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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권, 선조 6년 10월 12일 己未 2/6 기사 / 1573년 명 만력(萬曆) 1년

이이·김우옹 등이 성학과 인심도심설을 강론하다

국역

상이 직제학 이이(李珥)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물러가서는 오지 않았는가?"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신은 병이 깊고 재주가 없어 스스로 돌아봄에 큰일을 할 수가 없는데 늠록(廩祿)만을 먹는 것은 참으로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므로 물러가서 죄를 면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감히 나아오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그대의 죄는 내가 아는 것이니 지나치게 겸양하는 말을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다시 물러가지 말도록 하라. 그대는 물러가 있어도 자주 소장(疏章)을 올렸으니 나랏일을 잊지 않는 것을 알 만하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신은 전리(田里)에 엎드려 있었으므로 성학(聖學)이 얼마나 성취되셨는지 모릅니다마는, 임금이 구중(九重)에 깊이 있으면서도 참다운 덕이 있으면 백성이 보고 느껴서 사방이 감동하는 법인데, 오늘날 백성이 초췌하고 풍속이 퇴패한 것이 이보다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신은 성학이 날로 밝아지기를 기대했었으나 끝내 보람을 보지 못하니, 신은 적이 괴이하게 여깁니다. 성질(聖質)이 영명(英明)하시어 참으로 큰일을 하실 수 있는 자질이신데, 즉위하신 처음에 대신이 잘못 보도(轉導)하여 번번이 천근한 규례를 끌어대어 선비들의 말을 물리치고 억눌렀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도록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성품이 불민하여 감히 큰일을 할 수가 없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성질이 영명하지 못하신다면 신도 절망하겠으나 이제 성질이 영명하셔도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큰 뜻을 분발(奮發)하지 못하시니, 이것이 신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필부(匹夫)가 글을 읽고 몸소 행하는 것도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에 뜻이 있는데, 더구나 전하께서는 한 나라의 백성을 맡아서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가졌고 할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나셨으니 어찌 강개히 스스로 분발할 뜻이 없겠습니까. 향약(鄕約)은 삼대(三代)의 법인데 전하께서 거행하라고 명하셨으니 참으로 근대에 없던 경사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근본이 있고 말단이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 마음을 바로하여 조정을 바루고 조정을 바루어 백관을 바루고 백관을 바루어 만민을 바루어야 하는 것인데 향약은 만인을 바루는 법입니다. 조정·백관이 바루어지지 않았는데 먼저 만민을 바루려 한다면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다스리는 것이어서 일이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이미 성전(盛典)을 거행하였으니 중지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반드시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시어 조정에 시행함으로써 정령(政令)이 다 올바른 데에서 나오게 한 뒤에야 백성이 감동되어 흥기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김우옹(金宇顒)은 아뢰기를,

"관저(關雎)146) ·인지(麟趾)147) 의 뜻이 있어야 주관(周官)148) 의 제도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몸소 행하시는 것이 지극하지 못하면 향약을 거행하더라도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 뜻을 생각하여 힘써 덕을 진취시키고 공업(功業)을 닦으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내가 스스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헤아려서 쉽사리 거행하려 하지 않았으나, 말하는 자가 그치지 않으므로 따른 것이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덕이 요순(堯舜)과 같아지기를 기다려서야 당우(唐虞)의 사업을 일으키려 한다면, 어느 때에 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덕행이 문왕(文王)과 같아진 뒤에야 비로소 관저·인지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전하께서 큰일을 할 뜻을 분발하여 성심으로 다스려지기를 바라신다면 이 일념(一念)이 곧 관저·인지의 뜻이니, 이 일념이 줄어 없어지지 않으면 주관(周官)의 법도를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인심(人心)·도심(道心)은 두 가지 마음이 아니다. 다만 마음이 발할 적에 도의(道義)로 나타나면 도심이라 하고 식색(食色)으로 나타나면 인심이라 하는데, 식색이 절도에 맞는 것도 곧 도심이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참으로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전하께서는 의리에 대하여 소견이 정밀하신데 어찌하여 이 마음을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옮기지 않으십니까. 요즈음 보건대, 천시(天時)·인사(人事)가 날로 점점 어그러져서 천변(天變)이 거듭 나타나도 예사로 여겨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강이 풀리고 인심이 흩어져서 장차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될 것이니, 위에서 큰 뜻을 분발하여 퇴폐를 정돈하지 않으신다면 토붕 와해(土崩瓦解)의 형세가 얼마 안 가서 올 것입니다."

하고, 이이가 또 아뢰기를,

"예전에는 성인(聖人)에게도 스승이 있었습니다. 스승은 반드시 자기보다 어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한마디 선한 말로써 스승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꼴베고 나무하는 자의 말도 성인이 취택하였던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는 것이다.’ 하였으니, 반드시 탕(湯)에 대해 이윤(伊尹)과 같아야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금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긴다면 선한 말이 어디로부터 들어오겠습니까. 반드시 널리 널리 들어서 선한 말을 가려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신하들이 다 나의 스승이 되고 선한 말들이 임금의 몸에 모여서 덕업이 높고 넓어지게 됩니다. 이제 전하께서 겸허하고 퇴양(退讓)하시는 것이 하교(下敎)에 나타났으니, 신은 감격스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다만 겸양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스스로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따르면 이는 선을 행할 근본이 되지만 자퇴하며 진취하지 않아 진기할 뜻이 없으면 겸양이 도리어 병폐가 되는 것입니다. 전하의 말씀은 겸허하시지만 공론을 따르지 아니하여 스스로 옳게 여기고 남을 그르게 여기시는 것으로 말하면 도리어 남을 나만 못하게 여기는 병폐가 있는 것이니, 신은 답답합니다. 오늘날 삼공(三公)은 다 인망이 있으니 어찌 의사가 전혀 없이 시위 소찬(尸位素餐)을 달가와하는 자이겠습니까. 건백(建白)하려 하여도 성지(聖旨)에 거슬려서 대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어 도리어 임금의 덕에 누가 될까 염려하므로 답답하게 말없이 날을 보내는 것입니다. 성지(聖志)가 잘 다스리기를 바라는 데에 있다면 대신도 말을 끝까지 다하고 조정의 신하들도 각각 품은 뜻을 아뢸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일은 참으로 하기 어렵다. 한 가지 폐단을 고치려 하면 한 가지 폐단이 또 생기어 폐단이 고쳐지기도 전에 도리어 그 폐해를 더하게 되니, 손발을 쓸 수 없다 하겠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그러한 까닭이 있습니다. 기강이 서지 않아서 인심이 해이하고 벼슬에 사람을 가리지 않아서 구차하게 채운 자가 많으므로 먹고 지내는 것만을 알 뿐 나랏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폐단을 고치라는 명이 한번 내려지면, 먼저 꺼리는 마음을 품고서 받들지 않을 뿐더러 또 따라서 고의로 폐단이 생기게 하니, 이것이 공을 들여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병이 없는 사람이 원기가 건실하여 비위(脾胃)가 조화를 이루게 되면 정한 음식이건 거친 음식이건 가리지 않아도 다 원기를 도울 수 있는 것이지만 원기가 지극히 허약하여 비위가 손상되면 좋은 음식을 먹어도 도리어 장부(臟腑)가 상하는 것과 같으니, 오늘날의 일이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기강이 서지 않으면 치도(治道)가 이루어질 수 없고 기강의 확립 또한 위령(威令)으로 제재할 수 없는 것이니, 위에서 먼저 성지(聖志)를 정하여 반드시 다스려지기를 기필하여 호오(好惡)·시비(是非)를 한결같이 천칙(天則)을 따라서 정연(整然)하여 어지럽지 않게 되면, 기강이 확립될 것입니다."

