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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3권, 명종 1년 5월 29일 甲申 1/3 기사 / 1546년 명 가정(嘉靖) 25년

근일의 재변과 관련하여 대신들을 명소하고 사정전 처마 아래서 연방하다

국역

삼공·육경과 양사 및 홍문관의 장관을 명소(命召)하여 사정전(思政殿) 처마 아래에서 연방했다. 자전이 하교하기를,

"요즈음 재변이 예사롭지 않아서 내 뜻을 조정에 말하려고 한 지가 오래였으나, 윤원로의 일 때문에 매우 부끄러워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내가 박복하여 얼른 죽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유충(幼沖)한 주상(主上)과 함께 이 대기(大器)를 받아 주야로 걱정하니 망극할 뿐이다.

지난번 우박의 재변도 이미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 또 수재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요즈음 어려운 형편으로 인하여 대간(臺諫)의 말을 흔쾌히 따르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이와 같은 재변이 이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민생(民生)의 구황(救荒)은 또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더욱 막막하다."

하였다. 이기가 아뢰기를,

"이는 모두 음(陰)이 성하여 그러한 것이니, 마땅히 측신(側身)하여 수행(修行)할 뿐입니다. 윤원로의 일은 조금도 상(上)에 관계되지 않았으니 개의하지 마소서. 시종(侍從)은 반드시 윤원로를 죄주려고 하였기 때문에 아뢴 것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하교하기를,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궁중에서 어떻게 아겠는가. 윤춘년(尹春年)의 상소를 보고 비로소 윤원로의 실정을 알았으니 지극히 한심스럽다. 천지 신령(天地神靈)은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나 나의 심정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조정이 역적의 술수에 빠져 ‘중종(中宗)이 걱정하시어 병이 들었다.’고 말하였으니 나를 의심하는 일념이 아마도 사람 마음속에서 아직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두 분 사이를 놀라서 동요하게 했다는 등의 말은 내가 면대했을 때 모두 논변(論辨)했었는데 지금 차자에 다시 말하였다. 신자(臣子)는 군부(君父)의 헛된 허물을 씻어주어야 하는데 감히 다시 말하였으니 만일 이것을 사책(史冊)에 쓴다면 악명(惡名)을 면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대신의 말을 듣고서 시종이 윤원로의 악을 논한 것은 고의성이 없는 데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하였다. 신광한(申光漢)이 아뢰기를,

"요즈음 재변이 이와 같으니 재변에 응답하는 길은 반드시 정성과 공경으로 해야 하고 정성과 공경의 실상은 바로 덕을 닦는 것입니다. 이 뜻은 대신이 모두 아뢰었으니 체념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대체로 성품 중에도 음양의 양단(兩端)이 있고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이 각각 분수가 있으니, 천리의 분수가 많으면 양이 되고 인욕의 분수가 많으면 음이 되어 서로 소장(消長)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을 살펴보면 음양 양단이 서로 이기고 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선(善)을 두고 악(惡)을 제거하면 양이 저절로 성하여질 것입니다. 미루어서 조정에서도 선정(善政)을 많이 하고 악정(惡政)을 제거하면, 저절로 음이 성할 걱정이 없어지고 재변도 사라질 것입니다.

옛말에 ‘곧은 사람을 들어쓰고 굽은 자를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고, 굽은 자를 들어쓰고 곧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취하여 쓰고 버리는 데에 민심이 복종하고 복종하지 않는 것이 결정됩니다. 임금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잘 분별하여 버리거나 취하면 착한 사람이 많아서 조정이 청명해지고 조정이 청명하면 사방이 바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문신(文臣)이 수령(守令)이 되면 반드시 스스로는 귀양이나 가는 것처럼 부끄럽게 여겼고 남들도 비천하게 여겼습니다. 지금은 소신이 지난번 이조 판서로 있을 때 문신으로 수령이 되기를 구하는 자가 너무 많아서 신이 법을 들어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문신으로 수령이 된 자가 많으니, 민생이 마땅히 소복(蘇復)되어야 하나 백성의 곤폐(困弊)는 지금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9년의 저축이 없으면 국가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나 지금 국가의 저축이 고갈된 것을 상께서 어떻게 자세히 알겠습니까? 시기를 보아서 백성을 부리고 절약하여 쓰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옛 법도입니다. 절제하고 법도를 삼가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임권(任權)은 아뢰기를,

"위의 하교가 망극하시니 말씀 한 마디가 재변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이 있어야 되는 것이니 허문(虛文)만으로는 하늘의 꾸짖음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지진과 우박·수재(水災)가 끊이지 않으니 하늘이 재변을 보이심이 지극합니다. 비록 이런 재변이 아닐지라도 국가가 액(厄)을 만난 것이 지금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두 임금이 계속해서 승하하시고 내외의 창고가 고갈되었으니 지극히 우려됩니다. 다만 주상(主上)께서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나시며 학문이 고명(高明)하시니 우환 중에도 큰 다행입니다.

그리고 재변이 일어남은 음이 성하고 양이 미세한 때문입니다. 모든 크고 작은 정치를 조금도 사정(私情)을 따르지 말고 지극히 공정하게 처리하시면 일은 조화를 얻고 음양이 화할 것이니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치화(治化)가 일어나면 어찌 재변이 일어나겠습니까.

만일 상하의 사이에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끼어든다면 모든 일이 화합할 수 없는 것이니, 아래에 좋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어떻게 펼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 홍문관이 올린 차자(箚子)로 인하여 위에서 엄하게 끊으시니 온 조정이 놀라고 두려워 합니다. 말하기를 꺼리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니 어찌 국가의 큰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폐조(廢朝)125) 를 거쳤기 때문에 환란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체로 제 몸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위에서 비록 모두 말하라고 분부하시더라도 오히려 감히 다 말하지 못할 터인데 더구나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면 누가 다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민생(民生)의 안락과 근심은 수령(守令)에게 달렸고, 수령의 현부(賢否)는 감사(監司)에게 달렸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어진 재상을 구하여 총괄하여 다스리게 하고 어진 사람을 들어쓰고 능한 사람에게 맡겨 각각 마땅한 자리를 얻게 하고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사람은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없게 한 뒤에야 치화(治化)가 일어나고 백성도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부터 군자와 소인은 서로가 소장(消長)하므로 치세(治世)라 해서 소인이 없을 수 없고 난세(亂世)라 해서 군자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이 분별하지 못할까를 걱정할 뿐입니다. 분별하는 방법은 인주(人主)의 마음 하나에 달렸을 뿐이니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심(私心)을 제거하고 학문을 밝혀 마음 다스리는 근본을 다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조금도 소홀함이 없으면, 그 효험이 어찌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데 그칠 뿐이겠습니까. 정치에 대한 일은 짧은 시간에 모두 진달할 수 없고 오늘 신의 소망은 성상의 마음 하나에 있을 뿐이니, 모든 일을 공평 정대(公平正大)하게 처리하여 잠시라도 간단(間斷)이 없게 하소서."

하니, 자전이 하교하기를,

"이른바 군자를 나오게 하고 소인을 물러가게 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위에서 아랫사람을 어찌 외모만 가지고 알 수 있겠는가? 동료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니 만일 사특한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분별해야 할 것이다. 기미가 있을 때 일찍 분별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변란이 있어도 손쓸 방도가 없을 것이다. 조광조(趙光祖)·김안로(金安老) 등의 일은 내가 어찌 우려하지 않겠는가. 다만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것은 옳으나 분별하기가 몹시 어려우니 내 지극히 걱정된다."

