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6권, 선조 5년 10월 19일 壬申 1/2 기사 / 1572년 명 융경(隆慶) 6년
경연에서 《서경》을 강하였는데 유희춘이 강설하다
국역
오시(午時) 초 2각(二刻)에 상이 경연청에 나아갔다. 특진관 이문형(李文馨), 승지 박민헌(朴民獻), 부수찬 우성전(禹性傳)이 함께 입시하여 ‘제용작가장(帝庸作歌章)034) ’을 강하였다. 유희춘이 아뢰기를,
"임금이 어둡고 신하가 게을러서 망쳐진 일이 많습니다. 여기서 ‘총좌(叢脞)035) ’만을 말한 것은 고명자(高明者)036) 는 온유함으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임금이 어진이를 구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사람을 얻고 난 뒤에 편하여집니다. 그것은 어진이를 얻어서 책임을 맡기게 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장수에게 곤외(閫外)의 일을 위임하면 조정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정승에게 국사를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일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을 논하였기 때문에 법도를 삼가해야 한다는 것으로 경계하였습니다. 대체로 임금이 왕업을 계승하여 지키는 것은 큰 집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집터를 잡아 공사를 시작하면 자식이 이어받아 완성한다는 고인(古人)의 비유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좋은 터를 잡아 집을 지어 놓았는데 자손이 그 집을 지키지 않고 헐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면 참으로 잘못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지붕이 새고 서까래가 썩어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지킬 줄만 안다면 이 또한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서 선대의 업을 잘 다스렸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서경(書經)》의 이전(二典)과 삼모(三謨)에서 요(堯)·순(舜)·우(禹)·고요(皐陶)의 심사를 환히 볼 수 있습니다. 요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며 어진이를 등용한 것과, 순이 오전(五典)을 밝히고 현신(賢臣)에게 국사를 맡긴 일과, 고요가 오륜과 오례의 질서를 바로잡고 덕있는 자를 명하고 죄진 자를 벌하게 한 일 등은 모두가 천리(天理)로서 그 법도는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요점을 말하자면, 마음가짐은 공경으로 하고 모든 일은 중도로써 하는 것뿐입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언제나 중도로써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의(私意)에 가려서 지나치기도 하고 혹은 미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의를 버리고 중도를 얻고자 한다면 오로지 정밀하게 기미를 살피는 것이 제일이니 이는 치지(致知)의 공부가 앞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치지를 하려면 반드시 남에게서 취해야 하는데 요(堯)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상고하여 자기 고집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따랐으며, 순(舜)은 우(禹)에게 경계시키기를 ‘내가 잘못하거든 네가 보필하되 앞에서는 따르고 물러가서 헐뜯는 일은 말아라.’ 하였고, 또 《중용(中庸)》에서는 순을 칭찬하기를 ‘묻기를 좋아하며, 가까운 이의 말을 잘 살핀다.’ 하였으니, 이는 후세의 임금들이 꼭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하였다. 박민헌이 아뢰기를,
"여기서 득중(得中)을 말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중(中)이라는 것은 일의 처리가 저절로 이치에 합당한 것을 말함이지 외부에서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유희춘이 아뢰기를,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일마다 중(中)을 구하여 썼다.’ 하였으니 득(得)자의 뜻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용(中庸)》 서(序)에 ‘동정 운위(動靜云爲)가 저절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오차가 없다.’고 한 것으로 본다면 득(得)자는 과연 병통이 있는 듯합니다."
하고, 또 유희춘이 ‘그 예를 중히 여긴다.’를 해석하자 우성전이 아뢰기를,
"예를 중히 여긴다는 것은 천자로서 신하에게 절하였다는 것을 두고 예를 경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 것입니다."
하니, 유희춘이 그 말을 따랐다. 강을 마친 뒤 탑전(榻前)에 나아가 아뢰기를,
"고인들은 대사를 앞두고는 반드시 먼저 재계(齋戒)하고 다른 일은 모두 뒤로 미루었습니다. 《근사록(近思錄)》에도 ‘정력을 길러 사무에 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사신이 입경(入京)한 날이 10여 일밖에 안남았습니다. 잡다한 일은 물리치시고 시급한 용무에만 응하시어 정력을 온전히 배양하시어 응접하는 대례(大禮)에 대비하소서. 요즈음 바람이 차가우니 더욱더 건강을 돌보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유희춘을 보면서 이르기를,
"경은 중국 사신이 지은 시를 보았는가?"