하고, 김우옹이 아뢰기를,

"학문에는 단서가 많으나 옛사람의 말을 강론하여 그 진의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신심(身心)에 절실한 공부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옛글에 해박하더라도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근일 보건대, 성학이 고명하여 아시는 것이 매우 광범위하지만 정사(政事)에서는 그 보람을 보지 못하니,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인 병폐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정심(正心)·성의(誠意)의 설에 대해 옛사람이 이미 극진하게 말하였는데 이제는 도리어 절실하지 않게 여깁니다. 천하의 일은 다 임금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성의·정심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다스려지기를 기대하여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옛사람의 천만 가지 말이 모두가 매우 절실하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敬)자 하나입니다. 경자는 온갖 선이 있는 곳인데, 경을 논한 말은 매우 많으나 그 가운데에서 이른바 ‘정제(整齊)하고 엄숙(嚴肅)히 하면 마음이 곧 전일(專一)해지고 마음이 전일해지면 그르고 편벽된 것이 절로 없어지므로 이것을 간직하면 천리(天理)가 밝아진다.’는 말이 치밀하고 친절하니,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다 여기에 착수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은 옳다. 정제하고 엄숙히 하는 것을 어찌하여 착수할 곳이라고 하느냐 하면, 정제 엄숙은 외면으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힘쓰기 쉽기 때문이다. 주일무적(主一無適)은 내면을 말한 것이어서 착수하기 어렵다."

하였다. 동부승지 이이(李珥)가 아뢰기를,

"정제하고 엄숙히 하는 것은 외모만을 그렇게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용의(容儀)만을 정제하고 정사(政事)는 천리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정제하고 엄숙하게 될 수 없습니다. 한 성제(漢成帝)는 조정에 임하면 목목(穆穆)한 자세로 존엄하기가 신(神)과 같았으나 정사가 전도되었으니, 어찌 경(敬)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성제의 경우는 정제하고 엄숙한 것이 아니요 사관(史官)이 용의를 잘 수식하여 말하였을 뿐이다."

하였다. 이이가 인하여 나아가 아뢰기를,

"오늘날 나라에 기강이 없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데, 이대로 구습을 답습한다면 다시 기대할 것이 없게 됩니다. 반드시 위에서 큰 뜻을 분발하여 지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인하여 대신과 백료(百僚)를 신칙하여 일시에 진기시킴으로써 기강을 세워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강은 법령·형벌로 억지로 확립시킬 수 없는 것으로 조정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공정(公正)하게 되고 사정(私情)이 행해지지 않아야 기강이 서는 것인데, 지금은 공(公)이 사(私)를 이기지 못하고 정(正)이 사(邪)를 이기지 못하니 기강이 무엇을 말미암아 서겠습니까. 예전 초 장왕(楚莊王)·제 위왕(齊威王)은 지극히 어진 임금이 아니었는데도 망하여 가는 나라를 진작시켜 마침내 부강한 사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스스로 불민하다고 핑계하시나 어찌 두 임금만 못하시겠습니까."

하였다. 김우옹이 아뢰기를,

"오늘날의 폐단은 과연 이 말과 같습니다. 공도(公道)가 행해지지 않고 사의(私意)가 횡행하여 세워진 법을 고치려 하면 법이 세워지자마자 폐단이 또 생기니, 반드시 위에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시어 마음에 천리(天理)가 유행하고 인욕(人欲)이 없어져서 크게 공변되고 지극히 바른 도리만이 행해지게 하신다면, 사람들이 다 감동 분발하여 명령이 나오면 반드시 행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뜻을 세워 정심·성의에 힘쓰신다면 사업이 요(堯)·순(舜)·탕(湯)·무(武)를 기약할 것이니, 초 장왕·제 위왕은 말할 것도 못될 것입니다."

하고, 이이가 아뢰기를,

"신의 뜻은 초 장왕·제 위왕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초 장왕·제 위왕도 분발하여 큰일을 할 수 있었는데, 성명(聖明)께서 어찌하여 하지 않으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옛부터 사람의 소견은 같지 않아서, 오활한 선비는 요순의 정치를 당장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세속 사람들은 고도(古道)가 오늘날에 결코 행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다 그릅니다. 정치는 반드시 당우(唐虞)를 기약해야 공업이 점차로 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전에 외람되이 옥당(玉堂)에 있을 때 매양 당우·삼대의 일을 아뢰면 위에서 ‘어떻게 갑자기 할 수 있겠는가?’고 답하셨는데, 그 분부가 옳았습니다. 신의 뜻도 갑자기 그 보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한 가지 일을 행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행하여 점점 아름다운 지경으로 들어가게 하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직 세종 대왕(世宗大王)의 정치가 참으로 본받을 만한데, 그 때에는 사람을 쓸 적에 상례(常例)에 얽매이지 않고 어진 사람에게 맡기고 재능 있는 사람을 부려서 각각 그 재기에 맞게 했으므로 어진 사람과 불초한 사람의 분수가 정해졌으니, 오늘날에도 반드시 사람을 가려서 벼슬을 주고 책임을 맡겨 성취를 요구해야 모든 공적이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묘년149) 에 조광조(趙光祖)가 중종의 지우(知遇)를 받아 큰일을 할 큰 희망이 있었으나 연소한 사류(士類)로서 일을 점차적으로 하지 못하여 소요를 면하지 못하였으므로 소인이 틈을 타서 사림(士林)을 해쳤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을 맡은 자들이 기묘년의 일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기묘년의 사람들이 일을 점차적으로 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으나 어찌 오늘날 전혀 일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큰일을 하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먼저 몸소 행하여 근본이 맑아져야 정치하는 방법들이 차례로 거행되어 뭇 신하들이 용동(聳動)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자기를 닦고 나서는 반드시 어진 사람을 높여야 하는데,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은 벼슬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말을 써서 일에 시행해야만이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이 됩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진실로 어진 사람을 좋아하십니다만 불러서 벼슬만 시키실 뿐 그들의 말을 써주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니, 저들이 참으로 도리를 지키는 선비라면 어찌 허례(虛禮)를 위하여 와서 벼슬하겠습니까. 또 아직 출신(出身)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재덕(才德)이 있으면 헌관(憲官)으로 쓰는 것이 국가의 항규(恒規)인데 기묘년에 실패하고부터 드디어 그 길이 막혔으니, 이것은 조종(祖宗)의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일은 참으로 그렇다. 나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전일 어진 사람을 쓰자고 말한 것은 참으로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일을 중도에 지나치게 할까 염려된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전하께서 번번이 지나칠 것만을 근심하고 오늘날 전혀 일하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중도에 지나친 일이 있으면 위에서 제재하면 되는 것이니, 어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고집하는 사람이 제재를 듣지 않고 반드시 제 뜻대로 수행하면 어찌 하겠는가?"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어찌 일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게까지야 되겠습니까.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하여 많은 선비들이 과거(科擧)만을 발신(發身)하는 길로 여기고 있으나 저 첫째 가는 인물들은 반드시 이것에 애쓰지 않습니다. 과거로 사람을 쓰는 것은 말세의 관습인 것으로 어찌 성세(盛世)의 일이겠습니까. 혹 출신하지 못한 자가 대관이 되면 좋지 못한 자도 섞여 나아갈 것이라고 의심하겠지만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론이 크게 행해진다면 이들은 반드시 마땅한 사람을 선발하게 될 것이고 공론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문사(文士) 중에도 선하지 못한 자가 많이 있어서 요지(要地)에 있게 될 것이니, 어찌 출신하지 못한 자에 대해서만 섞여 나아올 것을 근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요즈음 사대부의 버릇을 보면 한 벼슬에 오래 있으려 하지 않고 어지러이 병을 핑계하여 아침에 제배(除拜)되었다가 저녁에 옮기곤 하는데, 그 까닭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벼슬에 사람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제목(除目)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재기(才器)에 맞지 않아서 남의 비웃음을 받아 드디어 병을 핑계하여 면직되는 것을 염치로 여깁니다. 혹은 뜻 있는 선비가 일이 마음과 어그러져서 스스로 시소(尸素)를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마지못하여 병으로 사직하기도 하고 참으로 병이 있는 자도 마지못하여 사직을 청하기도 하니, 이것이 벼슬에 오래 있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위에서 참으로 정치에 뜻을 두고 정성을 기울여 아랫사람을 거느리신다면, 뭇 신하들이 감히 스스로 편리를 취하지 못하고 힘을 다하여 직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은 공도(公道)를 넓히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으니, 반드시 위에서 털끌만한 사사로운 뜻도 없으셔야 사람들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일 대간이 아뢴 것이 궁금(宮禁)·내수(內需) 등에 관계되는 일이면 위에서 반드시 굳게 물리치시므로 뭇 신하들이 전하께서 사의가 있는 것인가 의심합니다. 어찌 본받을 바이겠습니까마는, 조정의 신하는 흔히 말하지 않는 것을 잘 처신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반드시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어찌 신처럼 어리석은 자가 있겠습니까마는, 어리석은 자에게도 한 가지 쓸 만한 말은 있는 것이니 그 말도 들을 만합니다."