하였다. 최보한(崔輔漢)이 아뢰기를,

"지난번 홍문관의 일은 위에서 ‘악명이 후세에 드리워질까 걱정되어 부끄럽다.’ 하셨는데,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두 위에 실덕(失德)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윤원로의 죄를 논한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에 문자(文字)사이의 어세(語勢)를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했으니 위에서 의심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홍문관의 제신(諸臣)은 모두 밖에 있어서 알지 못했습니다. 위에서 악명을 얻을까 하여 수치심을 가지시는 것은 신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신은 10여 년이나 오래도록 대간(臺諫)과 시종(侍從)의 대열에 있었으니 그때의 물정(物情)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의 근원은 김안로에게서 나왔는데 정유년126) 연간에 윤임(尹任)의 흉심(凶心)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김안로와 체결하여 말의 실마리를 지어내었으니, 대개 소윤(小尹)이라고 이름지어 사림(士林)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그의 계책이었습니다. 윤임 등은 이미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또 동궁(東宮)이 후사(後嗣)가 없는 것을 보고 역수(曆數)가 마침내 대군(大君)에게로 돌아가면 자신을 보전할 수 없으리라 여겨 참으로 불측(不測)한 모의를 한 것입니다. 소신은 그때 헌납(獻納)으로 있었으니, 그 정상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윤임 등은 늘 동궁을 모해(謀害)한다는 죄목으로 소윤을 얽어서 공격했는데, 마침 조정이 그 술수를 알아차리고 김안로를 제거했습니다. 그후 윤임은 그래도 사림(士林)을 공격하려 하였고, 점점 군상(君上)에게까지 미쳐서 일이 정상이 소상하게 드러났으니 중종인들 어찌 모르셨겠습니까?

중종은 많은 사변(事變)을 겪으신 분이니 우려하심이 어찌 적다 하겠습니까. 중종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신은 경연(經筵)에서 사색(辭色)에 나타난 것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중종은 이미 그의 흉심(凶心)을 아셨으므로 늘 근심하셨고 신들도 민망스럽게 여겼습니다. 중종이 이미 알고 있었으니 자전인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중종이 근심하신 것은 모두 흉인 때문이었으니 어찌 자전에 관여되겠습니까. 신만이 아는 것이 아니고 조정의 뜻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중종의 승하(升遐)하시던 날 증세가 또 심질(心疾)인 듯했습니다. 대명(大命)은 비록 하늘에 있다고는 하나 신자로서는 애통하고 박절한 심정이 망극하여 다투어 흉인의 살점을 먹으려 하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인데 이것이 어찌 자전(慈殿)의 악명에 관계되겠습니까. 모르는 자는 혹 모를지라도 조정에서 누가 모르기에 도리어 부끄럽다는 분부를 하십니까? 신은 그 때문에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윤임이 늘 소윤이 동궁을 모해한다고 한 말은 삼척 동자(三尺童子)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윤임이 이런 마음을 가졌으므로 지금 이미 복죄(伏罪)하였는데 만일 조신(朝臣)에게 이런 마음이 있으면 이는 그의 당류(黨類)입니다. 지금 어찌 다시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위의 잘못은 일식과 월식 같아서 사람이 모두 보고 있으니 악명을 얻어 부끄러워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신은 아마도 위에서 잘못 알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뇌정(雷霆) 같은 위엄을 뉘라서 두려워하지 않기에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준엄한 전교를 내리십니까? 요즈음 사기(士氣)가 꺾이어서 비록 석연한 분부를 자주 내리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오히려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종사(宗社)의 존망이 달린 것인데 신이 병 때문에 경연에 들지 못하였으므로 아뢰지 못했습니다. 신하로서 과연 이런 마음을 가졌다면 이는 곧 그의 여당(餘黨)이니, 참으로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반드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윤임이 만약 흉심(凶心)이 없었으면 원로가 충격을 주고자 해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윤임은 본래 흉패하고 사나운 사람인데 원로가 경박하여 항상 대내(大內)를 빙자하여 을러대고 위협했으므로 윤임은 항상 중종이 죄를 주실까 두려워서 불안해 하였고, 신들을 볼때마다 ‘나는 너의 덕으로 살았다.’ 하였습니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한 것은 모두 경박한 윤원로가 충격을 주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윤원로의 죄는 위에서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조정이 그 정상(情狀)을 모두 알고 있으므로 아뢴 것입니다. 비록 법을 바르게 적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위에서 그의 흉악함을 알고 계시니, 만약 이 마음을 잊지 않으시면 조정은 안정될 것입니다.

윤임이 그와 친밀한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과 일찍이 말하기를 ‘동궁이 위태롭다. 불행하게 동궁에서 불이 났다.’ 하였습니다. 윤임이 또 말을 지어 ‘이것은 사람이 불을 놓은 것이다.’ 하고 양사(兩司)와 홍문관에 부탁하여 실화한 근본을 추궁하도록 계청(啓請)하였으니 그가 추궁하려고 한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그 당시 신은 대사헌으로 있었으니 그 뜻을 모르지 않았으나 동궁이 계셨으므로 미안해 하실까 염려되어 아뢰지 못한 것입니다. 윤임은 대죄할 때에도 ‘소신을 정죄(定罪)하면 조정이 안정될 것이다.’ 하였으니, 그의 말이 이처럼 패역(悖逆)한데도 중종은 죄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자는 윤원로이니, 위에서 그것을 아시면 종사의 복입니다. 그리고 윤임의 흉모(凶謀)가 저처럼 참혹한데 종사가 이제까지 부지된 것은 참으로 천지와 조종(祖宗)이 도우신 덕이고 인력으로 미칠 바가 아닙니다."

하니, 자전(慈殿)이 이르기를,

"조정의 생각이 옳다. 정유년의 일은 비록 김안로(金安老)가 하였다고 하나 허경(許坰)의 초사(招辭)를 보면 윤임의 소행이 분명하다. 윤임은 그때 동궁(東宮)에 글을 보내 변명하려고 했으나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천명(天命)만을 기다렸다. 그러므로 중종(中宗)께 아뢸 적마다 ‘윤임은 어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렇게 내간(內間)은 다른 말이 없이 조용했으나 복성군(福城君) 때부터 늘 동궁을 칭탁하여 사람을 해친 자가 많았고 이종익(李宗翼)도 바른 말을 하다가 죽었다. 【중종 임진년(1532) 3월 1일에 보인다.】 한 나라의 신민(臣民)으로 누가 동궁을 위하지 않기에 꼭 동궁을 위한다 하고 사람을 해친단 말인가? 중종은 어찌 모르셨겠는가.

갑진년127) 10월에 중종께서 ‘이 사람이 뜻을 얻으면 좋지 않다.’ 하고 죄를 주려고 하시다가 놓아주자는 조종 의논을 따라 실행하지 않았다. 내간에는 전혀 윤임의 죄악을 말하지 않았으니, 조정이 만약 나의 심정을 안다면 의심해서는 안된다. 내가 이미 설명을 했는데 지금 다시 말을 했기 때문에 의심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상하의 뜻을 알았으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당초에 의심한 것은 후세에서 나의 뜻을 모를까 염려해서였다.

동궁에 불난 뒤에 과연 불측(不測)한 말이 있었다. 구수담(具壽耼)이 경연에서 대윤(大尹)이니 소윤(小尹)이니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언단(言端)의 출처는 이로 인하여 알 수 있으나 인종(仁宗)이 극간(極諫)하여서 추궁하지 않았다. 아는 자는 더러 아나 모르는 자는 그 술수에 빠져서 의심스런 것으로 의심을 전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지극히 한심스럽다. 중종께서는 ‘만일 김안로를 다스리듯이 하였다면 반드시 난(亂)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고 생각하셨는데, 불의에 승하하셨으니 더욱 망극하기 그지없다."

하였다. 허자(許磁)가 아뢰기를,

"말하기를 꺼리는 것은 오늘날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되었습니다. 소신은 40년 동안이나 중종의 큰 은혜를 입었으니 중종의 과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폐단을 진달하여 오늘의 경계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중종 때 치화(治化)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궐내(闕內)가 엄하지 않아 여알(女謁)이 성했기 때문입니다. 미천한 사람들이 궁중을 드나드는 일이 많아 궐내의 말을 누설하여 시정(市井)에 퍼뜨리니 정치에 방해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꺼리니, 누가 감히 진달하겠습니까? 대체로 미천한 사람들은 궁중에 드나드는 것을 스스로 행운과 영광으로 여겨 내외에 자랑하니 궁금(宮禁)은 저절로 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마땅히 이런 폐단을 통찰하시어 잡인을 출입하지 못하게 하시면 치화가 바루어질 것입니다."

