가게 만들었으니 잘못된 형정(刑政) 중에서도 이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신이 성조(聖朝)의 망극한 은혜를 입고 있으면서 시사(時事)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도 말을 않는다면, 이는 신이 조정의 잘못임을 알면서도 화가 두려워 말하지 않는 것이니 전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에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말을 합니다.

신이 보건대, 이이의 사람됨은 소통(疏通)·명민(明敏)하고 천성이 매우 고매하여 젊은 시절 구도(求道)의 뜻을 가지고 개연히 학문으로 자신을 격려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가 비록 모든 이치에 있어 두루 원만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의리(義理)의 대원(大原)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구유(拘儒)027) 나 곡사(曲士)처럼 앉아서 장구(章句)나 지키는 무리들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의 지성에서 나온 것으로, 오직 나라가 있는 것만 알고 자신이 있는 것은 모르며 시무(時務)를 구제하는 데 급급하여 자신의 온포(溫飽) 따위는 생각에도 두지 않음이 바로 그의 일생의 소양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취된 기질(氣質)이 그러하기 때문에 병통 또한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소통(疏通)했기 때문에 소탈한 병통이 있어 침착하고 치밀한 기풍이 적습니다. 그리고 그 성품이 결백하며 정직하고 오활한 만큼 진실하기 때문에 겉모양을 꾸민다거나 남의 뜻을 맞추려고 하는 태도는 전혀 없고, 뜻이 큰 만큼 미세한 일에는 소략하며, 스스로를 믿어 시속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자는 매우 적고 비웃는 자가 많으며, 그를 걱정하는 자는 적고 미워하는 자는 많습니다. 게다가 시론(時論)과도 맞지 아니하여 누차에 걸친 소장(疏章)으로 시폐(時弊)를 깊이 있게 논한 것이 현실과는 저촉되기 때문에 더욱 당시 사람들의 꺼리는 바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정철(鄭澈)을 쓸 만한 사람이라고 논천(論薦)했던 것이 더욱 중정(衆情)과 맞지 않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이 자신도 조정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전하의 세상에 드문 은우를 입고서 자기 몸이 다하고 힘이 다할 때까지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해 보려는 생각에서 몇 해를 두고 머뭇거리며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 논핵(論劾) 중의 말[馬]을 바치면 북변 방어의 임무를 면제해 준 그 한 가지 일은, 이이가 일찍이 을묘년028) 왜변(倭變) 당시, 전쟁에 임하는 군사들이 도중(都中)에서 말을 약탈해 가는 것을 보고 그것이 난계(亂階)가 될 것을 깊이 우려한 나머지, 당초에는 아뢰어 청하려 하였으나 말을 바쳐올 자가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 없어 감히 청하지 못했던 것이고, 급기야 말들이 모였을 때는 군사의 갈 길이 임박하여 주고 나서 곧 아뢰었던 것인데 급급한 가운데 경솔하게 했던 탓으로 그러한 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명(命)을 청하지 않고 먼저 영(令)부터 내린 것은 당연히 이이의 죄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국병(國柄)을 마음대로 휘두른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죄는 아닐 것입니다. 또 그가 정원에 나가지 않았던 것은 현훈증(眩暈症)이 거듭 일어났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을 교만하여 주상을 업신여겼다고 한 것 역시 그러한 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한 대간의 입에서 나오자 여러 대간들이 뒤따라 입을 맞추었고 대신들도 이이를 위하여 출사하기를 청하면서도 감히 대간의 말이 지나쳤다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아, 대간의 말이 과격했던 것은 그 잘못이 작은 것이고, 이이가 무군(無君)한 죄는 그 악(惡)이 큰데, 지극히 작은 잘못을 옹호해 주기 위하여 지극히 큰 죄를 씻어주지는 아니하고 억지로 출사하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성교(聖敎)가 너무도 진지하고 간곡하게 이이에게 공직(供職)하도록 하유하셨기 때문에 이에 이이로서는 민망하고 절박함을 감당하지 못하여 부득이 계사(啓辭)하여 죄의 경중(輕重)을 헤아려 주실 것을 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 뜻이 어찌 대간과 승부를 겨루자는 것이었겠습니까. 다만 출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주상의 명을 따르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만약 논핵을 입었으니 떠나갈 뿐 출사와는 관계가 없었다면 이이가 무엇 때문에 감히 계사를 썼겠습니까. 이이가 감히 쉽게 출사를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공론을 두려워하고 대간을 존중해서인데 그것을 가리켜 도리어 대간을 가볍게 보고 공론을 멸시한다고 하고 있으니 역시 괴이하지 않습니까.

송(宋)의 구양수(歐陽脩)나 유지(劉摯)도 논핵을 당하고는 모두 글월을 올려 자신을 변명했지만 그들 역시 반드시 소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이이가 말한 것은 그 목적이 출사하기 위함이었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함이 아니었는데도 삼사(三司)의 논의가 크게 일었고, 게다가 또 나라를 그르친 소인이라든가 방자하여 거리낌이 없다는 죄까지 뒤집어씌웠습니다. 처음은 경미한 죄였는데 거기에다 무군(無君)·오국(誤國)의 죄명을 씌웠고 이제는 또 그 죄명으로 법에 의거하여 죄를 청하려고 하니 이는 그를 꼭 죽을 땅으로 몰아넣고야 말겠다는 심산인 것입니다. 아아, 지금 말하는 자들이 저들 스스로 공론이라고 하면서 그 말의 불공(不公)·불평(不平)함이 이 정도이니 어떻게 사람 마음을 승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이가 만약 참으로 소인이라면 여회(呂誨)가 왕안석(王安石)을 공격하듯 마땅히 곧바로 그의 심술(心術)에 대하여 공격하는 것이 옳지 한 가지 과실을 꼬투리로 하여 그것을 심문(深文)으로 주장하고 준법(峻法)으로 다스리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의 속셈이 전부 겉으로 드러났는데도 이제는 사람들이 그 속셈을 간파하는 것조차 걱정하지 않을 정도이니,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사대부(士大夫)라면 의당 공평하고 정대(正大)한 마음가짐으로 자기의 사사로운 마음을 극복하고 제거하기에 힘써 비록 소인을 공격하다가 형세상 이기지 못하고 떠나더라도 오직 올바름만은 잃지 않음으로써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인데, 지금 한 사람 오활한 이이를 공격하면서 거기에 기관(機關)을 만들어 사대부의 명예나 절의쯤은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으니 지금 그 당사자들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때 과연 마음이 쾌하단 말입니까. 그러나 오늘날 조론(朝論)이 어찌 모두 다 고의적으로 이이를 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이렇게 된 것은 부회(附會)하는 무리들이 이 시기를 타 빨리 공격을 하여 되도록 이이를 몰아내려 하고 있는 데다가 숙원(宿怨)을 가진 자들이 가세하여 기틀을 잡으려고 함으로써 이렇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전하께서 대신들에게 ‘나라가 망해가는데 충사(忠邪)를 구별할 길이 없단 말인가?’고 물으셨을 때, 대신들은 그들의 기염(氣焰)이 무서워서 누구 하나 분명하게 말 한마디 하는 이가 없어서 답답한 성상의 마음을 둘 곳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신은 그것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군신간의 의(義)가 어찌 이 정도에 그칠 뿐이란 말입니까. 천하의 충신(忠臣)·의사(義士)들이 이것을 듣는다면 너도 나도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어날 일인데, 더구나 부름을 받고 서울에 도착하여 오히려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신이겠습니까. 신은 그렇기 때문에 입을 다무는 것을 명철한 일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올리는 것을 의리로 생각하였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이 글월을 공경(公卿)들에게 내리시어 반드시 충과 사를 변별(辨別)하고 득과 실을 논의하게 하여, 붕당이 참소하여 기이하게 목적을 달성시키는 화가 오늘날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신다면 종사(宗社)의 복이겠습니다.

