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90권, 중종 34년 5월 8일 乙亥 2/2 기사 /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홍문관 부제학 최보한 등이 시병에 적절한 10가지 상소문을 올리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 최보한(崔輔漢) 등이 상소하기를,
"하늘과 사람이 이치는 일반이고 현(顯)과 미(微)에 사이가 없어서 망망(茫茫)하고 창창(蒼蒼)하지만 아침이고 낮이고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은 반드시 보고 있습니다. 선(善)과 불선(不善)에 따라 휴구(休咎)가 제길로 응하기 마련인데 임금이 묘연(眇然)한 몸 하나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하여 위로 상제(上帝)를 대하고 또 만백성을 대표하여 통솔하는 처지인데 그에게 격물·치지·성의·정심의 학문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공력이 없다면 어떻게 위육(位育)174) 의 효과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주역(周易)》에도 이르기를 ‘대인(大人)이란 천지(天地)와 그 덕이 같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이 같으며 사시(四時)와는 그 질서가 같고 귀신(鬼神)과는 그 길흉(吉凶)을 아는 것이 같다. 하늘보다 먼저 하여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천시(天時)를 따르는 것이니 하늘도 어기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였는데 하늘이 사람을 어기지 않고 따라 주는 정도라면 천재(天災)가 무엇 때문에 생길 것이며 사람이 아래에서 어기지 않는다면 인변(人變)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나 격물·치지·성의·정심의 학문이 있는 뒤에야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공효를 이룰수 있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공효를 이룬 뒤에야 대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 대인의 덕이 있는데도 하늘이 위에서 따라 주지 않고 사람은 아래서 따라 주지 않는 것은 신들은 듣지 못한 일입니다.
전하께서 조종(祖宗)의 계통을 이으시고 영성(盈成)한 운세를 잡으셔 안일하지도 음란하지도 않게 잠과 수라를 걸러가시며 정신을 가다듬으시고 하늘을 받들고 백성에게 힘을 다하여 태평 성대를 구현해 보려 하신 지 지금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태평의 기상은 보이지 않고 위망(危亡)의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재와 시변(時變)이 잇달아 나타나 백기(白氣)가 하늘을 덮고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가 하면 혜성이 삼태성을 침범하고 태백이 낮에 나타나며 정양(正陽)의 절기에 서리뿐만 아니라 우박에 눈까지 쏟아졌습니다. 기근이 계속 들어 백성은 굶어 죽은 자가 많고 자식이 어미를 간통하여 인륜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천고에 없던 재변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어 어리석은 백성들도 두려움에 질려 있는데 식자들이 왜 통곡을 않겠습니까. 이러한 재변들이 꼭 무슨 일 때문에 일어난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정사를 행하고 명령을 발하는 사이에 그것을 불러일으킬 만한 잘못이 없다고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 여인의 원한이 수한(水旱)의 재앙을 부를 수도 있고 말 한 마디 잘한 것이 형혹(熒惑)을 삼사(三舍)까지 물리칠 수도 있었습니다.175)
지금 전하께서 덕음(德音)을 발하시어 중외(中外)에 포고하시고 대소 신료들로 하여금 제각기 생각하는 대로 말하게 하여 재앙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알아냄으로써 하늘의 마음을 돌이킬 덕을 닦으려고 하시는데 그것이 어찌 경공(景公)의 말 한 마디 잘한 것 정도에 그치고 말 것이옵니까. 신들이 고문(顧問)의 자리를 욕되게 하고 있으면서 이 구언(求言)의 시기를 당하여 어떻게 감히 어물어물 입을 다문 채 전하의 수성(修省)하시려는 아름다운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여기 시병(時病)에 적절한 10여 가지를 삼가 엮어서 전하의 귀를 더럽힐까 합니다. 다만 구언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대로 듣는 것이 어렵고 또 듣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대로 활용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소서.
첫째는 궁금(宮禁)을 엄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전(傳)에도 이르기를 ‘집안이 정제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진다.’ 하였습니다. 궁금은 바로 전하의 가정입니다. 몸은 한 집안의 근본이 되고 집은 한 나라의 근본이 됩니다. 따라서 몸이 닦아지지 않고서 집안을 정제하는 자 있지 않고 또 집안을 정제하지 못하고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규문(閨門)·방달(房闥)의 사이가 바로 정시(正始)의 기반이 되고 왕화(王化)의 본거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치(內治)가 엄숙하지 못하고 액정(掖庭)이 근엄하지 못하여 잗단 무리들이 한가한 틈을 노려 생황 소리와 같은 교묘한 소리로 임금의 총명을 흐리게 하고 척리(戚里)176) 들이 자기 욕망을 이루고 싶으면 문안을 한답시고 어깨를 맞대고 곁에 바싹 붙어 시장에 장보러 가듯 아무 거리낌이 없으며, 심지어 빈잉(嬪媵)·아보(阿保)의 무리와 시정(市井) 무뢰배들까지도 연줄을 대고 누군가를 빙자하여 귀총(貴寵)을 뽐내고 있습니다.
관직 제수를 받으려면 점(點)을 받아야 하는 데도 혹자는 사람의 힘으로 득실(得失)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하고, 송사에 있어서의 이해(利害)는 곡직(曲直)이 좌우하는 것인데도 혹자는 잘되고 잘못되고가 하기에 달렸다고 하여 때로 그 말이 맞으면 자기의 공이라고 하며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곤 하는데 뭇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어느 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조정 신료로서 그 일을 논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직도 확연히 뉘우치는 실상을 보지 못하여 전하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정성이 도리어 말세(末世)에 관작을 팔고 송사(訟事)를 팔아먹던 풍조와 같게 되도록 만들고 있으니, 너무나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더구나 지난날 소인배 【김안로·채무택·허항의 무리.】 들이 오가면서 권세에 붙어 권요(權要)를 차지한 다음 전하의 동정(動靜)을 살피고 전하께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아내어 뜻을 받들고 선수를 치기도 하며 위복을 휘둘러 위태위태한 나라 형세가 불측(不測)의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이미 겪어 본 분명한 증험으로서 안과 밖의 구별을 더욱 엄하게 아니할 수 없는 산 증거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留念)하소서.
둘째는 기강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예기(禮記)》에도 이르기를 ‘기강(紀綱)이 바로되면 천하가 크게 안정된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수많은 신민(臣民)을 거느리고 번거로운 만기(萬機)를 처리하면서 모든 일이 이치에 맞아 마치 갖옷의 옷깃을 들었을 때 그 수많은 털들이 가지런히 정돈되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기강뿐입니다. 나라에 기강이 있다는 것은 마치 사람 몸에 혈맥(血脈)이 있는 것과도 같아서 혈맥이 병이 들면 지체(支體)가 비록 완전하더라도 장부(臟腑)는 이미 궤멸된 것처럼, 기강이 무너지면 비록 치국·평천하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금방 위망(危亡)이 닥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잘 요량하는 자는 세상의 당장 안위(安危) 보다도 기강이 서 있는가 문란한가를 살피는 법입니다.
지금 조정에는 기강이 서 있지 않고 백공(百工)이 질서를 잃어 관사(官司) 보기를 전사(傳舍)처럼 여기고 국사(國事) 보기를 월인(越人)177) 같이 여겨서 하는 일 하나 없이 그저 녹(祿)이나 받고 영화나 누리려고 하며, 세력 있는 집에서는 남의 종을 빼앗아가도 【왕자군(王子君) 등이 남의 종들을 진고(陳告)를 핑계로 빼앗아 갔음.】 약자들로서는 그 억울함을 펼 길이 없고, 상전을 배반한 종이 내수사(內需司)에 들어가기를 꾀했을 때 【박순견(朴順見)의 종이 진고를 핑계로 내수사로 들어가려고 꾀했음.】 송사를 제기한 자가 독살(毒殺)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박순견이 내수사로 들어 가려고 한 종을 상대로 송사를 제기했는데 그 종이 독약을 써 죽였다고 하였음.】
그리고 명분(名分)은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인데 첩(妾)을 처(妻)로 삼고 서자를 적자로 삼는가 하면 【최순(崔珣)·안지(安智)가 첩의 자식을 적출로 삼아 충순위(忠順衛)에 붙여있게 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자신은 파직되고 그 자식은 서출로 환원되었음.】 심지어 천례(賤隸) 무리들까지 시새워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고는 거짓으로 꾸며 관적(官籍)에 이름을 두고 과목(科目)을 더럽히면서 귀인을 얕보는 것이 예사이고, 여대(輿臺)178) ·시역(廝役)179) 들이 사류(士類)에게 매질을 가하고 욕을 보여도 당연한 일인 양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명령이 나가면 따라야 원칙인데 법을 겨우 세우자마자 곧 폐기하여 행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돌보라는 성지가 내려도 하나의 문구(文具)로 보아 넘깁니다. 백성은 법금을 무서워하지 않고 관리는 허다히 법을 지키려 들지 않습니다. 기강의 해이가 이 지경인데도 전하께서 진념(軫念)하지 않으시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기강이 서느냐 안서느냐에 따라 국가의 성쇠가 좌우됩니다. 그것을 유지하고 진작하는 것은 오직 임금 한 몸에 달려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시어 살피소서.
세째는 공도(公道)를 펴자는 것입니다. 하늘은 사사로이 덮고 있는 곳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싣고 있는 곳이 없으며 해와 달도 사사로이 비치는 곳이 없습니다. 임금은 하늘과 땅, 해와 달의 덕을 본받아 지공 무사한 길을 걸으면서 사방(四方)의 모범이 되어야, 사방이 본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질 때는 상벌(賞罰)이 분명하여 공도가 행해지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인욕(人慾)이 기승을 부려 사사로운 문이 열리는 법입니다. 숙특(淑慝)의 소장(消長)과 국가의 흥망이 모두 공(公)과 사(私) 이 두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궁궐에는 여알(女謁)이 득세하여 여러 갈래의 지름길이 있고, 조정에는 청탁이 공공연하게 행해져 절간(折簡)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능력자를 승진시키고 부진한 자를 퇴출하는 것이 방백(方伯)의 임무인데도 권귀(權貴)의 자제들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인물을 전형(銓衡)하는 것이 정조(政曹)의 임무인데 비록 쓸 만한 인재라도 세력이 없으면 발탁될 수 없습니다. 공론이란 덮어 버릴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을 쓰는 데 있어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시비(是非)도 아랑곳없이 억지로 주의(注擬)하면서 이르기를 ‘대간(臺諫)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하천(下賤)의 계열에 있던 자가 분수 넘게 조정의 반열에 끼기도 하며 【김옥륜(金玉倫)이 미천한 사람으로 감역관(監役官)이 되었다.】 벼슬 길이 맑지 못함이 이런 식으로 되풀이되어 끝이 없습니다. 명부를 들고 호명(呼名)하는 식이라면 관리 1명으로도 족할 것이니 국가에서 전형을 중히 여기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송사를 듣는 것은 공평하게 해야 하는데 시비가 뇌물로 인하여 전도되고, 옥(獄)을 결정하는데는 공정이 제일인데 형옥(刑獄)이 가난하고 병든 자에게만 적용되니, 공도가 좀먹기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자신의 사사로움을 없애시고 아래 신민들에게 공정을 보이시어 사사롭고 바르지 못한 문호를 막아 버리소서.
네째는 사기(士氣)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인재는 국가의 원기다.’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에도 이르기를 ‘주왕(周王)이 수고(壽考)하시니 어찌 인재를 양성하지 않으리오.’ 하였습니다. 인재를 진작시키는 묘법은 오직 바르게 붙잡아 주고 곁에서 부축하면서 기절(氣節)을 배양하는 데 있습니다. 천지의 지극히 바른 기운이 그 중간을 메우고 있다가 그 기운이 사람에게 모여져서 현사(賢士)가 되는 것인데 그 기운을 제대로 길러내면 진기(振起)·흥발(興發)하여 수많은 선비들이 나라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기르기를 제대로 못하면 비록 그 기운이 있어도 움츠러들고 풀이 꺾여 시들하게 줄어들고 맙니다.
우리 나라가 개국(開國)한 이래로 세종께서 앞서 진작하시고 성종이 뒤이어 배양하시어 큰 재목, 훌륭한 덕, 그리고 기개를 자부하고 기절을 중히 여기는 선비들이 성대하게 배출되더니 폐조(廢朝)180) 의 모진 숙청을 겪고 나서는 남아난 사람이 씻은 듯이 없어 한(漢)의 당고(黨錮)의 화와 당(唐)의 백마(白馬)의 화181) 도 그렇게까지 혹독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전하께서 30년에 걸쳐 이루어 오신 공이 당연히 오늘에 와서 효과를 거두어야 할 것인데도 지난번 간흉들 【김안로·채무택·허항.】 이 화를 선동했던 바람에 사림들의 기가 꺾였고, 부형(父兄)이 가르치는 것도 사우(師友) 사이에 권계(勸戒)하는 것도 모두 말을 위태롭게 말라 행실을 위태롭게 말라 하는 것이었으므로 예예하는 것이 풍속이 되어 감언(敢言)·극간(極諫)하는 선비가 없고 또 부드럽고 약한 것을 서로 숭상하여 특립(特立)·독행(獨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의 조정이 비록 어제의 조정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은 오늘 선비가 다 지난날의 선비들이어서 변화가 쉽지 않고 아직도 구습이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이른바 육척(六尺)의 고(孤)182) 를 맡길 수 있고 대절(大節)에 임하여 뜻을 빼앗을 수 없는 자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이 풍토를 바꾸어 놓는 계기는 오직 상께 있을 뿐입니다. 옛날 동경(東京)이 기절을 중히 여기니 간웅(奸雄)이 구정(九鼎)을 둘러보면서도 감히 손대지 못하였고,183) 칠국(七國)이 모반하면서도 한 나라 조정의 급암(汲黯)한 사람만은 무서워하였습니다.184) 기절 있는 선비가 국가에 영향을 주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멀리는문왕(文王)의 인재 양성하시던 일을 본받고 가까이는 성종의 인재 배양하시던 법을 계승하여 사기를 고무 진작시키소서.
