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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83권, 중종 32년 1월 22일 壬寅 1/3 기사 /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김안로·심언광 등이 윤개의 처벌, 군역의 폐단, 천사의 지대에 관한 일을 아뢰다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영사 김안로가 아뢰기를,

"요즈음의 일은 지극히 놀랍습니다. 양제(良娣)로 어쩌다가 간택되었더라도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바라는 대로 일을 도모하여 반드시 들이려고까지 한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일들은 매우 간사한 자가 아니면 감히 할 수 없습니다. 윤개(尹漑)가 이 일을 한 까닭은 뜻을 잃고 불평하여 감히 영총(榮寵)을 얻으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이 일을 차마 할 수 있으면 무슨 일인들 차마 할 수 없겠느냐.’ 하였거니와, 윤개의 마음을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무슨 일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바야흐로 조정이 당당하고 성명이 위에 계시므로 간사한 계책이 그 사이에서 싹트지 못할 듯한데, 윤개는 이러한 일을 하였으니, 이는 반드시 연고를 따라 붙을 만한 여지가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론이 한 번 일어나자 성단(聖斷)이 물이 흐르는 것과 같으셨으니, 위 아래가 누구인들 쾌하게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옛말에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함께 일체(一體)가 된다.’ 하였는데, 이것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 털끝만큼도 의심하여 꺼리는 것이 없어야 간사한 무리가 절로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임금의 외척으로 말하면, 조금 지식이 있는 자는 무릇 은총에 관한 일이 있을 때에 다들 겸손하고 두려워하나, 그중에는 혹 요구하고 헐뜯어 이간하는 자가 있는데, 모두가 간사한 무리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밖에서는 알 길이 없으나, 위에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을 것이니, 그 정상을 환히 비추어 보아 어느 사람이 순근(醇謹)하고 어느 사람이 사악한지를 낱낱이 가리실 수 있다면, 절로 그 자취를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사악한 사람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 오직 위에 있는 이가 잘 가리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연고를 따라 붙어 몰래 제 간사한 술책을 수행하려는 간사한 사람이 있더라도 성충(聖衷)에서 결단하여 그 죄를 쾌히 바루어 바깥 사람으로 하여금 성감(聖鑑)이 비추어 아시는 바가 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면, 신민(臣民)이 외복(畏服)할 바를 알아서 간사하고 속이는 것이 절로 그칠 것입니다.

대저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헐뜯어 이간하는 일이 쉽게 끼어듭니다. 여느 때 사대부의 벗들 사이에도 서로 안다고 스스로 허여하고 속을 서로 비추어 알다가도 혹 이간이 있어서 의심하게 되면 의심하는 꼬투리가 이루어져서 일에 따라 의심하고 꺼려서 마침내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 있어서 무릇 정사(正邪)·현부(賢否)를 성감이 환히 비추어 아시므로 간사한 말이 이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나, 임금과 신하가 서로 허여하는 사이가 사대부끼리 서로 사귀는 친밀함만 하겠습니까. 만일 이간하는 자가 있으면, 전일에 위임받아 신하로 일하던 자가 도리어 의심을 받아 위험을 당하고 화(禍)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으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또 궁중 사람이 어찌 조정 신하의 현부를 알겠습니까. 칭찬하는 자는 반드시 서로 아는 자일 것이고, 헐뜯는 자는 반드시 서로 좋아하지 않는 자일 것이니, 헐뜯거나 칭찬하는 것이 다 공변된 것이 아닙니다. 옛 대신이 선비를 천거하는 도리를 논하여 ‘궁인(宮人)이 이름을 모르는 자가 착한 자이다.’ 하였는데, 이것이 참으로 격언입니다. 그 곁에서 참람하게 엿보며 연고를 따라 붙어서 사실보다 지나친 헐뜯음과 칭찬을 만들어 이로 말미암아 위복의 권세를 훔치는 것은 처음에는 매우 작은 일이더라도 마침내는 바로잡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어찌 다시 이러한 자가 있겠습니까마는, 윤개와 같은 자가 때로 혹 있으니 반드시 쾌히 결단하여 밖에 분명히 보여 간사한 말이 안에 자취를 잇지 못하게 하시면, 임금과 신하가 길이 보전될 수 있고 국가가 길이 다스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매우 마땅하다. 요즈음에 있었던 윤개의 일은 지극히 놀라우나, 공론이 한 번 일어나자 곧 용서없이 죄를 다스렸으므로 간사한 사람들이 두려워 삼갈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하다 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할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였는데, 김안로가 아뢰기를,

"위에서 분부하신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궁금에 붙는 자를 위에서 아실 것이니, 아신다면 반드시 통쾌히 결단하여 망설이지 말아서 외정(外廷)이 분명히 알게 하여야 합니다. 제갈양(諸葛亮)이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함께 일체(一體)가 된다.’ 하였거니와, 임금이 궁중의 일을 사사로운 일로 여기고 외정의 일을 바깥 일로 여겨 안팎을 나누고 함께 다스리지 않으면, 마침내 위 아래가 막혀서 뜻이 서로 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궁중과 부중이 평탄하게 일체가 되어 가지런하고 발라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동지사 심언광(沈彦光)이 아뢰기를,

"윤개는 궁첩(宮妾)과 내통하여 제 딸을 동궁에 들이려고 꾀하여 그 계책이 거의 이루어졌으나, 조정의 의논이 불가하다 하여 공론이 이미 정하여졌는데, 감히 큰소리로 ‘이미 뽑힌 딸이니 지금은 들이지 못하더라도 장차 10년을 기다려서라도 반드시 들이고야 말겠다.’ 하였으니, 이는 매우 놀랍습니다. 대체로 바깥 사람이 궁금과 내통하는 것은 다스려진 세상의 일이 아니고 쇠퇴한 세상의 일이며, 밖의 말은 안에 들어가지 않고 안의 말은 밖에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윤기는 필시 안 사람으로 말미암아 제 딸을 들이려 하였으니, 그 간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말에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이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 이름자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맺어 사귀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간사한 사람이 그 간사한 계책을 이루려면 반드시 궁안 사람으로 하여금 제 이름을 알게 하는 것이니, 이것도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궁중 사람 중에 사대부를 헐뜯거나 칭찬하는 자가 있는 것을 나는 모른다마는, 윤개의 일이 동궁에서 나왔다니 매우 놀랍다. 그러나 그 집의 비복(婢僕)이 성세(聲勢)를 과장하여 밖에서 말을 퍼뜨렸으니, 이는 스스로 그 화를 부른 것이다."

하였다. 심언광이 아뢰기를,

"간사한 것과 바른 것을 분변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환관과 궁첩이 이름을 모르는 자는 바르고, 환관과 궁첩이 이름을 아는 자는 반드시 간사합니다. 지금 어찌 이러한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윤개와 같은 자가 이따금 있으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되겠습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외정(外廷)의 뭇 신하 가운데 임금의 외척에 관계되지 않는 사람인데 내부 사람에게 그 이름이 알려진 자는 반드시 내부 사람에게 붙어서 간사한 술책을 부리려는 자일 것입니다. 외척에 관계된 사람이라면 내부 사람 중에 혹 아는 자가 있더라도 이러한 사람은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하고, 심언광이 아뢰기를,

"외척에 관계된 사람이라도 문안만을 하고 말아야 옳습니다. 어찌하여 반드시 내통하여 궁금에 드나들어야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윤개는 과연 간사한 사람이다. 간사하면 그 자취를 숨길 수 없으니, 윤개도 간사하므로 스스로 패하였다."