하니, 자전이 아뢰기를,

"중종 조(中宗朝)에 이런 말이 과연 없지 않았다. 중종께서 늘 통감하시고 궁중을 엄하게 단속하였으나 이 폐단이 없어지지 않았다. 궁중을 엄히 단속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각사(各司)의 비자(婢子)도 출입하는 자가 있으니 어찌 말을 누설하는 폐단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궁내(宮內)에 헛소문도 많이 퍼지는 것이다. 지난해 국상 때 왕대비께서 수라를 드시지 않아 거의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말도 밖에 떠돌았다 하니, 이것을 보면 다른 말의 출입도 짐작할 수 있다."

하였다. 홍섬(洪暹)이 아뢰기를,

"주상은 학문이 고명(高明)하십니다. 보호하고 도와드리는 것은 대신의 책무이지만 항시 좌우에서 모실 수는 없습니다. 자전은 주상에게 어머니로서의 의리가 있고 임금으로서의 의리가 있으니 보양(輔養)하는 책임은 자전에게 있습니다. 비록 총명하고 뛰어난 지혜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보양해야 덕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임금의 학문이 밝고 밝지 못함과 성덕(聖德)을 이루고 이루지 못함은 모두 자전께 달려 있습니다. 잠시도 그침없이 조석으로 강론하소서."

하니, 자전이 이르기를,

"성덕을 보양하라는 뜻은 망극하다. 그리고 대간이 윤원로와 구엄의 죄를 속히 결정하지 않은 것을 온당치 못하게 여기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윤원로는 지친(至親)이라 차마 죄를 주지 못했고, 구엄은 폐주(廢主)의 제사를 주관하니 역시 그 제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죄를 주지 못했으니 나도 미안스럽게 생각한다. 유충(幼沖)한 임금을 대신하여 어진이를 구하고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나의 뜻이니 경의 보양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내 뜻과 부합된다. 다만 《시경(詩經)》에 ‘처음에는 누구나 잘하지만 끝까지 지키는 자는 드물다.’ 하였으니, 후일(後日)에 태만해질까 걱정이 된다."

