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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89권, 중종 33년 11월 25일 乙未 1/2 기사 / 1538년 명 가정(嘉靖) 17년

성절사 허관을 인견하고 아뢴 바를 빠짐없이 서계토록 하다

국역

상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성절사 허관(許寬)을 인견하였다. 허관이 아뢰기를,

"신이 연경(燕京)에 도착한 5∼6일 경에 자세히 들으니, 공(龔)·오(吳)229) 두 사신이 조선 사람을 이렇게 대우해서는 안된다고 제독(提督) 역관(易寬)과 낭중(郞中) 백열(白悅)에게 열심히 말하였다고 합니다. 얼마 안 되어 문금(門禁)이 해제되었습니다. 8월 12일 하마연(下馬宴) 때에 정문(呈文)을 예부 상서(禮部尙書)에게 주었더니, 15일에 낭중 백열이 통문금 고시(通門禁告示)를 옥하관(玉河關)에 보냈습니다. 신이 서반(序班)에게 ‘고시(告示)가 매우 좋다. 그러나 제본(題本)으로써 법례(法例)를 만들면 더욱 좋겠다.’고 하니 서반이 말하기를 ‘상서(尙書) 엄숭(嚴嵩)이 5일에 한 번씩 출입할 것을 지난해에 이미 당신 나라에 통고하였는데, 이제 또 한다는 것은 번거롭지 않은가.’ 하였습니다. 역관(易寬)이 말하기를 ‘문금(門禁)이 이미 해제되었다고 하여 함부로 출입하지 말라. 나도 또한 이목이 있으니 당신은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자제(子弟)와 군관(軍官)들을 계칙하여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중도에서 관압사(管押使)와 진하사(進賀使) 두 사신을 만나서 이 내용을 말해 주었습니다.

신의 반송(伴送) 손계상(孫繼常)이란 자는 오 천사(吳天使)230) 와 서로 아는 사람인데 오 천사를 방문하고 와서 말하기를 ‘오 천사의 말이, 「지금 들으니 조선 사신이 왔다는데 그 국왕이 어찌 나에게 한 마디 말이 없는가. 또 백열은 나의 동년(同年) 친구인데 활쏘는 것을 몹시 즐기므로 활을 얻고자 한다.」 하였다.’ 하였으나 신은 계상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천정(吳天挺)이란 자가 있는데 오 천사의 두목(頭目)입니다. 통사(通事)를 만날 일이 있어서 왔다가 말하기를 ‘오 천사가 일찍이 국왕께 물품을 보낸 일이 있는데 이미 도착하였는지 모르겠다.’ 하여 비로소 계상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전하께서 천사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하나 기회가 없어서 진달하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신이 갖고 있던 활 두 장과 벼루 두 개를 오희맹과 백열 두 대인(大人)에게 나누어 보냈습니다.

그 뒤에 오 천사가 편지를 통하여 말하기를 ‘당신 나라에 다녀온 뒤로 국은(國恩)을 잊을 수 없다.’ 하였고, 또 법첩(法帖) 1건을 신에게 주었습니다. 그 법첩 속에는 우리 나라의 단자(單子)를 이어 붙이고 조선의 모든 내용을 죄다 갖추었는데, 사군(四郡)·삼한(三韓)과, 의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일로(一路)의 원(院)·역(驛)과 서울의 목멱산(木覓山)·제천정(濟川亭), 한강의 양화도(楊花渡)·망원정(望遠亭)과, 각사(各司)의 명호(名號)와 재상(宰相)·제군(諸君)으로부터 아래로 3품 당상(三品堂上)의 이름에 미쳤으며, 급제의 방목(榜目)과 또 선위사·원접사·종사관 등 각 관원과 모든 통사의 성명이며 화초의 이름까지 기재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신 나라를 잊지 않는 의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벼루·활·도자(刀子)231) ·동기(銅器) 등 물품을 갖고 싶어하여 대가를 보내어 사고자 하므로 신이 난처하여 신이 가지고 있는 벼루 5개, 활 4장과 행기(行器)·도자를 오 사신에게 보내고 말하기를 ‘이 물건이 매우 볼품이 없으나 내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므로 드리어 정을 표시합니다.’ 하였습니다. 8월 12일 오 천사가 채단(綵緞) 2필을 신에게 보여주며 ‘정의 표시일 뿐이다. 또 오늘 공 천사(龔天使)와 함께 방문할 것인데, 당신은 채단에 관하여 절대 치사(致謝)하지 말라. 아마 공 천사가 보면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 하였습니다.