그리고 대간(臺諫)은 말하는 것이 책무이고 공론(公論)이 달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사정(邪正)에 따라 말의 득실(得失)도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대간이라 하여 지적하여 논의할 수 없고 언자(言者)라 하여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없다면, 저 장상영(張商英)이 사마광(司馬光)을 공격했던 것이나 윤색(尹穡)이 장준(張浚)을 공격했던 일029) 에 있어서도 앞으로 언로(言路)가 막힐까를 염려해서는 그르다고 할 수 없어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 옥당(玉堂)이라야 대간의 잘못을 논의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대간을 논의했을 때는 곧 흉사(凶邪)하다는 죄를 가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사리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시 그의 말이 사(邪)인가 정(正)인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옛날 한(漢)의 공승흥(公乘興)은 어사(御史)가 꾸며내어 깊이 헐뜯고 있다고 말하여 죄 없음을 호소하였고, 송(宋)의 인종(仁宗)은 어사가 애매한 말로 대신(大臣)을 중상(中傷)하는데 이 풍조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일도 그와 다를 게 무엇입니까. 그런데도 한번 이이를 공격하는 소리가 나오자 조정 전체가 그쪽으로 휩쓸려 감히 중간에서 형평을 유지한 이라곤 없으니 이 역시 한나라·송나라에서도 없었던 일입니다.

지금 외경(外警)·내우(內憂)·천재(天災)·시변(時變)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어 나라의 형세가 곧 위망(危亡)이 닥쳐올 것처럼 급급한데 신하된 자로서 이를 걱정하지 아니하고 기껏 서로 배척(排斥)할 계책이나 빚어내어 충성을 다해 나라에 몸바치려는 신하를 발붙일 곳이 없어 가게 만들고, 이 뿐만이 아니라 죄까지 만들어내어 무군(無君)·오국(誤國)으로 몰아붙이고 있으니, 일찍이 성명(聖明)의 세상에는 이러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시비(是非)와 충사(忠邪)를 끝까지 추구하여 분명하게 가려내는 것을 급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저 어물어물 두 쪽이 다 옳은 것처럼 용납하시는 데만 힘쓰신다면, 앞으로 선선(善善)·오악(惡惡)에 있어 권장하거나 두렵게 만들 만한 표준이 없어 간사한 마음을 가진 무리들로 하여금 성상의 뜻이 어디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조금도 거리낌없이 저들만의 붕당을 심고 권세를 독차지함으로써 항상 다과(多寡)의 세(勢)를 가지고 충현(忠賢)을 공격하여 몰아낼 것입니다. 그리되면 충현들의 화가 온 세상에 뻗쳐도 다시 구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까 신은 두렵습니다.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성명께서는 스스로 변변하지 못하다고 하지 마시고, 모든 권강(權綱)을 잡으시어 우선 옳고 그른 이치를 바로잡고, 충직함과 간사함을 구별하여 깊이 그 기미를 살피고 근원을 막아 버림으로써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는 전하의 마음이 마치 강하(江河)를 터놓은 듯 막힘이 없어 드러나게 하신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그리고 신이 걱정하는 것이 어찌 한 사람의 진퇴(進退)에 있겠습니까. 선을 좋아하면서도 선한 자를 기용하지 못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악한 자를 제거하지 못한 것은 곽(郭)030) 이 망한 원인이라 하여 제(齊)의 환공(桓公)이 징창(懲創)했던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이이가 다른 뜻이 없음을 알고 또 언자(言者)가 그를 미워하여 참소한 것임을 알면서도 둘 다 따져 묻지 않으신다면 중외(中外)의 의혹을 어떻게 풀겠습니까. 지금 조정에 말하는 자라곤 한 사람도 없는데 한낱 고천(孤賤)한 신이 나서서 말해 보았자 고작 한 손으로 횡류(橫流)를 막으려는 격이어서 역시 어리석고 부질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의 말이 실현이 안 되더라도 시론(時論)이 이로 인해 공평해지고, 사림(士林)이 이로 인해 화합하며 국사가 이로 인해 해결될 수 있다면 신이 비록 죄를 얻어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으나, 그렇지 못하고 서로 격동하고 서로 이기려 하여 오직 나의 기세(氣勢)만 최고로 높이려 할 뿐이라면, 신의 이 한 몸이야 아까울 것이 없지만 국가가 안정할 곳이 어디일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하로서 나라를 위해 일을 담당하게 되면 원망이 한 몸에 모여 화패(禍敗)가 즉시 오기 마련이니, 이것이 세속을 따르면서 허용을 받는 선비들이 세상에서 녹(祿)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지금 이이는 자기 몸을 잊고 원망을 가로맡아 가면서 고굉(股肱)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그러한 중상(中傷)을 받아 장차 여생을 보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다른 날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누가 전하를 위해 일을 맡으려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구신(具臣)031) 들이 지위를 확보하고 대소(大小)간에 서로 따르기만 하여 감히 조금도 그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별로 하는 일 없이 그날그날 날짜나 보낼 뿐이라면 잘 다스려보려는 전하의 뜻 역시 시행할 곳이 없어 점점 해이해지게 될 것이니, 어찌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오늘날의 일들을 보건대 말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정은 사방의 근본이니, 근본이 다스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신이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을 말하겠습니까. 또 구양수(歐陽脩)가, 한기(韓琦)·부필(富弼)이 죄가 없음을 논했듯이 공론이 중한 곳에도 서로 친구라는 혐의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은 이이의 친구입니다. 신이 비록 옛사람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렇다고 감히 아래에 붙고 위를 속여 가면서 전하를 저버리지는 못합니다. 신이 서울에 와 품질(品秩)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때마침 치란(治亂)과 안위(安危)가 달린 큰 시폐(時弊)가 있음을 보고 걱정되고 놀라 한탄한 나머지 말하려 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노쇠(老衰)하고 시훼(紫毁)032) 되어 부궐(赴闕)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말하니 신의 죄가 큽니다. 또 생각하면 신의 질병이 이미 깊어 만약 서울에서 죽으면 관에 담아 돌아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자(聖慈)께서는 신을 전원으로 돌아가도록 놓아주시어 서쪽으로 국문(國門)을 나가 죽을 수 있게 해주소서. 이는 신의 큰 소원입니다. 신엄(宸嚴)을 예모없이 범하여 너무도 황공하고 지극히 죄스럽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대의 상소를 보니 충분(忠憤)이 격렬하여 만약 간사한 무리들이 듣게 한다면 충분히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것이다. 군자(君子)의 말 한마디가 나라를 위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참으로 알겠다. 그리고 이미 서울에 왔으니 병을 조리하면서 경악(經幄)에 드나들며 어두운 나를 계옥(啓沃)하여 주도록 하고 금방 물러갈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직하지 말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삼공(三公)을 명초(命招)하라."