하였는데, 홍섬이 아뢰기를,

"여알(女謁)의 일은 허자가 벌써 모두 아뢰었습니다. 중종 때 신도 대간으로 있으면서 자주 들었고 중종께서도 엄하게 다스리려다가 못하였습니다. 궁궐은 정치의 근본이니 바로잡지 못하면 정치를 잘할 수 없습니다. 주상이 즉위하신 초기이니 이와 같은 일은 엄하게 단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상이 이와 같이 할 뿐 아니라 자전도 더욱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니, 어찌 나의 다스림을 해칠 수 있겠는가 하여 소홀히 여기지 마소서."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여러 신하들을 연방(延訪)하고 재변을 두려워하여 구언(求言)할 때에 말하는 자들이 모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는 풍이 있다 하여 은근히 돕고 영합(迎合)하여 못하는 말이 없었으니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속인 죄를 하늘이 어찌 용서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8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420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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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命召三公、六卿、兩司及弘文館長官, 延訪于思政殿簷下。 慈殿敎曰: "近來災變非常, 欲道予意于朝廷久矣, 但以元老事, 多有慙愧, 未敢出言。 予以薄福之人, 不能死亡, 以至于此。 今與幼沖主上, 受此大器, 晝夜憂慮, 曷有其極。 向來雨雹之災, 已爲非常, 今又水災, 一至此極, 罔知所措。 近因事勢之難, 未得快從臺諫之言, 無奈因此以致此變乎? 且民生救荒, 又何以措置? 尤爲罔極。" 李芑啓曰: "此皆陰盛而然也, 但當側身修行而已。 元老事, 無毫髮干涉於上, 須勿介意。 侍從之人, 必欲罪元老故啓之。 豈有他意?" 慈殿敎曰: "朝廷間事, 在宮中何以知之? 見春年之疏, 始知元老之情, 至爲寒心。 天地神靈, 雖必有知, 予懷不可以不語。 朝廷陷於賊術, 謂中宗憂慮成疾, 則疑我一念, 恐亦未殄於人心也。 其驚動兩間等語, 予於面對時, 已盡論辨, 而今於箚子, 乃復言之。 爲臣子者, 其於君父之虛過, 思欲雪之, 而乃敢復言, 若以此書諸史冊, 則恐不免惡名, 及聞大臣之言, 知侍從論元老之惡, 出於無情。 更有何疑?" 申光漢曰: "近來災變如此, 應災之道, 其必以誠敬, 誠敬之實, 修德是也。 此意大臣已盡啓之, 須體念幸甚。 大抵吾性之中, 亦有陰陽兩端, 天理人欲, 各有分數, 天理分數多則爲陽, 人欲分數多則爲陰, 而相爲消長。 察吾之胸中, 知陰陽兩端之相勝負, 存善去惡, 則陽自盛矣。 推而至於朝廷善政多, 而惡政去, 則自無陰盛之患, 而災自消矣。 古云: ‘擧直措諸枉, 則民服之; 擧枉措諸直, 則民不服。’ 用舍之際, 民心之服不服係焉。 人君苟能辨善惡而去取之, 則善人多而朝廷淸明, 朝廷淸明, 而四方正矣。 且古者文臣爲守令, 則必自恥之, 如竄謫而人亦鄙之矣。 今則小臣頃爲吏曹判書時, 文臣而求爲守令者甚多, 臣乃擧法言之。 而近來文臣, 多爲守令, 民生宜可以蘇復, 而民之困弊, 無甚於此時。 且國無九年之蓄, 則國非其國, 今者國儲之虛竭, 自上何以詳知? 使民以時, 節用而愛民, 古之道也。 須制節謹度幸甚。" 任權曰: "上敎罔極, 一言可以弭災矣。 然有實然後可矣, 徒以虛文, 則不可以應天矣。 近來地震、雨雹、水災不絶, 天之示變極矣。 雖非此災變, 國家厄會, 旣無如此時。 二聖相繼賓天, 內外倉庫虛竭, 極爲可憂矣。 但主上聰明睿知, 聖學高明, 至憂之中, 有大幸也。 且災變之作, 由於陰盛陽微。 凡大小政治, 少無循私, 大公至正, 則事得其和而陰陽和, 陰陽和而治化興, 安有災變之作乎? 若於上下之間, 少有疑阻之心, 則事皆不得其和, 而下雖有嘉謀嘉猷, 亦安得展布乎? 前因弘文館上箚, 上敎嚴絶, 擧朝驚懼。 將有以言爲諱之弊, 豈非國家之大不幸? 臣已經廢朝, 多見患難。 凡人之情, 皆愛其身。 自上雖敎以盡言, 猶不敢盡, 況少有疑阻, 則誰敢盡言乎? 且民生休戚, 係於守令, 分別守令之賢否, 在於監司。 然必責賢相而摠治之, 擧賢任能, 各得其當, 而使愚不肖, 不得容於其間, 然後治化可興, 而民亦得蒙其實惠矣。 且自古君子小人, 相爲消長, 故治世不能無小人, 亂世不能無君子, 惟患人君, 不能辨別耳。 辨別之道, 只在人主一心, 君能正其心, 以去其私意之蔽, 明學問以盡其治心之本, 屋漏之中, 無少敢忽, 則其效豈止於辨別君子小人而已乎? 至於政治間事, 於一日數刻之間, 不暇盡達, 臣之所望於今日, 只在聖上一心而已, 須盡其公平正大, 而無少間斷焉。" 慈殿敎曰: "所謂進君子退小人之言是矣。 上之於下, 豈可以外貌而知之? 同僚自可知之, 如有邪慝之人, 固當辨之。 若於幾微之際, 不早辨之, 則終有變亂而不及圖矣。 趙光祖、金安老等事, 予豈不慮乎? 但君子小人, 辨之可矣, 而辨之至難, 予甚憂之。" 崔輔漢曰: "向者弘文館之事, 上敎以爲 ‘恐有惡名垂於後世也。 可愧恥。’ 云, 臣意以爲不然也。 此非皆上爲有失德也, 不過論元老之罪, 而文字語勢, 未及詳察, 自上疑之亦宜矣。 然弘文館諸臣, 皆在外不知者也。 上以惡名, 懷羞恥之心者, 臣意恐爲誤矣。 小臣十餘年間, 長在臺諫、侍從之列, 其時物情, 備嘗知之。 惟此言根, 出於金安老, 丁酉年間尹任之兇心已著矣。 締結安老, 造爲言端, 大槪名之以小尹, 攻治士林, 乃其計也。 尹任等, 旣有是心, 而又見東宮無嗣, 恐曆數終歸於大君, 則慮其不能自保, 實有不測之謀矣。 小臣其時爲獻納, 盡得其情。 任等每以謀害東宮, 搆罪於小尹而攻之, 適朝廷悟其術而除去安老。 其後尹任, 猶欲攻治士林, 漸及君上, 事狀昭著, 中宗豈不知之? 中宗經歷事變亦多矣, 其爲憂念, 夫豈少哉? 中宗雖不明言之, 臣於經筵, 累見辭色矣。 中宗旣知其兇心, 故常有憂念, 臣等亦嘗憫焉。 中宗旣已知之, 則慈殿亦豈不知之? 中宗之憂念, 皆以兇人故也, 何預於慈殿哉? 非獨臣知之, 朝廷之意, 莫不如此。 中宗升遐之日, 證勢又似心證。 大命雖在於天, 然臣子哀痛迫切之情, 何極? 爭欲食其兇人之肉, 此自然之理也, 是豈關於慈殿之惡名乎? 不知者雖或不知, 朝廷有誰不知, 而反有愧恥之敎? 臣故曰誤矣。 尹任每稱小尹, 謀害東宮之說, 三尺童子, 亦皆知之矣。 任有是心, 故今已伏罪, 朝臣若又有此心, 則是其黨類也。 今豈復有可疑? 如日月之蝕, 人皆見之, 有何惡名愧恥事乎? 臣恐自上省得之誤也。 且雷霆之威, 人孰不畏之? 傳敎峻絶, 至以爲無君上云。 近來士氣摧挫, 釋然之敎, 雖屢下矣, 人皆疑畏, 尙有不信。 此宗社存亡之所係, 而臣以鍼灸, 不入經筵, 故不能啓之。 人臣若果有是心, 則是卽餘黨也, 實有是心者, 則必不有是言矣。 尹任若無兇心, 則元老雖欲激之, 不可得矣。 任本兇悖麤悍之人, 而元老輕薄, 每憑內恐嚇, 故任常畏中宗加罪, 不能自安, 每見臣等則曰: ‘吾以汝德而生。’ 其畏死皆元老之輕薄, 激而成之也。 元老之罪, 自上亦豈不知之? 朝廷明知其情狀, 故啓之。 雖不能正法, 自上旣知其惡, 若無忘此心, 則朝廷安矣。 尹任嘗與其所親密柳灌、柳仁淑等語之曰: ‘東宮危矣。 不幸東宮失火。’ 任又造言曰: ‘此乃人火之。’ 乃囑兩司、弘文館, 啓請推其失火之根, 其欲推之者, 慮固有在。 其時臣爲大司憲, 非不知其意也, 但以東宮在矣, 慮東宮之未安而不敢啓之。 任於待罪時, 亦曰: ‘定罪小臣, 則朝廷安矣。’ 其悖逆之言如此, 而中宗不爲罪之。 然其養成者, 元老也, 自上知之, 則宗社之福也。 且任之兇謀, 如彼其慘也, 宗社之扶持至此, 實天地祖宗之默佑, 而有非人力之所能及也。" 慈殿曰: "朝廷計之是矣。 丁酉年間, 雖曰安老爲之, 而以許坰之招見之, 則尹任之所爲判然。 任於其時, 通書東宮, 欲爲自明矣, 予則知而不知, 只待天命。 故每啓於中宗曰: ‘尹任豈有其心?’ 以此內間, 則寂無他說矣, 但自福城時, 每托東宮害人者多, 李宗翼亦以直言死。 【見中宗壬辰三月初一日。】 一國臣民, 孰不爲東宮, 而必曰爲東宮而害人? 中宗有何不知? 甲辰年十月, 中宗以爲, 此人得志, 則不可, 乃欲罪之, 而因朝廷論, 釋不果。 內間專不言尹任之惡, 朝廷若知吾情, 則不當疑之。 予已論說, 而今復言之, 故疑之。 今則旣知上下之情, 更何疑乎? 當初疑之者, 恐後世不知吾情耳。 東宮失火後, 果有不測之言。 具壽聃, 於經筵言大、小尹之說, 言端之出, 因此可知, 而仁宗極諫而不推之耳。 知者雖或知之, 不知者陷於其術, 而以疑傳疑, 以至今日, 極爲寒心。 中宗以爲若治之如安老, 則必不至於亂矣, 而不意賓天, 罔極之意尤甚。" 許磁曰: "以言爲諱, 非自今日, 其來久矣。 小臣涵養 中宗四十年鴻澤, 恩至重矣, 非欲言中宗之過失也, 欲陳其時之弊, 以爲今日之戒也。 中宗時治化不興者, 以宮裏不嚴, 而女謁盛矣。 冗雜之人, 多入宮中, 漏泄九重之言, 頒布市井之間, 妨政害治, 莫此爲甚。 而人皆以言爲諱, 孰敢達之? 大凡賤類, 出入宮中, 則自幸恩光, 矜誇於內外, 宮禁自至於不嚴矣。 今當洞知此弊, 拒絶雜人, 則治化正矣。" 慈殿曰: "中宗朝, 此言果不無矣。 中宗每以爲憾, 痛嚴宮闈, 而不能無此弊。 嚴宮闈之言是矣。 各司婢子, 亦有出入者, 豈無洩言之弊? 是以宮內之虛言, 亦多騰播。 去年初喪時, 王大妃不進食物, 將至死亡之言, 亦出乎外云, 以此可占他言之出入矣。" 洪暹曰: "主上學問高明。 攝輔雖大臣之責, 而不能常侍於左右。 慈殿於主上, 有母義, 有君義, 輔養之責, 不在於慈殿乎? 雖聰明睿智之資, 亦必輔養而成德。 今日聖學之明不明, 聖德之成不成, 皆在慈殿。 伏願朝夕講論, 無少間斷焉。" 慈殿曰: "輔養聖德之意, 曷有其極? 且臺諫以不快定元老、具渰之罪, 有未便之意, 固當矣。 但元老至親, 不忍加罪, 具渰主廢主 之祀, 亦不忍絶其祀, 故不得加罪, 予亦有未安之心焉。 攝幼沖之主, 求賢納諫, 固予之意也, 卿所謂輔養之言, 正合予意。 但《詩》云: ‘靡不有初, 鮮克有終。’ 猶恐怠於後日也。" 洪暹曰: "女謁事, 許磁已盡啓之。 中宗時, 臣亦以臺諫屢聞之, 中宗亦欲痛治而不能。 宮闈, 出治之本也, 不正則何能善治乎? 主上嗣服之初, 如此之事, 不可不嚴絶。 非但主上如此, 慈殿尤當嚴治之也, 毋以爲其何能害吾之治而敢忽焉。"

【史臣曰: "迎訪群臣, 畏災求言, 而言者皆以爲下有陵上之風, 陰助逢迎, 無所不至, 欺天罔上之罪, 天豈赦之?"】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8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420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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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3권, 명종 1년 5월 29일 甲申 1/3 기사 / 1546년 명 가정(嘉靖) 25년

근일의 재변과 관련하여 대신들을 명소하고 사정전 처마 아래서 연방하다

국역

삼공·육경과 양사 및 홍문관의 장관을 명소(命召)하여 사정전(思政殿) 처마 아래에서 연방했다. 자전이 하교하기를,

"요즈음 재변이 예사롭지 않아서 내 뜻을 조정에 말하려고 한 지가 오래였으나, 윤원로의 일 때문에 매우 부끄러워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내가 박복하여 얼른 죽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유충(幼沖)한 주상(主上)과 함께 이 대기(大器)를 받아 주야로 걱정하니 망극할 뿐이다.