다섯째는 간쟁(諫諍)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훼(仲虺)가 탕(湯)임금의 덕을 일컬으면서 ‘간언을 따라 어기심이 없었다.[從諫弗咈]’ 하였고185)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명하는 말에도 ‘조석으로 가르침을 달라.’ 하였습니다.186) 성탕·고종이야 어찌 다만 물리치지 않는 것, 가르침을 달라는 것, 그것뿐이었겠습니까. 그들이 몸소 행하는 실상이 언제나 물리치지 않는다, 또는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하는 그 뒷받침이 되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성현의 경지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하께서 몸에 상성(上聖)의 자질을 지니시고 묻기를 좋아하시는 덕이 있으시며 서둘러 구언(求言)하기를 기갈(飢渴)에 음식을 찾듯이 하시고 말을 수월하게 받아들이기를 물에 돌을 던지듯이 하셨습니다. 허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따지고 들면 내가 너무했노라고 받아 주시고 잘못한 정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뢰면 내가 잘못했노라고 받아들이셨으니, 성탕이 거스르지 않은 것도, 고종이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도 그보다 더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오나 무슨 허물 무슨 잘못을 누구의 간언에 의하여 고쳤다거나 무슨 폐단 무슨 민막(民瘼)을 누구의 쟁의에 따라 없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 대간을 우용(優容)한다는 아름다운 사실들이 사첩(史牒)에만 넘치고 있을 뿐, 정사에 방해가 되고 백성을 병들게 만드는 사건들은 하나도 고쳐진 것이 없으니, 이는 간언을 받아들인다는 미명만 있지 참으로 그 간언을 받아들인 실효는 없는 것입니다.
또 사신을 보내 흠문(欽問)하는 일만 하더라도, 그것은 예에 맞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의(時宜)도 아닌 것으로 한 번 그 길을 터놓으면 뒤폐단을 걷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간관(諫官)이 한 말이 사실은 깊은 뜻이 있는 것이었는데도 중국 사신에게 이미 말한 것이라서 그대로 두기는 어렵다고 핑계를 하시니 여기에서 신들은 그것이 혹 간언을 즐겨 들으시는 전하의 성의에 누를 끼치는 일이 아닐까 염려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시어 간언을 실지로 채택하는 아량을 다하소서.
여섯째는 재용(財用)을 아끼자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에도 이르기를 ‘일정한 제도에 의하여 절제함으로써 재물을 상하지 말고 백성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대체적으로 씀씀이가 사치스러우면 재물을 상하고 재물을 상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치기 마련입니다. 하늘과 땅이 낸 재물은 한정된 숫자가 있는 것이어서 그것이 백성에게 있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에 있기 마련인데, 우리 나라가 창업했을 당시 자손에게 물려주신 경제 제도로서, 부세(賦稅)에 있어서는 상공(常貢)으로 일정한 수치가 있었고 용도(用度)에서는 횡간(橫看)187) 의 세밀을 기하여 세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하였고 백성에게 재물을 남겨 둠으로써 나라의 근본을 든든하게 하였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횡간 이외에 또 별례(別例)의 용도가 있고 별례 외에 또 불시(不時)의 수요가 있어 금년의 공부로 부족하면 백성에게서 내년 치를 받아들이면서 이름하여 인납(引納)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조세를 두 번 받는 것이니 노선공(魯宣公)의 세묘(稅畝)188) 와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부고(府庫)가 텅 비어 이어 쓸 경비가 없는데도 아직 절제할 줄을 모르고 내용(內用)에 관한 분부가 날로 내려오므로 유사(有司)로서는 마련할 길이 없어 전부를 시전(市廛)에서 사들이거나 아니면 호귀(豪貴)의 집에 가서 사오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침에 안에 들어왔던 것이 저녁이면 밖으로 나가게 되어 그것이 돌고 도는 바람에 값만 날로 치솟고 있으니 그것이 당(唐)나라 말기의 궁시(宮市)189) 제도와 거의 비슷합니다.
아, 선왕들께는 정해진 공납 숫자만을 쓰셨어도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납에다 무역(貿易)까지 하면서도 재용이 남아 돌지 않으니 왜 그렇겠습니까? 전야(田野)의 백성들은 인납에 시달리고 시정(市井)의 백성들은 무역에 시달리며, 이득은 호귀(豪貴)가 먹고 손해는 나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재정이 동이 나고 백성이 흩어진다면 어떻게 나라를 꾸려 가실 것입니까. 이야말로 조정의 큰 걱정거리여서 경악(經幄)에서 아뢴 것이나 소차(疏箚)에 나열된 것들이 모두 그것을 제일 급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예사롭게 보아 넘기시고 다잡아 생각하려 하지 않으시니 국가와 민생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급하지 않은 씀씀이는 늦추고 쓸데없이 소비되는 재정은 줄이시어 이 백성들이 한 푼의 혜택이라도 받게 하여 주소서.
일곱째는 사치를 억제하자는 것입니다.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경계하면서 이르기를 ‘당신의 검소한 덕을 잘 지키시어 영원한 미래가 있도록 하소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한 자의 말은 ‘태갑이 사치가 지나쳐서 원대한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고하였다.’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사치하고서 망하지 않은 자 없었고 또 검약하고서 흥하지 않은 자도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로만 말하더라도 성신(聖神)이 계승하시면서 검약을 숭상하여 국용을 풍족하게 하셨으므로 나라는 부(富)하고 군대는 강하여 1백여 년에 걸쳐 오랜 태평을 누려 왔는데 인심이 점점 옛날같지 않고 사치의 풍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검약했던 풍습은 씻은 듯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따지자면 위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치 풍조가 궁위(宮闈)에서부터 시작되어 복식 제도를 꼭 남달리 하려 들고 조루(彫鏤)의 노리개로 최고의 기기(奇技)를 자랑하여 서로 다투어 사치를 숭상함이 날로 다르고 달로 틀려 갔습니다. 그러자 가까운 귀족들이 그것을 모방하고 백성들도 보고는 본을 받아 자기들끼리 한 덩어리가 되어 남에게 자랑하면서 이것이 궁중의 모양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하여 부자는 있는 힘을 다하여 따르고 가난한 자는 쳐다보며 따르기를 희망하여 너도 나도 본을 따 못하는 짓이 없으니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민요(民謠)190) 가 그리하여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궁실 제도만 하더라도 일정한 분한(分限)이 있는 것인데 왕자의 집들이 여리(閭里)까지 뻗쳐 있으면서 화동(畫棟)·조양(彫樑)이 구름에 닿도록 공중에 치솟아 궁궐모양으로 높고 크기를 시새우며 재정이 동이 나도 그칠 줄을 모르고 욕심에 차야 그만 두는 지경입니다. 위에서 좋아하면 아래서는 더하기 마련이라 사대부의 집들도 거리낌없이 제도를 넘어서서 법으로 다스리면 아침에 철거했다가 저녁이면 다시 지어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음식 또한 입에 맞으면 될 것을 위로 귀척(貴戚)에서부터 아래로 서민들까지 한 발씩이나 괴어 올린 밥상에 산해 진미(山海珍味)가 아니면 대단찮게 여기고 행여 남에게 뒤질세라 날로 만금을 소비해가며 재산이 파경에 이르러도 뉘우칠 줄을 모르니 이 무슨 풍조란 말입니까.
사치스런 마음이 극도에 달해 토물(土物)은 좋아하지 않고 원물(遠物)을 좋아하여 계속되는 중국 사행 길에 공무(公貿)와 사판(私販)이 크게 일어나, 수레에 싣고 말로 수송하는 통에 시달리는 것은 우졸(郵卒)이고, 중국에서는 야비하다 하여 매호(賣胡)란 칭호까지 붙일 정도입니다. 아, 이 또한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란 말입니까? 선유(先儒) 호병문(胡炳文)191) 의 말에 ‘사치를 숭상하여 서민들이 비단 옷 입고 고기 반찬 먹는 것은 그것이 바로 기한(飢寒)의 원인이요 도적이 이는 원인도 된다. 세상이 그러한데도 위에서 금할 줄을 모르면, 그렇고서 망하지 않는 자는 없다.’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여 살피소서.
여덟째는 염치(廉恥)를 장려하자는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하늘이 백성을 내실 때 욕심은 다 있게 되어 있다.’ 하였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비록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품을 갖추었으나 그렇다고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욕심이 없을 수 없으므로 그것을 염치로 막지 않으면 반드시 예라는 것도 의라는 것도 버리고 수오(羞惡)의 마음까지 상실하게 되어 결국 금수와 같은 꼴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옛 사람들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일러 나라의 네 벼리[四維]라 하였는데 네 벼리가 개장(開張)되어 있지 않으면 나라는 곧 멸망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염치가 없어지고 탐하는 풍조가 날로 심하여 거관(居官)하는 자는 대다수 이록(利祿)을 따지는 선비이고 목민(牧民)하는 자는 부극(掊克)을 일삼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기 몸을 살찌우고 집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급무로 알고서 공(公)을 받들고 백성을 돌보는 일은 그게 무슨 일이냐는 식이어서 청탁이 줄을 잇고, 욕심을 채우기 어려워 남이 아는 것도 아랑곳없이 백성의 고혈(膏血)을 착취하며 벼슬길에서 도둑질하는 것쯤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 없이 다투어 해택(海澤)을 점유하거나 전원(田園)을 널리 차지합니다. 또 관력(官力)을 빙자하여 제 물건은 쓰지 않거나 이름은 유적(儒籍)에 두고 부지런히 권문(權門)을 찾는 자들이 어두운 밤에 찾아가 이름 하나라도 얻게 되면 도리어 대낮에 사람에게 교만을 부리기도 합니다.
또 월래 초택(草澤)에 묻혔던 자가 요행으로 말과(末科) 하나라도 얻으면 그는 제 고조·증조가 쌓아 둔 공로 하나 없이도 자손들이 풍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품계가 당상(堂上)도 아닌 자가 사사로이 반인(伴人)192) 을 청하여 각 군현(郡縣)에다 배치하여 두고는 종에게서보다도 더 심하게 그들로부터 공물(貢物)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 무슨 일인들 부끄러워 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덕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예로 그들을 다스려서 탐오(貪汚)의 습성을 씻어버림으로써 염치의 기풍을 장려하소서.
아홉째는 형옥(刑獄)을 삼가자는 것입니다. 여형(呂刑)193) 에 이르기를 ‘사(士)는 백성들을 알맞은 형벌로 다스려 그들이 덕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라.’ 하였고, 순전(舜典)194) 에도 이르기를 ‘조심하고 조심하여 백성을 돌보는 방향으로 형을 쓰라.’ 하였습니다. 형벌이란 보치(輔治)의 도구로서 비록 없어서는 안 될 것이나 그 사이에 흠휼(欽恤)의 뜻이 행해지지 않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말을 잘한다고 하여 옥을 잘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선량한 자만이 옥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요(皐陶)195) 가 법관(法官)이 되어서는 협중(協中)의 다스림을 이루었고 소공(蘇公)은 공경으로써 왕국(王國)을 장구하게 하였던196) 것입니다.
옛날에는 형을 삼가고 사람 고르기를 이와 같이 했는데 지금은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져서 법을 범하는 자는 더욱 많은데도 생재(眚災)197) 와 호종(怙終)198) 을 가리지 않고 경하고 중한 것을 혼용하기도 하며 옥을 청리하는 관원도 인물의 현부(賢否)는 가리지 않고 반자(班資)의 높고 낮음만을 따지기 때문에 거칠고 사나운 무부(武夫)나 배우지 못한 음리(蔭吏)가 혹 그 자리에 있게도 되는데 그들에게 무슨 자상(慈祥)·개제(愷悌)의 생각이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강자인 경우 돈만을 보고 제멋대로 처리하고 약자인 경우 관직에 겁을 먹고 곁에서 하자는 대로 끌려다닙니다. 그리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길에서 울부짖는가 하면 분원(憤冤)의 기운이 위로 하늘에 닿게 되면 천지의 화기를 상할 수도, 수재·한재를 부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구제할 수 없는 줄을 알면 용렬한 의원의 손에 맡겨 그의 생사를 시험할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한 나라 적자(赤子)의 생명을 무능력자에게 맡겨 제멋대로 살리고 죽이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면이란 작은 허물을 용서하는 제도로서 자주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양민(良民)을 해치는 것이 그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형을 삼가는 뜻이 아닌 줄 압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우순(虞舜)의 흠휼의 뜻을 본받으시고 고요와 소공 같은 선량한 관원을 찾아 사구(司寇)를 맡김으로써 형옥을 삼가게 하소서.
열째는 군정(軍政)을 닦자는 것입니다. 횡포한 자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은 왕정(王政)상 우선해야 할 일이며, 비가 내리기 전에 대비하라는 것은 성인의 훈계입니다. 무사할 때 충분히 대비하였다가 일이 있을 때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준조(樽俎)사이에서 절제하고 천리 밖에서 절충(折衝)하여야만 오랑캐들이 틈을 탈 만한 기회를 엿보지 못할 것이고 국가가 오래오래 다스려지고 편안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남쪽으로 섬 오랑캐와 이웃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야인들과 인접하고 있어 3면(面)으로 적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도 방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鎭)을 설치하고 보(堡)를 만들고 장수를 뽑고 군대를 조련하고 크게는 병사(兵使)·수사(水使)를 두고 작게는 첨사(僉使)·만호(萬戶)를 두었으니, 조종(祖宗)께서 규획(規畫)하신 뜻이 원대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평 세대가 오래 계속되자 그것이 예사로 여겨져서 장수된 자는 침어(侵漁)하는 것이 이로운 줄만 알고 병사들은 좌작(坐作)·진퇴(進退)의 절차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서북(西北) 두 경계는 나라의 문호(門戶)인데 굶어 죽은 백성이 많아 열 집에 아홉 집이 비어 있으므로 단련(團練)하여 호송하느라 행렬이 줄을 이었고 서방의 군마(軍馬)는 병들어 거의 죽었으며 게다가 각읍의 수령들은 자기 관할 군졸들을 시켜 중국 물품을 사오게 하면서 값은 조금만 주고 그 이상의 물건을 사오도록 독려를 하고 있으니 의지할 곳 없는 궁한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또 호인(胡人)들이 변방에라도 오면 초피(貂皮)를 바치게 하여 주구(誅求)가 끝이 없으므로 원망이 더욱 증가되어 내조하기를 싫어하고 절발(竊發)의 기회만을 노린다고 합니다.
왜놈들이 포구에 머물면 법으로 그들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도 민간에 제멋대로 활보하게 하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의 수어(守禦)가 소홀한 것을 알 것이 틀림없고, 오랑캐가 성 밑에 살면 그 족속을 변별(辨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가난한 백성들이 구걸을 하면서 오고 가는 것을 묻지 않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의 기곤(飢困)한 상태를 짐작하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그리하여 변흔(邊釁)이 싹틀 조짐이 보이는데 군정(軍政)은 이 모양이니 만약 긴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조정에서는 무슨 계책을 써서 막아낼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형세를 사람에게 비유한다면 마치 언어와 동작으로 보아서는 아무 병이 없는 것 같지만 의화(醫和)나 편작(扁鵲)이 보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릴 그런 상황과 바로 같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사전에 대비하라는 성인의 경계를 생각하시고 주(周)나라의 힐융(詰戎)의 교훈199) 을 체득하여 염파(廉頗)·이목(李牧)200) 같은 장재를 구하여 변성(邊城)을 지키게 하시고 군정을 미리 닦아 나라가 위태롭게 되기 전에 보호하시면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이상 10개 조항은 다 지난날 이미 아뢰었던 추구(芻狗)201) 로서 하늘에 대응하여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법으로는 오활한 것 같으나 진실로 이렇게만 착실히 행한다면 재앙이 도리어 상서로 변할 수 있고 아직 닥치지 않은 재화도 미연에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홍문관에 답하였다.