하였는데, 김안로가 아뢰기를,

"외척에 관계된 사람으로서 능히 겸손하고 삼가서 꾸밈도 없고 말도 없는 자는 반드시 바른 사람일 것이며, 혹 찬양하기도 하고 헐뜯기도 하여 시비가 정하여지지 않게 하는 자라면 간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사람은 분변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어서 스스로 그 정상을 숨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심언광이 아뢰기를,

"송(宋)나라 희령(熙寧)·원풍(元豊)사이에는 서로 붕당(朋黨)을 만들어035) 서로 전복 시키려고 꾀하여 온갖 방법으로 틈을 엿보았으므로 마침내 사기가 크게 꺾여서 나라의 일이 날로 잘못되어 갔는데, 이러한 일이 이제도 어찌 반드시 없으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밤낮으로 의심하고 염려하여 잠시도 편안할 때가 없습니다. 다만 성명이 위에 계시어 시비를 서로 요탈(搖奪)할 수 없으므로 이 점이 믿을 수 있는 것이나, 요즈음에도 지진의 변이 있으니, 조정의 신하가 누구나 스스로 두렵게 여겨 각자가 경계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혹 지난 일에 말미암기도 하고 앞으로 올 일에 말미암기도 하므로 하나를 가리켜 말할 수 없으나, 어쩌다가 간사한 일이 재변이 있을 즈음에 일어나니, 이것이 두려운 것이다. 대체로 근래 조정이 대강 편안하나 편안할 때가 더욱 두려운 것이다."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외방(外方)의 지진은 때때로 있으나, 이번에는 서울에도 이변이 있고 태백이 사지(巳地)에 주현(晝見)하였습니다. 경천(經天)이 아니기는 하나 큰 재변이 거듭 이르렀으니, 재변 중의 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래 조정이 조금 편안하여, 두세 해가 지나면 크게 안정할 수 있을 것인데, 뜻밖에 윤개 의 일이 있고 큰 재변이 거듭 나타나 그치지 않으니 신들은 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인물의 부족이 지금보다 심한 때가 없었으니, 매우 우려되는 것이 어찌 이보다 더 할 것이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인물을 구하는 법조(法條)를 따로 만들어 찾아내어 채워쓰는 것이 매우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쓸 만한 인물은 지금도 어찌 없으랴마는, 가자(加資)가 맞지 않아서 승서(陞敍)하지 못하고, 혹 가자를 주더라도 물의가 있으니, 인물을 얻을 방법을 어떻게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하였는데, 김안로가 아뢰기를,

"가자를 주는 일은 제때가 아니면 안 되겠으나, 변통하는 편법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서너 자급을 뛴다면 뒤 폐단이 없지 않으므로 혹 말하는 자가 있겠으나, 대간·시종이라면 한두 자급을 뛰어 올려도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습니까. 조종 때에는 쓸 만한 사람이면 자급을 주어 승서한 때도 있었는데, 성종 때에 조위(曹偉) 및 신의 아비 김흔(金訢) 두 사람은 제 때가 아니데도 특별히 자급을 내리고 명하여 ‘지금은 승서하지 않을지라도 뒤에 크게 쓸 것이므로 특별히 한 자급을 내린다.’ 하셨습니다. 지금 혹 자급을 주더라도, 마땅하다면 방해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의복의 제도가 중국은 과연 매우 짧습니다. 전에 천사가 왔을 때 김근사가 도감(都監)036) 의 낭관이었는데, 천사가 김근사의 옷이 길어서 땅에 끌리는 것을 보고 김근사를 앞으로 불러 김근사의 옷자락을 잡고 손으로 그어 자르는 듯한 형상을 짓고 ‘옷이 길어 땅에 끌리면 한편으로는 젖어서 더럽기 쉽고 한편으로는 끌려서 해지기 쉬우니 무슨 이익이 있는가.’ 하였습니다. 김근사가 이튿날 잘라서 짧게 만들었더니, 천사가 또 김근사를 불러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며 ‘당신이 이렇게 총명하니 매우 좋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중국은 옷이 땅에 늘어지지 않고 앞뒤가 가지런한데,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아서 늘 염려됩니다. 전에 태평관에서 습의(習儀)할 때 술 시중하는 재상들의 옷이 길어 땅에 끌려서 서로 밟아 찢어지기도 하므로, 예조와 함께 의논하여 제도를 정하여 아뢰었습니다. 또 외방 사람은 법을 세우기 전에도 그 옷이 본디 길지 않으나, 오직 시중의 장사하는 무리는 교사(驕奢)를 서로 숭상하여 여느 사람보다 아름답게 입는데 그 긴 밑자락과 넓은 소매가 사대부보다 더하고, 이서(吏胥)와 녹사(錄事)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더욱이 옷이 길어 땅에 끌리는 것을 서로 숭상하니, 일체 금지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칫수를 조금 어긴 자를 어찌 낱낱이 재어서 금지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제도를 짧고 좁게 하여 땅에까지 끌리지 않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짐작해서 해야 하겠다."

하였다. 사간 정만종(鄭萬鍾)이 아뢰기를,

"황해도의 일곱 역참(驛站)은 그 관군(館軍)을 정병(正兵)으로 5년에 한 차례 번갈아 입역하고 입역한 뒤에는 또 평안도에 나아가 방수(防戍)시키므로 그 괴로움이 매우 많으나, 수군(水軍)은 황해도에 수사(水使)가 없고 관찰사가 수사를 겸하므로 늘 수군의 역은 번거롭지 않고 번차(番次)도 적습니다. 윤희인(尹希仁)이 전에 감사로 있을 때 대신과 함께 의논하여 수군을 관군에 채워 세웠으므로 그 역이 매우 고르게 되었었습니다. 요즈음에 수군이 거짓으로 꾸며서 상언(上言)하매 수군이 관군의 역을 서는 것을 덜고 정병으로만 관군을 세우게 하였으므로, 그 괴로움이 막심하여 혹 유리(流離)하게 되어 군액(軍額)이 날로 줄어듭니다. 신이 오가는 사이에 상세히 들어서 알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관군의 일은 그 폐단이 매우 많으니, 병조와 의논하여 처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평안도의 백성은 천사를 지대(支待)하기 때문에 강변(江邊)037) 에 있는 자는 그 생업을 멈추고 다들 일로(一路)에 나가 일하는데, 감사가 순행하면 원망을 외치는 자가 울부짖으며 따른다 하니, 그 괴로움을 알 만합니다. 예전부터 천사가 올 때에 사신이 평안도에 지체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때가 없었습니다. 원접사는 일로에 단속할 일이 많으므로 혹 먼저 갈 수 있겠으나, 다른 사신은 천사가 요동에 이른 것을 들은 뒤에 들여보내도 늦지 않습니다. 이제 듣건대 일로의 사람들이 ‘천사를 지공하기는 매우 쉬우나 우리 나라 사신을 지공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하니, 우리 나라 사신은 한두 사람을 지공하더라도 장만하기가 어려운데, 이토록 많고 오래 머무는 것이겠습니까. 민폐가 이에 이르렀으니, 올해의 조세(租稅)는 모름지기 특별히 감면하여 위에서 그 노고를 환히 아신다는 뜻을 백성이 다 알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의 일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당초에 탕참(湯站) 사람이 잘못 전하여 속았기 때문이다. 평안도의 조세를 감면하는 일과 관군의 일 등은 따로 조치해야 하겠다."

