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16권, 명종 9년 6월 4일 癸酉 3/3 기사 / 1554년 명 가정(嘉靖) 33년
대신들과 고명을 다시 받는 일에 대해 논의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사은사 권철(權轍)의 서장(書狀)에 고명(誥命)을 다시 하는 전례(前例)가 없다고 하였으니, 고명을 다시 받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보(寶)093) 를 다시 만든 예가 있으니 고명에 관한 일은 동지사(冬至使)가 갈 때 다시 해달라는 뜻을 주청(奏請)하면 되지 않겠는가? 대신들에게 물어보라."【전년 경복궁(景福宮) 대내(大內)에 불이 났을 때 대왕 대비(大王大妃)의 고명도 탔으므로 상이 사은사 권철에게 명하여 예부(禮部)에 물어 예전의 일을 상고해 오라고 하였다. 이에 장계를 보내왔는데 ‘《예부등록(禮部謄錄)》이 홍치(弘治)094) 6년095) 이전 것은 지난날 예부의 실화(失火)로 인해 흩어져 없고 6년 이후에는 고명을 다시 발급해 달라고 청한 전례가 없다. 다만 경부 세자(慶府世子)가 금보(金寶)를 잃어서 다시 지급한 예가 있다.’ 하였다.】
하였다. 삼공(三公)이 의계하니 상이 윤개의 의논을 따랐는데, 그 의논에,
"지금 예부에서 경부 세자의 금보(金寶)를 다시 지급한 예를 보니 고명을 다시 지급 받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보를 다시 만들어 본래의 차인(差人)편에 붙이는 예도 있으나 특별히 반사하는 뜻은 없는 것 같으니 이유를 갖추어 주청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고명을 작성하는 데는 일이 쉽지 않아 도장을 주조하는 것같이 빨리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지사에게 이 일을 겸하게 하면 일이 전일(專一)하지 않게 되고 또한 오래 머무르게 되는 폐가 있을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사신 한 명을 특별히 보내 동지사와 함께 강을 건너게 하면 자연히 일행이 되어 당연하게 될 것입니다. 권철이 복명(復命)할 날이 멀지 않으니 그의 말을 다시 듣고 결정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6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04면
- 【분류】외교-명(明) /
원문
○傳曰: "觀此謝恩使權轍書狀, 則無改誥命前例云。 誥命之改似難, 然旣有改寶之例, 誥命事, 無乃於冬至使之行, 以請改之意, 爲之奏請乎? 其問于大臣。" 【前年景福宮大內火時, 大王大妃誥命亦火, 故上命謝恩使權轍, 問于禮部, 考前事以來。 至是轍狀啓曰: "《禮部謄錄》, 弘治六年以上, 則往因禮部失火, 散亂無處, 六年以後, 誥命奏請改給前例, 未之有也。 只有慶府世子, 金寶失落, 改給之例。" 云。】 三公議啓, 上從尹漑之議。 其議曰: "今觀禮部改給慶府世子金寶之例, 誥命亦必無難於改給。 又有改寶, 順付元差人之例, 似無特頒之意, 可具由奏請。 但織成誥命, 爲功不易, 非如鑄寶之速成。 若令冬至使兼之, 則事不專一, 又有久留之弊。 臣意特遣一使與冬至使, 同時越江, 自爲一行, 爲當然。 權轍復命之日不遠, 更聽其言, 定奪何如?"
- 【태백산사고본】 11책 16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04면
- 【분류】외교-명(明) /
명종 9년 (1554) 6월 4일
명종실록16권, 명종 9년 6월 4일 癸酉 3/3 기사 / 1554년 명 가정(嘉靖) 33년
대신들과 고명을 다시 받는 일에 대해 논의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사은사 권철(權轍)의 서장(書狀)에 고명(誥命)을 다시 하는 전례(前例)가 없다고 하였으니, 고명을 다시 받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보(寶)093) 를 다시 만든 예가 있으니 고명에 관한 일은 동지사(冬至使)가 갈 때 다시 해달라는 뜻을 주청(奏請)하면 되지 않겠는가? 대신들에게 물어보라."【전년 경복궁(景福宮) 대내(大內)에 불이 났을 때 대왕 대비(大王大妃)의 고명도 탔으므로 상이 사은사 권철에게 명하여 예부(禮部)에 물어 예전의 일을 상고해 오라고 하였다. 이에 장계를 보내왔는데 ‘《예부등록(禮部謄錄)》이 홍치(弘治)094) 6년095) 이전 것은 지난날 예부의 실화(失火)로 인해 흩어져 없고 6년 이후에는 고명을 다시 발급해 달라고 청한 전례가 없다. 다만 경부 세자(慶府世子)가 금보(金寶)를 잃어서 다시 지급한 예가 있다.’ 하였다.】
하였다. 삼공(三公)이 의계하니 상이 윤개의 의논을 따랐는데, 그 의논에,
"지금 예부에서 경부 세자의 금보(金寶)를 다시 지급한 예를 보니 고명을 다시 지급 받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보를 다시 만들어 본래의 차인(差人)편에 붙이는 예도 있으나 특별히 반사하는 뜻은 없는 것 같으니 이유를 갖추어 주청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고명을 작성하는 데는 일이 쉽지 않아 도장을 주조하는 것같이 빨리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지사에게 이 일을 겸하게 하면 일이 전일(專一)하지 않게 되고 또한 오래 머무르게 되는 폐가 있을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사신 한 명을 특별히 보내 동지사와 함께 강을 건너게 하면 자연히 일행이 되어 당연하게 될 것입니다. 권철이 복명(復命)할 날이 멀지 않으니 그의 말을 다시 듣고 결정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6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04면
- 【분류】외교-명(明) /
원문
○傳曰: "觀此謝恩使權轍書狀, 則無改誥命前例云。 誥命之改似難, 然旣有改寶之例, 誥命事, 無乃於冬至使之行, 以請改之意, 爲之奏請乎? 其問于大臣。" 【前年景福宮大內火時, 大王大妃誥命亦火, 故上命謝恩使權轍, 問于禮部, 考前事以來。 至是轍狀啓曰: "《禮部謄錄》, 弘治六年以上, 則往因禮部失火, 散亂無處, 六年以後, 誥命奏請改給前例, 未之有也。 只有慶府世子, 金寶失落, 改給之例。" 云。】 三公議啓, 上從尹漑之議。 其議曰: "今觀禮部改給慶府世子金寶之例, 誥命亦必無難於改給。 又有改寶, 順付元差人之例, 似無特頒之意, 可具由奏請。 但織成誥命, 爲功不易, 非如鑄寶之速成。 若令冬至使兼之, 則事不專一, 又有久留之弊。 臣意特遣一使與冬至使, 同時越江, 自爲一行, 爲當然。 權轍復命之日不遠, 更聽其言, 定奪何如?"
- 【태백산사고본】 11책 16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204면
- 【분류】외교-명(明) /
원본
명종 9년 (1554)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