식후에 공·오 두 사신이 과연 한꺼번에 내방하였습니다. 전하의 안부를 묻기에 신이 안녕하시다고 대답하고, 또 말하기를 ‘전일에 대인(大人)의 수서(手書)를 보니 대인의 용의를 뵈온 듯하였으며 또 정문(呈文)의 제본(題本)을 보고 더욱 감사하였습니다. 《황화집》을 잘못 인출(印出)한 관리는 이미 다 죄주었으며 잘못된 부분도 또한 다 바로잡았다. 또 상사가 보낸 천하도(天下圖)와 하사가 보낸 지도(地圖)·선자(扇子)를 우리 전하께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공·오 양사(兩使)가 또 ‘정사룡은 잘 있는가?’라고 묻기에 신이 잘 있다고 답하였는데, 통사가 잘못 말하기를 ‘사룡이 지금 남방의 사신이 되었다.’ 하니 양사가 말하기를 ‘그것은 무엇을 담당하는 벼슬인가?’ 하기에 ‘중조(中朝)의 순안사(巡按使)의 직임과 같은 것이다.’ 하니, 또 묻기를 ‘언제 체임하고 오는가?’ 하였습니다. ‘만 1년이 되면 돌아온다.’ 하니, 또 묻기를 ‘남방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바로 남쪽 경상도이다.’ 하였더니, 양사가 ‘참으로 이른바 금의 환향이로군.’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나의 시를 일찍이 이미 보냈는데 정군(鄭君)이 답하지 않던가?’ 하기에, 신이 또 대답하기를 ‘사룡이 멀리 있기 때문에 미처 화답하지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다음에 묻기를 ‘김안로는 편안한가?’ 하였습니다. ‘이미 죽었다.’고 대답하니 양사가 서로 돌아다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교만하고 원한 많은 사람이 이미 죽었구나.’ 하고, 또 서로 이르기를 ‘국왕이 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또 신에게 이르기를 ‘당신 나라에 돌아가거든 나의 말로써 나라 사람들에게, 김안로는 교만하고 원한이 많으니 그가 죽은 것은 마땅하다고 했다 하라.’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김근사는 아직 있는가?’ 하기에 있다고 대답했더니 ‘지금은 필시 노쇠했겠지.’ 하고, 또 소세양·윤인경·오결을 물었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오결은 죽었다.’ 하니 양사가 말하기를 ‘오결은 남의 의표가 될 만한 사람이다. 1년 사이에 사람의 일이 이같이 변하는가.’ 하였습니다. 또 허항(許沆)·허흡(許洽)을 묻기에 신이 답하기를 ‘지금 부상(父喪) 중에 있다.’ 하니, 또 웃으며 말하기를 ‘아버지가 죽었구나.’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황화집》을 당신이 가지고 왔는가? 이곳 각로 선생(閣老先生)들이 매우 간절하게 구해 보고자 하니 4∼5건(仵)을 인쇄하여 보내는 것이 어떤가. 이것은 금물(禁物)이 아니니 중국에 전파되면 당신 국왕에게도 또한 영광스러울 것이니 아무쪼록 뒷날 인쇄하여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우리들 뒤에 나오는 행차를 반드시 요동 근처에서 서로 만나기는 할 것이나 필시 미처 인쇄하여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땅히 그 다음 사행편에 인쇄하여 보내겠다.’ 하였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왔는데, 《대명회전》의 일을 신이 잊고 물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 천사의 집이 옥하관(玉河關) 근처에 있다고 듣고는 즉시 사람을 사서 길을 인도케 하여 가서 말하기를 ‘어제 왕림하셨을 때에 잊고 말을 다하지 못하였는데 《회전》을 속히 발간하도록 대인(大人)이 힘써 주기 바란다.’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나의 분담이 아니다. 종계(宗系)의 일은 이미 개정하였으나 다만 어느 때 인출할 것인지는 모른다. 공 천사라면 그의 관할하에 있는 일이니 그에게 묻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 공 천사의 집이 매우 멀고 집에 있는 지 없는지도 알 수 없으므로, 정물(情物)을 보내고 태자 책봉의 일을 물으니 ‘이것은 내간사(內間事)로서 외부인이 미리 알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태자를 책봉한 뒤에 천사(天使)가 만약 당신 나라에 가게 된다면 나와 오군(吳君)이 다시 갈 것이니 당신 국왕이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나도 다시 당신 나라의 산천을 또 보게 될 것이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또 《회전》의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근래에 황제께서 요긴한 서적을 많이 간행하고 있으므로 2∼3년 안에는 인출(印出)이 쉽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존호를 더 올리고 천하에 조시(詔示)할 것인데 우리 나라에도 또한 통지할 것인가. 통지한다면 어떻게 통지할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황화집》 제본 때에는 당신 나라가 예의의 나라이며, 또 국왕이 현명하니, 조정의 대소사(大小事)를 다 통지할 만하고, 각로(閣老) 등도 또한 이것을 경연에서 말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황제께서도 또한 당신 국왕의 어지심을 알고 있으니 이 일은 당연히 통지할 것이다. 그러나 천사를 보냄과 같은 예는 아니니, 조서가 요동(遼東)에 도착하면 요동이 통지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오 사신이 보낸 채단(綵緞)은 받기가 불안하여 오 사신에게 돌려보냈더니, 오 사신이 말하기를 ‘배신(陪臣)이 나를 친근하게 여겨 물건을 보내주었으므로 내가 이것으로써 보답하는 것이니 사양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신이 부득이 그것을 받아서 벼루와 활의 주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벼루와 활은 군관(軍官) 자제들의 물건이었다.】 오 사신이 또 말하기를 ‘당신 나라에서 돌아올 때에 어양(漁陽)에 도착하니 배가 없어서 뗏목을 타고 왔는데, 의복이 물에 젖었으며, 당신 국왕께서 선물로 준 족자(簇子)도 또한 젖어서 못 쓰게 되었다. 당신이 국왕께 고하여 한 쌍의 족자를 그려 보내주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신이 어떤 경치를 그릴 것이냐고 하니, 오 천사가 좌석 뒤의 사시경(四時景)을 가리키며 ‘이것을 그려 보내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또 양사는 식품·수건과 향(香)을 정을 다하여 보내주었으며 출발에 임하여서는 공 천사가 이르기를 ‘큰 글씨를 써서 증정하려 하였더니 때마침 국사로 겨를이 없어서 쓸 수가 없으므로 부채에 율시를 지어서 송별의 선물로 준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달자(韃子)들이 신들에 대한 상사(賞賜)가 유구인(琉球人)과 동시에 먼저 주어진다는 것을 듣고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니 예부 주사(禮部主事)도 또한 금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14일에 상사를 받고 22일에 출발하였습니다.

길에서 들으니 황제가 천수산(天壽山)에 거둥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 대동부(大同府) 하인의 반란은 서달자(西韃子)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요동의 유격 장군(遊擊將軍)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쳤는데 병기를 40여 수레에 싣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또 태자 책봉의 일을 하인(下人)에게 물으니 ‘첫째 태자는 몸이 작고 머리는 커서 앉고 일어서지 못하며, 둘째는 뛰어나게 총명하므로 황제께서 태자로 세우고자 하나 조정의 논의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또 안남국(安南國)의 격병관(格兵官) 막무료(莫茂了) 【인명(人名).】 는 무과로 출신한 자로서 몹시 호탕하고 거세어서 그 나라의 7분의 4를 점유하였습니다. 안남왕 거정 요류(巨鄭堯劉)가 조정(朝廷)에 가서 후원병을 청하여 치고자 하니, 막무료가 알고 요류의 처자를 가두고 ‘네가 가지 않으면 너의 처자를 살려주겠다.’ 하였습니다. 요류가 ‘네 마음대로 하라.’ 하고 드디어 조정에 와서 치기를 청하니, 조정이 의논하기를 ‘마땅히 가서 토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길이 매우 멀어서 중국의 군사로써 가서 정벌한다면 군량을 공급하기 어렵다. 우선 막무료에게 화복의 이치로써 타이르고, 거세고 거만하여 듣지 않는다면 마땅히 광서병(廣西兵)으로써 토벌해야 한다.’고 하였다 합니다.