하였다. 영상(領相) 박순(朴淳)과 좌상(左相) 김귀영(金貴榮)은 명을 받고 예궐하였고, 우상(右相) 정지연(鄭芝衍)은 병 때문에 오지 않았다. 영상·좌상에게 전교하기를,

"나는 과매(寡昧)하여 아는 것이 없고, 어둡고 불민하여 충(忠)과 사(邪)도 알지 못하고, 시(是)와 비(非)도 구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 경들에게 물었던 것인데 경들은 감히 우물우물 넘기고 말았다. 내 그때 이미 경들의 마음을 훤히 알았지만 뒤에 형편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는 뜻으로 경들에게 하유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성혼의 상소문을 보니 대신(大臣)으로서 임금을 섬기는 도리가 과연 그러해도 된다는 말인가? 당초에 이이를 배척한 것이 누구의 짓이며 또 붕간(朋奸)의 무리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분명히 가려내어 말할 것이요, 다시 어물어물 넘김으로써 국가에 부끄러움을 끼치지 말게 하라."

하였다. 회계(回啓)하기를,

"면대(面對)를 청합니다."

하니, 인견(引見)하겠다고 전교하였다.

  • [註 027] 구유(拘儒) : 고지식한 유학자.
  • [註 028] 을묘년 : 1555 명종 10년.
  • [註 029] 장상영(張商英)이 사마광(司馬光)을 공격했던 것이나 윤색(尹穡)이 장준(張浚)을 공격했던 일 : 언관(言官)으로서 부당한 논핵을 했음을 말함. 즉 장상영은 송 철종(宋哲宗) 때 당시의 대신들이 자기를 써주지 않는다 하여 사마광(司馬光)·여공저(呂公著)·유지(劉摯) 등을 붕당을 끌어들여 감히 남을 헐뜯는다는 내용으로 상소를 하여 탄핵하였다. 《송사(宋史)》 권351. 윤색(尹穡)은 송 효종(宋孝宗) 당시 금인(金人)의 침공을 받았을 때 우정언(右正言)으로서 형편상 적과 강화(講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반대파인 장준(張浚)을, 발호(跋扈)를 시도하고 있다고 논핵하다가 얼마 안 가서 파직당하였다. 《송사(宋史)》 권372.
  • [註 030] 곽(郭) : 춘추 시대의 나라 이름.
  • [註 031] 구신(具臣) : 숫자만 채우는 신하.
  • [註 032] 시훼(紫毁) : 상(喪)에 너무 슬퍼하여 야윔. 애훼(哀毁).

원문

○甲午/成渾疏曰:

伏以, 臣盜名罔上, 坐受高爵, 旣達素心, 內切惶懼。 方將歸死溝壑, 不敢久留都下, 而頃者伏遇三司擧劾前兵曹判書李珥。 加以無君誤國之罪, 使珥無所容而去, 刑政之失, 無大於此者。 臣受聖朝罔極之恩, 目覩時事之非而不言, 則是臣知朝廷過擧, 而畏禍不言, 以負殿下也。 臣請昧死而言之。 臣竊觀李珥之爲人, 疏通明敏之分甚高, 少有求道之志, 慨然以學自勵於衆理。 雖不(用)〔周〕 遍, 而義理大原, 不可謂無見, 非如(俗)〔拘〕 儒曲士, 坐守章句之徒也。 其愛君憂國, 出於至性, 惟知有國, 而不知有〔其〕 身, 急於濟時, 而不以溫飽爲念者, 乃其平生素所有也。 雖然氣質所就如此, 故其病痛亦有之。 惟其疏通, 故有率(爾)〔易〕 之病, 而〔小沈潛縝蜜之風〕 (有沈潛之氣), 其性白直迂愿, 故絶無修飾外貌, 調適人情之態, 志大而闊略於細微, 自信而不徇乎時俗。 是以愛之者絶鮮, 而笑之者多, 憂之者固小, 而嫉之者衆矣。 且與時論不合, 屢陳疏章, 深論時弊, 以其觸實, 故益爲時人所忌。 且論薦鄭澈以爲可用, 是以尤不合於衆情。 珥知不可久在朝廷, 而被殿下不世之遇, 思欲鞫躬盡瘁, 以報萬一, 所以遲廻數歲而不能去也。 至如論劾中, 納馬免防一事, 則珥嘗見乙卯倭變, 赴戰軍士, 掠馬於都中, 深以階亂爲憂, 初欲啓請, 而又不能料納馬〔者〕 之有無, 不敢請焉, 及其馬旣集, 而軍士臨行, 旋給旋啓。 〔在〕 急遽之中, 因率爾之失, 而有此罪也。 不請命而先下令, 此固珥之罪也, 然謂之專擅國柄, 則非其罪也。 不進政院, 乃眩暈重發之故耳, 謂之驕蹇慢上, 則非其罪也。 此言發於一臺諫, 而諸臺諫隨而和之, 大臣〈珥〉爲請出, 而不敢以臺諫之言爲過中。 噫! 臺諫過激之言, 其失小, 李珥無君之罪, 其惡大, 欲護至小之失, 而不雪至大之罪, 强令出仕, 則是欲其入而閉之門也。 只緣聖敎至誠委曲, 諭珥以供職, 珥於是時, 不勝悶迫, 不得已而爲啓辭, 以請稱量其罪之輕重者。 其意豈在於與臺諫爭勝負乎? 只欲開出仕之路, 以承上命耳。 若被論而得去, 無出仕一節, 則珥豈敢爲啓辭乎? 珥之不敢易出, 乃所以畏公論重臺諫, 而反以此爲輕臺諫蔑公論, 不亦異乎? 宋之(歐陽脩)〔歐陽修〕 、劉摯被劾, 而皆上章自辨, 亦未必爲小人。 況珥之言在於出仕, 而不在於自辨者乎, 而三司之論大作, 又加以誤國小人, 恣肆無忌憚之罪。 初因微罪, 而加以無君誤國之名, 又因此名, 而將據法請罪, 是必置之死地而後已也。 嗚呼! 今之言者, 自以爲公論, 而其言之不公不平如此, 將何以服人心乎? 若使珥爲眞小人, 自當直攻心術, 如呂誨之於王安石可也, 安有因一過失, 輒持之以深文, 陷之以峻法者乎? 此其腹心意態, 披露於外, 不復以人人覷破爲憂, 不亦可羞之深乎? 士大夫當以公平正大爲心, 克己袪私爲務, 雖攻擊小人, 勢將不勝而去, 惟當不失其正, 無愧於方寸可矣, 今乃攻一迂闊李珥而乃設機關, 不復顧惜士大夫名節, 今使當事者, 自顧其中, 其果能慊於心乎? 雖然今日朝論, 豈皆作意罪珥至於此哉? 不過附會者乘時疾攻, 務欲去珥, 而挾宿怨者, 又將持其機, 以至於此耳。 殿下詢于大臣: ‘以國家將亡忠邪無卞。’ 爲敎, 而大臣畏其氣焰, 莫肯出一言以辨之, 聖心鬱鬱, 無所底向。 臣聞之, 以爲至痛。 君臣之義, 寧可止此而已乎? 天下之忠臣義士聞之, 尙有投袂而起者, 況臣被徵(在)〔至〕 京, 猶在可言之地者乎? 臣故不以含默爲哲, 而以進言爲義。 伏願殿下, 下臣此章于公卿, 必令辨別忠邪, 商議其得失, 使朋讒奇中之禍, 不作於今日, 則宗社之福也。 且臺諫以言爲責, 公論之所寄也。 然隨其人之邪正, 而言有得失之異焉。 今謂臺諫不可以指議, 言者不可以非間, 則彼張商英之攻司馬光, 尹穡之攻張浚, 其將慮言路之杜塞, 而不可謂之非也。 今(謂)〔爲〕 玉堂然後可以議臺諫之失, 而他人之議臺諫, 輒欲加以凶邪之罪, 則夫安有是理哉? 亦在乎其言之邪正而已。 昔者漢 公乘興言御史飾文, 深詆以愬無辜, 宋 仁宗謂御史以黯(黮)〔昧〕 之言, 中傷大臣, 此風不可長也。 今之事何異於此? 而一唱攻珥, 擧朝靡然, 無敢持平於其間, 則又非漢、宋之所有也。 當今外警內憂天災時變, 一時竝作, 國勢岌岌有危亡之象, 而爲臣子者, 不此之憂, 乃相與媒孽〔排擯〕 , 使竭忠徇國之臣, 無所容而去, 非唯不容, 而又將文致其罪, 置諸無君誤國之科, 曾謂聖明之世, 而有此事哉? 殿下不以究極是非, 辨別忠邪爲(意)急, 而以含容兩可爲務, 則臣恐善善而無所勤, 惡惡而無所懼, 將使懷奸之徒, 有以窺測聖意之所在, 無所忌憚, 植黨專權, 常以多寡之勢, 攻擊忠賢而去之。 則忠賢之禍, 方橫挐一世, 而不可救矣。 豈不痛哉! 伏願聖明勿自菲薄, 摠攬權綱, 有以先正是非之理, 辨別忠邪之趣, 深燭幾微, 杜塞其源, 而使殿下善善惡惡之心, 沛然若決江河, 則國家幸甚。 且臣之所憂, 豈在於一人之進退哉? 善善而不能用, 惡惡而不能去, 此固齊 桓公所以懲創於郭亡也。 殿下旣知珥之無他, 又知言者之讒嫉, 而兩無所問, 將何以解中外之惑耶? 今擧朝無一人言者, 而臣以一介孤賤, 出而言之, 欲以隻手障其橫流, 亦可謂愚妄矣。 然使臣言不行, 而時論由是而平, 士林由是而和, 國家由是而濟, 則臣雖得罪, 萬萬無恨。 不然相激相勝, 惟欲盡我氣勢之所極而已, 則臣之一身, 固不足惜, 而不知國家稅駕之所也。 人臣爲國當事, 斂怨於身, 禍敗立至, 此浮沈取容之士, 所以持祿於世也。 今珥忘身任怨, 竭股肱之力, 而一朝受此中傷, 將不能保全餘生, 則異日緩急, 孰肯爲殿下任事哉? 從今具臣保位, 大小相徇, 無敢少排其意, 而悠悠(玩揭)〔玩愒〕 , 以取日闋而已, 則殿下勵精之志, 亦無所施而懈意生矣, 豈非可憂之大者乎? 臣竊見今日之事, 可言者多矣。 然朝廷四方之本也, 本之不治〔如此〕 , 臣何暇及他說哉? 且(歐陽脩)〔歐陽修〕 論韓琦、富弼之非罪, 公論所重, 不避相友之嫌。 臣珥之友也。 臣雖不及古人, 亦不敢附下罔上, 以負殿下也。 臣身到京師, 爵在高秩, 適見時弊係治亂安危之大者, 憂傷駭嘆, 久欲言之, 而疲癃紫毁, 不能赴闕, 今始言之, 臣之罪大矣。 且念臣疾病已深, 若在京而死, 則旅櫬難歸, 伏望聖慈, 放臣歸田, 使之西出國門而死, 則臣之大願也。 干冒宸嚴, 無任(競惶)〔兢惶〕 殞越之至。

答曰: "觀爾上疏, 忠憤激烈, 如使奸邪聞之, 足破其膽。 信乎! 君子一言, 爲國輕重。 且旣來在于京, 可調病, 出入經幄, 以啓沃寡昧, 未可爲遽退之計, 勿辭。" 仍傳曰: "三公命招。" 領相朴淳, 左相金貴榮, 承命詣闕。 右相鄭芝衍以病不來。 傳于領、左相曰: "以予寡昧, 不識昏昧不敏, 不知忠邪, 莫曉是非。 故頃日問卿等, 乃敢爲含糊之說, 予固已洞知卿等之心矣, 而隨後處之之敎, 則已諭於卿等矣。 今觀成渾上疏, 大臣事君之道, 果如是乎? 當初李珥之排擯誰所爲? 朋奸之類又誰耶? 其辨別以啓, 毋更含糊, 以貽國家之羞。" 回啓曰: "請面對。" 傳曰: "引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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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7권, 선조 16년 7월 15일 甲午 1/1 기사 / 1583년 명 만력(萬曆) 11년

성혼이 이이가 공박받자 이이를 해명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성혼(成渾)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은 이름을 도둑질하고 주상을 속여 앉아서 높은 관작을 받았으니, 이미 소심(素心)에 위배되는 일이라서 내심 두려운 생각이 간절합니다. 감히 도하(都下)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곧 구학(溝壑)으로 돌아가 죽으려던 차에 삼사(三司)가 전 병조 판서 이이를 탄핵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군(無君)·오국(誤國)의 죄를 가하여 이이로 하여금 꼼짝 못하고 가게 만들었으니 잘못된 형정(刑政) 중에서도 이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신이 성조(聖朝)의 망극한 은혜를 입고 있으면서 시사(時事)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도 말을 않는다면, 이는 신이 조정의 잘못임을 알면서도 화가 두려워 말하지 않는 것이니 전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에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말을 합니다.