하니, 아뢰기를,
"어제 보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시가 어떠하던가?"
하니, 아뢰기를,
"신은 본래 시사(詩詞)에 어둡습니다마는 육안(肉眼)으로 보기에는 참신하고 화려해 보였으니 필시 걸작품인 것 같습니다."
하였다. 박민헌이 아뢰기를,
"시(詩) 중에 겹친 말[疊語]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단치 않는 것 같습니다."
하니, 유희춘이 아뢰기를,
"어찌 큰 장인(匠人)을 도끼질 한 번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예겸(倪謙)이 사신으로 왔을 때, 처음에는 작품이 대단치 않아서 사람들이 무능하다고 쉬이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훌륭한 시부(詩賦)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고, 유희춘이 또 아뢰기를,
"듣자니, 사신은 행사에 임하는 기상이 대범해서 까다로운 사람은 아닌 듯합니다."
하였다. 말을 마치자 차례로 물러갔다.
원문
○壬申/午初二刻, 上經筵廳與特進官李文馨、承旨朴民獻、副修撰禹性傳, 皆入。 講《帝庸作歌章》。 柳希春曰: "人君昏暗而臣惰, 事廢者多矣。 此獨言叢脞者, 以高明者, 當柔克而言也。 人君勞於求賢, 逸於得人, 蓋必得賢, 而委任責成, 乃可以成功。 非惟任將於閫外, 不可從中制, 任相亦然。 又論樂於興事, 故以愼乃憲爲戒耳。 蓋人君守成, 如居大廈, 古人有父肯構、子肯堂之諭。 祖考擇吉地, 構室屋, 爲子孫者不居守, 而折毁遷徙, 則誠可謂大謬。 若屋漏椽腐, 不爲修補, 知但堅守, 是膠柱鼓瑟, 不足以爲治矣。" 又曰: "二典、二謨, 堯、舜、禹、皐陶之心事, 昭昭可見。 堯之敬天勤民擧賢, 舜之愼徽五典、擧任賢臣, 皋陶惇典庸禮, 命德討罪, 無非天理, 其揆一也。 然撮其要而言之, 則存此心以欽, 而處萬事以中而已。 世之人君, 常不能中以爲要者, 以私意爲之蔽。 或過或不及, 欲去私意而得中, 莫若惟精而惟幾, 蓋致知在先故也。 欲致知者, 必取於人, 堯稽其衆, 而舍己從人, 舜命禹曰: ‘予違汝弼, 爾無面從, 退有後言。’ 又《中庸》稱舜曰: ‘好問而好察邇言。’ 此後世人主所當體念處也。" 朴民獻曰: "此說得中, 誤矣。 中者處事之自然合理者, 非在外而求得之也。" 柳希春曰: "古人云: ‘事事求在中而用之, 亦可以得言。’ 然《中庸序》, 動靜云爲, 自無過不及之差, 則得字果似有病文。" 希春釋 ‘重其禮。’ 禹性傳曰: "重其禮, 謂以天子而拜臣, 爲不輕其禮也。" 希春卽從之。 講畢, 進榻前, 陳曰: "古人將行大事, 必先齋戒, 屛除他事。 《近思錄》亦稱, ‘愛養精力, 以應事務’ 之說。 今距天使入京, 纔十日。 乞須除雜事, 只應急務, 完養精力, 以爲應接大禮之資。 今風氣寒澟, 尤不可調護。" 上顧柳希春曰: "卿見天使所作詩乎?" 對曰: "昨日見之矣。" 上曰: "其詩如何?" 對曰: "臣本不曉詩詞, 然以肉眼觀之, 淸新華麗, 必是傑作也。" 朴民獻曰: "詩中有疊語, 似不好詩也。" 希春曰: "大匠, 豈以一斧知? 昔倪謙之來, 初間之作, 不甚佳, 人以爲無能而易之。 卒乃大奮發於詩賦。" 希春又曰: "聞天使行事氣象, 似是坦率, 不爲苛察之人。" 辭畢, 以次退。
선조 5년 (1572) 10월 19일
선조실록6권, 선조 5년 10월 19일 壬申 1/2 기사 / 1572년 명 융경(隆慶) 6년
경연에서 《서경》을 강하였는데 유희춘이 강설하다
국역
오시(午時) 초 2각(二刻)에 상이 경연청에 나아갔다. 특진관 이문형(李文馨), 승지 박민헌(朴民獻), 부수찬 우성전(禹性傳)이 함께 입시하여 ‘제용작가장(帝庸作歌章)034) ’을 강하였다. 유희춘이 아뢰기를,
"임금이 어둡고 신하가 게을러서 망쳐진 일이 많습니다. 여기서 ‘총좌(叢脞)035) ’만을 말한 것은 고명자(高明者)036) 는 온유함으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임금이 어진이를 구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사람을 얻고 난 뒤에 편하여집니다. 그것은 어진이를 얻어서 책임을 맡기게 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장수에게 곤외(閫外)의 일을 위임하면 조정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정승에게 국사를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일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을 논하였기 때문에 법도를 삼가해야 한다는 것으로 경계하였습니다. 