하였다.

  • [註 146] 관저(關雎) : 《시경(詩經)》의 편명(篇名). 주 문왕(周文王)이 숙녀(淑女)를 후비(后妃)로 얻은 것을 찬탄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관저는 후비의 덕(德)이요 풍교(風敎)의 첫머리이며 천하를 교화하여 부부(夫婦)를 바루는 뜻이라 한다.
  • [註 147] 인지(麟趾) : 《시경》의 편명 인지지(麟之趾)를 약칭한 것. 이 시는 공족(公族)의 신후(信厚)함을 노래한 것인데, 관저(關雎)의 덕화(德化)가 행해지면 천하에 비례(非禮)를 범하는 일이 없어서 후세의 공족이 신후하여 마치 신후한 짐승인 기린이 이르는 때와 같다는 뜻으로, 관저에 상응하는 것이라 한다.
  • [註 148] 주관(周官) : 《서경(書經)》의 편명. 이 편에는 주관을 지은 연유와 삼공(三公)·삼고(三孤)·육경(六卿) 등의 직무와 그들이 덕을 닦고 힘쓸 것이 기술되어 있다.
  • [註 149] 기묘년 : 1519 중종 14년.

원문

○上謂直提學李珥曰: "爾何退而不來耶?" 珥曰: "臣病深才踈, 自度不能有爲, 徒食廩祿, 實負國恩, 不如退免罪戾, 故不敢進耳。" 上曰: "爾罪予所知也。 勿爲過謙之辭, 從今不更退可也。 爾雖退居, 累上疏章, 其不忘國事可知。 "珥曰: "臣跧伏田里, 未知聖學成就幾何。 但人君雖深居九重, 若有實德, 則百姓觀感, 四方動矣。 今日民生憔悴, 風俗頹敗, 莫此爲甚。 臣佇見聖學之日章, 而終不見效, 臣竊怪焉。 聖質英明, 眞是有爲之資, 而卽位之初, 大臣輔導失宜, 每引以近規, 排抑儒者之論, 故至于今日, 不能善治耳。" 上曰: "予性不敏, 不敢有爲耳。" 珥曰: "若聖質不至英明, 則臣亦絶望矣。 今者聖質英明,而不能奮發求治之大志, 此臣所未曉也。 匹夫讀書躬行, 尙且志存濟世安民, 況殿下主一國之民, 操可爲之勢, 稟可爲之資, 寧無慷然自奮之志乎? 鄕約是三代之法, 而殿下命行之, 誠近代所無之慶也。 但凡事有本有末, 人君當正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鄕約乃正萬民之法也。 朝廷百官, 未底於正, 而先正萬民, 則捨本而治末, 事必無成。 今者已擧盛典, 不可中止, 殿下必須躬行心得, 而施及朝廷, 政令皆出於正, 然後民有所感發而興起矣。" 金宇顒曰: "有《關雎》、《麟趾》之意, 然後可以行周官之制度。 今殿下躬行未至, 則雖行鄕約, 必不能化民成俗矣。 殿下須念此意, 勉於進德修業也。" 上曰: "此言是也。 予自顧省度不能行, 不欲輕擧, 而言者不止, 故從之耳。" 珥曰: "非謂是也。 若必待德如堯、舜, 然後可興唐、虞事業, 則何時可做? 非必德行一如文王, 然後始有《關雎》、《麟趾》之意也。 今殿下奮發有爲之志, 誠心願治, 則只此一念, 便是《關雎》、《麟趾》之意也。 卽此一念不退, 則可行周官之法度矣。" 上謂侍臣曰: "人心道心。 不是二心, 只於發後, 見其爲道義, 則謂之道心, 爲食色, 則謂之人心。 食色之中節者, 亦是道心也。" 李珥對曰: "誠如上敎。 殿下於義理, 所見精矣。 何不移此心於治國乎? 近觀天時人事, 日漸乖舛, 天變疊見, 狃而不懼, 紀綱解弛, 人心渙散, 將無以爲國。 自上若不奮發大志, 整頓頹廢, 則土崩瓦解之勢, 指日可待矣。" 李珥曰: "昔者聖人亦有師。 師不必賢於己, 亦有以一言之善爲師者。 故芻蕘之言, 聖人擇焉。 孔子曰: ‘三人行, 必有我師。’ 非必若湯之於伊尹, 然後乃可謂之師也。 人君處嵩高之位, 自以爲滿足, 則善言何由而入乎? 必也, 兼聽博聞, 擇善虛受, 然後群臣皆爲我師, 而衆善合於君身, 德業以之崇廣矣。 今 殿下謙沖退讓, 形於下敎, 臣不勝感激。 但謙讓有二焉。 不自滿足, 捨己從人, 則爲善之本也。 退托不進, 無振起之意, 則謙讓反爲病矣。 殿下之言, 則謙矣。 至於不從公論, 自是非人, 則反有謂人莫己若之病, 臣竊憫焉。 今日三公皆是人望, 豈是專無意思, 甘於尸素者乎? 雖欲建白, 恐拂聖旨, 不聽大臣之言, 反爲君德之累, 故憫默度日。 若 聖志在於求治, 則大臣亦必盡言, 而廷臣各陳所懷矣。" 上曰: "我國之事, 誠難爲也。 欲改一弊, 又生一弊, 弊未能革, 反添其害, 可謂不能措手足矣。" 珥曰: "有由然矣。 紀綱不立, 人心解弛, 官不擇人, 苟充者多, 徒知餔啜, 不念國事,革弊之令一下, 先懷厭憚之心, 非徒不能奉承, 又從而故令生弊, 此所以續用不成矣。 譬如無病之人, 元氣健實, 脾胃調和, 則飮食不擇精粗, 皆可補氣。 若元氣極弱, 脾胃傷敗, 則雖食梁肉, 反傷臟腑。 今日之事, 何以異此? 紀綱不立, 則治道無由可成。 紀綱之立, 亦不可以威令制也。 自上先定聖志, 必欲致治, 好惡是非, 一循天則, 整然不紊, 則紀綱立矣。" 