신이 보건대, 이이의 사람됨은 소통(疏通)·명민(明敏)하고 천성이 매우 고매하여 젊은 시절 구도(求道)의 뜻을 가지고 개연히 학문으로 자신을 격려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가 비록 모든 이치에 있어 두루 원만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의리(義理)의 대원(大原)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구유(拘儒)027) 나 곡사(曲士)처럼 앉아서 장구(章句)나 지키는 무리들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의 지성에서 나온 것으로, 오직 나라가 있는 것만 알고 자신이 있는 것은 모르며 시무(時務)를 구제하는 데 급급하여 자신의 온포(溫飽) 따위는 생각에도 두지 않음이 바로 그의 일생의 소양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취된 기질(氣質)이 그러하기 때문에 병통 또한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소통(疏通)했기 때문에 소탈한 병통이 있어 침착하고 치밀한 기풍이 적습니다. 그리고 그 성품이 결백하며 정직하고 오활한 만큼 진실하기 때문에 겉모양을 꾸민다거나 남의 뜻을 맞추려고 하는 태도는 전혀 없고, 뜻이 큰 만큼 미세한 일에는 소략하며, 스스로를 믿어 시속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자는 매우 적고 비웃는 자가 많으며, 그를 걱정하는 자는 적고 미워하는 자는 많습니다. 게다가 시론(時論)과도 맞지 아니하여 누차에 걸친 소장(疏章)으로 시폐(時弊)를 깊이 있게 논한 것이 현실과는 저촉되기 때문에 더욱 당시 사람들의 꺼리는 바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정철(鄭澈)을 쓸 만한 사람이라고 논천(論薦)했던 것이 더욱 중정(衆情)과 맞지 않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이 자신도 조정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전하의 세상에 드문 은우를 입고서 자기 몸이 다하고 힘이 다할 때까지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해 보려는 생각에서 몇 해를 두고 머뭇거리며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 논핵(論劾) 중의 말[馬]을 바치면 북변 방어의 임무를 면제해 준 그 한 가지 일은, 이이가 일찍이 을묘년028) 왜변(倭變) 당시, 전쟁에 임하는 군사들이 도중(都中)에서 말을 약탈해 가는 것을 보고 그것이 난계(亂階)가 될 것을 깊이 우려한 나머지, 당초에는 아뢰어 청하려 하였으나 말을 바쳐올 자가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 없어 감히 청하지 못했던 것이고, 급기야 말들이 모였을 때는 군사의 갈 길이 임박하여 주고 나서 곧 아뢰었던 것인데 급급한 가운데 경솔하게 했던 탓으로 그러한 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명(命)을 청하지 않고 먼저 영(令)부터 내린 것은 당연히 이이의 죄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국병(國柄)을 마음대로 휘두른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죄는 아닐 것입니다. 또 그가 정원에 나가지 않았던 것은 현훈증(眩暈症)이 거듭 일어났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을 교만하여 주상을 업신여겼다고 한 것 역시 그러한 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한 대간의 입에서 나오자 여러 대간들이 뒤따라 입을 맞추었고 대신들도 이이를 위하여 출사하기를 청하면서도 감히 대간의 말이 지나쳤다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아, 대간의 말이 과격했던 것은 그 잘못이 작은 것이고, 이이가 무군(無君)한 죄는 그 악(惡)이 큰데, 지극히 작은 잘못을 옹호해 주기 위하여 지극히 큰 죄를 씻어주지는 아니하고 억지로 출사하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성교(聖敎)가 너무도 진지하고 간곡하게 이이에게 공직(供職)하도록 하유하셨기 때문에 이에 이이로서는 민망하고 절박함을 감당하지 못하여 부득이 계사(啓辭)하여 죄의 경중(輕重)을 헤아려 주실 것을 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 뜻이 어찌 대간과 승부를 겨루자는 것이었겠습니까. 다만 출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주상의 명을 따르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만약 논핵을 입었으니 떠나갈 뿐 출사와는 관계가 없었다면 이이가 무엇 때문에 감히 계사를 썼겠습니까. 이이가 감히 쉽게 출사를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공론을 두려워하고 대간을 존중해서인데 그것을 가리켜 도리어 대간을 가볍게 보고 공론을 멸시한다고 하고 있으니 역시 괴이하지 않습니까.

송(宋)의 구양수(歐陽脩)나 유지(劉摯)도 논핵을 당하고는 모두 글월을 올려 자신을 변명했지만 그들 역시 반드시 소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이이가 말한 것은 그 목적이 출사하기 위함이었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함이 아니었는데도 삼사(三司)의 논의가 크게 일었고, 게다가 또 나라를 그르친 소인이라든가 방자하여 거리낌이 없다는 죄까지 뒤집어씌웠습니다. 처음은 경미한 죄였는데 거기에다 무군(無君)·오국(誤國)의 죄명을 씌웠고 이제는 또 그 죄명으로 법에 의거하여 죄를 청하려고 하니 이는 그를 꼭 죽을 땅으로 몰아넣고야 말겠다는 심산인 것입니다. 아아, 지금 말하는 자들이 저들 스스로 공론이라고 하면서 그 말의 불공(不公)·불평(不平)함이 이 정도이니 어떻게 사람 마음을 승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이가 만약 참으로 소인이라면 여회(呂誨)가 왕안석(王安石)을 공격하듯 마땅히 곧바로 그의 심술(心術)에 대하여 공격하는 것이 옳지 한 가지 과실을 꼬투리로 하여 그것을 심문(深文)으로 주장하고 준법(峻法)으로 다스리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의 속셈이 전부 겉으로 드러났는데도 이제는 사람들이 그 속셈을 간파하는 것조차 걱정하지 않을 정도이니,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사대부(士大夫)라면 의당 공평하고 정대(正大)한 마음가짐으로 자기의 사사로운 마음을 극복하고 제거하기에 힘써 비록 소인을 공격하다가 형세상 이기지 못하고 떠나더라도 오직 올바름만은 잃지 않음으로써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인데, 지금 한 사람 오활한 이이를 공격하면서 거기에 기관(機關)을 만들어 사대부의 명예나 절의쯤은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으니 지금 그 당사자들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때 과연 마음이 쾌하단 말입니까. 그러나 오늘날 조론(朝論)이 어찌 모두 다 고의적으로 이이를 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이렇게 된 것은 부회(附會)하는 무리들이 이 시기를 타 빨리 공격을 하여 되도록 이이를 몰아내려 하고 있는 데다가 숙원(宿怨)을 가진 자들이 가세하여 기틀을 잡으려고 함으로써 이렇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전하께서 대신들에게 ‘나라가 망해가는데 충사(忠邪)를 구별할 길이 없단 말인가?’고 물으셨을 때, 대신들은 그들의 기염(氣焰)이 무서워서 누구 하나 분명하게 말 한마디 하는 이가 없어서 답답한 성상의 마음을 둘 곳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신은 그것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군신간의 의(義)가 어찌 이 정도에 그칠 뿐이란 말입니까. 천하의 충신(忠臣)·의사(義士)들이 이것을 듣는다면 너도 나도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어날 일인데, 더구나 부름을 받고 서울에 도착하여 오히려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신이겠습니까. 신은 그렇기 때문에 입을 다무는 것을 명철한 일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올리는 것을 의리로 생각하였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이 글월을 공경(公卿)들에게 내리시어 반드시 충과 사를 변별(辨別)하고 득과 실을 논의하게 하여, 붕당이 참소하여 기이하게 목적을 달성시키는 화가 오늘날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신다면 종사(宗社)의 복이겠습니다.

