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83권, 중종 32년 1월 5일 乙酉 1/1 기사 /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삼공이 임의로 임소를 버린 수원 군수 김언과 간사한 수원의 아전을 추국하도록 건의하다
국역
삼공(三公)이 아뢰기를,
"수원 군수(水原郡守) 김언(金漹)을 지금 조옥(詔獄)에 잡아다가 추국(推鞫)하려는데, 그가 마음대로 임소(任所)를 버리고 떠난 것으로 보면 조옥에서 추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듣건대 수원의 아전(衙前)들이 김언을 싫어하여 반드시 파직되어 떠나게 하려고 횡포와 패역(悖逆)을 못할 짓 없이 다하고, 천사를 지대(支待)하기 위하여 시기에 미쳐서 할 일을 전혀 듣지 않기까지 하므로, 장차 변고가 있을까 염려한 까닭에 직무를 버리고 떠났다 합니다. 그 완악하고 사나운 아전들을 경관(京官)을 보내어 추국하라는 명은 이미 내리셨으나 경차관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먼저 김언을 조옥에 데려왔습니다. 장신(杖訊)을 받다가 마음대로 직무를 버린 죄를 거짓으로 승복한다면, 완악하고 사나운 무리의 간사한 계책이 이루어질 것이니, 먼저 고을 사람들을 추국하소서. 그런 뒤에 김언을 추문(推問)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전에 한석호(韓碩豪)가 군수였을 때에도 아전들이 간사한 술책을 부려 죽지 않은 죄수를 죽었다고 검시(檢屍)하여 한석호를 옥사(獄事)를 신중하게 다스리지 않은 죄에 빠뜨리려고 꾀하였으니, 이 고을의 인심이 완악하고 사나운 것은 그 유래가 오랩니다. 이제 고을 사람을 형신(刑訊)하지 않고 먼저 김언을 죄준다면, 원근(遠近)이 그것을 본떠서 수령(守令)인 사람은 장차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근래 간사하고 사나운 것이 버릇이 되어 혐의를 품고 독을 머금어 그 윗사람을 무함하는 것은 흔히 다 그러합니다. 수원 아전들의 죄는 엄하게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우선 김언의 옥사를 늦추고 먼저 고을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답하였다.
"삼공의 말은 옳다. 그러나 김언은 관직에 있으면서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고, 또 연유를 갖추어 감사에게 신보(申報)하여 간사하고 완악한 죄를 분명히 바루지 않고서 도리어 스스로 물러가려고 병을 핑계하여 사직하고 마침내 그 직무를 마음대로 버렸으니, 이는 스스로 완악한 백성들의 술수에 빠져 완악한 버릇을 길러 주기에 넉넉한 것이다. 김언은 변고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제 집에 물러갔으니 스스로를 보전하는 방도는 얻은 것이나, 국가가 관직을 둔 뜻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김언의 잘못은 작은 것이 아니므로 특별히 명하여 조옥에서 추국하게 하였다. 이는 김언 자신의 잘못이지 고을 사람에 관계되지 않는 일이니, 삼공이 먼저 고을 사람들을 추국한 뒤에 김언을 추문해야 한다고 말한 뜻을 나는 모르겠다. 완악한 백성들이 함부로 거스르는 것을 관직에 있는 자가 억제하지 못하고 먼저 자신이 위축되어 직무를 버리고 집에 돌아갔으니, 나라의 체모를 크게 손상한 것이다. 완악한 백성들이 김언이 추국받는다는 것을 듣더라도 저희들이 간사한 술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자연히 알 것이다. 추국을 먼저 하고 뒤에 하는 것은 피차에 관계되지 않는다. 수원은 서울에서 멀지 않으니, 경차관이 빨리 이를 수 있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14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원문
