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98권, 중종 37년 4월 13일 癸亥 1/2 기사 / 1542년 명 가정(嘉靖) 21년
흉년으로 강진현의 진상을 줄이지 말 것을 호조가 건의하다
국역
호조가 아뢰기를,
"강진현(康津縣)만 농사를 그르친 것이 아니고 다른 도도 다 그러하니, 진상(進上)을 줄인다면 여기만 줄일 수는 없습니다. 다 줄인다면 어쩔 수 없이 사섬시(司贍寺)의 공포(貢布)로 대신 주어야 하니, 또한 온편하지 못하므로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나도 이것은 고례(古例)가 아니므로 온편하지 못한 점이 있을 듯하다고 생각되어 호조에 물었는데, 이제 아뢴 뜻을 보니 지극히 마땅하다."
하고, 이어서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 정언(正言) 【윤희성(尹希聖).】 이 아뢴 뜻을 듣건대 ‘흉년이 든 때에는 사대부의 녹봉도 줄이니, 더구나 선상(選上)같은 것은 줄여야 마땅하다.’ 하였는데, 그 뜻이 마땅하므로 형조에 말하였다. 강진의 선상은 종친부(宗親府)에 붙이는데, 4∼5백의 종친에게 주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면 또한 고르지 않게 되고, 농사를 그르친 고을이 하나뿐이 아닌데 강진만을 줄인다면 이것을 본떠 줄여 주기를 청하는 자가 어지러이 있을 것이다. 여느 때에는 복직(復職)한 종친의 구사(丘史)는 서울에서 가까운 고을의 것으로 주는 것이 관례이다. 강진의 선상은 전수를 줄인 뒤에 석 달이 되거든 그 값을 사섬시의 공포로 대신하여 주지 말고, 다른 도의 곡식이 조금 잘된 고을의 것을 옮겨서 주도록 하라. 그러나 이것을 항식(恒式)으로 삼을 수 없으니, 풍년이 들거든 본 고을에 도로 정해야 한다. 이 뜻을 형조에 말하라."
원문
○癸亥/戶曹啓曰: "(康津孫)〔康津縣〕 , 非獨失農。 他道皆然, 若減進上, 則不可獨減於此也。 假使皆減, 不得已司贍寺貢布代給, 亦爲未便, 取稟。" 傳曰: "予亦以爲, 此非古例, 有似未便, 故問于戶曹, 而今觀啓意, 則至當也。" 仍傳于政院曰。 聞前正言 【尹希聖。】 啓意, 凶荒之時, 則士大夫猶減祿俸。 況如選上, 宜當減之云。 其意爲當, 故言于刑曹也。 康津選上, 屬于宗親府, 若四五百宗親, 或給或減, 則亦爲不均。 失農之邑非一, 而獨減康津, 則不無倣此紛紜請減之者。 常時復職宗親丘史, 以京近官給之, 例也。 康津選上專減後三朔, 則其價不以司贍寺貢布代給, 以他道稍稔之邑, 推移給之可也。 不可以此爲恒式, 年豐則當還定本邑, 此意言于刑曹。"
중종 37년 (1542) 4월 13일
중종실록98권, 중종 37년 4월 13일 癸亥 1/2 기사 / 1542년 명 가정(嘉靖) 21년
흉년으로 강진현의 진상을 줄이지 말 것을 호조가 건의하다
국역
호조가 아뢰기를,
"강진현(康津縣)만 농사를 그르친 것이 아니고 다른 도도 다 그러하니, 진상(進上)을 줄인다면 여기만 줄일 수는 없습니다. 다 줄인다면 어쩔 수 없이 사섬시(司贍寺)의 공포(貢布)로 대신 주어야 하니, 또한 온편하지 못하므로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나도 이것은 고례(古例)가 아니므로 온편하지 못한 점이 있을 듯하다고 생각되어 호조에 물었는데, 이제 아뢴 뜻을 보니 지극히 마땅하다."
하고, 이어서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 정언(正言) 【윤희성(尹希聖).】 이 아뢴 뜻을 듣건대 ‘흉년이 든 때에는 사대부의 녹봉도 줄이니, 더구나 선상(選上)같은 것은 줄여야 마땅하다.’ 하였는데, 그 뜻이 마땅하므로 형조에 말하였다. 강진의 선상은 종친부(宗親府)에 붙이는데, 4∼5백의 종친에게 주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면 또한 고르지 않게 되고, 농사를 그르친 고을이 하나뿐이 아닌데 강진만을 줄인다면 이것을 본떠 줄여 주기를 청하는 자가 어지러이 있을 것이다. 여느 때에는 복직(復職)한 종친의 구사(丘史)는 서울에서 가까운 고을의 것으로 주는 것이 관례이다. 강진의 선상은 전수를 줄인 뒤에 석 달이 되거든 그 값을 사섬시의 공포로 대신하여 주지 말고, 다른 도의 곡식이 조금 잘된 고을의 것을 옮겨서 주도록 하라. 그러나 이것을 항식(恒式)으로 삼을 수 없으니, 풍년이 들거든 본 고을에 도로 정해야 한다. 이 뜻을 형조에 말하라."
원문
○癸亥/戶曹啓曰: "(康津孫)〔康津縣〕 , 非獨失農。 他道皆然, 若減進上, 則不可獨減於此也。 假使皆減, 不得已司贍寺貢布代給, 亦爲未便, 取稟。" 傳曰: "予亦以爲, 此非古例, 有似未便, 故問于戶曹, 而今觀啓意, 則至當也。" 仍傳于政院曰。 聞前正言 【尹希聖。】 啓意, 凶荒之時, 則士大夫猶減祿俸。 況如選上, 宜當減之云。 其意爲當, 故言于刑曹也。 康津選上, 屬于宗親府, 若四五百宗親, 或給或減, 則亦爲不均。 失農之邑非一, 而獨減康津, 則不無倣此紛紜請減之者。 常時復職宗親丘史, 以京近官給之, 例也。 康津選上專減後三朔, 則其價不以司贍寺貢布代給, 以他道稍稔之邑, 推移給之可也。 不可以此爲恒式, 年豐則當還定本邑, 此意言于刑曹。"
원본
중종 37년 (1542)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