그리고 대간(臺諫)은 말하는 것이 책무이고 공론(公論)이 달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사정(邪正)에 따라 말의 득실(得失)도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대간이라 하여 지적하여 논의할 수 없고 언자(言者)라 하여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없다면, 저 장상영(張商英)이 사마광(司馬光)을 공격했던 것이나 윤색(尹穡)이 장준(張浚)을 공격했던 일029) 에 있어서도 앞으로 언로(言路)가 막힐까를 염려해서는 그르다고 할 수 없어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 옥당(玉堂)이라야 대간의 잘못을 논의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대간을 논의했을 때는 곧 흉사(凶邪)하다는 죄를 가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사리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시 그의 말이 사(邪)인가 정(正)인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옛날 한(漢)의 공승흥(公乘興)은 어사(御史)가 꾸며내어 깊이 헐뜯고 있다고 말하여 죄 없음을 호소하였고, 송(宋)의 인종(仁宗)은 어사가 애매한 말로 대신(大臣)을 중상(中傷)하는데 이 풍조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일도 그와 다를 게 무엇입니까. 그런데도 한번 이이를 공격하는 소리가 나오자 조정 전체가 그쪽으로 휩쓸려 감히 중간에서 형평을 유지한 이라곤 없으니 이 역시 한나라·송나라에서도 없었던 일입니다.

지금 외경(外警)·내우(內憂)·천재(天災)·시변(時變)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어 나라의 형세가 곧 위망(危亡)이 닥쳐올 것처럼 급급한데 신하된 자로서 이를 걱정하지 아니하고 기껏 서로 배척(排斥)할 계책이나 빚어내어 충성을 다해 나라에 몸바치려는 신하를 발붙일 곳이 없어 가게 만들고, 이 뿐만이 아니라 죄까지 만들어내어 무군(無君)·오국(誤國)으로 몰아붙이고 있으니, 일찍이 성명(聖明)의 세상에는 이러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시비(是非)와 충사(忠邪)를 끝까지 추구하여 분명하게 가려내는 것을 급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저 어물어물 두 쪽이 다 옳은 것처럼 용납하시는 데만 힘쓰신다면, 앞으로 선선(善善)·오악(惡惡)에 있어 권장하거나 두렵게 만들 만한 표준이 없어 간사한 마음을 가진 무리들로 하여금 성상의 뜻이 어디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조금도 거리낌없이 저들만의 붕당을 심고 권세를 독차지함으로써 항상 다과(多寡)의 세(勢)를 가지고 충현(忠賢)을 공격하여 몰아낼 것입니다. 그리되면 충현들의 화가 온 세상에 뻗쳐도 다시 구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까 신은 두렵습니다.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성명께서는 스스로 변변하지 못하다고 하지 마시고, 모든 권강(權綱)을 잡으시어 우선 옳고 그른 이치를 바로잡고, 충직함과 간사함을 구별하여 깊이 그 기미를 살피고 근원을 막아 버림으로써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는 전하의 마음이 마치 강하(江河)를 터놓은 듯 막힘이 없어 드러나게 하신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그리고 신이 걱정하는 것이 어찌 한 사람의 진퇴(進退)에 있겠습니까. 선을 좋아하면서도 선한 자를 기용하지 못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악한 자를 제거하지 못한 것은 곽(郭)030) 이 망한 원인이라 하여 제(齊)의 환공(桓公)이 징창(懲創)했던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이이가 다른 뜻이 없음을 알고 또 언자(言者)가 그를 미워하여 참소한 것임을 알면서도 둘 다 따져 묻지 않으신다면 중외(中外)의 의혹을 어떻게 풀겠습니까. 지금 조정에 말하는 자라곤 한 사람도 없는데 한낱 고천(孤賤)한 신이 나서서 말해 보았자 고작 한 손으로 횡류(橫流)를 막으려는 격이어서 역시 어리석고 부질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의 말이 실현이 안 되더라도 시론(時論)이 이로 인해 공평해지고, 사림(士林)이 이로 인해 화합하며 국사가 이로 인해 해결될 수 있다면 신이 비록 죄를 얻어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으나, 그렇지 못하고 서로 격동하고 서로 이기려 하여 오직 나의 기세(氣勢)만 최고로 높이려 할 뿐이라면, 신의 이 한 몸이야 아까울 것이 없지만 국가가 안정할 곳이 어디일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하로서 나라를 위해 일을 담당하게 되면 원망이 한 몸에 모여 화패(禍敗)가 즉시 오기 마련이니, 이것이 세속을 따르면서 허용을 받는 선비들이 세상에서 녹(祿)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지금 이이는 자기 몸을 잊고 원망을 가로맡아 가면서 고굉(股肱)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그러한 중상(中傷)을 받아 장차 여생을 보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다른 날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누가 전하를 위해 일을 맡으려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구신(具臣)031) 들이 지위를 확보하고 대소(大小)간에 서로 따르기만 하여 감히 조금도 그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별로 하는 일 없이 그날그날 날짜나 보낼 뿐이라면 잘 다스려보려는 전하의 뜻 역시 시행할 곳이 없어 점점 해이해지게 될 것이니, 어찌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오늘날의 일들을 보건대 말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정은 사방의 근본이니, 근본이 다스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신이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을 말하겠습니까. 또 구양수(歐陽脩)가, 한기(韓琦)·부필(富弼)이 죄가 없음을 논했듯이 공론이 중한 곳에도 서로 친구라는 혐의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은 이이의 친구입니다. 신이 비록 옛사람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렇다고 감히 아래에 붙고 위를 속여 가면서 전하를 저버리지는 못합니다. 신이 서울에 와 품질(品秩)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때마침 치란(治亂)과 안위(安危)가 달린 큰 시폐(時弊)가 있음을 보고 걱정되고 놀라 한탄한 나머지 말하려 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노쇠(老衰)하고 시훼(紫毁)032) 되어 부궐(赴闕)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말하니 신의 죄가 큽니다. 또 생각하면 신의 질병이 이미 깊어 만약 서울에서 죽으면 관에 담아 돌아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자(聖慈)께서는 신을 전원으로 돌아가도록 놓아주시어 서쪽으로 국문(國門)을 나가 죽을 수 있게 해주소서. 이는 신의 큰 소원입니다. 신엄(宸嚴)을 예모없이 범하여 너무도 황공하고 지극히 죄스럽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대의 상소를 보니 충분(忠憤)이 격렬하여 만약 간사한 무리들이 듣게 한다면 충분히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것이다. 군자(君子)의 말 한마디가 나라를 위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참으로 알겠다. 그리고 이미 서울에 왔으니 병을 조리하면서 경악(經幄)에 드나들며 어두운 나를 계옥(啓沃)하여 주도록 하고 금방 물러갈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직하지 말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삼공(三公)을 명초(命招)하라."

