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68권, 중종 25년 5월 11일 庚子 1/2 기사 / 1530년 명 가정(嘉靖) 9년
시강관 조종경이 임금이 솔선하여 검소한 덕을 숭상할 것을 청하다
국역
주강에 나아갔다. 시강관 조종경이 아뢰기를,
"장양(張良)이 한 고조(漢高祖)에게 ‘충직한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동을 하는 데는 유리하고, 좋은 약이 입에는 쓰지만 병을 치료하는 데는 유리하다.’고 하였고, 부열(傅說)은 고종(高宗)에게 ‘나무가 먹줄[繩]을 따르면 곧아지고, 간하는 말을 임금이 따르면 성인(聖人)이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간하는 말을 임금이 잘 따라서 온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한 다음에야 아랫사람들이 간언 올리기를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충직한 언론이 이르지 않는다고 걱정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 다음에야 자신의 하는 일이 활발하게 시행되어 정사(政事)와 언동(言動)의 사이에 장애되고 옹색(壅塞)되는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간하는 말을 꺼리고 따르려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누가 감히 말하려 하겠습니까?
한 고조가 관중(關中)에 들어가서는 그대로 머무르려는 뜻이 있자, 장양이 ‘이 모든 사치스러운 물건이 진(秦)나라가 망하게 된 근본이다.’ 하니, 고조가 즉시 깨닫고 장양의 말을 따랐기 때문에 마침내 제업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우(項羽)는 관중에 도읍을 정해야 한다는 한생(韓生)의 말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하고서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와 같다.’는 말을 하더니, 끝내는 망하고야 말았습니다.
대체로 사치를 탐하는 생각이 한번 마음에 싹트면 화환(禍患)이 그림자나 메아리 보다 더 빨리 이르는 것이니, 역대에 걸쳐 치란(治亂)의 원인이 대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걸(桀)·주(紂)의 경궁(瓊宮)과 요대(瑤臺)는 끝내 멸망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 명황(唐明皇)은 주옥(珠玉)과 금수(錦繡)를 불태워 버렸고, 진 무제(晉武帝)는 치두구(雉頭裘)250) 를 사치스럽다 하여 불태웠으니, 그 검소한 덕이 지극한 듯도 하였지만, 당(唐)나라에는 천보의 난리[天寶之亂]251) 가 있었고, 진(晉)나라는 쇠미해지는 형세가 있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 고금을 통틀어 임금된 이들의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이 ‘마땅히 검소한 덕을 닦아 장구한 계책을 생각하라.’ 하였으니, 만일 검소한 덕을 나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아 끝내 변치 않는다면 어찌 나라가 어지럽고 망하는 화가 있겠습니까.
근래에는 사치를 숭상함이 풍속을 이루었습니다. 혼례의 품수(品數)에 대한 등급은 나름대로 규정이 있는데도, 오늘날 혼인을 치르는 데 있어 그 국법대로 따르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중에도 신부(新婦)가 시부모를 배알하는 일에는 폐단이 더욱 심합니다. 수종(隨從)하는 사람이 길을 가득 메우고 치장(治裝)하는 물품을 절제 없이 마구 낭비하여 폐습이 이미 고질화되었으니, 어찌 법령(法令)으로 이것을 금지할 수 있겠습니까.
상께서 몸소 검소한 덕을 숭상하신다면 아랫사람이 그를 본받아 풍속이 저절로 크게 변할 것입니다. 사치하는 풍습이 지금 같은 때가 없으니, 모든 길례(吉禮) 등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이 검소하게 하여 중도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왕실의 인척 집에서 각도에 물품을 토색하는 일은 그 폐단이 매우 커서 백성들의 시달림이 더욱 심하니 모름지기 상께서 유념하소서."
하니, 상이 일렀다.
