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13권, 명종 7년 8월 14일 甲子 3/3 기사 / 1552년 명 가정(嘉靖) 31년
지중추부사 김인손의 졸기
국역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인손(金麟孫)이 졸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김인손은 성품이 추솔하고 인색하였는데 조정에 있은 지 40여 년 동안 일컬을 만한 일은 한가지도 없었다. 시세에 따라 아부하여 좋은 벼슬을 얻었고, 만년에는 함경 감사(咸鏡監司)가 되어 많은 화물(貨物)을 김안로(金安老)에게 보내어 환심을 샀다. 김안로는 이를 매우 고맙게 여겨 병조 판서로 추천하였는데 정부(政府)로 옮겨 오면서 점차 용사(用事)하기 시작했다. 김안로가 실각할 때에 이르러는 16년 동안 산직(散職)에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늠록(廩祿)을 쓰지 않고 모두 모았으며, 모든 궤유물(饋遺物)은 반드시 썩을 때까지 두었다가 먹을수 없게 된 연후에야 땅에다 버렸으니, 옛날 수전로(守錢虜)란 김인손 같은 자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0책 13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98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원문
명종 7년 (1552) 8월 14일
명종실록13권, 명종 7년 8월 14일 甲子 3/3 기사 / 1552년 명 가정(嘉靖) 31년
지중추부사 김인손의 졸기
국역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인손(金麟孫)이 졸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김인손은 성품이 추솔하고 인색하였는데 조정에 있은 지 40여 년 동안 일컬을 만한 일은 한가지도 없었다. 시세에 따라 아부하여 좋은 벼슬을 얻었고, 만년에는 함경 감사(咸鏡監司)가 되어 많은 화물(貨物)을 김안로(金安老)에게 보내어 환심을 샀다. 김안로는 이를 매우 고맙게 여겨 병조 판서로 추천하였는데 정부(政府)로 옮겨 오면서 점차 용사(用事)하기 시작했다. 김안로가 실각할 때에 이르러는 16년 동안 산직(散職)에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늠록(廩祿)을 쓰지 않고 모두 모았으며, 모든 궤유물(饋遺物)은 반드시 썩을 때까지 두었다가 먹을수 없게 된 연후에야 땅에다 버렸으니, 옛날 수전로(守錢虜)란 김인손 같은 자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0책 13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98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원문
원본
명종 7년 (1552)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