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66권, 중종 24년 9월 12일 甲辰 5/7 기사 / 1529년 명 가정(嘉靖) 8년
사형수의 공사는 반드시 삼복제를 지키도록 하다
국역
석강에 나아갔다. 시강관(侍講官) 김희열(金希說)이 아뢰기를,
"여기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라도 무섭다고 했습니다. 태산(泰山)에 사는 어떤 부인이 시아버지와 남편이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하고 그 자식도 호랑이에게 죽었는데도 그 고을을 떠나지 않은 것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자(孔子)가 그 말을 듣고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구나.’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말한다면 호랑이의 해는 창졸간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 그 해가 실로 급박하지만 학정의 해는 급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호랑이의 해는 급박하지만 해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고, 덫이나 그물을 만들어 잡는다면 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혹한 정치의 해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근심하고 날마다 달마다 심해져 당사자 한 사람뿐 만이 아니라 그 일족에게까지 파급됩니다. 또 그 일족에게만 파급되는 것이 아니라 온 고을까지 파급되어 피하려 해도 피할 곳이 없으니, 호랑이보다 극심한 정도가 아닙니다. 일찍이 유자후(柳子厚)323) 가 지은 포사자설(捕蛇者說)을 보건대, 영주(永州)의 뱀은 그 독성이 말할 수 없이 강한데도 장씨(蔣氏)가 3대에 걸쳐 뱀잡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뱀을 잡느라 만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한 번 살아나는 지독한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도 뱀을 잡는 것을 세금을 면제받고 끝내 목숨을 보전하는 계책으로 삼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을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유자후의 포사자설의 본의도 이 한 편의 글에 뿌리한 것입니다.
대개 백성을 다스리는 관원으로는 수령(守令)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수령이 적임자인 뒤에야 백성이 가혹한 정치를 당하지 않게 되어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옛날 다스리기를 도모하는 임금들은 먼저 목민관(牧民官)을 가려 뽑았습니다. 만약 적임자를 얻지 못한다면 백성들이 가혹한 정사로 인해 받는 해가 어찌 호랑이보다 심하지 않겠습니까?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은 각별히 가려서 차임하여야 가혹한 정사가 없게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가혹한 정사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사실이다. 수령들 거의가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자기 사욕만 채울 뿐 백성을 돌보는 정사에는 힘을 쓰지 않으니, 백성들이 피해를 받는 것은 형세로 보아 당연하다. 하많은 군현(郡縣)에 모두 어진 수령을 가려 보낼 수는 없겠지만, 어진 감사를 가려 차임해서 출척(黜陟)을 엄하게 한다면, 혹리(酷吏)도 두려워할 것이고 가혹한 정사도 절로 없어질 것이다. 근래 수령의 현부(賢否)을 치계(馳啓)하도록 각도 감사에게 하유했는데도 지금까지 한 도도 치계한 곳이 없다. 수령 중에 현능하여 승급시킬 만한 자를 얻기란 진실로 쉽지 않겠지만, 현능하지 못하여 파출(罷黜)시킬 자가 어찌 한 사람도 없겠는가? 이는 감사가 심상한 일로 여긴 채 봉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다. 상이 특진관(特進官) 신상(申鏛) 【이때 형조 판서였다.】 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외방의 형옥(刑獄) 가운데는 1백여 차나 형신(刑訊)을 받은 자가 있고, 사형수의 공사(公事)가 불분명하여 여러 차례 장형(杖刑)을 참고 있는 자도 있다. 그래서 근자에 대신들과 의논하여 풀어준 자도 많았다. 대저 형옥의 일 가운데 살인 공사(殺人公事)는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무릇 사죄(死罪)에 들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삼복(三覆)을 하게 한 것은 인명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목숨으로 보상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형관은 모름지기 반복해서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하매, 신상이 아뢰었다.
"신이 중외의 옥사를 보건대, 분명한 사건은 추국(推鞫)하여 실정을 알아 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만, 의심스러운 정상이 있으면 적지 않은 사형수를 가벼이 결단했다는 여론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속결하지 못하여 옥사(獄事)가 지체됩니다. 그 중에 만일 실제로 의옥에 관계되면 감사가 스스로 짐작하여 간혹 계품(啓稟)하지 않고 분간(分揀)할 때도 있습니다. 대개 의옥 공사(疑獄公事)는 어긋나는 단서가 있어도 일이 분명하지 못하면 유사가 법대로 집행할 뿐입니다."
- [註 323] 유자후(柳子厚) : 자후는 유종원(柳宗元)의 자임.