신이 또 태감(太監)은 몇 사람이나 있는가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장흠(張欽)은 이미 죽었고 한석(韓碩)은 성조(成祖)의 능(陵)을 지키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모른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황제께서는 절일(節日)232) 에 출조(出朝)하여 사경(四更)에 하례를 받았는데, 다만 궁전 안이 깊고 멀어 불빛은 보이지 않고 여창(臚唱)233) 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황제는 성모(聖母)께서 종기가 났으므로 시사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었고 황제가 족창(足瘡) 때문에 신을 신지 못한다고도 하였습니다. 8월 16일에 시조(視朝)하고 9월 1일에 시조한 뒤로는 다시 시조하지 않았으며, 21일에는 태묘(太廟)에 제사하고 그 다음날에는 경성연(慶成宴)을 거행(擧行)한다고 하였습니다. 중조인(中朝人)이 말하기를 ‘이 제사 뒤에 반드시 태자 책봉을 의논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제일(祭日)은 곧 신이 떠나는 날이었으므로 미처 알지 못하고 왔습니다. 뒤의 행차에서는 알고 올 것입니다. 또 백열이 서반에게 말하여 벼루와 종이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벼루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종이를 조금 보냈더니, 백열이 말하기를 ‘이 종이를 말한 것이 아니다. 견면궁자(繭綿弓子)234) 와 화석연면(花石硯面)235) 을 얻어서 보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니 배신(陪臣)에게 말하라. 배신이 만약 얻지 못하거든 국왕께 여쭈어 구해 보내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또 공·오 양사가 정사룡에게 각기 개인적인 편지를 주기에 신이 가지고 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조정에 별다른 일은 없던가?"

하니, 허관이 아뢰기를,

"없었습니다. 다만 절강(浙江)의 유생(儒生)이 추호(追號)는 부당하다는 뜻으로 거듭 상소하여 죄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성절사가 아뢴 말은 다만 알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또한 간혹 시행해야 할 일도 있다. 백열이 요구하는 물건이 또한 많은데 이제 속히 시행하고자 하니 빠짐 없이 서계(書啓)하라."

  • [註 229] 공(龔)·오(吳) : 공용경(龔用卿)과 오희맹(吳希孟).
  • [註 230] 오 천사(吳天使) : 오희맹을 말함.
  • [註 231] 도자(刀子) : 작은 손칼.
  • [註 232] 절일(節日) : 탄신일.
  • [註 233] 여창(臚唱) : 전상(殿上)에서 호명(呼名)하는 것.
  • [註 234] 견면궁자(繭綿弓子) : 명주베로 장식한 활.
  • [註 235] 화석연면(花石硯面) : 꽃무늬 벼루.