하였다. 심언광이 아뢰기를,

"당초에 사실이 아닌 말을 잘못 듣고 사신을 일찍 보낸 것은 국가가 잘못한 것입니다. 또 듣건대 예전에는 천사의 지공을 외방의 일로에서는 다 넉넉히 장만하는데, 태평관에서는 도리어 그에 미치지 못하므로, 두목 중에도 성내는 자가 있고 천사 중에도 혹 말하는 자가 있었다 합니다. 서울의 일이 도리어 외방에 미치지 못하면 일의 체모가 틀릴 듯하니, 다시 더 넉넉히 장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일렀다.

"그 말이 매우 마땅하다. 더 장만하여도 무방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어제 경연관이 아뢰기를 ‘동궁 별감(東宮別監) 이라고 칭하는 자가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하므로, 위에서 놀라 동궁에 물었더니 다 없는 일이라 하였다. 이는 반드시 동궁의 일이라 핑계하고 자신이 하는 것일 것이다. 어제 입시(入侍)한 경연관에게 이 뜻을 말하도록 하라."

  • [註 035] 송(宋)나라희령(熙寧)·원풍(元豊)사이에는 서로 붕당(朋黨)을 만들어 : 송 신종(宋神宗)은 처음에 연호를 희령(1068∼1077)이라 하였다가 뒤에 원풍(1078∼1085)으로 고쳤다. 신종 때에 왕안석(王安石)이 시폐(時弊)를 없애고 부국 강병(富國强兵)하는 방책으로 재정(財政)·병제(兵制) 등 여러 방면에 걸쳐 개혁하기 위하여 청묘법(靑苗法)·균수법(均輸法)·모역법(募役法) 등 여러 법을 새로 시행하였는데, 이를 구래(舊來)의 법의 대칭으로 신법(新法)이라 하고 신법을 지지하던 채확(蔡碓)·장돈(章惇)·여혜경(呂惠卿) 등의 무리를 신법당(新法黨)이라 하였으며, 이를 반대하던 범중엄(范仲淹)·한기(韓琦)·부필(富弼)·사마광(司馬光) 등의 무리를 구법당(舊法黨)이라 하였다. 신·구당이 처음부터 확립된 것은 아니나 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서로 용납하지 않아 뒤에는 함께 조정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 왕안석은 신종 9년에 죽었으나 신당이 계속하여 집권하다가 철종(哲宗)이 즉위하고 태후(太后)가 청정(聽政)하면서부터 신당은 모조리 내쳐지고 구당이 집권하였고, 철종이 친정(親政)하자 신당이 집권하고 휘종(徽宗)이 즉위하고 태후가 섭정(攝政)하자 구당이 집권하고, 또 친정하자 다시 신당이 집권하였으며, 구당은 신법에 대체하는 방안이 일치하지 않아 뒤에는 소식(蘇軾)을 중심으로 하는 촉당(蜀黨), 정이(程頣)의 낙당(洛黨), 유지(劉摯)의 삭당(朔黨)으로 분파되어 다투었다. 휘종 친정 이후 채경(蔡京)이 집정할 때에 구당을 탄압하여 그 세력을 아주 없애어 버렸으니, 왕안석 이후 구당의 집권은 태후가 정사를 보던 얼마 안 되는 기간에 불과하였다. 신법은 갑작스런 변혁에 대한 백성의 반발과 특히 유신(儒臣)들의 반대와 시행과정에서의 농간 등이 방해되는 요인이었고, 신법의 실효를 거두기 전에 신종이 자주 외정(外征)의 군사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요(遼)나라와 다투어 도리어 북방의 군을 잃었으며, 채경이 재상이 되어서는 신법을 더욱 강행하되 재리(財利)에만 힘쓸 뿐더러 휘종에게 사치를 권하고 토목일을 자주 일으켰으므로 백성의 고통이 극심하여 민심이 이반하고 나라가 쇠약해져 마침내 남도(南渡)하게 되는 큰 원인이 되었다.
  • [註 036] 도감(都監) : 상장(喪葬)·혼인 등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에 그 일을 맡아보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는 관사(官司). 여기서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영접 도감(迎接都監)이다.
  • [註 037] 강변(江邊) : 압록강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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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寅/御朝講。 領事金安老曰: "近者之事, 至爲駭愕。 良娣雖幸見揀, 固不敢當。 況至於營爲希望, 以圖必納乎? 如此等事, 非大奸慝, 固不敢爲也。 尹漑之所以爲此者, 必失意怏怏, 敢邀榮寵而然也。 孔子曰: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尹漑之心, 以此推移, 則何事不可爲乎? 方今朝廷堂堂, 聖明在上, 奸謀邪計, 似不得孽芽於其間, 而尹漑敢爲如此 此必因緣攀附之有其地而然也。 然公論一發, 聖斷如流, 上下孰不以爲快哉? 古云: ‘宮中府中, 俱爲一體。’ 此言君臣之間, 無毫髮之疑忌, 然後奸邪之流, 自不得接迹於其間也。 至於戚畹之類, 稍有知識者, 凡有恩寵之事, 皆謙退恐懼, 而其或有要求讒間者, 無非奸細之徒也。 如此事狀, 外間無可知之路, 而自上無不知之也。 若能洞照其情狀, 何者爲醇謹, 何者爲邪慝, 一一辨之, 則自不能遁其迹矣。 自古邪慝之人, 何代無之? 惟在上者, 能辨之何如耳。 如有奸邪之人, 夤緣攀附於內, 而陰欲售其奸術者, 斷自聖衷, 快正其罪, 使外人明知聖鑑所照如此, 則臣民知所畏服, 而奸欺自息矣。 大抵君臣之間, 讒間易入。 常時士大夫, 朋儕之間, 自許相知, 肝膽相照, 或有離間而致疑焉, 則疑端已成, 而觸事疑忌, 終以至敗者多矣。 君臣之間, 凡邪正賢否, 聖鑑洞照, 非邪說所能間也。 然君臣相與之間, 孰與士大夫相交之密乎? 萬一有間之者, 則前日之委任臣使者, 反爲可疑, 而至於蹈危陷禍者, 比比有之, 甚可畏也。 且宮中之人, 豈知廷臣之賢否乎? 其譽之者, 必其所知者也; 其毁之者, 必其不悅者也。 其毁、其譽, 皆非公也。 古之大臣, 論薦士之道曰: ‘宮人不知名者爲善。’ 此誠格言也。 其傍窺潛伺(寅)〔夤〕 緣(擊)〔攀〕 附, 以造過情之毁譽, 因竊威福之柄。 