金宇顒曰: "學問雖多端, 講論古人之言, 收拾向裏, 以爲身心上切己工夫耳。 不然, 則雖該古書, 何益? 近日伏覩聖學高明, 所知極廣矣。 然政事間, 未見其效, 無乃有書自書我自我之病乎? 正心誠意之說, 古人言之已盡, 今還以爲不切焉。 天下之事, 皆在人主心上, 若不於誠正上得力, 則雖欲致治, 終不成矣。 古人千言萬語, 皆甚切實, 而其中最要者, 敬之一字也。 敬字萬善所在處也。 論敬之說甚多, 而其中所謂整齊嚴肅, 則心便一,一則自無非僻之干。 存此, 則天理明云者, 縝密親切, 自上自下, 皆於此有下手處耳。" 上曰: "此言然矣。 整齊嚴肅, 何以謂之有下手處? 以外言之, 故人易於用功。 主一無適, 以內言之, 難於下手耳。 同副承旨李珥曰: "整齊嚴肅, 不特外貌爲然也。 若徒整容儀, 而政事不出於天理, 則不得爲整齊嚴肅矣。 如漢 成帝臨朝穆穆, 尊嚴若神, 而政事顚錯, 豈可謂之敬乎?" 上曰: "如成帝非整齊嚴肅也。 史官但言善修容儀耳。" 珥因進曰: "今日國無紀綱, 無可爲者。 若今因循, 則更無所望。 必須自上奮發大志, 深悔旣往之誤, 因以警勑, 大臣百僚, 一時振發, 以立紀綱, 然後可以爲國, 紀綱不可以法令刑罰, 强立之也。 朝廷善善惡惡, 得其公正, 私情不行, 然後紀綱立矣。 今者公不能勝私, 正不能勝邪, 紀綱何由而立乎? 昔者楚 莊王、齊 威王, 非至賢之君也, 尙能振起垂亡之國, 終成富强之業。 今者, 殿下雖自托不敏, 豈居二君之下乎?" 宇顒曰: "今日之弊, 果如此言。 公道不行, 私意橫流, 欲立法改之, 則法纔立, 而弊又生。 必須自上奮發用功於學問上, 使方寸之地, 天理流行, 人欲遏絶, 所行只大公至正之道, 則人皆感發, 令出必行矣。 若殿下立志, 用力於正心誠意, 則事業當期堯、舜、湯、武矣。 楚莊、齊威, 不足言矣。" 珥曰: "臣意, 非取於楚莊、齊威也。 以楚莊、齊威, 尙能奮發而有爲, 聖明何以不爲乎云爾。 自古人之所見不同, 迂儒則以爲: ‘堯舜之治, 朝夕可做。’ 流俗則以爲: ‘古道決不可行於今日。’ 此皆非也。 爲治須以唐 虞爲期, 而事功則須以漸進也。 臣昔者忝冒玉堂, 每以唐、虞三代之事啓達, 則自上答曰: ‘何以猝然爲之乎?’此敎是也。 臣意非欲遽見其效也。 只欲今日行一事, 明日行一事, 漸入佳境耳。 我國之不治久矣。 惟世宗大王之政, 誠可爲法。 其時用人, 不拘常例, 任賢使能, 各當其材, 故賢不肖分定。 今日必須擇人授官, 委任責成, 然後庶績可熙矣。 己卯年間, 趙光祖見遇於中廟, 有大有爲之望, 第以年少士類作事無漸, 未免騷擾, 小人乘間, 起害士林。 至今任事者, 以己卯爲戒, 己卯作事無漸, 雖過矣, 豈不愈於今之日, 全不做事乎? 自上若欲有爲, 則必先躬行, 本原澄澈,然後爲治之具, 次第擧行, 而群下聳動矣。 旣先修己。 必須尊賢, 所謂尊賢者, 非爵之而已也。 必用其言, 施之事爲, 然後方是尊賢也。 今殿下固是好賢矣。 但見召, 而命之爵而已, 未聞用其言也。 彼誠守道之士, 則豈爲虛禮, 而來仕乎? 且未出身人, 若有才德, 則用爲憲官, 此國家恒規也。 自己卯敗乎, 遂杜其路。 此不遵祖宗之法也。" 上曰: "此事固然。 予亦知之。 前日曾以爲言用賢, 固好矣。 但不經事之人, 恐其作事過中也。" 珥曰: "殿下每憂其過, 而不憂今日之全不做事, 何耶? 若有過中之擧, 則自上當裁制矣。 豈不愈於不爲乎?" 上曰: "不然, 固執之人, 不聽其裁制, 必行己志, 則奈何?" 珥曰: "豈至於作事太過乎? 世衰道微, 紛紛士子, 只知科擧爲發身之路, 彼第一等人物, 必不屑屑於此, 科擧用人, 乃叔季之習也。 豈盛世之事乎? 或疑未出身者爲臺官, 則不好者混進, 此則不然。 若公論大行, 則此等必選其人矣。 若公論不行, 則文士亦多有不善者居要地矣。 何獨未出身者, 憂其混進乎?" 上曰: "此言是也。" 珥曰: "近觀士大夫之習, 不欲久居一職, 紛紜辭疾, 朝拜暮遷。 其故有三, 官不擇人, 故每除目之出, 人不稱器, 被人指笑, 遂以辭病得免, 爲廉恥焉。 或有有志之士, 事與心違, 自愧尸素, 不得已謝病焉。 或是眞有疾病者, 亦不得已乞解焉。 此所以居官不能久也。 自上誠志於爲治, 勵精率下, 則群臣莫敢自便, 而盡力供職矣。 今日之務, 莫急於恢張公道, 而必須自上無一毫私意, 然後使人感發矣。 近日臺諫所啓, 若涉宮禁內需等事, 則上必牢拒, 群下疑殿下之有私矣。 安所取則乎? 廷臣多以容默爲得體, 必慮其言之不見信也。 孰有如臣愚者乎? 愚者或有一得, 其言亦可聽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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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권, 선조 6년 10월 12일 己未 2/6 기사 / 1573년 명 만력(萬曆) 1년