"지금 이 상소를 보니 시병(時病)에 아주 알맞은 말이다. 상하가 다 다시 한번 살펴 볼 일이다. 대체로 재변이라는 것이 왜 공연히 생기겠는가. 옛말에도 이르기를 ‘하늘에 대응하는 데는 실상으로 할 것이요 문식으로 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모든 일을 실상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국 조정에 흠문사를 보내는 일은 비록 한가지 일이기는 하지만 이미 천사가 알고 있는데도 보내지 않아서 불신을 보인다면 중국 사람들이, 우리더러 매사가 다 그와 같으리라고 할 것이어서 그것이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중지하기 어렵다고 했던 것이다. 백성을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어서 위아래 할 것 없이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받들어 행하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인재를 등용하는 것,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 모두 다 중요한 일로 상소문 내용에 그것이 공정하게 못 되고 있다는 뜻으로 논했는데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잘못된 것은 내가 살필 것이니 아래서 잘못된 것은 각자가 살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을 다 살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재앙에 대응하는 길이 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왕실-종사(宗社) / 사법-치안(治安) / 가족-가산(家産) / 신분-천인(賤人) / 재정-상공(上供)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역사-고사(故事) / 주생활-가옥(家屋)
- [註 174] 위육(位育) : 천지가 자리 잡히며 만물이 길러지는 것.
- [註 175] 말 한 마디 잘한 것이 형혹(熒惑)을 삼사(三舍)까지 물리칠 수도 있었습니다. : 춘추 시대 송 경공(宋景公) 때에 살별인 형혹성(熒惑星)이 심성(心星)을 범하였으므로, 경공이 자위(子韋)를 불러 묻자, 자위가 "재앙이 임금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재상에게로 옮길 수는 있습니다." 하였다. 경공이 "재상은 나라를 다스려야 할 사람이다." 하자, 자위가 "그렇다면 백성에게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하니, 경공이 "백성이 죽어 버리면 내가 누구를 데리고 임금 노릇을 하겠는가." 하므로, 자위가 "그렇다면 해[歲]로도 옮길 수가 있습니다." 하니, 경공이 "흉년이 들면 백성이 다 굶어 죽을 것이니, 임금으로서 자기 백성을 죽인다면 누가 나를 임금으로 섬기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자위가 "상(上)께서 매우 덕있는 말씀을 세마디 하셨으니, 틀림없이 하늘이 상을 가상하게 여김으로써 저 형혹성이 삼사(三舍:세 별자리)까지 옮겨가게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되어 재앙이 없었다는 고사이다.
- [註 176] 척리(戚里) : 임금의 외척.
- [註 177] 월인(越人) : 자신과 전혀 관계 없는 사물을 뜻함.
- [註 178] 여대(輿臺) : 하인.
- [註 179] 시역(廝役) : 종.
- [註 180] 폐조(廢朝) : 연산군.
- [註 181] 한(漢)의 당고(黨錮)의 화와 당(唐)의 백마(白馬)의 화 : 당고(黨錮)의 화는,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 진번(陳蕃)·이응(李膺) 등 우국지사가 환관(宦官)들의 발호를 미워하여 태학생(太學生)을 거느리고 환관을 공격하자, 환관들이 이들을 도리어 조정을 반대하는 당인(黨人)이라고 몰아 옥에 가두고 벼슬길을 막았으며, 그후 영제(靈帝) 때에 이르러 진번 등이 환관들을 죽이려다가 일이 누설되어 동지(同志) 백여 명과 함께 피살당한 사건을 말하고, 백마(白馬)의 화는, 당 애제(唐哀帝) 3년(906)에 후량왕(後梁王) 주전충(朱全忠)이 자기의 폐리(嬖吏)인 장정범(張廷範)을 태상경(太常卿)으로 삼으려 하자, 당나라 재상 배추(裴樞)가 장정범은 신분이 좋지 않다 하여 거절하므로, 양왕(梁王)이 대노하여, 모든 당나라 대신(大臣)으로서 양(梁)을 편들어 주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붕당(朋黨)으로 지목, 좌복야(左僕射) 배추, 우복야(右僕射) 최원(崔遠), 수태보(守太保) 조숭(趙崇), 병부 시랑(兵部侍郞) 왕찬(王贊), 공부 상서(工部尙書) 왕보(王溥), 이부 상서(吏部尙書) 육의(陸扆)를 즉시 백마역(白馬驛)에서 사사(賜死)시키고, 기타 당나라 충신 수백 명을 폄사(貶死)시킴으로써 당나라 조정이 텅 비어 망하게 되었던 일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7 당고전(黨錮傳), 《신오대사(新五代史)》 권37 당육신전(唐六臣傳).
- [註 182] 육척(六尺)의 고(孤) : 일찍 아버지를 여읜 어린 임금을 말함. 육척은 15세 이하의 소년을 가리키는 말이고, 고(孤)는 임금이 상중(喪中)에 있을 때의 자칭이다.
- [註 183] 동경(東京)이 기절을 중히 여기니 간웅(奸雄)이 구정(九鼎)을 둘러보면서도 감히 손대지 못하였고, : 동경은 후한(後漢)의 도읍지, 전하여 후한을 가리킴. 구정(九鼎)은 옛날 우(禹)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를 거두어 만든 솥인데 이것이 곧 전국(傳國)의 보물로 전해온 것으로, 전하여 천자(天子)의 자리를 뜻하며, 간웅(奸雄)은 곧 후한 말기의 역신(逆臣) 조조(曹操)를 가리키는데, 조조는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까 염려하여 이미 한 나라를 찬탈하였으면서도 자기 생전에는 끝내 황제라 자칭하지 않았던 것을 말한다.
- [註 184] 칠국(七國)이 모반하면서도 한 나라 조정의 급암(汲黯)한 사람만은 무서워하였습니다. : 칠국은 한 경제(漢景帝) 때 모반(謀反)을 일으킨 오(吳)·초(楚)·조(趙)·교서(膠西)·제남(濟南)·치천(菑川)·교동(膠東)을 가리킴. 급암(汲黯)은 한나라 때 직신(直臣)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회남여왕(淮南勵王) 유장(劉長)은 모반을 하면서 급암을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그 사람은 직간(直諫)을 좋아하고 절의(節義)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므로, 비리(非理)를 가지고 그의 마음을 유혹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사기(史記)》 권120 급암전(汲黯傳).
- [註 185] 중훼(仲虺)가 탕(湯)임금의 덕을 일컬으면서 ‘간언을 따라 어기심이 없었다.[從諫弗咈]’ 하였고 : 중훼는 은(殷)나라 탕(湯)임금의 재상. 그런데 ‘간언을 따라 어기심이 없었다.[從諫弗咈]’는 이 말은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나오지 않고, 역시 탕임금의 재상이었던 이윤(伊尹)이 탕임금의 어린 소자 태갑(太甲)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를 교훈시킨 글, 즉 《서경(書經)》 이훈(伊訓)에 나오는 말이다. 아마 이 상소문(上疏文) 저자는 이 말이 중훼지고(仲虺之誥) 편에서 나온 것으로 오인한 듯하다.
- [註 186]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명하는 말에도 ‘조석으로 가르침을 달라.’ 하였습니다. : 고종은 은왕(殷王) 무정(戊丁). 부열(傅說)은 고종의 현상(賢相). 고종 역시 어진 임금으로 알려졌는데, 일찍이 부열에게 명하기를 "조석으로 나에게 가르침을 주어 내 덕을 도와주오." 하였다. 《서경(書經)》 열명 상(說命上).
- [註 187] 횡간(橫看) : 조선시대, 각 관청의 1년 동안의 지출 예산(支出豫算)을 계산하여 가로로 벌여 쓴 명세서(明細書).
- [註 188] 노선공(魯宣公)의 세묘(稅畝) : 세묘는 춘추 시대 노선공 15년에 처음으로 시행한, 공전(公田) 이외의 사전(私田)에서까지 십일세(十一稅:수확의 10분의 1을 나라에 바치는 것)를 부과했던 세법(稅法). 이것은 주(周)나라 때의 정전법(井田法)에 비해 훨씬 가혹한 세법이다. 정전법은 한 구역의 농지(農地) 9백묘(九百畝)를 정(井)자 모양의 9구(九區)로 나누어, 한 중앙의 1백묘는 공전(公田), 변두리 8백묘는 사전(私田)으로 하여 여덟 농가에 1백묘씩 사유(私有)로 맡기고 중앙의 공전 1백묘는 여덟 농가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만을 나라에 부세로 바치게 했던 것이다.
- [註 189] 당(唐)나라 말기의 궁시(宮市) : 당 덕종(唐德宗) 때 궁중에 시장(市場)을 열고, 환관(宦官)을 궁시사(宮市使)로 임명하여 물품(物品)을 억매(抑買)하던 일.
- [註 190]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민요(民謠) :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말은 곧 의복 단장을 거창하게 하여 풍속이 사치스러움을 뜻함. 백거이(白居易) 진사 책문(進士策問)에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민요를 들으니, 풍속이 사치스러움을 알 수 있다." 하였다.
- [註 191] 호병문(胡炳文) : 원(元)나라 때의 학자. 특히 주희(朱熹)의 학문에 정진했던 사람으로 자는 중호(仲虎)이고, 세상에서 운봉 선생(雲奉先生)이라 불렀다. 《역본의통석(易本義通釋)》·《서집해(書集解)》·《춘추집해(春秋集解)》·《예서찬술(禮書纂述)》 등 많은 저서가 있다.
- [註 192] 반인(伴人) : 서울의 각 관아(官衙)에서 부리는 사환(使喚). 왕자(王子)·공신(功臣) 및 당상관(堂上官)을 우대(優待)하여 차급(差給)하였음. 반당(伴儻).
- [註 193] 여형(呂刑) : 《서경》의 편명.
- [註 194] 순전(舜典) : 《서경》의 편명.
- [註 195] 고요(皐陶) : 순(舜)임금 신하. 법관(法官)의 장(鋹)이 되어 옥사(獄事)를 매우 잘 처리하였음.
- [註 196] 소공(蘇公)은 공경으로써 왕국(王國)을 장구하게 하였던 : 소공은 주 무왕(周武王) 때부터 성왕(成王) 때에 걸쳐 사구(司寇:법관)의 직에 있었던 소분생(蘇忿生).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사구(司寇)의 소공이여, 공경으로써 송사(訟事)를 처리하여 우리 왕국(王國)의 운명을 장구하게 하라." 하였다. 《서경(書經)》 입정(立政).
- [註 197] 생재(眚災) : 과실이나 불행에 의하여 저질러진 죄.
- [註 198] 호종(怙終) : 믿은 것이 있었거나 재범을 저지른 죄.
- [註 199] 주(周)나라의 힐융(詰戎)의 교훈 : 힐융(詰戎)은 군비(軍備)를 잘 다스린다는 뜻.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이르기를 "왕이 군비를 잘 다스려서 우(禹)임금의 발자취를 따르시오." 한 데서 온 말. 《서경(書經)》 입정(立政).
- [註 200] 염파(廉頗)·이목(李牧) : 모두 전국(戰國)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名將).
- [註 201] 추구(芻狗) : 짚으로 만든 개. 옛날 중국에서 제상에 쓰던 것. 제사가 끝나면 내버리므로, 전하여 소용이 있을 때는 이용하고 소용이 없으면 내버리는 물건의 비유. 여기서는 자신의 논의를 겸칭한 말.