其初至微, 終至難救。 今則豈復有如此者乎? 然如尹漑者, 時或有之, 須快斷以明示於外, 使邪說不得接迹於內間, 則君臣可以永保, 而國家可以長治矣。" 上曰: "此言甚當。 近者尹漑之事, 至爲駭愕, 然公論一發, 卽治罪不貸。 奸細之人, 必知畏戢, 然不可謂如是, 而無所警懼也。" 安老曰: "上敎至當。 攀附于宮禁者, 自上必知之矣, 苟知之, 必痛快無留難, 使外廷明知之也。 諸葛亮曰: ‘宮中府中, 俱爲一體。’ 人君若以宮中之事爲私事, 以外廷之事爲外務, 分其內外, 不相管攝, 則終至於上下壅隔, 情不相通矣。 當使宮中府中, 坦然爲一體, 而均齊方正可也。" 同知事沈彦光曰: "尹漑交通宮妾, 謀納其女於東宮, 其計幾售, 朝議以爲不可, 公論已定。 乃敢大言曰: ‘已選之女, 今雖未納, 將十年爲期, 必納後已。’ 此甚爲駭愕也。 大抵外人, 與宮禁交通, 非治世之事, 乃衰世之事也。 外言不入于內, 內言不出于外, 內外峻絶可也。 尹漑必欲因內人納其女, 其邪譎可知也。 古云宦官宮妾不知名者, 非所謂不知其名字也。 不相締交之謂也。 奸細之人, 欲遂其奸計, 必使內人, 知其名也, 此亦不可不察也。" 上曰: "宮中之人, 予不知有毁譽士大夫者也, 但尹漑之事, 出於東宮, 甚可駭也。 然其家婢僕, 誇張聲勢, 播之於外, 是自致其禍也。" 彦光曰: "分辨邪正, 不難也。 宦官宮妾不知名者, 正也; 宦官宮妾所知名者, 必邪也。 今豈有如此之人乎? 然如尹漑者, 間或有之, 不可不察也。" 安老曰: "外廷群臣, 不干於戚里之人。 使內人知其名者, 此必攀附內人, 欲行邪術者也。 若是戚里之人, 則內人容或有知之者, 如此之人, 有何傷乎?" 彦光曰: "雖戚里之人, 問安而已, 可也。 何必交通出入於宮禁乎?" 上曰: "尹漑, 果邪人也。 邪則不能掩其迹。 漑亦邪故自敗矣。" 安老曰: "戚里之人, 能謙抑謹飭, 無爲無言者, 必正人也。 如或贊揚之, 讒毁之, 使是非無定者, 非邪而何耶? 如此之人, 辨之無難, 而自不能遁其情矣。" 彦光曰: "宋朝熙寧、元豊之間, 互爲朋黨, 謀欲相傾, 百端窺伺, 終致士氣大挫, 而國事日非。 如此之事, 今亦豈可謂必無乎? 臣等日夜疑慮, 無有晷刻之安。 但聖明在上, 是非不能相奪, 故是爲可恃爾。 然近亦有地震之變, 廷臣人人, 自懼各自警也。" 上曰: "災異之作, 或因往事, 或因將來, 不可指一言之也。 幸邪慝之事, 發於災變之間, 此可畏也。 大抵近來朝廷粗安, 粗安之時, 尤可畏也。" 安老曰: "外方地震, 時或有之, 今則京師亦有此變, 而太白晝見於巳地。 雖非經天, 大變疊至, 可謂變之大也。 近來朝廷粗安, 若過數三年, 則可以大定矣, 不意有尹漑之事。 大變疊見而不止, 臣等不知又有何事也。 且人物之乏, 莫甚於此時。 深憂重慮, 豈過於此乎? 須別立求人之條, 搜抄補用至當。" 上曰: "人物可用者, 則今豈無人乎? 但或加資不準, 而不得陞敍, 雖或給資陞用, 又有物論。 得人之術, 不知何如而可乎?" 安老曰: "給資之事, 非時則不可也。 然亦不可無變通之權, 若超三四級而陞敍, 則不無後弊, 故或有言之者矣。 至若臺諫、侍從, 則雖超陞一二資, 此亦不得已之事, 有何妨乎? 在祖宗朝, 若可用之人, 則亦有給資而陞敍之時。 成廟朝, 如曺偉及臣父訢二人, 非時特賜資級。 仍命曰: ‘今雖不陞敍, 後將大用, 故特賜一資。’ 云。 今雖或給資, 若當其可, 則無有妨也。" 安老曰: "衣服之制, 中原則果甚短便。 前者天使出來時, 金謹思爲都監郞官。 天使見謹思衣長曳地, 招謹思至前, 執謹思衣裾, 以手畫之, 若爲截之之狀曰: ‘衣長曳地, 一則沾濕易汚, 一則垂曳易破。 有何益乎?’ 謹思於翌日, 截而短之。 天使又招謹思至前, 以手撫其背曰: ‘汝甚聰悟如此, 甚善。’ 大抵中朝則衣不垂地, 而前後整齊。 我國則不然, 每以爲慮。 前於大平館習儀時, 行酒宰相等, 衣長曳地, 或相踏裂, 故與禮曹共議, 定制以啓耳。 且外方之人, 雖在立法之前, 其衣本不長也。 惟市中商賈之流, 驕奢相尙, 服美于人, 而其長裾闊袖, 甚於士大夫, 至於吏胥、錄事之輩, 尤以衣長曳地相尙, 當一切禁之也。 然其分寸之差違者, 豈可一一尺量而禁之乎? 但令短夾其制, 不至曳地而已也。" 上曰: "當斟酌爲之也。" 司諫鄭萬鍾曰: "黃海道七站, 其館軍, 以正兵五年一次輪番立役, 而立役之後, 又赴防於平安道, 其苦甚多。 而水軍, 則以黃海道無水使, 而觀察使兼水使, 故常時水軍之役不煩, 番次亦歇。 尹希仁前爲監司時, 與大臣同議, 以水軍充立館軍, 其役甚均。 近者以水軍誣飾上言, 還令除水軍館軍之役, 以正兵之輩, 獨立館軍, 其苦莫甚, 或致流離, 軍額日縮。 臣於往還之間, 備詳聞知, 故敢啓。" 安老曰: "館軍之事, 其弊固多, 當與兵曹, 議而處之也。 今平安道之民, 以支待天使之故, 其在江邊者, 掇其生業, 皆出役於一路。 監司若巡行, 則籲怨者, 號哭而隨之云, 其苦可知也。 自古天使之來, 使命之留滯於平安道者, 未有如此時也。 遠接使, 則一路多有撿擧之事, 故或可以先歸, 他使聞天使到遼東後入送, 亦未晩也。 今聞一路之人云: ‘天使支供甚易, 而我國使臣支供之事, 甚難。’ 我國使臣, 雖一二人支供, 尙且難備, 其多至於此而久留乎? 民弊至此, 今年租稅, 須特蠲減, 使民皆知自上洞知其勞苦之意, 則庶乎可矣。" 上曰: "今時之事, 與古不同, 當初湯站人, 誤傳而見誑耳。 平安道減租及館軍等, 當別爲處之耳。" 彦光曰: "當初誤聞非實之言, 早送使命, 國家誤爲之耳。 且聞在昔, 天使支供, 外方一路, 皆豐備, 大平館則反不及焉, 頭目亦有發怒者, 天使亦或有言之者云。 國都之事, 反不及於外方, 則事體似異。 更加豐備何如?" 上曰: "此言至當, 加備不妨。" 傳于政院曰: "昨日經筵官啓曰: ‘有東宮別監稱號者, 大作佛事云。’ 自上驚駭, 問之東宮, 則皆無矣。 此必托稱東宮之事, 而自爲之也。 昨日入侍經筵官處, 此意言之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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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83권, 중종 32년 1월 22일 壬寅 1/3 기사 /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김안로·심언광 등이 윤개의 처벌, 군역의 폐단, 천사의 지대에 관한 일을 아뢰다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영사 김안로가 아뢰기를,