지난번 우박의 재변도 이미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 또 수재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요즈음 어려운 형편으로 인하여 대간(臺諫)의 말을 흔쾌히 따르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이와 같은 재변이 이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민생(民生)의 구황(救荒)은 또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더욱 막막하다."

하였다. 이기가 아뢰기를,

"이는 모두 음(陰)이 성하여 그러한 것이니, 마땅히 측신(側身)하여 수행(修行)할 뿐입니다. 윤원로의 일은 조금도 상(上)에 관계되지 않았으니 개의하지 마소서. 시종(侍從)은 반드시 윤원로를 죄주려고 하였기 때문에 아뢴 것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하니, 자전이 하교하기를,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궁중에서 어떻게 아겠는가. 윤춘년(尹春年)의 상소를 보고 비로소 윤원로의 실정을 알았으니 지극히 한심스럽다. 천지 신령(天地神靈)은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나 나의 심정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조정이 역적의 술수에 빠져 ‘중종(中宗)이 걱정하시어 병이 들었다.’고 말하였으니 나를 의심하는 일념이 아마도 사람 마음속에서 아직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두 분 사이를 놀라서 동요하게 했다는 등의 말은 내가 면대했을 때 모두 논변(論辨)했었는데 지금 차자에 다시 말하였다. 신자(臣子)는 군부(君父)의 헛된 허물을 씻어주어야 하는데 감히 다시 말하였으니 만일 이것을 사책(史冊)에 쓴다면 악명(惡名)을 면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대신의 말을 듣고서 시종이 윤원로의 악을 논한 것은 고의성이 없는 데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하였다. 신광한(申光漢)이 아뢰기를,

"요즈음 재변이 이와 같으니 재변에 응답하는 길은 반드시 정성과 공경으로 해야 하고 정성과 공경의 실상은 바로 덕을 닦는 것입니다. 이 뜻은 대신이 모두 아뢰었으니 체념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대체로 성품 중에도 음양의 양단(兩端)이 있고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이 각각 분수가 있으니, 천리의 분수가 많으면 양이 되고 인욕의 분수가 많으면 음이 되어 서로 소장(消長)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을 살펴보면 음양 양단이 서로 이기고 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선(善)을 두고 악(惡)을 제거하면 양이 저절로 성하여질 것입니다. 미루어서 조정에서도 선정(善政)을 많이 하고 악정(惡政)을 제거하면, 저절로 음이 성할 걱정이 없어지고 재변도 사라질 것입니다.

옛말에 ‘곧은 사람을 들어쓰고 굽은 자를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고, 굽은 자를 들어쓰고 곧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취하여 쓰고 버리는 데에 민심이 복종하고 복종하지 않는 것이 결정됩니다. 임금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잘 분별하여 버리거나 취하면 착한 사람이 많아서 조정이 청명해지고 조정이 청명하면 사방이 바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문신(文臣)이 수령(守令)이 되면 반드시 스스로는 귀양이나 가는 것처럼 부끄럽게 여겼고 남들도 비천하게 여겼습니다. 지금은 소신이 지난번 이조 판서로 있을 때 문신으로 수령이 되기를 구하는 자가 너무 많아서 신이 법을 들어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문신으로 수령이 된 자가 많으니, 민생이 마땅히 소복(蘇復)되어야 하나 백성의 곤폐(困弊)는 지금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9년의 저축이 없으면 국가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나 지금 국가의 저축이 고갈된 것을 상께서 어떻게 자세히 알겠습니까? 시기를 보아서 백성을 부리고 절약하여 쓰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옛 법도입니다. 절제하고 법도를 삼가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임권(任權)은 아뢰기를,

"위의 하교가 망극하시니 말씀 한 마디가 재변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이 있어야 되는 것이니 허문(虛文)만으로는 하늘의 꾸짖음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지진과 우박·수재(水災)가 끊이지 않으니 하늘이 재변을 보이심이 지극합니다. 비록 이런 재변이 아닐지라도 국가가 액(厄)을 만난 것이 지금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두 임금이 계속해서 승하하시고 내외의 창고가 고갈되었으니 지극히 우려됩니다. 다만 주상(主上)께서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나시며 학문이 고명(高明)하시니 우환 중에도 큰 다행입니다.

그리고 재변이 일어남은 음이 성하고 양이 미세한 때문입니다. 모든 크고 작은 정치를 조금도 사정(私情)을 따르지 말고 지극히 공정하게 처리하시면 일은 조화를 얻고 음양이 화할 것이니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치화(治化)가 일어나면 어찌 재변이 일어나겠습니까.

만일 상하의 사이에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끼어든다면 모든 일이 화합할 수 없는 것이니, 아래에 좋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어떻게 펼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 홍문관이 올린 차자(箚子)로 인하여 위에서 엄하게 끊으시니 온 조정이 놀라고 두려워 합니다. 말하기를 꺼리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니 어찌 국가의 큰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폐조(廢朝)125) 를 거쳤기 때문에 환란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체로 제 몸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위에서 비록 모두 말하라고 분부하시더라도 오히려 감히 다 말하지 못할 터인데 더구나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면 누가 다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민생(民生)의 안락과 근심은 수령(守令)에게 달렸고, 수령의 현부(賢否)는 감사(監司)에게 달렸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어진 재상을 구하여 총괄하여 다스리게 하고 어진 사람을 들어쓰고 능한 사람에게 맡겨 각각 마땅한 자리를 얻게 하고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사람은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없게 한 뒤에야 치화(治化)가 일어나고 백성도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부터 군자와 소인은 서로가 소장(消長)하므로 치세(治世)라 해서 소인이 없을 수 없고 난세(亂世)라 해서 군자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이 분별하지 못할까를 걱정할 뿐입니다. 분별하는 방법은 인주(人主)의 마음 하나에 달렸을 뿐이니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심(私心)을 제거하고 학문을 밝혀 마음 다스리는 근본을 다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조금도 소홀함이 없으면, 그 효험이 어찌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데 그칠 뿐이겠습니까. 정치에 대한 일은 짧은 시간에 모두 진달할 수 없고 오늘 신의 소망은 성상의 마음 하나에 있을 뿐이니, 모든 일을 공평 정대(公平正大)하게 처리하여 잠시라도 간단(間斷)이 없게 하소서."

하니, 자전이 하교하기를,

"이른바 군자를 나오게 하고 소인을 물러가게 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위에서 아랫사람을 어찌 외모만 가지고 알 수 있겠는가? 동료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니 만일 사특한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분별해야 할 것이다. 기미가 있을 때 일찍 분별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변란이 있어도 손쓸 방도가 없을 것이다. 조광조(趙光祖)·김안로(金安老) 등의 일은 내가 어찌 우려하지 않겠는가. 다만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것은 옳으나 분별하기가 몹시 어려우니 내 지극히 걱정된다."