이이·김우옹 등이 성학과 인심도심설을 강론하다

국역

상이 직제학 이이(李珥)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물러가서는 오지 않았는가?"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신은 병이 깊고 재주가 없어 스스로 돌아봄에 큰일을 할 수가 없는데 늠록(廩祿)만을 먹는 것은 참으로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므로 물러가서 죄를 면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감히 나아오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그대의 죄는 내가 아는 것이니 지나치게 겸양하는 말을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다시 물러가지 말도록 하라. 그대는 물러가 있어도 자주 소장(疏章)을 올렸으니 나랏일을 잊지 않는 것을 알 만하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신은 전리(田里)에 엎드려 있었으므로 성학(聖學)이 얼마나 성취되셨는지 모릅니다마는, 임금이 구중(九重)에 깊이 있으면서도 참다운 덕이 있으면 백성이 보고 느껴서 사방이 감동하는 법인데, 오늘날 백성이 초췌하고 풍속이 퇴패한 것이 이보다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신은 성학이 날로 밝아지기를 기대했었으나 끝내 보람을 보지 못하니, 신은 적이 괴이하게 여깁니다. 성질(聖質)이 영명(英明)하시어 참으로 큰일을 하실 수 있는 자질이신데, 즉위하신 처음에 대신이 잘못 보도(轉導)하여 번번이 천근한 규례를 끌어대어 선비들의 말을 물리치고 억눌렀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도록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성품이 불민하여 감히 큰일을 할 수가 없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성질이 영명하지 못하신다면 신도 절망하겠으나 이제 성질이 영명하셔도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큰 뜻을 분발(奮發)하지 못하시니, 이것이 신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필부(匹夫)가 글을 읽고 몸소 행하는 것도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에 뜻이 있는데, 더구나 전하께서는 한 나라의 백성을 맡아서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가졌고 할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나셨으니 어찌 강개히 스스로 분발할 뜻이 없겠습니까. 향약(鄕約)은 삼대(三代)의 법인데 전하께서 거행하라고 명하셨으니 참으로 근대에 없던 경사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근본이 있고 말단이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 마음을 바로하여 조정을 바루고 조정을 바루어 백관을 바루고 백관을 바루어 만민을 바루어야 하는 것인데 향약은 만인을 바루는 법입니다. 조정·백관이 바루어지지 않았는데 먼저 만민을 바루려 한다면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다스리는 것이어서 일이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이미 성전(盛典)을 거행하였으니 중지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반드시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시어 조정에 시행함으로써 정령(政令)이 다 올바른 데에서 나오게 한 뒤에야 백성이 감동되어 흥기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김우옹(金宇顒)은 아뢰기를,

"관저(關雎)146) ·인지(麟趾)147) 의 뜻이 있어야 주관(周官)148) 의 제도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몸소 행하시는 것이 지극하지 못하면 향약을 거행하더라도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 뜻을 생각하여 힘써 덕을 진취시키고 공업(功業)을 닦으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내가 스스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헤아려서 쉽사리 거행하려 하지 않았으나, 말하는 자가 그치지 않으므로 따른 것이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덕이 요순(堯舜)과 같아지기를 기다려서야 당우(唐虞)의 사업을 일으키려 한다면, 어느 때에 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덕행이 문왕(文王)과 같아진 뒤에야 비로소 관저·인지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전하께서 큰일을 할 뜻을 분발하여 성심으로 다스려지기를 바라신다면 이 일념(一念)이 곧 관저·인지의 뜻이니, 이 일념이 줄어 없어지지 않으면 주관(周官)의 법도를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인심(人心)·도심(道心)은 두 가지 마음이 아니다. 다만 마음이 발할 적에 도의(道義)로 나타나면 도심이라 하고 식색(食色)으로 나타나면 인심이라 하는데, 식색이 절도에 맞는 것도 곧 도심이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참으로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전하께서는 의리에 대하여 소견이 정밀하신데 어찌하여 이 마음을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옮기지 않으십니까. 요즈음 보건대, 천시(天時)·인사(人事)가 날로 점점 어그러져서 천변(天變)이 거듭 나타나도 예사로 여겨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강이 풀리고 인심이 흩어져서 장차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될 것이니, 위에서 큰 뜻을 분발하여 퇴폐를 정돈하지 않으신다면 토붕 와해(土崩瓦解)의 형세가 얼마 안 가서 올 것입니다."

하고, 이이가 또 아뢰기를,

"예전에는 성인(聖人)에게도 스승이 있었습니다. 스승은 반드시 자기보다 어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한마디 선한 말로써 스승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꼴베고 나무하는 자의 말도 성인이 취택하였던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는 것이다.’ 하였으니, 반드시 탕(湯)에 대해 이윤(伊尹)과 같아야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금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긴다면 선한 말이 어디로부터 들어오겠습니까. 반드시 널리 널리 들어서 선한 말을 가려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신하들이 다 나의 스승이 되고 선한 말들이 임금의 몸에 모여서 덕업이 높고 넓어지게 됩니다. 이제 전하께서 겸허하고 퇴양(退讓)하시는 것이 하교(下敎)에 나타났으니, 신은 감격스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다만 겸양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스스로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따르면 이는 선을 행할 근본이 되지만 자퇴하며 진취하지 않아 진기할 뜻이 없으면 겸양이 도리어 병폐가 되는 것입니다. 전하의 말씀은 겸허하시지만 공론을 따르지 아니하여 스스로 옳게 여기고 남을 그르게 여기시는 것으로 말하면 도리어 남을 나만 못하게 여기는 병폐가 있는 것이니, 신은 답답합니다. 오늘날 삼공(三公)은 다 인망이 있으니 어찌 의사가 전혀 없이 시위 소찬(尸位素餐)을 달가와하는 자이겠습니까. 건백(建白)하려 하여도 성지(聖旨)에 거슬려서 대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어 도리어 임금의 덕에 누가 될까 염려하므로 답답하게 말없이 날을 보내는 것입니다. 성지(聖志)가 잘 다스리기를 바라는 데에 있다면 대신도 말을 끝까지 다하고 조정의 신하들도 각각 품은 뜻을 아뢸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일은 참으로 하기 어렵다. 한 가지 폐단을 고치려 하면 한 가지 폐단이 또 생기어 폐단이 고쳐지기도 전에 도리어 그 폐해를 더하게 되니, 손발을 쓸 수 없다 하겠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그러한 까닭이 있습니다. 기강이 서지 않아서 인심이 해이하고 벼슬에 사람을 가리지 않아서 구차하게 채운 자가 많으므로 먹고 지내는 것만을 알 뿐 나랏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폐단을 고치라는 명이 한번 내려지면, 먼저 꺼리는 마음을 품고서 받들지 않을 뿐더러 또 따라서 고의로 폐단이 생기게 하니, 이것이 공을 들여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병이 없는 사람이 원기가 건실하여 비위(脾胃)가 조화를 이루게 되면 정한 음식이건 거친 음식이건 가리지 않아도 다 원기를 도울 수 있는 것이지만 원기가 지극히 허약하여 비위가 손상되면 좋은 음식을 먹어도 도리어 장부(臟腑)가 상하는 것과 같으니, 오늘날의 일이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기강이 서지 않으면 치도(治道)가 이루어질 수 없고 기강의 확립 또한 위령(威令)으로 제재할 수 없는 것이니, 위에서 먼저 성지(聖志)를 정하여 반드시 다스려지기를 기필하여 호오(好惡)·시비(是非)를 한결같이 천칙(天則)을 따라서 정연(整然)하여 어지럽지 않게 되면, 기강이 확립될 것입니다."

