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98권, 중종 37년 4월 7일 丁巳 2/4 기사 / 1542년 명 가정(嘉靖) 21년
수원과 이천 등지의 백성에게 경창의 곡식제급을 호조와 진휼청에 전교하다
국역
정원에 전교하였다.
"이제 민전의 말을 들으니, 백성의 곤궁하고 굶주리는 형상이 지극히 애처롭다. 수령들이, 공채(公債)가 있더라도 밀보리가 익기 전까지 구활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하니, 하루 사이에도 죽는 백성이 많을 것이다. 호조가 저축된 나라 곡식을 아껴서 제급(題給)하려 하는 것은 계책으로서는 옳겠으나, 백성이 굶어 죽는 때에 나라 곡식을 아껴서 쌓아두었다가 어디에 쓸 것인가. 국가의 큰 근심으로는 백성이 굶주리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으니, 수원(水原)과 이천(利川) 등과 같이 더욱 심하게 농사를 그르친 곳에 두 번으로 나누어 경창의 곡식을 제급하라고 호조와 진휼청에 말하라."
원문
중종실록98권, 중종 37년 4월 7일 丁巳 2/4 기사 / 1542년 명 가정(嘉靖) 21년
수원과 이천 등지의 백성에게 경창의 곡식제급을 호조와 진휼청에 전교하다
국역
정원에 전교하였다.
"이제 민전의 말을 들으니, 백성의 곤궁하고 굶주리는 형상이 지극히 애처롭다. 수령들이, 공채(公債)가 있더라도 밀보리가 익기 전까지 구활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하니, 하루 사이에도 죽는 백성이 많을 것이다. 호조가 저축된 나라 곡식을 아껴서 제급(題給)하려 하는 것은 계책으로서는 옳겠으나, 백성이 굶어 죽는 때에 나라 곡식을 아껴서 쌓아두었다가 어디에 쓸 것인가. 국가의 큰 근심으로는 백성이 굶주리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으니, 수원(水原)과 이천(利川) 등과 같이 더욱 심하게 농사를 그르친 곳에 두 번으로 나누어 경창의 곡식을 제급하라고 호조와 진휼청에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