대체로 임금이 왕업을 계승하여 지키는 것은 큰 집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집터를 잡아 공사를 시작하면 자식이 이어받아 완성한다는 고인(古人)의 비유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좋은 터를 잡아 집을 지어 놓았는데 자손이 그 집을 지키지 않고 헐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면 참으로 잘못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지붕이 새고 서까래가 썩어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지킬 줄만 안다면 이 또한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서 선대의 업을 잘 다스렸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서경(書經)》의 이전(二典)과 삼모(三謨)에서 요(堯)·순(舜)·우(禹)·고요(皐陶)의 심사를 환히 볼 수 있습니다. 요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며 어진이를 등용한 것과, 순이 오전(五典)을 밝히고 현신(賢臣)에게 국사를 맡긴 일과, 고요가 오륜과 오례의 질서를 바로잡고 덕있는 자를 명하고 죄진 자를 벌하게 한 일 등은 모두가 천리(天理)로서 그 법도는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요점을 말하자면, 마음가짐은 공경으로 하고 모든 일은 중도로써 하는 것뿐입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언제나 중도로써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의(私意)에 가려서 지나치기도 하고 혹은 미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의를 버리고 중도를 얻고자 한다면 오로지 정밀하게 기미를 살피는 것이 제일이니 이는 치지(致知)의 공부가 앞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치지를 하려면 반드시 남에게서 취해야 하는데 요(堯)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상고하여 자기 고집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따랐으며, 순(舜)은 우(禹)에게 경계시키기를 ‘내가 잘못하거든 네가 보필하되 앞에서는 따르고 물러가서 헐뜯는 일은 말아라.’ 하였고, 또 《중용(中庸)》에서는 순을 칭찬하기를 ‘묻기를 좋아하며, 가까운 이의 말을 잘 살핀다.’ 하였으니, 이는 후세의 임금들이 꼭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하였다. 박민헌이 아뢰기를,
"여기서 득중(得中)을 말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중(中)이라는 것은 일의 처리가 저절로 이치에 합당한 것을 말함이지 외부에서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유희춘이 아뢰기를,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일마다 중(中)을 구하여 썼다.’ 하였으니 득(得)자의 뜻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용(中庸)》 서(序)에 ‘동정 운위(動靜云爲)가 저절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오차가 없다.’고 한 것으로 본다면 득(得)자는 과연 병통이 있는 듯합니다."
하고, 또 유희춘이 ‘그 예를 중히 여긴다.’를 해석하자 우성전이 아뢰기를,
"예를 중히 여긴다는 것은 천자로서 신하에게 절하였다는 것을 두고 예를 경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 것입니다."
하니, 유희춘이 그 말을 따랐다. 강을 마친 뒤 탑전(榻前)에 나아가 아뢰기를,
"고인들은 대사를 앞두고는 반드시 먼저 재계(齋戒)하고 다른 일은 모두 뒤로 미루었습니다. 《근사록(近思錄)》에도 ‘정력을 길러 사무에 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사신이 입경(入京)한 날이 10여 일밖에 안남았습니다. 잡다한 일은 물리치시고 시급한 용무에만 응하시어 정력을 온전히 배양하시어 응접하는 대례(大禮)에 대비하소서. 요즈음 바람이 차가우니 더욱더 건강을 돌보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유희춘을 보면서 이르기를,
"경은 중국 사신이 지은 시를 보았는가?"