원문

○乙未/上御思政殿, 引見聖節使許寬。 寬曰: "臣到京五六日, 詮聞龔、吳兩使, 以爲朝鮮人, 不可待之如此, 常於提督易寬、郞中白悅處, 勤勤言之矣。 未幾, 門禁乃通。 八月十二日下馬宴時, 以呈文投于禮部尙書, 則十五日郞中白悅, 以通門禁告示, 送于玉河關。 臣言於序班曰: ‘告示至極矣, 然以題本爲法例, 則尤爲好矣。’ 序班曰: ‘尙書嚴嵩, 以五日一次出入, 前年已通汝國。 今又爲之, 則不其煩乎?’ 易寬曰: ‘勿謂門禁已通, 而恣其出入。 我亦有耳目, 汝當愼哉!’ 臣聞此言, 戒子弟軍官, 不得恣爲出入。 又於中途, 逢管押、進賀兩使, 亦以此意言之。 臣伴送孫繼常者, 吳天使相知之人也。 往訪吳天使, 以吳天使之言, 來說曰: ‘今聞朝鮮使臣之來, 其國王豈無一言於我乎? 且白悅, 我同年友也。 以射爲事, 欲得弓子’ 云, 臣未信繼常之言。 有吳天挺者, 吳天使頭目也。 以見通事事來言曰: ‘吳天使曾有送物于國王前, 未知已達否。’ 於是始信繼常之言不誣也。 臣答曰: ‘我殿下欲致謝於天使, 而無因緣, 不得導達。’ 且臣以所持弓二張。 硯二面, 分送于吳希孟、白悅兩大人。 其後吳天使, 以片紙通曰: ‘往來汝國後, 不忘國恩’, 又以法帖一件遺臣。 其帖內, 連帖我國單子, 備悉朝鮮始末, 四郡、三韓, 及自義州到京一路院驛, 京都木覔山、濟川亭、漢江、楊花渡、望遠亭, 各司名號, 宰相諸君, 下及三品堂上之名、及第榜目, 又宣慰使、遠接使、從事官、各官各員, 凡通事姓名, 至於花草之名, 無不紀載, 作爲一冊, 乃曰: ‘此未忘汝國之意也。’ 又求見硯面、弓子、刀子、銅器等物, 欲送價買之。 臣處置爲難, 以臣所持硯五面、弓四張、行器刀子, 送于吳天使曰: ‘此物至薄, 然以我佩持之物, 故遺以表情。’ 八月十二日, 吳天使以綵段二匹, 遺于臣曰: ‘表情耳。 且今日與龔天使共訪矣, 汝不必致謝。 恐龔天使見之怪也。’ 食後, 龔、吳兩天使, 果一時來訪, 問殿下安否。 臣答以安寧, 又言: ‘前日見大人手字, 如見大人容儀, 又見呈文題本, 尤爲多謝。 《皇華集》誤印官吏, 皆已罪之, 其誤印處, 亦皆正之。 且上使所送天下圖, 下使所送地圖扇子, 我殿下多謝意爾。’ 龔、吳兩使, 又問鄭士龍好在乎? 臣答曰: ‘好在。’ 通事誤答曰: ‘士龍今爲南方使臣。’ 兩使曰: ‘其任何官?’ 答曰: ‘如中朝巡按之任。’ 又問曰: ‘何時遞來?’ 答曰: ‘滿一年乃來。’ 又問南方在何處? 答曰: ‘直南慶尙道也。’ 兩使曰: ‘眞所謂衣錦還鄕矣。’ 天使又曰: ‘吾詩曾已送之, 鄭君不答乎?’ 臣又答曰: ‘士龍遠在, 故不及答耳。’ 次問金安老安在否? 答曰: ‘已死。’ 兩使相顧以笑曰: ‘高悻高悻之人, 今已死矣’, 又相謂曰: ‘無乃國王之所爲耶?’ 又謂臣曰: ‘歸還汝國, 以吾言告于國人曰: 「安老高悻, 宜其死矣。」’ 又問金謹思尙在乎? 答曰: ‘在。’ 曰: ‘今必衰老矣。’ 又問蘇世讓、尹仁鏡、吳潔, 臣答曰: ‘潔則死矣。’ 兩使曰: ‘吳潔, 表致之人也。 一年內, 人事乃如是耶?’ 又問許沆、許洽, 臣答曰: ‘今在父憂。’ 又笑曰: ‘父死矣。’ 且曰: ‘《皇華集》汝持來乎? 此處閣老先生, 求見甚切, 四五件印送何如? 此非禁物, 傳播中國, 則於汝國王, 亦有光矣, 須於後日, 印送可也。’ 臣曰: ‘後行次, 則必於遼東等處相見也, 必未及印送矣, 當待後行印送。’ 言畢而出。 《大明會典》事, 臣忘未問之。 聞吳天使家在玉河關近處, 卽伻人導達曰: ‘昨日辱臨, 忘未盡言矣。 《會典》欲蒙大人之德, 速開刊矣。’ 答曰: ‘此非我所掌也。 宗系事, 則已改正, 但不知何時印出矣。 龔天使則在其手下, 可以問也。’ 龔家甚遠, 未知在家與否, 以情物送之, 問封太子事, 答曰: ‘此內間事, 非外人所預知, 然封太子後, 天使若往汝國, 則我與吳君更往, 汝國王豈不蘇喜乎? 我更見汝國山川, 豈不幸哉?’ 又問《會典》事, 答曰: ‘近來皇帝, 多印要緊之書, 二三年內, 未易印出’ 云。 又問曰: ‘加上尊號, 詔示天下, 亦通于我國乎? 通則何以通乎?’ 答曰: ‘《皇華集》題本時, 以汝國爲禮義之邦, 又國王賢明, 凡朝廷大小事, 可以盡通。 閣老等, 亦以此, 於經筵言之不已, 故皇帝亦知汝國王之賢, 當通此事也。 然非如送天使之例也。 詔到遼東, 遼東可以通矣’ 云。 且吳天使所送綵段, 〔受之不安〕 , 還送于吳天使, 則吳天使曰: ‘陪臣親我, 贈以物, 故我以此報之, 不可辭也’, 臣不得已受之, 分給硯弓之主。 【硯弓, 乃軍官子弟之物也。】 吳天使又曰: ‘還自汝國, 到漁陽, 無舟楫, 乘桴而來, 衣服水沈, 汝國王所贈簇子, 亦濕不用。 汝告國王, 畫一雙簇子, 送之可乎!’ 臣曰: ‘畫出何景?’ 吳天使指座後四時景曰: ‘以此畫送可也。’ 又兩使食物手巾與香, 盡情遺之, 及其臨發, 龔天使云: ‘欲以大字書贈, 適以國事無暇, 未得書之, 故於扇子, 作律詩贐行。’ 且㺚子聞臣等賞賜與(流球人)〔琉球人〕 同時先賜, 高聲作亂, 禮部主事, 亦不能禁。 以此十四日受賞賜, 二十二日發行, 路聞皇帝幸天壽山云。 且大同府下人叛亂, 與西㺚子連結, 故遼東遊擊將軍, 領軍士五千往擊, 兵器以四十餘車載去矣。 且封太子事, 問於下人則曰: ‘第一太子, 軀幹小而頭體大, 不能坐起, 次子穎悟, 故皇帝欲立, 然朝議未定’ 云。 且安南國格兵官莫茂了, 【人名。】 乃武擧出身者, 最豪縱桀驁, 七分其國, 乃有其四。 安南王巨鄭堯劉, 欲往朝廷, 請兵擊之, 莫茂了知之, 囚堯劉妻子曰: ‘汝若不往, 當生汝之妻子。’ 堯劉曰: ‘任汝爲之’, 遂行, (未)〔來〕 朝廷請擊之, 朝廷議曰: ‘所當往討, 然道路極遠, 若以天兵往征, 則軍糧難繼。 姑諭莫茂了以禍福, 若桀驁不聽, 則當以廣西兵伐之云。 臣又問太監幾人在, 答曰: ‘張欽已死, 韓碩守永樂陵, 他人不知矣。’ 且皇帝節日出朝, 四更受賀禮, 但殿內深邃, 不見燭光, 只聞臚傳之聲而已。 帝以聖母生腫, 故不能視事。 又曰: ‘帝以足瘡, 不得着靴, 八月十六日親朝, 九月初一日視朝後, 不復視矣。’ 二十一日祭太廟, 其翌日行慶成宴。 中朝人曰: ‘此祭後, 必議封太子’, 而其祭日, 乃臣發行日也。 未及知而來, 後行次則可以知來矣。 且白悅言於序班, 求得硯紙, 而硯則無有, 故以紙少許送之。 悅曰: ‘非謂此紙也。 欲得繭綿弓子。 花石硯面, 以爲奇觀。 可於陪臣處言之, 陪臣若不得, 則可於國王前, 白以覓送也。’ 又龔、吳兩使, 於鄭士龍處, 皆有私簡, 臣持來矣。" 上曰: "朝政別無他事乎?" 寬曰: "無。 但浙江儒生人, 以追號不當之意, 疊疏得罪云。" 傳曰: "聖節使所啓之言, 非但知之而已, 亦或有施行之事。 白悅所求之物, 亦多有之。 今欲速施之, 無遺書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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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89권, 중종 33년 11월 25일 乙未 1/2 기사 / 1538년 명 가정(嘉靖) 17년