원문
○弘文館副提學崔輔漢等上疏曰:
天人一理, 顯微無間, 茫茫蒼蒼, 曰朝曰明。 人之所爲, 天必監之, 善與不善, 休咎類應。 人君以眇然一身, 位天地兩間, 對〔越〕 上帝, 表率萬民。 苟無格致誠(功)〔正〕 之學, 修齊治平之功, 何以能成位育之效乎? 《易》曰: "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至)〔其〕 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天且不違, 而況於人乎? 天不違於(人)〔上〕 , 則天災何由而作乎? 人不違於下, 則人變何由而起乎? 雖然, 有格治誠正之學而後, 能致修齊治平之功, 有修齊治平之功而後, 能成大人矣。 人主有大人之德, 而天違於上, 人違於下者, 臣等未之聞也。 殿下承祖宗之統, 撫盈成之運, 罔逸罔淫, 宵旰勵精, 敬天勤民, 圖臻熙皞, 將三紀于玆矣。 然太平之象未見, 而危亡之兆已著, 天災時變, 疊見層出, 白氣布天, 白虹貫日, 彗星犯台, 太白見晝, 正陽之月, 非特繁霜, 而雨雹雨雪。 飢饉荐至, 民多餓莩, 子蒸其母, 人倫滅絶, 千古所無之災異, 皆萃於一時。 蚩蚩之氓, 尙且憂懼, 有識之士, 寧不痛哭? 災變之作, 雖不指爲某事之致, 發政施令之間, 豈無所召之失乎? 一女仳離, 足以召水旱之災; 一言爲善, 足以退熒惑於三舍。 殿下發德音, 布告中外, 使大小臣僚, 各陳所懷, 欲以知致災之源, 而將以修格天之德, 是豈特景公一言之善而已哉? 臣等叨顧問之列, 値求言之日, 安敢含糊噤默, 負殿下修省之美意哉? 謹綴其切於時病者十餘, 仰塵淸聽。 但求言非難, 而聽之爲難, 聽言非難, 而用之尤爲難, 伏願殿下垂察焉。 一曰, 嚴宮禁。 《傳》曰: "家齊而後國治。" 宮禁者, 卽殿下之一家也。 身爲一家之本, 而國爲一家之本也。 未有身不修, 而能齊其家者, 亦未有家不齊, 而能治其國者。 誠以閨門房闥之間, 正始之所由基, 王化之所由肇也。 今也內治不肅, 而掖庭不嚴, 瑣瑣之徒, 伺宴閑之隙, 如簧之舌, 惑冕旒之聰, 戚里之人, 欲遂已欲, 則托稱問安, 駢闐偪側, 有同歸市, 罔有限制, 至於嬪媵阿保之屬, 市井無賴之輩, 亦莫不因緣憑藉, 誇耀貴寵。 官之除拜, 至於受點, 而或云得失猶可以容人力, 訟之利害, 在於曲直, 而或云得失猶可以有營爲, 時中其言, 歸之已功, 受人賄賂, 衆聽疑怪, 莫知端倪。 廷臣之論列此事, 非一再, 而未見矍然改悔之實, 使殿下求治之誠, 反同於衰季賣官鬻獄之風, 可勝痛哉? 而況前日斗筲之輩, 【金安老、蔡無擇、許沆等。】 通交攀付, 盜據權要, 伺候殿下之動靜, 揣知殿下之好惡, 承順逢迎, 竊弄威福, 致國勢岌岌, 將至於不測之地。 此已然之明驗, 內外之分, 尤不可不嚴也。 伏願殿下留神焉。 二曰, 立綱紀。 《禮》曰: "綱紀旣正, 天下大定。" 夫人君, 統臣民之衆, 莅萬機之繁, 使庶事循理, 有挈領裘, 順之勢者, 紀綱而已。 國之有紀綱, 猶身之有血脈。 血脈病則支體雖完, 而藏腑已潰, 紀綱墜弛, 則雖若治平之可恃, 而危亡立至。 是故, 善計天下者, 不視天下之安危, 而察其紀綱之理亂。 今也朝廷之上, 紀綱不立, 百工墮哉, 視官司如傳舍, 視國事如越人, 悠悠泛泛, 取祿苟榮。 豪右之家, 奪人臧獲, 【王子君等, 以人之婢, 托爲陳告而奪之。】 寡弱無所伸其冤, 叛主之奴, 謀屬內需, 【朴順見奴婢, 托陳告謀屬于內需司。】 而(勢)〔執〕 券理訟者, 或被毒殺。 【朴順見訟其奴婢之投屬內需司者, 而其奴以毒藥殺之云。】 名分不可紊也, 而以妾爲妻, 以孽爲嫡, 【崔珣、安智, 以妾子爲嫡, 冒屬忠順衛, 事覺罷職, 其子還孽。】 以至賤隷之徒, 爭懷非分, 冒入官籍, 忝汚科目, 陵貴成習, 輿臺廝役, 歐辱士類, 恬不爲怪。 令出, 不欲反也, 而立法甫巳, 旋廢不行, 下旨恤民, 視爲文具, 民不畏禁, 吏多慢法。 陵夷至此, 而殿下莫肯軫念, 寧不寒心? 嗚呼! 紀綱之弛張, 而國家之盛衰從焉。 其維持振作之方, 秪在人主一身。 伏願殿下留神焉。 三曰, 布公道。 天無私覆, 地無私載, 日月無私照。 人君, 體天地日月之德, 用至公無私之道, 儀刑四方, 四方取則。 故世治則賞罰明, 而公道行; 世亂則人慾肆, 而私門開。 淑慝之消長, 國家之興亡, 係於公私二者之間耳。
今也宮闈之間, 女謁盛而蹊經多端, 朝廷之上, 請托繁而折簡紛紜。 黜陟幽明, 方伯之任也, 而權貴子弟, 雖愚必保, 銓衡人物, 政曹之任也, 而才雖可用, 非勢不擢。 公論所在, 不可掩也, 而用人之際, 務悅其人, 則不顧是非, 强自注擬曰: "臺諫有之", 至如系在下賤, 而濫廁朝列。 【金玉倫, 以微賤, 爲監役官。】 仕路不淸, 若此不已, 執簿呼名, 一吏足矣。 國家所以重銓衡之意, 安在? 聽訟, 欲其平也, 而是非顚倒於賄賂, 折獄, 欲其公也, 而刑獄獨宣於塡寡。 公道之蝕, 莫此爲甚。 伏願殿下, 克去己私, 公以示下, 以杜私枉之門。 四曰, 振士氣。 《傳》曰: "人材, 國家之元氣。" 《詩》曰: "周王壽考, 遐不作人?" 作人之妙, 惟在匡直輔翼, 而培養氣節也。 蓋天地至正之氣, 充塞乎兩間, 鍾於人, 而爲賢士。 是氣養得其道, 則振起興發, 而濟濟多士, 可以爲邦家之光, 養失其道, 則雖有是氣, 消縮摧沮, 薾然而餒矣。 我朝興運以來, 世宗振作於前, 成廟培養於後, 宏材碩德負氣重節之士, 彬彬輩出, 自經廢朝, 誅鋤殆盡, 蕩然無餘。 漢黨錮、唐白馬之禍, 未有若此之酷也。 殿下三十年作成之功, 宜可以收效於今日, 然頃者奸凶 【金安老、蔡無擇、許沆等。】 煽禍, 士林氣喪, 父兄之所敎誨, 師友之所勸戒者, 不危其言, 不危其行, 故唯諾成風, 無敢言極諫之士, 軟熟相尙, 無特立獨行之人。 今朝廷雖非昔日之朝廷, 今日之士, 皆是前日之士也。 變化未易, 舊習猶存。 所謂托六尺之孤, 臨大節, (大)〔不〕 可奪者, 未知爲誰耶? 轉移之機, 唯在乎上而已。 昔東京重氣節, 奸雄環視九鼎, 而不敢動, 七國謀反, 獨畏漢庭之一汲黯。 氣節之士, 係國家輕重如此。 伏願殿下, 遠法文王之作人, 近述成廟之培養, 鼓之舞之, 以振多士之氣。 五曰納諫諍。 仲虺稱成湯之德曰: "從諫不咈。" 高宗命傅說之辭曰: "朝夕納誨。" 成湯、高宗, 豈但弗咈納誨而已哉? 其所躬行之實, 常存於弗咈納誨之後, 故能造其聖賢之域也。 殿下躬上聖之資, 有好問之德, 求言之急, 有如飢渴, 受言之易, 如石投水, 未嘗有過擧, 而論之則受以爲過擧, 未嘗有闕政, 而陳之則受以爲闕政, 成湯之弗咈, 高宗之納誨, 蔑以加矣。 雖然未聞某過某闕, 因某人之諫而改之, 某弊某瘼, 因某人之爭而祛之。 優容臺諫之美事, 徒溢於史牒, 妨政病民之事, 曾無一分之改紀, 是徒有納諫之美名, 無納諫之實效也。 且如遣使欽問, 旣不中禮, 又非時宜。 一開其端, 後弊難救。 諫官所論, 實有深意, 而諉以己言華使, 留難至是, 臣等恐亦有妨於樂聞之誠。 伏願殿下, 舍己從人, 以盡用諫之實。 六曰, 節財用。 《易》曰: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 蓋侈用則傷財, 傷財則必至於害民矣。 天地生財, 只有此數, 不在於民, 則必在於國。 我朝創業經制, 貽厥孫謀。 賦稅則有常貢之正數, 用度則有橫看之細密, 量入爲出, 不盡人之財, 以固邦本。 今也不然, 橫看之外, 又有別例之用, 別例之外, 又有不時之需。 今年之貢賦不足, 則取民於明年, 名爲引納, 實是再稅, 何異於魯宣之稅畝乎? 府庫一空, 經費不繼, 尙未知節。 內用之旨日下, 有司措辦無由, 一皆責貿於市廛, 就買於豪貴之家, 朝入于內, 暮出于外, 循環不窮, 其價日增, 其不近於唐季之宮市者, 幾希矣。 嗚呼! 先王, 用常貢正數, 而不爲不足, 今也用引納貿易, 而不爲有餘者, 何哉? 田野之民, 困於引納, 市井之民, 困於貿易, 利歸豪貴, 害歸於國。 將至於財竭民散, 則何以爲國? 此實朝廷之所大憂。 念經幄所陳, 疏箚所列, 莫不以此爲急, 而殿下視以尋常, 不肯惕念, 奈國家民生何? 伏願殿下, 緩不急之用, 節浮費之財, 使斯民得受一分之賜。 七曰, 抑奢侈。 伊尹戒太甲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釋之者曰: "太甲, 奢侈失之, 無長遠之慮, 故告之以此。"
自古人君, 未有奢侈而不亡者, 亦未有儉約而不興者也。 惟我國家, 聖繼神承, 儉以足用, 國富兵强, 百有餘年, 太平已久, 人心不古, 侈靡之習漸成, 而儉約之風掃如。 究厥所自, 未必不由於上也。 奢侈之風, 始於宮闈, 服飾之制, 必欲殊異, 彫鏤之玩, 亦窮奇技, 競尙靡麗, 日新而月不同, 近貴慕倣, 民庶視效, 自作一體, 誇美於人曰: "此宮中之樣也。" 富者殫財, 貧者企及, 轉相僭擬, 無有(記極)〔紀極〕 。 此高髻廣袖之謠, 所由起也。 至如宮室之制, 自有定限, 而王子第宅, 綿亘閭里, 畫棟彫梁, 入空連雲, 務極高大, 侔擬宮闕, 財竭而不止, 滿意而後已。 上有好者, 下必甚焉。 士大夫之家, 踰制無忌, 紏之以法, 朝撤夕搆, 莫之能禁。 飮食之品, 在於適口, 而上自貴戚, 下至黎庶, 食前方丈, 非水陸兼味, 則不屑也。 恥居人後, 日費萬錢, 傾財破産, 尙未知悔, 此何等風也? 侈心之極也, 不貴土物, 而貴遠物, 朝京使臣之絡繹, 公貿私販之太繁。 車載馬輸, 困敝郵卒, 取鄙中原, 至有賣胡之稱。 嗚呼! 此又不可已耶? 先儒胡炳文曰 "尙侈靡, 而細民衣帛食肉, 此飢寒之所由生, 盜賊之所由作。 天下如是, 上不知禁, 然而不亡者, 未之有也。" 伏願殿下, 留神焉。 八曰, 勵廉恥。 《書》曰: "惟天生民有欲。" 人之生也, 雖具仁義禮智之性, 亦不能無耳目〔口〕 鼻之欲。 不有以廉恥隄防之, 必至於棄禮蔑義, 喪其羞惡之心, 而將歸禽獸之域矣。 古人以禮義廉恥, 爲國之四維。 四維不張, 則國乃滅亡。 今也廉恥道喪, 貪風日滋, 居官者率多利祿之士, 牧民者〔無〕 非掊克之人, 以肥己潤屋爲急務, 以奉公恤民爲何事, 簡札旁午, 谿壑難盈, 不畏人知, 剝民膏血, 臨官自盜, 略無愧色, 爭占海澤, 廣植田園, 憑藉官力, 不費己物。 托名儒籍, 奔走權門者, 得一名於昏夜, 而反驕人於白日, 起跡草澤, 僥倖末科者, 無高曾積累之漸, 而有子孫豐富之樂。 至如品非堂上, 私請伴人, 布列郡縣, 責貢反過於奴僕。 此而不恥, 何事可恥? 伏願殿下, 道之以德, 齊之以禮, 滌貪汚之習, 以勵廉恥之風。 九曰, 愼刑獄。 《呂刑》曰: "士制百姓于刑之中, 以敎袛德。" 《舜典》曰: "欽哉欽哉, 惟刑之恤哉。" 蓋刑者, 輔治之具, 雖不可廢, 而欽恤之垂, 亦不可不行乎其間也。 雖然, 非侫折獄, 惟良可以折獄, 故皋陶爲士, 致協中之治, 蘇公式敬, 以長于王國。 古之愼刑而擇人也如此, 今也世道日降, 犯法者愈多, 眚災怙終之不辨, 惟輕惟重之或混。 聽獄之官, 不擇人物之賢否, 惟視班資之高下, 武夫之麤猛, 蔭吏之不學, 或居其位, 豈復有慈祥愷悌之念? 是故, 强者, 恣意於惟貨, 而出入由已; 弱者, 畏㤼於惟官, 而上下由人。 無辜籲呼於道途, 憤冤之氣, 上感于天, 則可以傷天地之和也, 可以召水旱之災也。 嗚呼! 病人將死, 知不可救, 猶不付之庸醫之手, 以試其死生。 而況以一國赤子之命, 付之庸劣之人, 任其生殺可乎? 且夫赦者, 所以宥小過, 不可數也。 賊良民之甚, 無過於此, 非所以愼刑之意也。 伏願殿下, 法虞舜欽恤之意, 得皋陶、蘇公之良, 以任司寇, 以愼刑獄。 十曰, 修軍政。 禦暴保民, 王政之所先; 迨天未雨, 聖人之所戒。 必也克詰於無事之時, 而張皇於有事之日, 節制於樽俎之間, 而折衝於千里之外, 然後夷狄不得伺其可乘之隙, 國家長治而久安也。 我國南隣島夷, 北接野人, 三面受敵, 不可一日而忘備也。 設鎭設堡, 選將鍊兵, 大而有兵使、水使焉, 小而有僉使、萬戶焉, 祖宗規畫之意遠矣。 然而昇平日久, 狃於尋常, 爲將者, 唯知侵漁之爲利, 爲兵者, 不識坐作進退之節。 西北二界, 國之門戶, 民多飢死, 十室九空。 團鍊護送, 項背相望, 西方軍馬, 病斃殆盡。 加以各邑守令, 要貿唐物於所管之卒, 少給其直, 責徵溢價之物, 孑孑窮民, 何以爲生? 胡人之來邊, 責納貂皮, 誅求無厭, 其怨益增, 不樂來朝, 惟思竊發。 倭奴留浦, 法當禁其出入, 而恣行民間, 彼必知吾守禦之踈。 虜居城底, 義當辨別族類, 而貧民丐貸, 往來無問, 彼必揣吾飢困之狀。 邊釁將萌, 而軍政若此, 脫有緩急, 未知朝廷, 施何策而措之耶? 當今之勢, 比之於人, 言語動作, 似若無病, 而和、扁望之, 必却走而不顧矣。 伏願殿下, 念聖人陰雨之戒, 體周家詰戎之訓, 得廉頗、李牧而使守邊城, 預修軍政, 保邦於未危, 幸甚。 凡此十條, 皆前日已陳之芻狗, 其於應天弭災之道, 似乎迂緩, 苟能行之以實, 則災可轉而爲祥, 而未至之禍, 猶可及止也。
答弘文館曰: "今觀此疏, 切中時病, 上下更加省念焉。 大抵災變, 豈有虛生? 古云: ‘應天以實, 不以文’, 凡事以實爲之可也。 如華朝之事, 雖一事, 若已知而示之不信, 則華人以爲, 事事皆類此。 是非細事, 故予謂難(期)〔欺〕 也。 恤民最重, 上下每念於心, 其奉行者幾何? 用人伸冤, 皆是重事, 而疏中論其不公之意, 至當也。 然上有所失, 予當察之, 下有所失, 亦各察之。 每事無不省念, 則應災之道得矣。"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왕실-종사(宗社) / 사법-치안(治安) / 가족-가산(家産) / 신분-천인(賤人) / 재정-상공(上供)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역사-고사(故事) / 주생활-가옥(家屋)
중종 34년 (1539) 5월 8일
중종실록90권, 중종 34년 5월 8일 乙亥 2/2 기사 /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홍문관 부제학 최보한 등이 시병에 적절한 10가지 상소문을 올리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 최보한(崔輔漢) 등이 상소하기를,
"하늘과 사람이 이치는 일반이고 현(顯)과 미(微)에 사이가 없어서 망망(茫茫)하고 창창(蒼蒼)하지만 아침이고 낮이고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은 반드시 보고 있습니다. 선(善)과 불선(不善)에 따라 휴구(休咎)가 제길로 응하기 마련인데 임금이 묘연(眇然)한 몸 하나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하여 위로 상제(上帝)를 대하고 또 만백성을 대표하여 통솔하는 처지인데 그에게 격물·치지·성의·정심의 학문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공력이 없다면 어떻게 위육(位育)174) 의 효과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주역(周易)》에도 이르기를 ‘대인(大人)이란 천지(天地)와 그 덕이 같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이 같으며 사시(四時)와는 그 질서가 같고 귀신(鬼神)과는 그 길흉(吉凶)을 아는 것이 같다. 하늘보다 먼저 하여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천시(天時)를 따르는 것이니 하늘도 어기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였는데 하늘이 사람을 어기지 않고 따라 주는 정도라면 천재(天災)가 무엇 때문에 생길 것이며 사람이 아래에서 어기지 않는다면 인변(人變)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나 격물·치지·성의·정심의 학문이 있는 뒤에야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공효를 이룰수 있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공효를 이룬 뒤에야 대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 대인의 덕이 있는데도 하늘이 위에서 따라 주지 않고 사람은 아래서 따라 주지 않는 것은 신들은 듣지 못한 일입니다.