하고, 김우옹이 아뢰기를,

"학문에는 단서가 많으나 옛사람의 말을 강론하여 그 진의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신심(身心)에 절실한 공부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옛글에 해박하더라도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근일 보건대, 성학이 고명하여 아시는 것이 매우 광범위하지만 정사(政事)에서는 그 보람을 보지 못하니,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인 병폐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정심(正心)·성의(誠意)의 설에 대해 옛사람이 이미 극진하게 말하였는데 이제는 도리어 절실하지 않게 여깁니다. 천하의 일은 다 임금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성의·정심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다스려지기를 기대하여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옛사람의 천만 가지 말이 모두가 매우 절실하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敬)자 하나입니다. 경자는 온갖 선이 있는 곳인데, 경을 논한 말은 매우 많으나 그 가운데에서 이른바 ‘정제(整齊)하고 엄숙(嚴肅)히 하면 마음이 곧 전일(專一)해지고 마음이 전일해지면 그르고 편벽된 것이 절로 없어지므로 이것을 간직하면 천리(天理)가 밝아진다.’는 말이 치밀하고 친절하니,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다 여기에 착수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은 옳다. 정제하고 엄숙히 하는 것을 어찌하여 착수할 곳이라고 하느냐 하면, 정제 엄숙은 외면으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힘쓰기 쉽기 때문이다. 주일무적(主一無適)은 내면을 말한 것이어서 착수하기 어렵다."

하였다. 동부승지 이이(李珥)가 아뢰기를,

"정제하고 엄숙히 하는 것은 외모만을 그렇게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용의(容儀)만을 정제하고 정사(政事)는 천리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정제하고 엄숙하게 될 수 없습니다. 한 성제(漢成帝)는 조정에 임하면 목목(穆穆)한 자세로 존엄하기가 신(神)과 같았으나 정사가 전도되었으니, 어찌 경(敬)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성제의 경우는 정제하고 엄숙한 것이 아니요 사관(史官)이 용의를 잘 수식하여 말하였을 뿐이다."

하였다. 이이가 인하여 나아가 아뢰기를,

"오늘날 나라에 기강이 없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데, 이대로 구습을 답습한다면 다시 기대할 것이 없게 됩니다. 반드시 위에서 큰 뜻을 분발하여 지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인하여 대신과 백료(百僚)를 신칙하여 일시에 진기시킴으로써 기강을 세워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강은 법령·형벌로 억지로 확립시킬 수 없는 것으로 조정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공정(公正)하게 되고 사정(私情)이 행해지지 않아야 기강이 서는 것인데, 지금은 공(公)이 사(私)를 이기지 못하고 정(正)이 사(邪)를 이기지 못하니 기강이 무엇을 말미암아 서겠습니까. 예전 초 장왕(楚莊王)·제 위왕(齊威王)은 지극히 어진 임금이 아니었는데도 망하여 가는 나라를 진작시켜 마침내 부강한 사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스스로 불민하다고 핑계하시나 어찌 두 임금만 못하시겠습니까."

하였다. 김우옹이 아뢰기를,

"오늘날의 폐단은 과연 이 말과 같습니다. 공도(公道)가 행해지지 않고 사의(私意)가 횡행하여 세워진 법을 고치려 하면 법이 세워지자마자 폐단이 또 생기니, 반드시 위에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시어 마음에 천리(天理)가 유행하고 인욕(人欲)이 없어져서 크게 공변되고 지극히 바른 도리만이 행해지게 하신다면, 사람들이 다 감동 분발하여 명령이 나오면 반드시 행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뜻을 세워 정심·성의에 힘쓰신다면 사업이 요(堯)·순(舜)·탕(湯)·무(武)를 기약할 것이니, 초 장왕·제 위왕은 말할 것도 못될 것입니다."

하고, 이이가 아뢰기를,

"신의 뜻은 초 장왕·제 위왕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초 장왕·제 위왕도 분발하여 큰일을 할 수 있었는데, 성명(聖明)께서 어찌하여 하지 않으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옛부터 사람의 소견은 같지 않아서, 오활한 선비는 요순의 정치를 당장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세속 사람들은 고도(古道)가 오늘날에 결코 행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다 그릅니다. 정치는 반드시 당우(唐虞)를 기약해야 공업이 점차로 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전에 외람되이 옥당(玉堂)에 있을 때 매양 당우·삼대의 일을 아뢰면 위에서 ‘어떻게 갑자기 할 수 있겠는가?’고 답하셨는데, 그 분부가 옳았습니다. 신의 뜻도 갑자기 그 보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한 가지 일을 행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행하여 점점 아름다운 지경으로 들어가게 하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직 세종 대왕(世宗大王)의 정치가 참으로 본받을 만한데, 그 때에는 사람을 쓸 적에 상례(常例)에 얽매이지 않고 어진 사람에게 맡기고 재능 있는 사람을 부려서 각각 그 재기에 맞게 했으므로 어진 사람과 불초한 사람의 분수가 정해졌으니, 오늘날에도 반드시 사람을 가려서 벼슬을 주고 책임을 맡겨 성취를 요구해야 모든 공적이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묘년149) 에 조광조(趙光祖)가 중종의 지우(知遇)를 받아 큰일을 할 큰 희망이 있었으나 연소한 사류(士類)로서 일을 점차적으로 하지 못하여 소요를 면하지 못하였으므로 소인이 틈을 타서 사림(士林)을 해쳤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을 맡은 자들이 기묘년의 일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기묘년의 사람들이 일을 점차적으로 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으나 어찌 오늘날 전혀 일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큰일을 하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먼저 몸소 행하여 근본이 맑아져야 정치하는 방법들이 차례로 거행되어 뭇 신하들이 용동(聳動)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자기를 닦고 나서는 반드시 어진 사람을 높여야 하는데,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은 벼슬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말을 써서 일에 시행해야만이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이 됩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진실로 어진 사람을 좋아하십니다만 불러서 벼슬만 시키실 뿐 그들의 말을 써주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니, 저들이 참으로 도리를 지키는 선비라면 어찌 허례(虛禮)를 위하여 와서 벼슬하겠습니까. 또 아직 출신(出身)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재덕(才德)이 있으면 헌관(憲官)으로 쓰는 것이 국가의 항규(恒規)인데 기묘년에 실패하고부터 드디어 그 길이 막혔으니, 이것은 조종(祖宗)의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일은 참으로 그렇다. 나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전일 어진 사람을 쓰자고 말한 것은 참으로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일을 중도에 지나치게 할까 염려된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전하께서 번번이 지나칠 것만을 근심하고 오늘날 전혀 일하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중도에 지나친 일이 있으면 위에서 제재하면 되는 것이니, 어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고집하는 사람이 제재를 듣지 않고 반드시 제 뜻대로 수행하면 어찌 하겠는가?"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어찌 일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게까지야 되겠습니까.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하여 많은 선비들이 과거(科擧)만을 발신(發身)하는 길로 여기고 있으나 저 첫째 가는 인물들은 반드시 이것에 애쓰지 않습니다. 과거로 사람을 쓰는 것은 말세의 관습인 것으로 어찌 성세(盛世)의 일이겠습니까. 혹 출신하지 못한 자가 대관이 되면 좋지 못한 자도 섞여 나아갈 것이라고 의심하겠지만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론이 크게 행해진다면 이들은 반드시 마땅한 사람을 선발하게 될 것이고 공론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문사(文士) 중에도 선하지 못한 자가 많이 있어서 요지(要地)에 있게 될 것이니, 어찌 출신하지 못한 자에 대해서만 섞여 나아올 것을 근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요즈음 사대부의 버릇을 보면 한 벼슬에 오래 있으려 하지 않고 어지러이 병을 핑계하여 아침에 제배(除拜)되었다가 저녁에 옮기곤 하는데, 그 까닭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벼슬에 사람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제목(除目)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재기(才器)에 맞지 않아서 남의 비웃음을 받아 드디어 병을 핑계하여 면직되는 것을 염치로 여깁니다. 혹은 뜻 있는 선비가 일이 마음과 어그러져서 스스로 시소(尸素)를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마지못하여 병으로 사직하기도 하고 참으로 병이 있는 자도 마지못하여 사직을 청하기도 하니, 이것이 벼슬에 오래 있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위에서 참으로 정치에 뜻을 두고 정성을 기울여 아랫사람을 거느리신다면, 뭇 신하들이 감히 스스로 편리를 취하지 못하고 힘을 다하여 직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은 공도(公道)를 넓히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으니, 반드시 위에서 털끌만한 사사로운 뜻도 없으셔야 사람들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일 대간이 아뢴 것이 궁금(宮禁)·내수(內需) 등에 관계되는 일이면 위에서 반드시 굳게 물리치시므로 뭇 신하들이 전하께서 사의가 있는 것인가 의심합니다. 어찌 본받을 바이겠습니까마는, 조정의 신하는 흔히 말하지 않는 것을 잘 처신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반드시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어찌 신처럼 어리석은 자가 있겠습니까마는, 어리석은 자에게도 한 가지 쓸 만한 말은 있는 것이니 그 말도 들을 만합니다."