하니, 아뢰기를,
"어제 보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시가 어떠하던가?"
하니, 아뢰기를,
"신은 본래 시사(詩詞)에 어둡습니다마는 육안(肉眼)으로 보기에는 참신하고 화려해 보였으니 필시 걸작품인 것 같습니다."
하였다. 박민헌이 아뢰기를,
"시(詩) 중에 겹친 말[疊語]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단치 않는 것 같습니다."
하니, 유희춘이 아뢰기를,
"어찌 큰 장인(匠人)을 도끼질 한 번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예겸(倪謙)이 사신으로 왔을 때, 처음에는 작품이 대단치 않아서 사람들이 무능하다고 쉬이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훌륭한 시부(詩賦)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고, 유희춘이 또 아뢰기를,
"듣자니, 사신은 행사에 임하는 기상이 대범해서 까다로운 사람은 아닌 듯합니다."
하였다. 말을 마치자 차례로 물러갔다.
원문
○壬申/午初二刻, 上經筵廳與特進官李文馨、承旨朴民獻、副修撰禹性傳, 皆入。 講《帝庸作歌章》。 柳希春曰: "人君昏暗而臣惰, 事廢者多矣。 此獨言叢脞者, 以高明者, 當柔克而言也。 人君勞於求賢, 逸於得人, 蓋必得賢, 而委任責成, 乃可以成功。 非惟任將於閫外, 不可從中制, 任相亦然。 又論樂於興事, 故以愼乃憲爲戒耳。 蓋人君守成, 如居大廈, 古人有父肯構、子肯堂之諭。 祖考擇吉地, 構室屋, 爲子孫者不居守, 而折毁遷徙, 則誠可謂大謬。 若屋漏椽腐, 不爲修補, 知但堅守, 是膠柱鼓瑟, 不足以爲治矣。" 又曰: "二典、二謨, 堯、舜、禹、皐陶之心事, 昭昭可見。 堯之敬天勤民擧賢, 舜之愼徽五典、擧任賢臣, 皋陶惇典庸禮, 命德討罪, 無非天理, 其揆一也。 然撮其要而言之, 則存此心以欽, 而處萬事以中而已。 世之人君, 常不能中以爲要者, 以私意爲之蔽。 或過或不及, 欲去私意而得中, 莫若惟精而惟幾, 蓋致知在先故也。 欲致知者, 必取於人, 堯稽其衆, 而舍己從人, 舜命禹曰: ‘予違汝弼, 爾無面從, 退有後言。’ 又《中庸》稱舜曰: ‘好問而好察邇言。’ 此後世人主所當體念處也。" 朴民獻曰: "此說得中, 誤矣。 中者處事之自然合理者, 非在外而求得之也。" 柳希春曰: "古人云: ‘事事求在中而用之, 亦可以得言。’ 然《中庸序》, 動靜云爲, 自無過不及之差, 則得字果似有病文。" 希春釋 ‘重其禮。’ 禹性傳曰: "重其禮, 謂以天子而拜臣, 爲不輕其禮也。" 希春卽從之。 講畢, 進榻前, 陳曰: "古人將行大事, 必先齋戒, 屛除他事。 《近思錄》亦稱, ‘愛養精力, 以應事務’ 之說。 今距天使入京, 纔十日。 乞須除雜事, 只應急務, 完養精力, 以爲應接大禮之資。 今風氣寒澟, 尤不可調護。" 上顧柳希春曰: "卿見天使所作詩乎?" 對曰: "昨日見之矣。" 上曰: "其詩如何?" 對曰: "臣本不曉詩詞, 然以肉眼觀之, 淸新華麗, 必是傑作也。" 朴民獻曰: "詩中有疊語, 似不好詩也。" 希春曰: "大匠, 豈以一斧知? 昔倪謙之來, 初間之作, 不甚佳, 人以爲無能而易之。 卒乃大奮發於詩賦。" 希春又曰: "聞天使行事氣象, 似是坦率, 不爲苛察之人。" 辭畢, 以次退。
원본
선조 5년 (1572)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