전하께서 조종(祖宗)의 계통을 이으시고 영성(盈成)한 운세를 잡으셔 안일하지도 음란하지도 않게 잠과 수라를 걸러가시며 정신을 가다듬으시고 하늘을 받들고 백성에게 힘을 다하여 태평 성대를 구현해 보려 하신 지 지금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태평의 기상은 보이지 않고 위망(危亡)의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재와 시변(時變)이 잇달아 나타나 백기(白氣)가 하늘을 덮고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가 하면 혜성이 삼태성을 침범하고 태백이 낮에 나타나며 정양(正陽)의 절기에 서리뿐만 아니라 우박에 눈까지 쏟아졌습니다. 기근이 계속 들어 백성은 굶어 죽은 자가 많고 자식이 어미를 간통하여 인륜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천고에 없던 재변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어 어리석은 백성들도 두려움에 질려 있는데 식자들이 왜 통곡을 않겠습니까. 이러한 재변들이 꼭 무슨 일 때문에 일어난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정사를 행하고 명령을 발하는 사이에 그것을 불러일으킬 만한 잘못이 없다고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 여인의 원한이 수한(水旱)의 재앙을 부를 수도 있고 말 한 마디 잘한 것이 형혹(熒惑)을 삼사(三舍)까지 물리칠 수도 있었습니다.175)
지금 전하께서 덕음(德音)을 발하시어 중외(中外)에 포고하시고 대소 신료들로 하여금 제각기 생각하는 대로 말하게 하여 재앙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알아냄으로써 하늘의 마음을 돌이킬 덕을 닦으려고 하시는데 그것이 어찌 경공(景公)의 말 한 마디 잘한 것 정도에 그치고 말 것이옵니까. 신들이 고문(顧問)의 자리를 욕되게 하고 있으면서 이 구언(求言)의 시기를 당하여 어떻게 감히 어물어물 입을 다문 채 전하의 수성(修省)하시려는 아름다운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여기 시병(時病)에 적절한 10여 가지를 삼가 엮어서 전하의 귀를 더럽힐까 합니다. 다만 구언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대로 듣는 것이 어렵고 또 듣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대로 활용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소서.
첫째는 궁금(宮禁)을 엄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전(傳)에도 이르기를 ‘집안이 정제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진다.’ 하였습니다. 궁금은 바로 전하의 가정입니다. 몸은 한 집안의 근본이 되고 집은 한 나라의 근본이 됩니다. 따라서 몸이 닦아지지 않고서 집안을 정제하는 자 있지 않고 또 집안을 정제하지 못하고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규문(閨門)·방달(房闥)의 사이가 바로 정시(正始)의 기반이 되고 왕화(王化)의 본거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치(內治)가 엄숙하지 못하고 액정(掖庭)이 근엄하지 못하여 잗단 무리들이 한가한 틈을 노려 생황 소리와 같은 교묘한 소리로 임금의 총명을 흐리게 하고 척리(戚里)176) 들이 자기 욕망을 이루고 싶으면 문안을 한답시고 어깨를 맞대고 곁에 바싹 붙어 시장에 장보러 가듯 아무 거리낌이 없으며, 심지어 빈잉(嬪媵)·아보(阿保)의 무리와 시정(市井) 무뢰배들까지도 연줄을 대고 누군가를 빙자하여 귀총(貴寵)을 뽐내고 있습니다.
관직 제수를 받으려면 점(點)을 받아야 하는 데도 혹자는 사람의 힘으로 득실(得失)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하고, 송사에 있어서의 이해(利害)는 곡직(曲直)이 좌우하는 것인데도 혹자는 잘되고 잘못되고가 하기에 달렸다고 하여 때로 그 말이 맞으면 자기의 공이라고 하며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곤 하는데 뭇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어느 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조정 신료로서 그 일을 논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직도 확연히 뉘우치는 실상을 보지 못하여 전하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정성이 도리어 말세(末世)에 관작을 팔고 송사(訟事)를 팔아먹던 풍조와 같게 되도록 만들고 있으니, 너무나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더구나 지난날 소인배 【김안로·채무택·허항의 무리.】 들이 오가면서 권세에 붙어 권요(權要)를 차지한 다음 전하의 동정(動靜)을 살피고 전하께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아내어 뜻을 받들고 선수를 치기도 하며 위복을 휘둘러 위태위태한 나라 형세가 불측(不測)의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이미 겪어 본 분명한 증험으로서 안과 밖의 구별을 더욱 엄하게 아니할 수 없는 산 증거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留念)하소서.
둘째는 기강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예기(禮記)》에도 이르기를 ‘기강(紀綱)이 바로되면 천하가 크게 안정된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수많은 신민(臣民)을 거느리고 번거로운 만기(萬機)를 처리하면서 모든 일이 이치에 맞아 마치 갖옷의 옷깃을 들었을 때 그 수많은 털들이 가지런히 정돈되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기강뿐입니다. 나라에 기강이 있다는 것은 마치 사람 몸에 혈맥(血脈)이 있는 것과도 같아서 혈맥이 병이 들면 지체(支體)가 비록 완전하더라도 장부(臟腑)는 이미 궤멸된 것처럼, 기강이 무너지면 비록 치국·평천하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금방 위망(危亡)이 닥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잘 요량하는 자는 세상의 당장 안위(安危) 보다도 기강이 서 있는가 문란한가를 살피는 법입니다.
지금 조정에는 기강이 서 있지 않고 백공(百工)이 질서를 잃어 관사(官司) 보기를 전사(傳舍)처럼 여기고 국사(國事) 보기를 월인(越人)177) 같이 여겨서 하는 일 하나 없이 그저 녹(祿)이나 받고 영화나 누리려고 하며, 세력 있는 집에서는 남의 종을 빼앗아가도 【왕자군(王子君) 등이 남의 종들을 진고(陳告)를 핑계로 빼앗아 갔음.】 약자들로서는 그 억울함을 펼 길이 없고, 상전을 배반한 종이 내수사(內需司)에 들어가기를 꾀했을 때 【박순견(朴順見)의 종이 진고를 핑계로 내수사로 들어가려고 꾀했음.】 송사를 제기한 자가 독살(毒殺)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박순견이 내수사로 들어 가려고 한 종을 상대로 송사를 제기했는데 그 종이 독약을 써 죽였다고 하였음.】
그리고 명분(名分)은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인데 첩(妾)을 처(妻)로 삼고 서자를 적자로 삼는가 하면 【최순(崔珣)·안지(安智)가 첩의 자식을 적출로 삼아 충순위(忠順衛)에 붙여있게 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자신은 파직되고 그 자식은 서출로 환원되었음.】 심지어 천례(賤隸) 무리들까지 시새워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고는 거짓으로 꾸며 관적(官籍)에 이름을 두고 과목(科目)을 더럽히면서 귀인을 얕보는 것이 예사이고, 여대(輿臺)178) ·시역(廝役)179) 들이 사류(士類)에게 매질을 가하고 욕을 보여도 당연한 일인 양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명령이 나가면 따라야 원칙인데 법을 겨우 세우자마자 곧 폐기하여 행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돌보라는 성지가 내려도 하나의 문구(文具)로 보아 넘깁니다. 백성은 법금을 무서워하지 않고 관리는 허다히 법을 지키려 들지 않습니다. 기강의 해이가 이 지경인데도 전하께서 진념(軫念)하지 않으시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기강이 서느냐 안서느냐에 따라 국가의 성쇠가 좌우됩니다. 그것을 유지하고 진작하는 것은 오직 임금 한 몸에 달려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시어 살피소서.
세째는 공도(公道)를 펴자는 것입니다. 하늘은 사사로이 덮고 있는 곳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싣고 있는 곳이 없으며 해와 달도 사사로이 비치는 곳이 없습니다. 임금은 하늘과 땅, 해와 달의 덕을 본받아 지공 무사한 길을 걸으면서 사방(四方)의 모범이 되어야, 사방이 본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질 때는 상벌(賞罰)이 분명하여 공도가 행해지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인욕(人慾)이 기승을 부려 사사로운 문이 열리는 법입니다. 숙특(淑慝)의 소장(消長)과 국가의 흥망이 모두 공(公)과 사(私) 이 두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궁궐에는 여알(女謁)이 득세하여 여러 갈래의 지름길이 있고, 조정에는 청탁이 공공연하게 행해져 절간(折簡)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능력자를 승진시키고 부진한 자를 퇴출하는 것이 방백(方伯)의 임무인데도 권귀(權貴)의 자제들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인물을 전형(銓衡)하는 것이 정조(政曹)의 임무인데 비록 쓸 만한 인재라도 세력이 없으면 발탁될 수 없습니다. 공론이란 덮어 버릴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을 쓰는 데 있어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시비(是非)도 아랑곳없이 억지로 주의(注擬)하면서 이르기를 ‘대간(臺諫)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하천(下賤)의 계열에 있던 자가 분수 넘게 조정의 반열에 끼기도 하며 【김옥륜(金玉倫)이 미천한 사람으로 감역관(監役官)이 되었다.】 벼슬 길이 맑지 못함이 이런 식으로 되풀이되어 끝이 없습니다. 명부를 들고 호명(呼名)하는 식이라면 관리 1명으로도 족할 것이니 국가에서 전형을 중히 여기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송사를 듣는 것은 공평하게 해야 하는데 시비가 뇌물로 인하여 전도되고, 옥(獄)을 결정하는데는 공정이 제일인데 형옥(刑獄)이 가난하고 병든 자에게만 적용되니, 공도가 좀먹기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자신의 사사로움을 없애시고 아래 신민들에게 공정을 보이시어 사사롭고 바르지 못한 문호를 막아 버리소서.
네째는 사기(士氣)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인재는 국가의 원기다.’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에도 이르기를 ‘주왕(周王)이 수고(壽考)하시니 어찌 인재를 양성하지 않으리오.’ 하였습니다. 인재를 진작시키는 묘법은 오직 바르게 붙잡아 주고 곁에서 부축하면서 기절(氣節)을 배양하는 데 있습니다. 천지의 지극히 바른 기운이 그 중간을 메우고 있다가 그 기운이 사람에게 모여져서 현사(賢士)가 되는 것인데 그 기운을 제대로 길러내면 진기(振起)·흥발(興發)하여 수많은 선비들이 나라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기르기를 제대로 못하면 비록 그 기운이 있어도 움츠러들고 풀이 꺾여 시들하게 줄어들고 맙니다.
우리 나라가 개국(開國)한 이래로 세종께서 앞서 진작하시고 성종이 뒤이어 배양하시어 큰 재목, 훌륭한 덕, 그리고 기개를 자부하고 기절을 중히 여기는 선비들이 성대하게 배출되더니 폐조(廢朝)180) 의 모진 숙청을 겪고 나서는 남아난 사람이 씻은 듯이 없어 한(漢)의 당고(黨錮)의 화와 당(唐)의 백마(白馬)의 화181) 도 그렇게까지 혹독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전하께서 30년에 걸쳐 이루어 오신 공이 당연히 오늘에 와서 효과를 거두어야 할 것인데도 지난번 간흉들 【김안로·채무택·허항.】 이 화를 선동했던 바람에 사림들의 기가 꺾였고, 부형(父兄)이 가르치는 것도 사우(師友) 사이에 권계(勸戒)하는 것도 모두 말을 위태롭게 말라 행실을 위태롭게 말라 하는 것이었으므로 예예하는 것이 풍속이 되어 감언(敢言)·극간(極諫)하는 선비가 없고 또 부드럽고 약한 것을 서로 숭상하여 특립(特立)·독행(獨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의 조정이 비록 어제의 조정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은 오늘 선비가 다 지난날의 선비들이어서 변화가 쉽지 않고 아직도 구습이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이른바 육척(六尺)의 고(孤)182) 를 맡길 수 있고 대절(大節)에 임하여 뜻을 빼앗을 수 없는 자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이 풍토를 바꾸어 놓는 계기는 오직 상께 있을 뿐입니다. 옛날 동경(東京)이 기절을 중히 여기니 간웅(奸雄)이 구정(九鼎)을 둘러보면서도 감히 손대지 못하였고,183) 칠국(七國)이 모반하면서도 한 나라 조정의 급암(汲黯)한 사람만은 무서워하였습니다.184) 기절 있는 선비가 국가에 영향을 주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멀리는문왕(文王)의 인재 양성하시던 일을 본받고 가까이는 성종의 인재 배양하시던 법을 계승하여 사기를 고무 진작시키소서.