하였다.

  • [註 146] 관저(關雎) : 《시경(詩經)》의 편명(篇名). 주 문왕(周文王)이 숙녀(淑女)를 후비(后妃)로 얻은 것을 찬탄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관저는 후비의 덕(德)이요 풍교(風敎)의 첫머리이며 천하를 교화하여 부부(夫婦)를 바루는 뜻이라 한다.
  • [註 147] 인지(麟趾) : 《시경》의 편명 인지지(麟之趾)를 약칭한 것. 이 시는 공족(公族)의 신후(信厚)함을 노래한 것인데, 관저(關雎)의 덕화(德化)가 행해지면 천하에 비례(非禮)를 범하는 일이 없어서 후세의 공족이 신후하여 마치 신후한 짐승인 기린이 이르는 때와 같다는 뜻으로, 관저에 상응하는 것이라 한다.
  • [註 148] 주관(周官) : 《서경(書經)》의 편명. 이 편에는 주관을 지은 연유와 삼공(三公)·삼고(三孤)·육경(六卿) 등의 직무와 그들이 덕을 닦고 힘쓸 것이 기술되어 있다.
  • [註 149] 기묘년 : 1519 중종 14년.

원문

○上謂直提學李珥曰: "爾何退而不來耶?" 珥曰: "臣病深才踈, 自度不能有爲, 徒食廩祿, 實負國恩, 不如退免罪戾, 故不敢進耳。" 上曰: "爾罪予所知也。 勿爲過謙之辭, 從今不更退可也。 爾雖退居, 累上疏章, 其不忘國事可知。 "珥曰: "臣跧伏田里, 未知聖學成就幾何。 但人君雖深居九重, 若有實德, 則百姓觀感, 四方動矣。 今日民生憔悴, 風俗頹敗, 莫此爲甚。 臣佇見聖學之日章, 而終不見效, 臣竊怪焉。 聖質英明, 眞是有爲之資, 而卽位之初, 大臣輔導失宜, 每引以近規, 排抑儒者之論, 故至于今日, 不能善治耳。" 上曰: "予性不敏, 不敢有爲耳。" 珥曰: "若聖質不至英明, 則臣亦絶望矣。 今者聖質英明,而不能奮發求治之大志, 此臣所未曉也。 匹夫讀書躬行, 尙且志存濟世安民, 況殿下主一國之民, 操可爲之勢, 稟可爲之資, 寧無慷然自奮之志乎? 鄕約是三代之法, 而殿下命行之, 誠近代所無之慶也。 但凡事有本有末, 人君當正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鄕約乃正萬民之法也。 朝廷百官, 未底於正, 而先正萬民, 則捨本而治末, 事必無成。 今者已擧盛典, 不可中止, 殿下必須躬行心得, 而施及朝廷, 政令皆出於正, 然後民有所感發而興起矣。" 金宇顒曰: "有《關雎》、《麟趾》之意, 然後可以行周官之制度。 今殿下躬行未至, 則雖行鄕約, 必不能化民成俗矣。 殿下須念此意, 勉於進德修業也。" 上曰: "此言是也。 予自顧省度不能行, 不欲輕擧, 而言者不止, 故從之耳。" 珥曰: "非謂是也。 若必待德如堯、舜, 然後可興唐、虞事業, 則何時可做? 非必德行一如文王, 然後始有《關雎》、《麟趾》之意也。 今殿下奮發有爲之志, 誠心願治, 則只此一念, 便是《關雎》、《麟趾》之意也。 卽此一念不退, 則可行周官之法度矣。" 上謂侍臣曰: "人心道心。 不是二心, 只於發後, 見其爲道義, 則謂之道心, 爲食色, 則謂之人心。 食色之中節者, 亦是道心也。" 李珥對曰: "誠如上敎。 殿下於義理, 所見精矣。 何不移此心於治國乎? 近觀天時人事, 日漸乖舛, 天變疊見, 狃而不懼, 紀綱解弛, 人心渙散, 將無以爲國。 自上若不奮發大志, 整頓頹廢, 則土崩瓦解之勢, 指日可待矣。" 李珥曰: "昔者聖人亦有師。 師不必賢於己, 亦有以一言之善爲師者。 故芻蕘之言, 聖人擇焉。 孔子曰: ‘三人行, 必有我師。’ 非必若湯之於伊尹, 然後乃可謂之師也。 人君處嵩高之位, 自以爲滿足, 則善言何由而入乎? 必也, 兼聽博聞, 擇善虛受, 然後群臣皆爲我師, 而衆善合於君身, 德業以之崇廣矣。 今 殿下謙沖退讓, 形於下敎, 臣不勝感激。 但謙讓有二焉。 不自滿足, 捨己從人, 則爲善之本也。 退托不進, 無振起之意, 則謙讓反爲病矣。 殿下之言, 則謙矣。 至於不從公論, 自是非人, 則反有謂人莫己若之病, 臣竊憫焉。 今日三公皆是人望, 豈是專無意思, 甘於尸素者乎? 雖欲建白, 恐拂聖旨, 不聽大臣之言, 反爲君德之累, 故憫默度日。 若 聖志在於求治, 則大臣亦必盡言, 而廷臣各陳所懷矣。" 上曰: "我國之事, 誠難爲也。 欲改一弊, 又生一弊, 弊未能革, 反添其害, 可謂不能措手足矣。" 珥曰: "有由然矣。 紀綱不立, 人心解弛, 官不擇人, 苟充者多, 徒知餔啜, 不念國事,革弊之令一下, 先懷厭憚之心, 非徒不能奉承, 又從而故令生弊, 此所以續用不成矣。 譬如無病之人, 元氣健實, 脾胃調和, 則飮食不擇精粗, 皆可補氣。 若元氣極弱, 脾胃傷敗, 則雖食梁肉, 反傷臟腑。 今日之事, 何以異此? 紀綱不立, 則治道無由可成。 紀綱之立, 亦不可以威令制也。 自上先定聖志, 必欲致治, 好惡是非, 一循天則, 整然不紊, 則紀綱立矣。" 