"지금의 풍속이 점차로 예전만 못해 가는데, 이것이 어찌 갑자기 고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는 반드시 윗사람이 먼저 검약을 숭상하여 아랫사람이 이를 본받게 된 다음에야 법령도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검약을 숭상하면 아랫사람이 저절로 교화되지만, 이를 법령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원문
○庚子/御晝講。 侍講官趙宗敬曰: "張良告漢 高之言曰: ‘忠言逆耳, 利於行, 良藥苦口, 利於病。’ 傅說言于商宗曰: ‘木從繩則直, 后從諫則聖。’ 人君必從諫如流, 使一世之人, 皆敢言不諱, 然後下人樂於進諫矣。 忠言讜論, 何患不至哉? 然後吾之所爲, 沛然於政事言動之間, 亦無阻礙壅塞之患矣。 若厭憚而不爲樂從, 則在下之人, 孰肯敢言哉? 漢 高祖入關, 有留居之意, 張良曰: ‘凡此奢侈之物, 皆秦所以亡也。’ 高祖卽悟從之, 故遂成帝業。 項羽聞韓生都關中之言而不省, 發錦衣夜行之言, 卒至於亡。 大凡奢侈之念, 一萌于中, 而禍患之至, 捷若影響。 歷代治亂之源, 蓋在於此, 桀、紂瓊宮瑤臺, 終致滅亡。 唐 明皇焚珠玉錦繡。 晋 武帝焚雉頭裘。 其爲儉德, 雖似至矣, 唐有天寶之亂, 晋有衰微不振之勢。 由是觀之, 則鮮克有終, 古今人主之通患也。 故伊尹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若以儉德爲致治之本, 而終始不渝, 則安有亂亡之禍乎? 近來奢侈成風, 婚禮品數等級, 自有其制, 而今之婚姻, 其能如國法者, 有幾人哉? 新婦謁舅姑之事, 弊端尤甚, 隨從之人, 蔽塞道路, 資裝之物, 妄費無節, 弊習已痼, 豈法令之所能止哉? 自上躬率以儉, 則上行下效, 風俗自然丕變。 奢侈之習, 無如此時, 凡吉禮等事, 尤當從儉而節中, 姻婭之家, 徵求于各道, 其弊不貲, 百姓之困瘁益甚, 須自上留念焉。" 上曰: "今之風俗, 漸不如古, 此豈一朝所能變哉? 必上行下效, 然後法令亦可行矣。 自上儉約, 則下人自然趨化, 不可以法令止之也。"
중종 25년 (1530) 5월 11일
중종실록68권, 중종 25년 5월 11일 庚子 1/2 기사 / 1530년 명 가정(嘉靖) 9년
시강관 조종경이 임금이 솔선하여 검소한 덕을 숭상할 것을 청하다
국역
주강에 나아갔다. 시강관 조종경이 아뢰기를,
"장양(張良)이 한 고조(漢高祖)에게 ‘충직한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동을 하는 데는 유리하고, 좋은 약이 입에는 쓰지만 병을 치료하는 데는 유리하다.’고 하였고, 부열(傅說)은 고종(高宗)에게 ‘나무가 먹줄[繩]을 따르면 곧아지고, 간하는 말을 임금이 따르면 성인(聖人)이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간하는 말을 임금이 잘 따라서 온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한 다음에야 아랫사람들이 간언 올리기를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충직한 언론이 이르지 않는다고 걱정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 다음에야 자신의 하는 일이 활발하게 시행되어 정사(政事)와 언동(言動)의 사이에 장애되고 옹색(壅塞)되는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간하는 말을 꺼리고 따르려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누가 감히 말하려 하겠습니까?
한 고조가 관중(關中)에 들어가서는 그대로 머무르려는 뜻이 있자, 장양이 ‘이 모든 사치스러운 물건이 진(秦)나라가 망하게 된 근본이다.’ 하니, 고조가 즉시 깨닫고 장양의 말을 따랐기 때문에 마침내 제업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우(項羽)는 관중에 도읍을 정해야 한다는 한생(韓生)의 말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하고서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와 같다.’는 말을 하더니, 끝내는 망하고야 말았습니다.