○乙酉/三公啓曰: "水原郡守金漹, 今將逮鞫於詔獄。 以其擅棄任所觀之, 鞫於詔獄宜矣。 但聞水原人吏厭金漹, 必欲致其罷去, 橫暴悖逆, 無所不至。 至於天使支待及期之事, 全不聽從。 恐其將有變, 故棄官而去。 其頑暴人吏等, 發京官往鞫之命已下, 而敬差官尙未發去。 先致金漹於詔獄, 若於杖下, 誣服其擅棄官事之罪, 則頑暴之徒, 奸計得成矣。 請先鞫邑人, 有可問之端, 然後問金漹似當。 前者韓碩豪爲郡守時, 下吏弄術, 以不死之囚, 詐以爲死, 至於檢屍, 謀陷碩豪於不謹治獄之罪。 此邑人心之頑暴, 其來尙矣。 今刑訊不加於邑人, 而先罪金漹, 則遠近效之, 爲守令者, 將無所措其手矣。 近來奸暴成風, 懷嫌含毒, 誣傾其上, 比比皆然。 水原人吏之罪, 不可不痛治, 姑緩金漹之獄, 而先治邑人何如?" 答曰: "三公之言是矣, 然金漹在官, 不能治之, 而又不具由報監司, 明正奸頑之罪, 反欲自退, 托病辭職, 卒乃擅棄其官, 此自陷於頑民之術, 適足以長其頑風也。 金漹恐其有變, 故自退於家, 其所以自保之道則得矣, 於國家設官之意何如? 金漹所失, 非細故也。 是以別命推鞫于詔獄。 此漹自己之失, 不關邑人之事。 三公所謂先推邑人而後, 問金漹之意, 予不知也。 頑民橫逆, 在官者不能制之, 先自畏縮, 棄官歸家, 虧損國體, 可謂大矣。 頑民雖聞漹之被鞫, 亦自知其不陷吾輩奸術中也。 推之先後, 不關於彼此也。 水原距京城不遠, 敬差官可速到也。"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14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중종 32년 (1537) 1월 5일
중종실록83권, 중종 32년 1월 5일 乙酉 1/1 기사 /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삼공이 임의로 임소를 버린 수원 군수 김언과 간사한 수원의 아전을 추국하도록 건의하다
국역
삼공(三公)이 아뢰기를,
"수원 군수(水原郡守) 김언(金漹)을 지금 조옥(詔獄)에 잡아다가 추국(推鞫)하려는데, 그가 마음대로 임소(任所)를 버리고 떠난 것으로 보면 조옥에서 추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듣건대 수원의 아전(衙前)들이 김언을 싫어하여 반드시 파직되어 떠나게 하려고 횡포와 패역(悖逆)을 못할 짓 없이 다하고, 천사를 지대(支待)하기 위하여 시기에 미쳐서 할 일을 전혀 듣지 않기까지 하므로, 장차 변고가 있을까 염려한 까닭에 직무를 버리고 떠났다 합니다. 그 완악하고 사나운 아전들을 경관(京官)을 보내어 추국하라는 명은 이미 내리셨으나 경차관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먼저 김언을 조옥에 데려왔습니다. 장신(杖訊)을 받다가 마음대로 직무를 버린 죄를 거짓으로 승복한다면, 완악하고 사나운 무리의 간사한 계책이 이루어질 것이니, 먼저 고을 사람들을 추국하소서. 그런 뒤에 김언을 추문(推問)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전에 한석호(韓碩豪)가 군수였을 때에도 아전들이 간사한 술책을 부려 죽지 않은 죄수를 죽었다고 검시(檢屍)하여 한석호를 옥사(獄事)를 신중하게 다스리지 않은 죄에 빠뜨리려고 꾀하였으니, 이 고을의 인심이 완악하고 사나운 것은 그 유래가 오랩니다. 이제 고을 사람을 형신(刑訊)하지 않고 먼저 김언을 죄준다면, 원근(遠近)이 그것을 본떠서 수령(守令)인 사람은 장차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근래 간사하고 사나운 것이 버릇이 되어 혐의를 품고 독을 머금어 그 윗사람을 무함하는 것은 흔히 다 그러합니다. 수원 아전들의 죄는 엄하게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우선 김언의 옥사를 늦추고 먼저 고을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답하였다.