성절사 허관을 인견하고 아뢴 바를 빠짐없이 서계토록 하다

국역

상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성절사 허관(許寬)을 인견하였다. 허관이 아뢰기를,

"신이 연경(燕京)에 도착한 5∼6일 경에 자세히 들으니, 공(龔)·오(吳)229) 두 사신이 조선 사람을 이렇게 대우해서는 안된다고 제독(提督) 역관(易寬)과 낭중(郞中) 백열(白悅)에게 열심히 말하였다고 합니다. 얼마 안 되어 문금(門禁)이 해제되었습니다. 8월 12일 하마연(下馬宴) 때에 정문(呈文)을 예부 상서(禮部尙書)에게 주었더니, 15일에 낭중 백열이 통문금 고시(通門禁告示)를 옥하관(玉河關)에 보냈습니다. 신이 서반(序班)에게 ‘고시(告示)가 매우 좋다. 그러나 제본(題本)으로써 법례(法例)를 만들면 더욱 좋겠다.’고 하니 서반이 말하기를 ‘상서(尙書) 엄숭(嚴嵩)이 5일에 한 번씩 출입할 것을 지난해에 이미 당신 나라에 통고하였는데, 이제 또 한다는 것은 번거롭지 않은가.’ 하였습니다. 역관(易寬)이 말하기를 ‘문금(門禁)이 이미 해제되었다고 하여 함부로 출입하지 말라. 나도 또한 이목이 있으니 당신은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자제(子弟)와 군관(軍官)들을 계칙하여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중도에서 관압사(管押使)와 진하사(進賀使) 두 사신을 만나서 이 내용을 말해 주었습니다.

신의 반송(伴送) 손계상(孫繼常)이란 자는 오 천사(吳天使)230) 와 서로 아는 사람인데 오 천사를 방문하고 와서 말하기를 ‘오 천사의 말이, 「지금 들으니 조선 사신이 왔다는데 그 국왕이 어찌 나에게 한 마디 말이 없는가. 또 백열은 나의 동년(同年) 친구인데 활쏘는 것을 몹시 즐기므로 활을 얻고자 한다.」 하였다.’ 하였으나 신은 계상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천정(吳天挺)이란 자가 있는데 오 천사의 두목(頭目)입니다. 통사(通事)를 만날 일이 있어서 왔다가 말하기를 ‘오 천사가 일찍이 국왕께 물품을 보낸 일이 있는데 이미 도착하였는지 모르겠다.’ 하여 비로소 계상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전하께서 천사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하나 기회가 없어서 진달하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신이 갖고 있던 활 두 장과 벼루 두 개를 오희맹과 백열 두 대인(大人)에게 나누어 보냈습니다.

그 뒤에 오 천사가 편지를 통하여 말하기를 ‘당신 나라에 다녀온 뒤로 국은(國恩)을 잊을 수 없다.’ 하였고, 또 법첩(法帖) 1건을 신에게 주었습니다. 그 법첩 속에는 우리 나라의 단자(單子)를 이어 붙이고 조선의 모든 내용을 죄다 갖추었는데, 사군(四郡)·삼한(三韓)과, 의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일로(一路)의 원(院)·역(驛)과 서울의 목멱산(木覓山)·제천정(濟川亭), 한강의 양화도(楊花渡)·망원정(望遠亭)과, 각사(各司)의 명호(名號)와 재상(宰相)·제군(諸君)으로부터 아래로 3품 당상(三品堂上)의 이름에 미쳤으며, 급제의 방목(榜目)과 또 선위사·원접사·종사관 등 각 관원과 모든 통사의 성명이며 화초의 이름까지 기재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신 나라를 잊지 않는 의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벼루·활·도자(刀子)231) ·동기(銅器) 등 물품을 갖고 싶어하여 대가를 보내어 사고자 하므로 신이 난처하여 신이 가지고 있는 벼루 5개, 활 4장과 행기(行器)·도자를 오 사신에게 보내고 말하기를 ‘이 물건이 매우 볼품이 없으나 내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므로 드리어 정을 표시합니다.’ 하였습니다. 8월 12일 오 천사가 채단(綵緞) 2필을 신에게 보여주며 ‘정의 표시일 뿐이다. 또 오늘 공 천사(龔天使)와 함께 방문할 것인데, 당신은 채단에 관하여 절대 치사(致謝)하지 말라. 아마 공 천사가 보면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 하였습니다.