다섯째는 간쟁(諫諍)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훼(仲虺)가 탕(湯)임금의 덕을 일컬으면서 ‘간언을 따라 어기심이 없었다.[從諫弗咈]’ 하였고185)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명하는 말에도 ‘조석으로 가르침을 달라.’ 하였습니다.186) 성탕·고종이야 어찌 다만 물리치지 않는 것, 가르침을 달라는 것, 그것뿐이었겠습니까. 그들이 몸소 행하는 실상이 언제나 물리치지 않는다, 또는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하는 그 뒷받침이 되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성현의 경지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하께서 몸에 상성(上聖)의 자질을 지니시고 묻기를 좋아하시는 덕이 있으시며 서둘러 구언(求言)하기를 기갈(飢渴)에 음식을 찾듯이 하시고 말을 수월하게 받아들이기를 물에 돌을 던지듯이 하셨습니다. 허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따지고 들면 내가 너무했노라고 받아 주시고 잘못한 정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뢰면 내가 잘못했노라고 받아들이셨으니, 성탕이 거스르지 않은 것도, 고종이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도 그보다 더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오나 무슨 허물 무슨 잘못을 누구의 간언에 의하여 고쳤다거나 무슨 폐단 무슨 민막(民瘼)을 누구의 쟁의에 따라 없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 대간을 우용(優容)한다는 아름다운 사실들이 사첩(史牒)에만 넘치고 있을 뿐, 정사에 방해가 되고 백성을 병들게 만드는 사건들은 하나도 고쳐진 것이 없으니, 이는 간언을 받아들인다는 미명만 있지 참으로 그 간언을 받아들인 실효는 없는 것입니다.
또 사신을 보내 흠문(欽問)하는 일만 하더라도, 그것은 예에 맞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의(時宜)도 아닌 것으로 한 번 그 길을 터놓으면 뒤폐단을 걷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간관(諫官)이 한 말이 사실은 깊은 뜻이 있는 것이었는데도 중국 사신에게 이미 말한 것이라서 그대로 두기는 어렵다고 핑계를 하시니 여기에서 신들은 그것이 혹 간언을 즐겨 들으시는 전하의 성의에 누를 끼치는 일이 아닐까 염려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시어 간언을 실지로 채택하는 아량을 다하소서.
여섯째는 재용(財用)을 아끼자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에도 이르기를 ‘일정한 제도에 의하여 절제함으로써 재물을 상하지 말고 백성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대체적으로 씀씀이가 사치스러우면 재물을 상하고 재물을 상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치기 마련입니다. 하늘과 땅이 낸 재물은 한정된 숫자가 있는 것이어서 그것이 백성에게 있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에 있기 마련인데, 우리 나라가 창업했을 당시 자손에게 물려주신 경제 제도로서, 부세(賦稅)에 있어서는 상공(常貢)으로 일정한 수치가 있었고 용도(用度)에서는 횡간(橫看)187) 의 세밀을 기하여 세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하였고 백성에게 재물을 남겨 둠으로써 나라의 근본을 든든하게 하였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횡간 이외에 또 별례(別例)의 용도가 있고 별례 외에 또 불시(不時)의 수요가 있어 금년의 공부로 부족하면 백성에게서 내년 치를 받아들이면서 이름하여 인납(引納)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조세를 두 번 받는 것이니 노선공(魯宣公)의 세묘(稅畝)188) 와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부고(府庫)가 텅 비어 이어 쓸 경비가 없는데도 아직 절제할 줄을 모르고 내용(內用)에 관한 분부가 날로 내려오므로 유사(有司)로서는 마련할 길이 없어 전부를 시전(市廛)에서 사들이거나 아니면 호귀(豪貴)의 집에 가서 사오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침에 안에 들어왔던 것이 저녁이면 밖으로 나가게 되어 그것이 돌고 도는 바람에 값만 날로 치솟고 있으니 그것이 당(唐)나라 말기의 궁시(宮市)189) 제도와 거의 비슷합니다.
아, 선왕들께는 정해진 공납 숫자만을 쓰셨어도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납에다 무역(貿易)까지 하면서도 재용이 남아 돌지 않으니 왜 그렇겠습니까? 전야(田野)의 백성들은 인납에 시달리고 시정(市井)의 백성들은 무역에 시달리며, 이득은 호귀(豪貴)가 먹고 손해는 나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재정이 동이 나고 백성이 흩어진다면 어떻게 나라를 꾸려 가실 것입니까. 이야말로 조정의 큰 걱정거리여서 경악(經幄)에서 아뢴 것이나 소차(疏箚)에 나열된 것들이 모두 그것을 제일 급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예사롭게 보아 넘기시고 다잡아 생각하려 하지 않으시니 국가와 민생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급하지 않은 씀씀이는 늦추고 쓸데없이 소비되는 재정은 줄이시어 이 백성들이 한 푼의 혜택이라도 받게 하여 주소서.
일곱째는 사치를 억제하자는 것입니다.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경계하면서 이르기를 ‘당신의 검소한 덕을 잘 지키시어 영원한 미래가 있도록 하소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한 자의 말은 ‘태갑이 사치가 지나쳐서 원대한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고하였다.’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사치하고서 망하지 않은 자 없었고 또 검약하고서 흥하지 않은 자도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로만 말하더라도 성신(聖神)이 계승하시면서 검약을 숭상하여 국용을 풍족하게 하셨으므로 나라는 부(富)하고 군대는 강하여 1백여 년에 걸쳐 오랜 태평을 누려 왔는데 인심이 점점 옛날같지 않고 사치의 풍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검약했던 풍습은 씻은 듯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따지자면 위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치 풍조가 궁위(宮闈)에서부터 시작되어 복식 제도를 꼭 남달리 하려 들고 조루(彫鏤)의 노리개로 최고의 기기(奇技)를 자랑하여 서로 다투어 사치를 숭상함이 날로 다르고 달로 틀려 갔습니다. 그러자 가까운 귀족들이 그것을 모방하고 백성들도 보고는 본을 받아 자기들끼리 한 덩어리가 되어 남에게 자랑하면서 이것이 궁중의 모양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하여 부자는 있는 힘을 다하여 따르고 가난한 자는 쳐다보며 따르기를 희망하여 너도 나도 본을 따 못하는 짓이 없으니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민요(民謠)190) 가 그리하여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궁실 제도만 하더라도 일정한 분한(分限)이 있는 것인데 왕자의 집들이 여리(閭里)까지 뻗쳐 있으면서 화동(畫棟)·조양(彫樑)이 구름에 닿도록 공중에 치솟아 궁궐모양으로 높고 크기를 시새우며 재정이 동이 나도 그칠 줄을 모르고 욕심에 차야 그만 두는 지경입니다. 위에서 좋아하면 아래서는 더하기 마련이라 사대부의 집들도 거리낌없이 제도를 넘어서서 법으로 다스리면 아침에 철거했다가 저녁이면 다시 지어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음식 또한 입에 맞으면 될 것을 위로 귀척(貴戚)에서부터 아래로 서민들까지 한 발씩이나 괴어 올린 밥상에 산해 진미(山海珍味)가 아니면 대단찮게 여기고 행여 남에게 뒤질세라 날로 만금을 소비해가며 재산이 파경에 이르러도 뉘우칠 줄을 모르니 이 무슨 풍조란 말입니까.
사치스런 마음이 극도에 달해 토물(土物)은 좋아하지 않고 원물(遠物)을 좋아하여 계속되는 중국 사행 길에 공무(公貿)와 사판(私販)이 크게 일어나, 수레에 싣고 말로 수송하는 통에 시달리는 것은 우졸(郵卒)이고, 중국에서는 야비하다 하여 매호(賣胡)란 칭호까지 붙일 정도입니다. 아, 이 또한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란 말입니까? 선유(先儒) 호병문(胡炳文)191) 의 말에 ‘사치를 숭상하여 서민들이 비단 옷 입고 고기 반찬 먹는 것은 그것이 바로 기한(飢寒)의 원인이요 도적이 이는 원인도 된다. 세상이 그러한데도 위에서 금할 줄을 모르면, 그렇고서 망하지 않는 자는 없다.’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여 살피소서.
여덟째는 염치(廉恥)를 장려하자는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하늘이 백성을 내실 때 욕심은 다 있게 되어 있다.’ 하였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비록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품을 갖추었으나 그렇다고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욕심이 없을 수 없으므로 그것을 염치로 막지 않으면 반드시 예라는 것도 의라는 것도 버리고 수오(羞惡)의 마음까지 상실하게 되어 결국 금수와 같은 꼴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옛 사람들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일러 나라의 네 벼리[四維]라 하였는데 네 벼리가 개장(開張)되어 있지 않으면 나라는 곧 멸망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염치가 없어지고 탐하는 풍조가 날로 심하여 거관(居官)하는 자는 대다수 이록(利祿)을 따지는 선비이고 목민(牧民)하는 자는 부극(掊克)을 일삼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기 몸을 살찌우고 집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급무로 알고서 공(公)을 받들고 백성을 돌보는 일은 그게 무슨 일이냐는 식이어서 청탁이 줄을 잇고, 욕심을 채우기 어려워 남이 아는 것도 아랑곳없이 백성의 고혈(膏血)을 착취하며 벼슬길에서 도둑질하는 것쯤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 없이 다투어 해택(海澤)을 점유하거나 전원(田園)을 널리 차지합니다. 또 관력(官力)을 빙자하여 제 물건은 쓰지 않거나 이름은 유적(儒籍)에 두고 부지런히 권문(權門)을 찾는 자들이 어두운 밤에 찾아가 이름 하나라도 얻게 되면 도리어 대낮에 사람에게 교만을 부리기도 합니다.
또 월래 초택(草澤)에 묻혔던 자가 요행으로 말과(末科) 하나라도 얻으면 그는 제 고조·증조가 쌓아 둔 공로 하나 없이도 자손들이 풍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품계가 당상(堂上)도 아닌 자가 사사로이 반인(伴人)192) 을 청하여 각 군현(郡縣)에다 배치하여 두고는 종에게서보다도 더 심하게 그들로부터 공물(貢物)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 무슨 일인들 부끄러워 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덕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예로 그들을 다스려서 탐오(貪汚)의 습성을 씻어버림으로써 염치의 기풍을 장려하소서.
아홉째는 형옥(刑獄)을 삼가자는 것입니다. 여형(呂刑)193) 에 이르기를 ‘사(士)는 백성들을 알맞은 형벌로 다스려 그들이 덕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라.’ 하였고, 순전(舜典)194) 에도 이르기를 ‘조심하고 조심하여 백성을 돌보는 방향으로 형을 쓰라.’ 하였습니다. 형벌이란 보치(輔治)의 도구로서 비록 없어서는 안 될 것이나 그 사이에 흠휼(欽恤)의 뜻이 행해지지 않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말을 잘한다고 하여 옥을 잘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선량한 자만이 옥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요(皐陶)195) 가 법관(法官)이 되어서는 협중(協中)의 다스림을 이루었고 소공(蘇公)은 공경으로써 왕국(王國)을 장구하게 하였던196) 것입니다.
옛날에는 형을 삼가고 사람 고르기를 이와 같이 했는데 지금은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져서 법을 범하는 자는 더욱 많은데도 생재(眚災)197) 와 호종(怙終)198) 을 가리지 않고 경하고 중한 것을 혼용하기도 하며 옥을 청리하는 관원도 인물의 현부(賢否)는 가리지 않고 반자(班資)의 높고 낮음만을 따지기 때문에 거칠고 사나운 무부(武夫)나 배우지 못한 음리(蔭吏)가 혹 그 자리에 있게도 되는데 그들에게 무슨 자상(慈祥)·개제(愷悌)의 생각이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강자인 경우 돈만을 보고 제멋대로 처리하고 약자인 경우 관직에 겁을 먹고 곁에서 하자는 대로 끌려다닙니다. 그리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길에서 울부짖는가 하면 분원(憤冤)의 기운이 위로 하늘에 닿게 되면 천지의 화기를 상할 수도, 수재·한재를 부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구제할 수 없는 줄을 알면 용렬한 의원의 손에 맡겨 그의 생사를 시험할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한 나라 적자(赤子)의 생명을 무능력자에게 맡겨 제멋대로 살리고 죽이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면이란 작은 허물을 용서하는 제도로서 자주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양민(良民)을 해치는 것이 그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형을 삼가는 뜻이 아닌 줄 압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우순(虞舜)의 흠휼의 뜻을 본받으시고 고요와 소공 같은 선량한 관원을 찾아 사구(司寇)를 맡김으로써 형옥을 삼가게 하소서.
열째는 군정(軍政)을 닦자는 것입니다. 횡포한 자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은 왕정(王政)상 우선해야 할 일이며, 비가 내리기 전에 대비하라는 것은 성인의 훈계입니다. 무사할 때 충분히 대비하였다가 일이 있을 때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준조(樽俎)사이에서 절제하고 천리 밖에서 절충(折衝)하여야만 오랑캐들이 틈을 탈 만한 기회를 엿보지 못할 것이고 국가가 오래오래 다스려지고 편안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남쪽으로 섬 오랑캐와 이웃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야인들과 인접하고 있어 3면(面)으로 적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도 방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鎭)을 설치하고 보(堡)를 만들고 장수를 뽑고 군대를 조련하고 크게는 병사(兵使)·수사(水使)를 두고 작게는 첨사(僉使)·만호(萬戶)를 두었으니, 조종(祖宗)께서 규획(規畫)하신 뜻이 원대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평 세대가 오래 계속되자 그것이 예사로 여겨져서 장수된 자는 침어(侵漁)하는 것이 이로운 줄만 알고 병사들은 좌작(坐作)·진퇴(進退)의 절차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서북(西北) 두 경계는 나라의 문호(門戶)인데 굶어 죽은 백성이 많아 열 집에 아홉 집이 비어 있으므로 단련(團練)하여 호송하느라 행렬이 줄을 이었고 서방의 군마(軍馬)는 병들어 거의 죽었으며 게다가 각읍의 수령들은 자기 관할 군졸들을 시켜 중국 물품을 사오게 하면서 값은 조금만 주고 그 이상의 물건을 사오도록 독려를 하고 있으니 의지할 곳 없는 궁한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또 호인(胡人)들이 변방에라도 오면 초피(貂皮)를 바치게 하여 주구(誅求)가 끝이 없으므로 원망이 더욱 증가되어 내조하기를 싫어하고 절발(竊發)의 기회만을 노린다고 합니다.
왜놈들이 포구에 머물면 법으로 그들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도 민간에 제멋대로 활보하게 하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의 수어(守禦)가 소홀한 것을 알 것이 틀림없고, 오랑캐가 성 밑에 살면 그 족속을 변별(辨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가난한 백성들이 구걸을 하면서 오고 가는 것을 묻지 않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의 기곤(飢困)한 상태를 짐작하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그리하여 변흔(邊釁)이 싹틀 조짐이 보이는데 군정(軍政)은 이 모양이니 만약 긴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조정에서는 무슨 계책을 써서 막아낼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형세를 사람에게 비유한다면 마치 언어와 동작으로 보아서는 아무 병이 없는 것 같지만 의화(醫和)나 편작(扁鵲)이 보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릴 그런 상황과 바로 같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사전에 대비하라는 성인의 경계를 생각하시고 주(周)나라의 힐융(詰戎)의 교훈199) 을 체득하여 염파(廉頗)·이목(李牧)200) 같은 장재를 구하여 변성(邊城)을 지키게 하시고 군정을 미리 닦아 나라가 위태롭게 되기 전에 보호하시면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이상 10개 조항은 다 지난날 이미 아뢰었던 추구(芻狗)201) 로서 하늘에 대응하여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법으로는 오활한 것 같으나 진실로 이렇게만 착실히 행한다면 재앙이 도리어 상서로 변할 수 있고 아직 닥치지 않은 재화도 미연에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홍문관에 답하였다.