"삼공의 말은 옳다. 그러나 김언은 관직에 있으면서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고, 또 연유를 갖추어 감사에게 신보(申報)하여 간사하고 완악한 죄를 분명히 바루지 않고서 도리어 스스로 물러가려고 병을 핑계하여 사직하고 마침내 그 직무를 마음대로 버렸으니, 이는 스스로 완악한 백성들의 술수에 빠져 완악한 버릇을 길러 주기에 넉넉한 것이다. 김언은 변고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제 집에 물러갔으니 스스로를 보전하는 방도는 얻은 것이나, 국가가 관직을 둔 뜻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김언의 잘못은 작은 것이 아니므로 특별히 명하여 조옥에서 추국하게 하였다. 이는 김언 자신의 잘못이지 고을 사람에 관계되지 않는 일이니, 삼공이 먼저 고을 사람들을 추국한 뒤에 김언을 추문해야 한다고 말한 뜻을 나는 모르겠다. 완악한 백성들이 함부로 거스르는 것을 관직에 있는 자가 억제하지 못하고 먼저 자신이 위축되어 직무를 버리고 집에 돌아갔으니, 나라의 체모를 크게 손상한 것이다. 완악한 백성들이 김언이 추국받는다는 것을 듣더라도 저희들이 간사한 술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자연히 알 것이다. 추국을 먼저 하고 뒤에 하는 것은 피차에 관계되지 않는다. 수원은 서울에서 멀지 않으니, 경차관이 빨리 이를 수 있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14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원문
○乙酉/三公啓曰: "水原郡守金漹, 今將逮鞫於詔獄。 以其擅棄任所觀之, 鞫於詔獄宜矣。 但聞水原人吏厭金漹, 必欲致其罷去, 橫暴悖逆, 無所不至。 至於天使支待及期之事, 全不聽從。 恐其將有變, 故棄官而去。 其頑暴人吏等, 發京官往鞫之命已下, 而敬差官尙未發去。 先致金漹於詔獄, 若於杖下, 誣服其擅棄官事之罪, 則頑暴之徒, 奸計得成矣。 請先鞫邑人, 有可問之端, 然後問金漹似當。 前者韓碩豪爲郡守時, 下吏弄術, 以不死之囚, 詐以爲死, 至於檢屍, 謀陷碩豪於不謹治獄之罪。 此邑人心之頑暴, 其來尙矣。 今刑訊不加於邑人, 而先罪金漹, 則遠近效之, 爲守令者, 將無所措其手矣。 近來奸暴成風, 懷嫌含毒, 誣傾其上, 比比皆然。 水原人吏之罪, 不可不痛治, 姑緩金漹之獄, 而先治邑人何如?" 答曰: "三公之言是矣, 然金漹在官, 不能治之, 而又不具由報監司, 明正奸頑之罪, 反欲自退, 托病辭職, 卒乃擅棄其官, 此自陷於頑民之術, 適足以長其頑風也。 金漹恐其有變, 故自退於家, 其所以自保之道則得矣, 於國家設官之意何如? 金漹所失, 非細故也。 是以別命推鞫于詔獄。 此漹自己之失, 不關邑人之事。 三公所謂先推邑人而後, 問金漹之意, 予不知也。 頑民橫逆, 在官者不能制之, 先自畏縮, 棄官歸家, 虧損國體, 可謂大矣。 頑民雖聞漹之被鞫, 亦自知其不陷吾輩奸術中也。 推之先後, 不關於彼此也。 水原距京城不遠, 敬差官可速到也。"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14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원본
중종 32년 (1537) 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