식후에 공·오 두 사신이 과연 한꺼번에 내방하였습니다. 전하의 안부를 묻기에 신이 안녕하시다고 대답하고, 또 말하기를 ‘전일에 대인(大人)의 수서(手書)를 보니 대인의 용의를 뵈온 듯하였으며 또 정문(呈文)의 제본(題本)을 보고 더욱 감사하였습니다. 《황화집》을 잘못 인출(印出)한 관리는 이미 다 죄주었으며 잘못된 부분도 또한 다 바로잡았다. 또 상사가 보낸 천하도(天下圖)와 하사가 보낸 지도(地圖)·선자(扇子)를 우리 전하께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공·오 양사(兩使)가 또 ‘정사룡은 잘 있는가?’라고 묻기에 신이 잘 있다고 답하였는데, 통사가 잘못 말하기를 ‘사룡이 지금 남방의 사신이 되었다.’ 하니 양사가 말하기를 ‘그것은 무엇을 담당하는 벼슬인가?’ 하기에 ‘중조(中朝)의 순안사(巡按使)의 직임과 같은 것이다.’ 하니, 또 묻기를 ‘언제 체임하고 오는가?’ 하였습니다. ‘만 1년이 되면 돌아온다.’ 하니, 또 묻기를 ‘남방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바로 남쪽 경상도이다.’ 하였더니, 양사가 ‘참으로 이른바 금의 환향이로군.’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나의 시를 일찍이 이미 보냈는데 정군(鄭君)이 답하지 않던가?’ 하기에, 신이 또 대답하기를 ‘사룡이 멀리 있기 때문에 미처 화답하지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다음에 묻기를 ‘김안로는 편안한가?’ 하였습니다. ‘이미 죽었다.’고 대답하니 양사가 서로 돌아다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교만하고 원한 많은 사람이 이미 죽었구나.’ 하고, 또 서로 이르기를 ‘국왕이 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또 신에게 이르기를 ‘당신 나라에 돌아가거든 나의 말로써 나라 사람들에게, 김안로는 교만하고 원한이 많으니 그가 죽은 것은 마땅하다고 했다 하라.’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김근사는 아직 있는가?’ 하기에 있다고 대답했더니 ‘지금은 필시 노쇠했겠지.’ 하고, 또 소세양·윤인경·오결을 물었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오결은 죽었다.’ 하니 양사가 말하기를 ‘오결은 남의 의표가 될 만한 사람이다. 1년 사이에 사람의 일이 이같이 변하는가.’ 하였습니다. 또 허항(許沆)·허흡(許洽)을 묻기에 신이 답하기를 ‘지금 부상(父喪) 중에 있다.’ 하니, 또 웃으며 말하기를 ‘아버지가 죽었구나.’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황화집》을 당신이 가지고 왔는가? 이곳 각로 선생(閣老先生)들이 매우 간절하게 구해 보고자 하니 4∼5건(仵)을 인쇄하여 보내는 것이 어떤가. 이것은 금물(禁物)이 아니니 중국에 전파되면 당신 국왕에게도 또한 영광스러울 것이니 아무쪼록 뒷날 인쇄하여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우리들 뒤에 나오는 행차를 반드시 요동 근처에서 서로 만나기는 할 것이나 필시 미처 인쇄하여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땅히 그 다음 사행편에 인쇄하여 보내겠다.’ 하였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왔는데, 《대명회전》의 일을 신이 잊고 물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 천사의 집이 옥하관(玉河關) 근처에 있다고 듣고는 즉시 사람을 사서 길을 인도케 하여 가서 말하기를 ‘어제 왕림하셨을 때에 잊고 말을 다하지 못하였는데 《회전》을 속히 발간하도록 대인(大人)이 힘써 주기 바란다.’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나의 분담이 아니다. 종계(宗系)의 일은 이미 개정하였으나 다만 어느 때 인출할 것인지는 모른다. 공 천사라면 그의 관할하에 있는 일이니 그에게 묻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 공 천사의 집이 매우 멀고 집에 있는 지 없는지도 알 수 없으므로, 정물(情物)을 보내고 태자 책봉의 일을 물으니 ‘이것은 내간사(內間事)로서 외부인이 미리 알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태자를 책봉한 뒤에 천사(天使)가 만약 당신 나라에 가게 된다면 나와 오군(吳君)이 다시 갈 것이니 당신 국왕이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나도 다시 당신 나라의 산천을 또 보게 될 것이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또 《회전》의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근래에 황제께서 요긴한 서적을 많이 간행하고 있으므로 2∼3년 안에는 인출(印出)이 쉽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존호를 더 올리고 천하에 조시(詔示)할 것인데 우리 나라에도 또한 통지할 것인가. 통지한다면 어떻게 통지할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황화집》 제본 때에는 당신 나라가 예의의 나라이며, 또 국왕이 현명하니, 조정의 대소사(大小事)를 다 통지할 만하고, 각로(閣老) 등도 또한 이것을 경연에서 말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황제께서도 또한 당신 국왕의 어지심을 알고 있으니 이 일은 당연히 통지할 것이다. 그러나 천사를 보냄과 같은 예는 아니니, 조서가 요동(遼東)에 도착하면 요동이 통지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오 사신이 보낸 채단(綵緞)은 받기가 불안하여 오 사신에게 돌려보냈더니, 오 사신이 말하기를 ‘배신(陪臣)이 나를 친근하게 여겨 물건을 보내주었으므로 내가 이것으로써 보답하는 것이니 사양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신이 부득이 그것을 받아서 벼루와 활의 주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벼루와 활은 군관(軍官) 자제들의 물건이었다.】 오 사신이 또 말하기를 ‘당신 나라에서 돌아올 때에 어양(漁陽)에 도착하니 배가 없어서 뗏목을 타고 왔는데, 의복이 물에 젖었으며, 당신 국왕께서 선물로 준 족자(簇子)도 또한 젖어서 못 쓰게 되었다. 당신이 국왕께 고하여 한 쌍의 족자를 그려 보내주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신이 어떤 경치를 그릴 것이냐고 하니, 오 천사가 좌석 뒤의 사시경(四時景)을 가리키며 ‘이것을 그려 보내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또 양사는 식품·수건과 향(香)을 정을 다하여 보내주었으며 출발에 임하여서는 공 천사가 이르기를 ‘큰 글씨를 써서 증정하려 하였더니 때마침 국사로 겨를이 없어서 쓸 수가 없으므로 부채에 율시를 지어서 송별의 선물로 준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달자(韃子)들이 신들에 대한 상사(賞賜)가 유구인(琉球人)과 동시에 먼저 주어진다는 것을 듣고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니 예부 주사(禮部主事)도 또한 금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14일에 상사를 받고 22일에 출발하였습니다.

길에서 들으니 황제가 천수산(天壽山)에 거둥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 대동부(大同府) 하인의 반란은 서달자(西韃子)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요동의 유격 장군(遊擊將軍)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쳤는데 병기를 40여 수레에 싣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또 태자 책봉의 일을 하인(下人)에게 물으니 ‘첫째 태자는 몸이 작고 머리는 커서 앉고 일어서지 못하며, 둘째는 뛰어나게 총명하므로 황제께서 태자로 세우고자 하나 조정의 논의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또 안남국(安南國)의 격병관(格兵官) 막무료(莫茂了) 【인명(人名).】 는 무과로 출신한 자로서 몹시 호탕하고 거세어서 그 나라의 7분의 4를 점유하였습니다. 안남왕 거정 요류(巨鄭堯劉)가 조정(朝廷)에 가서 후원병을 청하여 치고자 하니, 막무료가 알고 요류의 처자를 가두고 ‘네가 가지 않으면 너의 처자를 살려주겠다.’ 하였습니다. 요류가 ‘네 마음대로 하라.’ 하고 드디어 조정에 와서 치기를 청하니, 조정이 의논하기를 ‘마땅히 가서 토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길이 매우 멀어서 중국의 군사로써 가서 정벌한다면 군량을 공급하기 어렵다. 우선 막무료에게 화복의 이치로써 타이르고, 거세고 거만하여 듣지 않는다면 마땅히 광서병(廣西兵)으로써 토벌해야 한다.’고 하였다 합니다.