하였다. 최보한(崔輔漢)이 아뢰기를,

"지난번 홍문관의 일은 위에서 ‘악명이 후세에 드리워질까 걱정되어 부끄럽다.’ 하셨는데,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두 위에 실덕(失德)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윤원로의 죄를 논한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에 문자(文字)사이의 어세(語勢)를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했으니 위에서 의심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홍문관의 제신(諸臣)은 모두 밖에 있어서 알지 못했습니다. 위에서 악명을 얻을까 하여 수치심을 가지시는 것은 신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신은 10여 년이나 오래도록 대간(臺諫)과 시종(侍從)의 대열에 있었으니 그때의 물정(物情)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의 근원은 김안로에게서 나왔는데 정유년126) 연간에 윤임(尹任)의 흉심(凶心)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김안로와 체결하여 말의 실마리를 지어내었으니, 대개 소윤(小尹)이라고 이름지어 사림(士林)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그의 계책이었습니다. 윤임 등은 이미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또 동궁(東宮)이 후사(後嗣)가 없는 것을 보고 역수(曆數)가 마침내 대군(大君)에게로 돌아가면 자신을 보전할 수 없으리라 여겨 참으로 불측(不測)한 모의를 한 것입니다. 소신은 그때 헌납(獻納)으로 있었으니, 그 정상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윤임 등은 늘 동궁을 모해(謀害)한다는 죄목으로 소윤을 얽어서 공격했는데, 마침 조정이 그 술수를 알아차리고 김안로를 제거했습니다. 그후 윤임은 그래도 사림(士林)을 공격하려 하였고, 점점 군상(君上)에게까지 미쳐서 일이 정상이 소상하게 드러났으니 중종인들 어찌 모르셨겠습니까?

중종은 많은 사변(事變)을 겪으신 분이니 우려하심이 어찌 적다 하겠습니까. 중종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신은 경연(經筵)에서 사색(辭色)에 나타난 것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중종은 이미 그의 흉심(凶心)을 아셨으므로 늘 근심하셨고 신들도 민망스럽게 여겼습니다. 중종이 이미 알고 있었으니 자전인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중종이 근심하신 것은 모두 흉인 때문이었으니 어찌 자전에 관여되겠습니까. 신만이 아는 것이 아니고 조정의 뜻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중종의 승하(升遐)하시던 날 증세가 또 심질(心疾)인 듯했습니다. 대명(大命)은 비록 하늘에 있다고는 하나 신자로서는 애통하고 박절한 심정이 망극하여 다투어 흉인의 살점을 먹으려 하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인데 이것이 어찌 자전(慈殿)의 악명에 관계되겠습니까. 모르는 자는 혹 모를지라도 조정에서 누가 모르기에 도리어 부끄럽다는 분부를 하십니까? 신은 그 때문에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윤임이 늘 소윤이 동궁을 모해한다고 한 말은 삼척 동자(三尺童子)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윤임이 이런 마음을 가졌으므로 지금 이미 복죄(伏罪)하였는데 만일 조신(朝臣)에게 이런 마음이 있으면 이는 그의 당류(黨類)입니다. 지금 어찌 다시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위의 잘못은 일식과 월식 같아서 사람이 모두 보고 있으니 악명을 얻어 부끄러워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신은 아마도 위에서 잘못 알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뇌정(雷霆) 같은 위엄을 뉘라서 두려워하지 않기에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준엄한 전교를 내리십니까? 요즈음 사기(士氣)가 꺾이어서 비록 석연한 분부를 자주 내리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오히려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종사(宗社)의 존망이 달린 것인데 신이 병 때문에 경연에 들지 못하였으므로 아뢰지 못했습니다. 신하로서 과연 이런 마음을 가졌다면 이는 곧 그의 여당(餘黨)이니, 참으로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반드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윤임이 만약 흉심(凶心)이 없었으면 원로가 충격을 주고자 해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윤임은 본래 흉패하고 사나운 사람인데 원로가 경박하여 항상 대내(大內)를 빙자하여 을러대고 위협했으므로 윤임은 항상 중종이 죄를 주실까 두려워서 불안해 하였고, 신들을 볼때마다 ‘나는 너의 덕으로 살았다.’ 하였습니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한 것은 모두 경박한 윤원로가 충격을 주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윤원로의 죄는 위에서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조정이 그 정상(情狀)을 모두 알고 있으므로 아뢴 것입니다. 비록 법을 바르게 적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위에서 그의 흉악함을 알고 계시니, 만약 이 마음을 잊지 않으시면 조정은 안정될 것입니다.

윤임이 그와 친밀한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과 일찍이 말하기를 ‘동궁이 위태롭다. 불행하게 동궁에서 불이 났다.’ 하였습니다. 윤임이 또 말을 지어 ‘이것은 사람이 불을 놓은 것이다.’ 하고 양사(兩司)와 홍문관에 부탁하여 실화한 근본을 추궁하도록 계청(啓請)하였으니 그가 추궁하려고 한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그 당시 신은 대사헌으로 있었으니 그 뜻을 모르지 않았으나 동궁이 계셨으므로 미안해 하실까 염려되어 아뢰지 못한 것입니다. 윤임은 대죄할 때에도 ‘소신을 정죄(定罪)하면 조정이 안정될 것이다.’ 하였으니, 그의 말이 이처럼 패역(悖逆)한데도 중종은 죄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자는 윤원로이니, 위에서 그것을 아시면 종사의 복입니다. 그리고 윤임의 흉모(凶謀)가 저처럼 참혹한데 종사가 이제까지 부지된 것은 참으로 천지와 조종(祖宗)이 도우신 덕이고 인력으로 미칠 바가 아닙니다."

하니, 자전(慈殿)이 이르기를,

"조정의 생각이 옳다. 정유년의 일은 비록 김안로(金安老)가 하였다고 하나 허경(許坰)의 초사(招辭)를 보면 윤임의 소행이 분명하다. 윤임은 그때 동궁(東宮)에 글을 보내 변명하려고 했으나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천명(天命)만을 기다렸다. 그러므로 중종(中宗)께 아뢸 적마다 ‘윤임은 어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렇게 내간(內間)은 다른 말이 없이 조용했으나 복성군(福城君) 때부터 늘 동궁을 칭탁하여 사람을 해친 자가 많았고 이종익(李宗翼)도 바른 말을 하다가 죽었다. 【중종 임진년(1532) 3월 1일에 보인다.】 한 나라의 신민(臣民)으로 누가 동궁을 위하지 않기에 꼭 동궁을 위한다 하고 사람을 해친단 말인가? 중종은 어찌 모르셨겠는가.

갑진년127) 10월에 중종께서 ‘이 사람이 뜻을 얻으면 좋지 않다.’ 하고 죄를 주려고 하시다가 놓아주자는 조종 의논을 따라 실행하지 않았다. 내간에는 전혀 윤임의 죄악을 말하지 않았으니, 조정이 만약 나의 심정을 안다면 의심해서는 안된다. 내가 이미 설명을 했는데 지금 다시 말을 했기 때문에 의심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상하의 뜻을 알았으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당초에 의심한 것은 후세에서 나의 뜻을 모를까 염려해서였다.

동궁에 불난 뒤에 과연 불측(不測)한 말이 있었다. 구수담(具壽耼)이 경연에서 대윤(大尹)이니 소윤(小尹)이니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언단(言端)의 출처는 이로 인하여 알 수 있으나 인종(仁宗)이 극간(極諫)하여서 추궁하지 않았다. 아는 자는 더러 아나 모르는 자는 그 술수에 빠져서 의심스런 것으로 의심을 전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지극히 한심스럽다. 중종께서는 ‘만일 김안로를 다스리듯이 하였다면 반드시 난(亂)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고 생각하셨는데, 불의에 승하하셨으니 더욱 망극하기 그지없다."

하였다. 허자(許磁)가 아뢰기를,

"말하기를 꺼리는 것은 오늘날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되었습니다. 소신은 40년 동안이나 중종의 큰 은혜를 입었으니 중종의 과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폐단을 진달하여 오늘의 경계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중종 때 치화(治化)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궐내(闕內)가 엄하지 않아 여알(女謁)이 성했기 때문입니다. 미천한 사람들이 궁중을 드나드는 일이 많아 궐내의 말을 누설하여 시정(市井)에 퍼뜨리니 정치에 방해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꺼리니, 누가 감히 진달하겠습니까? 대체로 미천한 사람들은 궁중에 드나드는 것을 스스로 행운과 영광으로 여겨 내외에 자랑하니 궁금(宮禁)은 저절로 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마땅히 이런 폐단을 통찰하시어 잡인을 출입하지 못하게 하시면 치화가 바루어질 것입니다."