대체로 사치를 탐하는 생각이 한번 마음에 싹트면 화환(禍患)이 그림자나 메아리 보다 더 빨리 이르는 것이니, 역대에 걸쳐 치란(治亂)의 원인이 대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걸(桀)·주(紂)의 경궁(瓊宮)과 요대(瑤臺)는 끝내 멸망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 명황(唐明皇)은 주옥(珠玉)과 금수(錦繡)를 불태워 버렸고, 진 무제(晉武帝)는 치두구(雉頭裘)250) 를 사치스럽다 하여 불태웠으니, 그 검소한 덕이 지극한 듯도 하였지만, 당(唐)나라에는 천보의 난리[天寶之亂]251) 가 있었고, 진(晉)나라는 쇠미해지는 형세가 있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 고금을 통틀어 임금된 이들의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이 ‘마땅히 검소한 덕을 닦아 장구한 계책을 생각하라.’ 하였으니, 만일 검소한 덕을 나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아 끝내 변치 않는다면 어찌 나라가 어지럽고 망하는 화가 있겠습니까.
근래에는 사치를 숭상함이 풍속을 이루었습니다. 혼례의 품수(品數)에 대한 등급은 나름대로 규정이 있는데도, 오늘날 혼인을 치르는 데 있어 그 국법대로 따르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중에도 신부(新婦)가 시부모를 배알하는 일에는 폐단이 더욱 심합니다. 수종(隨從)하는 사람이 길을 가득 메우고 치장(治裝)하는 물품을 절제 없이 마구 낭비하여 폐습이 이미 고질화되었으니, 어찌 법령(法令)으로 이것을 금지할 수 있겠습니까.
상께서 몸소 검소한 덕을 숭상하신다면 아랫사람이 그를 본받아 풍속이 저절로 크게 변할 것입니다. 사치하는 풍습이 지금 같은 때가 없으니, 모든 길례(吉禮) 등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이 검소하게 하여 중도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왕실의 인척 집에서 각도에 물품을 토색하는 일은 그 폐단이 매우 커서 백성들의 시달림이 더욱 심하니 모름지기 상께서 유념하소서."
하니, 상이 일렀다.
"지금의 풍속이 점차로 예전만 못해 가는데, 이것이 어찌 갑자기 고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는 반드시 윗사람이 먼저 검약을 숭상하여 아랫사람이 이를 본받게 된 다음에야 법령도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검약을 숭상하면 아랫사람이 저절로 교화되지만, 이를 법령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원문
○庚子/御晝講。 侍講官趙宗敬曰: "張良告漢 高之言曰: ‘忠言逆耳, 利於行, 良藥苦口, 利於病。’ 傅說言于商宗曰: ‘木從繩則直, 后從諫則聖。’ 人君必從諫如流, 使一世之人, 皆敢言不諱, 然後下人樂於進諫矣。 忠言讜論, 何患不至哉? 然後吾之所爲, 沛然於政事言動之間, 亦無阻礙壅塞之患矣。 若厭憚而不爲樂從, 則在下之人, 孰肯敢言哉? 漢 高祖入關, 有留居之意, 張良曰: ‘凡此奢侈之物, 皆秦所以亡也。’ 高祖卽悟從之, 故遂成帝業。 項羽聞韓生都關中之言而不省, 發錦衣夜行之言, 卒至於亡。 大凡奢侈之念, 一萌于中, 而禍患之至, 捷若影響。 歷代治亂之源, 蓋在於此, 桀、紂瓊宮瑤臺, 終致滅亡。 唐 明皇焚珠玉錦繡。 晋 武帝焚雉頭裘。 其爲儉德, 雖似至矣, 唐有天寶之亂, 晋有衰微不振之勢。 由是觀之, 則鮮克有終, 古今人主之通患也。 故伊尹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若以儉德爲致治之本, 而終始不渝, 則安有亂亡之禍乎? 近來奢侈成風, 婚禮品數等級, 自有其制, 而今之婚姻, 其能如國法者, 有幾人哉? 新婦謁舅姑之事, 弊端尤甚, 隨從之人, 蔽塞道路, 資裝之物, 妄費無節, 弊習已痼, 豈法令之所能止哉? 自上躬率以儉, 則上行下效, 風俗自然丕變。 奢侈之習, 無如此時, 凡吉禮等事, 尤當從儉而節中, 姻婭之家, 徵求于各道, 其弊不貲, 百姓之困瘁益甚, 須自上留念焉。" 上曰: "今之風俗, 漸不如古, 此豈一朝所能變哉? 必上行下效, 然後法令亦可行矣。 自上儉約, 則下人自然趨化, 不可以法令止之也。"
원본
중종 25년 (1530)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