신이 또 태감(太監)은 몇 사람이나 있는가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장흠(張欽)은 이미 죽었고 한석(韓碩)은 성조(成祖)의 능(陵)을 지키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모른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황제께서는 절일(節日)232) 에 출조(出朝)하여 사경(四更)에 하례를 받았는데, 다만 궁전 안이 깊고 멀어 불빛은 보이지 않고 여창(臚唱)233) 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황제는 성모(聖母)께서 종기가 났으므로 시사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었고 황제가 족창(足瘡) 때문에 신을 신지 못한다고도 하였습니다. 8월 16일에 시조(視朝)하고 9월 1일에 시조한 뒤로는 다시 시조하지 않았으며, 21일에는 태묘(太廟)에 제사하고 그 다음날에는 경성연(慶成宴)을 거행(擧行)한다고 하였습니다. 중조인(中朝人)이 말하기를 ‘이 제사 뒤에 반드시 태자 책봉을 의논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제일(祭日)은 곧 신이 떠나는 날이었으므로 미처 알지 못하고 왔습니다. 뒤의 행차에서는 알고 올 것입니다. 또 백열이 서반에게 말하여 벼루와 종이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벼루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종이를 조금 보냈더니, 백열이 말하기를 ‘이 종이를 말한 것이 아니다. 견면궁자(繭綿弓子)234) 와 화석연면(花石硯面)235) 을 얻어서 보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니 배신(陪臣)에게 말하라. 배신이 만약 얻지 못하거든 국왕께 여쭈어 구해 보내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또 공·오 양사가 정사룡에게 각기 개인적인 편지를 주기에 신이 가지고 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조정에 별다른 일은 없던가?"

하니, 허관이 아뢰기를,

"없었습니다. 다만 절강(浙江)의 유생(儒生)이 추호(追號)는 부당하다는 뜻으로 거듭 상소하여 죄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성절사가 아뢴 말은 다만 알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또한 간혹 시행해야 할 일도 있다. 백열이 요구하는 물건이 또한 많은데 이제 속히 시행하고자 하니 빠짐 없이 서계(書啓)하라."

  • [註 229] 공(龔)·오(吳) : 공용경(龔用卿)과 오희맹(吳希孟).
  • [註 230] 오 천사(吳天使) : 오희맹을 말함.
  • [註 231] 도자(刀子) : 작은 손칼.
  • [註 232] 절일(節日) : 탄신일.
  • [註 233] 여창(臚唱) : 전상(殿上)에서 호명(呼名)하는 것.
  • [註 234] 견면궁자(繭綿弓子) : 명주베로 장식한 활.
  • [註 235] 화석연면(花石硯面) : 꽃무늬 벼루.