하였다. 영상(領相) 박순(朴淳)과 좌상(左相) 김귀영(金貴榮)은 명을 받고 예궐하였고, 우상(右相) 정지연(鄭芝衍)은 병 때문에 오지 않았다. 영상·좌상에게 전교하기를,

"나는 과매(寡昧)하여 아는 것이 없고, 어둡고 불민하여 충(忠)과 사(邪)도 알지 못하고, 시(是)와 비(非)도 구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 경들에게 물었던 것인데 경들은 감히 우물우물 넘기고 말았다. 내 그때 이미 경들의 마음을 훤히 알았지만 뒤에 형편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는 뜻으로 경들에게 하유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성혼의 상소문을 보니 대신(大臣)으로서 임금을 섬기는 도리가 과연 그러해도 된다는 말인가? 당초에 이이를 배척한 것이 누구의 짓이며 또 붕간(朋奸)의 무리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분명히 가려내어 말할 것이요, 다시 어물어물 넘김으로써 국가에 부끄러움을 끼치지 말게 하라."

하였다. 회계(回啓)하기를,

"면대(面對)를 청합니다."

하니, 인견(引見)하겠다고 전교하였다.

  • [註 027] 구유(拘儒) : 고지식한 유학자.
  • [註 028] 을묘년 : 1555 명종 10년.
  • [註 029] 장상영(張商英)이 사마광(司馬光)을 공격했던 것이나 윤색(尹穡)이 장준(張浚)을 공격했던 일 : 언관(言官)으로서 부당한 논핵을 했음을 말함. 즉 장상영은 송 철종(宋哲宗) 때 당시의 대신들이 자기를 써주지 않는다 하여 사마광(司馬光)·여공저(呂公著)·유지(劉摯) 등을 붕당을 끌어들여 감히 남을 헐뜯는다는 내용으로 상소를 하여 탄핵하였다. 《송사(宋史)》 권351. 윤색(尹穡)은 송 효종(宋孝宗) 당시 금인(金人)의 침공을 받았을 때 우정언(右正言)으로서 형편상 적과 강화(講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반대파인 장준(張浚)을, 발호(跋扈)를 시도하고 있다고 논핵하다가 얼마 안 가서 파직당하였다. 《송사(宋史)》 권372.
  • [註 030] 곽(郭) : 춘추 시대의 나라 이름.
  • [註 031] 구신(具臣) : 숫자만 채우는 신하.
  • [註 032] 시훼(紫毁) : 상(喪)에 너무 슬퍼하여 야윔. 애훼(哀毁).

원문

○甲午/成渾疏曰:

伏以, 臣盜名罔上, 坐受高爵, 旣達素心, 內切惶懼。 方將歸死溝壑, 不敢久留都下, 而頃者伏遇三司擧劾前兵曹判書李珥。 加以無君誤國之罪, 使珥無所容而去, 刑政之失, 無大於此者。 臣受聖朝罔極之恩, 目覩時事之非而不言, 則是臣知朝廷過擧, 而畏禍不言, 以負殿下也。 臣請昧死而言之。 臣竊觀李珥之爲人, 疏通明敏之分甚高, 少有求道之志, 慨然以學自勵於衆理。 雖不(用)〔周〕 遍, 而義理大原, 不可謂無見, 非如(俗)〔拘〕 儒曲士, 坐守章句之徒也。 其愛君憂國, 出於至性, 惟知有國, 而不知有〔其〕 身, 急於濟時, 而不以溫飽爲念者, 乃其平生素所有也。 雖然氣質所就如此, 故其病痛亦有之。 惟其疏通, 故有率(爾)〔易〕 之病, 而〔小沈潛縝蜜之風〕 (有沈潛之氣), 其性白直迂愿, 故絶無修飾外貌, 調適人情之態, 志大而闊略於細微, 自信而不徇乎時俗。 是以愛之者絶鮮, 而笑之者多, 憂之者固小, 而嫉之者衆矣。 且與時論不合, 屢陳疏章, 深論時弊, 以其觸實, 故益爲時人所忌。 且論薦鄭澈以爲可用, 是以尤不合於衆情。 珥知不可久在朝廷, 而被殿下不世之遇, 思欲鞫躬盡瘁, 以報萬一, 所以遲廻數歲而不能去也。 至如論劾中, 納馬免防一事, 則珥嘗見乙卯倭變, 赴戰軍士, 掠馬於都中, 深以階亂爲憂, 初欲啓請, 而又不能料納馬〔者〕 之有無, 不敢請焉, 及其馬旣集, 而軍士臨行, 旋給旋啓。 〔在〕 急遽之中, 因率爾之失, 而有此罪也。 不請命而先下令, 此固珥之罪也, 然謂之專擅國柄, 則非其罪也。 不進政院, 乃眩暈重發之故耳, 謂之驕蹇慢上, 則非其罪也。 此言發於一臺諫, 而諸臺諫隨而和之, 大臣〈珥〉爲請出, 而不敢以臺諫之言爲過中。 噫! 臺諫過激之言, 其失小, 李珥無君之罪, 其惡大, 欲護至小之失, 而不雪至大之罪, 强令出仕, 則是欲其入而閉之門也。 只緣聖敎至誠委曲, 諭珥以供職, 珥於是時, 不勝悶迫, 不得已而爲啓辭, 以請稱量其罪之輕重者。 其意豈在於與臺諫爭勝負乎? 只欲開出仕之路, 以承上命耳。 若被論而得去, 無出仕一節, 則珥豈敢爲啓辭乎? 珥之不敢易出, 乃所以畏公論重臺諫, 而反以此爲輕臺諫蔑公論, 不亦異乎? 宋之(歐陽脩)〔歐陽修〕 、劉摯被劾, 而皆上章自辨, 亦未必爲小人。 況珥之言在於出仕, 而不在於自辨者乎, 而三司之論大作, 又加以誤國小人, 恣肆無忌憚之罪。 初因微罪, 而加以無君誤國之名, 又因此名, 而將據法請罪, 是必置之死地而後已也。 嗚呼! 今之言者, 自以爲公論, 而其言之不公不平如此, 將何以服人心乎? 若使珥爲眞小人, 自當直攻心術, 如呂誨之於王安石可也, 安有因一過失, 輒持之以深文, 陷之以峻法者乎? 此其腹心意態, 披露於外, 不復以人人覷破爲憂, 不亦可羞之深乎? 士大夫當以公平正大爲心, 克己袪私爲務, 雖攻擊小人, 勢將不勝而去, 惟當不失其正, 無愧於方寸可矣, 今乃攻一迂闊李珥而乃設機關, 不復顧惜士大夫名節, 今使當事者, 自顧其中, 其果能慊於心乎? 雖然今日朝論, 豈皆作意罪珥至於此哉? 不過附會者乘時疾攻, 務欲去珥, 而挾宿怨者, 又將持其機, 以至於此耳。 殿下詢于大臣: ‘以國家將亡忠邪無卞。’ 爲敎, 而大臣畏其氣焰, 莫肯出一言以辨之, 聖心鬱鬱, 無所底向。 臣聞之, 以爲至痛。 君臣之義, 寧可止此而已乎? 天下之忠臣義士聞之, 尙有投袂而起者, 況臣被徵(在)〔至〕 京, 猶在可言之地者乎? 臣故不以含默爲哲, 而以進言爲義。 伏願殿下, 下臣此章于公卿, 必令辨別忠邪, 商議其得失, 使朋讒奇中之禍, 不作於今日, 則宗社之福也。 且臺諫以言爲責, 公論之所寄也。 然隨其人之邪正, 而言有得失之異焉。 今謂臺諫不可以指議, 言者不可以非間, 則彼張商英之攻司馬光, 尹穡之攻張浚, 其將慮言路之杜塞, 而不可謂之非也。 今(謂)〔爲〕 玉堂然後可以議臺諫之失, 而他人之議臺諫, 輒欲加以凶邪之罪, 則夫安有是理哉? 亦在乎其言之邪正而已。 昔者漢 公乘興言御史飾文, 深詆以愬無辜, 宋 仁宗謂御史以黯(黮)〔昧〕 之言, 中傷大臣, 此風不可長也。 今之事何異於此? 而一唱攻珥, 擧朝靡然, 無敢持平於其間, 則又非漢、宋之所有也。 當今外警內憂天災時變, 一時竝作, 國勢岌岌有危亡之象, 而爲臣子者, 不此之憂, 乃相與媒孽〔排擯〕 , 使竭忠徇國之臣, 無所容而去, 非唯不容, 而又將文致其罪, 置諸無君誤國之科, 曾謂聖明之世, 而有此事哉? 殿下不以究極是非, 辨別忠邪爲(意)急, 而以含容兩可爲務, 則臣恐善善而無所勤, 惡惡而無所懼, 將使懷奸之徒, 有以窺測聖意之所在, 無所忌憚, 植黨專權, 常以多寡之勢, 攻擊忠賢而去之。 則忠賢之禍, 方橫挐一世, 而不可救矣。 豈不痛哉! 伏願聖明勿自菲薄, 摠攬權綱, 有以先正是非之理, 辨別忠邪之趣, 深燭幾微, 杜塞其源, 而使殿下善善惡惡之心, 沛然若決江河, 則國家幸甚。 且臣之所憂, 豈在於一人之進退哉? 善善而不能用, 惡惡而不能去, 此固齊 桓公所以懲創於郭亡也。 殿下旣知珥之無他, 又知言者之讒嫉, 而兩無所問, 將何以解中外之惑耶? 今擧朝無一人言者, 而臣以一介孤賤, 出而言之, 欲以隻手障其橫流, 亦可謂愚妄矣。 然使臣言不行, 而時論由是而平, 士林由是而和, 國家由是而濟, 則臣雖得罪, 萬萬無恨。 不然相激相勝, 惟欲盡我氣勢之所極而已, 則臣之一身, 固不足惜, 而不知國家稅駕之所也。 人臣爲國當事, 斂怨於身, 禍敗立至, 此浮沈取容之士, 所以持祿於世也。 今珥忘身任怨, 竭股肱之力, 而一朝受此中傷, 將不能保全餘生, 則異日緩急, 孰肯爲殿下任事哉? 從今具臣保位, 大小相徇, 無敢少排其意, 而悠悠(玩揭)〔玩愒〕 , 以取日闋而已, 則殿下勵精之志, 亦無所施而懈意生矣, 豈非可憂之大者乎? 臣竊見今日之事, 可言者多矣。 然朝廷四方之本也, 本之不治〔如此〕 , 臣何暇及他說哉? 且(歐陽脩)〔歐陽修〕 論韓琦、富弼之非罪, 公論所重, 不避相友之嫌。 臣珥之友也。 臣雖不及古人, 亦不敢附下罔上, 以負殿下也。 臣身到京師, 爵在高秩, 適見時弊係治亂安危之大者, 憂傷駭嘆, 久欲言之, 而疲癃紫毁, 不能赴闕, 今始言之, 臣之罪大矣。 且念臣疾病已深, 若在京而死, 則旅櫬難歸, 伏望聖慈, 放臣歸田, 使之西出國門而死, 則臣之大願也。 干冒宸嚴, 無任(競惶)〔兢惶〕 殞越之至。

答曰: "觀爾上疏, 忠憤激烈, 如使奸邪聞之, 足破其膽。 信乎! 君子一言, 爲國輕重。 且旣來在于京, 可調病, 出入經幄, 以啓沃寡昧, 未可爲遽退之計, 勿辭。" 仍傳曰: "三公命招。" 領相朴淳, 左相金貴榮, 承命詣闕。 右相鄭芝衍以病不來。 傳于領、左相曰: "以予寡昧, 不識昏昧不敏, 不知忠邪, 莫曉是非。 故頃日問卿等, 乃敢爲含糊之說, 予固已洞知卿等之心矣, 而隨後處之之敎, 則已諭於卿等矣。 今觀成渾上疏, 大臣事君之道, 果如是乎? 當初李珥之排擯誰所爲? 朋奸之類又誰耶? 其辨別以啓, 毋更含糊, 以貽國家之羞。" 回啓曰: "請面對。" 傳曰: "引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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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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