원문
○御夕講。 侍講官金希說曰: "此言苛政猛於虎。 泰山之婦人, 舅與夫, 旣死於虎, 其子又死於虎, 而猶不之去邑者, 爲其無苛政故也。 孔子聞之曰: ‘苛政猛於虎也。’ 以常情言之, 則虎之害, 出於倉卒之不免, 其害誠急也, 苛政之害, 則似爲緩也。 然虎之爲害雖急, 而及其害人, 猶止於其人之身, 而若爲機械罟(獲)〔擭〕 , 則亦可免也。 若苛政之害, 則剝血浚骨, 朝夕愁苦, 日甚月削, 非徒一身, 延及於族類, 非徒族類, 延及於一鄕, 而且避之無地, 豈止於猛虎而已哉? 嘗觀柳子厚, 作捕蛇說曰: ‘永州之蛇, 其毒(蟞)〔螫〕 甚慘, 而蔣氏三世, 以捕蛇爲業。 其捕之也, 出萬死得一生。 其毒太苦, 而以捕蛇, 得免其賦稅, 終爲保全之計。 以此見之, 苛政猛於虎之言可知, 而柳子厚之意, 蓋出於此篇之中矣。 大抵親民之官, 無如守令。 守令得其人, 然後民不見苛政, 而可得蘇息矣。 以此, 古之圖治者, 先擇其牧民之官。 若不得其人, 則民之受害於苛政, 豈不有甚於猛虎乎? 親民之官, 須當各別擇差, 使無苛政可也。" 上曰: "苛政猛於虎之言, 果爲然矣。 守令類皆剝民膏血, 自奉於己, 而不務恤民, 民之受害, 勢所必至。 許多郡縣, 雖不能一一盡擇, 若擇差賢監司, 而嚴明黜陟, 則酷吏亦可畏慴, 而苛政自無矣。 近者以守令賢否馳啓事, 下諭于各道監司, 而迨無一道馳啓者。 其守令賢而可陞者, 固不易得, 其不賢當黜者, 豈無其人? 但爲監司者, 視爲尋常, 而恬不奉行也。" 上顧謂特進官申鏛曰: 【時爲刑曹判書。】 "外方刑獄間, 百餘次受刑者有之。 死囚公事, 不分明, 忍杖累次者, 亦有之。 故近者議于大臣, 多所原放。 大抵刑獄間事, 如殺人公事, 至爲重大。 凡人有死罪, 必須三覆者, 所以重人命也。 殺人之人, 所當償命, 爲刑官, 須當反覆詳察而爲之。" 申鏛曰: "臣見中外獄事, 分明之事, 則其推鞫得情, 有不難焉, 若有擬狀, 則不小死囚, 輕易決之, 恐有物論。 以此不能速決, 獄事淹滯。 其中若實涉疑獄, 則監司自當斟酌, 或有不待啓稟而分揀之時矣。 大抵疑獄公事, 雖有違端, 而事不分明, 則爲有司者, 執法而已。"
중종실록66권, 중종 24년 9월 12일 甲辰 5/7 기사 / 1529년 명 가정(嘉靖) 8년
사형수의 공사는 반드시 삼복제를 지키도록 하다
국역
석강에 나아갔다. 시강관(侍講官) 김희열(金希說)이 아뢰기를,
"여기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라도 무섭다고 했습니다. 태산(泰山)에 사는 어떤 부인이 시아버지와 남편이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하고 그 자식도 호랑이에게 죽었는데도 그 고을을 떠나지 않은 것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자(孔子)가 그 말을 듣고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구나.’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말한다면 호랑이의 해는 창졸간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 그 해가 실로 급박하지만 학정의 해는 급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호랑이의 해는 급박하지만 해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고, 덫이나 그물을 만들어 잡는다면 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혹한 정치의 해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근심하고 날마다 달마다 심해져 당사자 한 사람뿐 만이 아니라 그 일족에게까지 파급됩니다. 또 그 일족에게만 파급되는 것이 아니라 온 고을까지 파급되어 피하려 해도 피할 곳이 없으니, 호랑이보다 극심한 정도가 아닙니다. 일찍이 유자후(柳子厚)323) 가 지은 포사자설(捕蛇者說)을 보건대, 영주(永州)의 뱀은 그 독성이 말할 수 없이 강한데도 장씨(蔣氏)가 3대에 걸쳐 뱀잡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뱀을 잡느라 만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한 번 살아나는 지독한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도 뱀을 잡는 것을 세금을 면제받고 끝내 목숨을 보전하는 계책으로 삼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을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유자후의 포사자설의 본의도 이 한 편의 글에 뿌리한 것입니다.