"요즈음의 일은 지극히 놀랍습니다. 양제(良娣)로 어쩌다가 간택되었더라도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바라는 대로 일을 도모하여 반드시 들이려고까지 한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일들은 매우 간사한 자가 아니면 감히 할 수 없습니다. 윤개(尹漑)가 이 일을 한 까닭은 뜻을 잃고 불평하여 감히 영총(榮寵)을 얻으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이 일을 차마 할 수 있으면 무슨 일인들 차마 할 수 없겠느냐.’ 하였거니와, 윤개의 마음을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무슨 일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바야흐로 조정이 당당하고 성명이 위에 계시므로 간사한 계책이 그 사이에서 싹트지 못할 듯한데, 윤개는 이러한 일을 하였으니, 이는 반드시 연고를 따라 붙을 만한 여지가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론이 한 번 일어나자 성단(聖斷)이 물이 흐르는 것과 같으셨으니, 위 아래가 누구인들 쾌하게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옛말에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함께 일체(一體)가 된다.’ 하였는데, 이것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 털끝만큼도 의심하여 꺼리는 것이 없어야 간사한 무리가 절로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임금의 외척으로 말하면, 조금 지식이 있는 자는 무릇 은총에 관한 일이 있을 때에 다들 겸손하고 두려워하나, 그중에는 혹 요구하고 헐뜯어 이간하는 자가 있는데, 모두가 간사한 무리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밖에서는 알 길이 없으나, 위에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을 것이니, 그 정상을 환히 비추어 보아 어느 사람이 순근(醇謹)하고 어느 사람이 사악한지를 낱낱이 가리실 수 있다면, 절로 그 자취를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사악한 사람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 오직 위에 있는 이가 잘 가리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연고를 따라 붙어 몰래 제 간사한 술책을 수행하려는 간사한 사람이 있더라도 성충(聖衷)에서 결단하여 그 죄를 쾌히 바루어 바깥 사람으로 하여금 성감(聖鑑)이 비추어 아시는 바가 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면, 신민(臣民)이 외복(畏服)할 바를 알아서 간사하고 속이는 것이 절로 그칠 것입니다.

대저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헐뜯어 이간하는 일이 쉽게 끼어듭니다. 여느 때 사대부의 벗들 사이에도 서로 안다고 스스로 허여하고 속을 서로 비추어 알다가도 혹 이간이 있어서 의심하게 되면 의심하는 꼬투리가 이루어져서 일에 따라 의심하고 꺼려서 마침내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 있어서 무릇 정사(正邪)·현부(賢否)를 성감이 환히 비추어 아시므로 간사한 말이 이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나, 임금과 신하가 서로 허여하는 사이가 사대부끼리 서로 사귀는 친밀함만 하겠습니까. 만일 이간하는 자가 있으면, 전일에 위임받아 신하로 일하던 자가 도리어 의심을 받아 위험을 당하고 화(禍)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으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또 궁중 사람이 어찌 조정 신하의 현부를 알겠습니까. 칭찬하는 자는 반드시 서로 아는 자일 것이고, 헐뜯는 자는 반드시 서로 좋아하지 않는 자일 것이니, 헐뜯거나 칭찬하는 것이 다 공변된 것이 아닙니다. 옛 대신이 선비를 천거하는 도리를 논하여 ‘궁인(宮人)이 이름을 모르는 자가 착한 자이다.’ 하였는데, 이것이 참으로 격언입니다. 그 곁에서 참람하게 엿보며 연고를 따라 붙어서 사실보다 지나친 헐뜯음과 칭찬을 만들어 이로 말미암아 위복의 권세를 훔치는 것은 처음에는 매우 작은 일이더라도 마침내는 바로잡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어찌 다시 이러한 자가 있겠습니까마는, 윤개와 같은 자가 때로 혹 있으니 반드시 쾌히 결단하여 밖에 분명히 보여 간사한 말이 안에 자취를 잇지 못하게 하시면, 임금과 신하가 길이 보전될 수 있고 국가가 길이 다스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매우 마땅하다. 요즈음에 있었던 윤개의 일은 지극히 놀라우나, 공론이 한 번 일어나자 곧 용서없이 죄를 다스렸으므로 간사한 사람들이 두려워 삼갈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하다 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할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였는데, 김안로가 아뢰기를,

"위에서 분부하신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궁금에 붙는 자를 위에서 아실 것이니, 아신다면 반드시 통쾌히 결단하여 망설이지 말아서 외정(外廷)이 분명히 알게 하여야 합니다. 제갈양(諸葛亮)이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함께 일체(一體)가 된다.’ 하였거니와, 임금이 궁중의 일을 사사로운 일로 여기고 외정의 일을 바깥 일로 여겨 안팎을 나누고 함께 다스리지 않으면, 마침내 위 아래가 막혀서 뜻이 서로 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궁중과 부중이 평탄하게 일체가 되어 가지런하고 발라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동지사 심언광(沈彦光)이 아뢰기를,

"윤개는 궁첩(宮妾)과 내통하여 제 딸을 동궁에 들이려고 꾀하여 그 계책이 거의 이루어졌으나, 조정의 의논이 불가하다 하여 공론이 이미 정하여졌는데, 감히 큰소리로 ‘이미 뽑힌 딸이니 지금은 들이지 못하더라도 장차 10년을 기다려서라도 반드시 들이고야 말겠다.’ 하였으니, 이는 매우 놀랍습니다. 대체로 바깥 사람이 궁금과 내통하는 것은 다스려진 세상의 일이 아니고 쇠퇴한 세상의 일이며, 밖의 말은 안에 들어가지 않고 안의 말은 밖에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윤기는 필시 안 사람으로 말미암아 제 딸을 들이려 하였으니, 그 간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말에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이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 이름자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맺어 사귀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간사한 사람이 그 간사한 계책을 이루려면 반드시 궁안 사람으로 하여금 제 이름을 알게 하는 것이니, 이것도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궁중 사람 중에 사대부를 헐뜯거나 칭찬하는 자가 있는 것을 나는 모른다마는, 윤개의 일이 동궁에서 나왔다니 매우 놀랍다. 그러나 그 집의 비복(婢僕)이 성세(聲勢)를 과장하여 밖에서 말을 퍼뜨렸으니, 이는 스스로 그 화를 부른 것이다."

하였다. 심언광이 아뢰기를,

"간사한 것과 바른 것을 분변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환관과 궁첩이 이름을 모르는 자는 바르고, 환관과 궁첩이 이름을 아는 자는 반드시 간사합니다. 지금 어찌 이러한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윤개와 같은 자가 이따금 있으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되겠습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외정(外廷)의 뭇 신하 가운데 임금의 외척에 관계되지 않는 사람인데 내부 사람에게 그 이름이 알려진 자는 반드시 내부 사람에게 붙어서 간사한 술책을 부리려는 자일 것입니다. 외척에 관계된 사람이라면 내부 사람 중에 혹 아는 자가 있더라도 이러한 사람은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하고, 심언광이 아뢰기를,

"외척에 관계된 사람이라도 문안만을 하고 말아야 옳습니다. 어찌하여 반드시 내통하여 궁금에 드나들어야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윤개는 과연 간사한 사람이다. 간사하면 그 자취를 숨길 수 없으니, 윤개도 간사하므로 스스로 패하였다."