원문

○乙未/上御思政殿, 引見聖節使許寬。 寬曰: "臣到京五六日, 詮聞龔、吳兩使, 以爲朝鮮人, 不可待之如此, 常於提督易寬、郞中白悅處, 勤勤言之矣。 未幾, 門禁乃通。 八月十二日下馬宴時, 以呈文投于禮部尙書, 則十五日郞中白悅, 以通門禁告示, 送于玉河關。 臣言於序班曰: ‘告示至極矣, 然以題本爲法例, 則尤爲好矣。’ 序班曰: ‘尙書嚴嵩, 以五日一次出入, 前年已通汝國。 今又爲之, 則不其煩乎?’ 易寬曰: ‘勿謂門禁已通, 而恣其出入。 我亦有耳目, 汝當愼哉!’ 臣聞此言, 戒子弟軍官, 不得恣爲出入。 又於中途, 逢管押、進賀兩使, 亦以此意言之。 臣伴送孫繼常者, 吳天使相知之人也。 往訪吳天使, 以吳天使之言, 來說曰: ‘今聞朝鮮使臣之來, 其國王豈無一言於我乎? 且白悅, 我同年友也。 以射爲事, 欲得弓子’ 云, 臣未信繼常之言。 有吳天挺者, 吳天使頭目也。 以見通事事來言曰: ‘吳天使曾有送物于國王前, 未知已達否。’ 於是始信繼常之言不誣也。 臣答曰: ‘我殿下欲致謝於天使, 而無因緣, 不得導達。’ 且臣以所持弓二張。 硯二面, 分送于吳希孟、白悅兩大人。 其後吳天使, 以片紙通曰: ‘往來汝國後, 不忘國恩’, 又以法帖一件遺臣。 其帖內, 連帖我國單子, 備悉朝鮮始末, 四郡、三韓, 及自義州到京一路院驛, 京都木覔山、濟川亭、漢江、楊花渡、望遠亭, 各司名號, 宰相諸君, 下及三品堂上之名、及第榜目, 又宣慰使、遠接使、從事官、各官各員, 凡通事姓名, 至於花草之名, 無不紀載, 作爲一冊, 乃曰: ‘此未忘汝國之意也。’ 又求見硯面、弓子、刀子、銅器等物, 欲送價買之。 臣處置爲難, 以臣所持硯五面、弓四張、行器刀子, 送于吳天使曰: ‘此物至薄, 然以我佩持之物, 故遺以表情。’ 八月十二日, 吳天使以綵段二匹, 遺于臣曰: ‘表情耳。 且今日與龔天使共訪矣, 汝不必致謝。 恐龔天使見之怪也。’ 食後, 龔、吳兩天使, 果一時來訪, 問殿下安否。 臣答以安寧, 又言: ‘前日見大人手字, 如見大人容儀, 又見呈文題本, 尤爲多謝。 《皇華集》誤印官吏, 皆已罪之, 其誤印處, 亦皆正之。 且上使所送天下圖, 下使所送地圖扇子, 我殿下多謝意爾。’ 龔、吳兩使, 又問鄭士龍好在乎? 臣答曰: ‘好在。’ 通事誤答曰: ‘士龍今爲南方使臣。’ 兩使曰: ‘其任何官?’ 答曰: ‘如中朝巡按之任。’ 又問曰: ‘何時遞來?’ 答曰: ‘滿一年乃來。’ 又問南方在何處? 答曰: ‘直南慶尙道也。’ 兩使曰: ‘眞所謂衣錦還鄕矣。’ 天使又曰: ‘吾詩曾已送之, 鄭君不答乎?’ 臣又答曰: ‘士龍遠在, 故不及答耳。’ 次問金安老安在否? 答曰: ‘已死。’ 兩使相顧以笑曰: ‘高悻高悻之人, 今已死矣’, 又相謂曰: ‘無乃國王之所爲耶?’ 又謂臣曰: ‘歸還汝國, 以吾言告于國人曰: 「安老高悻, 宜其死矣。」’ 又問金謹思尙在乎? 答曰: ‘在。’ 曰: ‘今必衰老矣。’ 又問蘇世讓、尹仁鏡、吳潔, 臣答曰: ‘潔則死矣。’ 兩使曰: ‘吳潔, 表致之人也。 一年內, 人事乃如是耶?’ 又問許沆、許洽, 臣答曰: ‘今在父憂。’ 又笑曰: ‘父死矣。’ 且曰: ‘《皇華集》汝持來乎? 此處閣老先生, 求見甚切, 四五件印送何如? 此非禁物, 傳播中國, 則於汝國王, 亦有光矣, 須於後日, 印送可也。’ 臣曰: ‘後行次, 則必於遼東等處相見也, 必未及印送矣, 當待後行印送。’ 言畢而出。 《大明會典》事, 臣忘未問之。 聞吳天使家在玉河關近處, 卽伻人導達曰: ‘昨日辱臨, 忘未盡言矣。 《會典》欲蒙大人之德, 速開刊矣。’ 答曰: ‘此非我所掌也。 宗系事, 則已改正, 但不知何時印出矣。 龔天使則在其手下, 可以問也。’ 龔家甚遠, 未知在家與否, 以情物送之, 問封太子事, 答曰: ‘此內間事, 非外人所預知, 然封太子後, 天使若往汝國, 則我與吳君更往, 汝國王豈不蘇喜乎? 我更見汝國山川, 豈不幸哉?’ 又問《會典》事, 答曰: ‘近來皇帝, 多印要緊之書, 二三年內, 未易印出’ 云。 又問曰: ‘加上尊號, 詔示天下, 亦通于我國乎? 通則何以通乎?’ 答曰: ‘《皇華集》題本時, 以汝國爲禮義之邦, 又國王賢明, 凡朝廷大小事, 可以盡通。 閣老等, 亦以此, 於經筵言之不已, 故皇帝亦知汝國王之賢, 當通此事也。 然非如送天使之例也。 詔到遼東, 遼東可以通矣’ 云。 且吳天使所送綵段, 〔受之不安〕 , 還送于吳天使, 則吳天使曰: ‘陪臣親我, 贈以物, 故我以此報之, 不可辭也’, 臣不得已受之, 分給硯弓之主。 【硯弓, 乃軍官子弟之物也。】 吳天使又曰: ‘還自汝國, 到漁陽, 無舟楫, 乘桴而來, 衣服水沈, 汝國王所贈簇子, 亦濕不用。 汝告國王, 畫一雙簇子, 送之可乎!’ 臣曰: ‘畫出何景?’ 吳天使指座後四時景曰: ‘以此畫送可也。’ 又兩使食物手巾與香, 盡情遺之, 及其臨發, 龔天使云: ‘欲以大字書贈, 適以國事無暇, 未得書之, 故於扇子, 作律詩贐行。’ 且㺚子聞臣等賞賜與(流球人)〔琉球人〕 同時先賜, 高聲作亂, 禮部主事, 亦不能禁。 以此十四日受賞賜, 二十二日發行, 路聞皇帝幸天壽山云。 且大同府下人叛亂, 與西㺚子連結, 故遼東遊擊將軍, 領軍士五千往擊, 兵器以四十餘車載去矣。 且封太子事, 問於下人則曰: ‘第一太子, 軀幹小而頭體大, 不能坐起, 次子穎悟, 故皇帝欲立, 然朝議未定’ 云。 且安南國格兵官莫茂了, 【人名。】 乃武擧出身者, 最豪縱桀驁, 七分其國, 乃有其四。 安南王巨鄭堯劉, 欲往朝廷, 請兵擊之, 莫茂了知之, 囚堯劉妻子曰: ‘汝若不往, 當生汝之妻子。’ 堯劉曰: ‘任汝爲之’, 遂行, (未)〔來〕 朝廷請擊之, 朝廷議曰: ‘所當往討, 然道路極遠, 若以天兵往征, 則軍糧難繼。 姑諭莫茂了以禍福, 若桀驁不聽, 則當以廣西兵伐之云。 臣又問太監幾人在, 答曰: ‘張欽已死, 韓碩守永樂陵, 他人不知矣。’ 且皇帝節日出朝, 四更受賀禮, 但殿內深邃, 不見燭光, 只聞臚傳之聲而已。 帝以聖母生腫, 故不能視事。 又曰: ‘帝以足瘡, 不得着靴, 八月十六日親朝, 九月初一日視朝後, 不復視矣。’ 二十一日祭太廟, 其翌日行慶成宴。 中朝人曰: ‘此祭後, 必議封太子’, 而其祭日, 乃臣發行日也。 未及知而來, 後行次則可以知來矣。 且白悅言於序班, 求得硯紙, 而硯則無有, 故以紙少許送之。 悅曰: ‘非謂此紙也。 欲得繭綿弓子。 花石硯面, 以爲奇觀。 可於陪臣處言之, 陪臣若不得, 則可於國王前, 白以覓送也。’ 又龔、吳兩使, 於鄭士龍處, 皆有私簡, 臣持來矣。" 上曰: "朝政別無他事乎?" 寬曰: "無。 但浙江儒生人, 以追號不當之意, 疊疏得罪云。" 傳曰: "聖節使所啓之言, 非但知之而已, 亦或有施行之事。 白悅所求之物, 亦多有之。 今欲速施之, 無遺書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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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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