"지금 이 상소를 보니 시병(時病)에 아주 알맞은 말이다. 상하가 다 다시 한번 살펴 볼 일이다. 대체로 재변이라는 것이 왜 공연히 생기겠는가. 옛말에도 이르기를 ‘하늘에 대응하는 데는 실상으로 할 것이요 문식으로 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모든 일을 실상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국 조정에 흠문사를 보내는 일은 비록 한가지 일이기는 하지만 이미 천사가 알고 있는데도 보내지 않아서 불신을 보인다면 중국 사람들이, 우리더러 매사가 다 그와 같으리라고 할 것이어서 그것이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중지하기 어렵다고 했던 것이다. 백성을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어서 위아래 할 것 없이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받들어 행하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인재를 등용하는 것,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 모두 다 중요한 일로 상소문 내용에 그것이 공정하게 못 되고 있다는 뜻으로 논했는데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잘못된 것은 내가 살필 것이니 아래서 잘못된 것은 각자가 살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을 다 살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재앙에 대응하는 길이 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왕실-종사(宗社) / 사법-치안(治安) / 가족-가산(家産) / 신분-천인(賤人) / 재정-상공(上供)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역사-고사(故事) / 주생활-가옥(家屋)
- [註 174] 위육(位育) : 천지가 자리 잡히며 만물이 길러지는 것.
- [註 175] 말 한 마디 잘한 것이 형혹(熒惑)을 삼사(三舍)까지 물리칠 수도 있었습니다. : 춘추 시대 송 경공(宋景公) 때에 살별인 형혹성(熒惑星)이 심성(心星)을 범하였으므로, 경공이 자위(子韋)를 불러 묻자, 자위가 "재앙이 임금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재상에게로 옮길 수는 있습니다." 하였다. 경공이 "재상은 나라를 다스려야 할 사람이다." 하자, 자위가 "그렇다면 백성에게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하니, 경공이 "백성이 죽어 버리면 내가 누구를 데리고 임금 노릇을 하겠는가." 하므로, 자위가 "그렇다면 해[歲]로도 옮길 수가 있습니다." 하니, 경공이 "흉년이 들면 백성이 다 굶어 죽을 것이니, 임금으로서 자기 백성을 죽인다면 누가 나를 임금으로 섬기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자위가 "상(上)께서 매우 덕있는 말씀을 세마디 하셨으니, 틀림없이 하늘이 상을 가상하게 여김으로써 저 형혹성이 삼사(三舍:세 별자리)까지 옮겨가게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되어 재앙이 없었다는 고사이다.
- [註 176] 척리(戚里) : 임금의 외척.
- [註 177] 월인(越人) : 자신과 전혀 관계 없는 사물을 뜻함.
- [註 178] 여대(輿臺) : 하인.
- [註 179] 시역(廝役) : 종.
- [註 180] 폐조(廢朝) : 연산군.
- [註 181] 한(漢)의 당고(黨錮)의 화와 당(唐)의 백마(白馬)의 화 : 당고(黨錮)의 화는,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 진번(陳蕃)·이응(李膺) 등 우국지사가 환관(宦官)들의 발호를 미워하여 태학생(太學生)을 거느리고 환관을 공격하자, 환관들이 이들을 도리어 조정을 반대하는 당인(黨人)이라고 몰아 옥에 가두고 벼슬길을 막았으며, 그후 영제(靈帝) 때에 이르러 진번 등이 환관들을 죽이려다가 일이 누설되어 동지(同志) 백여 명과 함께 피살당한 사건을 말하고, 백마(白馬)의 화는, 당 애제(唐哀帝) 3년(906)에 후량왕(後梁王) 주전충(朱全忠)이 자기의 폐리(嬖吏)인 장정범(張廷範)을 태상경(太常卿)으로 삼으려 하자, 당나라 재상 배추(裴樞)가 장정범은 신분이 좋지 않다 하여 거절하므로, 양왕(梁王)이 대노하여, 모든 당나라 대신(大臣)으로서 양(梁)을 편들어 주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붕당(朋黨)으로 지목, 좌복야(左僕射) 배추, 우복야(右僕射) 최원(崔遠), 수태보(守太保) 조숭(趙崇), 병부 시랑(兵部侍郞) 왕찬(王贊), 공부 상서(工部尙書) 왕보(王溥), 이부 상서(吏部尙書) 육의(陸扆)를 즉시 백마역(白馬驛)에서 사사(賜死)시키고, 기타 당나라 충신 수백 명을 폄사(貶死)시킴으로써 당나라 조정이 텅 비어 망하게 되었던 일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7 당고전(黨錮傳), 《신오대사(新五代史)》 권37 당육신전(唐六臣傳).
- [註 182] 육척(六尺)의 고(孤) : 일찍 아버지를 여읜 어린 임금을 말함. 육척은 15세 이하의 소년을 가리키는 말이고, 고(孤)는 임금이 상중(喪中)에 있을 때의 자칭이다.
- [註 183] 동경(東京)이 기절을 중히 여기니 간웅(奸雄)이 구정(九鼎)을 둘러보면서도 감히 손대지 못하였고, : 동경은 후한(後漢)의 도읍지, 전하여 후한을 가리킴. 구정(九鼎)은 옛날 우(禹)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를 거두어 만든 솥인데 이것이 곧 전국(傳國)의 보물로 전해온 것으로, 전하여 천자(天子)의 자리를 뜻하며, 간웅(奸雄)은 곧 후한 말기의 역신(逆臣) 조조(曹操)를 가리키는데, 조조는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까 염려하여 이미 한 나라를 찬탈하였으면서도 자기 생전에는 끝내 황제라 자칭하지 않았던 것을 말한다.
- [註 184] 칠국(七國)이 모반하면서도 한 나라 조정의 급암(汲黯)한 사람만은 무서워하였습니다. : 칠국은 한 경제(漢景帝) 때 모반(謀反)을 일으킨 오(吳)·초(楚)·조(趙)·교서(膠西)·제남(濟南)·치천(菑川)·교동(膠東)을 가리킴. 급암(汲黯)은 한나라 때 직신(直臣)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회남여왕(淮南勵王) 유장(劉長)은 모반을 하면서 급암을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그 사람은 직간(直諫)을 좋아하고 절의(節義)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므로, 비리(非理)를 가지고 그의 마음을 유혹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사기(史記)》 권120 급암전(汲黯傳).
- [註 185] 중훼(仲虺)가 탕(湯)임금의 덕을 일컬으면서 ‘간언을 따라 어기심이 없었다.[從諫弗咈]’ 하였고 : 중훼는 은(殷)나라 탕(湯)임금의 재상. 그런데 ‘간언을 따라 어기심이 없었다.[從諫弗咈]’는 이 말은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나오지 않고, 역시 탕임금의 재상이었던 이윤(伊尹)이 탕임금의 어린 소자 태갑(太甲)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를 교훈시킨 글, 즉 《서경(書經)》 이훈(伊訓)에 나오는 말이다. 아마 이 상소문(上疏文) 저자는 이 말이 중훼지고(仲虺之誥) 편에서 나온 것으로 오인한 듯하다.
- [註 186]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명하는 말에도 ‘조석으로 가르침을 달라.’ 하였습니다. : 고종은 은왕(殷王) 무정(戊丁). 부열(傅說)은 고종의 현상(賢相). 고종 역시 어진 임금으로 알려졌는데, 일찍이 부열에게 명하기를 "조석으로 나에게 가르침을 주어 내 덕을 도와주오." 하였다. 《서경(書經)》 열명 상(說命上).
- [註 187] 횡간(橫看) : 조선시대, 각 관청의 1년 동안의 지출 예산(支出豫算)을 계산하여 가로로 벌여 쓴 명세서(明細書).
- [註 188] 노선공(魯宣公)의 세묘(稅畝) : 세묘는 춘추 시대 노선공 15년에 처음으로 시행한, 공전(公田) 이외의 사전(私田)에서까지 십일세(十一稅:수확의 10분의 1을 나라에 바치는 것)를 부과했던 세법(稅法). 이것은 주(周)나라 때의 정전법(井田法)에 비해 훨씬 가혹한 세법이다. 정전법은 한 구역의 농지(農地) 9백묘(九百畝)를 정(井)자 모양의 9구(九區)로 나누어, 한 중앙의 1백묘는 공전(公田), 변두리 8백묘는 사전(私田)으로 하여 여덟 농가에 1백묘씩 사유(私有)로 맡기고 중앙의 공전 1백묘는 여덟 농가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만을 나라에 부세로 바치게 했던 것이다.
- [註 189] 당(唐)나라 말기의 궁시(宮市) : 당 덕종(唐德宗) 때 궁중에 시장(市場)을 열고, 환관(宦官)을 궁시사(宮市使)로 임명하여 물품(物品)을 억매(抑買)하던 일.
- [註 190]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민요(民謠) :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말은 곧 의복 단장을 거창하게 하여 풍속이 사치스러움을 뜻함. 백거이(白居易) 진사 책문(進士策問)에 "높은 상투 넓은 소매라는 민요를 들으니, 풍속이 사치스러움을 알 수 있다." 하였다.
- [註 191] 호병문(胡炳文) : 원(元)나라 때의 학자. 특히 주희(朱熹)의 학문에 정진했던 사람으로 자는 중호(仲虎)이고, 세상에서 운봉 선생(雲奉先生)이라 불렀다. 《역본의통석(易本義通釋)》·《서집해(書集解)》·《춘추집해(春秋集解)》·《예서찬술(禮書纂述)》 등 많은 저서가 있다.
- [註 192] 반인(伴人) : 서울의 각 관아(官衙)에서 부리는 사환(使喚). 왕자(王子)·공신(功臣) 및 당상관(堂上官)을 우대(優待)하여 차급(差給)하였음. 반당(伴儻).
- [註 193] 여형(呂刑) : 《서경》의 편명.
- [註 194] 순전(舜典) : 《서경》의 편명.
- [註 195] 고요(皐陶) : 순(舜)임금 신하. 법관(法官)의 장(鋹)이 되어 옥사(獄事)를 매우 잘 처리하였음.
- [註 196] 소공(蘇公)은 공경으로써 왕국(王國)을 장구하게 하였던 : 소공은 주 무왕(周武王) 때부터 성왕(成王) 때에 걸쳐 사구(司寇:법관)의 직에 있었던 소분생(蘇忿生).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사구(司寇)의 소공이여, 공경으로써 송사(訟事)를 처리하여 우리 왕국(王國)의 운명을 장구하게 하라." 하였다. 《서경(書經)》 입정(立政).
- [註 197] 생재(眚災) : 과실이나 불행에 의하여 저질러진 죄.
- [註 198] 호종(怙終) : 믿은 것이 있었거나 재범을 저지른 죄.
- [註 199] 주(周)나라의 힐융(詰戎)의 교훈 : 힐융(詰戎)은 군비(軍備)를 잘 다스린다는 뜻.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이르기를 "왕이 군비를 잘 다스려서 우(禹)임금의 발자취를 따르시오." 한 데서 온 말. 《서경(書經)》 입정(立政).
- [註 200] 염파(廉頗)·이목(李牧) : 모두 전국(戰國)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名將).
- [註 201] 추구(芻狗) : 짚으로 만든 개. 옛날 중국에서 제상에 쓰던 것. 제사가 끝나면 내버리므로, 전하여 소용이 있을 때는 이용하고 소용이 없으면 내버리는 물건의 비유. 여기서는 자신의 논의를 겸칭한 말.