하였는데, 김안로가 아뢰기를,

"외척에 관계된 사람으로서 능히 겸손하고 삼가서 꾸밈도 없고 말도 없는 자는 반드시 바른 사람일 것이며, 혹 찬양하기도 하고 헐뜯기도 하여 시비가 정하여지지 않게 하는 자라면 간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사람은 분변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어서 스스로 그 정상을 숨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심언광이 아뢰기를,

"송(宋)나라 희령(熙寧)·원풍(元豊)사이에는 서로 붕당(朋黨)을 만들어035) 서로 전복 시키려고 꾀하여 온갖 방법으로 틈을 엿보았으므로 마침내 사기가 크게 꺾여서 나라의 일이 날로 잘못되어 갔는데, 이러한 일이 이제도 어찌 반드시 없으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밤낮으로 의심하고 염려하여 잠시도 편안할 때가 없습니다. 다만 성명이 위에 계시어 시비를 서로 요탈(搖奪)할 수 없으므로 이 점이 믿을 수 있는 것이나, 요즈음에도 지진의 변이 있으니, 조정의 신하가 누구나 스스로 두렵게 여겨 각자가 경계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혹 지난 일에 말미암기도 하고 앞으로 올 일에 말미암기도 하므로 하나를 가리켜 말할 수 없으나, 어쩌다가 간사한 일이 재변이 있을 즈음에 일어나니, 이것이 두려운 것이다. 대체로 근래 조정이 대강 편안하나 편안할 때가 더욱 두려운 것이다."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외방(外方)의 지진은 때때로 있으나, 이번에는 서울에도 이변이 있고 태백이 사지(巳地)에 주현(晝見)하였습니다. 경천(經天)이 아니기는 하나 큰 재변이 거듭 이르렀으니, 재변 중의 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래 조정이 조금 편안하여, 두세 해가 지나면 크게 안정할 수 있을 것인데, 뜻밖에 윤개 의 일이 있고 큰 재변이 거듭 나타나 그치지 않으니 신들은 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인물의 부족이 지금보다 심한 때가 없었으니, 매우 우려되는 것이 어찌 이보다 더 할 것이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인물을 구하는 법조(法條)를 따로 만들어 찾아내어 채워쓰는 것이 매우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쓸 만한 인물은 지금도 어찌 없으랴마는, 가자(加資)가 맞지 않아서 승서(陞敍)하지 못하고, 혹 가자를 주더라도 물의가 있으니, 인물을 얻을 방법을 어떻게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하였는데, 김안로가 아뢰기를,

"가자를 주는 일은 제때가 아니면 안 되겠으나, 변통하는 편법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서너 자급을 뛴다면 뒤 폐단이 없지 않으므로 혹 말하는 자가 있겠으나, 대간·시종이라면 한두 자급을 뛰어 올려도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습니까. 조종 때에는 쓸 만한 사람이면 자급을 주어 승서한 때도 있었는데, 성종 때에 조위(曹偉) 및 신의 아비 김흔(金訢) 두 사람은 제 때가 아니데도 특별히 자급을 내리고 명하여 ‘지금은 승서하지 않을지라도 뒤에 크게 쓸 것이므로 특별히 한 자급을 내린다.’ 하셨습니다. 지금 혹 자급을 주더라도, 마땅하다면 방해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의복의 제도가 중국은 과연 매우 짧습니다. 전에 천사가 왔을 때 김근사가 도감(都監)036) 의 낭관이었는데, 천사가 김근사의 옷이 길어서 땅에 끌리는 것을 보고 김근사를 앞으로 불러 김근사의 옷자락을 잡고 손으로 그어 자르는 듯한 형상을 짓고 ‘옷이 길어 땅에 끌리면 한편으로는 젖어서 더럽기 쉽고 한편으로는 끌려서 해지기 쉬우니 무슨 이익이 있는가.’ 하였습니다. 김근사가 이튿날 잘라서 짧게 만들었더니, 천사가 또 김근사를 불러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며 ‘당신이 이렇게 총명하니 매우 좋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중국은 옷이 땅에 늘어지지 않고 앞뒤가 가지런한데,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아서 늘 염려됩니다. 전에 태평관에서 습의(習儀)할 때 술 시중하는 재상들의 옷이 길어 땅에 끌려서 서로 밟아 찢어지기도 하므로, 예조와 함께 의논하여 제도를 정하여 아뢰었습니다. 또 외방 사람은 법을 세우기 전에도 그 옷이 본디 길지 않으나, 오직 시중의 장사하는 무리는 교사(驕奢)를 서로 숭상하여 여느 사람보다 아름답게 입는데 그 긴 밑자락과 넓은 소매가 사대부보다 더하고, 이서(吏胥)와 녹사(錄事)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더욱이 옷이 길어 땅에 끌리는 것을 서로 숭상하니, 일체 금지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칫수를 조금 어긴 자를 어찌 낱낱이 재어서 금지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제도를 짧고 좁게 하여 땅에까지 끌리지 않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짐작해서 해야 하겠다."

하였다. 사간 정만종(鄭萬鍾)이 아뢰기를,

"황해도의 일곱 역참(驛站)은 그 관군(館軍)을 정병(正兵)으로 5년에 한 차례 번갈아 입역하고 입역한 뒤에는 또 평안도에 나아가 방수(防戍)시키므로 그 괴로움이 매우 많으나, 수군(水軍)은 황해도에 수사(水使)가 없고 관찰사가 수사를 겸하므로 늘 수군의 역은 번거롭지 않고 번차(番次)도 적습니다. 윤희인(尹希仁)이 전에 감사로 있을 때 대신과 함께 의논하여 수군을 관군에 채워 세웠으므로 그 역이 매우 고르게 되었었습니다. 요즈음에 수군이 거짓으로 꾸며서 상언(上言)하매 수군이 관군의 역을 서는 것을 덜고 정병으로만 관군을 세우게 하였으므로, 그 괴로움이 막심하여 혹 유리(流離)하게 되어 군액(軍額)이 날로 줄어듭니다. 신이 오가는 사이에 상세히 들어서 알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관군의 일은 그 폐단이 매우 많으니, 병조와 의논하여 처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평안도의 백성은 천사를 지대(支待)하기 때문에 강변(江邊)037) 에 있는 자는 그 생업을 멈추고 다들 일로(一路)에 나가 일하는데, 감사가 순행하면 원망을 외치는 자가 울부짖으며 따른다 하니, 그 괴로움을 알 만합니다. 예전부터 천사가 올 때에 사신이 평안도에 지체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때가 없었습니다. 원접사는 일로에 단속할 일이 많으므로 혹 먼저 갈 수 있겠으나, 다른 사신은 천사가 요동에 이른 것을 들은 뒤에 들여보내도 늦지 않습니다. 이제 듣건대 일로의 사람들이 ‘천사를 지공하기는 매우 쉬우나 우리 나라 사신을 지공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하니, 우리 나라 사신은 한두 사람을 지공하더라도 장만하기가 어려운데, 이토록 많고 오래 머무는 것이겠습니까. 민폐가 이에 이르렀으니, 올해의 조세(租稅)는 모름지기 특별히 감면하여 위에서 그 노고를 환히 아신다는 뜻을 백성이 다 알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의 일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당초에 탕참(湯站) 사람이 잘못 전하여 속았기 때문이다. 평안도의 조세를 감면하는 일과 관군의 일 등은 따로 조치해야 하겠다."