金宇顒曰: "學問雖多端, 講論古人之言, 收拾向裏, 以爲身心上切己工夫耳。 不然, 則雖該古書, 何益? 近日伏覩聖學高明, 所知極廣矣。 然政事間, 未見其效, 無乃有書自書我自我之病乎? 正心誠意之說, 古人言之已盡, 今還以爲不切焉。 天下之事, 皆在人主心上, 若不於誠正上得力, 則雖欲致治, 終不成矣。 古人千言萬語, 皆甚切實, 而其中最要者, 敬之一字也。 敬字萬善所在處也。 論敬之說甚多, 而其中所謂整齊嚴肅, 則心便一,一則自無非僻之干。 存此, 則天理明云者, 縝密親切, 自上自下, 皆於此有下手處耳。" 上曰: "此言然矣。 整齊嚴肅, 何以謂之有下手處? 以外言之, 故人易於用功。 主一無適, 以內言之, 難於下手耳。 同副承旨李珥曰: "整齊嚴肅, 不特外貌爲然也。 若徒整容儀, 而政事不出於天理, 則不得爲整齊嚴肅矣。 如漢 成帝臨朝穆穆, 尊嚴若神, 而政事顚錯, 豈可謂之敬乎?" 上曰: "如成帝非整齊嚴肅也。 史官但言善修容儀耳。" 珥因進曰: "今日國無紀綱, 無可爲者。 若今因循, 則更無所望。 必須自上奮發大志, 深悔旣往之誤, 因以警勑, 大臣百僚, 一時振發, 以立紀綱, 然後可以爲國, 紀綱不可以法令刑罰, 强立之也。 朝廷善善惡惡, 得其公正, 私情不行, 然後紀綱立矣。 今者公不能勝私, 正不能勝邪, 紀綱何由而立乎? 昔者楚 莊王、齊 威王, 非至賢之君也, 尙能振起垂亡之國, 終成富强之業。 今者, 殿下雖自托不敏, 豈居二君之下乎?" 宇顒曰: "今日之弊, 果如此言。 公道不行, 私意橫流, 欲立法改之, 則法纔立, 而弊又生。 必須自上奮發用功於學問上, 使方寸之地, 天理流行, 人欲遏絶, 所行只大公至正之道, 則人皆感發, 令出必行矣。 若殿下立志, 用力於正心誠意, 則事業當期堯、舜、湯、武矣。 楚莊、齊威, 不足言矣。" 珥曰: "臣意, 非取於楚莊、齊威也。 以楚莊、齊威, 尙能奮發而有爲, 聖明何以不爲乎云爾。 自古人之所見不同, 迂儒則以爲: ‘堯舜之治, 朝夕可做。’ 流俗則以爲: ‘古道決不可行於今日。’ 此皆非也。 爲治須以唐 虞爲期, 而事功則須以漸進也。 臣昔者忝冒玉堂, 每以唐、虞三代之事啓達, 則自上答曰: ‘何以猝然爲之乎?’此敎是也。 臣意非欲遽見其效也。 只欲今日行一事, 明日行一事, 漸入佳境耳。 我國之不治久矣。 惟世宗大王之政, 誠可爲法。 其時用人, 不拘常例, 任賢使能, 各當其材, 故賢不肖分定。 今日必須擇人授官, 委任責成, 然後庶績可熙矣。 己卯年間, 趙光祖見遇於中廟, 有大有爲之望, 第以年少士類作事無漸, 未免騷擾, 小人乘間, 起害士林。 至今任事者, 以己卯爲戒, 己卯作事無漸, 雖過矣, 豈不愈於今之日, 全不做事乎? 自上若欲有爲, 則必先躬行, 本原澄澈,然後爲治之具, 次第擧行, 而群下聳動矣。 旣先修己。 必須尊賢, 所謂尊賢者, 非爵之而已也。 必用其言, 施之事爲, 然後方是尊賢也。 今殿下固是好賢矣。 但見召, 而命之爵而已, 未聞用其言也。 彼誠守道之士, 則豈爲虛禮, 而來仕乎? 且未出身人, 若有才德, 則用爲憲官, 此國家恒規也。 自己卯敗乎, 遂杜其路。 此不遵祖宗之法也。" 上曰: "此事固然。 予亦知之。 前日曾以爲言用賢, 固好矣。 但不經事之人, 恐其作事過中也。" 珥曰: "殿下每憂其過, 而不憂今日之全不做事, 何耶? 若有過中之擧, 則自上當裁制矣。 豈不愈於不爲乎?" 上曰: "不然, 固執之人, 不聽其裁制, 必行己志, 則奈何?" 珥曰: "豈至於作事太過乎? 世衰道微, 紛紛士子, 只知科擧爲發身之路, 彼第一等人物, 必不屑屑於此, 科擧用人, 乃叔季之習也。 豈盛世之事乎? 或疑未出身者爲臺官, 則不好者混進, 此則不然。 若公論大行, 則此等必選其人矣。 若公論不行, 則文士亦多有不善者居要地矣。 何獨未出身者, 憂其混進乎?" 上曰: "此言是也。" 珥曰: "近觀士大夫之習, 不欲久居一職, 紛紜辭疾, 朝拜暮遷。 其故有三, 官不擇人, 故每除目之出, 人不稱器, 被人指笑, 遂以辭病得免, 爲廉恥焉。 或有有志之士, 事與心違, 自愧尸素, 不得已謝病焉。 或是眞有疾病者, 亦不得已乞解焉。 此所以居官不能久也。 自上誠志於爲治, 勵精率下, 則群臣莫敢自便, 而盡力供職矣。 今日之務, 莫急於恢張公道, 而必須自上無一毫私意, 然後使人感發矣。 近日臺諫所啓, 若涉宮禁內需等事, 則上必牢拒, 群下疑殿下之有私矣。 安所取則乎? 廷臣多以容默爲得體, 必慮其言之不見信也。 孰有如臣愚者乎? 愚者或有一得, 其言亦可聽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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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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