원문
○弘文館副提學崔輔漢等上疏曰:
天人一理, 顯微無間, 茫茫蒼蒼, 曰朝曰明。 人之所爲, 天必監之, 善與不善, 休咎類應。 人君以眇然一身, 位天地兩間, 對〔越〕 上帝, 表率萬民。 苟無格致誠(功)〔正〕 之學, 修齊治平之功, 何以能成位育之效乎? 《易》曰: "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至)〔其〕 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天且不違, 而況於人乎? 天不違於(人)〔上〕 , 則天災何由而作乎? 人不違於下, 則人變何由而起乎? 雖然, 有格治誠正之學而後, 能致修齊治平之功, 有修齊治平之功而後, 能成大人矣。 人主有大人之德, 而天違於上, 人違於下者, 臣等未之聞也。 殿下承祖宗之統, 撫盈成之運, 罔逸罔淫, 宵旰勵精, 敬天勤民, 圖臻熙皞, 將三紀于玆矣。 然太平之象未見, 而危亡之兆已著, 天災時變, 疊見層出, 白氣布天, 白虹貫日, 彗星犯台, 太白見晝, 正陽之月, 非特繁霜, 而雨雹雨雪。 飢饉荐至, 民多餓莩, 子蒸其母, 人倫滅絶, 千古所無之災異, 皆萃於一時。 蚩蚩之氓, 尙且憂懼, 有識之士, 寧不痛哭? 災變之作, 雖不指爲某事之致, 發政施令之間, 豈無所召之失乎? 一女仳離, 足以召水旱之災; 一言爲善, 足以退熒惑於三舍。 殿下發德音, 布告中外, 使大小臣僚, 各陳所懷, 欲以知致災之源, 而將以修格天之德, 是豈特景公一言之善而已哉? 臣等叨顧問之列, 値求言之日, 安敢含糊噤默, 負殿下修省之美意哉? 謹綴其切於時病者十餘, 仰塵淸聽。 但求言非難, 而聽之爲難, 聽言非難, 而用之尤爲難, 伏願殿下垂察焉。 一曰, 嚴宮禁。 《傳》曰: "家齊而後國治。" 宮禁者, 卽殿下之一家也。 身爲一家之本, 而國爲一家之本也。 未有身不修, 而能齊其家者, 亦未有家不齊, 而能治其國者。 誠以閨門房闥之間, 正始之所由基, 王化之所由肇也。 今也內治不肅, 而掖庭不嚴, 瑣瑣之徒, 伺宴閑之隙, 如簧之舌, 惑冕旒之聰, 戚里之人, 欲遂已欲, 則托稱問安, 駢闐偪側, 有同歸市, 罔有限制, 至於嬪媵阿保之屬, 市井無賴之輩, 亦莫不因緣憑藉, 誇耀貴寵。 官之除拜, 至於受點, 而或云得失猶可以容人力, 訟之利害, 在於曲直, 而或云得失猶可以有營爲, 時中其言, 歸之已功, 受人賄賂, 衆聽疑怪, 莫知端倪。 廷臣之論列此事, 非一再, 而未見矍然改悔之實, 使殿下求治之誠, 反同於衰季賣官鬻獄之風, 可勝痛哉? 而況前日斗筲之輩, 【金安老、蔡無擇、許沆等。】 通交攀付, 盜據權要, 伺候殿下之動靜, 揣知殿下之好惡, 承順逢迎, 竊弄威福, 致國勢岌岌, 將至於不測之地。 此已然之明驗, 內外之分, 尤不可不嚴也。 伏願殿下留神焉。 二曰, 立綱紀。 《禮》曰: "綱紀旣正, 天下大定。" 夫人君, 統臣民之衆, 莅萬機之繁, 使庶事循理, 有挈領裘, 順之勢者, 紀綱而已。 國之有紀綱, 猶身之有血脈。 血脈病則支體雖完, 而藏腑已潰, 紀綱墜弛, 則雖若治平之可恃, 而危亡立至。 是故, 善計天下者, 不視天下之安危, 而察其紀綱之理亂。 今也朝廷之上, 紀綱不立, 百工墮哉, 視官司如傳舍, 視國事如越人, 悠悠泛泛, 取祿苟榮。 豪右之家, 奪人臧獲, 【王子君等, 以人之婢, 托爲陳告而奪之。】 寡弱無所伸其冤, 叛主之奴, 謀屬內需, 【朴順見奴婢, 托陳告謀屬于內需司。】 而(勢)〔執〕 券理訟者, 或被毒殺。 【朴順見訟其奴婢之投屬內需司者, 而其奴以毒藥殺之云。】 名分不可紊也, 而以妾爲妻, 以孽爲嫡, 【崔珣、安智, 以妾子爲嫡, 冒屬忠順衛, 事覺罷職, 其子還孽。】 以至賤隷之徒, 爭懷非分, 冒入官籍, 忝汚科目, 陵貴成習, 輿臺廝役, 歐辱士類, 恬不爲怪。 令出, 不欲反也, 而立法甫巳, 旋廢不行, 下旨恤民, 視爲文具, 民不畏禁, 吏多慢法。 陵夷至此, 而殿下莫肯軫念, 寧不寒心? 嗚呼! 紀綱之弛張, 而國家之盛衰從焉。 其維持振作之方, 秪在人主一身。 伏願殿下留神焉。 三曰, 布公道。 天無私覆, 地無私載, 日月無私照。 人君, 體天地日月之德, 用至公無私之道, 儀刑四方, 四方取則。 故世治則賞罰明, 而公道行; 世亂則人慾肆, 而私門開。 淑慝之消長, 國家之興亡, 係於公私二者之間耳。
今也宮闈之間, 女謁盛而蹊經多端, 朝廷之上, 請托繁而折簡紛紜。 黜陟幽明, 方伯之任也, 而權貴子弟, 雖愚必保, 銓衡人物, 政曹之任也, 而才雖可用, 非勢不擢。 公論所在, 不可掩也, 而用人之際, 務悅其人, 則不顧是非, 强自注擬曰: "臺諫有之", 至如系在下賤, 而濫廁朝列。 【金玉倫, 以微賤, 爲監役官。】 仕路不淸, 若此不已, 執簿呼名, 一吏足矣。 國家所以重銓衡之意, 安在? 聽訟, 欲其平也, 而是非顚倒於賄賂, 折獄, 欲其公也, 而刑獄獨宣於塡寡。 公道之蝕, 莫此爲甚。 伏願殿下, 克去己私, 公以示下, 以杜私枉之門。 四曰, 振士氣。 《傳》曰: "人材, 國家之元氣。" 《詩》曰: "周王壽考, 遐不作人?" 作人之妙, 惟在匡直輔翼, 而培養氣節也。 蓋天地至正之氣, 充塞乎兩間, 鍾於人, 而爲賢士。 是氣養得其道, 則振起興發, 而濟濟多士, 可以爲邦家之光, 養失其道, 則雖有是氣, 消縮摧沮, 薾然而餒矣。 我朝興運以來, 世宗振作於前, 成廟培養於後, 宏材碩德負氣重節之士, 彬彬輩出, 自經廢朝, 誅鋤殆盡, 蕩然無餘。 漢黨錮、唐白馬之禍, 未有若此之酷也。 殿下三十年作成之功, 宜可以收效於今日, 然頃者奸凶 【金安老、蔡無擇、許沆等。】 煽禍, 士林氣喪, 父兄之所敎誨, 師友之所勸戒者, 不危其言, 不危其行, 故唯諾成風, 無敢言極諫之士, 軟熟相尙, 無特立獨行之人。 今朝廷雖非昔日之朝廷, 今日之士, 皆是前日之士也。 變化未易, 舊習猶存。 所謂托六尺之孤, 臨大節, (大)〔不〕 可奪者, 未知爲誰耶? 轉移之機, 唯在乎上而已。 昔東京重氣節, 奸雄環視九鼎, 而不敢動, 七國謀反, 獨畏漢庭之一汲黯。 氣節之士, 係國家輕重如此。 伏願殿下, 遠法文王之作人, 近述成廟之培養, 鼓之舞之, 以振多士之氣。 五曰納諫諍。 仲虺稱成湯之德曰: "從諫不咈。" 高宗命傅說之辭曰: "朝夕納誨。" 成湯、高宗, 豈但弗咈納誨而已哉? 其所躬行之實, 常存於弗咈納誨之後, 故能造其聖賢之域也。 殿下躬上聖之資, 有好問之德, 求言之急, 有如飢渴, 受言之易, 如石投水, 未嘗有過擧, 而論之則受以爲過擧, 未嘗有闕政, 而陳之則受以爲闕政, 成湯之弗咈, 高宗之納誨, 蔑以加矣。 雖然未聞某過某闕, 因某人之諫而改之, 某弊某瘼, 因某人之爭而祛之。 優容臺諫之美事, 徒溢於史牒, 妨政病民之事, 曾無一分之改紀, 是徒有納諫之美名, 無納諫之實效也。 且如遣使欽問, 旣不中禮, 又非時宜。 一開其端, 後弊難救。 諫官所論, 實有深意, 而諉以己言華使, 留難至是, 臣等恐亦有妨於樂聞之誠。 伏願殿下, 舍己從人, 以盡用諫之實。 六曰, 節財用。 《易》曰: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 蓋侈用則傷財, 傷財則必至於害民矣。 天地生財, 只有此數, 不在於民, 則必在於國。 我朝創業經制, 貽厥孫謀。 賦稅則有常貢之正數, 用度則有橫看之細密, 量入爲出, 不盡人之財, 以固邦本。 今也不然, 橫看之外, 又有別例之用, 別例之外, 又有不時之需。 今年之貢賦不足, 則取民於明年, 名爲引納, 實是再稅, 何異於魯宣之稅畝乎? 府庫一空, 經費不繼, 尙未知節。 內用之旨日下, 有司措辦無由, 一皆責貿於市廛, 就買於豪貴之家, 朝入于內, 暮出于外, 循環不窮, 其價日增, 其不近於唐季之宮市者, 幾希矣。 嗚呼! 先王, 用常貢正數, 而不爲不足, 今也用引納貿易, 而不爲有餘者, 何哉? 田野之民, 困於引納, 市井之民, 困於貿易, 利歸豪貴, 害歸於國。 將至於財竭民散, 則何以爲國? 此實朝廷之所大憂。 念經幄所陳, 疏箚所列, 莫不以此爲急, 而殿下視以尋常, 不肯惕念, 奈國家民生何? 伏願殿下, 緩不急之用, 節浮費之財, 使斯民得受一分之賜。 七曰, 抑奢侈。 伊尹戒太甲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釋之者曰: "太甲, 奢侈失之, 無長遠之慮, 故告之以此。"
自古人君, 未有奢侈而不亡者, 亦未有儉約而不興者也。 惟我國家, 聖繼神承, 儉以足用, 國富兵强, 百有餘年, 太平已久, 人心不古, 侈靡之習漸成, 而儉約之風掃如。 究厥所自, 未必不由於上也。 奢侈之風, 始於宮闈, 服飾之制, 必欲殊異, 彫鏤之玩, 亦窮奇技, 競尙靡麗, 日新而月不同, 近貴慕倣, 民庶視效, 自作一體, 誇美於人曰: "此宮中之樣也。" 富者殫財, 貧者企及, 轉相僭擬, 無有(記極)〔紀極〕 。 此高髻廣袖之謠, 所由起也。 至如宮室之制, 自有定限, 而王子第宅, 綿亘閭里, 畫棟彫梁, 入空連雲, 務極高大, 侔擬宮闕, 財竭而不止, 滿意而後已。 上有好者, 下必甚焉。 士大夫之家, 踰制無忌, 紏之以法, 朝撤夕搆, 莫之能禁。 飮食之品, 在於適口, 而上自貴戚, 下至黎庶, 食前方丈, 非水陸兼味, 則不屑也。 恥居人後, 日費萬錢, 傾財破産, 尙未知悔, 此何等風也? 侈心之極也, 不貴土物, 而貴遠物, 朝京使臣之絡繹, 公貿私販之太繁。 車載馬輸, 困敝郵卒, 取鄙中原, 至有賣胡之稱。 嗚呼! 此又不可已耶? 先儒胡炳文曰 "尙侈靡, 而細民衣帛食肉, 此飢寒之所由生, 盜賊之所由作。 天下如是, 上不知禁, 然而不亡者, 未之有也。" 伏願殿下, 留神焉。 八曰, 勵廉恥。 《書》曰: "惟天生民有欲。" 人之生也, 雖具仁義禮智之性, 亦不能無耳目〔口〕 鼻之欲。 不有以廉恥隄防之, 必至於棄禮蔑義, 喪其羞惡之心, 而將歸禽獸之域矣。 古人以禮義廉恥, 爲國之四維。 四維不張, 則國乃滅亡。 今也廉恥道喪, 貪風日滋, 居官者率多利祿之士, 牧民者〔無〕 非掊克之人, 以肥己潤屋爲急務, 以奉公恤民爲何事, 簡札旁午, 谿壑難盈, 不畏人知, 剝民膏血, 臨官自盜, 略無愧色, 爭占海澤, 廣植田園, 憑藉官力, 不費己物。 托名儒籍, 奔走權門者, 得一名於昏夜, 而反驕人於白日, 起跡草澤, 僥倖末科者, 無高曾積累之漸, 而有子孫豐富之樂。 至如品非堂上, 私請伴人, 布列郡縣, 責貢反過於奴僕。 此而不恥, 何事可恥? 伏願殿下, 道之以德, 齊之以禮, 滌貪汚之習, 以勵廉恥之風。 九曰, 愼刑獄。 《呂刑》曰: "士制百姓于刑之中, 以敎袛德。" 《舜典》曰: "欽哉欽哉, 惟刑之恤哉。" 蓋刑者, 輔治之具, 雖不可廢, 而欽恤之垂, 亦不可不行乎其間也。 雖然, 非侫折獄, 惟良可以折獄, 故皋陶爲士, 致協中之治, 蘇公式敬, 以長于王國。 古之愼刑而擇人也如此, 今也世道日降, 犯法者愈多, 眚災怙終之不辨, 惟輕惟重之或混。 聽獄之官, 不擇人物之賢否, 惟視班資之高下, 武夫之麤猛, 蔭吏之不學, 或居其位, 豈復有慈祥愷悌之念? 是故, 强者, 恣意於惟貨, 而出入由已; 弱者, 畏㤼於惟官, 而上下由人。 無辜籲呼於道途, 憤冤之氣, 上感于天, 則可以傷天地之和也, 可以召水旱之災也。 嗚呼! 病人將死, 知不可救, 猶不付之庸醫之手, 以試其死生。 而況以一國赤子之命, 付之庸劣之人, 任其生殺可乎? 且夫赦者, 所以宥小過, 不可數也。 賊良民之甚, 無過於此, 非所以愼刑之意也。 伏願殿下, 法虞舜欽恤之意, 得皋陶、蘇公之良, 以任司寇, 以愼刑獄。 十曰, 修軍政。 禦暴保民, 王政之所先; 迨天未雨, 聖人之所戒。 必也克詰於無事之時, 而張皇於有事之日, 節制於樽俎之間, 而折衝於千里之外, 然後夷狄不得伺其可乘之隙, 國家長治而久安也。 我國南隣島夷, 北接野人, 三面受敵, 不可一日而忘備也。 設鎭設堡, 選將鍊兵, 大而有兵使、水使焉, 小而有僉使、萬戶焉, 祖宗規畫之意遠矣。 然而昇平日久, 狃於尋常, 爲將者, 唯知侵漁之爲利, 爲兵者, 不識坐作進退之節。 西北二界, 國之門戶, 民多飢死, 十室九空。 團鍊護送, 項背相望, 西方軍馬, 病斃殆盡。 加以各邑守令, 要貿唐物於所管之卒, 少給其直, 責徵溢價之物, 孑孑窮民, 何以爲生? 胡人之來邊, 責納貂皮, 誅求無厭, 其怨益增, 不樂來朝, 惟思竊發。 倭奴留浦, 法當禁其出入, 而恣行民間, 彼必知吾守禦之踈。 虜居城底, 義當辨別族類, 而貧民丐貸, 往來無問, 彼必揣吾飢困之狀。 邊釁將萌, 而軍政若此, 脫有緩急, 未知朝廷, 施何策而措之耶? 當今之勢, 比之於人, 言語動作, 似若無病, 而和、扁望之, 必却走而不顧矣。 伏願殿下, 念聖人陰雨之戒, 體周家詰戎之訓, 得廉頗、李牧而使守邊城, 預修軍政, 保邦於未危, 幸甚。 凡此十條, 皆前日已陳之芻狗, 其於應天弭災之道, 似乎迂緩, 苟能行之以實, 則災可轉而爲祥, 而未至之禍, 猶可及止也。
答弘文館曰: "今觀此疏, 切中時病, 上下更加省念焉。 大抵災變, 豈有虛生? 古云: ‘應天以實, 不以文’, 凡事以實爲之可也。 如華朝之事, 雖一事, 若已知而示之不信, 則華人以爲, 事事皆類此。 是非細事, 故予謂難(期)〔欺〕 也。 恤民最重, 上下每念於心, 其奉行者幾何? 用人伸冤, 皆是重事, 而疏中論其不公之意, 至當也。 然上有所失, 予當察之, 下有所失, 亦各察之。 每事無不省念, 則應災之道得矣。"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왕실-종사(宗社) / 사법-치안(治安) / 가족-가산(家産) / 신분-천인(賤人) / 재정-상공(上供)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외교-명(明)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역사-고사(故事) / 주생활-가옥(家屋)
원본
중종 34년 (1539)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