대개 백성을 다스리는 관원으로는 수령(守令)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수령이 적임자인 뒤에야 백성이 가혹한 정치를 당하지 않게 되어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옛날 다스리기를 도모하는 임금들은 먼저 목민관(牧民官)을 가려 뽑았습니다. 만약 적임자를 얻지 못한다면 백성들이 가혹한 정사로 인해 받는 해가 어찌 호랑이보다 심하지 않겠습니까?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은 각별히 가려서 차임하여야 가혹한 정사가 없게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가혹한 정사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사실이다. 수령들 거의가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자기 사욕만 채울 뿐 백성을 돌보는 정사에는 힘을 쓰지 않으니, 백성들이 피해를 받는 것은 형세로 보아 당연하다. 하많은 군현(郡縣)에 모두 어진 수령을 가려 보낼 수는 없겠지만, 어진 감사를 가려 차임해서 출척(黜陟)을 엄하게 한다면, 혹리(酷吏)도 두려워할 것이고 가혹한 정사도 절로 없어질 것이다. 근래 수령의 현부(賢否)을 치계(馳啓)하도록 각도 감사에게 하유했는데도 지금까지 한 도도 치계한 곳이 없다. 수령 중에 현능하여 승급시킬 만한 자를 얻기란 진실로 쉽지 않겠지만, 현능하지 못하여 파출(罷黜)시킬 자가 어찌 한 사람도 없겠는가? 이는 감사가 심상한 일로 여긴 채 봉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다. 상이 특진관(特進官) 신상(申鏛) 【이때 형조 판서였다.】 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외방의 형옥(刑獄) 가운데는 1백여 차나 형신(刑訊)을 받은 자가 있고, 사형수의 공사(公事)가 불분명하여 여러 차례 장형(杖刑)을 참고 있는 자도 있다. 그래서 근자에 대신들과 의논하여 풀어준 자도 많았다. 대저 형옥의 일 가운데 살인 공사(殺人公事)는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무릇 사죄(死罪)에 들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삼복(三覆)을 하게 한 것은 인명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목숨으로 보상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형관은 모름지기 반복해서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하매, 신상이 아뢰었다.
"신이 중외의 옥사를 보건대, 분명한 사건은 추국(推鞫)하여 실정을 알아 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만, 의심스러운 정상이 있으면 적지 않은 사형수를 가벼이 결단했다는 여론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속결하지 못하여 옥사(獄事)가 지체됩니다. 그 중에 만일 실제로 의옥에 관계되면 감사가 스스로 짐작하여 간혹 계품(啓稟)하지 않고 분간(分揀)할 때도 있습니다. 대개 의옥 공사(疑獄公事)는 어긋나는 단서가 있어도 일이 분명하지 못하면 유사가 법대로 집행할 뿐입니다."
- [註 323] 유자후(柳子厚) : 자후는 유종원(柳宗元)의 자임.
원문
○御夕講。 侍講官金希說曰: "此言苛政猛於虎。 泰山之婦人, 舅與夫, 旣死於虎, 其子又死於虎, 而猶不之去邑者, 爲其無苛政故也。 孔子聞之曰: ‘苛政猛於虎也。’ 以常情言之, 則虎之害, 出於倉卒之不免, 其害誠急也, 苛政之害, 則似爲緩也。 然虎之爲害雖急, 而及其害人, 猶止於其人之身, 而若爲機械罟(獲)〔擭〕 , 則亦可免也。 若苛政之害, 則剝血浚骨, 朝夕愁苦, 日甚月削, 非徒一身, 延及於族類, 非徒族類, 延及於一鄕, 而且避之無地, 豈止於猛虎而已哉? 嘗觀柳子厚, 作捕蛇說曰: ‘永州之蛇, 其毒(蟞)〔螫〕 甚慘, 而蔣氏三世, 以捕蛇爲業。 其捕之也, 出萬死得一生。 其毒太苦, 而以捕蛇, 得免其賦稅, 終爲保全之計。 以此見之, 苛政猛於虎之言可知, 而柳子厚之意, 蓋出於此篇之中矣。 大抵親民之官, 無如守令。 守令得其人, 然後民不見苛政, 而可得蘇息矣。 以此, 古之圖治者, 先擇其牧民之官。 若不得其人, 則民之受害於苛政, 豈不有甚於猛虎乎? 親民之官, 須當各別擇差, 使無苛政可也。" 上曰: "苛政猛於虎之言, 果爲然矣。 守令類皆剝民膏血, 自奉於己, 而不務恤民, 民之受害, 勢所必至。 許多郡縣, 雖不能一一盡擇, 若擇差賢監司, 而嚴明黜陟, 則酷吏亦可畏慴, 而苛政自無矣。 近者以守令賢否馳啓事, 下諭于各道監司, 而迨無一道馳啓者。 其守令賢而可陞者, 固不易得, 其不賢當黜者, 豈無其人? 但爲監司者, 視爲尋常, 而恬不奉行也。" 上顧謂特進官申鏛曰: 【時爲刑曹判書。】 "外方刑獄間, 百餘次受刑者有之。 死囚公事, 不分明, 忍杖累次者, 亦有之。 故近者議于大臣, 多所原放。 大抵刑獄間事, 如殺人公事, 至爲重大。 凡人有死罪, 必須三覆者, 所以重人命也。 殺人之人, 所當償命, 爲刑官, 須當反覆詳察而爲之。" 申鏛曰: "臣見中外獄事, 分明之事, 則其推鞫得情, 有不難焉, 若有擬狀, 則不小死囚, 輕易決之, 恐有物論。 以此不能速決, 獄事淹滯。 其中若實涉疑獄, 則監司自當斟酌, 或有不待啓稟而分揀之時矣。 大抵疑獄公事, 雖有違端, 而事不分明, 則爲有司者, 執法而已。"