하니, 자전이 아뢰기를,

"중종 조(中宗朝)에 이런 말이 과연 없지 않았다. 중종께서 늘 통감하시고 궁중을 엄하게 단속하였으나 이 폐단이 없어지지 않았다. 궁중을 엄히 단속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각사(各司)의 비자(婢子)도 출입하는 자가 있으니 어찌 말을 누설하는 폐단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궁내(宮內)에 헛소문도 많이 퍼지는 것이다. 지난해 국상 때 왕대비께서 수라를 드시지 않아 거의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말도 밖에 떠돌았다 하니, 이것을 보면 다른 말의 출입도 짐작할 수 있다."

하였다. 홍섬(洪暹)이 아뢰기를,

"주상은 학문이 고명(高明)하십니다. 보호하고 도와드리는 것은 대신의 책무이지만 항시 좌우에서 모실 수는 없습니다. 자전은 주상에게 어머니로서의 의리가 있고 임금으로서의 의리가 있으니 보양(輔養)하는 책임은 자전에게 있습니다. 비록 총명하고 뛰어난 지혜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보양해야 덕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임금의 학문이 밝고 밝지 못함과 성덕(聖德)을 이루고 이루지 못함은 모두 자전께 달려 있습니다. 잠시도 그침없이 조석으로 강론하소서."

하니, 자전이 이르기를,

"성덕을 보양하라는 뜻은 망극하다. 그리고 대간이 윤원로와 구엄의 죄를 속히 결정하지 않은 것을 온당치 못하게 여기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윤원로는 지친(至親)이라 차마 죄를 주지 못했고, 구엄은 폐주(廢主)의 제사를 주관하니 역시 그 제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죄를 주지 못했으니 나도 미안스럽게 생각한다. 유충(幼沖)한 임금을 대신하여 어진이를 구하고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나의 뜻이니 경의 보양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내 뜻과 부합된다. 다만 《시경(詩經)》에 ‘처음에는 누구나 잘하지만 끝까지 지키는 자는 드물다.’ 하였으니, 후일(後日)에 태만해질까 걱정이 된다."

하였는데, 홍섬이 아뢰기를,

"여알(女謁)의 일은 허자가 벌써 모두 아뢰었습니다. 중종 때 신도 대간으로 있으면서 자주 들었고 중종께서도 엄하게 다스리려다가 못하였습니다. 궁궐은 정치의 근본이니 바로잡지 못하면 정치를 잘할 수 없습니다. 주상이 즉위하신 초기이니 이와 같은 일은 엄하게 단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상이 이와 같이 할 뿐 아니라 자전도 더욱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니, 어찌 나의 다스림을 해칠 수 있겠는가 하여 소홀히 여기지 마소서."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여러 신하들을 연방(延訪)하고 재변을 두려워하여 구언(求言)할 때에 말하는 자들이 모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는 풍이 있다 하여 은근히 돕고 영합(迎合)하여 못하는 말이 없었으니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속인 죄를 하늘이 어찌 용서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8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420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원문