하였다. 심언광이 아뢰기를,

"당초에 사실이 아닌 말을 잘못 듣고 사신을 일찍 보낸 것은 국가가 잘못한 것입니다. 또 듣건대 예전에는 천사의 지공을 외방의 일로에서는 다 넉넉히 장만하는데, 태평관에서는 도리어 그에 미치지 못하므로, 두목 중에도 성내는 자가 있고 천사 중에도 혹 말하는 자가 있었다 합니다. 서울의 일이 도리어 외방에 미치지 못하면 일의 체모가 틀릴 듯하니, 다시 더 넉넉히 장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일렀다.

"그 말이 매우 마땅하다. 더 장만하여도 무방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어제 경연관이 아뢰기를 ‘동궁 별감(東宮別監) 이라고 칭하는 자가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하므로, 위에서 놀라 동궁에 물었더니 다 없는 일이라 하였다. 이는 반드시 동궁의 일이라 핑계하고 자신이 하는 것일 것이다. 어제 입시(入侍)한 경연관에게 이 뜻을 말하도록 하라."

  • [註 035] 송(宋)나라희령(熙寧)·원풍(元豊)사이에는 서로 붕당(朋黨)을 만들어 : 송 신종(宋神宗)은 처음에 연호를 희령(1068∼1077)이라 하였다가 뒤에 원풍(1078∼1085)으로 고쳤다. 신종 때에 왕안석(王安石)이 시폐(時弊)를 없애고 부국 강병(富國强兵)하는 방책으로 재정(財政)·병제(兵制) 등 여러 방면에 걸쳐 개혁하기 위하여 청묘법(靑苗法)·균수법(均輸法)·모역법(募役法) 등 여러 법을 새로 시행하였는데, 이를 구래(舊來)의 법의 대칭으로 신법(新法)이라 하고 신법을 지지하던 채확(蔡碓)·장돈(章惇)·여혜경(呂惠卿) 등의 무리를 신법당(新法黨)이라 하였으며, 이를 반대하던 범중엄(范仲淹)·한기(韓琦)·부필(富弼)·사마광(司馬光) 등의 무리를 구법당(舊法黨)이라 하였다. 신·구당이 처음부터 확립된 것은 아니나 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서로 용납하지 않아 뒤에는 함께 조정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 왕안석은 신종 9년에 죽었으나 신당이 계속하여 집권하다가 철종(哲宗)이 즉위하고 태후(太后)가 청정(聽政)하면서부터 신당은 모조리 내쳐지고 구당이 집권하였고, 철종이 친정(親政)하자 신당이 집권하고 휘종(徽宗)이 즉위하고 태후가 섭정(攝政)하자 구당이 집권하고, 또 친정하자 다시 신당이 집권하였으며, 구당은 신법에 대체하는 방안이 일치하지 않아 뒤에는 소식(蘇軾)을 중심으로 하는 촉당(蜀黨), 정이(程頣)의 낙당(洛黨), 유지(劉摯)의 삭당(朔黨)으로 분파되어 다투었다. 휘종 친정 이후 채경(蔡京)이 집정할 때에 구당을 탄압하여 그 세력을 아주 없애어 버렸으니, 왕안석 이후 구당의 집권은 태후가 정사를 보던 얼마 안 되는 기간에 불과하였다. 신법은 갑작스런 변혁에 대한 백성의 반발과 특히 유신(儒臣)들의 반대와 시행과정에서의 농간 등이 방해되는 요인이었고, 신법의 실효를 거두기 전에 신종이 자주 외정(外征)의 군사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요(遼)나라와 다투어 도리어 북방의 군을 잃었으며, 채경이 재상이 되어서는 신법을 더욱 강행하되 재리(財利)에만 힘쓸 뿐더러 휘종에게 사치를 권하고 토목일을 자주 일으켰으므로 백성의 고통이 극심하여 민심이 이반하고 나라가 쇠약해져 마침내 남도(南渡)하게 되는 큰 원인이 되었다.
  • [註 036] 도감(都監) : 상장(喪葬)·혼인 등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에 그 일을 맡아보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는 관사(官司). 여기서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영접 도감(迎接都監)이다.
  • [註 037] 강변(江邊) : 압록강 근처.