○甲申/命召三公、六卿、兩司及弘文館長官, 延訪于思政殿簷下。 慈殿敎曰: "近來災變非常, 欲道予意于朝廷久矣, 但以元老事, 多有慙愧, 未敢出言。 予以薄福之人, 不能死亡, 以至于此。 今與幼沖主上, 受此大器, 晝夜憂慮, 曷有其極。 向來雨雹之災, 已爲非常, 今又水災, 一至此極, 罔知所措。 近因事勢之難, 未得快從臺諫之言, 無奈因此以致此變乎? 且民生救荒, 又何以措置? 尤爲罔極。" 李芑啓曰: "此皆陰盛而然也, 但當側身修行而已。 元老事, 無毫髮干涉於上, 須勿介意。 侍從之人, 必欲罪元老故啓之。 豈有他意?" 慈殿敎曰: "朝廷間事, 在宮中何以知之? 見春年之疏, 始知元老之情, 至爲寒心。 天地神靈, 雖必有知, 予懷不可以不語。 朝廷陷於賊術, 謂中宗憂慮成疾, 則疑我一念, 恐亦未殄於人心也。 其驚動兩間等語, 予於面對時, 已盡論辨, 而今於箚子, 乃復言之。 爲臣子者, 其於君父之虛過, 思欲雪之, 而乃敢復言, 若以此書諸史冊, 則恐不免惡名, 及聞大臣之言, 知侍從論元老之惡, 出於無情。 更有何疑?" 申光漢曰: "近來災變如此, 應災之道, 其必以誠敬, 誠敬之實, 修德是也。 此意大臣已盡啓之, 須體念幸甚。 大抵吾性之中, 亦有陰陽兩端, 天理人欲, 各有分數, 天理分數多則爲陽, 人欲分數多則爲陰, 而相爲消長。 察吾之胸中, 知陰陽兩端之相勝負, 存善去惡, 則陽自盛矣。 推而至於朝廷善政多, 而惡政去, 則自無陰盛之患, 而災自消矣。 古云: ‘擧直措諸枉, 則民服之; 擧枉措諸直, 則民不服。’ 用舍之際, 民心之服不服係焉。 人君苟能辨善惡而去取之, 則善人多而朝廷淸明, 朝廷淸明, 而四方正矣。 且古者文臣爲守令, 則必自恥之, 如竄謫而人亦鄙之矣。 今則小臣頃爲吏曹判書時, 文臣而求爲守令者甚多, 臣乃擧法言之。 而近來文臣, 多爲守令, 民生宜可以蘇復, 而民之困弊, 無甚於此時。 且國無九年之蓄, 則國非其國, 今者國儲之虛竭, 自上何以詳知? 使民以時, 節用而愛民, 古之道也。 須制節謹度幸甚。" 任權曰: "上敎罔極, 一言可以弭災矣。 然有實然後可矣, 徒以虛文, 則不可以應天矣。 近來地震、雨雹、水災不絶, 天之示變極矣。 雖非此災變, 國家厄會, 旣無如此時。 二聖相繼賓天, 內外倉庫虛竭, 極爲可憂矣。 但主上聰明睿知, 聖學高明, 至憂之中, 有大幸也。 且災變之作, 由於陰盛陽微。 凡大小政治, 少無循私, 大公至正, 則事得其和而陰陽和, 陰陽和而治化興, 安有災變之作乎? 若於上下之間, 少有疑阻之心, 則事皆不得其和, 而下雖有嘉謀嘉猷, 亦安得展布乎? 前因弘文館上箚, 上敎嚴絶, 擧朝驚懼。 將有以言爲諱之弊, 豈非國家之大不幸? 臣已經廢朝, 多見患難。 凡人之情, 皆愛其身。 自上雖敎以盡言, 猶不敢盡, 況少有疑阻, 則誰敢盡言乎? 且民生休戚, 係於守令, 分別守令之賢否, 在於監司。 然必責賢相而摠治之, 擧賢任能, 各得其當, 而使愚不肖, 不得容於其間, 然後治化可興, 而民亦得蒙其實惠矣。 且自古君子小人, 相爲消長, 故治世不能無小人, 亂世不能無君子, 惟患人君, 不能辨別耳。 辨別之道, 只在人主一心, 君能正其心, 以去其私意之蔽, 明學問以盡其治心之本, 屋漏之中, 無少敢忽, 則其效豈止於辨別君子小人而已乎? 至於政治間事, 於一日數刻之間, 不暇盡達, 臣之所望於今日, 只在聖上一心而已, 須盡其公平正大, 而無少間斷焉。" 慈殿敎曰: "所謂進君子退小人之言是矣。 上之於下, 豈可以外貌而知之? 同僚自可知之, 如有邪慝之人, 固當辨之。 若於幾微之際, 不早辨之, 則終有變亂而不及圖矣。 趙光祖、金安老等事, 予豈不慮乎? 但君子小人, 辨之可矣, 而辨之至難, 予甚憂之。" 崔輔漢曰: "向者弘文館之事, 上敎以爲 ‘恐有惡名垂於後世也。 可愧恥。’ 云, 臣意以爲不然也。 此非皆上爲有失德也, 不過論元老之罪, 而文字語勢, 未及詳察, 自上疑之亦宜矣。 然弘文館諸臣, 皆在外不知者也。 上以惡名, 懷羞恥之心者, 臣意恐爲誤矣。 小臣十餘年間, 長在臺諫、侍從之列, 其時物情, 備嘗知之。 惟此言根, 出於金安老, 丁酉年間尹任之兇心已著矣。 締結安老, 造爲言端, 大槪名之以小尹, 攻治士林, 乃其計也。 尹任等, 旣有是心, 而又見東宮無嗣, 恐曆數終歸於大君, 則慮其不能自保, 實有不測之謀矣。 小臣其時爲獻納, 盡得其情。 任等每以謀害東宮, 搆罪於小尹而攻之, 適朝廷悟其術而除去安老。 其後尹任, 猶欲攻治士林, 漸及君上, 事狀昭著, 中宗豈不知之? 中宗經歷事變亦多矣, 其爲憂念, 夫豈少哉? 中宗雖不明言之, 臣於經筵, 累見辭色矣。 中宗旣知其兇心, 故常有憂念, 臣等亦嘗憫焉。 中宗旣已知之, 則慈殿亦豈不知之? 中宗之憂念, 皆以兇人故也, 何預於慈殿哉? 非獨臣知之, 朝廷之意, 莫不如此。 中宗升遐之日, 證勢又似心證。 大命雖在於天, 然臣子哀痛迫切之情, 何極? 爭欲食其兇人之肉, 此自然之理也, 是豈關於慈殿之惡名乎? 不知者雖或不知, 朝廷有誰不知, 而反有愧恥之敎? 臣故曰誤矣。 尹任每稱小尹, 謀害東宮之說, 三尺童子, 亦皆知之矣。 任有是心, 故今已伏罪, 朝臣若又有此心, 則是其黨類也。 今豈復有可疑? 如日月之蝕, 人皆見之, 有何惡名愧恥事乎? 臣恐自上省得之誤也。 且雷霆之威, 人孰不畏之? 傳敎峻絶, 至以爲無君上云。 近來士氣摧挫, 釋然之敎, 雖屢下矣, 人皆疑畏, 尙有不信。 此宗社存亡之所係, 而臣以鍼灸, 不入經筵, 故不能啓之。 人臣若果有是心, 則是卽餘黨也, 實有是心者, 則必不有是言矣。 尹任若無兇心, 則元老雖欲激之, 不可得矣。 任本兇悖麤悍之人, 而元老輕薄, 每憑內恐嚇, 故任常畏中宗加罪, 不能自安, 每見臣等則曰: ‘吾以汝德而生。’ 其畏死皆元老之輕薄, 激而成之也。 元老之罪, 自上亦豈不知之? 朝廷明知其情狀, 故啓之。 雖不能正法, 自上旣知其惡, 若無忘此心, 則朝廷安矣。 尹任嘗與其所親密柳灌、柳仁淑等語之曰: ‘東宮危矣。 不幸東宮失火。’ 任又造言曰: ‘此乃人火之。’ 乃囑兩司、弘文館, 啓請推其失火之根, 其欲推之者, 慮固有在。 其時臣爲大司憲, 非不知其意也, 但以東宮在矣, 慮東宮之未安而不敢啓之。 任於待罪時, 亦曰: ‘定罪小臣, 則朝廷安矣。’ 其悖逆之言如此, 而中宗不爲罪之。 然其養成者, 元老也, 自上知之, 則宗社之福也。 且任之兇謀, 如彼其慘也, 宗社之扶持至此, 實天地祖宗之默佑, 而有非人力之所能及也。" 慈殿曰: "朝廷計之是矣。 丁酉年間, 雖曰安老爲之, 而以許坰之招見之, 則尹任之所爲判然。 任於其時, 通書東宮, 欲爲自明矣, 予則知而不知, 只待天命。 故每啓於中宗曰: ‘尹任豈有其心?’ 以此內間, 則寂無他說矣, 但自福城時, 每托東宮害人者多, 李宗翼亦以直言死。 【見中宗壬辰三月初一日。】 一國臣民, 孰不爲東宮, 而必曰爲東宮而害人? 中宗有何不知? 甲辰年十月, 中宗以爲, 此人得志, 則不可, 乃欲罪之, 而因朝廷論, 釋不果。 內間專不言尹任之惡, 朝廷若知吾情, 則不當疑之。 予已論說, 而今復言之, 故疑之。 今則旣知上下之情, 更何疑乎? 當初疑之者, 恐後世不知吾情耳。 東宮失火後, 果有不測之言。 具壽聃, 於經筵言大、小尹之說, 言端之出, 因此可知, 而仁宗極諫而不推之耳。 知者雖或知之, 不知者陷於其術, 而以疑傳疑, 以至今日, 極爲寒心。 中宗以爲若治之如安老, 則必不至於亂矣, 而不意賓天, 罔極之意尤甚。" 許磁曰: "以言爲諱, 非自今日, 其來久矣。 小臣涵養 中宗四十年鴻澤, 恩至重矣, 非欲言中宗之過失也, 欲陳其時之弊, 以爲今日之戒也。 中宗時治化不興者, 以宮裏不嚴, 而女謁盛矣。 冗雜之人, 多入宮中, 漏泄九重之言, 頒布市井之間, 妨政害治, 莫此爲甚。 而人皆以言爲諱, 孰敢達之? 大凡賤類, 出入宮中, 則自幸恩光, 矜誇於內外, 宮禁自至於不嚴矣。 今當洞知此弊, 拒絶雜人, 則治化正矣。" 慈殿曰: "中宗朝, 此言果不無矣。 中宗每以爲憾, 痛嚴宮闈, 而不能無此弊。 嚴宮闈之言是矣。 各司婢子, 亦有出入者, 豈無洩言之弊? 是以宮內之虛言, 亦多騰播。 去年初喪時, 王大妃不進食物, 將至死亡之言, 亦出乎外云, 以此可占他言之出入矣。" 洪暹曰: "主上學問高明。 攝輔雖大臣之責, 而不能常侍於左右。 慈殿於主上, 有母義, 有君義, 輔養之責, 不在於慈殿乎? 雖聰明睿智之資, 亦必輔養而成德。 今日聖學之明不明, 聖德之成不成, 皆在慈殿。 伏願朝夕講論, 無少間斷焉。" 慈殿曰: "輔養聖德之意, 曷有其極? 且臺諫以不快定元老、具渰之罪, 有未便之意, 固當矣。 但元老至親, 不忍加罪, 具渰主廢主 之祀, 亦不忍絶其祀, 故不得加罪, 予亦有未安之心焉。 攝幼沖之主, 求賢納諫, 固予之意也, 卿所謂輔養之言, 正合予意。 但《詩》云: ‘靡不有初, 鮮克有終。’ 猶恐怠於後日也。" 洪暹曰: "女謁事, 許磁已盡啓之。 中宗時, 臣亦以臺諫屢聞之, 中宗亦欲痛治而不能。 宮闈, 出治之本也, 不正則何能善治乎? 主上嗣服之初, 如此之事, 不可不嚴絶。 非但主上如此, 慈殿尤當嚴治之也, 毋以爲其何能害吾之治而敢忽焉。"

【史臣曰: "迎訪群臣, 畏災求言, 而言者皆以爲下有陵上之風, 陰助逢迎, 無所不至, 欺天罔上之罪, 天豈赦之?"】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84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4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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