원문

○壬寅/御朝講。 領事金安老曰: "近者之事, 至爲駭愕。 良娣雖幸見揀, 固不敢當。 況至於營爲希望, 以圖必納乎? 如此等事, 非大奸慝, 固不敢爲也。 尹漑之所以爲此者, 必失意怏怏, 敢邀榮寵而然也。 孔子曰: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尹漑之心, 以此推移, 則何事不可爲乎? 方今朝廷堂堂, 聖明在上, 奸謀邪計, 似不得孽芽於其間, 而尹漑敢爲如此 此必因緣攀附之有其地而然也。 然公論一發, 聖斷如流, 上下孰不以爲快哉? 古云: ‘宮中府中, 俱爲一體。’ 此言君臣之間, 無毫髮之疑忌, 然後奸邪之流, 自不得接迹於其間也。 至於戚畹之類, 稍有知識者, 凡有恩寵之事, 皆謙退恐懼, 而其或有要求讒間者, 無非奸細之徒也。 如此事狀, 外間無可知之路, 而自上無不知之也。 若能洞照其情狀, 何者爲醇謹, 何者爲邪慝, 一一辨之, 則自不能遁其迹矣。 自古邪慝之人, 何代無之? 惟在上者, 能辨之何如耳。 如有奸邪之人, 夤緣攀附於內, 而陰欲售其奸術者, 斷自聖衷, 快正其罪, 使外人明知聖鑑所照如此, 則臣民知所畏服, 而奸欺自息矣。 大抵君臣之間, 讒間易入。 常時士大夫, 朋儕之間, 自許相知, 肝膽相照, 或有離間而致疑焉, 則疑端已成, 而觸事疑忌, 終以至敗者多矣。 君臣之間, 凡邪正賢否, 聖鑑洞照, 非邪說所能間也。 然君臣相與之間, 孰與士大夫相交之密乎? 萬一有間之者, 則前日之委任臣使者, 反爲可疑, 而至於蹈危陷禍者, 比比有之, 甚可畏也。 且宮中之人, 豈知廷臣之賢否乎? 其譽之者, 必其所知者也; 其毁之者, 必其不悅者也。 其毁、其譽, 皆非公也。 古之大臣, 論薦士之道曰: ‘宮人不知名者爲善。’ 此誠格言也。 其傍窺潛伺(寅)〔夤〕 緣(擊)〔攀〕 附, 以造過情之毁譽, 因竊威福之柄。 其初至微, 終至難救。 今則豈復有如此者乎? 然如尹漑者, 時或有之, 須快斷以明示於外, 使邪說不得接迹於內間, 則君臣可以永保, 而國家可以長治矣。" 上曰: "此言甚當。 近者尹漑之事, 至爲駭愕, 然公論一發, 卽治罪不貸。 奸細之人, 必知畏戢, 然不可謂如是, 而無所警懼也。" 安老曰: "上敎至當。 攀附于宮禁者, 自上必知之矣, 苟知之, 必痛快無留難, 使外廷明知之也。 諸葛亮曰: ‘宮中府中, 俱爲一體。’ 人君若以宮中之事爲私事, 以外廷之事爲外務, 分其內外, 不相管攝, 則終至於上下壅隔, 情不相通矣。 當使宮中府中, 坦然爲一體, 而均齊方正可也。" 同知事沈彦光曰: "尹漑交通宮妾, 謀納其女於東宮, 其計幾售, 朝議以爲不可, 公論已定。 乃敢大言曰: ‘已選之女, 今雖未納, 將十年爲期, 必納後已。’ 此甚爲駭愕也。 大抵外人, 與宮禁交通, 非治世之事, 乃衰世之事也。 外言不入于內, 內言不出于外, 內外峻絶可也。 尹漑必欲因內人納其女, 其邪譎可知也。 古云宦官宮妾不知名者, 非所謂不知其名字也。 不相締交之謂也。 奸細之人, 欲遂其奸計, 必使內人, 知其名也, 此亦不可不察也。" 上曰: "宮中之人, 予不知有毁譽士大夫者也, 但尹漑之事, 出於東宮, 甚可駭也。 然其家婢僕, 誇張聲勢, 播之於外, 是自致其禍也。" 彦光曰: "分辨邪正, 不難也。 宦官宮妾不知名者, 正也; 宦官宮妾所知名者, 必邪也。 今豈有如此之人乎? 然如尹漑者, 間或有之, 不可不察也。" 安老曰: "外廷群臣, 不干於戚里之人。 使內人知其名者, 此必攀附內人, 欲行邪術者也。 若是戚里之人, 則內人容或有知之者, 如此之人, 有何傷乎?" 彦光曰: "雖戚里之人, 問安而已, 可也。 何必交通出入於宮禁乎?" 上曰: "尹漑, 果邪人也。 邪則不能掩其迹。 漑亦邪故自敗矣。" 安老曰: "戚里之人, 能謙抑謹飭, 無爲無言者, 必正人也。 如或贊揚之, 讒毁之, 使是非無定者, 非邪而何耶? 如此之人, 辨之無難, 而自不能遁其情矣。" 彦光曰: "宋朝熙寧、元豊之間, 互爲朋黨, 謀欲相傾, 百端窺伺, 終致士氣大挫, 而國事日非。 如此之事, 今亦豈可謂必無乎? 臣等日夜疑慮, 無有晷刻之安。 但聖明在上, 是非不能相奪, 故是爲可恃爾。 然近亦有地震之變, 廷臣人人, 自懼各自警也。" 上曰: "災異之作, 或因往事, 或因將來, 不可指一言之也。 幸邪慝之事, 發於災變之間, 此可畏也。 大抵近來朝廷粗安, 粗安之時, 尤可畏也。" 安老曰: "外方地震, 時或有之, 今則京師亦有此變, 而太白晝見於巳地。 雖非經天, 大變疊至, 可謂變之大也。 近來朝廷粗安, 若過數三年, 則可以大定矣, 不意有尹漑之事。 大變疊見而不止, 臣等不知又有何事也。 且人物之乏, 莫甚於此時。 深憂重慮, 豈過於此乎? 須別立求人之條, 搜抄補用至當。" 上曰: "人物可用者, 則今豈無人乎? 但或加資不準, 而不得陞敍, 雖或給資陞用, 又有物論。 得人之術, 不知何如而可乎?" 安老曰: "給資之事, 非時則不可也。 然亦不可無變通之權, 若超三四級而陞敍, 則不無後弊, 故或有言之者矣。 至若臺諫、侍從, 則雖超陞一二資, 此亦不得已之事, 有何妨乎? 在祖宗朝, 若可用之人, 則亦有給資而陞敍之時。 成廟朝, 如曺偉及臣父訢二人, 非時特賜資級。 仍命曰: ‘今雖不陞敍, 後將大用, 故特賜一資。’ 云。 今雖或給資, 若當其可, 則無有妨也。" 安老曰: "衣服之制, 中原則果甚短便。 前者天使出來時, 金謹思爲都監郞官。 天使見謹思衣長曳地, 招謹思至前, 執謹思衣裾, 以手畫之, 若爲截之之狀曰: ‘衣長曳地, 一則沾濕易汚, 一則垂曳易破。 有何益乎?’ 謹思於翌日, 截而短之。 天使又招謹思至前, 以手撫其背曰: ‘汝甚聰悟如此, 甚善。’ 大抵中朝則衣不垂地, 而前後整齊。 我國則不然, 每以爲慮。 前於大平館習儀時, 行酒宰相等, 衣長曳地, 或相踏裂, 故與禮曹共議, 定制以啓耳。 且外方之人, 雖在立法之前, 其衣本不長也。 惟市中商賈之流, 驕奢相尙, 服美于人, 而其長裾闊袖, 甚於士大夫, 至於吏胥、錄事之輩, 尤以衣長曳地相尙, 當一切禁之也。 然其分寸之差違者, 豈可一一尺量而禁之乎? 但令短夾其制, 不至曳地而已也。" 上曰: "當斟酌爲之也。" 司諫鄭萬鍾曰: "黃海道七站, 其館軍, 以正兵五年一次輪番立役, 而立役之後, 又赴防於平安道, 其苦甚多。 而水軍, 則以黃海道無水使, 而觀察使兼水使, 故常時水軍之役不煩, 番次亦歇。 尹希仁前爲監司時, 與大臣同議, 以水軍充立館軍, 其役甚均。 近者以水軍誣飾上言, 還令除水軍館軍之役, 以正兵之輩, 獨立館軍, 其苦莫甚, 或致流離, 軍額日縮。 臣於往還之間, 備詳聞知, 故敢啓。" 安老曰: "館軍之事, 其弊固多, 當與兵曹, 議而處之也。 今平安道之民, 以支待天使之故, 其在江邊者, 掇其生業, 皆出役於一路。 監司若巡行, 則籲怨者, 號哭而隨之云, 其苦可知也。 自古天使之來, 使命之留滯於平安道者, 未有如此時也。 遠接使, 則一路多有撿擧之事, 故或可以先歸, 他使聞天使到遼東後入送, 亦未晩也。 今聞一路之人云: ‘天使支供甚易, 而我國使臣支供之事, 甚難。’ 我國使臣, 雖一二人支供, 尙且難備, 其多至於此而久留乎? 民弊至此, 今年租稅, 須特蠲減, 使民皆知自上洞知其勞苦之意, 則庶乎可矣。" 上曰: "今時之事, 與古不同, 當初湯站人, 誤傳而見誑耳。 平安道減租及館軍等, 當別爲處之耳。" 彦光曰: "當初誤聞非實之言, 早送使命, 國家誤爲之耳。 且聞在昔, 天使支供, 外方一路, 皆豐備, 大平館則反不及焉, 頭目亦有發怒者, 天使亦或有言之者云。 國都之事, 反不及於外方, 則事體似異。 更加豐備何如?" 上曰: "此言至當, 加備不妨。" 傳于政院曰: "昨日經筵官啓曰: ‘有東宮別監稱號者, 大作佛事云。’ 自上驚駭, 問之東宮, 則皆無矣。 此必托稱東宮之事, 而自爲之也。 昨日入侍經筵官處, 此意言之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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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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